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Strong Ventures와 LA

LA많은 분들이 잘 모르는 사실인데, 스트롱벤처스는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창투사이다. 그리고 우리가 LA에 있는걸 아는 많은 분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주 한다. “스트롱벤처스는 왜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LA에 있나요?”

실은 나는 뮤직쉐이크를 운영하기 위해서 2008년 부터 LA로 이사와서 살고 있었고, John은 처가가 LA에 있고 아이들도 다 여기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큰 고민없이 LA에 스트롱벤처스를 설립했다. 하지만, 약 3년 동안 한국, LA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다양한 회사에 투자를 하면서 왜 우리가 LA에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도 왜 계속 LA에 있을건지에 대한 생각들이 명확하게 정리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한국의 스타트업이 글로벌 시장에(=북미) 진출하기 위해서는 실리콘밸리보다 오히려 LA가 더 좋은 발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관련해서 몇가지 생각을 여기서 공유한다:

1. 한국 바깥에 있는 한국의 수도 – 일단 LA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다. LA의 한인 인구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는 찾을 수 없지만, 약 50만 ~ 100만 명으로 추정된다(LA와 그 주변 county들을 합치면). 이는 한국의 왠만한 소도시들보다 더 규모가 크며, 한인들끼리만 생활을 해도 경제권과 상권이 형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LA에서 50년 이상 사신 분들 중 영어를 전혀 못 하는 분들도 있고, 실제로 LA의 많은 한인들이 영어를 제대로 못한다. 어쩌면 영어의 필요성을 전혀 못 느낄지도 모른다. 영어를 안하고 한국어만 해도 살아가는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LA의 코리아타운에 가면 한국에 있는 왠만한건 다 있다. 한인 인구가 많아서 그런지, LA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매우 friendly 하다. LA의 시장 Eric Garcetti 씨는 “LA is the capital of South Korea, outside of South Korea (LA는 한국 외부에 있는 한국의 수도 입니다.)” 라는 말을 할 정도로 한국인과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고, 그만큼 LA에는 한국인들이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존재한다.
내 파트너 John이 농담같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뽀빠이가 신선한 시금치를 먹어야지 힘을 쓸 수 있듯이, 한국 사람들은 신선하고 맛있는 김치를 먹어야지 일을 할 수 있다” 이다. LA 만큼 맛있고 신선한 한국 음식이 풍부한 도시는 미국에 없다. 재료가 더 신선하고 좋기 때문에 오히려 어떤 음식들은 한국보다 더 맛있다(예: ‘북창동순두부’의 원조는 LA이다. 여기서 한국으로 넘어갔다).

스타트업을 하는 토종 한국 분들이 미국 시장에 처음 진출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게 낯설고 어렵다. 사업적인 부분도 당연히 어렵지만, 정서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굉장히 외롭고 쓸쓸하다. 하지만 ‘한국’ 이라는 나라, 문화 그리고 음식에 매우 익숙한 도시인 LA를 발판으로 북미시장 진출을 시도하면 정서적인 부분의 어려움을 최소화 할 수 있다. 다른 나라/시장으로의 이주로 인한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더 빨리 적응하고, 일에 모든 걸 집중할 수 있다.

2. 한국 기업들의 북미시장 공략 발판 – 한국과의 끈끈한 관계 때문인지 한국을 대표하는 인터넷/게임 기업들은 대부분 LA에 북미 본사 및 지사를 설립하고 있다. 넥슨, 엔씨소프트, 스마일게이트, 게임빌, 라인, NHN 엔터테인먼트, 쿠팡 모두 LA에 북미 사무실이 있고 앞으로 한국 스타트업들이 LA로 진출하면 같은 한국 기업들끼리 서로 도움을 주면서 성장할 수 있길 기대한다. 같은 곳에 있다고 협업이 자동으로 이루어 지는건 아니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으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자주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파트너쉽, 투자, 인수 등이 활발하게 진행된다.

3. 소비자 tech 컨버젼스의 중심 – LA가 전통적으로 컨텐츠와 엔터테인먼트가 강하다는 건 왠만한 분들은 잘 알고 있다. 할리우드와 대부분의 음반사들이 LA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모르는 사실이 또 하나 있다. 하드코어 기술이 아닌 이러한 기술을 활용한 – 한국에서 소위 말하는 BM 위주의 서비스들 – 소비자 제품에 있어서는 LA가 상당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LA의 패션/의류/섬유 시장은 미국에서 가장 크며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다양한 모델의 패션/의류 전자상거래 비즈니스들이 탄생했다. 그리고 이런 모델들이 성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카테고리의 전자상거래 모델들로 발전했다. 확실한 자료는 없지만, subscription 기반의 전자상거래 모델도 LA에서 탄생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하드코어 기술 기반의 IT 산업 외의 산업들이 발달하다 보니 LA는 기술자나 투자자들 보다는 평범한 일반 소비자들과의 연결고리가 훨씬 더 강한 지역이 되었고, 일반 소비자들을 위한 창조경제가 실리콘밸리보다 더 먼저 형성된 독특하고 유일한 시장을 보유하고 있다. 조금 유식하게 포장해보면 기술, 미디어, 컨텐츠, 엔터테인먼트, 패션과 전자상거래의 컨버젼스가 이루어 지는 곳이며, 공교롭게도 한국이 꽤 잘하는 영역이 이런 분야들이다(물론, 원천기술도 요샌 강세이지만)

4. 급부상하는 유니콘 농장 – 3번의 독특한 환경에 IT가 접목되기 시작하면서 최근 LA의 스타트업 시장이 활짝 열리기 시작했다. 매우 빠른 속도로 10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가진 유니콘 회사들이 LA에서 창업되어 성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유니콘 회사 Snapchat도 LA 회사이다. 페이스북이 2조원 이상에 인수한 가상현실 기업 Oculus, 디즈니가 1조원 이상에 인수한 유투브 기반의 프로덕션 회사 Maker Studios, 그리고 할리우드 유명 연예인 제시카알바와 한인창업가 Brian Lee가 공동창업했고 곧 IPO를 계획하고 있는 The Honest Company 모두 다 LA를 대표하는 유니콘 벤처기업들이다. 이미 LA에만 10개 이상의 유니콘 스타트업들이 있다.

5. 창업에 관심을 갖는 대학생들
– 실리콘밸리의 형성과 성장에는 스탠포드 대학과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이 큰 기여를 했다. 실리콘밸리와 샌프란시스코 주변의 학교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공대생들이 창업을 통해서 미래의 꿈을 실현하고 있고, 이미 창업한 회사에 지속적인 엔지니어링 인력들이 공급되면서 엄청난 기업들이 만들어 지고 있다. LA에도 이에 뒤지지 않는 학교들이 있다. 대표적인 대학교들은 UCLA, USC(남가주 대학) 및 Caltech(캘리포니아공대) 이며, 이 외에도 수십개의 대학이 LA에 있다. 실리콘밸리 보다는 많이 늦었지만, 최근 몇년 전부터 LA의 대학생들도 창업과 기술쪽에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명문대를 졸업한 똑똑한 젊은 공학도들이 실리콘밸리의 장점만을 흡수하여 LA만의 자체 벤처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 스타트업들도 이런 좋은 인력들을 실리콘밸리 보다는 조금 더 저렴하게 채용할 수 있다.

6. LA의 ‘코리아 마피아’ – LA에는 우리가 자체적으로 이름을 붙인 ‘Korea Tech Mafia’ 라는 한인 출신 창업가/투자자 그룹이 존재한다.
LA K-mafia
-David Lee/SV Angel: David Lee는 세계 최고의 시드 펀드/마이크로 VC인 SV Angel의 대표이다. SV Angel은 지금까지 500개 이상의 회사에 투자했으며 이 중 160개 이상의 회사가 IPO 또는 인수를 통해 성공적인 exit을 했다. SV Angel의 투자는 마치 성공의 보증수표와도 같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로 브랜드가 강한데 몇 년 전에 David은 LA로 이사와서 거주하고 있다.
-Michael Yang: 한인 출신 창업가 중 북미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가 중 한 명인 Michael Yang은 3번의 성공적인 exit을 했으며, 현재 스트롱벤처스 사무실인 Kolabs에서 4번째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특히 2000년도에는 mySimon을 CNET에 8,000억원에 매각하면서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Brian Lee와 Richard Jun/BAM Ventures: 한인 출신 창업가 중 현재 북미에서 가장 유명한 분은 Brian Lee 이다. Brian은 온라인 법률서비스인 LegalZoom을 창업했으며(기업가치 약 6,000억원), 그 이후 할리우드의 유명한 연예인 Kim Kardashian과 신발 전자상거래 사이트 ShoeDazzle을 창업해서 7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후 또다른 LA의 유니콘 회사인 JustFab에 성공적으로 매각했다. 이후 또 다른 할리우드의 유명배우 제시카 알바와 The Honest Company를 창업했고 1조원 이상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Brian이 지금까지 창업한 기업들이 창출한 시장가치는 약 4조원 정도가 된다. BAM Ventures는 Brian Lee와 그의 동료 Richard Jun이 운영하는 LA 기반의 마이크로 VC 이다.
-Peter Lee/Baroda Ventures: Baroda Ventures는 LA의 스타트업들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VC 이다. 지역적인 focus가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창투사 보다 훨씬 더 양질의 LA 기반의 스타트업들을 찾아서 투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Peter Lee는 Baroda Ventures의 대표이다.

LA의 Korea Mafia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자주 연락하면서 항상 한국과 한국의 스타트업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는데 주로 요새 어떤 회사들이 잘 하고 있고, 이런 회사들이 미국에 진출하면 우리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대화를 많이 한다. 인생의 선후배인 이 분들 모두 한국 회사들이라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투자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고, 이미 우리는 5개 이상의 한국 스타트업에 공동 투자를 했다. John과 나는 이 그룹에서 스트롱벤처스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나름 생각한다. 왜냐하면 다른 분들은 상대적으로 한국어 능력도 부족하고 한국 시장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해서 한국 스타트업 투자 및 이들의 미국 진출에 대해서는 스트롱벤처스를 많이 신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LA의 Korea Mafia를 하나로 만드는 접착제와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 그리고 일하는 곳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위에서 나열한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LA가 한국 기업을 위한 최적의 북미시장 진출 발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회사가 성장하고 커지면 비즈니스의 방향에 따라서 실리콘밸리, 뉴욕, 시애틀, 텍사스 등 미국의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의 영원한 숙제인 북미시장 진출을 위한 첫번째 진입 도시로서는 LA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우리도 이 부분에 많은 투자와 고민을 할 계획이다.

<이미지 출처 = http://laepiclosangeles.com/public/blog/where-in-los-angeles-should-you-live-in-your-20s>

beGlobal Seoul 2015 – 배석훈 대표 B2B 세션

beGlobal 2015-2전에 내 파트너 John이 쓴 ‘한국의 유니콘들‘ 이라는 글을 기억하실 것이다. 상당히 재미있고 생각을 많이 하게한 글인데 나한테 개인적으로 가장 큰 시사점은 “한국에는 아직 B2B 유니콘 스타트업이 없다” 였다. 왜 한국에는 아직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enterprise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이 안 나왔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앞으로 분명히 B2B 유니콘 기업들이 나올 것이라고 믿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일반 소비자들이 아닌 기업들을 상대해야하는 B2B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그만큼 대기업들한테 영향을 많이 받고, 외산이 아닌 이상 왠만하면 대기업이 그냥 자체적으로 이런 소프트웨어들을 만들어서 작은 스타트업들을 죽이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지배적인거 같다.

그렇기 때문에 5월 14일과 15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는 beGlobal Seoul 2015에서(한국의 메인 행사는 beLaunch, 규모가 더 작은 미국 행사는 beGlobal 이었는데 올해부터 beGlobal 이라는 브랜드로 통합) 내가 인터뷰하는 3D Systems의 배석훈 대표와의 세션이 더욱 더 기대된다. 자세한 건 5월 15일(금) 오후 4:30분 동대문디자인플라자로 직접 와서 보면 되지만(세션: How to Build a B2B Startup in Korea and Exit It Twice in Silicon Valley / 한국 B2B 스타트업이 실리콘 밸리에서 두 번 액싯하기), 다음은 배석훈 대표 관련 특이하고 재미있는 사항들이다:

  • 한국토종 엔지니어 출신으로 보기 드물게 B2B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라 두 번 창업했다
  • 한 번은 한국에서 창업했고, 한 번은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했다
  • 첫번째로 창업한 INUS 테크놀로지는 2012년도에 3D 프린팅의 리더 3D Systems에 인수되었다
  • 두번째로 창업한 VisPower Technology도 2013년도에 3D Systems에 인수되었다

한국에서는 절대로 B2B 소프트웨어가 나올 수 없다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B2B 창업을 두 번이나 해서 두 회사를 모두 다 같은 미국의 대기업에 매각한 분도 있다. 아마도 굉장히 재미있고 많은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는 세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이너스 테크놀로지나 VisPower Technology는 유니콘 스타트업은 아니었다(정확한 인수가격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1조원은 넘지 않는걸로 추측).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1조원 가치가 넘는 게임회사들이나 전자상거래 업체들보다 기업가치는 떨어지지만 한국의 창업 생태계를 위해서는 훨씬 더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B2C 제품이나 회사들보다는 훨씬 덜 섹시하고, 수천만명이나 수억명의 사용자들이 있진 않지만, 확실한 비즈니스모델이 있고, 제품의 core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서 기업사용자들이 제대로 된 가격을 내는 B2B 소프트웨어는 한국에서도 앞으로 많이 탄생할 것이라고 믿는다. 아니, 반드시 탄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VC들의 묻어가기

묻어가기_leigwon전에 한번 포스팅 했듯이 우리는 작은 금액이지만 가능하면 가장 먼저 투자하는걸 선호한다. 그런데 첫번째로 투자한다는게 우리 단독으로 투자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공동투자자들과 함께 syndication을 만들어서 투자한다. 많지는 않지만 우리와 같은 LA 기반의 BAM Ventures와 우리는 그동안 공동투자를 몇 번 했다(참고로 BAM Ventures는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재미교포 창업가 – 내 개인적인 관점에서 – Brian Lee와 Richard Jun이 운영하는 창투사이다). 사무실도 가까워서 자주 보고 한국의 스타트업이나 한국인들이 미국에서 창업한 스타트업들을 좋아하고 이 회사들을 도와주는걸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거 같다.

그리고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이미 공동투자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요새는 간혹 서로 묻어갈때도 있다. 주로 투자를 lead하는 투자자가 먼저 좋은 회사를 발견하고, 이 회사에 대한 기본적인 스크리닝과 사전검토를 해서 괜찮다 싶으면 다른 공동투자자들은 아주 세세하게 다시 검토를 하지는 않는다 – 특히, 우리같이 소액투자를 하는 경우에는. 그냥 기본적인 몇가지 사항들만 확인하고 큰 문제가 없으면 같이 투자를 하는데 아주 빠른 경우에는 공동투자자들이 5시간만에 투자 결정을 하는것도 봤다.

자주는 아니지만, 우리도 이렇게 묻어간 경우가 있다. 당연히 투자하는 스타트업이 매력적이고 창업팀이 뛰어나서 공동투자를 하지만, 어쩌면 이보다 더 큰 이유는 같이 투자하는 투자자들을 많이 좋아하고 절대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고 과거에 여러번 같이 일을 한 믿을 수 있는 투자자들이 이미 사전검토를 한 회사는 내가 굳이 세세하게 보지 않아도 당연히 괜찮은 회사겠지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하게 이런 경우는 투자자들이 다른 투자자를 믿고, 그 투자자가 믿는 회사에 같이 투자하는건데 ‘평판의 세상‘이라는 글에서 강조했듯이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믿음과 평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너무 묻어가기만 해도 문제가 된다. 내 주변에 거의 묻어가는 투자만 하는 창투사들이 있긴 있다. 이들의 철학은 과거에 좋은 회사에 많이 투자한 VC 또는 유명한 브랜드의 VC들이 투자하는 회사에만 무조건 묻어서 같이 투자하는 것이다. 회사를 발굴하고 열심히 공을 들여 검토를 한 lead 투자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거저먹는거 같아 보여서 얄밉기도 하지만,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들한테도 큰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 스타트업의 본질은 관심없고 다른 투자자의 이름만 보고 들어오기 때문에 – 너무 묻어가는 VC는 조금 조심하는게 좋다.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leigwon/100071920862>

에듀캐스트 투자

article-0-1B6C6098000005DC-99_634x411작년 가을 테니스 리그전에서 나보다 좀 어린 친구랑 시합을 한적이 있다. 나도 어릴적부터 테니스를 제대로 배워서 실력이 나쁘지 않은 편인데 이 친구도 여러면에서 봤을때 그냥 취미로 배운건 아니고 어릴적부터 제대로 친 실력이었다. 내가 졌는데, 시합이 끝나고 혹시 중학교나 고등학교때 선수였냐고 물어봤다. 대답은 의외였다. “한번도 정식으로 배운적은 없고 유투브로 테니스를 배웠어요.”

워낙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고 이런 변화의 중심에서 일을 하고는 있지만 다시 한번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걸 느꼈다. 유투브라는 회사는 2004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10년 이라는 길지않은 기간 동안 엄청난 성장을 했고 유투브가 시작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는 많은 전통 비즈니스에 disruption을 가져오고 있다.

교육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몇백년 동안 교육만큼 바뀌지 않은 분야가 있을까? 고대 로마 시대부터 교육은 교실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소수의 선생님들은 가르치고 다수의 학생들은 들으면서 배우는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빨리 바뀌는 세상에서 이렇게 바뀌지 않는게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이다. 하지만, 기술이 우리가 배움을 얻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풍부한 bandwidth, 전세계 어디서나 사용가능한 인터넷, 무료 컨텐츠, 그리고 유투브나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s: 대규모 온라인 공개수업)와 같은 새로운 플랫폼이 이를 가능케 하고 있다.

온라인 교육의 위력에 대해 스탠포드 동문 잡지인 Stanford Magazine에 다음과 같은 글이 소개된 적이 있다:

Christos Porios는 그리스의 알렉산드로포울로스에 사는 16살 고등학생이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과는 전혀 연관되어 있지 않고, 스탠포드 대학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스탠포드 대학의 한 수업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포리오스 학생은 작년 가을학기에 머신러닝 관련 시범 온라인 수업에 등록한 10만명의 학생 중 한명이다. 컴퓨터공학 교수 Andrew Ng은 스탠포드 학생들을 위해서 이 수업을 만들었는데, 수업 시작하기 몇일 전 누구나 무료로 이 수업을 온라인으로 수강하고, 시험도 보고, 숙제도 제출할 수 있도록 온라인 공개 강의로 변경을 했다.

포리오스 학생은 이 소식을 트위터로 접했다. 물론, 수업을 마친 후 스탠포드 대학 정식 학점을 취득하지는 못했다. 그냥 수업을 무사히 잘 수료했다는 축하 편지만 받았지만, 이 경험은 그의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비록 한번도 직접 만나본적은 없지만, Andrew Ng 교수는 제 인생 최고의 선생님 입니다. 이런 엄청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Nightcrawler 라는 영화를 보면, Louis Bloom 이라는 주인공은 사회적 외톨이/왕따이다. 그래서 변변찮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위키피디아를 통해서 엄청난 지식을 습득한다(심지어는 연애하는 방법까지 위키피디어로 부터 배운다). 영화이지만 그는 왠만한 전문가나 방송일을 오래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과 기술의 발달이 배움에 이렇게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박사학위를 받을 목적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지식을 이제는 온라인상에서 거의 무료로 습득이 가능하다. 물론, 이 분야의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선생님/교수님을 통해서 배우는거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수는 있겠지만, 의지만 있고 인내심을 가지고 시간을 투자할 의향이 있다면 왠만한 전문지식은 다 온라인상에서 배울 수 있다.

그렇다고 학교는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말콤 글래드웰이 그의 베스트셀러 ‘Outlier’ 에서 말하듯이 한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소들과 적절한 운이 필요한데 학교라는 물리적인 공간은 단순한 학문적 지식 외에 다양한 인간관계와 혼자서 인터넷으로 접하기 어려운 수많은 기회들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정해진 시간내에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강제성까지 있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는데 효과적이다. 물론, 이를 위해 수천만원의 학비를 부담할 의향이 있냐는 개인의 선택이다.

다시 위의 테니스 예로 가보자. 학문적인 지식은 유투브를 보고 습득할 수 있지만 이제는 테니스같이 몸으로 하는 운동까지 유투브를 보고 배울 수 있는 세상이 왔다. 인터넷, 가상현실, 블록체인 등의 기술이 성숙해지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세계의 모든 지식을 거의 무료로 배울 수 있는 세상이 곧 올것이다. 어쩌면 우리 생각보다 빨리 올 것이고 이미 와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TNTcrowd라는 회사가 있다. 젊고, 기술력이 풍부하고, 똑똑한 친구들로 구성된 이 팀은 에듀캐스트라는 서비스를 통해서 세상에서 가장 큰 학교를 만들고 있다. 우리는 이 친구들의 사고방식과 태도가 좋아서 최근에 투자하고 한 배를 같이 탔다.

세상에서 가장 큰 학교를 응원한다.

<이미지 출처 =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2400941/The-world-s-biggest-school-47-000-pupils-1-000-classrooms-run-3-800-staff-India.html>

첫번째 투자자

tumblr_m5ksnz57Cz1r2bgg3o1_500최근에 우리 회사 소개자료 만들 일이 있어서 그동안 투자한 회사들에 대한 정리를 좀 해봤다. 지금까지 우리가 투자한 회사는 23개인데 이 중 18개 회사에 Strong Ventures가 가장 먼저 투자한 첫번째 투자자였다. 우리야 워낙 초기 단계에 투자하는 시드펀드이기 때문에 금액은 크지 않지만 전체 포트폴리오의 80%에 가장 먼저 투자했다는건 우리 스스로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남들보다 먼저 좋은 회사와 팀을 찾아서 투자하고 같이 성장한다는 스트롱의 전략에 충실했었고,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우리가 믿는 사람들을 소신있게 지원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만족했다.

벤처 세계에서 ‘첫번째 투자자’는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투자 액수를 떠나서 상당히 많은 기회의 문을 여는 열쇠의 역할을 한다. 특히, 제대로 된 제품도 없고 과거에 성공적인 창업 경험이 없는 창업가들에게는 더욱 중요하다. 아무리 시드펀딩을 하는 투자자라도 이런 팀한테 투자하는건 너무 큰 리스크의 부담이 있기 때문에 섣불리 용기를 내어서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 그 누구도 첫번째 투자자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여기 아주 흔한 예가 있다; 창업 경험은 없지만 똑똑한 개발자와 디자이너들이 큰 시장에 존재하는 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기술 기반의 해결책을 만들기 위해서 회사를 만들었다. 어느 정도의 프로토타입까지는 만들었지만 product fit이나 market fit의 가능성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약간의 투자가 필요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창업 초짜들이기 때문에 분명히 자신들의 비전을 이해하는 투자자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여러 투자자들을 만나본다. 하지만, 현실은 매우 냉혹하다. 모든 투자자들의 피드백은 다음과 같다. “똑똑한 팀이고 재미있는걸 하려고 하네요. 그런데 아직은 잘 모르겠고 조금 더 지켜보고 싶네요.”

그리고 많은 투자자들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혹시 다른 투자자 누구랑 이야기를 또 하고 있나요? 그들은 뭐래요?” 여기서 만약에 누군가 – 그리고 그 누군가가 어느정도 평판과 브랜드가 있는 VC 라면 – 투자하기로 약속을 했다면 상황이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 특히 여러 투자자들이 좋아하고 명망있는 VC가 투자하기로 했다면, 이 회사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결정은 아직 내리지 못한 투자자들이 들어올 확률이 매우 커진다.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100% 확신이 서지 않는 이 시점에서 첫번째 투자자가 투자결정을 했다는거 자체가 2% 모자란 이들의 확신을 확고하게 해줄수 있기 때문이다.

또다른 이유는 – 이건 내가 투자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부분이니 옳을수도 있고 틀릴수도 있다 – 리스크를 감수해야하는 VC 들이 은근히 리스크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엔 괜찮은 회사인데…그리고 다른 투자자들이랑도 이야기 하고 있다는데….왜 다른 사람들은 투자하지 않을까?”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는게 투자자이다. 그래서 눈치만 보다가 다른 투자자들이 들어오면 그때서야 투자를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이런 심리가 팽배해 있기 때문에 첫번째 투자자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 “이 회사는 괜찮은 회사이니까 당신들이 투자해도 좋습니다. 일단 우리가 깃발을 꽂습니다.” 라는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최근에 우리가 투자한 회사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루키 창업가들이지만 머리도 좋고 과거 직장 경력도 좋았다. 그리고 하려고 하는 사업 아이템도 괜찮았고 내가 보는 시장은 상당히 컸다. 하지만 거의 3개월 동안 시드투자유치를 위해 여러 투자자들과 이야기를 했지만 위에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그 누구도 선뜻 투자하겠다는 결정을 하지 못했다(참고로, 매우 작은 시드 round 였다). 그때 우리가 첫번째로 투자 계약서에 서명했고, 이 ‘신호탄’을 그동안 이야기하고 있던 다른 투자자들에게 다시 가져갔다. 그리고 3개월 동안 맴돌던 투자이야기가 우리가 투자하기로 결정한 이후로 정확히 3일 만에 closing 되었다. 그동안 눈치보고 있던 4명의 투자자들이 스트롱벤처스가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3일만에 모두 투자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심지어는 주말이 껴있었다).

“스트롱벤처스가 그래도 미국<->한국을 좀 아는 믿을만한 LA 창투사인데, 얘네들이 투자를 했다면 뭔가 괜찮은 회사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와, 워낙 작은 시드라운드였기 때문에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투자자들한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FOMO: Fear Of Missing Out) 때문에 이렇게 빨리 시드 투자금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가능하면 항상 첫번째 투자자가 되길 원한다. 그래서 우리가 ‘깃발을 꽂는’ 이 회사가 가능성이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하고 싶다.

<이미지 출처 = http://www.tumblr.com/search/Stanley+Goodsp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