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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장

전에 한 번 포스팅했는데, 우리가 펀드 만들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왜 스트롱은 7년째 LA와 한국이라는 시장에만 집중하고 있냐이다. 내용을 조금 더 들어보면, 요새 많은 한국 VC들이 동남아 같은 해외 시장에 투자해서 이 질문을 하는 거 같다. 내 대답은 항상 같다. 7년 동안 LA랑 한국에만 투자하고, 이 시장을 나름 연구하고, 이 시장에서 네트워크를 만들다 보니, 이제야 조금 이 시장을 이해야겠는데, 이 시점에서 굳이 내가 전혀 모르는 다른 시장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내가 한국 시장을 아주 잘 이해하는건 아니다. 워낙 빠르게 바뀌는 시장이라서, 오히려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질문을 하게 되지만, 그래도 한국 시장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매력적이고 독특한 몇 가지 이유가 있긴 한 거 같다. 얼마 전에 전 세계에서 온 구글 사람들 대상으로 한국의 벤처 시장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는데, 이때 내가 했던 말을 좀 정리를 해본다.

일단 한국의 인구와 밀도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할 거 같다. 한국의 인구밀도는 1제곱 km 당 526명(위키피디아)인데, 이는 전 세계에서 24위다. 그런데 인구가 1,000만 명 이상인 나라 중에서는 한국의 인구밀도는 3위다(1위 방글라데시 1,146; 2위 대만 651). 인구밀도가 높다는 말은 우리가 소위 말하는 고객획득 비용(CAC – Customer Acquisition Cost)을 아주 극적으로 낮출 수 있다는 의미와도 같다. 워낙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까, 좋은 게 있으면 바이럴하게 퍼질 수 있는 확률이 더 높고, 더 빠르고,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한국의 특징은, 비교적 단일문화와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나라라는 점이다. 관심사와 성향이 매우 비슷한 사람들로 구성된 나라라서, 뭐가 하나 인기가 있으면, 몇 시간 안으로 전국으로 퍼진다. 이 또한 바이럴 확산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에다가 한국의 빠른 인터넷 인프라와 인구의 거의 100%가 사용하는 모바일 사용을 더 하면 어쩌면 모바일 B2C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한테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시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B2B 시장은? 실은 한국은 B2B의 무덤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B2B 스타트업이 별로 없지만, 나는 실은 B2C나 B2B나 그렇게 다르다곤 생각지 않는다. 어차피 회사에서 B2B 제품을 사용하는 건 B2C 시장이 공략하는 개개인이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B2C 플레이를 위한 장점들이 결국엔 B2B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또 한 가지가 있다. 문제가 클수록, 그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의 시장이 커지는데, 한국은 문제가 상당히 많은 나라다. 문제도 많지만, 그 문제들이 상당히 크고, 논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깊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 성공한다면, 정말 엄청나게 커질 수 있다.

낮은 고객획득 비용, 바이럴확산이 상대적으로 빠르고 쉬운 시장의 성향, 엄청난 인프라, 그리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은 시장. 어쩌면 우린 창업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와 가장 좋은 지역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리하기

초기 벤처 투자는 홈런성 투자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나도 좀 해보니까, 이게 무슨 말인지 이제 잘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리고 몇 개의 엑싯도 경험해보니, 초기 투자는 정말 아웃라이어에 투자해서 홈런을 치는 게임인 게 명확한 거 같다. 이를 비유할 때 전설적인 홈런왕 베이브루스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베이브루스는 워낙 배팅을 많이 해서 삼진도 엄청나게 먹었지만, 맞았다 하면 홈런도 그만큼 많이 쳤다. 이게 초기 투자를 가장 쉽고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게 아닐까 싶다. 많이 투자하기 때문에, 많이 망하지만, 워낙 초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중 잘 되는 회사는 엄청나게 잘 되는 거다.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그렇다고 베이브루스가 눈을 감고 배트를 휘두른 건 아니다. 항상 최선을 다해서, 본인의 경험과 힘을 잘 이용해서 배팅했듯이, 우리도 그냥 막 투자하는 건 아니다. 우리만의 철학과 경험을 기반으로 투자하는 거다. 단지, 다른 큰 VC보다 많은 회사에 투자할 뿐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많이 투자한 만큼, 많은 회사가 망한다. 실은 그때마다 내가 할 일이 더 많아진다. 전에 한번 비슷한 글을 올린 거 같은데, 솔직히 단순한 재무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작은 투자금을 집행한 초기 회사들이 망해도 우리 수익률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어차피 소수점 몇 자리기 때문에 펀드의 수익을 위해서는 이런 회사들은 그냥 과감하게 버리고, 잘하는 회사에 집중하는 게 기계적이고, 수학적이고, 냉정한 투자적 관점에서 올바른 일이다. 어차피 일이란게 다 그런 게 아닌가?

하지만, 내가 항상 강조하듯이 우리는 financial industry에 종사하기보단, construction industry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단순히 돈놀이를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자기의 삶을 스스로 컨트롤하려고 하는 가슴뛰는 – 또는, 한때는 가슴 뛰었던 – 분들이 회사를 만드는 걸 도와주는 사람이다. 거의 100개 이상 투자한 펀드에서 한 개의 회사가 망하면, 펀드 수익률에는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 회사를 만들기 전에 수많은 고민을 하고, 가족을 포함 주위 모든 사람한테 미친놈 소리 듣고, 엄청난 인생의 결단을 내린 그 창업가한테 이 조그마한 사업은 그분의 인생 전부이자 우주 전부이다. 어떤 경우에는 자식보다도 더 소중하고, 자식보다 더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인생 최대의 걸작품이다.

이 작품이 망하면 – 어떻게 보면, 확률적으로는 너무 당연한 결과지만 – 이 분을 처음에 지원하고, 응원하고, 돈을 대줬던,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가 회사 정리 또한 같이 해주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실은 이 정리라는 게 좀 스트레스풀하고, 짜증 날 때가 많다. 내가 보기엔 더 해도 될 거 같은데 대표이사가 번아웃이 돼서 회사를 정리할 때는 내가 더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 내가 보기엔 적당한 금액에 회사를 파는 게 모두한테 좋을 거 같은데 그것마저 싫다고 할 때는 내가 더 짜증 나고 화난다. 폐업하고 회사 정리를 하다 보면, 내가 믿고 투자했던 분이 저렇게 고집이 세고, 융통성이 없고, 의지가 약한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할 때도 많다. 이럴 때도 짜증 나고 화가 난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내가 화내고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없다. 아니,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내가 이런 심정이면, 모든 걸 바쳤던 사업을 정리하는 창업가의 마음은 얼마나 안 좋겠냐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해보면, 그냥 다시 옆에서 이분들을 잘 지원해주는 모드로 돌아간다. 그만큼 힘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고민 많이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스스로에게도 미안하고 창피할 것이다. 나는 이분들이 잘 정리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스타트업 경험을 기반으로 다시 멋진 도전을 했으면 한다. 그리고 사업이 실패한 거지,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도 운이 좋다면, 이분들이 다시 창업 결심을 하고, 다시 스트롱한테 제일 먼저 돈 받으러 오겠지. 뭐, 다시 투자할지 안 할지는 그때 결정해야겠지만 🙂

무의식적 브라우징

우리 투자사 당근마켓은 모바일 기반의 지역주민 중고거래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실은 중고나라나 헬로마켓과 같은 굵직한 서비스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시장이지만, 후발 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빠르고 질 좋게 성장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많은 분이 당근마켓에 대해서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기존 서비스들과의 차이점이다. 실은 중고나라에 비해서는 판매되는 물건 수가 절대적으로 작아서 유동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고객들의 체류 시간과 engagement 자체는 상당히 높다. 오히려 기존 서비스들보다 더 높지 않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나는 그 이유가 항상 궁금했었는데, 얼마 전에 당근마켓 대표님과 이야기하면서 힌트를 얻었다. 중고나라에 접속하는 사용자의 행동 패턴을 보면, 서비스에 접속하기 전에 “오늘 밤에 중고나라에 들어가서 xxx 있는지 한 번 봐야겠다”라는 마음의 결정을 하고, 접속한 후에 내가 이미 생각하고 있던 그 필요한 제품을 열심히 검색한다. 싸고 좋은 제품을 찾으면, 구매를 시도하지만, 없으면 그냥 다시 나온다. 무슨 말이냐 하면, 특정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서비스를 브라우징한다.

당근마켓은 다르다. 당근마켓을 사용하는 분들은 특별히 뭔가를 찾거나, 또는 구매하기 위해서 앱을 실행하는 게 아니고, 그냥 시간 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이 앱을 열고, 그리고 그냥 올라와 있는 물건들을 계속 스크롤 하면서 본다. 마치 뭔가를 구매하는 중고거래가 아닌, 모바일 잡지나 페이스북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패턴과 유사한 행동 패턴이 보인다. 여기서 엄청난 차이가 발생한다. 이런 무의식적이고, 머리가 아닌 손가락이 주도하는 브라우징이 가능한 큰 이유는 당근마켓이 모바일 플레이를 워낙 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바일이 아닌 데스크톱 기반이었다면, 이렇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앱을 실행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은, 이러한 패턴은 데이팅 앱에서도 극명하게 보인다. 데스크톱 기반의 1세대 데이팅 사이트인 eHarmony.com이나 한국의 듀오와 같은 제품은 회원 등록하고, 서비스를 사용하려면, 비장한 마음의 각오가 필요하다. 내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기 위한 심각한 목적으로 이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이고, (지금은 모바일 플레이도 하지만) 데스크톱 기반이기 때문에, “오늘 밤에 집에 가면, 세수하고, 책상에 앉아서 듀오 들어가서 꼭 내 반쪽을 찾아야지” 또는 “지금은 바쁘지만, 이따 시간 좀 나면, PC 앞에서 차분히 eHarmony 좀 둘러봐야지”라는 각오한 후에 서비스에 접속한다.

하지만, 틴더 같은 모바일 앱이 탄생하면서, 이런 데이팅 앱의 패턴이 달라졌다. 일단 모바일 앱이기 때문에, 굳이 시간을 정하거나 데스크톱이 있는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 없게 됐다. 그냥 사무실이든, 지하철이든, 길거리든, 식당에서 주문받기 전에, 아무 곳에서나 손가락 하나로 앱을 실행하고, 내 취향에 맞을법한 이성을 아주 가볍고 캐주얼하게 브라우징할 수 있다. eHarmony나 듀오와 같은 서비스는 머리와 이성이 주도하는 브라우징이 되어야 하지만, 틴더는 그냥 손가락이 주도하는 무의식적인 브라우징이 가능하다.

당근마켓이나 틴더와 같은 모바일 앱은, 중고거래와 데이팅이라는 최종 목적을 위한 서비스지만, 사용자들의 이용 방법은 그냥 재미있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패턴과 같다. 이렇게 하면 체류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어나고, 결국 체류 시간이 늘어나면, 서비스가 최종적으로 목표로 하는 결과를 다양한 방식으로 달성할 수 있다. 같은 버티컬이라도, 세련된 모바일 플레이와 조금 다른 접근방법이 엄청난 차이를 만들 수 있다.

10년짜리 게임

얼마 전에 어떤 대표가 VC는 누구한테, 그리고 어떻게 돈을 받는지 물어봤다. 이거 참 재미있는 질문이고, 나도 얼마 전에 한번 생각했던 주제라서 몇 자 적어본다. 내가 개인적으로 돈이 많으면, 개인 돈으로 투자하겠지만 – 그리고, 이렇게 투자하는 VC도 있긴 있다 – 대부분 VC는 다른 기관이나 개인들로부터 돈을 받고, 이 돈을 좋은 회사와 창업가한테 재투자한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남의 돈을 관리하면서 비상장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투자자가 VC다.

그럼, 우리는 이런 기관이나 개인들을 어떻게 알고, 어떻게 접근해서 출자를(펀드에 투자하는걸 ‘출자’라고 한다.) 받는가? 벤처기업이 VC한테 투자받는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VC와 창업가의 관계를 한번 생각해보자. 주로 오랜 기간 동안 알고 지내서 기본적인 신뢰가 있어야 하지만, 결국엔 사업의 실적이 투자 결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좋은 창업가라도, 비즈니스의 실적이 좋지 않으면,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VC도 비슷하다. 펀드에 출자하는 투자자를 LP라고 하는데, LP들과 관계를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이건 우리가 믿을만한 창업가한테 투자하려면, 이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과 과정이 필요한데, 이와 비슷하다. 다만, 시간은 조금 더 많이 소요되는 거 같다. 우리 같은 경우, 한 3년 동안 알고 지내다가 펀드에 출자를 받은 적도 있다.

그리고 LP들도 당연히 VC의 실적을 보는데, 여기서 스타트업이 VC한테 투자 받는 거와 차이가 좀 난다. 스타트업이 제품을 만들자마자 실적이 바로 생기진 않지만, 그래도 한 1년 정도 개발하고 마케팅을 하면, 이 회사의 가능성을 판단할 정도의 초기 수치는 만들 수 있고, 우리 같은 초기 VC는 이 수치를 보고 투자 여부를 판단한다. 문제는, VC의 펀드 수명은 보통 7년~10년이고, 한국같이 이제 벤처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는 지역에서는 10년이라는 한 사이클을 거친 VC가 거의 없기 때문에, LP들이 펀드에 출자하기 위해서 참고할 수 있는 VC의 실적은 불완전해서, 실적만을 가지고 돈을 받는 건 쉽지 않다. 물론, 역사가 오래된 VC는 관계도 있고, 실적도 있기 때문에, 출자 받는 게 그렇지 못한 VC보단 수월할 수도 있다. 역사가 오래됐다는 사실 자체가, 계속 펀드를 만들었다는 뜻이고, 이렇게 계속 펀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관계와 실적이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질문을 한 대표한테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해줬다. “대표님, 투자 받는 거 정말 지루하고 힘들죠. 실은 우리 같은 VC는 더 힘들어요. 겉으로는 마치 우리가 돈 많은 ‘갑’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우리는 실은 더 어렵고 힘들게 투자를 받고 있어요. 대표님 회사는 지금 고객이랑 매출이랑, 뭐 이런 수치라도 있잖아요. 우리 같은 펀드는 투자하고 최소 3년, 길게는 10년을 기다려야지만, 이런 수치가 나와요. 그러니까, 저도 실은 LP들한테 객관적인 실적도 제공하지만, “우리 열심히 하고, 잘할 수 있으니까, 돈 좀 주세요”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아요.”

내가 과연 벤처투자를 잘하는 사람일까? 잘 모르겠다. 스트롱 역사가 7년이니까, 한 5년 후면 알 수 있을 거 같다. 내가 이 일을 잘하는지 못 하는지가 10년 후에야 결정될 수 있는 이 일을 잘하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하고 있다.

Going Global

얼마 전에 뉴욕에서 오는 비행기에서 JYP의 박진영 씨를 봤다. 좌석은 다른 섹션이어서 비행기에서는 이야기는 못 했지만, 가방 찾는 걸 기다리면서 인사도 하고 그냥 몇 마디 나눴다. 박진영 씨는 나를 기억 못 하지만, 실은 나는 예전에 LA에서 뮤직쉐이크를 할 때, 그때 박진영 씨가 원더걸스 미국 진출을 시도했었는데, 원더걸스와의 협업 때문에 캐주얼하게 인사를 한 적이 있다. 지금은 케이팝이 굉장히 커졌고, 싸이가 살짝 다진 길을 BTS가 뻥 뚫고 있어서 케이팝의 위상이 매우 커졌지만, 당시만 해도 아직 미국에서는 그냥 작은 동양 아이들이 열심히 율동하는 정도였던 거 같다. 이때 SM의 보아가 미국 진출을 시도했지만, 잘 못 했고, JYP의 원더걸스도 시도했지만, 결국은 잘 안 됐다.

지금은 SM, JYP, YG 모두 엄청나게 큰 회사로 성장했고, 이수만 씨, 박진영 씨, 양현석 씨는 연예인이라기보단 기업인이자 투자자로 더 유명해진 거 같다. 나는 실은 계속 글로벌 시장 진출을 시도하고 있는 연예인들과 기획사 대표들이 마치 글로벌 시장의 문들 계속 두드리고 있는 스타트업 대표들과 우리 같은 VC와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직접 물어본 건 아니지만, 지인을 통해서 들었던 이수만 씨와 박진영 씨가 생각하는 보아와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 실패 원인은, 우리가 주로 느끼는 한국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실패 원인과 상당히 흡사한 점이 많다. 실은 그 이유는 딱히 이거 다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복합적이고, 솔직히 말해서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안다면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이 북미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사례가 많이 나올 텐데, 아직은 거의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스트롱 투자사 중 한국에서 시작한 한국 회사가 북미 시장에 제대로, 합법적으로, 성공적으로 글로벌 진출한 사례는 아직 하나도 없다. 그만큼 어려운 거 같다.

언어와 같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부터 시작해서, 문화, 규모의 경쟁, 채용, 네트워크 등등…. 한국과 미국에 투자하는 VC한테 물어보면, 글로벌 시장 진출이 어려운 이유가 백만 가지는 나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투자자나 스타트업 모두 계속 글로벌 문을 두드리며,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자원을 투자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다 보면, 언젠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우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칠 것이고, 하지 않아도 되는 실수와 낭비가 발생할 것이다. 이걸 그때마다 손가락질하면서 욕하면, 더 이상의 시도도 없고, 더 이상의 발전도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은 시간과 돈이 많이 필요하다. 굉장히 많이. 1~2년 해서 된다면, 모든 한국 회사가 미국 시장에서 성공했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생각해봐라? 내가 태어났고, 교육받고, 직장생활을 하고, 사회생활을 한,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문화권에 있고, 한 다리 걸치면 모든 사람을 다 안다는, 이 작은 땅 한국에서조차 1등 비즈니스를 만드는 게 그렇게 어렵다. 그런데 언어도 모르고, 사람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완전히 새로운 나라와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누군가 글로벌 시장 진출을 시도했는데, 대박 실패하면, 우리 대부분은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잠시 잊어버리고, 그냥 그 회사와 대표가 뭘 못 했고, 그렇게 하면 안 되고 등등…비난하고 욕하기 바쁘다.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정말 터무니없는 뻘짓이 아니었다면, 그래도 그 사람은 최소한 시도라도 했고,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리고 잘 안 됐을망정, 어쨌든 시도하기 전보다는 글로벌 시장에 조금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BTS가 요새 해외에서 잘 나간다. 왜 보아랑 원더걸스는 – 그리고 우리가 전혀 모르는 수많은 아이돌도 – 실패했는데, BTS는 잘하고 있을까? 실은 나는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그 누구도 잘 모를 것이다. BTS 본인들도 잘 모르니까.

하지만, 계속하다 보면, 뭔가 배움이 있고, 발전이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