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ersAtWork

규제, 스타트업, 그리고 투자

작년 12월에 산업은행의 KDB넥스트라운드 클로징 행사에 다녀왔다. 이날의 주제는 핀테크였는데 우리가 초기에 투자한 핀다의 이혜민 대표님이 키노트 스피치를 해서 나도 뿌듯했다. 키노트 스피치 끝나고 곧바로 핀테크 관련 패널 토론이 있었는데, 고맙게도 나도 패널리스트로 초청해주셨고, 패널을 진행하신 KDB 팀장님이 나한테 물어본 질문 중 하나가 “핀다는 규제가 엄격한 핀테크 분야의 회사인데, 스트롱은 왜 초기에 투자했는가?” 였다.

내 생각을 나름 정리해서 답은 했지만, 주어진 시간이 2분 정도밖에 안 돼서 아주 짤막하게 했는데, 그날 더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내 생각을 여기서 조금 더 길게 글로 한 번 설명해본다.

핀다를 비롯해서 규제가 엄격한 분야의 극초기 스타트업에 우리가 투자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이런 분야는 규제가 심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더 보수적으로 시장을 보고, 훨씬 더 엄격한 기준으로 실사한다. 이런 과정에서 대부분 투자하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팀이 큰 시장을 공략해도 절대로 법을 뛰어넘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결과는 소수의 투자자만 이런 회사에 투자하는데,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서 투자 수요가 별로 없기 때문에 굉장히 합리적인 밸류에이션에 투자할 수가 있다. 즉, 좋은 밸류에이션에 투자하기 때문에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회사들이 잘 되면, 더 높은 지분율은 더 높은 수익을 만든다.

그런데 규제가 심한 분야에서는 – 특히 핀테크나 모빌리티 같이 규제가 빡센 분야 – 스타트업의 성공 확률이 현저히 낮아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많은 분들이 갖는다. 나는 이건 절반만 맞는 의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스타트업의 성공 확률은 5% 미만이다. 규제가 심한 분야의 스타트업 성공 확률이 규제가 없는 분야의 스타트업 성공 확률의 20%라고 보면, 성공 확률이 1%인데, 솔직히 이 영역 안에서는 1%나 5%나 비슷하다. 둘 다 낮은 확률이고, 그냥 스타트업은 어렵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런 회사들이 성공한다면, 그냥 성공이 아니라 대박 성공할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아주 오랫동안, 아주 심한 규제가 존재하는 산업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하고 있는 기존 플레이어들은 경쟁력이 매우 약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예를 든 핀테크나 모빌리티 분야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핀테크 분야의 대표적인 기존 플레이어라면 우리가 잘 아는 대형 은행들이다. 은행들이 과연 경쟁력이 있냐고 하면, 나는 전혀 없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나 기술적인 경쟁력은 정말 약하기 때문에 토스나 카카오뱅크 같은 새로운 서비스가 나왔을 때 시장에서 열광한 것이다.
모빌리티 분야의 대표적인 기존 플레이어라면 택시회사들이다. 택시야말로 경쟁력이 전혀 없는 대표적인 산업이라고 생각하는데, 타다와 같은 새로운 서비스가 나왔을 때 시장에서 열광한 점, 그리고 카카오택시를 출시하자마자 대한민국 택시 산업을 카카오가 접수한 것만 봐도 기술적인 면이나 서비스적인 면에서 전혀 경쟁력이 없는 산업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유일한 경쟁력은 규제 그 자체이다. 규제라는 경쟁력 때문에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규제 때문에 새로운 경쟁사들의 진입이 거의 원천 봉쇄됐기 때문에, 시장은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객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만약에 이런 규제가 조금 더 현실적으로 바뀌거나, 없어진다면, 경쟁력 없는 기존 플레이어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고, 새로운 기술을 기반으로 더 싸고, 더 좋고, 더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들이 수조 원 ~ 수십조 원짜리 시장을 다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여러 개의 유니콘이 탄생한다.

이런 이유로 우린 굉장히 힘들고, 어쩌면 불가능하지만, 규제가 강력한 시장의 스타트업을 응원하고 계속 투자한다. 이렇게 투자한 회사들이 망하면, 그냥 일반적으로 망하는 스타트업과 똑같이 손실이 발생하지만, 잘 되면 그냥 잘되는 게 아니라 만루홈런 스타트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규제를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금융과 모빌리티와 같이 돈과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산업에는 규제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일인이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규제는 현실을 반영해서 이제 은퇴 되거나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린 2023년도에 살고 있다. 자동차가 스스로 자율주행하고 있고, 하늘을 날고 있는데, 말과 마차가 주 교통수단이었던 시대에 만들어진 규제는 이제 바뀔 때가 되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해야 하는 건데, 용감한 스타트업과 용감한 투자자들이 이 변화에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긍정의 단련

올해는 참 어려운 해였다. 그리고 내년은 투자자와 창업가의 인내심과 그릿이 진정한 시험대 위에 오르는 더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다. 나도 이 블로그를 통해서 여러 번 말했지만, 지난 3년 동안 사업했던 분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고 존경스러운 생각을 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대략 10년마다 큰 불경기가 한 번씩 오고, 이 불경기는 1년~2년 정도 지속되다가 다시 호전되는데, 창업가들이 느끼는 이번 불경기는 아마도 4년, 심지어는 5년이지 않을까 싶다.

비대면 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엔 거의 3년이라는 코로나19 기간이 오히려 기회가 됐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회사엔 엄청난 고난과 역경의 시기였을 것이다. 이 팬데믹 기간이 이들에겐 이미 역사상 경험해보지 못했던 불경기였을 것이다. 팬데믹 창궐 후, 첫 6개월 동안은 대면, 비대면 서비스할 것 없이 모두 다 당황했던 시기이고, 이후에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시장에 유동성이 넘쳐흘렀던 기간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회사들은 팬데믹 초기에 떨어진 수치와 느려진 성장 때문에 이 기간에도 펀딩하는 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긋지긋한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끝날 기미가 보이면서, 이제 뭔가 좀 제대로 해보려고 했는데, 10년 만에 오는 제대로 된 불경기가 온 것이다.

최근에 내가 만났던, 힘들어하고 있는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이 공통으로 이런 말을 한다.
“창업하고 한 2년 개고생하다가, 2019년도 말에 product market fit을 찾은 것 같아서, 잘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원점으로 돌아와서 정말 힘들었지만, 잘 버텼고, 이제 이 지긋지긋한 바이러스가 끝나면서 정말로 제대로 한 번 사업 해보자 했는데, 불황 때문에 펀딩도 못 받고, 정말 돌아버리겠습니다. 이젠 저도 좀 지쳤고, 팀원들도 다 번아웃 돼서 약간 절망적이긴 하네요.”

이런 대표들한테 나는 곧 불경기가 끝나고 다시 좋아질 거니까 계속 열심히 하라는 말을 차마 못 하겠다. 아니, 하고는 싶지만, 이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불경기가 곧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기 싫었고, 과연 내가 저 대표라면, 이 시점에 다시 한번 모든 걸 불태우면서 열심히 일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라면, 못 할 것 같다. 온갖 고생 끝에 시장에서 인정해주는 제품을 만들었는데, 팬데믹이라는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외부 요소 때문에 3년을 또 고생하고, 이제 정말 제대로 하려고 하는데 10년 만에 오는 지독한 불경기 때문에 한 번 더 숨을 골라야 한다면, 나는 그냥 포기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여기서 자책하면서 포기하는 창업가들이 굉장히 많고, 이분들에겐 비난이 아닌 존경심을 표시하고 싶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한번 의지를 불태우고 7전8기 정신으로 다시 시작하는 분들도 있다. 이런 분들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 긍정을 단련했고, 긍정을 단련하는 게 아예 몸에 밸 정도로 훈련을 한 분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런 말을 한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역경 앞에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이유는 대형 트럭 가득히 있지만, 어떤 창업가들은 계속해야 하는 단 한 가지의 이유를 찾아서 소중하게 단련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이분들이 성공할진 잘 모르겠다. 또다시 고비가 찾아올 수도 있고, 그럴 때 이분들이 무너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요새 나는 이런 분들을 존경하다 못해, 사랑하게 됐다. 정말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얼마 전에 한 상장사 대표님과 즐거운 점심을 같이했다. 나는 이 분이 종사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투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젊은 분들이 한 아이디어에 꽂혀서, 처음에는 장난으로 뭔가를 시작했는데, 이게 취미가 되고, 취미가 열정이 되고, 열정이 사업이 돼서 성공한 전형적인 스타트업의 성장 이야기를 이분에게 직접 듣는다는 건 나에겐 영광 그 자체였다. 물론, 우리가 투자한 스타트업에도 이런 이야기들이 충분히 있지만, 창업자들의 founding story는 항상 다르고, 여러 번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이날의 대화는 내가 올 한 해 나눴던 수많은 대화 중 가장 흥미롭고 배움이 많은 대화 중 하나였고, 그 감동과 여운이 며칠 동안 지속됐다.

이분은 지금은 상장한 회사를 운영하면서 꽤 많은 직원분과 함께 하고 있고, 사업을 하면서 보람차고 기억에 남는 일들을 많이 만들었는데, 그래도 사업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딱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처음 시작했을 때 사업도 잘 안되고 돈도 없어서 허덕이면서 오늘, 내일 하던 그 순간이라고 한다. 그땐 정말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동시에 너무 재미있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변태적인 상황인가?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지만, 너무 재미있었다는.

그런데 이 말이 나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왜냐하면, 나도 생각해보면, 이런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도와 2012년도에 나에겐 이런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죽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
LA에서 뮤직쉐이크 북미사무소를 시작했을 때가 2008년인데, 돈이 없는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우리 투자사인 넥슨 아메리카의 작은 방 하나에 조촐한 사무실을 차렸다. 좁은 공간이었고, 모든 가구는 이케아에서 직접 사 와서 조립했지만, 그 방에서 단위 면적당 발산했던 에너지는 세계 최고였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 작은 사무실에서 나를 포함한 네 명은 내일은 없다는 각오로 정말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일했다.
그리고 2012년도는 존과 스트롱을 시작했을 때이다. LA 코리아타운의 작은 사무실에서 우린 창을 등 뒤로 하고 나란히 둘이 앉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쉽지 않지만, 그땐 정말로 아무것도 없고, 자신감과 체력만 있었는데, 미국 서부 시간 오후 5시면 한국 시각 오전 9시라서, 오후 5시가 되면 둘이 번갈아 가면서 한국으로 전화를 돌리고,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 LA에 있는 스트롱벤처스라는 투자사의 배기홍이라고 하는데요,,,”라면서 우리도 펀딩을 하고 투자할만한 회사들을 발굴했다.

생각해보면, 2008년과 2012년은 나에겐 정말로 힘든 시기였다. 자신감은 있었지만, 이 자신감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그 어떤 근거도 현실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죽고 싶을 정도로 짜릿짜릿하게 재미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가끔 그 당시의 생각을 해보면 그때 그 작고 허름한 사무실, 근거 없는 자신감, 그리고 그냥 그때의 분위기가 그리울 때가 있다. 지금은 우리의 사정이 훨씬 좋아졌고, 현재 사무실도 너무 좋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뮤직쉐이크와 스트롱 처음 시작할 때의 그 순간, 그 사람들과 그 사무실이다.

우리 투자사 대표들이 이제 5명인 회사가 언제쯤 토스나 당근마켓같이 커질 수 있을지 한숨을 쉬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나는 이분들에게 그런 순간이 생각보다 더 빨리 올 수도 있으니까, 현재의 순간을 즐기고 꼭 기억하라고 한다. 나중에 성공해서 더 커지면, 5명인 지금의 이 허접하고 힘든 순간이 매우 그리워질 것이니.

미래를 위한 현실과의 불화

VC마다 다르지만, 검토하는 회사 중 투자하는 회사의 수는 상당히 낮을 것이다. 우리도 해마다 800 ~ 1,000개의 회사를 검토하지만, 실제로 투자하는 회사의 수는 5% 미만이다. 재미있는 건, 투자하는 이유도 다양하지만, 투자하지 않는 이유도 다양하다. 흑백 논리가 존재하지 않는 분야라서 명확한 기준이 있고, 이 기준에 맞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스트롱이라는 하나의 VC만 봤을 때도 이렇게 다양한 투자의 기준이 있는데, 다른 VC까지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정말로 다양한 기준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투자의 기준을 조금 더 일반화해보면, VC가 특정 회사에 투자하지 않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하려고 하는 사업이 현실성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현실성이 없는 사업이라는 말 자체가 발산하는 이미지는 부정적이라서, 투자자의 “팀이랑 대표는 괜찮은데, 사업이 현실성이 너무 떨어져서 투자는 안 했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그런가보다 하면서 고개를 끄덕인 경우가 몇 번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현실성’이라는 말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일반적으론 현실성이 없다는 말이 부정적인 느낌을 주지만, 스타트업 분야에서만은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고, 조금만 다르게 본다면 오히려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얼마 전에 장강명 씨의 “책, 이게 뭐라고”의 작가의 숙명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창업가들에 대해서 갖고 있던 생각이 잘 정리됐다. 아마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창업가들이 생각하는 세상과 제품은 현재에 있지만은 않다. 그들은 과거에 어떤 아이디어와 제품이 있었는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미래를 위한 아이디어와 제품을 상상하고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미래의 사용자들에게 존중받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우리 시대의 다수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하고, 이들에게 욕을 먹는 게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이런 각도에서 생각해보면, 어떤 스타트업이 현실성이 없다는 건, 오히려 미래의 가능성이 너무나 풍부하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이성적인 사람들은 현재 세상이 만든 틀에 본인들을 맞추고, 비이성적인 사람들은 본인들이 만든 틀에 미래의 세상을 맞추려고 한다. 그래서 역시 우리가 만나고, 이야기하고, 투자하는 대부분의 창업가는 비이성적인 미래지향주의자이다.

어떻게 보면, 창업가의 사명은 오히려 현재의 세상과 충돌과 불화를 만드는 데 있고, 우리 같은 투자자는 이런 충돌과 불화를 더 응원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가끔은 한다.

유니스트 방문

2주 전에 정말 오랜만에 울산의 UNIST를 방문했다. 이젠 유니스트에서 더 이상 교편을 잡고 있지 않은 강광욱 교수님덕분에 나는 유니스트와 2014년도에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우린 학생 창업팀도 좋아하고, 그동안 꾸준히 투자해 왔고, 이런 전략의 일환으로 팬데믹 이전에는 유니스트에 정기적으로 가서 학생 창업가와 미래의 창업가와 만날 기회를 만들었고, 유니스트 출신 창업팀 3개에 투자했다. 이젠 꽤 큰 회사가 된 클래스101 또한 유니스트 학생팀이고, 울산에서 시작한 회사이다.

이 학교의 창업생태계 형성에 엄청나게 노력을 많이 하신 강교수님도 다른 대학으로 옮기셨고,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나는 거의 3년 동안 유니스트에 못 갔지만, 역시 좋은 기업의 실마리는 학생들이라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다. 그래서 솔직히 나와는 학업적으론 상관없는 유니스트에 학생창업가를 만나러 공식적으로 3년 만에 방문했을 땐 마치 모교를 찾는 기분이 들 정도로 반가웠다. 학교는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고, 캠퍼스는 새로 생긴 건물들로 더 꽉 차 보였고, 학생들의 에너지는 내가 생각했던 것 그대로 충만했다. 이번엔 학생 창업센터에서 몇 팀과 함께 도시락 점심을 먹으면서 창업, 사업, 학업, 인생 이야기를 골고루 했다. 그리고, 앞으로 스트롱은 계속 유니스트 출신 팀과 만나면서 좋은 회사에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말을 하고, 내년에는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이 친구들과 친분을 쌓고 교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헤어졌다.

나는 학생 창업가들을 좋아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아무래도 개인적인 이유도 큰데, 나는 대학생/대학원생일 때 내가 직접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못 했고, 생각을 했어도 용기를 내진 못했을 것 같아서, 20대 초중반의 학생들이 팀을 만들고 제품을 만들어서 창업하는 걸 보면 너무 부럽고 존경스럽고, 아직도 속으로는 “나는 저 나이에 뭐 했을까?”라는 질문을 하면서 후회하곤 한다. 그래서 팀이나 제품이나 시장은 차치하고, 그냥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과 술 먹고 놀러 다녔던 저 나이에 회사를 만들었다면, 분명히 이런 생각과 행동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학생창업을 존경하고 응원하는 건 아니다. 그동안 우리가 학생팀에 투자하면서 좋은 점만 보고 느낀 건 아니고, 학생 창업의 부작용 또한 많이 경험했다. 전에도 내가 쓴 적이 있지만, 학생들에겐 미래의 좋은 옵션이 너무 많다. 창업해서 안 되면 대학원 진학할 수도 있고, 창업했던 경험을 이력서에 잘 포장해서 다른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어떤 학생팀은 그냥 취업을 위한 전략적인 수단으로서 창업하는 게 너무 뻔히 보이고, 옵션이 너무 많아서인지 스타트업에 올인하지 않는 경우도 너무 자주 봤다. 그리고 한국의 남자 학생들에겐 군 복무라는 큰 걸림돌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학생팀을 만나면 가장 중요하게 물어보는 건 정말로 이 사업을 하고 싶어서 창업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이력서에 한 줄 추가하고 멋있는 스타트업 대표놀이를 하기 위해서인지이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내린 결론은 학생 창업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학생은 한국의 미래다. 우리가 인정하든 안 하든, 요새 젊은 애들이 싸가지가 없든, 있든, 이 나라의 미래는 젊은이들의 몫이고, 앞으로 이 학생들 중에 미래의 쿠팡, 토스, 배민, 당근마켓, 마켓컬리를 만드는 창업가가 나올 것이다. 우린 이런 가능성을 찾아서 여기에 작은 불씨만 만들어주면 이들이 엄청난 에너지로 활활 태울 것이다. 좋은 울산 출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