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문제 해결하기

최근에 만난 스타트업들한테 가장 많이 사용했던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문제”였던 거 같다. 세상에는 갈수록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스타트업들 또한 더욱더 많이 생기고 있다. 이로 인해 전반적으로는 아주 긍정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부작용도 보이는 거 같다. 아니, 부작용이라고 할 수는 없고 “억지 비즈니스”라고 하는 게 맞을 거 같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거 같다. 그리고 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억지로 창업을 하는 경우도 보이는 거 같다. 창업팀의 프라이버시를 위해서 내가 만난 회사들의 특정 아이템이나 이름을 거론하고 싶지는 않지만 얼마 전에 미디어에서 본 제품 이야기는 하고 싶다. 참고로,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이 회사 상황이 현재 어떤지 전혀 모르고 시장에서 엄청나게 좋은 반응을 일으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스마트 물병을 만드는 회사였다. 개인의 신체 정보를 (체중, 나이 등) 입력하고, 물을 마시는 패턴 등을 물병과 앱이 기계학습을 한 후에 몸에 물이 부족하면 물을 마시라고 push 알람을 해주는 물병이다. 요새 유행하고 있는 IoT, 빅데이터, 하드웨어 등 모든 키워드가 적용될 수 있는 비즈니스이다. 그런데 내 몸에 물이 부족하다는 걸 굳이 기계가 나한테 말을 해줘야지 알 수 있을까? 태어난 지 1살도 안 된 갓난아기도 목마르면 물 달라고 운다. 말을 못하는 우리 집 개 마일로도 목마르면 직접 물을 마신다.

이 회사가 주장하는 건 전 세계 인구 대부분이 물을 충분히 안 마셔서 탈수 상태로 살고 있다고 한다. So what? 나도 물을 충분히 안 마시고 살지만, 사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몸에서 목이 마른다는 신호가 오면 그냥 물을 마시면 된다. 굳이 이걸 위해서 물병을 구매하고, 새로운 앱을 설치하고, 회원가입을 하고, 정보를 입력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좋은 하드웨어/소프트웨어/머신러닝 등의 고급 기술들이 적용된 비즈니스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품을 만들고 있는 거 같다. 특히 IoT나 웨어러블 분야에서 이런 제품들을 많이 접하는 거 같다. 대부분 빅데이터나 머신러닝으로 포장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인 거 같다.

물론, 창업팀한테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고 나름 큰 시장이 보이기 때문에 리스크를 감수하고 창업을 했을 것이다. 제발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모두 성공해서 잘 되면 좋겠다. 그런데 나는 절대로 구매하지 않을 거 같다.

기술이 주도하는 파괴와 혁신

한 2달 전에 Fred Wilson의 ‘What VC Can Learn From Private Equity(VC가 사모펀드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들)‘ 라는 블로그를 읽었다. 깊게 들어가 보면 완전히 다르지만, 겉에서 보면 VC도 사모펀드라는 큰 그룹에 속해있기 때문에 분명히 VC 산업이 사모펀드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들은 많고 이 글은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그런데 내가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Fred가 지적한 VC와 사모펀드의 차이점들이다:

1/ 사모펀드는 회사의 다수 지분을 확보해서 경영에 관여한다. 벤처캐피탈은 소수 지분에 투자한다.
2/ 다수지분을 확보하기 때문에 사모펀드는 투자손실이 발생하면 안 된다. 벤처캐피탈은 (불확실성에 투자하기 때문에) 투자손실이 (어떻게 보면) 당연한 비즈니스이다.
3/ 사모펀드는 금융공학을 통해서 가치를 창출한다. 벤처캐피탈은 기술이 주도하는 파괴와 혁신,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기회를 통해서 가치를 창출한다.

다 동의하지만 3번이 가장 와 닿는다. 아마도 벤처캐피탈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 그리고 앞으로 가야할 길을 간단명료하게 잘 설명해주는 포인트이다. “사모펀드는 금융공학을 통해서 가치를 창출한다”는 “사모펀드는 돈 따먹기” 정도로 간단하게 해석할 수 있는데 이와는 다르게 벤처캐피탈은 단순히 돈을 주고 몇 년 후에 몇 배 이상의 수익을 바라는 비즈니스는 아니다. 기술과 엔지니어들이 중심이 되는 파괴력을 가진 비즈니스, 그리고 이로 인해 새로 창출되는 엄청난 기회들에 투자를 하고, 많은 경우 창업팀과 함께 일하면서 비즈니스를 만들어간다.

실은 나도 이런 말을 하지만 위에서 말한 벤처캐피탈의 모습은 점점 더 이상이 되어가고 있는거 같다. 현실적으로는 벤처캐피탈이 돈 따먹기 놀이로 변질되고 있는거 같아서 조금 안타깝고, 혹시나 나도 이런 생각만을 하면서 투자를 하는건 아닌지 조심스럽게 반성도 해본다. 요새 시장에서 벤처캐피탈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들이 들려서 그냥 몇 자 적어봤다.

한국에서 스타트업을 한다는건

한국의 스타트업들이 외국의 회사들에 비해서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단점과 장점은 무엇일까? 솔직히 이 질문은 내가 벤처쪽 일을 시작했을때부터 나오던 질문이고, 나 자신도 스스로에게 항상 물어보는 질문이다. 15년 전부터 질문은 동일했지만, 시대와 상황이 바뀌면서 그 답변은 항상 달랐다. 얼마전에 구글캠퍼스코리아 제프리 센터장이 이 질문을 했었는데, 나는 다음과 같이 내 답변을 정리해봤다.

한국의 스타트업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단점은 바로 한국의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단순하지만, 내가 미국과 한국을 왔다갔다 하면서 경험해보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게 한국의 창업가들과 스타트업들에게는 너무나 큰 약점이자 단점이다. 대표이사, 영업, 마케팅, 개발 등 직무와는 상관없이 영어는 필수다. 앞으로 더욱 더 중요해질텐데 우리는 모국어가 아닌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앞으로 또 낭비할것이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이는 태생적인 약점이라서 쉽게 단시간 내에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스타트업을 함에 있어서 다른 나라 창업가들보다 가장 유리한 점은? 조금은 아이러니컬하지만 바로 우리는 문제가 매우 많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봤을때 한국은 참으로 재미있는 나라이다. 전세계 GDP 순위 14위에 걸맞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과 사고도 많이 발생하고 가끔 나는 우리가 후진국에 살고 있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한다. 이번 출장에서도 아침에 출근해서 퇴근할때까지 “왜 한국은 이런게 없을까?” 또는 “왜 미국같이 이렇게 못 할까?” 라는 질문을 수도없이 많이 스스로에게 했다. 결국 이 모든 문제들이 창업가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스타트업을 한다는건 매력적일 수 있다. 그렇다고 문제가 많은 나라일수록 창업가들에게 무조건 좋지는 않다. 왜냐하면 후진국의 경우 문제는 한국보다 훨씬 더 많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들 수 있는 인프라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런면에서 매우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 모바일과 같은 기본적인 인프라가 매우 잘 갖추어진 나라이며 이러한 좋은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우수한 인력들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만난 많은 창업가들과 회사들이 이미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걸 느꼈다.

가장 힘든 취미생활

3e29a0_598dc11b143e48fcbbd16b1da5a4993c이번 한국 출장에서도 역시 상당히 많은 회사를 만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짧은 기간 동안 32개의 스타트업들을 만났다(몇 개 더 만날 예정). 항상 그렇듯이 괜찮은 스타트업들보다는 뭔가 좀 아쉬웠던 회사들이 더 많았지만, 이 중 마음에 무척 드는 스타트업들도 있었다. 신뢰가 가지 않았던 회사들은 아이디어나 제품보다는 창업자들의 마음가짐이 별로였다. 특히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 창업팀이 스타트업에 올인하지 못하고 part-time으로 ‘간’을 보는 건데 최근에 창업 열풍이 불어서 그런지 이런 팀들이 꽤 많았다. 이 중 직장인 팀이 제일 많았다. 현재 직장을 다니면서 시간 날 때마다, 또는 주말에 동네 카페에서 만나서 스타트업을 하는 파트타임 창업자들한테 내가 항상 물어보는 건, “그럼 언제 full-time으로 여기에 올인 하실 생각이신가요?” 이다. 대부분 매출 발생, 트래픽증가 또는 펀딩과 같은 뭔가 극적인 발전이나 변화가 있으면 직장을 그만두고 스타트업에 올인하겠다고 한다.

모두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처자식이 있으므로 집안의 현금흐름이 끊기면 안 되고, 부모님을 모셔야 하고, 전세금을 갚아야 하며, 학자금을 대출받아서 계속 빚을 갚아야 하고, 아직 제품이 완성 안 되어서 미래가 불투명하다. 다 충분히 이해하는 사정들이다. 그런데 이건 알아야 한다. 백만가지 이유로 이분들이 스타트업에 100%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 세상 어느 곳에서 미래의 경쟁자들은 올인해서 회사를 만들고 제품을 만들고 있다. 가족 때문에 풀타임 전념을 못 하는 분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나이가 있으신데 이들이 경쟁해야 할 팀들은 젊고, 먹여 살려야 할 가족도 없고, 체력적으로도 월등해서 24시간 코딩을 할 수 있는 똑똑한 창업가들로 구성되어있다. 올인해서 전념을 해도 이런 팀들을 이길까 말까 하는데 스타트업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아니 월급을 주는 직장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누가 더 좋은 제품을 개발해서 좋은 비즈니스를 먼저 만들지는 안 봐도 뻔하다.

누군가 “연말에는 꼭 사표 내고 몰방할 겁니다.” 라고 했는데, 나는 이 분에 연말에는 지금과 무엇이 달라지는지 물어봤다. 현재 계획에 의하면 그때까지는 MVP를 출시하고, 고객이 어느 정도 생기고, 매출도 발생하기 때문에 투자를 받을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 열심히 잘 해보라고 했다. 제발 그렇게 되면 좋겠다면서. 계획대로 모든 게 척척 진행되어서 진짜로 이 분이 희망하는 시나리오대로 갈 수도 있지만, 나는 이렇게 되는 걸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스타트업에 애정을 품고 있어도 이 분의 우선순위는 월급을 주는 현재 직장이기 때문이다. 현재 직장에서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급하게 완성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밤새워서 일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풀타임 직장이고 월급이 나오는 나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이러는 동안 내 진짜 관심사인 스타트업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고, 풀타임 직장에 전념하는 동안 발전이 전혀 없다. 몇 달 남지도 않았는데 정말로 연말에 사표 내고 올인할거면, 그냥 지금 하면 안 될까? 만약에 진심으로 연말에 직장 그만두고 스타트업을 할 생각이면, 지금 해도 큰 차이는 없지 않을까? 그렇게 하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창업가 본인도 실은 이 아이디어를 100% 믿지 않고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자꾸 자신의 불확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결과를 확인한 후에 스타트업에 올인할 생각을 하지만, 미안하지만 올인해서 전념하지 않으면 이렇게 정당화할 수 있는 결과를 절대로 만들 수가 없다.

현재 상황에서 스타트업에 올인하는게 어렵나? 그러면 아예 스타트업은 생각하지 말고 월급을 주는 직장에 올인하는게 본인과 주위 모든 사람을 위해서 좋다. 취미를 갖는 건 좋다. 하지만, 취미생활로 하기엔 창업은 너무나 힘들고 고달픈 취미이다. 이렇게 취미생활로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들이 외부에서 “저 창업해서 벤처 합니다” 말하는 거 자체가 인생을 걸고 열심히 일하는 진짜 창업가들에게 부끄럽고 피해를 주는 거라는걸 알았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 RDX Fitness>

로켓을 만드는 중학생

사진 2015. 7. 9. 오전 9 40 02얼마전에 ‘중학교 3학년 학생의 거대한 로켓‘ 이라는 글을 썼다. 로켓을 만드는 정재협 중학생을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어떤 학생일지는 항상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다. 구글캠퍼스 코리아(=캠퍼스서울)에서 약 한시간 동안 임정민 센터장과 불타는 창업토크를 진행했는데 갑자기 텀블벅에서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한 이 캠페인에 대한 질문을 했다. 오, 그런데 임센터장이 정재협 학생을 초청한 것이다!(이건 연출이 아니라 정말로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마치 ‘TV는 사랑을 싣고’ 와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요새 중딩같지 않게 상당히 수줍음이 많은 정재협 학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현재 로켓 부품을 주문해서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며 이번에는 꼭 성공적으로 발사하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성공하면 좋은거고, 실패하면 다시 시도하면 되니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시 실패해서 다시 시도할때 또 돈이 필요하면 나한테 연락하라고 했다.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어보니 “과학자입니다” 라고 했는데, 정말로 이 마음가짐을 끝까지 가지고 가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자나 engineer가 되길 바란다. 이 학생의 부모님이 정말 자랑스러워 하실거 같다.

참고로 정재협 학생이 4번째 로켓을 작명할 수 있는 영광의 기회를 나한테 줬다. 4번째 로켓의 이름은 ‘Stephanie J’ 이다. 멀리멀리 날 수 있길.

<이미지 출처 = 프라이머 이정훈 팀장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