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세상에서 가장 큰 국민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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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에 콜드 이메일을 하나 받았다. 제목을 보니 ‘책’ 관련된 비즈니스인거 같아서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내용을 읽었는데 ‘국민도서관 책꽂이‘ 라는 회사에서 온 이메일이었다. 실은 지난 1년 동안 종이책에 대한 내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만 당시만 해도 나는 종이책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종이책의 종말에 대해서는 내가 여러번 블로그를 통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책 관련 비즈니스는 내 관심사 밖이었지만, 국민도서관 장웅 대표님의 이메일에는 고민의 흔적과 진정성이 보였다. 그래서 투자와는 상관없이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청담사거리 스타벅스에서 한시간 정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시간 동안 내 생각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아니, 생각의 변화라기 보다는 국민도서과 관장님에 대한 존경이 이 시장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꾸게 한거 같다. 이 분은 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분이었다.

우리도 그동안 많은 투자를 하면서 다양한 스타일의 창업자들을 만났다. 어떤 이들은 세상을 바꾸려고,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냥 큰 돈을 벌고 싶어서 창업을 택했다. 사업의 목적에 나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지만, 본인들이 하는 비즈니스에 대해서 얼만큼의 애착이 있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장웅 대표님은 책을 좋아하고, 책과 독자들의 관계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회사에 투자를 했다(기존 투자자는 이덕준 대표님의 D3 주빌리와 개인들이 있었다.)

국민도서관은 이런저런 이유로 책 보관이 힘든 사람들과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마켓플레이스인데 단순히 중개의 개념이 아니라 컨트롤의 개념이 강한 소유형 마켓플레이스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국민도서관은 남의 책을 소중히 키핑해주고, 키핑된 책들을 독자들에게 무료로 대여해주는 마켓플레이스이다. 이 과정에서 책을 전문적으로 보관해주고, 대여의 모든 과정에 직접 관여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P2P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사건들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집에 책 20-30권 정도는 소장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분들은 수 천권의 책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책장에 책이 있는걸 보면 마음이 뿌듯해지지만, 물리적인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하고, 이 차지하는 공간에 비해서 정신적인 만족감 외의 실용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단점이 존재한다(=책장에 있는 책들 죽을때까지 다시는 안 읽을 확률이 높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 저렴한 연회비를 내면 (200권까지:3만원 / 2,000권까지:9만원) 책들을 키핑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모든 회원은 등급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분들이 키핑한 모든 책을 왕복택배비 만으로 60일간 대여할 수 있다.
굳이 책을 키핑하지 않아도 국민도서관을 사용할 수 있다. 아마도 현재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책을 키핑하지 않을것이다. 동일하게 저렴한 연회비를 내면 1년 동안 무제한으로 국민도서관에 키핑된 도서들을 대여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60일의 대여기간이 있고, 대여한 책을 반납하면 또 대여를 할 수가 있다. 과거 DVD 시절의 넷플릭스 모델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공유경제라는 말을 우리는 남발하고 있다. 남의 것을 빌려쓰는 부분이 조금이라도 존재하면 우리는 무조건 공유경제로 포장을 하지만, 국민도서관은 공유경제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 전세계에서 유일한 모델이 아닐까 싶다. 집에 공간이 없지만 책을 버리기 싫은 ‘공급자’ 들에게는 저렴한 비용에 책을 키핑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책을 읽고는 싶지만 구매할 돈이 없거나, 구하기 힘든 책들을 지속적으로 읽고 싶어하는 ‘소비자’ 들에게는 저렴한 비용에 책을 대여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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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 대표님의 개인 소유 장서 2,000여권으로 시작해서 이제 곧 2살이 될 국민도서관 웹사이트가 며칠 전에 대대적인 업데이트를 푸쉬했다. 실은 같은 식구인 내가 봐도 기존 사이트의 사용도가 너무 후졌었는데 이제는 단순히 책을 키핑하고 대여할 수 있는 기본적인 기능 외에 여러가지 소셜 기능들이 추가되었다. 내가 대여해서 읽는 책의 문구 중 마음에 드는 부분을 저장 할 수 있는 “여기가 좋았어” 기능, 내가 키핑하고 있는 책을 읽는 분과 소통할 수 있는 기능들, 그리고 내 책을 다른 사람이 대여하면 나도 소정의 금전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능들이 추가되었다. 완벽하게 구현되지는 않았지만 오직 책이라는 관심사를 기반으로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성장 중이다.

현재 국민도서관에 키핑되어 있는 책은 약 52,700여권인데 이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얼마전에 47억여원의 예산을 들여 완공한 도봉기적의도서관의 경우 장서수 17,000여권이며, 2013년에 공개된 서울시 구립공공도서관 운영현황에 따르면 국민도서관의 52,700여권이면 서울시 구립공공도서관과 비교하여 장서수로는 92개 도서관중 29위 정도이다. 재미난 사실은 이런 국민도서관은 얼마전까지만해도 장웅 대표님 혼자서 운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책을 사랑하고 운영에 강점이 있는 회사이다.

참고로 내가 쓴 책들 ‘스타트업 바이블’과 ‘스타트업 바이블 2’도 현재 국민도서관의 내 책꽂이에 키핑되어 있으니 아직 안 읽어보신 분들은 회원가입하고 마음껏 빌려 보시길.

비트코인 은행

hyphen다시 한번 비트코인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지난 1년 반 동안 $250 – $300 선을 잘 유지하고 있는걸 보면서 오히려 새로운 화폐로써의 가능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번 주에 $700를 찍고 현재 이 선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 변동 원인에 대해서는 많은 추측들이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가장 일반적인 원인으로는 항상 ‘중국’을 말하지만 이게 맞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비트코인에 대해서 가끔씩 포스팅을 하고, 거의 매주마다 조금씩(아주 조금씩) 사고 있다. 비트코인으로 물건도 구매하고, 해외 송금도 해보면서 정말로 편리하다는걸 항상 느끼고 있지만 아직 mainstream 통화가 되기에는 갈 길이 멀다. 3년 전에 우리가 코빗에 투자했을 당시만 해도 나는 비트코인이 단시간내에 은행을 완전히 무용지물로 만들지는 않겠지만 은행의 미래를 매우 어둡게 만들지 않을까 라는 확신을 했다. 한 5년이 걸릴걸로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틀린 예측이었다. 오히려 당분간은 –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 은행과 비트코인은 공존하면서 때로는 서로를 돕지만 때로는 견제하면서, 이런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성장할거 같다. 현실적으로 봐서는 은행도 장기적으로는 비트코인/블록체인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단기적으로는 비트코인이 은행을 더 필요로 하기 때문에 계속 은행 및 전통적인 금융기관들과 잘 협업을 하면서 성장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가지 명확한 트렌드가 보인다. 우리가 코빗에 투자할때는 단순히 비트코인을 사고 팔 수 있는 거래소였지만 이제 코빗은 점점 더 은행의 형상을 닮아가고 있다. 기본적으로 은행과 비슷하게 코빗의 지갑에 돈을 저축할 수 있다(이자는 없지만, 더이상 이자율이 중요한 시대가 아니다). 참고로 미국의 경우 checking과 savings 계좌가 따로 존재하고, Coinbase와 같은 서비스는 checking 계좌 역할을 하는 Wallet 기능을 제공하고, savings 계좌의 역할을 하는 Vault 라는 기능을 제공한다. 코빗의 경우 ‘지갑’ 자체가 예금계좌이다.

은행업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거래’는 코빗이 정말 잘 하는 분야이다. 친구한테 빌린 돈을 계좌이체 하려면 친구의 은행과 계좌번호가 필요하고, 이걸 온라인으로 하려면 공인인증서, 보안카드 또는 OTP가 필요하다. 내가 내 돈을 다른 사람한테 보내는 간단한 업무인데 그 절차는 너무 복잡하다. 코빗에서 비트코인을 남한테 보내는건 쉽다. 이메일 주소나 비트코인 주소만 알면 매우 쉽게 보낼 수 있다. 송금 수수료도 훨씬 저렴하다. 이는 국내 송금에도 적용되지만 해외로 돈을 송금할때는 그 진가가 더욱 더 빛나고, 특히 소액을 해외송금할때 굉장히 편리하다. 계좌이체 업무는 이미 코빗이 은행들보다 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트코인을 움직일때 큰 장애물이 하나 있다. 모든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한테 비트코인을 보내려면 그 사람이 비트코인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비트코인 계정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비트코인을 모르는 사람한테 이에 대해서 설명하고 계정을 만들게 하는건 마치 컴맹한테 공인인증서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만큼 어렵다. 최근에 코빗에서 ‘글로벌 송금’ 서비스를 출시했는데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다. 아직까지 송금이 가능한 나라가 제한되어 있지만, 하나씩 늘려나갈 계획이다. 코빗의 Hyphen 이라는 새로운 API를 적용한 서비스인데 돈을 보내는 사람은 그 나라 통화로 보내면 되고, 받는 사람은 받는 나라의 통화로 받을 수 있다. 송금의 백엔드 시스템은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이 해결해주고 있지만 돈을 보내고 받는 사람은 비트코인에 대해서 전혀 몰라도 된다. 이 글로벌 송금 서비스로 이제는 매우 손쉽게 해외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한테 돈을 보낼 수 있다. 이 또한 왠만한 은행보다 훨씬 더 앞선 기술과 기능이다.

현재 코빗에서 사용가능한 통화는 세가지이다.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그리고 원화(KRW)인데 내가 보기에는 이는 일반 은행에서 제공하는 ‘외화’ 서비스와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많은 가상화폐들이 등장할텐데 코빗에서 이 모든 화페들을 보관하고, 사고, 팔고, 그리고 송금할 수 있다면 꽤 린하고 효율적인 은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현실적으로는 코빗을 사용하려면 주거래 은행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대로 은행과 같이 공존하면서 성장해야 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리고 생각보다 더 빨리 이 판이 바뀔지도 모른다.

VC 로서의 시행착오

우리가 항상 투자사들한테 하는 말이 있다. 어차피 아무도 안 해봤기 때문에 해보기 전 까지는 모르니, 여러가지 가설을 설정하고 시행착오를 통해서 이 가설들을 하나씩 입증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천천히 product fit과 market fit을 찾아가면서 자리를 잡는게 가장 이상적인 제품의 개선 과정이지 않을까 싶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 또한 영원한 베타의 연속 작업이다. 나는 직접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제품을 개발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난 몇 개월 동안 나도 투자자로서 이런 시행착오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선배 투자자들이 조언해 주신걸 이제서야 나는 느끼고 경험하고 있는데, 솔직히 투자를 하면 할수록 성공적인 투자 기준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진다. 이 업을 시작할때는 굉장히 자신감에 차 있었다.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맞는 회사에 투자를 하면 무조건 대박이 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는 좀 달랐다. 너무나 잘 될 거라고 믿었던 회사들이 오히려 잘 안되고, 그냥 적당히 잘 하겠지 라고 생각한 회사들이 굉장히 잘 되었다. 그래서 한때는 첫 인상이 별로인 회사들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했던 적도 있었는데 이것도 좋은 전략은 아니었다. 실은 지난 몇 년 동안 나도 이런저런 테스팅을 하면서 투자를 했다. 가설을 많이 세우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틀린 가설들을 내 리스트에서 지워나갔다. 한때는 학벌이 좋은 창업팀에 투자를 했고, 한때는 학벌이 좋지 않은 팀에도 투자를 해봤다. 똑똑하고 말을 너무 논리있게 잘 하는 대표이사한테도 투자를 해봤고, 일부러 말을 어리버리하게 하는 대표이사한테도 투자를 해봤다. 비슷한 분야에 있는 회사들에도 투자를 해봤고, 여러 회사 중 가장 잘 할 수 있는 한 회사에 몰빵을 해 본 적도 있다.

수 많은 가설을 테스트해보고 내가 배운 건? 솔직히 별로 없다. 4년 동안 51개의 회사에 투자를 한 후에 내가 배운거라곤 투자라는게 너무나 어렵고, 변수가 워낙 많다보니 정말로 그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이제는 누가 나한테 어떤 회사에 투자를 해야지 성공할 수 있냐 라고 물어보면 나는 자신있게 “잘 모르겠어요” 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정말로 투자를 하면 할수록 잘 모르고 물음표가 더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운 건 없지만, 크게 느낀게 하나 있다. 기술도 중요하고 제품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는 이 바닥에서 남들보더 더 잘해서 성공하려면 뭔가 더 필요하다는걸 항상 느낀다. 그건 아마도 창업팀의 의지인거 같다. 이 비즈니스를 정말로 제대로 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 팀인지, 그리고 비즈니스를 하다보면 분명히 계획대로 안 될 것이고 어려움이 닥칠텐데 넘어질때마다 매번 다시 일어나서 싸울 수 있는 그런 팀인지가 성공의 핵심인거 같다. 하지만 이런 의지를 가진 창업팀인지를 판단하는건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내가 이 창업팀을 잘 모를 경우. 우리도 이런 의지를 가진 팀이라고 생각하고 투자를 했는데, 같이 일을 해보니까 형편 없었던 경우도 있고 이와는 반대로 의지가 약한 팀이라고 생각했지만 같이 일해보니까 예상보다 훨씬 더 ‘단단한(=strong)’ 팀인 경우도 있었다.

그럼 이런 팀들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내가 개인적으로 오래 알고 지낸,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위에서 말한 그런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걸 시간을 통해서 내가 직접 경험하고 목격한, 그런 팀들한테 투자를 했을때 이 성공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 얼마전에 우리는 와이파이 기반의 위치 정보 API를 제공하는 로플랫에 투자를 했다. 로플랫의 대표이사 구자형 박사는 내 고등학교 친구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LG 전자에서 일할때부터 옆에서 봤기 때문에 좋은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는걸 나는 직접 목격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스타트업이 제품을 만들면서 product fit과 market fit을 찾듯이, 우리같은 투자자들도 최적의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행착오를 통한 실험을 한다. 나도 많이 했고 지금도 계속 하고 있지만, 당분간은 이런 각도로 투자를 하지 않을까 싶다.

El Capitan

storm_widescreen-wide구글캠퍼스에는 엄마들을 위한 Google for Moms 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엄마가 되면서 휴직을 했지만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 다시 직업 전선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여성분들 중 창업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한 세션에서 내가 스타트업에 투자를 한다는 건 바로 남의 배에 같이 탑승을 하는 것과 똑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탑승하기 전에는 이것저것 따지지만, 일단 배에 탑승을 하면 그 이후에는 선장과 그의 선원들에게 내 목숨을 맡겨야 한다. 그냥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들과 내가 평소 했던 생각들을 ‘배와 선장’의 프레임워크 안에서 비유하면서 이야기를 해봤는데, 지난 주에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이게 굉장히 좋은 비유라는걸 깨달았다.

투자하기 전에 스타트업에 대해서 실사하고, 시장 조사를 하고, 레퍼런스 체크를 한다. 실사는 마치 배를 타고 항해를 떠나기 전에 배는 어떤 재질로 만들었는지, 튼튼하게 만들었는지 알아보는 거와 비슷한다. 시장 조사는 이 배가 항해할 바다의 기류는 어떤지, 항해하는 동안 풍량과 풍속은 어떤지, 가는 곳에 해적선이 출몰하는지를 조사하는 것과 비슷하다. 레퍼런스 체크는 이 선장과 선원들이 믿을 만한 사람들인지, 과거의 항해 기록은 어떤지에 대해서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알아보는 것과 같다. 배를 타려면 운임을 내야하는데 과연 그 비용이 합당한지, 혹시 너무 비싼건 아닌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네고하는건 마치 밸류에이션을 정하는것과 비슷하다. 어떤 배를 타고, 어떤 선장과 선원들과 항해를 떠날지 결정하는건 쉽지 않기 때문에 오래 고민을 해야하는 중요한 일이다. 바다로 들어가는 그 순간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건 거의 없고 내 목숨을 이 배와 선장한테 맡겨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를 직접 만들거나, 몰아보지 않은 사람들은(=대부분의 투자자들) 아무리 사전 조사와 준비를 많이 해도 별로 소용이 없다. 배를 봐도 이 배가 튼튼한 배인지 모르고, 바다를 아무리 봐도 파도를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 직접 배를 타 본 사람들이라도 바다와 날씨는 워낙 변덕스럽기 때문에 항해를 할 때마다 사정은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이라면 이 배를 항해할 사람들한테 베팅을 한다. 그 중에서도 우두머리인 선장한테 모든걸 맡긴다. 배가 아무리 조잡하더라도 능력있는 선장은 선원들을 설득하고 통제하면서 험한 바다를 뚫고 목적지까지 손님들을 무사히 모시기 때문이다.

우리같은 투자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스타트업 경험이 없고, 실제 경험이 있더라도 이 바닥이 워낙 빠르게 변하고 변수가 많기 때문에 투자자가 스타트업을 성공으로 안내할 수는 없다. 우리가 아무리 시장조사를 하고 고민을 많이 해도 투자가 집행된 그 순간 부터는 우리는 남의 배를 타고, 대표이사인 그 배의 선장한테 목숨을 맡기는 것이다. 모든 투자자들은 잠잠하게 항해해서 목적지까지 무난하게 가길 원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태풍이 올 것이고, 선원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해적선들은 우리 배에 올라와서 모두 죽이려고 할 것이다. 실은 성공적으로 목적지에 도달할 확률은 매우 낮다. 대부분의 배들은 항해를 시작하자마자 침몰해서 전원 사망할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그 항해를 해야한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그 항해를 어떤 용감한 이들은 몸으로 부딪히면서 계속 도전한다. 우리같은 투자자들은 이런 선장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배를 타려고 한다. 침몰하면 어쩔 수 없이 다 같이 죽는다. 하지만, 침몰할때는 침몰하더라도 아주 멋있고, 흥분되고, 짜릿한 그런 항해를 경험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행복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거친 바다 위에서 한 배를 탄 모든 사람들이 대동단결 하면서 고난을 극복하는 그러한 과정 자체가 의미가 있다.

오늘도 태풍속으로 무모하게 돌진하는 우리들의 capitan 들을 위해서.

<이미지 출처 = http://blindedbythelightt.blogspot.kr/2013/01/the-perfect-storm-how-increase-in.html>

기성세대가 문제인가?

얼마전에 ‘일자리가 미래다’ 라는 KBS 특집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기 시작했는데 끝까지 다 보게 되었다. 요새 계속 화두가 되고 있고, 누구나 다 공감하는 청년실업 관련 내용이었다. 실은 나도 여기저기서 듣기만 해서 자세한 건 몰랐는데 이 다큐를 보면서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서 많이 느꼈고 공감을 했다.

그래도 동의할 수 없었던 내용도 많았다. 다큐멘터리의 일부 내용이 방영 된 후에 방송국 현장무대에서 패널리스트들이 이에 대해서 토론을 하는 형태였는데, 요리사(전 코미디언) 팽현숙씨가 패널리스트 중 한 분 이었다. 취직을 못해서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결국에는 자살을 택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가 방영되자 팽현숙씨가 이 여자가 죽은건 (자기와 같은)기성세대의 잘못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젊은이들은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데 기성세대가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어서 일자리가 없으니, 이런 현상을 기성세대들이 올바로 고쳐야 한다는게 팽씨의 주장이었다.

과연 그럴까?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실은 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정말로 슬펐다. 젊은 친구들이 일자리가 없어서 방황하고, 위에서 말한거와 같이 어떤 분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하는 이 현실이 참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성세대들이 잘못을 했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어느 시대나 문제는 존재하고, 어느 시대나 사는건 어렵다. 내 기억으로는 지금까지 한국이든 미국이든 주위 사람들이 “요새 경기가 너무 좋아서 살 맛 나요!” 라고 한 적은 없다. 힘들지 않았던 시대가 과연 역사에서 존재했을까?

세상은 어차피 복잡하고, 골치아프고, 불공평하다. 누구나 다 힘들다. 그리고 경쟁이 치열해 질수록 더욱 더 힘들어 질 것이다. 모두가 다 만족하는 일자리가 넘쳐 흐르던 시대가 과연 있었을까? 다큐멘터리를 계속 보면 차이가 뚜렷한 두 부류의 젊은이들이 소개된다. 한 쪽에는 대기업 정규직 취업이 안 되니까 취업을 아예 포기한 젊은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또 한 쪽에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거나 택배회사에서 포장을 하는 – 즉, 뭐라도 하면서 생계비를 벌고, 계속 기회를 찾는 그런 젊은이들 – 이 있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이 지방대학을 나와서 대기업 취직이 안 된다고 말하고, 고졸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이라고 한탄할때, 중학교도 안 나와서 기업을 만들고 재벌이 된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어느 시대라도 찾아볼 수 있다. 세월이 힘들지만, 이 와중에도 어떤 사람들은 잘 살고, 성공을 한다. 남들이 기성세대와 정부를 탓할때.

다른 분야는 잘 모르지만, 최소한 내가 일하고 있는 스타트업 분야에서는 일이 잘 안 풀리면 기성세대를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를 탓하고 채찍질 하면서 계속 전진한다. 기성세대를 탓하고, 나라를 탓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불운을 시대와 기성세대를 탓하는 순간, 우리는 동정받는 존재로 전락한다. 자신의 인생을 자기 손으로 어쩌지 못하고, 그저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 다니는 무기력한 존재말이다.

내가 만약에 KBS 방송국 패널에 있었다면 팽현숙씨한테 물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당신은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뭐를 했는데?” 실은 나도 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남을 탓하지는 않는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정말 열심히 살았고, 우리 세대도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