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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새로운 세상

올해는 스트롱 모든 팀원분들이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CES를 다녀왔다. CES 이후에 프라이머사제가 주최하는 미국의 가장 큰 한인 tech 행사인 82 Startup Summit 2024도 참석했고, 이후에 미국에서 각자 일을 보고 서울로 복귀했다.

나는 한국에 일들이 많아서 사무실을 지켰는데, 현지에서 팀 동료분들과 지인분들이 전달해 주는 CES 관련 소식과 사진을 계속 봤는데, 무척이나 futuristic한 제품과 서비스가 꽤 많았고 매우 흥미로운 회사들도 많았던 것 같다. 특히 올해가 참 흥미로웠던 게 몇 가지가 있었다. 일단 CES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매우 커졌다. 이 기간에 라스베가스 인구 절반이 한국인이었다는 농담도 있었는데, 한국이 뭔가를 안 하면 안 했지, 만약에 하면 대충 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해 주는 또 하나의 좋은 본보기였다. 또한, CES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과 LG의 존재감은 항상 컸고, 올해도 좋은 기술과 제품을 발표했는데 이제 자동차 산업이 진화하면서 모빌리티가 CES의 큰 주제가 됐고, 이 분야의 글로벌 강자인 한국의 현대와 기아의 존재감 또한 매우 컸다. 즉, 한국의 기술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고, 한국인들의 글로벌 시장 참여 또한 더 좋아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나는 해석했다.

자동차와 비행기 같은 무거운 하드웨어, 이 하드웨어를 제어하는 첨단 소프트웨어, 세상을 갈아 먹고 있는 AI, 그리고 이 중심에 있는 갈수록 똑똑해지는 우리 인간들. 이 모든 것들이 합쳐지고 있고, 그 결과는 몇십 년도 아니고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우리 앞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다. 나도 자주 말하지만, 이젠 죽도록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세상의 변화를 따라갈 수가 없고, 어떤 변화는 죽도록 열심히 노력해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로 이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정신 차리고 내 주변을 보면 모든 게 새로운 세상이다.

내가 VC 투자를 하면서 좋아하게 된 몇 가지 명언들이 있는데,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저자인 더글라스 아담스가 이런 말을 했었다.

“태어날 때부터 있던 건 정상적이고, 이 세상의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부이다. 15세에서 35세 사이에 개발된 건 새롭고, 흥미진진하고, 혁신적이지만, 이걸 잘 공부하고 연마하면 좋은 직업이 될 수 있다. 35세 이후에 개발된 건 비정상적이고,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올해 나는 50이 됐다. 위 말에 의하면, 이미 지난 15년 사이에 개발된 건 나에겐 비정상적이고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라서 어차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니 굳이 이렇게 힘들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건 시간 낭비라는 뜻인데, 모든 게 너무 새롭다고 느끼는 게 어쩌면 너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현실은 이 정도로 우울하진 않다. 그래도 요새 만나는 스타트업들의 비즈니스를 절반 이상은 잘 이해하고, 나머지 절반의 절반은 조금 노력하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로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잘 이해 가지 않는 기술이나 사업이 있는데,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투자하지 말자는 주장은 더 이상 하지 않고 있다.(실은, 과거에는 나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업에는 절대로 투자하지 않았다).

대신,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 나보다 더 똑똑하고 감이 좋은 다른 스트롱 동료분들의 의견과 판단에 맡기거나, 그냥 이해하지 않고 믿으려고 노력한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이 꽤 있는데, 다행히 잘 안되는 곳 보단 잘하는 곳들이 많고, 이 창업가들을 볼 때마다 내 기준에 새로운 세상이라서 스트레스받지 말고, 새로운 세상에 내 기준을 맞춰야 한다고 다짐한다. 비록 이 모든 걸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미래를 예측하지 말자

투자와 관련해서 다른 분들과 이야기할 때 초기 투자만 하는 우리가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어떻게 미래를 예측해서 투자하냐이다. 우리가 워낙 초기에 집중하는 편이고, 많은 경우 제대로 된 제품도 없고, 비즈니스 모델도 없고, 시장도 불투명한 단계인데, 이 중 잘 된 회사들을 보면 몇 년 만에 엄청난 제품을 만들어서 돈을 많이 벌고 있는 누구나 다 아는 국민 브랜드가 된 곳들이 많아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 같다. 물론, 이렇게 큰 사업이 된 회사는 우리 전체 투자사 중 극히 소수이고, 대부분은 잘 안되고 있거나 조용히 사라진 경우가 훨씬 많다.

이제 시작하는 회사에 투자했는데, 이 회사가 몇 년 뒤에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를 만들었다면, 나라도 이 회사에 투자한 초기 VC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을 것이다. “도대체 이 회사가 잘될 것이라는 걸 어떻게 알고 투자했냐?” , “그런 미래를 어떻게 상상하고 예측했냐?”와 비슷한 질문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내가 제일 당황스럽고 곤란해진다. 왜냐하면 나도 이 회사가 이렇게 잘될 거라는 걸 전혀 상상하지 못했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하긴커녕, 있는 데이터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투자를 집행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런 말을 많이 하는데, 내가 투자를 시작할 때 자주 들었던 게 벤처 투자는 과학이라기보단 예술의 영역에 가깝다는 말이다. 아마도 이 말은 초기 투자의 설명에 꽤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은 단계와는 무관하게 벤처 투자는 어느 정도는 예술의 영역에 가까운데 이게 초기 투자일수록 예술에 가깝고, 후속 투자일수록 과학에 가깝다. 초기 투자는 정량화할 수 있는 수치보단 정성적인 요소와 감에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고, 스타트업을 하는 것 자체가 똑똑한 사람들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가는 과정인데, 이 과정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안 좋은 일들이 발생할 수 있고, 상상도 못 하는 일들도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그냥 벗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린 일찌감치 제품이 어떻게 진화할지,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고객이 어떤 행동을 할지, 즉 미래를 예측하는 걸 포기했다. 대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사건과 사고가 터지고 이에 따라 스타트업의 내부, 외부 환경이 지속적으로 바뀔 때, 이런 어려움과 변화에 대해서 이 창업가가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를 예측해 보려고 노력한다. 인간이라는 게 참 복잡한 동물이라서 이런 사람의 행동과 태도를 예측하기도 매우 어렵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것 보단 난이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창업가와 계속 대화하면서 교류하고, 이 사람의 작은 것들을 관찰하다 보면, 그래도 이분이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잘 알게 된다. 이런 것들을 기반으로 우린 미래를 예측하기보단 이 창업가가 어떤 사람이고, 이 사람이 다양한 내,외부 자극에 어떻게 대응하고 반응할지를 예측해 본다.

그리고 우리가 미래를 예측할 필요가 없는 게, 미래는 오히려 똑똑한 사람들이 예측하면 되는데, 창업가들이 투자자들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들이라서 이분들이 미래는 알아서 잘 예측한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투자자들은굉장히 똑똑하지만, 투자자가 굳이 똑똑할 필요는 없다. 우린 똑똑한 사람들을 찾아서 이 사람들에게 투자만 하면 된다.

육감

우린 일주일에 한 번 전체 미팅을 하고, 여기서 어떤 회사에 투자할지 결정하는 투자심의위원회(투심위) 미팅도 한다. 워낙 많은 딜들을 보고, 그리고 다른 VC보다 많은 회사에 투자하기 때문에 우리의 투심위는 간결하다. 특정 회사에 대해 투자팀원 모두의 의견을 취합해서 투자하지 말지, 투자할지, 또는 조금 더 검토할지 빠르게 결정하는데, 모두 다 그동안 워낙 많은 회사를 봤기 때문에 각각 본인의 결정을 뒷받침할 만한 한두 개의 명확한 주장과 논리를 팀과 공유한다.

나도 그동안 많은 창업가와 회사를 만났기 때문에, 회사를 한두 번 만나면 이 회사에 투자할지 안 할지, 대략적인 방향이 나오고, 왜 그런 방향이 나왔는지 꽤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최근에 어떤 회사에 대해서는 이런 명확한 반대 논리가 없었지만 투자하기가 싫었던 적이 있다. 실은 창업팀도 그럭저럭 괜찮았고, 사업의 수치도 나쁘지 않았고, 시장도 괜찮아서, 내 기준에 딱히 걸리는 건 없었는데, 그냥 왠지 이 회사와 대표에겐 투자를 꼭 해야겠다는 강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런 걸 육감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이런 경우에 우린 투자하지 않는다. 투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콕 집어서 나열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투자해야 하는 단 한 가지의 이유 또한 없고, 왠지 이 회사의 대표에 대한 강한 확신이 없고 느낌이 별로라면 과감하게 투자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돈을 제공하는 한 LP와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이분이 이런 우리의 방식이 너무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지 않냐고 지적한 적이 있다.

실은, 표면상으론 맞다. 테크에 투자한다는 VC가 ‘감’에 너무 많이 의존하는 건 어떻게 보면 시대를 역행하는 태도인데, 우리가 하는 초기 투자는 지표와 논리도 중요하지만, 사람과의 케미와 느낌/감이 더 중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초기 투자를 하면 할수록 더욱더 강해지고 있다.

실은, 이런 방식에 논리와 과학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스트롱 모든 멤버들의 누적 투자 경험은 30년이 넘는데, 이 30년 동안 차곡차곡 축적된 크고 작은 것들이 정교하게 순간적으로 프로세싱되는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큰 데이터보단 작은 데이터이다. 그동안 경험한 작은 것들, 즉 정량화할 수 없는 감정, 느낌, 관찰, 직관 등이 작은 데이터인데, 초기 투자할 땐 그 어떤 인공지능보다 더 중요한 요소이다. 이런 것들 때문에, 회사를 검토할 때 딱히 크게 걸리는 건 없지만, 뭔가 투자하기가 꺼려진다면 우린 다시 검토하고, 또다시 생각해 본다. 그래도 크게 걸리는 게 없지만, 투자하고 싶은 확신이 생기지 않으면 그냥 과감하게 패스한다.

그래서 오히려 우린 회사를 검토할 때 우리가 싫어하거나 우리 기준에 미달인 부분들이 명확하게 파악되는 걸 선호한다. 이런 경우라면 그 자리에서 바로 탈락시킬 수 있어서, 더 이상의 에너지가 낭비되지 않는다.

물론, 이런 육감에 의존해서 투자하지 않았는데 엄청나게 잘하는 회사들도 있지만, 우린 확신을 갖고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후회하지도 않는다.

자본의 해자(垓字)

영화 ‘저스티스 리그’에서 플래쉬가 배트맨에게 당신의 슈퍼 파워는 뭔지 물어보자 “돈이 많다”라고 답한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브루스 웨인의 차별점, 즉 비즈니스 세계에서 강조하는 해자(垓字)는, 바로 돈이었다. 시장에 돈이 넘쳐흘렀을 때, 자본 자체를 가장 큰 차별화 전략으로 만들면서 자본의 해자화를 추구했던 스타트업이 상당히 많았다. 일단 돈을 써서 고객을 획득하고, 이들을 락인(lock-in)한 후에 돈을 벌겠다는 전략을 구사하는 회사들은 특별한 기술적 또는 비즈니스적인 차별점 보단, 돈 자체를 차별점으로 내세웠다.

우리 포트폴리오에도 플랫폼 스타트업이 상당히 많은데 당근이나 숨고와 같은 회사들이 좋은 조건에 펀딩을 잘 받고 초기에는 자본을 무기로 사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창업 후 몇 년 동안은 매출이나 수익성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사용자들을 플랫폼에 온보딩시키는데 회사의 모든 자원을 집중했다. 돈은 나중에 벌 수 있다는 믿음이 강했고, 이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단 많은 사용자들이 확보되어야 했고, 단기간 내에 수많은 경쟁사들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은 사용자들을 획득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썼다. 퍼포먼스 마케팅, 그로쓰 마케팅과 같은 방법을 기반으로 마케팅을 했는데, 실은 그냥 돈을 엄청나게 많이 써서 사용자들을 구매한 것이다.

잠재고객이 수천 만명 존재하는 소비자 플랫폼엔 이런 자본을 앞세운 대량 고객 획득 전략은 잘만 실행하면 단기간에 많은 유저를 온보딩 시켜서 수요와 공급의 바퀴를 돌릴 수 있고, 바퀴의 마찰을 제거하기 위해서 계속 효율적으로 돈을 쓰면, 결국 모든 경쟁사를 따돌리고, 가만히 놔둬도 마찰 없이 영구적으로 돌아가는 플랫폼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플랫폼에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이 적용되면 웬만하면 다른 경쟁사가 넘볼 수도 없는 거대한 매출을 만드는 사업이 완성된다. 나는 이 단계까지 온 대표적인 기업이 쿠팡이라고 생각한다. 토스도 이 단계에 꽤 가까이 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자본으로 해자를 만드는 전략은 시장에서 돈이 사라지면서 더 이상 유효한 전략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니, 유효하지 못 한 전략이 아니라, 스타트업이 취할 수 있는 최악의 전략으로 전락했다고 하는게 맞을 것 같다. 돈으로 플랫폼을 키우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점에 계속 투자받아야 하는데, 과거와 같은 유동성도 없을뿐더러,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돈을 벌기도 전에 이렇게 돈을 써서 몸집을 키우는 기형적인 전략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정말로 플랫폼 경험이 많은 창업팀이 정말로 매력적인 플랫폼 비즈니스를 하는 게 아니라면, 투자를 받는 게 매우 힘들어졌다.

대신, 많은 창업가들이 이젠 몸집을 키우기 전에 돈부터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일단 사용자들을 모으면, 그다음에 어떻게든 돈을 벌 수 있다는 마인드에서 벗어나서, 일단 돈부터 벌고, 남는 돈으로 사용자를 더 모으자는 관점에서 사업을 하는 창업가들이 요샌 훨씬 더 많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바뀐 생각과 관점이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더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고 있다. 어떤 방법이나 전략을 사용하든 궁극적으로 기업은 돈을 벌고 수익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동안 경기가 너무 좋고 필요하면 돈이 항상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기 때문에 많은 창업가와 투자자들이 성장에 눈이 멀었던 것이 사실이다.

자본으로 해자를 만드는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나는 아직도 자본을 무기로 사용하는 전략을 아주 적절하고 조심스럽게 구사하는 스타트업이야말로 가장 빠르고 거대한 플랫폼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과거와같이 묻지마 마케팅 전략은 지양하는게 맞지만, 결국 플랫폼이라는 거대한 바퀴를 돌아가게 만드는 기름은 사용자이기 때문에 다른 경쟁사보다 더 빠르게 사용자를 확보해서 이들이 다른 플랫폼으로 갈아타지 못하게 락인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이 기본적인 작업이 안 되면 아무리 좋은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해도 규모가 안 나오기 때문이다.

이 포스팅을 읽으면 역시 또 혼란스러울 것이다. 돈도 벌어야 하지만, 동시에 돈도 태워서 사용자를 계속 확보하는 전략은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나한테 조언을 구한다면, 지금같이 돈이 메마른 시장에서는 돈을 버는 데 집중하는 게 맞지만, 플랫폼을 운영한다면 언젠가는 다시 성장하기 위해서 마케팅을 해야 할 것이고, 불경기 동안 큰 자본이 없어도 사업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건 바람직하지만, 결국 다시 크게 성장하기 위해선 자본이 무기가 되는 전략이 언젠가는 필요할 것이다.

하이 텐션

창업가들의 말도 안 되게 높은 텐션과 긍정 에너지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에서도 내가 자주 썼고, 항상 느끼고, 말하고 있다. 나는 그동안 스타트업 업계에서 종사하면서 매우 많은 창업가를 만났는데, 이렇게 많고 다양한 창업가들의 공통점 하나만 꼽아보라면, 자발적으로 생기는 최상위 레벨의 에너지와 텐션이다.

일단, 에너지와 텐션이 높지 않으면 창업할 수가 없다. 이성적인 사람들은 남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틀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는데, 비이성적인 사람들은 직접 세상의 틀을 만들고 싶어 하고, 이런 소수의 비이성적인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창업가들은 이런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가장 대표적인 샘플인데, 미친 세상에서 미친 비이성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아주 높은 에너지와 텐션 레벨이 필요하다. 이들이 하려고 하는 걸 아무도 믿지 않고, 가끔은 본인도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이 외로운 싸움은 하이 텐션이 없으면 절대로 시작도 못 한다.

그래서 내가 아는 모든 창업가들의 높은 에너지와 저세상 텐션은 타고 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타고난 텐션을 지난 사람들이 사업을 하다 보면, 그 레벨이 더 높아진다. 창업하기 전에 이미 성공 확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일을 벌여야 하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사업을 시작해 보니, 이게 생각보다 더 어렵고 확률이 거의 0%에 가깝다는 걸 매일, 매시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스스로 힘내기 위해서 안 그래도 높은 에너지 레벨과 하이 텐션을 더 높게 해야 한다. 투자를 받기 위해서도 텐션을 더 올리고, 좋은 사람들을 채용하기 위해서 더 높은 텐션을 발산한다. 이런 텐션은 다른 동료 직원들에게 전염되고, 우리 같은 투자자에게도 충분히 긍정적으로 전달된다.

이렇게 창업가에게서 시작된 에너지와 텐션은 그 주변으로 확산하고, 여기에 감염된 직원들, 외부 파트너, 투자자 모두 비슷한 레벨의 긍정적인 텐션으로 이 회사와 창업가를 응원한다. 그리고 이런 작은 텐션의 불꽃이 퍼지면서 큰불이 되고, 가끔 우리는 불가능이 가능해지는 걸 목격한다.

이번 글은 새로운 내용은 없고, 내가 항상 하는 말을 다시 바꿔 말하는 건데, 돈이 아무리 많고,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무한 자원을 보유한 많은 거대한 기업들이 특정 분야에서는 항상 스타트업에 지는 이유가 바로 이 높은 텐션과 에너지 때문이다. 대기업 직원들은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스타트업의 텐션과 에너지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텐션이 너무 높으면 오히려 대기업에서 싫어한다.

이런 최상위 레벨의 텐션과 에너지는 솔직히 돈 주고도 못 산다. 그냥 창업가들과 스타트업분들에게 타고난 소중한 자원이다. 하지만, 우리 같은 투자자는 이걸 돈 주고 산다. 스타트업에 투자한 후에 이렇게 텐션이 높은 분들과 어울리다 보면 우리의 텐션과 에너지 레벨도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우린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