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

한번에 하나씩

우리가 가장 최근에 투자한 스타트업은 LA 기반의 Poprageous라는 회사이다. 크라우드 소스 의류를 디자인, 제조 그리고 인터넷 판매하는 회사인데 첫 제품은 고가의 레깅스 (여자들이 많이 입는 쫄쫄이 바지. 미국의 경우 남자들도 가끔 입는다) 제품들이다. 이 회사의 창업가는 Cher Park이라는 교포 여성인데 Strong Ventures가 좋아하는 창업가/사장으로서의 자격과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는 젊고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다. 이 회사에 투자하기 전에 우리는 Poprageous가 어떻게 디자인을 크라우드 소싱하며, 그 디자인을 어디서 어떻게 제조하며 어떤 과정을 거쳐서 판매하는지 꽤 자세히 공부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루는 Cher의 집(=사무실)을 찾아갔는데 아주 엉망이었던 기억이 난다. 여기저기 널려있던 옷감 원단, 마루 한 쪽 구석에 정리된 완제품들과 박스들, 그리고 소파위에 있는 각종 잡지, 옷과 신발들. 창업가의 집이 바로 Poprageous의 사무실이자, 창고이자, 사진 스튜디오이자 바로 배송 센터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 일어나서 그 전날 들어온 주문을 확인하고, 발주서에 따라서 레깅스를 하나씩 포장하고 택배 서비스를 이용해서 고객에게 정성스럽게 발송하는 현재로써는 상당히 ‘구멍가게’ operation 이다. 당시 나는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아는 큰 전자상거래 업체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지인한테 이 회사에 대해서 알려줬고 혹시 같이 투자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 본 기억이 난다. 그때 이 분은 “야, 쫄쫄이 바지 하나씩 사장이 손수 포장하고 보내서 도대체 회사는 언제 키우고 돈은 언제 벌려고? 이런 하꼬방에 투자해서 본전이나 찾겠어?” 라는 말을 하면서 즉시 거절했다.

하지만, 우리는 즉시 투자를 했다. 이 분이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은 바로 본인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일하고 있는 그 회사 또한 시작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구나 다 시작은 미약하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도 처음에는 차고에서 시작했다. 아마존 관련 책들을 읽어보면 매일 새벽 주문을 확인하고, 차고에 있는 책상 위에서 (문짝으로 만든 책상이라고 한다) 책을 하나씩 정성스럽게 박스 포장한 후에 우체부가 오면 건내줬다고 한다. 그러다가 주문이 2개가 되었고, 2개가 200개가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작은 오더들이 하나씩 축적되어 우리가 아는 그 아마존으로 성장한 것이다. 한국의 쿠팡이나 티몬도 비슷하게 시작했을 거라고 생각된다. 한 딜 한 딜 정성스럽게 신경 쓰면서 진행했을 것이고 그렇게 시작한 작은 구멍가게가 1조원 이상의 매출을 내는 큰 회사로 성장했다.

첫 날 부터 100만개의 주문을 처리하는 회사는 없다. 누구나 다 한 개씩 판매 하면서 시작한다. 하지만 한 개를 팔면서 얻게되는 노하우가 쌓이면서 10개에 적용되고, 10개 판매하면서 더 쌓인 노하우가 100만개 판매할 때 적용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본인이 직접 창업해서 고객의 주문을 직접 손으로 포장해서 보내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지금도 우리나라 어느 구석에서 작은 인터넷 까페를 통해서 보세 옷을 판매하고 있는 어린 친구들이 많이 있다. 주문 하나씩 올 때 마다 정성껏 포장해서 택배로 보내면서 제품 하나 당 2-3만원씩 벌고 있는 이 하꼬방에서 한국의 아마존이 탄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미지 출처 = http://nistmep.blogs.govdelivery.com/wp-content/uploads/2014/03/growing-clusters.jpg>

한국인이 미국에서 VC 하기

내가 자주 받는 질문에 대한 내 개인적인 생각과 설명이다. 내가 쓰는 글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어떤 분들은 동의할 것이고 어떤 분들은 동의하지 않을 것인데 내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한다.

얼마전에도 이 질문을 받았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2년 전에 미국에 처음와서 MBA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이제 곧 졸업인데 저 같은 한국 토종도 미국 VC 회사에 취직할 수 있을까요?”

일단…매우 애매하고 사람마다 다른 그런 질문이지만, 워낙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이라서 나도 나름대로 한번 생각을 해봤다. 아주 간단하게 풀어보면 나는 VC 들은 기본적으로 다음 능력/자산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 – 이건 당연하다. 투자하려면 기본적으로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이 없는 사람은 투자자라고 볼 수 없다.
  2. 어느정도의 경험 – 스타트업 관련 경험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경험은 여러가지 일 수 있는데 창업 후 성공적인 exit 경험,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창업 후 여러가지 벤처 시나리오 경험, 직접 창업은 하지 않았지만 스타트업 경험, 직접 창업하거나 스타트업에서 일해보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동안 여러 스타트업들에 투자해서 이들에 대한 간접적인 경험 정도라고 생각한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스타트업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는 창업가들이랑 도저히 이야기를 할 수도 없을뿐더러 창업가들이 투자자들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스타트업에 대해서 뭘 안다고?” 뭐 이런 생각들을 할 것이다). 하지만, 내 주위에는 전혀 스타트업 경험은 없지만 투자하는 회사마다 대박이 나는 능력자들도 가끔 있다.
  3. Deal sourcing 능력 – VC 업계에도 최근들어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지만, VC로써 가장 중요한 능력은 바로 이 deal sourcing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돈만 있으면 창업가들이 줄을 서서 투자를 받으려고 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좋은 창업가가 있다면 투자자들이 줄을 서고 창업가는 입맛에 따라 골라서 돈을 받을 수 있다. Deal sourcing을 잘하는 VC들은 내 생각에 2 부류가 있다. 하나는 상대적으로 젊고 경험이 없는 VC들인데 이들이 잘하는 건 발로 열심히 뛰어 다니는 거다. Facebook을 처음 발견한 Kevin Efrusy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참고로 Efrusy씨는 이제 실리콘 밸리에서 굉장히 유명한 거물 VC가 되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발로 뛰어다니면서 마치 영업사원처럼 좋은 창업가와 회사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발견하고 이들에게 스스로를 잘 팔아서 창업가들이 남의 돈이 아닌 내 돈을 받게 만들어야 한다. 다른 부류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좀 있고 경험이 많은 VC들인데 이미 투자자로써 어느 정도 레벨에 도달했고 그동안 좋은 connection을 – 다른 투자자 및 창업가들과 –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유망주들에 대한 소식을 남들보다 먼저 접하게 된다. 참고로, deal sourcing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남들보다 먼저, 그리고 남들이 잘 모르는 회사들을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경쟁이 심하지 않을때 더 좋은 조건에 남들보다 먼저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로써 대박은 바로 이렇게 만드는 것이다.

자 그럼 한국에서 온 분들이 미국에서 이런 조건을 갖추고 VC를 하려면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장 중요하며 기본적인 건 영어다. 첫째도 영어, 둘째도 영어, 그리고 셋째도 유창한 영어다. 위에서 언급한 능력들을 하나씩 짚고 넘어가 보자. 재벌가 출신이 아닌 이상 투자를 하기 위한 돈 또한 외부에서 받아야 한다. 영어를 못하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 어떻게 나 자신을 어필하고 수십억원의 돈을 받을 수 있나? 스타트업 경험을 쌓으려면 창업을 하거나 스타트업들과 아주 헤비하게 involve가 되어야 하는데 이 또한 영어가 안되면 택도 없다. 한국에서의 경험? 솔직히 요새 소위 말하는 unicorn 경험 또는 그와 비슷한게 아닌 이상 별로 안 쳐준다. 그리고 영어를 못하는데 남들보다 먼저 deal sourcing은 어떻게 하나? 일단 어느 지역에 어떤 회사들이 요새 뜨는지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파악을 하더라도 그 회사의 창업팀을 찾아가서 “나, 이러이러한 사람인데 당신 회사에 투자하고 싶다.”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그리고 내가 유능한 미국 창업가라면 영어를 띄엄띄엄하는 투자자한테는 왠만하면 돈을 안 받을 거 같다. 능력있고 자신있는 창업가라면 돈을 받을 수 있는 구멍이 많은데 굳이 이 사람한테 돈을 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영어도 못하는 사람이 미국에서 우리 회사에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것이다.

유창한 영어는 한국이든 미국이든 비즈니스를 하는데 매우 중요하고 필수 요소이다.

*관련 동영상 “한국 사람이 미국에서 VC 되기” 보기
*영어 관련 과거 포스팅:
영어 하기
Do You Speak English? – Part 1
Do You Speak English? – Part 2

 

워렌 버핏의 조언과 스타트업

워렌 버핏이 해마다 주주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미국시각으로 오늘 아침에 공개되었다. 나도 아직 다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요약해 놓은 버전들을 봤고 역시 버핏 회장의 유머, 위트, 시장에 대한 인사이트 그리고 투자 관련 경험은 정말 최고인 거 같다. 내가 죽은 후 다음 세대에 과연 버핏만큼 훌륭한 투자자가 이 세상에 나타날지는 아주 큰 미지수로 남을 거 같다.

2013년은 워렌 버핏의 회사 Berkshire Hathaway에 아주 좋은 한 해였다. 워낙 투자를 잘하고, 변함없는 자기만의 원칙과 철학이 있고, 작년 한 해는 미국 경기와 주식 시장이 그의 투자를 도와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오전에 이와 관련된 기사들을 읽으면서 버핏 회장이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고 주말 내내 계속 생각했던 내용이 있다. 워렌 버핏은 투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장기적인 관점이라고 하면서, 그가 과거에 했던 부동산 투자들을 예로 들면서 이런 그의 투자 기본 원칙을 강조한다. 그는 투자를 업으로 하지 않는 일반인들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바로 시장의 잡음과 소위 ‘투자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말이라고 한다 – 이들이 하는 말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귀가 얇아지는 것에 대해서 경고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조언을 일반 투자자들에게 한다:

“You don’t need to be an expert in order to achieve satisfactory investment returns. But if you aren’t, you must recognize your limitations and follow a course certain to work reasonably well. Keep things simple and don’t swing for the fences(만족할만한 이익을 얻기 위해서 꼭 전문 투자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보통 투자자도 충분히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전문 투자자가 아니라면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인정해야 하며, 동시에 과거에 대체로 잘 맞아떨어진 몇 가지 기본 투자 공식에 충실해야 합니다. 이 기본 투자 공식이 무엇이냐 하면, 최대한 심플하게 가면서 무조건 대박만을 노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 조언은 주식 투자자뿐만 아니라 창업가들에게도 아주 잘 적용되는 거 같다. 나는 버핏 회장의 이 조언을 창업가들에게 다음과 같이 재포장해서 말해주고 싶다:

“과거에 성공한 창업가나 경험이 많은 창업가가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다. 누구나 다 창업해서 성공할 가능성은 있다. 내가 아는 성공한 창업가들은 가지각색이지만 몇 가지 공통점은 다 가지고 있는 거 같다. 모두 다 비즈니스를 최대한 심플하게 유지하면서 (=너무 많은 걸 하지 않고 한 가지만 집중) 대박만을 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시행착오와 실험을 통해서 오랜 기간을 걸쳐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실은 나도 항상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 버핏 회장님이 이런 생각들을 공개적으로 confirm 해 주셔서 기분이 좋은 주말이었다.

지분 투자 관련 몇가지

지분 투자하고 지분 투자 받는 건 스타트업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 이라면 누구나 다 경험을 하는 거다.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게 이런 투자 관련 내용들인데 나한테 이와 관련된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아직도 일주일에 2 – 3명은 있는 거 같다.

전에 이런 질문들을 받으면 이메일로 쓰기에는 좀 복잡하고 긴 내용이라서, 심심풀이도 짧은 동영상들을 만들어봤다(유료 – 동영상 세트 17,400원)

Straight shooter

Straight_Shooter-outline__3__1286990852우리가 앞으로 몇십 개 또는 몇백 개의 스타트업에 투자할지는 모르겠지만, 확률적으로 확실한 건 이 중 절반 이상은 망할 것이라는 거다. 재수 없으면 이 회사 중 90%는 몇 년 후에는 없어질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게 바로 현실이며 현실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건 스타트업이 성공할 확률보다는 그렇지 못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더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나 사업이나 잘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중요한 건 이런 인정하기 싫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동료들과 투자자들 그리고 비즈니스와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가끔 우린 창업가들이 상황이 좋을 때는 좋은 소식들을 굉장히 많이 공유하는 걸 보지만, 반대로 잘 안될 때는 잠수를 타버리거나 그냥 모든 게 괜찮다고 거짓말을 하는 걸 볼 수 있다. 물론, 나쁜 의도가 있어서 그런 건 절대로 아니라는 걸 잘 안다. 투자자들이 걱정할까 봐, 그리고 일시적인 어려움이며 곧 시간이 지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굳이 공유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투자한 모든 회사들에 오히려 좋은 소식은 공유하지 않아도 되지만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상황이 좋지 않다면 되도록 빨리 알려달라고 한다. 그래야지만 문제가 아직 크지 않을 때 상의하면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작은 문제라도 가만히 놔두면 곪아서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고민거리가 되어 버린다.

우리 같은 투자자의 처지에서 봤을 때 투자한 회사가 잘 안 되거나 망하는 건 항상 있는 일이다. 이런 게 대수롭지 않은 건 절대로 아니지만, 이 사업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항상 경험하는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재무제표상 손실로 처리하고 다른 회사들에 집중하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유가 만약에 투자사가 우리한테 솔직하게 문제점들을 적시에 공유하지 않아서라면 이건 굉장히 사적인 문제가 되어버릴 수 있다. 서로에 대한 신뢰의 문제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팀은 앞으로 절대로 다시 투자하거나 비즈니스를 같이 하지 않을 것이다.

이 바닥에서 가장 중요한 건 투명성과 신뢰이다. 스타트업이야 하다 보면 안 될 수도 있고, 망하면 훌훌 털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하지만 다시 시작하려고 할 때 주위에서 나를 믿어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면 정말 힘들다. 신뢰는 한번 잃으면 절대로 – 특히 스타트업 같이 좁은 커뮤니티에서는 – 회복하기 힘들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reverbnation.com/straightshoo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