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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와 사랑

공동 창업자를 만나서 회사를 시작하는 건 마치 연애과정을 거쳐 결혼을 하고 새 살림을 차리는 거와 같다고 많은 투자자들이 말한다. 나도 경험해보니 매우 적절한 비유인거 같다. 그런데 이는 공동 창업자 뿐만 아니라 투자자와 창업자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남녀가 만나서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그 감정을 확인하기 위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데 이는 창업가와 투자자가 처음 만나고 성공적인 투자를 받는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남녀는 첫눈에 반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오랜 만남과 연애를 통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갖게 되는데 나 또한 투자를 하면서 이런 경험을 많이 한다. 매우 드문 경우지만, 첫 만남에서 “아, 바로 이 사람이다” 또는 “아, 바로 이 서비스다”라고 강렬하게 느끼고 그 자리에서 투자 결정을 했던 스타트업들이 몇 개 있었고 이번 주에 closing한 한 회사도 이런 경우이다. 하지만, 우리가 투자한 대부분의 회사들은 John과 내가 아주 오래동안 창업자를 개인적으로 알고 지냈거나 서비스를 꽤 오래동안 옆에서 지켜본 후에 투자 결정을 했다.

이 회사들 모두 창업팀과의 첫 만남과 첫 인상은 당연히 좋았지만, 투자 결정을 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투자를 하지 않기에는 뭔가 많이 아쉬웠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하자면 지금 상태에서 투자하기에는 좀 자신이 없었지만 우리랑 조금 더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이런저런 부분들을 잘 다듬으면 가능성이 높은 서비스와 회사가 될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창업팀을 잘만 다듬으면 큰 ‘사고’를 낼 수 있을거 같았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Brandboom이라는 회사다. 창업자 Eric을 처음 만난 건 2008년도 였는데, 우리가 투자한 건 2012년도이다. 4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지만, 그 이유가 회사가 엄청난 성공을 거둘때까지 기다린 후에 안전빵으로 투자하려고 했던건 아니다(아직도 Brandboom은 고생하고 있고, 이제 조금씩 안정적인 매출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와 창업팀이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4년 동안 계속 가까이 지내면서 서로를 잘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호감을 확인하고 (회사와 투자자의 입장에서) 연애를 하면서 “투자할 타이밍이 된 거 같다”라는 확신이 섰을때 투자를 했다.
얼마전에 투자한 MagTag라는 회사도 마찬가지다. MagTag의 부부 창업가 Marianne과 Rajiv를 처음 만난 건 1년 전이었는데 서로를 더 잘 알고, 궁합이 맞는지를 확인하는데 1년이 걸렸고 우리도 투자에 확신이 생겼고 MagTag도 우리의 돈을 받을 준비가 되었을때 ‘결혼=투자’를 한 것이다.

첫눈에 반한 투자가 더 성공할지 아니면 오랜 연애 후에 한 투자가 더 성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힘들게 한 이 결혼 생활을 성공적으로 유지하려면 창업가나 투자자나 모두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투자 framework

이건 내가 온/오프라인에서 굉장히 자주 받는 질문이고 나도 다른 투자자들에게 자주 물어보는 질문이다. 내 투자 framework은? (쉬운설명: 내가 투자결정을 할때 고려하는 것들은?)

솔직히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모든 투자자들이 나름대로 어느정도의 framework와 공식을 가지고 투자 기회를 검토하고 평가하겠지만 이런 원칙과 생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들이 워낙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가 정답일 거 같다.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 기본적인 틀을 기반으로 결정을 할텐데 나 같은 경우는 다음과 같다 – 솔직히,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 Team : 항상 강조하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충분치 않다. 역시 팀원들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일단 첫인상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창업팀의 눈빛, 말투, 상황에 대응하는 자세 등 여러가지를 짧은 첫 만남을 통해서 관찰하려고 노력한다. 첫 만남의 느낌이 좋으면 75% 합격이다. 물론, 사람을 한 번 만나서 판단하긴 어렵다. 틀린적도 많다(더 많다). 첫 느낌은 너무 좋았지만 알아 갈수록 실망했던 경우도 있었고 반대로 첫 만남은 좋지 않았지만 몇 번 더 만난 후 투자를 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투자자라는 직업상 사람을 굉장히 많이 만나보니 이제 한 시간 정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이 사람이 좋다 또는 별루다 라는 판단은 할 수 있게 된 거 같다. 물론, 이 판단이 맞다는 말이 아니다. 그냥 나 스스로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의미에서 내가 잘 알고 좋아하는 지인의 소개를 통해서 만나는 팀들은 훨씬 확률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창업팀은 3명이다. 엔지니어 2명 + 디자이너 1명 / 엔지니어 3명 / 엔지니어 1명 + 디자이너 1명 + 제품 1명 : 이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콤보다. 팀에 엔지니어가 한 명도 없는 팀은 거의 투자를 하지 않지만 너무나 좋은 팀원들이면 예외라는 건 항상 있을 수 있다. 창업팀을 만난 후 항상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상황이 좋을때는 상관없지만 비즈니스가 잘 안되고 회사에 돈이 없을때도 이 팀은 계속 같이 똘똘 뭉쳐서 비전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들인가?” 물론, 팀원들을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상황에서 정확한 답이 나오기는 힘들지만 최대한 이 질문에 대한 답에 스스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를 해본다.
그리고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을 솔직하게 하는 팀들을 좋아한다. 어떤 팀을 만나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으며, 조금이라도 자존심을 건드리는 공격적인 질문을 하면 (나는 성격도 성격이지만 일부러 이럴때가 많다) 굉장히 방어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런 팀들은 벤처를 하면서 성공할 확률이 매우 떨어진다. 잘 아는 건 당연히 자신있게 어필하되, 모르는 건 솔직하게 모른다고 하는 팀들을 좋아한다.

2. 시장의 크기 (문제점) : 이들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 문제를 돈으로 환산해보면 시장의 크기가 어느 정도 될까? 기발한 기술과 제품이라도 시장의 크기가 너무 작으면 투자로써의 매력은 없다. 가령 시장의 100%를 다 먹었을때 가능한 매출이 100억 밖에 되지 않으면 투자하는게 매우 꺼려진다. 100억 이라는 시장 자체가 투자금의 큰 return을 보고 투자하는 VC들에게는 너무 작게 느껴질 수 있으며, 시장의 100%를 다 먹을 수 있는 비즈니스는 없기 때문이다. 전체 시장의 10%만 점유해도 나쁘지 않은 비즈니스인데 위의 경우에는 그러면 10억짜리 비즈니스에 투자를 하게 되는건데 좀 곤란하다. 아마도 한국 시장만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생각하는 한국의 벤처기업이면 이 시장의 크기에 대해서 잘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물론, 쿠팡과 같이 한국에서만 비즈니스를 해도 시장의 크기가 수조원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여기서 나는 한가지를 더 본다. 스타트업의 비즈니스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현재 시장에 존재하는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서비스인가 아니면 그냥 ‘있으면 더 좋은’ 기능적 서비스인가? 만약에 전자라면 (기존 프로세스나 제품에 사용자의 편의를 해치는 문제점이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비즈니스) 시장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아도 검토를 꼼꼼히 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뭔가 불편한 걸 해결하는 제품이라면 그렇지 않은 제품보다는 잠재 고객이 돈을 내고 구매할 확률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시장에 좋은 제품들이 나와있고 특별히 문제가 되는 건 없지만 “우리 제품을 사용하면 더 재미있고 많은 걸 할 수 있어요” 류의 ‘있으면 좋은(good to have)’ 제품의 경우 시장이 아주 클 수록 좋다.

3. 기술 : 좋은 팀이, 큰 시장을 공략한다. 아주 좋은 그림이다. 그럼 이들이 어떻게 그 시장을 공략할 계획인가? 이들이 만드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노동집약적인 접근방식인가 아니면 첨단 기술을 이용한 접근방식인가? 우린 당연히 후자만을 본다. 아무리 큰 시장이라도 시장을 접근하는 방법에 기술이 활용되지 않으면 우리같은 tech VC들은 투자를 정당화 할 수도 없으며 하기도 싫다. 기술을 이용해서 한계비용(marginal cost)을 거의 0으로 만들 수 있는 비즈니스를 우리는 좋아한다.

예를 들어 경영 컨설팅 비즈니스의 시장 크기가 10조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큰 시장이고 똑똑한 젊은 친구들이 새로운 방법으로 시장을 접근해서 5년만에 시장의 10%를 먹겠다고 찾아왔다. 아마도 투자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컨설팅이라는 업 자체가 매우 노동집약적이기 때문이다. 즉, 사람 장사이다. 만약 1개의 기업을 컨설팅 하는데 컨설턴트 3명이 필요하면, 2개의 기업을 컨설팅 하려면 컨설턴트 6명이 필요하다. 5개의 기업을 컨설팅 하려면 5×3명 = 15명의 컨설턴트가 필요하다(플러스 마이너스 2~3명). 당연히 매출은 비례적으로 증가하지만, 비용도 똑같이 증가한다. 매우 선형적인 성장을 하는 비즈니스이다.
이와 달리, 기업이 스스로를 진단해서 외부 컨설턴트의 컨설팅을 받는 수준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온라인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비즈니스라면 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물론, 이런 소프트웨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1개의 기업에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거랑 10,000개의 기업에 이 서비스를 제공할때 드는 비용은 동일하다. 한계비용이 거의 ‘0’이기 때문이다. 비용은 최소화 하면서 매출은 극대화 할 수 있는 비즈니스이다. 당연히 이익 또한 극대화 할 수 있다.

바로 대부분의 모바일과 웹 서비스의 기본이며, 기술 play가 있기 때문에만 가능한 것이다.

나는 투자할 때 주로 위 3가지를 많이 생각한다. 물론,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예외는 항상 존재한다. 아무리 시장이 작아도 팀이 너무너무 맘에 든다면 투자를 할 수도 있다(그리고 다른 걸 하라고 권장할 것이다). 기술의 play가 조금 약해도 팀이 너무너무 맘에 들면 투자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고 시장이 100조원이라도 팀이 맘에 안 들면 절대로 투자는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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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 Ventures 유래

우리 회사 이름은 Strong Ventures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이름이 그냥 ‘강한(strong)’에서 유래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는 이보다 조금 더 깊은 의미가 있다.

(VC들은 잘 아실 텐데 일반인들은 잘 모를 것이다) 대부분의 벤처 펀드들의 이름은 창투사가 위치한 지역과 밀접한 연관이 있거나 창투사 founder들의 이름/학교/지역/고향 등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즉, 대부분의 펀드는 단순한 이름을 넘어서 더 개인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몇 가지 예를 들면:
–Sequoia Capital은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Sequoia 나무에서 유래
–Palo Alto Investors는 회사가 위치한 동네 Palo Alto에서 유래
–DFJ는 펀드 창업자 3명의 이름 앞 자에서 유래 (Draper, Fisher, Jurvetson)
–Menlo Ventures는 회사가 위치한 동네 Menlo Park에서 유래

등등 대부분 벤처펀드의 이름을 보면 이런 경우가 많다(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John이랑 나도 펀드를 처음 만들 때 우리랑 개인적으로 연관된 재미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둘 다 어릴 적부터 스페인의 까나리아 군도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 글 참고) 여기서 뭔가 영감을 얻자고 했고 이런저런 지명을 생각해 봤다. 우리가 자란 곳의 영문 이름이 Canary Islands이니까 처음에는 Canary Ventures라는 이름을 생각했는데 ‘카나리아’ 새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고 – 조금 약한 느낌 – 한국사람들 한테는 까나리 액젓도 연상되는 거 같아서 pass. 까나리아 군도의 라스팔마스(Las Palmas)라는 도시에 살았으니까 Las Palmas Ventures도 고려해봤지만(영어로는 Palm Trees) “라스팔마스”는 너무 길어 발음하기가 힘들어서 pass.

그러다가 까나리아 군도의 다른 섬들 이름을 생각해봤다(참고로 까나리아 군도는 7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Fuerteventura라는 섬이 있는데, 이 섬의 이름에서 우리 회사 이름이 나왔다. Fuerteventura를 영어로 옮기면 “fuerte = strong” , “ventura = venture(이 번역은 아주 깔끔한 번역은 아니지만 비슷하다)” 라서 Strong Ventures로 정했다.
fuerteventura
다행히도 strongvc.com 도메인이 구매 가능했고(아주 운이 좋았다), “스트롱 벤처스”라는 이름이 누구나 한번 들으면 거의 잊지 않는 이름이며 한국 사람들이 발음/기억하기에도 아주 쉬운 이름이었다. 이게 Strong Ventures 이름의 유래이다.

Convertible Note

이제 갓 시작해서 빠르게 성장하는 벤처기업의 밸류에이션을 정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 앞서 말한 적이 있다. 우리도 이제 15개의 회사에 투자했는데, 투자 할 때마다 밸류에이션 가지고 창업팀과 이야기하고 네고 하는 건 흥미롭지만 힘든 소모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중 몇 스타트업에는 아주 빠르고 간단하게 투자를 했는데 그 이유는 밸류에이션 기반의 지분투자가 아닌 convertible note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Convertible note를 네이버나 다음에서 찾아보면 ‘태환권‘이라고 우리말로 번역 되는 거 같은데 그 뜻을 잘 읽어보면 미국에서 투자할 때 사용하는 거랑 개념이 많이 다른 거 같다. 나랑 내 주위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전환사채’라고 한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금융법적으로도 공식적인 상품이 아니라서 용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아주 자세히 설명하자면 글이 굉장히 길어지는데 여기서는 기본적인 개념만 정리해 본다.

일단 ‘전환사채’라는 말을 하나씩 해석해보면 그 뜻을 대충 알 수가 있다. 내가 한 회사의 창업자로서 투자자로부터 convertible note를 받으면 그 돈에 대해서 회사의 지분을 주지 않는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갚아야 하는 단순한 어음/사채(대출금)이다. 하지만, 이 사채는 미래의 특정 시점에 회사의 지분으로 ‘전환’이 된다. 그러므로 ‘전환사채’이다. 지분으로 전환되는 그 특정 시점은 제대로 된 기관투자자가 투자사 및 창업팀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적당한 밸류에이션을 기반으로 투자하는 시점이다 (주로 Series A).

전환사채의 계약서도 가지각색이고 투자자마다 요구하는 특정 조건들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전환사채에는 다음 3가지가 반드시 있다:

1. 이자율 : 전환사채는 미래에 지분으로 전환되지만(물론, 전환 안 되고 돈을 다시 받거나 아니면 회사가 그냥 망하는 경우도 많다) 당장은 대출금과 같다. 전환되지 않을 경우 미래의 특정 시점에 – 주로 2년 후 – 돈을 다시 받게 된다. 물론 이자까지 합쳐서. 이자율도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5%~10% 정도이다.

2. 할인율 : 위에서 말했듯이 만약에 미래에 특정 밸류에이션을 기반으로 Series A 기관투자가 이루어지면 전환사채는 그 밸류에이션을 기반으로 회사의 지분으로 전환된다. 하지만, 전환사채가 사용되는 시점은 일반인들이 주로 투자하길 꺼리는 리스크가 많은 벤처의 초기 단계기 때문에 이 시점에 회사를 믿고 고맙게 전환사채로 투자한 투자자들에게는 Series A 투자자들보다 더 유리한 할인율이 제공된다. 만약에 Series A 투자자들이 주당 5,000원을 지급했다면, 전환사채 투자자들은 이보다 할인된 가격에 주식을 구매한다(할인율에 따라서). 내가 본 할인율은 주로 15%~20% 정도이다.

3. 밸류에이션 캡(valuation cap) : 만약에 내가 특정 벤처기업의 완전 초기 시점에 리스크를 감수하고 전환사채로 1,000만 원을 투자했다고 가정해보자(할인율 20%). 그런데 이 회사가 엄청나게 성장해서 12개월 후에 유명한 VC로부터 1,000억 원의 밸류에이션에 투자를 유치한다고 가정해보자. 회사의 입장에서는 아주 경사가 났지만 내가 투자한 1,000만 원이 지분으로 전환되면? (주식 가격으로 하면 좀 복잡하니까 대충 계산해도) 0.02%도 안 된다! 이건 좀 너무 한 거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내가 회사와 창업팀을 믿고 완전 초기에 투자했는데….
자,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밸류에이션 캡이라는게 있다. 내가 본 캡은 주로 20억 ~ 50억 원 정도인데 위의 경우에서 만약에 캡이 20억 원 이라면 Series A 투자자가 그 어떤 밸류에이션에 들어와도 (1,000억이든 1조 원이든) 내 1,000만 원은 20억 원 이라는 밸류에이션 기반으로 지분 전환이 된다.
* 물론 기관투자가 밸류에이션 캡인 20억 원보다 더 낮은 밸류에이션에 투자를 하면 더 낮은 밸류에이션을 기반으로 지분 전환 된다.

뭐, 다른 여러 가지 조건들도 갖다 붙이면 되지만 기본적으로 전환사채 계약서에는 위 3가지 조건들은 반드시 포함된다.

그런데 여기서 많은 분이 궁금해하실 거 같다. 왜 전환사채로 투자할까?
이 또한 투자자들과 창업가마다 이유가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일단 밸류에이션 결정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전환사채는 지분투자가 아니라 단순한 대출/어음이기 때문에 이제 갓 시작한 회사의 가치가 1억이냐 100억이냐 싸울 필요가 없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일단 빨리 돈을 받아서 제품개발에 집중할 수 있고, 투자자의 입장에서도 마음에 드는 회사라면 일단 빨리 적당한 할인을 받고 투자를 할 수 있어서 서로한테 나쁜 deal이 아니다(굳이 따지자면 투자자한테 오히려 더 불리하다.).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해서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 지표들이 – 유저 수, 매출, 성장률 등 – 만들어지는 시점에 밸류에이션은 결정될 것이고 기관투자자가 적당한 밸류에이션을 기반으로 투자하면 그때 지분으로 전환된다.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전환사채 계약서가 아주 간단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지분투자를 할 경우 아주 길고 복잡한 계약서 몇 종이 있는데 전환사채의 경우 아주 standard한 (위에서 말한 3가지 조건이 나열된) 계약서를 사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빨리 검토/투자가 이루어진다.

창업자의 입장에서도 전환사채는 여러모로 볼 때 좋다. 이미 말한 대로 투자유치를 위해서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밸류에이션 정하는데 시간을 많이 허비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제품개발과 team-building에 모든 초점을 맞출 수가 있다. 또한, 지분투자를 받는 경우 투자유치 목표금액이 만약에 10억 원 이라고 하면 10억 원 전체를 투자자/투자자들로부터 확정을 받은 후에야 실제로 돈을 입금받을 수 있지만, 전환사채는 투자유치 목표금액이라는 게 딱히 정해지지 않기 때문에(그렇게 정할 필요가 없다.) 계속 rolling basis로 돈을 그때그때 계약서만 서명하고 받을 수 있다.
* 또한, 계약서가 매우 간단하고 표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돈 없는 스타트업에서 변호사 비용을 쓸 필요가 없다. 그냥 인터넷에서 convertible note 계약서 검색해서 여러 템플릿 중 하나를 사용하면 된다 🙂 

한국도 빨리 convertible note가 제도화되면 좋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방법을 좋아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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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STRONG Survey – 한국의 창업가들은 누구인가?

2011년 11월에 baenefit.com, 비석세스 그리고 벤처스퀘어 독자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서베이를 진행한 적이 있다. “한국의 창업가들은 어떤 사람들인가?”가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한 시간 만에 서베이를 만들었는데 그 결과에 대한 반응은 꽤 좋았다. 2011년도 서베이 결과는 여기서 볼 수 있다.

올해도 거의 비슷한 질문을 바탕으로 간단하게 서베이를 진행했는데 결과는 역시 은근히 흥미로운 거 같아서 간단하게 정리를 해봤다. 참고로, 전체 결과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는 홍보가 제대로 안되어서 참여 인원은 2011년도의 76명의 거의 절반인 36명이다

1) 남성. 여전히 한국의 창업가들은 남성이 압도적이다(남자가 89%). 2011년도는 95%가 남성이었다.

2) To pivot or not to pivot. 응답자 중 67%인 24명이 창업 초기 아이템으로 현재 계속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즉, 오리지날 아이디어에서 피벗한 창업가들은 33%이다. 2011년에는 정확하게 절반인 37명이 피벗을 했다

3) Global. 83.3%가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고 있으며, 47.2%는 국내 비즈니스 및 글로벌 비즈니스를 같이 하고 있다. 이는 2011년의 55%와 비슷하다.

4) Exit. 응답자 중 거의 절반이 인수/합병을 통한 exit을 선호한다고 했다. 물론, 이 중 95%는 exit은 커녕 쫄딱 망할 것이다 

5) 창업가들.
-19명(52.8%)이 부모님 중 한 분이 사업이나 창업을 했다고 한다. 사업도 유전인가?
-절반이 오전 7시 ~ 9시 사이에 일어난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침형 인간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늦게 자서 그런가?)
-취침시간은 평균 5시간 ~ 7시간으로 미국과 비슷한거 같다
-아침식사는 1/3은 반드시 먹고, 1/3은 가끔 먹고, 1/3은 먹지 않는다. 아침을 꼭 먹어야지 두뇌회전이 빠르다는 말은 거짓일 수도 있을거 같다
-술은 대부분 먹을 줄 알았는데 36명 중 15명은 술을 먹지 않는다
-절반 이상인 58.3%가 미혼이다
-63.9%가 외국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다. 이는 2011년 결과와 많이 다른데 당시 창업가 중 71%가 토종 한국 출신이었다
-8.3%는 창업한 걸 후회하고 있다
-91.7%가 처음부터 창업 결심을 했지, 취직을 못해서 창업의 길을 선택한게 아니다
-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서비스는: 페이스북 > 카카오톡 > 트위터 > 링크드인
-잠자기 전에 가장 많이 확인하는 건 페이스북이다(31.6%)

6) Communication. 이 부분이 약간 의외였는데, 36명 중 21명이 하루에 이메일 보내고 받는데 사용하는 시간이 1시간 이하였다. 하루에 5시간 이상을 이메일 보내고 받는 창업가는 단 1명 밖에 없었다(내가 설문에 참여했으면 2명이 되었을거다). 대신, 72.2%가 하루의 5~25%를 직원들과 대화하는데 사용한다고 한다. 이것도 의외였다

7) Bootstrapped startups. 이들 중 39.4%는 첫 창업 시 본인들이 직접 자금을 조달했다. 이는 2011년도 수치와 거의 비슷하다.

8) 학력. 58.3%가 학사 학위. 22.2%가 석사 학위. 13.9%가 대학을 나오지 않은 창업가들이다. 이 중 대학교 중퇴는 2명이었다

9) 정신건강.
-불면증에 시달리는 창업가들은 19.4% 밖에 안 된다
-하지만 절반 이상이 회사 이메일을 계속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대부분(66.7%) 공황장애 증상이 없지만, 27.8%는 약간있고 2명은 심각한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10) 슈퍼히어로. 한국에서 아이언맨이 대박났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역시 창업가들의 44.4%가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다면 ‘아이언맨’이 되고 싶다고 했다

11) 안철수. 안철수씨가 정치를 하든 비즈니스를 하든 창업가들의 44.4%는 관심이 없다

그리고 이들은 후배 창업가들에게 다음과 같은 친절하고 마음에 와 닿는 조언을 주셨다:
-강한 의지야 말로 가장 필요한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다가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가 아니라, 반드시 해 낸다는 의지를 가지고 일합시다
-일단 시작하면 뭐라도 됩니다
-God bless you
-열심히해라.시간없다
-성공하는 참고할만한 이야기와 사람들은 주변에 널려있어요. 매일 매일 자신을 반성해 자기를 이겨나가는 것이 성공의 열매는 따먹는 첫 걸음이 아닐까 합니다
-실패한것에서 배워라
-육체적 정신적 고난이 끊임 없이 반복되고 대부분은 실패하는 게 창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꾸는 가장 빠른 방법이 창업이 아닌가 싶네요
-일단 저지르자

전체 결과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설문에 참여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