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만

sketchware_1M install안드로이드 모바일 앱을 쉽게 만들 수 있는 모바일 앱 스케치웨어가 얼마 전에 백만 다운로드를 달성했다. 실은, 요새 워낙 좋은 앱들이 많아서 1백만 다운로드는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닐 수도 있지만, 이 숫자가 나한테 의미하는 건 조금 특별하다. 프라이머와 스트롱이 같이 투자한 이 회사에 우리가 어떻게 투자하게 되었는지 여기서 잠깐 적어본다.

작년 6월 말, 나는 스케치웨어 김기한 대표의 cold 이메일을 받았다. 우리는 웬만한 콜드이메일은 다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많이 오면 어쩔 수 없이 놓치는 것도 있는데, 다행히도 이 이메일은 내가 봤고, 첨부한 사업계획서도 읽어봤다(간결했다). 나도 이 분야를 잘 모르지만, 괜찮다고 생각해서 일단 화상으로 통화를 하고, 프라이머 파트너십과도 공유했다. 한국에서 나오기 쉽지 않은 순수 소프트웨어 비즈니스, 그리고 시장 자체가 한국보다는 해외가 훨씬 더 크다는 점을 모두 높게 평가했지만, 그만큼 더 어려운 시장이고, 이 팀이 해외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이번에는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메일로 답변을 드렸다.

보통 여기까지 오면, 대부분 창업가는 다른 투자사를 찾아보는데, 며칠 뒤에 스케치웨어로 부터 이메일을 하나 더 받았다. 솔직히 투자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그냥 대충 보고 넘길 수도 있었지만, 나는 사무실에서 큰 모니터로 이메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읽었다. 스케치웨어의 간절함과 절실함이 글로 나한테 그대로 전달이 되었다. 하지만, 비굴한 어조는 전혀 없었다. 왜 지금 회사는 투자가 필요하고, 그나마 여기까지 온 투자사는 프라이머와 스트롱 밖에 없고, 이 비즈니스의 진가를 알아보는 VC를 만나는 게 너무 힘든데, 그동안의 대화가 즐거웠고, 이런 대화를 앞으로 계속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메일을 읽자마자 지금은 쿠팡에 인수된 우리 투자사 Recomio의 창업가 태호한테 스케치웨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좀 알려달라고 했다. 참고로, 내가 소프트웨어 기술을 잘 모르기 때문에, 순수 기술 회사에 대해서는 내가 믿는 사람들의 조언을 항상 구하는데, 태호는 그중 내가 가장 믿는 엔지니어다. 태호는 굉장히 좋은 반응을 보였고, 왜 스케치웨어가 크게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공유해줬다.

나는 이런 내용을 정리해서 프라이머 파트너십에 다시 투자제안을 했고, 결국 프라이머와 스트롱이 공동 투자하기로 하면서 스케치웨어에 작은 초기 투자를 했다. 이후 우리는 한 번 더 추가 투자를 했고, 다행히도 회사는 이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1백 만 다운로드는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더 많은 사용자의 꿈을 실현해 주 수 있는 좋은 제품으로 성장하길 바라며, 5백만 다운로드가 벌써 기대된다.

YULIP 2번째 이야기

Yulip-2구글캠퍼스서울에서 진행하는 ‘엄마를 위한 캠퍼스(Campus for Moms)’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인체에 무해한 립스틱 YULIP을 만드는 원혜성 대표님 이야기를 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다.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올해 6월 텀블벅을 통해서 진행한 첫 번째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목표를 350% 초과 달성해서 1,750만 원으로 마감한 것도 성공이었지만, 실제 제작과 발송이 지연되는 많은 크라우드펀딩 캠페인과는 달리 약속했던 납기를 정확하게 맞춘 것도 아주 잘 했다고 생각한다. 이후 고객들의 피드백을 취합하고 반영하면서 드디어 신제품을 위한 두 번째 크라우드펀딩 캠페인이 며칠 전에 다시 텀블벅을 통해서 돌아왔다. 첫 번째 캠페인과 같이 3가지의 새로운 립스틱이 양산될 예정이며, 이 중 립 올마이티라는 제품은 100% 비건 립스틱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율립은 우리 투자사도 아니고, 나랑은 그 어떠한 비즈니스적인 관계도 없다. 다만, 그동안 나는 원 대표님과 가끔 만나서 사업 이야기를 하면서, 전혀 모르는 화장품 시장에 대해서 나름 공부하면서, 한 창업가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실체가 없던 무형의 아이디어가, 립스틱이라는 유형의 제품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멀리서 보면서, 이런 분들을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가 응원하고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여기저기 유니콘 이야기만 들리고 보이는데, 이 유니콘들의 시작은 모두 소박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간과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거 같다…아모레퍼시픽도 1945년 개성에서 모발용 동백기름을 가내수공업으로 판매하면서 만들어진 회사라는 걸 나는 항상 스스로 상기시킨다.

이 프로젝트에 관심 있으면 여기서 펀딩 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텀블벅>

부분 유료화

좋은 제품을 만드는 건 정말 힘들다. 버티컬과 산업군을 막론하고, 사용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제품의 수는 너무 많다. 찾고 있는 제품군을 앱스토어에서 검색해보면, 비슷한 제품이 적으면 수십 개에서 수 백개가 – 카메라와 같은 – 발견된다. 이렇게 많은 유사 제품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좋은 제품을 개발하는 건 모든 스타트업의 지상과제이자 로망이다. 대부분 실패하지만, 운 좋은 팀은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반응을 일으키는 제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유도하는 제품의 기능이나 디자인 요소를 잘 파악하고, 그 요소를 더욱더 깊게 개발하고 개선하면 제품은 향상된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 이제 돈을 벌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데, 제품을 만드는 것 만큼 힘든 게 비즈니스 모델이다. B2C와 B2B를 막론하고, 많은 회사가 freemium 모델로(free + premium. 부분유료화) 시작한다. 기본적인 기능은 모두 무료로 제공하고, 그 이상의 고급 기능에 대해서는 유료로 제공하는데, 내 주변 많은 인터넷/모바일 제품들이 프리미엄 방식으로 과금을 하고 있다. 지메일, 드롭박스, 에버노트와 같은 제품은 기본 용량을 무료로 제공하지만, 그 이상의 저장공간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월 또는 년 단위로 사용료를 지급해야 한다. 게임의 경우, 기본 아이템은 무료로 사용하지만, 고급 아이템은 결제를 해야 한다. 또는, 시간을 투자하면 획득할 수 있지만, 돈을 내면 즉시 획득할 수 있다. 어떤 B2B 제품은 소규모 그룹은 무료로 사용하지만, 특정 인원수가 초과하면 과금하는 프리미엄 정책을 도입한다. 방법은 천차만별이지만, 일부 기능은 무료로 제공하고 일부 기능은 유료로 제공하는 기본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떤 기능을 무료로 제공하고, 어떤 걸 유료로 제공해야지만 사용자 경험을 해치지 않으면서 회사도 돈을 벌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게 좋은 과금 정책인데, 시작하는 단계에서 이걸 명확하게 결정하는 게 힘들다. 최근에 내가 B2B SaaS 서비스를 만드는 몇 팀을 만났다. 모두 시장에서 우리 제품이 필요하다는 초기 반응은 확인했는데, 어떻게 과금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정답은 없지만, 복잡한 문제일수록 간단하게 생각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제공하는 게 기존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이며, 이 서비스가 필요한 고객군이 명확하게 증명되었다면, 과금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 필요한 제품이고, 우리밖에 없다면, 시장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독점적 위치를 장악해서 우리가 부르는게 값이 될 수가 있다. 문제는, 우리만 제공하는 제품이 이제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미 경쟁사가 제공하는 기능과 비슷하다면, 이건 그냥 무료로 제공하는 게 좋다.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있는데, 굳이 비슷한 걸 돈 내고 사용할 사람이 별로 없기도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제품이고 인지도가 있다면, 우리도 무료로 제공하면 초기 고객을 조금 더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비슷한 기능이지만, 우리가 제공하는 기능이 더 고급이거나, 완전히 다른 방향의 사용 용도가 있다면 이건 유료로 제공해볼 만하다.

물론, 제품과 비슷하게 이런 과금 정책 또한 다양한 테스트가 필요하긴 하지만, 고객한테 직접적인 경제적 타격이 가는 부분이라서 제품 테스트보다는 조금 더 신중해야 한다. 그냥 남들이 만드는 제품과 비슷하고, 기능도 거의 비슷하다면, 그리고 그 다른 제품과 기능이 무료면, 우리 제품을 유료로 전환하는 건 상당히 힘들다.

땅과 건물에 투자하기

12월 4일 자로 전체 가상화폐의 시가총액은 370조 원(340B USD)을 넘겼다. 370조 원 시가총액을 우리가 알만한 회사와 비교해본다면, 페이스북의 시총이 553조 원이고, 삼성전자의 시총이 394조 원이니, 엄청난 금액이다. 특히, 올해 초 가상화폐의 시총이 20조 원 정도였으니, 경이롭고 비정상적인 성장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얼마전에 내가 다음과 같은 포스팅을 페이스북에 했다.

crypto market cap fb posting

12월 14일 자 시가총액이 가장 높은 Top 10 가상화폐 순위이며, 이들의 시총은 476조 원(439B USD)이였다. 비트코인과 이더의 시가총액이 다른 화폐보다는 압도적으로 높지만, 재미있는 건 화폐의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그 시총이 높은 건 아니다. 시총이 높은 이유는 이들의 유용성이 높기 때문인데, 단순히 사고파는 자산이 아니라 이 화폐의 기반 기술 위에 다른 분산 애플리케이션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유용성이 높고, 그 높은 유용성이 높은 가격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흔히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HTTP 나 SMTP와 같은 프로토콜에 비유하는데, HTTP와 SMTP와는 달리 비트코인/이더리움은 프로토콜 단(프로토콜=비트코인과 이더)에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 프로토콜 위에 구현된 애플리케이션에도 투자할 수 있다는 건 꽤 재미있는 특성이다. HTTP에는 우리가 투자하지 못하지만, 그 위에 만들어진 쿠팡이나 토스 같은 애플리케이션에는 투자할 수 있다. 이게 지금까지의 투자모델이었다. 비트코인의 경우, 비트코인이라는 프로토콜에도 투자할 수 있고(비트코인을 구매), 그 위에 만들어진 코빗이나 모인같은 애플리케이션에도 투자할 수 있다. 이 개념을 재해석해보면, 비트코인이라는 프로토콜에 투자하는 건 땅에 투자하는 거랑 비슷하고, 그 위에 만들어진 애플리케이션에 투자하는 건 땅 위에 올라가는 집, 상가 또는 건물에 투자하는 거랑 비슷하다. 땅값이 올라가면 부동산의 가치도 올라가고, 부동산의 가치가 올라가면, 땅값도 올라가는 것이다.

실은, 이런 이유로 나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가장 강력한 가상화폐라고 생각한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가상화폐가 생겨나고 있지만, 대부분 비트코인의 프로토콜과 블록체인을 변형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이들의 가치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비트코인의 가치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더리움도 마찬가지지만, 비탈린 부테릭과 그의 친구들은 계속 이를 탈피한 기술을 개발하는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넘쳐나는 ICO 중, 어떤 곳에 참여를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면, 내 첫 번째 조언은 참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굳이 참여해야 한다면, 그 비즈니스 자체가 블록체인을 얼마큼 활용하고 있는지 잘 따져 본 후에 투자하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비즈니스의 코어가 블록체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면, 비즈니스와 코인의 가치가 일치하기 때문에 조금 더 합리적으로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햄버거를 판매하는 비즈니스가 버거코인이라는 토큰을 발행하는 ICO를 진행한다면, 비즈니스와 토큰의 상관관계가 떨어지기 때문에, 이런 ICO는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낮다.

에센스(본질)

내 나이 또래 중 ‘배가본드’라는 일본 만화를 아시는 분이 많을 거다. 슬램덩크로 유명한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또 다른 명작인데, 1582년~1645년 실존했던 일본의 전설적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의 일대기가 펼쳐지는 만화이다. 무사시는 29세가 되기 전 60번의 목숨을 건 싸움에서 승리한 이후, 방랑 생활을 하다가 말년에 ‘오륜서’라는 병법서를 썼다. 1643년도에 쓴 책이지만, 전 세계 사업가들이 즐겨 읽는 책이라고 알고 있는데,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무라이와 목숨을 걸고 경쟁하는 비즈니스맨 사이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공통점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인 거 같다.

나도 이 오륜서 관련 다른 책을 몇 권 읽어봤는데, 무사시가 강조하는 건 본질이다. 기교나 잔꾀를 부리면 한 두 번은 싸움에서 이길 수 있지만, 결국엔 남의 검에 베이기 때문에, 무사는 항상 본질을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이 주가 되는 책이다. “검술의 진정한 도는 적과 싸워 이기는 것이요, 이것을 빼면 아무것도 있을 수 없다”라는 무사시의 명언은 실은 370년이 지난 오늘의 비즈니스 세계와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명쾌한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투자도 나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나한테 많은 분이 물어보는 게 요새 실리콘밸리의 투자 트렌드 또는 한국과 실리콘밸리 투자의 차이점인데,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고민을 많이 한다. 왜냐하면, 이분들이 생각하는 거와 같이 실리콘밸리와 한국의 투자 환경이나 트렌드가 그렇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투자는 솔직히 단순하다. 한국이든 실리콘밸리든 그냥 좋은 회사에 투자하는 게 성공적인 투자이기 때문에 무슨 투자 트렌드에 관해서 이야기하라고 하면 딱히 할 말은 없다. 물론, 그때마다 유행인 분야나 산업은 있지만, 결국 투자의 본질은 그냥 좋은 회사를 찾아서 돈을 투입하는 거다.

얼마 전에 이 기사를 읽었다. 내년에 1조 원 규모의 돈이 벤처시장에 풀리기 때문에, 벤처투자의 판이 커지고, VC 판도와 트렌드 자체가 바뀔 것이라는 내용이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판이 아무리 커져도, 투자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칼싸움의 본질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적이 나를 베기 전에 적을 베어 죽이는 것이다. 투자의 본질도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남들보다 빨리) 좋은 회사를 찾아서 투자하는 것이다.

좋은 회사는 시장에 돈이 풀리든 안 풀리든 좋은 투자를 받을 것이고, 후진 회사는 시장에 아무리 많은 돈이 흘러도 투자받지 못 할 것이다. 후진 제품을 만들면서 내년에 돈이 넘쳐흐르기 때문에 혹시나 투자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창업가들이 생각보다 많은데, 그런 꿈은 빨리 깨는 게 좋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VC들이 그렇게 멍청하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