general

멍청한 전자정부

몇 달 전에 대한민국 정부민원포탈 ‘민원24‘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앞선 대한민국 전자정부” 시스템을 사용해 볼 기회가 있었다. 한국 정부의 IT 수준을 대략 아는 일인으로써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결국 일 처리는 못하고 한 시간 동안 그냥 열만 받다 브라우저를 닫았다.

한 시간 내내 민원 사이트에서 내가 한 거라고는 끝없는 액티브 엑스 설치와 같은 정보 입력이었다(해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아주 길고 복잡한 양식을 채운 후 [확인]을 눌렀을 때 액티브 엑스가 안 깔려서 설치하면 다시 그 양식을 처음부터 채워 넣어야 한다). 한국 사이트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나였지만,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프로그램과 액티브 엑스를 깔아본 적이 있을까? 심지어 민원 사이트에는 ‘민원24 이용에 필요한 프로그램 목록‘을 제공하는데 여기에는 – 윈도우스 사용자라면 – 18개의 프로그램이 나열되어 있다.

사이트 하나 이용하는데 18개의 프로그램 설치라…. 짜증이 엄청났지만 이미 30분 이상을 여기에 낭비했고,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에 계속 깔고, 반복하고, 다시 깔고, 생쇼를 했다. 모든 관문을 다 통과했고, 기재한 양식을 출력할 시점에 알아낸 놀라운 사실 – 출력하기 위해서 무슨 보안 모듈을 설치해야 하고 아무 프린터에서나 출력을 못 한다는. 이 시점에서 나는 브라우저를 닫았다. 그리고 한 5분 동안 쌍욕을 했다. 또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중앙행정부의 시스템이랑 서울시의 시스템과는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온라인으로 처리하려던 케이스는 어차피 출력해서 직접 담당 부서로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점에 나는 미국의 정부 사이트 (FDA)에 몇 가지 제품을 등록했다. UI로 따지면 미국 정부 사이트는 한국 정부 사이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박하고 저렴하다. 이미지는 없고 거의 텍스트 기반이다. 하지만, 지저분한 액티브 엑스는 전혀 깔지 않아도 되고 인증서 기반의 로그인도 필요 없다. 물론 인증서가 좋냐 안 좋으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나는 인증서 폐기에 동의하는 일인이다. FDA 사이트는 굉장히 메마르고 이미지 하나 없었지만, 기본적인 기능에 충실했고 나는 15분 만에 제품을 등록할 수 있었다. UI는 한국 정부 사이트보다 많이 뒤질지 모르지만, UX는 쓸만했다.

전자정부를 설계하고 정책을 만든 사람들한테 묻고 싶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시스템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도대체 만들어 놓고 사용은 해봤는지. 한 번이라도 사용을 해봤다면 이게 얼마나 불편하게 만들어진 시스템인지 깨닫고 뭔가 개선책을 만들 법도 한데, 오히려 더 복잡해지는 거 같다. 아니면 나만 이렇게 느끼는 건가?

4년

4년 – 제대로 된 비즈니스의 기초를 닦는데 걸리는 평균 시간이다.

그동안 한국과 미국의 비즈니스맨들 및 창업가들과 이야기해본 결과 사업을 시작하고, 어느정도 기반을 닦은 후, 성장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평균 4년의 시간이 걸리는거 같다. 물론, 이 중에는 6개월만에 대박 난 창업가가 있는가 하면 10년 동안 개고생하다 성공한 대기만성 형도 있었다.

요점은 바로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미디어에서는 실패사례보다는 성공스토리들이 훨씬 더 많이 노출된다. 젊은 친구들이 회사 창업 후 2년 만에 몇백억 또는 몇천억원에 회사를 매각해서 20대에 억만장자가 되는 대박 스토리를 보면서 모두가 다 “나도 창업해서 저렇게 되야지”라는 꿈을 가지고 시작 하지만 95%는 아주 쓰디쓴 패배를 맛본다. 이 중 일부는 처음부터 안풀린 사람들도 있고, 초반에 반짝 잘 되다가 2년을 못 넘긴 사람들도 있다. 이 시점에 많은 사람들은 포기하고 벤처는 끝난다. 그리고 다시 대기업으로 돌아가서 월급 받으면서 인생을 산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비즈니스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조금만 더 버틴다. 힘들다. 죽을거 같다. 와이프한테 미안하다. 애들 보기 미안하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니까 시장에서의 반응이 조금씩 오는거 같다. 이렇게 4년을 열심히 한 우물만 판다. 그러다보니 갑자기 어느날 큰 파도가 왔고, 4년 전에 이미 위치를 정확히 잡고 남들보다 탄탄하게 준비한 창업가들은 그 파도를 타고 단숨에 맨 앞으로 나간다.

아마도 우리 주변의 성공한 창업가들은 대부분 이런 과정을 통해 현재 위치에 올라가 있을 것이다. 이들이 만든 비즈니스는 그냥 1-2년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취미생활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될 비즈니스일 것이다. 이런 비즈니스를 만드려면 어느정도 시간이 걸린다. 너무 초조해 하지 말고 그냥 자기 할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 물론, 하다보니까 창업가 본인이 생각해도 싹수가 노랗다면 당장 그만둬라. 하지만 계속 확신이 있다면 4년만 버텨봐라.

제조업의 부활

“신흥 시장 (Emerging Market)”이라는 용어의 창시자이자 경제학자/투자자인 Antoine van Agtmael이 작년에 중국을 방문했을때 지난 40년 동안 아시아를 연구하면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었다. 한명이 아닌 여러명의 중국 제조업체 사장들이 ‘미국의 제조 경쟁력’이 신경쓰인다고 했던 것이다.

미국의 제조 경쟁력이 살아나고 있다. 실제로 숫자와 분위기가 이러한 현상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10년 전만해도 10개 제조업체 중 9개 업체가 중국에 공장을 짓고 있었는데 이젠 5개 업체는 미국에 직접 공장을 짓고 제조할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 중국 노동의 가격 경쟁력은 이제 옛날 이야기다. 중국의 인건비는 해마다 15%씩 증가하고 있는 반면 미국의 인건비는 제자리 걸음이기 때문에 곧 중국과 미국의 인건비는 비슷해 질 것이다. 내가 여기저기를 다녀봐도 “Made in China” 딱지가 많이 줄어든거 같다. 대신, “Proudly made in the USA”가 더욱 더 많이 보인다.

물론 하루 아침에 벌어진 현상은 아니다. 갑자기 미국인들이 손재주가 좋아지거나 노동을 선호하게 된 건 더욱 아니다. 주 원인은 바로 기술을 이용한 제조경쟁력이다. 미국은 중국보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인프라가 훨씬 발달되어 있고 이를 기반으로 3-D 프린팅과 로봇 자동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미국 제조업체들은 중국 노동자들 100명이 일주일 걸리는 일을 기술자 5명과 로봇 2대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제조경쟁력의 기반이 되는 기술 또한 실리콘 밸리에서 나오고 있고 Kickstarter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들이 이런 현상을 잘 반영한다. 특히 스탠포드와 MIT의 젊고 용감한 공학도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들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절묘하게 접목시키면서 가전제품, 로봇산업과 3-D 프린팅 분야에서 과거 그 어떤 대기업도 하지 못했던 빠른 속도로 혁신을 도모하고 있다. “제조업은 한물 갔다”라는 생각 자체가 이제는 한물간 생각일 정도로 제조업은 cool해지고 있다. 한때는 제조업의 강국이었던 우리나라도 갑자기 너무 소프트웨어만 외치지 말고 이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잘 접목시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지 뒤지지 않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 http://www.artworx.ro/t-shirt_designs-2011-2012.html>

Believe in YOURSELF

believe-in-yourself인간이라는 종족은 원래 남의 일에 관심이 많다. (나도 한국 사람이지만) 특히 한국 사람들은 더 그런 거 같다. 본인과는 상관없는 일들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관심이 많고 참견을 많이 한다. 어차피 자기가 할 일이 아니고, 자기가 책임질 필요가 없으니까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문화 속에서 자라서 그런지 한국인들은 남의 의견과 시선에 유독 신경을 많이 쓴다. 창업가들도 여기에 있어서는 예외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한두 명, 많게는 수백 명이 있을 것이다. 자기 손으로 한 번도 제품을 만들어 보지도 않았고, 팔아보지도 않은, 책상 앞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들이(나는 이런 사람들을 pencil sharpener라고 한다) 제품은 이렇게 만드니, 사람은 이렇게 다뤄야 하지, 마케팅은 바이럴로 해야 하니 등등 별로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말들과 ‘조언’을 너도나도 하려고 한다. 물론 좋은 의도로 하는 말들이며,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경우도 가끔은 있다.

귀가 얇은 창업가라면 주위에 누가 이런 말들을 할 때마다 – 특히 대기업에서 능력을 인정받거나 높은 자리까지 간 임원이 하는 말이라면 – 솔깃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실제로 자신의 의지와 생각과는 달리 남이 하는 말에 의해서 비즈니스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특히 힘든 시기에는 – 참고로 벤처는 항상 힘들다 – 스스로 “어쩌면 저 사람이 맞을지도 몰라. 대기업에서만 30년을 일했으니까.”라는 말을 하면서 이거 했다 저거 했다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

이럴 필요 전혀 없다. 내가 하는 비즈니스에 대해서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만약에 남들이 내 비즈니스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다 생각한다면 그 비즈니스는 하지 않는 게 좋다. 비즈니스는 취미도 아니고 부업도 아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비즈니스를 만들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잠시 상황이 안 좋고 힘들다고 해서 내가 틀렸고 남들이 맞다고 생각하면 sustainable 한 비즈니스를 만들 수 없다. 그렇다고 남이 하는 말을 듣지 말라는 건 아니다. 참고는 해라. 하지만 실제 행동과 실행은 소신 있게 내가 직접 해야 한다. 지금 내가 하는 비즈니스를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가 하면 더 잘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 내 비즈니스의 주인은 바로 나다.

남이 뭐라던 그냥 묵묵히 내 비즈니스만 하면 된다. Believe in YOURSELF. 왜냐하면, 나마저도 나를 믿지 않으면, 이 세상에 나를 믿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거 너무 비참하고 초라하지 않나?

<이미지 출처 = https://awesomeashild.com/2013/06/16/what-can-the-power-of-your-mind-do/>

글로벌 서비스 제대로 번역 하기

PS_0834_YOU_ENGLISH지난 9개월 동안 내 파트너 John과 나는 꽤 많은 스타트업들에 투자했다. 계산을 해보니 한 달에 평균적으로 한 개의 회사에 투자했다. 미국인들이 만든 완전 미국 회사들도 있지만 역시 대부분 회사는 한국인들이 한국이나 미국에서 창업한 벤처들이다. 현재로써는 모두 다 힘없고 작은 회사들이지만 앞으로 크게 global business가 될 가능성이 높은 팀원들로 구성된 회사들이다.

창업팀이 한국 사람들이다 보니 글로벌 서비스를 만드는 게 쉽지가 않다.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역시 가장 기본이 되는 언어에서 그 문제점들은 시작된다. 대부분 회사는 일단 제품을 한글로 만들어 놓은 후, 영어로 번역하게 되는데 이렇게 할 경우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게 된다.

일단, 한글 -> 영어를 제대로 번역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기가 힘들다. 처음엔 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중/고/대학을 미국에서 나오고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는 사람들조차 실력이 의심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이제는 창업가의 친구 중 “영어 좀 한다는” 사람들은 아예 고려하지도 않는다. 영어 좀 하는 사람 중 제대로 된 번역을 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대로 번역을 하는 사람을 찾아도 이 사람들의 결과물을 보면 왠지 어색한 부분들이 항상 존재한다. 글씨/문장 하나하나를 비교해보면 아주 완벽한 번역이라서 딱히 틀린 부분을 지적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제품을 사용하면서 전체적인 사용자경험의 면에서 보면 특정 상황이나 특정 화면과는 적합하지 않은 번역이 많다. 왜냐하면, 그 제품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번역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영화 번역하는 예를 한번 들어보자. 그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번역하면, 단어 하나씩에 대한 번역은 맞을지 몰라도 영화를 관람하면서 자막을 읽어보면 왠지 전체 영화랑은 잘 어울리지 않는 인상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문맥(context) 기반의 번역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글로 만든 서비스를 제대로 영문 현지화하려면 그 제품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제품을 사용해 본, 그리고 영어를 매우 잘하는 사람이 번역을 해야 한다. 이런 사람을 찾기는 정말 힘들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 중에 우리 제품을 100% 이해하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고, 우리 제품을 100% 이해하는 사람 중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 또한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창업팀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아이디어가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경험하고, 그 경험과 제품을 own 하는 사람만이 글로벌 사용자의 입장에 입각한 ‘제대로 된’ 번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미국 사람이면 이 화면이 나올 때 어떤 메시지를 보고 싶어 할까?”라는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더 중요한 건 그 질문에 대한 미국적인 답변을 제대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특히 게임과 같이 사용자의 감성과 지성을 자극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서비스라면 더욱더 그렇다. B2B 서비스와는 약간 달리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이미지 하나, 이 모든 걸 글로벌화 해야 한다.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는 흐름을 파악하고 그 번역을 처리하는 건 거의 예술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게임 번역은 대통령 전용 동시 통역가도 할 수 없는 큰 작업이다.

위처럼 말로 하면 쉽지만, 이걸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건 정말 어렵다. 글로벌 제품을 만들고 싶어 하는 한국인으로만 구성된 창업팀한테 내가 주는 조언은 창업팀에 영어를 제대로 하는 사람을 채용하든지, 아니면 제품 개발 초기 단계부터 같이 앉아서 작업하고 고민할 수 있는 미국인 또는 영어 잘하는 사람을 찾으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번역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번역만 잘한다고 글로벌 서비스가 만들어 지는 건 아니다. 제대로 된 번역은 localization이라는 빙산의 일각이다. 하지만, 가장 기초가 되기 때문에 잘 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 http://www.feelingoodtees.com/I-WANT-YOU-TO-SPEAK-ENGLISH-T-SHIRT–P2256.asp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