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성에 자신 없으면 시작하지도 말아라

consistencyUnion Square Ventures의 간판 Fred Wilson은 지난 수년 동안 1년 365일 거의 매일 블로깅을 하고 있다. 실은 주말에는 굉장히 간단하거나, 동영상을 공유하는 수준의 글을 올리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일주일에 5번이지만 한 번이라도 글을 써 본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 것이다. 나는 전에는 그냥 시간 날 때만 블로깅을 했다. 한 달 내내 바쁘면 한 달 동안 글을 하나도 쓰지 않다가 한가해지면 한 달 동안의 침묵을 깨고 일주일 동안 글을 5개씩 쓰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까 글 쓰는 습관도 불규칙해졌고, 내 블로그를 읽는 독자들과의 관계도 매우 불규칙해졌다(나는 작가가 아니라서 독자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오늘의 주제 때문에 이런 표현을 쓴다). 그래서 한 2년 전부터는 3일에 한 번씩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하니까 독자들과의 관계도 꾸준해졌는데, 이보다 더 값진 건 바로 정기적으로 블로깅 하는 습관이 생기면서 생활과 태도에 규율이 생겼다는 점이다. 가끔은 글을 매일 쓰고 싶은 충동이 생기지만, 이걸 1년 내내 지속할 수 없다는 걸 내가 잘 알기 때문에 아무리 시간이 많고 글을 많이 쓰고 싶어도 ‘3일 규칙’을 지킨다. 한가해도 무조건 3일에 한 번, 바빠도 무조건 3일에 한 번이다.

마케팅하는 스타트업들한테도 이 말을 해주고 싶다. 마케팅이라는 거 한 번에 되는 게 아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일관성을 갖고 꾸준히 해야 한다. 페이스북 마케팅 예산이 500만 원 있다면, 이 500만 원을 하루에 쓰는 거 보다는 1년 365일 매일 조금씩 일관되게 집행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렇게 하다 보면 우리 제품을 꾸준히 특정 고객들에게 알릴 수 있고, 그러면서 시장에 대한 감을 꾸준히 잡을 수 있다. 모든 걸 한방에 진행하려면 순간적으로 모든 자원을 무리하게 활용해야 하는데 이는 회사에 전반적인 자원의 불균형을 가져온다.

페이스북 마케팅 이야기를 계속해보자. 요새 웬만한 스타트업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다 운영한다. 회사에 대한 페이지 일 수도 있고, 제품에 대한 페이지 일 수도 있다. 그런데 페이스북 페이지의 70% 이상이 좀비 페이지이다. 개설하고 한 2~3개월 동안은 열심히 이것저것 올리고 홍보를 하지만 그 이후에는 모든 활동이 뜸해지는데, 별로 효과가 없어서 더는 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3개월 만에 되는 일은 없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제품을 마케팅할 생각이라면, 최소 2년을 봐야 한다. 한 번에 100개의 포스팅을 올리지 말고, 2년 동안 매일 한 개의 포스팅을 꾸준히 올려보면 성과가 있거나, 아니면 뭔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일관성을 갖고 운영할 자신이 없으면 아예 만들지 않는 게 정답이다. 죽은 페이지를 가지고 있는 거 보다는 아예 없는 게 더 좋기 때문이다.
회사 블로그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다 하므로, 그리고 공짜로 만들 수 있으므로, 사업을 시작하면 회사 블로그를 다 만들지만, 현실은 모두 좀비 블로그로 변한다. 한 달에 한 번 글을 포스팅해도 좋다. 대신 이걸 꾸준히 해야 한다. 한 달에 한 번 해서 1년에 12개의 글을 꾸준히 포스팅하는 게, 한 달에 12개의 글을 포스팅하고, 남은 11개월 동안 아무것도 안 하는 거 보다 훨씬 더 좋다.

스타트업바이블 2: 제33계명 – 매 순간 전력질주를 하면 장거리를 못 간다‘에서 아문센의 ’20마일 법칙’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모든 일에는 이런 일관성 있는 꾸준함이 중요한 것 같다. 한 번 아주 거하게 해서 되는 일은 이 세상에 거의 없다. 꾸준히, 일관성 있게 모든 일에 접근하는 습관을 기르는 게 바람직하다. 일도 마찬가지이다. 24시간 연속 일하고 회복하느라 일주일을 쉬느니 하루에 3시간씩 꾸준히 8일을 연속 일하는 게 결과가 좋다.

일관성 있게 일을 진행할 자신이 없다면,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게 좋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fqEnUqfOeWI>

[生生MBA리포트] M7전격 해부!

MBA의 길

기고자 소개) 박은정 씨는 와튼스쿨 (Wharton School) 졸업한 후 현재 Top MBA 전문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MBA 지원자들에게 도움을 준 경험을 기반으로 “미국 Top MBA 가는길(매일경제)“를 공저하였으며, 현재 자신만의 노하우와 지식을 바탕으로 최신 MBA 트렌드와 어느 학원에서도 해 주지 않는 진짜 MBA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연세대학교 상경계열 졸업 후 삼일회계법인에서 일을 했으며 현재 미국 동부 피츠버그에서 가족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습니다. 박은정씨의 글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mbaparkssam@gmail.com으로 연락주세요.
*박은정씨가 운영하는 MBA의 길에 가시면 MBA 관련 더 많은 정보가 있습니다.

벌써 12월 입니다. 한 해 동안 세워왔던 계획도 돌아보고, 삶의 방향들을 재정립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MBA를 삶의 단계 중 하나로 고려하고 계신 분들, 혹은 지원을 이미 결정하신 분들을 위해서 누구나 궁금해 하는 MBA M7에 대한 내용으로 준비했습니다(MBA 지원에 도움되는 정보 part 2는 2016년에 게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MBA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랭킹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것만큼 쓸데없고 비생산적인 논쟁도 없습니다. 어차피 ‘M7이 아니면 못 가는 회사’에 가기 위해 MBA에 가는 지원자는 극소수이기 때문입니다. 10위권대의 학교에서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좋은 회사에 좋은 조건으로 채용되고, 적극적으로 학교 및 구직생활을 하지 않는 이들은 M7이 아니라 top 3를 나와도 어려운게 MBA 취업시장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미국에서조차 슈퍼엘리트 비즈니스 스쿨로서 인정받는 M7은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대체 어떤 곳이길래? 얼마 전에 Poets & Quants에 the M7: the Super Elite Business Schools by the numbers 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대부분 막연하게만 알고 있는 M7에 대해 기사에 나온 통계를 인용하여 이 글을 씁니다. 정말 M7 졸업생들은 얼마나 대단하고 얼마나 잘 나가는 걸까요?

흔히 M7은 그냥 관념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하버드, 스탠포드, 와튼, 켈로그, 부스, 컬럼비아 그리고 MIT Sloan을 포함하는 M(Magnificent)7은 오래전에 실제로 형성된 탑 비즈니스 스쿨들의 연맹입니다. 오래전, 이 7개 학교의 학장들은 비공식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일년에 두번씩 만나서 정보를 교환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시간이 지났지만 이 그룹은 여전히 이 7개 학교로 제한되어 왔고요. 주기적으로 돌아가며 모임을 진행하는데, 단지 학장들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부학장들도, 애드컴 디렉터들도, 커리어 매니지먼트 디렉터들도, 심지어 PR 담당자들까지 자기들끼리 만나서 어드미션 및 학교 운영에 대해 상세히 논의합니다. 별의별 이야기가 다 돈다고 하네요. M7에 Tuck, Haas, Duke를 포함해서 Terrific 10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들리고 있긴 하지만, 아직 M7은 M7일 뿐입니다.

일단 입학생들에 대해서 살펴볼까요?
M72014년 입학생들을 기준으로 가장 학생수가 많은 것은 하버드로 936명, 가장 적은 것은 MIT로 406명입니다. 합격률은 스탠포드가 한자릿수로 가장 낮고(7%), 시카고가 24%로 가장 높습니다. (아시겠지만 “오, 넷 중에 하나는 붙어? 별 거 아니네?”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합격률보다 더 중요한 yield(어드미션을 받은 지원자 중 다른 곳으로 이탈하지 않고 실제로 등록한 비율)는 HBS가 제일 높은데도 89%, 스탠포드는 그 다음인데 80%니, 실제 이탈자가 굉장히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Wharton은 69%, 컬럼비아는 70% 입니다. 켈로그 정도만 되도 벌써 50% 아래로 떨어집니다. 그만큼 우수한 학생은 서로 데려가려고 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M7이 우수한 학생을 attract하는 최대의 무기는 브랜드와 돈(장학금)입니다. 하버드도 붙고 스탠포드도 붙었는데 어느 한 쪽이 월등히 큰 장학금을 주겠다고 하면 그쪽으로 마음이 갈 수 있는 거죠.

최근 무섭게 올라가는 트렌드를 보이는 GMAT의 경우 스탠포드가 732점(외국인 평균은 더 높습니다), 컬럼비아가 716점으로 개중 가장 낮습니다. 하지만 이건 2014년 입학생 기준이고 올해 발표된 2015년에는 더 오른 학교가 많습니다. 특히 평균 GMAT이 낮은 편이었던 켈로그마저 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성의 비율은 스탠포드 하버드 와튼, top 3는 40% 이상이며 외국인의 비율은 스탠포드는 44%이지만 하버드와 와튼은 오히려 35%, 31%로 낮은 편입니다. 평균 나이는 26-28세로 비슷한 분포를 보였지만 스탠포드가 제일 어리고, 하버드와 와튼이 그 다음이며 나머지는 모두 28세입니다. 몇년 전부터 top3가 어리고 똑똑한 학생들을 뽑는데 주력하더니 수치로 드러나는군요.

두번째로, MBA 과정 자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M7-1우선 MBA에 드는 비용입니다. 스탠포드가 20만불을 넘겼습니다. 개중에는 켈로그가 유일하게 18만 이하를 찍었습니다. 이것은 2년간의 학비와 기타 생활비를 모두 포함한 수치이고 학비는 두번째 줄에 별도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2015-2016에 와튼이 올린 자료에 의하면 학비가 7만을 넘겼기 때문에 지금은 이보다 더 비용이 높아졌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제가 와튼에 다니던 2007-2010년(중간에 1년 휴학) 사이에는 11만 5천불로 2년간 학교에 낸 돈이 해결되었는데 그새 정말 많이 올랐네요. 마지막 줄에는 학생대출 부담 가정치도 적어두었지만 어차피 외국인인 우리는 미국인과 대출 규모나 조건이 다르므로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M7-2위의 표는 장학금을 보여줍니다. 다만 이 부분도 외국인과 내국인의 차이가 있어서 일반화 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이 표를 놓고 보면 top 3는 인당 평균3만불 이상, 나머지 4학교도 인당 평균 4만불 이상의 장학금이 돌아간 것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 맨 아래를 보면 다른 학교에 뺏기기 싫은 학생에게는 크게 몰아주고 하나도 못 받는 학생이 40-67%에 달합니다. 제가 조사를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제 주변의 케이스를 종합해 보면 10만불 이상의 고액 장학금을 몰아서 받는 사람들이 소수 있고, 4-6만불 장학금을 offer하는 경우가 또 종종 있고, 한푼도 못 받는 사람이 절반 혹은 그 이상입니다. 미국인들의 경우 1-2만불의 비교적 소액 장학금을 받는 사람도 꽤 되긴 하고요. 무엇보다 똑똑하고 매력있다고 판단되는 지원자, 그래서 필경 다른 학교에서도 눈독을 들일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되는 지원자는 장학금을 크게 걸어서라도 데려오려고 합니다. 아주 가끔, 지원자의 수완이 좋다면 여러 어드미션을 갖고 네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분들 중에서도 10만불 받으신 분도 계십니다.

MBA 과정 자체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M7-3흔히 하버드 쓰시는 분들이 케이스 스터디를 많이 해서 마음에 든다고 하시는데요, 이 표를 보면 나와 있습니다. 하버드는 기본적으로 비즈니스 스쿨의 기조가 ‘이론적 원칙은 없다, 실제만이 있을 뿐이다’입니다. 그래서 케이스가 80% 이고, 강의(lecture)는 없습니다. 반면 MIT는 경영학에도 과학처럼 법칙이 있다고 믿습니다. 하버드를 제외한 다른 모든 학교들은 케이스, 강의, 그리고 직접 참여(experiential learning+team projects)가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춘 모습을 보입니다(합계가 100%가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 잘 모르겠네요). Experiential learning은 시카고나 컬럼비아, Kellogg에는 없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정확한 정보는 아닌 듯 합니다. Core 및 elective class의 규모는 강의마다 다르고 편차가 크므로 일반화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얼마나 잘 나가느냐? 졸업생 연봉을 찾아보겠습니다.
M7-4제일 첫줄에 있는 20년 연봉 합계는 총 30억이 넘거나 비슷한데, 보통 M7의 MBA 졸업생이 10만불 이상 받는 미국에서는 향후 승진을 고려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2014년의 경우 평균 샐러리는 대략 12만에서 12만 5천불 사이에 분포되어 있고, 사이닝 보너스는 대략 2만 5천불로 통일입니다. 기타 다른 compensation은 대략 3만불 정도 되는 듯한데, 아마 비행기표(본국으로 돌아오는 경우), 이사비용, 정착비용 등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MIT는 이 부분을 집계하지 않아서 total compensation이 낮은 것으로 나왔군요.

졸업 시점의 취업률(offer를 받은 비중이 꼭 취업률은 아니지만 간편 비교를 위해 그렇게 표현하자면) 대략 80%에서 90% 사이입니다. 졸업 3개월 후에는 이 수치가 93%에서 98%까지 높아지네요. MBA에서 발표하는 그 어떤 통계 수치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수치입니다.

마지막으로 졸업생들이 가장 많이 진출하는 분야입니다.
M7-5켈로그와 MIT는 컨설팅에 제일 많이 갔고, 이 두 학교의 경우 컨설팅에 비해 금융권의 인기가 현저히 적었습니다. 나머지 학교들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산업은 금융권입니다. 와튼이나 컬럼비아는 예상대로지만, 스탠포드도 그렇다는 점이 놀랍네요. 스탠포드에서 금융권은 29%가 진출한 반면, 테크는 24%로 이에 비해 적었습니다. 컬럼비아의 경우 컨설팅과 금융권이 34%와 35%로 거의 비슷했습니다. 기타 산업군에서는 스탠포드와 MIT가 tech 분야에 1/4에 가까운 졸업생을 안착시켰고 consumer retail 분야에서 Kellogg가 14%, MIT 가 11%로 두자리 수를 기록했습니다. 그 외에는 스탠포드에서 17%가 창업을 선택했는데, 나머지 학교들은 창업 비중이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동문의 숫자입니다.
M7-6동문 수는 하버드가 8만명으로 월등히 많고 와튼, 시카고, 콜롬비아 켈로그가 4만명대, MIT와 스탠포드는 만명대에 불과하네요. 와튼의 경우 9만명이라고 자랑하는데, 학부생과 박사까지 모두 포함한 숫자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Fortune 500 회사의 CEO는 하버드가 40명을 배출했고, 와튼이 13명, 스탠포드는 10명을 배출한 바 있습니다. 다른 것보다 동문 부문에서는 MIT의 활약이 다른 학교에 비해 현저히 낮거나, 집계가 잘못된 것으로 보입니다.

각 학교의 웹사이트를 찾아보면 알 수 있는 자료이긴 하지만 M7을 한눈에 모아놓고 비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한 정보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느 학교에 지원할지 결정하거나, 이미 지원과정에 계신 분이라면 에세이 작성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스타트업바이블 독자 여러분, 한달도 채 남지 않은 2015년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박쌤은 2016년에 새로운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이 글에 등장한 통계수치들은 Poets & Quants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원문 출처)

진주 찾기

지난 주에 동네 헬스클럽에서 밖을 보면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에 붙어 있는 문화체육센터라서 창밖에는 학교 야외 운동장이 보이고 마침 학생들이 단체로 잡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추운데 꼬마들이 즐겁게 노는게 보기 좋아서 운동하면서 계속 보고 있었는데, 운동장 한 쪽 끝에는 여자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그 외의 공간에는 남자들이 흩어져 있었다.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부르자 남자들은 도망다니고, 여자들은 이들을 잡기 위해서 열심히 뛰어다녔다. 나도 어릴때 이런 게임을 한게 기억이 났다. 체형들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게 있다면, 가까이 있는 아무 남자가 아니라 평소에 흠모하던 남자를 여자들이 잡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멀리서봐도 키가 크고, 잘 생기고, 옷을 잘 입은 남자 아이를 잡으려고 10명 이상의 여자아이들이 운동장을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결국엔 그 아이는 잡혔고, 그 다음으로 잘생긴 남자아이가 잡히고, 뭐 이런 순으로 남자들은 다 잡혀갔다. 결국 모든 남자들은 잡혀서 운동장 밖으로 나갔고 한 명의 키도 작고, 외모도 보통인 아이가 남았다. 그런데 이 친구 상당히 빠르고 잽쌌다. 여자 15명 이상이 작은 운동장 안에서 이 친구를 마지막으로 잡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뛰었지만, 미꾸라지처럼 여기저기 잘 빠져다니면서 거의 5분 이상을 잡히지 않고 도망다니다가 결국엔 잡혀서 게임은 끝났다. 화려하지 않은 외모때문에 선택? 받지는 못 했지만, 이 친구가 그 중 가장 뛰어난 운동선수이자 날쌘돌이였던거다.

내가 하는 업무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나는 창업자들의 번드르르한 외모와 화술만 보고 투자하고 있는건 아닐까? 창업가들을 아무리 많이 만나도 이 사람에 대해서 모든걸 알 수 없기 때문에 첫인상, 외모, 화술, 어쩔때는 영어실력 등을 보고 투자 결정을 – 특히 우리같이 초기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겉과 속이 동일한 사람들도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렇지 않은 경우를 나는 더 많이 봤다. 내 주위에는 말은 좀 어눌하고, 투자자들이 원하는 ‘정답’을 제공하지 않고, 옷도 잘 못 입지만 비즈니스는 정말 끝장나게 잘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창업 초기에는 그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 했고 투자도 못 받았다고 한다. “별로 스마트해보이지 않는다”가 그 이유였다고 한다.

이 업무를 하면 할 수록, 그리고 투자한 회사 중에 승자와 패자들이 명확히 구분되는 순간을 더욱 더 많이 경험할수록, 옥석을 가리고 흙에 파묻힌 진주를 찾는게 얼마나 어렵고 고도의 통찰력과 운이 필요한지 몸소 느끼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 프라이머와 긴밀히 협업하면서 super early 회사들을 엄청 많이 만나고 있는데, 경험없고 다듬어지지 않은 – 좋게 말하면 ‘닳고 닳지 않은’ – 젊은 창업가들 중 어떤 분들이 승자인지를 잘 판단하려면 더욱 더 노력하고 공부해야하는걸 많이 느끼고 있다.

솔직히 너무 많은 초창기 회사들을 만나다보면 피곤하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그냥 보이는거를 위주로 회사들을 판단하는 경향이 가끔 생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예에서와 같이 겉만 보다가 진주를 놓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리고 창업가들의 외모와 언변을 관통해서 볼 수 있는 통찰력을 키워야 한다.

주인의식, 책임감, 그리고 기업문화

며칠 전에 유명한 대만 만두집 분점에서 밥을 먹었다. 본사 직영인지 프랜차이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대만 1호점에서 그렇게 맛있게 먹고, 한국 1호점(아마도 명동)에서도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맛 보다는 수준이 떨어졌다. 그리고 먹다보니 종이 깔개의 큰 오타가 눈에 들어왔다. 영업시간을 표시하는데 OPEN이 아니라 OPNE 라고 적혀 있었다. 솔직히 그냥 동네 분식집이었으면 넘어갔을텐데, 이렇게 전세계인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글로벌 외식업체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치명적인 실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계산하면서 매니저를 찾았는데, 마침 안 계시다고 해서 카운터 직원한테 조심스럽게 말을 해줬다. “이 식당에 오는 손님들은 역사와 전통있는 대만식 만두를 먹으러 오는 분들인데, 가게의 역사나 브랜드에 어울리지 않는 치명적인 오타(=OPNE) 같습니다. 외국 손님들도 여기 많이 오는거 같은데 좀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

솔직히 나는 이 직원이 내 말을 굉장히 고맙게 받아들여서 바로 조치를 취할 줄 알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굉장한 무관심과 냉담, 그리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라고 말하는듯한 무표정이었다. 그래고 영혼없는 한마디, “네, 죄송합니다~” 하면서 영수증을 줬다. 이 분이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알바생인지, 아니면 회사에 관심이 없는 정규직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참으로 안타까웠다. 주위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원래 그렇고, 본사도 아니고 식당에서 일하는 애들한테 뭘 기대하냐고 하지만, 현재 이 시점에 본인이 몸담고 있는 조직이자 회사인데 아무리 일이 재미없고 회사가 싫어도 이런 자세는 나로써는 좀 이해하기가 힘들다. 어쩌면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와 내가 만나는 수십개, 수백개의 회사들은 이렇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나는 스타트업들은 이 식당을 운영하는 기업처럼 돈도 없고, 직원들도 없고, 복지나 혜택도 좋지 않다. 아니, 대부분의 회사들은 복지나 혜택같은건 아예 없고, 월급도 제대로 못 준다. 하지만,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은 위의 종업원과는 완전히 다르다. 엄청난 책임감과 주인의식으로 무장되어 있고, 어떤 이들은 회사 지분을 전혀 안 가지고 있어서 주인은 아니지만, 마치 자기 회사처럼 일을 한다.

그렇다고 이게 반드시 개인의 문제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을거 같다. 책임감이나 주인의식이 없는 직원들이 많은 회사들을 보면 오너와 경영진들도 비슷하다. 기업문화는 밑에서 위로 퍼질수도 있지만,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게 더 쉽기 때문이다. 전에 내가 Red Bull 북미지사를 방문한 후에 깊은 감명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 회사의 사장이나 경영진들의 기업사랑은 세계 1등이다. 위에서 말한 만두집의 종업원과 이야기하는 동안 나를 호통치던 Red Bull의 리셉셔니스트가 계속 생각났다. 전세계에 1만명 이상의 직원이 있고, 전세계인들이 즐겨 먹는 제품을 만드는 이런 글로벌 기업도 좋은 기업문화를 유지할 수 있다면 분명히 다른 회사들도 이렇게 할 수 있고, 조직 피라미드 말단에 있는 직원이나 알바생들도 회사에 대한 애착과 책임감을 갖게 할 수 있다.

학생들이나 직장 초년생들한테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누구나 다 창업을 할 수 있는것도 아니고, 창업을 해야만 하는건 아니다. 물론, 나는 창업을 권장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대기업에 취직해서 더 잘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남의 회사에 취직을 해도 이 회사가 마치 자기 회사라고 생각하고 일하다보면 10년 – 15년 후에는 사장이 될 수 있다고 난 생각한다. 주위를 보면 정말로 이렇게 된 분들이 있고 누구나 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일이나 인생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행기 엔진은 괜찮은가?

Aircraft,-Runway-1-626이 분야에서 일하면 ‘활주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우리같이 초기 회사에 그리 크지 않은 금액을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걱정하는것 중 하나가 우리가 투자한 이후 그 다음의 의미있는 펀딩을 받기 전에 회사가 망하는 거다. 이런 불행한 사태는 크게 두가지 케이스로 분류할 수 있을거 같다. 첫번째는 회사가 비즈니스 감을 잡지 못 하고 헤매다가 초기 투자금을 다 소진하고, 발전이나 결과를 전혀 만들지 못하고 사업을 접는 경우다. 투자사가 이렇게 망하면 안타깝지만 특별히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비즈니스를 못해서 망한 매우 흔한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조금 안타까운 케이스인데, 비즈니스 방향은 잘 잡았고 숫자도 어느정도 나오지만, 그 다음 라운드에서 의미있는 투자를 받을 정도의 성장은 못하고, 이로 인해서 원하는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만약에 이 글을 읽는 대표이사님이 두번째 상황에 놓여 있다면 다음 투자를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성과를 낼 때까지 활주로를 연장시켜야 한다. 작은 브릿지펀딩을 받거나, 대출을 받거나, 주위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활주로를 최대한 확보 해야한다. 물론 쉽지 않다. 곧 돈이 떨어져서 추락하는 스타트업에 자금을 투입할 투자자를 단기간안에 찾는다는건 어렵기 때문이다. 해본 사람은 알텐데 생각만 해도 피가 바짝 바짝 마른다.

나도 이런 회사들을 많이 만난다. 초기 투자금을 1-2억원 정도 받고 시작은 했는데, 예상보다 더 많은 돈과 시간을 사용했고, 아직 갈 길은 먼데 자금이 바닥나서 대표이사들이 미친듯이 돈을 구하러 다니는 경우를 많이 봤다. 비즈니스는 다 다르지만, 이들의 스토리는 비슷하다. 정말 잘 할 수 있고, 한 6개월만 더 버티면 매출이나 유저 수를 급격하게 증가시켜서 제대로 된 Series A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들이 필요한 건 5명의 팀원들이 딱 6개월 정도 더 버틸 수 있는 활주로 자금이다.

마음같아서는 도와주고 싶다. 얼마나 절박한지 잘 알기 때문에.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대표이사가 아주 냉정하게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하는건 정말로 활주로가 너무 짦은건지, 아니면 활주로와는 상관없이 비행기 자체가 날지 못하는건지 이다. 엔진이 튼튼하고 비행기는 견고한데 이륙하기 위해서는 활주로가 조금 더 길어야 한다면, 이런 스토리를 팔 수는 있을 것이다(물론, 이 스토리를 믿어주는 투자자를 잘 찾아야 한다). 하지만, 내가 몰고 있는 비행기가 엔진도 형편없고, 기체결함 투성이인 고철덩어리라면(=팀도 경쟁력이 없고, 제품이 후졌다면) 아무리 활주로가 길어도 이륙하지 못하니 냉정하게 분석했을때 내가 처한 상황이 이렇다면, 극단적으로 팀을 교체하거나 제품을 개선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 http://www.ialtenergy.com/ozone-layer.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