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로 해결합시다

한국같이 인구밀도가 높고, 직장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 가령, 스타트업은 강남이나 판교 – 나라에서는 직접 얼굴 보고 미팅을 하는 게 어렵지도 않고, 이상하지도 않다. 특히, 사전에 약속하지 않고 그냥 즉석에서 서로 연락해서 바로 만나는 게 너무 흔하다. 미국은 땅이 넓고, 회사들이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직접 만나서 미팅하는 게 참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과 미국에서 일을 하다 보면, 미국인들이 이메일을 더 잘 쓰고, 화상채팅 같은 툴을 매우 잘 활용한다는 걸 항상 느낀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한국에서는 스타트업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도 스카이프나 구글행아웃 같은 화상 컨퍼런싱 제품을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분들이 있는데, 이게 나한테는 처음에 굉장히 낯설었다.

나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냥 굵직한 일들에 대한 계획만 잡고, 상황에 맞춰서 일한다. 그래도 연초에는 시간을 내서, 작년에 잘한 일, 잘못 한 일, 그리고 올해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한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작년에 내가 잘 못 한 것 중 하나는 시간 관리이다. 내 업무 일정의 절반 이상이 사람을 직접 만나는 미팅에 사용되었는데, 이게 과연 시간을 가장 생산적으로 활용한 건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실은 이 미팅 중 80% 이상이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고 전화나 이메일로 처리했어도 됐다. 한 시간 이상 열심히 떠든 미팅 몇 개를 떠올려 보면, 그냥 이메일 몇 줄로 연락한 거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 이렇게 전화통화나 이메일로 처리를 하면,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를 요새 많이 하고 있고, 올해는 되도록 미팅을 전화, Skype 또는 이메일로 대체해보려고 한다.

실은 대기업에 비교하면, 내 상황은 훨씬 좋다. 내가 마이크로소프트 다닐 때 미팅 경험을 생각해보면 비효율의 극치를 달린 거 같다. 일단 사람들이 다 모이는데 15분 정도 걸렸고, 대부분 미팅 준비를 하지 않고 오기 때문에, 미팅 주선자가 왜 이 미팅을 하는지 브리핑을 하는 데 30분이 걸린다. 그러면 1시간 미팅에서 15분밖에 남지 않는데, 그 시간을 다음 미팅 스케줄링하는데 사용한다. 그리고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내용에 대해서 미팅을 여러 번 하는데, 결국 결론은 굉장히 쉽게 난다. 그냥 이메일 하나 보내고, 많은 사람의 동의를 구하면 되는 걸 이렇게 복잡하게 시간 낭비하면서 미팅을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내가 창업가들과 만나는 미팅은 이에 비교하면 생산성이 500%인 셈이다.

뭐, 그렇다고 사람을 아예 안 만나겠다는 건 아니다. 실은 얼굴을 직접 보면서 이야기 하는 건 뭔가 특별한 게 있긴 하다.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무제한이고, 내 체력 또한 무제한이라면 모든 미팅을 직접 얼굴 보고 할 텐데, 시간과 체력을 최적화 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서, 괜히 체면 차리지 말고, 너무 상대방의 기분을 의식하지 말고, 모두를 적당하게 만족시키는 선에서 효율성을 최우선시 하는 게 가장 좋은 업무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누가 전화해서 다짜고짜, “대표님, 한번 만나죠.”라고 하면, 나는 “그냥 이메일 하시죠”라고 한다. 결국, 해보면 이메일 두 통이면 다 해결되는 일이다.

빌 게이츠 회장님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그리고 애플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회사가 됐거나, 남아 있어도 공룡의 이미지로 남아있는 거 같다. 나는 아직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장래가 밝다고 생각하고,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회사보다 오히려 사회에 더 큰 긍정적인 공헌을 하는 회사라고 믿는다. 실은, 이런 좋은 느낌은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보다는 43년 전에 이 회사를 창업한 빌 게이츠에 대한 존경과 믿음 때문에 생기는 거다.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했지만, 그동안 빌 게이츠 회장에 대해서 조금 더 알 수 있었고, 운 좋게도 직접 이야기할 기회도 있었는데, 비즈니스를 떠나서 그냥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이 분을 좋아하게 됐다. 물론, 사업을 하면서 이상한 결정도 했고, 힘을 이용해 약자를 완전히 뭉개버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인류에 큰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반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빌 게이츠는 이제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나서 Bill & Melinda Gates 재단을 통해서 세계 빈곤과 질병과 싸우고 있고, 교육기회를 확대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이 재단의 2018년도 연례편지에 빌과 멜린다 재단에 대해 사람들이 물어보는 가장 어려운 10가지 질문과 답이 실렸는데, 여기서는 질문만 일단 소개해본다:

1/ 왜 미국에는 더 기부하지 않나요? (Why don’t you give more in the United States?)
2/ 미국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해 수조 원을 투자했는데, 어떤 성과가 있나요? (What do you have to show for the billions you’ve spent on U.S. education?)
3/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 왜 기부하지 않나요? (Why don’t you give money to fight climate change?)
4/ 두 분의 개인적인 가치를 다른 문화에 강요하는 건 아닌가요? (Are you imposing your values on other cultures?)
5/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면 오히려 인구과잉이 발생하지 않나요? (Does saving kids’ lives lead to overpopulation?)
6/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재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How are President Trump’s policies affecting your foundation’s work?)
7/ 기업들과 왜 협업하나요? (Why do you work with corporations?)
8/ 재단의 영향이 너무 센 거 아닌가요?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Is it fair that you have so much influence?)
9/ 두 분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What happens when the two of you disagree?)
10/ 개인 돈을 굳이 왜 기부하나요? 개인적으로 얻는 게 뭐가 있나요? (Why are you really giving your money away – what’s in it for you?)

좀 길지만, 영어 공부하는 셈 치고라도 한 번 시간을 내서 읽어보는 걸 권장하고 싶다. 가식적이지 않고, 솔직 담백하다. 트럼프 정부에 대한 의견도 소신 있어서 좋고, 지금까지 재단이 잘 못 한 점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내용도 좋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곳에 집중 투자 – 교육 투자도 다른 분야보다는 고등학교 교육에 집중 투자 – 하는 전략은 대기업 경영 경험이 없으면 할 수 없기에 더 멋진 거 같다.

마지막 질문은 빌 게이츠뿐만 아니라, 자수성가해서 이룬 부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분들한테 나도 항상 하고 싶은 질문이다. 의미 있는 일이고, 스스로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한다는 빌 게이츠의 답변에서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재미도 있고,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직업을 갖는 건 참 쉽지 않은데,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도 그랬고, 재단도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누구나 젊을 땐 열심히 일하지만, 나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아주 열심히 일했다. 결국은 빌 게이츠를 부자로 만들어 준 거라서 당시엔 좀 씁쓸했지만, 그래도 마이크로소프트로 번 100조 원 이상의 돈 중 99%를 살아 있을 때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결심을 한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 준거라서 기분이 썩 나쁘진 않다.

빌 게이츠가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것은 당신의 잘못이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많이 벌어서 좋은 일에 다 쓰고, 그리고 가난하게 죽는 건 아주 좋은 거 같다. 노벨 평화상은 빌 게이츠가 받아야 한다고 한 내 트친이 있었는데, 나도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고객을 영업사원으로

부동산다이어트_main제품을 개발했으면 잠재고객한테 알려야 하는데, 정보와 제품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나는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게 곧 최고의 마케팅 전략이라는 걸 아직도 맹신하고 있고, 내 주변에는 이걸 잘 하는 회사도 있지만, 좋은 제품을 만들었지만, 마케팅에 돈을 태우지 않으면 소위 말하는 임계한계점에 도달하지 못해서 그냥 사장되는 경우도 많이 봤다. 초기 벤처기업의 경우, 워낙 돈이 없기 때문에 되도록 마케팅에 집행하는 비용을 최소화하거나, 아니면 아예 돈을 사용하지 않는 무료 마케팅 전략을 실행해야 한다.

가장 좋은 무료 마케팅 전략은 어떤 게 있을까? 우리 제품이나 시장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블로깅을 하거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서 바이럴 효과를 발생시키는 게 누구나 쉽게 시작해볼 수 있는 무료 마케팅이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블로그 마케팅의 경우, 우리가 지속적으로 올리는 콘텐츠가 시장에서 어느 정도 반응을 일으키려면 6개월에서 12개월이 소요될 수 있다. 실은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마케팅은 – 계속 같은 말이지만 –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이 제품이 너무 좋아서, 사용해 본 고객이 감동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고객이 알아서 우리 회사와 제품을 홍보해주는 ‘고객을 영업사원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부동산 시장을 파괴하고, 제대로 된 온라인 부동산을 만들고 있는 우리 투자사 부동산다이어트가 이런 마케팅을 하고 있다. 기존 부동산 중개비즈니스와는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서비스, 집 가격에 상관없는 0.3%의 고정 수수료, 그리고 심지어 수수료를 카드로 결제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시장에서 조금씩 소문이 퍼지고 있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이제 3년 차인데, 2년 전에 부동산다이어트를 통해서 전세계약을 한 고객들이 계약이 만료되자 다시 돌아오는 걸 보고 이 회사가 뭔가 잘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작년에 창원에 거주하는 손님이 부동산다이어트를 통해서 서울에 집 계약을 했다. 알고 보니 이 분이 삼성카드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는 분인데, 서울 본사로 발령받아서 이사하게 된 거다. 그리고, 부동산다이어트 사용 경험이 너무 좋아서, 본인이 직접 삼성카드와의 프로모션을 기획하고 내부승인을 받아서, 먼저 우리한테 협업을 제안해왔다. 내용은 간단하지만, 고객이 받는 혜택은 상당히 크다. 삼성카드로 중개수수료를 결제하면, 0.3%의 수수료에서 15%가 추가 할인되고, 2~5개월 무이자할부가 제공된다(지금은 삼성카드 임직원한테만 해당).

간단한 예를 들면, 전세 6억 원 아파트 거래 시 법정 중개수수료는 528만 원이지만, 부동산다이어트를 이용하면 0.3%인 180만 원이다(여기서만 348만 원 절약). 삼성카드로 결제하면 180만 원에서 15% 추가 할인이 돼서 부동산중개료는 153만 원이다. 법정 중개수수료인 528만 원 대비 71%나 저렴하게 집을 계약할 수 있다. 나도 곧 이사를 하는데, 부동산다이어트를 통해서 집 계약을 했다.

텀블벅 300억 돌파

텀블벅 300억 돌파작년 8월에 우리 투자사인 한국을 대표하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이 누적 후원액 200억 원을 돌파했다는 내용에 관해서 썼는데, 최근에 그 후로 6개월 만에 누적 후원금 300억 원을 달성했다. 절대적인 후원금액도 상당히 인상적이지만,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성장 속도이다. 2016년 총 누적 후원금 100억 원 돌파에 이어 200억 원을 돌파하기까지는 1년이 걸렸고, 그 후로 6개월 만에 누적 후원금 300억 원을 달성했다. 계속 이 추세로 가면 올 상반기 안으로 누적 후원금 400억 원 또는 500억 원까지 가능할 거 같다.

“앞으로도 다양한 사람들의 창조적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을 지속적으로 만드는 것이 텀블벅의 목표다”라는 염재승 대표의 말처럼 단순히 매출을 만드는 게 아니라, 창작자를 지원하는 텀블벅이라는 플랫폼을 하나의 거대한 문화/운동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이 팀을 응원한다.

뉴질랜드 테스트베드

올해 상장 예정인 Spotify가 호주에서 Stations라는 새로운 앱을 테스트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판도라와 비슷하게 그냥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서버가 알아서 음악을 스트리밍해주는 ‘lean-back’ 경험을 제공하는 앱이라고 한다. 이렇게 신제품을 준비하는 회사들은 정식 출시 전에 버그를 다 찾고 고쳐야 하며, 동시에 많은 사용자를 서버가 견딜 수 있는지 사전 테스팅을 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페이스북이나 스포티파이같이 직원이 많은 회사도 이걸 내부에서 모두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주로 특정 지역을 선택하고, 거기서 작게 테스트를 한다.

그런데 왜 스포티파이,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미국의 대표적인 서비스는 항상 뉴질랜드나 호주에서 테스트할까? 나도 궁금해서 여기저기 검색하면서 읽어보니,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했다. 일단 미국의 특정 지역에서 테스트를 진행하면, 미국인들은 워낙 소셜미디어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아직 출시되지 않은,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새로운 제품이 사전에 대중에게 유출될 위험이 너무 커진다. 서울이나 동경과 같은 인구밀집도가 높고, 모바일 보급률이 높은 곳에서 테스트가 잘 못 되면, 하루 만에 전국/전 세계로 이 소식이 퍼지기 때문에, 이 또한 좋지 않다.

뉴질랜드의 인구는 470만 명이다. 아주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면 시장의 초기 반응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의 사용자들이 사용하면서도, 너무 많은 사용자로 인해 발생하는 스케일 문제의 위험이 적다. 또한, 뉴질랜드는 다른 나라와는 고립된 지역에 위치한 섬이기 때문에 구전효과가 크지 않다. 즉, 이 지역에서 제품을 출시했는데, 완전히 실패하더라도 그 소문이 상대적으로 널리 퍼지지 않기 때문에, 이후에 제품을 개선한다면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편견 없이 그 개선된 제품을 사용하게 된다. 또한, 뉴질랜드에서 잘 안 되면 그냥 조용히 이 제품을 철수해도 회사의 평판에 큰 악영향이 미치지 않는다. 뉴질랜드 인구특성은 미국, 영국, 호주와 비슷하기 때문에, 규모는 작지만, 제품에 대한 시장의 반응을 어느정도 예측하는 게 가능하다. 물론, 인구의 90% 가 영어를 한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즉, 새로운 제품을 정식 출시 전에 테스트하려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시장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비슷한 문화나 특성을 가진, 하지만, 규모가 훨씬 작은 곳을 골라야 하는데, 영어권 시장의 경우 뉴질랜드가 이런 특성을 잘 만족시킨다. 남미의 경우 칠레를 테스트 시장으로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