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드백 물어보기, 피드백 주기

얼마전에 아는 동생을 만났다. 취준생인데 명문대학을 졸업한것도 아니고, 딱히 내세울만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도 않아서 취업하는데 상당히 고생을 하고 있다. 얼마전에 면접을 본 회사로부터 불합력 통보를 받았는데 내가 그 이유를 물어보니 “떨어졌는데 이유가 중요한가요” 라고 했다. 면접한 회사에서 불합격 이유를 알려줬는지 물어보니 “그런게 어디있어요. 불합격 통보라도 왔으니 다행이죠. 작은 회사들은 아예 연락도 안와요.” 라면서 너무나 당연한듯이 말을 했다.

우리나라의 현실인거 같다. 그 누구도 피드백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누구도 피드백을 달라고 묻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불신과 오해만 생기고, 발전이 없거나 더디다. 위의 동생은 똑똑하고 일도 잘 할거 같지만, 면접만 하면 미끄러진다. 몇 번 대화를 하다보면 떨어지는 이유가 대략 짐작은 간다. 면접관이라면 누구나 다 파악할 수 있는 점이고, 쉽게 고칠수 있지만 그 누구도 이 사람한테 자세한 피드백을 주지 않았다. 물론, 본인도 안 물어봤다. 나도 이런 경험을 한국에서 여러번 했다. 개인적으로나 비즈니스적으로나 뭔가를 거절당하면, 왜 거절했는지 그 이유를 나한테 정확히 설명을 해주는게 그동안 내가 투입했던 시간과 에너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이번에는 안 되겠습니다.” 또는 “안타깝네요. 다음번을 기약하시죠.” 라는 답변을 제공한다. 일언반구의 피드백도 없다. 이번에는 왜 안 되었고, 다음에 잘 되려면 뭘 고치고 보완해야하는지에 대한 말이 없다. 그런데 나는 항상 물어본다. “뭐가 부족했는지 좀 구체적으로 알려주시겠습니까?” , “피드백을 좀 받아볼 수 있을까요?” 그래도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본인들이 결정을 했으면서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내가 피드백을 달라고 하는게 마치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나는 악착같이 물어본다. 나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혹시 내가 뭘 잘 못 했는지, 그리고 잘 못 했다면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지 배우기 위해서.

그나마 VC는 피드백에 익숙한 직업이다. 그렇지 않은 투자자들도 수두룩 하지만, 내 주위의 제대로 된 투자자들은 투자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하면 창업가들한테 왜 그런지에 대한 자세한 피드백을 제공한다. 어떤 경우는 창업가들이 수긍을 하고, 어떤 경우는 수긍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투자자 나름대로의 생각과 피드백을 제공하는 건 목숨을 걸고 투자 한번 받아보겠다고 열심히 사는 그 창업자에 대해 우리가 표시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피드백이 아주 길 필요는 없다. 우리가 투자하지 않는 분야라서, 또는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산업이라서 투자를 하지 않는다라는 것도 짧지만 말이 되는 피드백이다. 창업자들도 거절을 당하면 항상 피드백을 달라고 부탁하라고 나는 권장한다. VC들이 항상 맞지는 않지만 – 실은 대부분 틀린다 – 그래도 투자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니 투자 성공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어떤 부분에 더 신경을 쓰고, 고칠게 있다면 어떤걸 고쳐야 하는지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피드백을 주고, 받고, 물어보는게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지면 그만큼 모두가 다 발전할 수 있다.

검은 백조 찾기

article-2154839-13754B18000005DC-390_636x373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교수는 저서 ‘Black Swan’ 에서 ‘검은 백조’는 다음 3가지의 특성이 있다고 했다:
1. 예측할 수가 없다
2.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진다
3. 후에 곰곰이 생각하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다고 분석된다

Tech 분야에는 이런 검은 백조들이 많다. 페이스북도 검은 백조였고, 아이폰도(=스마트폰) 마찬가지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성장해서 큰 파급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게 너무나 당연하지만, 페이스북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그리고 아이폰이 시장에 출시되었을 때를 기억해보면 부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도 투자자로서 이런 검은 백조들을 찾기 위해서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한다. 하지만 블랙스완을 예측하는 건 힘든 게 아니라 불가능하므로 쉽지 않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비즈니스인데 이게 5년~10년 후에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예측하는 건 과학이 아니라 감을 기반으로 하는 도박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관점에서 어제는 우리 투자사들을 – 이제 거의 30개 – 하나씩 짚어 가면서 투자 당시에는 갸우뚱했지만, 현재 잘 성장하면서 앞으로 큰 파급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을 가진 회사들을 한번 마음속으로 나열해봤다.

솔직히 블랙스완이라고 분류할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확실한 승자들은 명확했다. 투자할 당시에는 대부분 “괜찮은 거 같은데, 잘 모르겠다.”라는 느낌의 스타트업들이었고, 심지어 어떤 회사들은 “별로인 거 같은데….” 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투자를 했던 기억이 난다. 참 재미있는 건, 돌이켜보면 이 회사들이 성장하고 잘 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갑자기 존재하지 않던 시장이 파도처럼 생겨서 ‘운’이 좋은 회사 또는 중간에 비즈니스 방향을 바꿔서 일이 잘 풀린 스타트업도 있다. 역시 이들의 성공을 3년 전에 예측하기란 탈레브 교수 말처럼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을 당연하게 보이게 만드는 공통 요소는 역시 있었는데 그건 바로 창업팀(=사람) 이다. 뭐, 이젠 귀가 닳도록 많이 들었고, 입이 닳도록 나도 많이 말했지만, 사람이 전부이다 라는 건 다시 한번 강조해도 충분치 않은 진리인 거 같다. 뭐, 너무 똑똑하고, 열정 있고, 끝을 보는, 그런 창업가 자질은 기본적으로 모두 다 가지고 있고 중간에 안타깝게 실패하거나 잘 안 된 우리 투자사 창업팀들도 다 이런 기질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 잘하는 사람들만 잘하고 있을까?

이 창업가들은 확실히 ‘비합리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거 같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합리적인 사람은 스스로 세상에 자신을 맞춘다. 비합리적인 사람은 끈질기게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인류의 모든 발전은 비합리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난다.”

내가 위에서 말한 창업가들이 바로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인 거 같다. 뭐, 그렇다고 이들이 극단적으로 비합리적인 거는 절대로 아니다 (어쩌면 그래서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도….)

세상 모든 사람이 비합리적일 수는 없다. 모두가 다 세상을 자기 기준에 맞추려고 하면 질서라곤 찾아볼 수 없는 개판 세상이 될 게 뻔하다. 하지만, 인류의 비약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소수의 미친 사람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과거의 틀을 거부하고,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행동을 통해서 변화를 일으키는 그럼 과감한 창업가들이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우리한테는 필요하다. 아마도 이들이 만들어가는 창조물과 세상이 블랙 스완이 아닐까 싶다.

<이미지 출처 =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2154839/Black-swan-stands-gatecrashing-group-600-white-ones-ancient-swannery.html>

노조, 변호사 그리고 공유경제

littech15-crop-600x338이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은 잘 알텐데 얼마전에 Homejoy 라는 공유경제 청소 서비스가 문을 닫았다. 유명한 투자자들이 400억원 이상을 투자한 스타트업이고, 급성장하다가 갑자기 망해서 그런지 필요 이상의 관심을 받는 큰 사건 중 하나였다. 뭐, 이 정도 투자 받고 망한 회사들이 워낙 많지만, Homejoy의 폐업이 더 쇼킹했던 이유 중 하나는 최근들어 논란이 되고 있는 공유경제 회사라서 그런거 같다. 이 회사가 망한 이유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제품(=서비스) 자체가 경쟁력이 없었고, 고객서비스가 형편없었다고 하는 사용자들도 상당히 많지만, 대표이사에 의하면 회사가 고용관련 소송에 휘말려서 더 이상 투자유치를 못했고, 이로 인해서 문을 닫는다고 한다.

소송을 워낙 좋아하는 미국에서는 물론, 전 세계의 공유경제 서비스는 노조와 변호사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대통령 후보도 얼마전에 공유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공식적으로 표명할 정도로 우버와 같은 온디맨드 서비스는 매우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우버나 Lyft 또는 Instacart와 같은 회사들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들을 ‘자영업자’ 또는 ‘independent contractor(아무한테도 고용되지 않고, 아무도 고용하지 않고 일하는 방식)’로 잘못 구분을 했고, 이로 인해서 이들에게 상해보험, 실업보험, 실업수당, 초과수당 등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회사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소송을 당하고 있다. 위에서 말한 Homejoy 또한 청소서비스 공급자들에게 5시간 마다 30분의 간식 휴식 시간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했다.

나는 과거에 우버에 대한 글을 여러번 썼다:
멈추지 않는 우버의 질주
우버에 대한 단상
뿌리를 찾아서 뽑자

내가 고객으로서 우버에게 점수를 준다면 100점을 준다. 그만크 유용하고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다른 공유경제 서비스도 마찬가지로 고객들에게 – 공유경제 서비스들의 고객은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이다 – 많은 가치를 제공하는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시장과 숫자를 보면 이는 명확해진다. 최근 수 년동안 온디맨드 공유경제 서비스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 회사들에 퍼부어지는 돈도 천문학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왜? 간단하다. 이런 서비스들을 돈을 내고 기꺼이 사용할 사용자들과 이들에게 서비스를 기꺼이 제공해 줄 공급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직 정확한 수치는 발표된게 없지만 이런 공유경제 서비스들은 실업자 또는 자신이 원하는 페이스대로 일을 하면서 돈을 조금 더 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평균적으로 공유경제를 통해서 벌 수 있는 수입은 노동법으로 정한 최저임금보다 높으며, 더 열심히 하거나(=좋은 리뷰) 피크타임에 일을 하면 이 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건 아니다. 이를 위해서 공유경제 회사들이 지정한 규정과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개개인의 이력과 백그라운드를 조회하며, 우버의 경우 서비스 공급자들은 10년 미만의 차량을 사용해야 한다. 어떤 회사들은 유니폼을 입도록 요구하며, 고객과 대화하는 방법까지 지시를 한다. 공유경제 회사들의 바로 이러한 요구사항들 때문에 공급자들은 계약직이 아니라 회사의 정직원과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는게 아마도 소송의 핵심인거 같다.

이 회사들을 고소하는 주체는 주로 서비스 공급자들이 아니라 이들과는 어떻게 보면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는 노동조합들이다(independent contractor들은 노조를 만들 수 없다). 그리고 노조들을 대변하는 소송변호사들과 law firm 들은 과거에 수 많은 회사들을 대상으로 이와 비슷한 소송을 진행해서 수천억원의 승소금을 받은 회사들이다.

물론 법은 중요하고 지키라고 존재한다. 하지만, 해석하기에 따라서 애매모호해지는 공유경제에 대한 노동법의 헛점을 이용해서 노조와 편을 먹고 굳이 이렇게까지 소송을 해야하나라는 생각은 개인적으로 항상 하고 있다. 50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가진 우버의 경우 돈방석 위에 앉아 있기 때문에 더욱 더 비싸고 유능한 변호사를 통해서 소송에 대응할 수가 있지만 다른 수백개의 공유경제 스타트업들은 이렇게 나오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 노조와 변호사들은 소송에 이기면 큰 돈을 벌겠지만 결국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손해를 보는 건 우리와 같은 사용자들, 그리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 들이다.

<이미지 출처 = http://www.insidecounsel.com/2014/03/24/its-time-for-litigation-lawyers-to-innovate-with-a>

작은 시작과 hustle의 힘

Photo Jul 16, 3 10 53 PM‘Hustling’ 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전에도 몇 번 쓴 적이 있다. 얼마전에 우리는 SnackFever라는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매달 미국 고객들에게 한국 과자를 엄선하고 큐레이션해서 박스로 보내주는 섭스크립션 서비스이다. 한국 과자를 많이 먹거나 좋아하지 않는 나로써는 이 서비스에 대해 약간 회의적이었지만 고객의 90% 이상이 비동양계 미국인임을 확인한 후에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투자를 했다. 물론, 2명의 공동창업자 Jo와 David 모두 내가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동생이자 후배들인 점도 결정에 큰 기여를 했다.

SnackFever는 스트롱벤처스 사무실에서 현재 incubating 되고 있고, 모든 사업운영이 우리 사무실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나는 이 회사의 속속들이 사정을 모두 다 알고 있고, 회사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옆에서 아주 자세히 볼 기회들이 많다. 창업 초기에는 누구나 다 비슷하지만, 이 친구들 정말 고생 많다. 특히 전자상거래 사업이라는게 완전 초반에는 노가다가 많이 필요한 특성이 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주문을 받을 수 있는 고객과의 인터페이스는 웹사이트나 모바일 앱이지만 일단 주문을 이행하려면 누군가는 물건을 구매하고, 포장하고, 우체국이나 택배사를 통해서 고객에세 보내야하는데 돈도 없고 인력도 부족한 스타트업들은 모든걸 직접 해결해야하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번씩 우리 사무실은 한국과자와 SnackFever 자체 박스로 과자창고가 된다. 현재 이 두 명이 매달 수백개의 박스를 고객들에게 보내주고 있는데 이 수백개의 박스를 2명이 (가끔씩 인턴들이 도움을 준다) 모두 다 포장하고 있다. 매달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 가끔은 조금 도와준다 – 박스에 과자를 일일이 넣는것만해도 2박3일 밤샘 작업이다. 지금은 물량이 어느정도 되니까 우체국에서 와서 가져가지만 초반에는 이 박스들을 다 차에 싣고 우체국으로 가서 줄 서서 보냈다.

많은 분들이 – 특히 대기업이 대기업일때 조인해서 그 이후 대기업에서 계속 일하시는 – 조금 걱정스러운, 그리고 가끔은 한심하고 의아해하면서 말한다. “아니 저렇게 일일이 박스를 직접 포장하고 보내서 돈은 언제 벌고 기업으로 어떻게 성장시키나요?” , “무늬만 전자상거래지 완전히 노가다가 따로 없네요” , “너무 체계없고 허접한거 아닌가요?”
그런데 이들이 잊고 있는건 모든 회사들이, 심지어는 본인들이 일하고 있는 그 대기업들도 다 이렇게 작게 시작했다는 점이다. 모든 회사들의 시작은 작다. 잘 모르는 분들한테는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이 작은 시작과 창업팀의 피와 땀이 섞인 hustle이 쥐새끼 만화를 디즈니로 만들었고, 책배달을 아마존으로 성장시켰다. 우리가 아는 모든 기업들이 다 이렇게 작게, 하나씩, 차근차근, 허접하게 성장했다.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이제는 꽤 큰 볼륨을 처리하는 우리 투자사 Poprageous에 대해서 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같이 완전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큰 특권은 바로 이런 hustler-founder들과 같이 일하면서 회사가 창업해서 성장하는 모든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다. SnackFever 팀이 이번 달에는 어떤 과자를 선정할지 고민하고, 우편비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박스 하나하나 중량을 재고, 모자라는 스낵이 있으면 코리아타운에 있는 한국슈퍼에서 땜빵을 메우는 모습은 나한테는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값진 광경이자 경험이다. 이런 강한 hustle 속에서 이들은 비즈니스 현장을 직접 경험하고, 주문량이 증가할수록 전자상거래 비즈니스를 효율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한다. 절대로 교과서에서는 배울 수 없는 스타트업의 핵심이다.

이 회사가 앞으로 얼만큼 커질지는 시간만이 알려줄 것이지만, 나는 굳게 믿는다. 작은 시작, 여기저기 헛점이 많은 허접함, 그리고 끝없는 hustling의 힘을.

전자상거래와 subscription 모델

subscribe1지난번에 전자상거래와 개인화, 추천 등에 대해서 이야기해봤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에는 정기구독서비스(=subscription) 모델에 대한 생각을 좀 정리해본다. 솔직히 정기구독은 전자상거래 분야에서는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 개념 자체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가장 대표적인 건 신문이나 우유배달 서비스이다. 신문은 매일 읽고, 우유도 매일 마시는데, 귀찮게 매번 결제를 하는 게 아니라 아예 한 달 또는 3개월 치 대금을 먼저 지급하고 편리하게 집에서 매일 아침 배달받아서 즐길 수 있다. 이 개념을 전자상거래에 적용했고, 그 결과는 전반적으로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subscription fatigue라는 후유증도 탄생했지만).

섭스크립션 서비스는 고객이나 업체에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다. 고객이 누릴 수 있는 혜택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전자상거래 업체에 관해 이야기를 좀 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업체 입장에서의 가장 큰 혜택은,
1/ 한 방에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성 생리대를 섭스크립션으로 판매하는 스타트업의 예를 들어보자. 어떤 고객이 6개월 치 섭스크립션을 구독하면 6개월 동안 한 명의 고객한테 정기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제품에 대한 매출을 한 번에 확보할 뿐만 아니라 즉시 수금할 수 있다. 이런 고객의 수가 늘어나면 회사는 이 많은 현금을 다시 재투자해서 더 좋은 플랫폼을 만들거나 여러 가지 유용한 쪽으로 사용할 수 있다. 돈 없는 스타트업, 그리고 돈을 만지는 게 쉽지 않은 스타트업들한테 현금만큼 좋은 건 없다.
2/ 꾸준한 cash flow와 같이 제공되는 건 꽤 정확한 수요예측능력이다. 6개월 섭스크립션 고객이 1,000명이 있다면 6개월 동안 회사가 판매할 수 있는 생리대의 숫자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이 수치를 기반으로 회사는 생리대를 대량으로 도매확보 할 수 있으며, 재고를 최소화할 수 있다. 특정 제품이 얼마만큼 팔릴지 모르니 항상 재고를 가져가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건 상당히 큰 매력이자 경쟁력이 될 수 있다.
3/ 고객이 있는 회사라면, 기존 고객을 유지하면서 신규 고객을 계속 유치하는 게 회사의 지상과제이다. 섭스크립션 모델을 잘 활용하면 신규 고객 유치에 회사의 모든 자원을 집중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위의 예에서는 고객들을 6개월 동안 완전히 lock 했기 때문에 이 고객들은 별다른 이슈가 없다면 최소 6개월은 이 회사의 고객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개의 제품을 고객에게 판매한 후에 어떻게 하면 이 고객한테 다른 제품도 판매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 시간에 신규 고객 유치 전략에 대해서 생각하면 된다. 섭스크립션은 고객과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기에는 가장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매번 전자상거래 웹사이트나 앱을 통해서 같은 제품을 주문하고 결제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제공되지만, 또 다른 혜택은 바로 전혀 모르던 새로운 제품들을 섭스크립션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발견의 기쁨’ 이다. 그리고 이 발견의 기쁨은 개인화로 이어진다. 자주 사용하는 제품을 정기구독하는 섭스크립션 모델과는 약간 다른, 모르는 제품을 발견할 수 있는 큐레이션 섭스크립션 모델이 이 경우이다. 매달 특정 금액을 지급하면 나보다 특정 분야에 대해서 잘 아는 전문가들이 알아서 특정 제품들을 잘 큐레이션 해서 보내주는 서비스들이 요새 지속해서 생기고, 없어지고, 또 생기고 있다. 우리 투자사 중 SnackFever라는 스타트업이 있는데, 이 회사는 미국 고객들에게 한국 과자들을 큐레이션 해서 배달해주고 있다. 대부분의 미국 고객들한테는 난생처음 보는 한국 과자들이다. 이 중 싫어하는 과자도 있고, 매우 좋아하는 과자들도 있을텐데, 이러한 고객들의 취향을 계속 분석하다 보면 이들이 좋아할 만한 과자들을 계속 추천하고 보내줄 수 있다. 가령, ‘새우깡’과 ‘고래밥’을 좋아하는 고객은 문어과자 또는 짭짤한 해산물 맛 과자들을 좋아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제품을 섭스크립션으로 판매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수많은 정기구독 전자상거래 서비스들이 실패하고 문을 닫았다. 섭스크립션 모델이 통하는 건 딱 2가지 부류의 제품밖에 없다.
첫째는 – 너무 당연하지만 – 자주 사용하는 필수품이다. 위에서 예를 든 생리대, 아기 기저귀, 개밥, 물 등은 모두 정기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필수품들이다. 이런 제품들이 섭스크립션 모델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물이나 기저귀 또는 개밥 같은 제품은 무겁기까지 하니 온라인 구매에 아주 적합하다.
두 번째는,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전문지식이 별로 없는, 그리고 그 종류의 수가 다양한 제품군이다. 와인이 아주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워낙 복잡한 분야라서 일반인들은 대부분 와인에 대해서 잘 모르고, 와인의 종류는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다. 이런 제품을 섭스크립션 기반으로 주문하면, 와인에 대한 전문가들이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와인을 정기적으로 큐레이션 해서 보내준다.

그런데 이런 섭스크립션 서비스를 사용하다 보면 금방 질릴 수 있다. 같은 제품을 계속 사용하는 것도 피곤해지고, 남이 나를 위해 큐레이션 해서 매번 보내주는 제품도 어느 순간부터는 물린다. 이런 점들을 잘 고려해서 섭스크립션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기획하고 실험해봐야 한다.

<이미지 출처 = https://dualcube.com/selling-subscriptions-woocommer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