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에 대해서 – part 2

이전 글 part 1에서 못 담았던 자신감 관련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 싶다. 우리가 시작했던 LA 시장에서도 이런 창업가와 VC들의 자신감이 크게 상승했던 큰 이벤트가 있었는데, 바로 Snap(구 Snapchat)의 IPO였다.

스냅챗은 아주 LA스러운 창업가 Evan Spiegel에 LA의 Venice Beach에서 창업했고, 2017년 3월 2일에 IPO를 했다. 최근 시가총액은 20조 원을 왔다 갔다 하고 있어서 IPO 당시 시총보단 한참 작지만, 높을 땐 40조 원이 넘는, 디즈니와 Amgen에 이어 LA 지역에서 세 번째로 시총이 높은 회사였다. 스냅의 IPO가 LA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미친 영향은 엄청났는데, 가장 큰 건 이전 포스팅에서 내가 강조한 ‘자신감’이다. 당시에 LA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벤처생태계 중 하나였고, 그동안 많은 좋은 스타트업이 창업되고 엑싯도 잘했다. 그런데 이 엑싯들을 보면 대부분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 대의 M&A였고, 아주 가끔은 조 단위의 엑싯도 LA 지역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스냅 IPO 이전에는 대부분의 LA 창업가들은 적당히 회사를 키운 후에 수백억 ~ 수천억 원 규모에 더 큰 회사에 파는 엑싯 전략을 기반으로 사업을 했고, 그 이유는 그 정도의 자신감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26살의 젊은 창업가 Evan이 스냅챗을 수십조 원짜리 회사로 상장시켰을 때, LA 지역의 창업가들은 이 IPO로 인해 굉장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 LA에서 수천억 원 ~ 수조 원의 엑싯은 심심찮게 나왔지만, 수십조 원의 IPO도 가능하다는 걸 스냅이 입증해 줬기 때문에, 더 많은 창업가가 “나도 굳이 실리콘밸리나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아도, 내가 사랑하는 따뜻한 LA에서 잘만 하면 수십조 원짜리 회사를 만들어서 상장시킬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엄청난 자신감을 갖게 됐다. 스냅의 IPO 이후엔 더 많은 LA의 창업가가 더 큰 꿈과 비전을 갖고, 이왕 시작한 회사를 가능하면 대형 IPO가 가능한 규모로 키울 생각을 하게 됐는데, 나는 이게 엄청난 긍정적 자신감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스냅의 성공적인 IPO로 인해서 다양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가장 눈에 띄는 변화 몇 가지에 대해서 적어보고 싶다. 일단 LA의 북동쪽에 위치한 캘리포니아공대(Caltech) 학생들의 창업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칼텍 학생들이 전반적으로 MIT나 스탠포드 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는데(smart이기도 하지만, 훨씬 더 geeky하고 nerdy 하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창업보다는 연구에 관심이 많았다. 이 학교 졸업생들은 대부분 석사/박사 과정까지 하고, 이후에는 교수, 또는 NASA나 JPL(제트추진연구소)에 취직해서 인류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찾는 커리어를 선호한다. 하지만, 스냅 IPO 이후에는 칼텍 학생들도 창업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렇게 좋은 창업가들이 뭔가를 시작한다는 건 LA의 창업 생태계에는 엄청난 긍정적인 변화와 자신감을 가져오는 계기가 됐다.

또한, 스냅의 IPO로 인해, 굉장히 많은 부자들이 탄생했다. 스냅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이 IPO로 번 돈은 엄청났고, 이들은 LA 생태계에 계속 돈을 투입하면 더 많은 성공적인 회사들이 나올 것이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확고한 자신감이 생겼다. 또한, 이들에게 자금을 제공해 주는 LP 들도 LA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신념이 생기면서 계속 대규모 자본이 LA 스타트업에 투입되는 선순환 사이클이 만들어졌다.

스냅의 많은 직원들도 이 IPO로 인해서 백만장자가 됐다. 이들은 성공적인 회사를 만들었고, 돈도 벌면서 새로운 레벨의 자신감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다른 스타트업에 개인 투자를 하거나, 후배 양성을 위한 액셀러레이터나 VC 펀드를 설립해서 본인이 사업하면서 남들한테 받았던 도움을 다시 pay it forward 하기 시작했다. 이런 사이클이 몇 번 반복되면서 LA도 실리콘밸리와 같은 두터운 창업가와 투자자의 인프라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내가 말하는 자신감이 여기저기서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스냅의 IPO로 큰돈을 못 번 직원들도 작은 회사가 초고속 성장해서 IPO까지 가는 걸 경험했기 때문에, 이러한 경험, 배움, 그리고 자신감을 다른 스타트업으로 그대로 가져가서 스냅과 같은 성공 케이스를 계속 만들기 시작하면서, LA 스타트업 생태계의 자신감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현상이 한국에서도 이제 막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스타트업 분들이 기대하고 있는 토스의 IPO가 초대박이 나길 바라고 있고 마켓컬리 같은 회사도 아주 잘 되길 바란다. 참고로, 우린 토스나 마켓컬리 투자자는 아니다.

자신감에 대해서 – part 1

요새 나는 한국보단 해외 투자자들을 훨씬 더 많이 만나서 이들에게 돈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에게 돈 받는 건 항상 어려운 일이고, 특히나 요새 같이 이자율이 높고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불경기엔 펀딩이 더욱더 힘들어 진다.(VC들의 펀딩이 이렇게 어렵다 보니, 우리 같은 VC에게 투자받아야 하는 창업가들의 펀딩은 더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몇 년 전과 비교해 보면 좋아진 점도 있는데, 그건 바로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와 한국의 벤처 시장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는 것이다. 전에는 잠재 LP들에게 왜 스트롱 같이 한국에 투자하는 VC에 출자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데만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이 설명의 기간이 어떤 경우엔 수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젠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한국이라는 시장에 대한 의문이나 의심은 없을 정도로 한국의 벤처생태계가 그동안 많은 발전을 했다.

내가 잠재 LP들에게 최근에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어떻게 이렇게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안에 한국의 스타트업 시장이 좋아졌냐인데, 이 질문에 대한 짧은 답변은 아주 간단하게 그냥 한국 창업가들의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럼, 왜 한국 창업가들의 수준이 이렇게 좋아졌을까? 여기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 생각, 그리고 각자의 경험이 있지만, 내가 딱 한 가지만 강조하자면, 그건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창업가의 자신감은 정말 중요하다. 내가 하는 사업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 내가 만들고 있는 제품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은 안 되는 사업도 되게 하고, 못 받던 펀딩도 받게 한다. 평소에 잘 안되던 것들이 자신감과 이로 인한 파급 효과로 인해서 하나씩 만들어지는 걸 경험하는 순간, 잠재의식 속에서는 더 큰 자신감이 무의식적으로 생기고, 이건 결국엔 성공의 확률을 높일 수밖에 없다. 창업가들이 이렇게 자신감으로 무장되면, 기업가치 300억 원의 회사를 만들겠다던 목표가 1,000억 원이 된다. 그리고 이 목표가 계속 커져서 결국엔 10조 원짜리 데카콘까지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게 창업가의 자신감이다.

비공식적인 기록이지만, 한국에는 유니콘 기업이 22개나 있다. 작은 나라치곤 엄청나게 많은 유니콘이다. 이런 사실도 한국 창업가들에겐 큰 자신감을 준다.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기업가치가 1조 원 이상인 비상장 회사가 이렇게 많다는 점, 이 중 몇 개의 기업은 본인이 개인적으로 아는 창업가들이 만들었는데, 그들도 그냥 나랑 비슷한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 그래서 어쩌면,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수천억 원의 펀딩을 받고 유니콘 기업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이 창업가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수 있다.

쿠팡의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은 한국 창업가들의 마음에 큰불을 질렀다. 한국 시장만을 상대로 이커머스 사업을 하는 회사가 미국에서 IPO를 했고, 지금은 좀 내려갔지만, 한때는 기업가치가 100조 원에 육박했다는 사실은 한국 창업가들에게 엄청난 자신감을 준 큰 사건이었다. 그동안 항상 한국 시장이 작고,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상장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부정적인 이야기만 들었고, 한국인들도 항상 곧 망할 거라고 확신했던 쿠팡이라는 회사를, 김범석이라는 창업가가 이런 비관론자들에게 마치 fuck you를 날리듯 보기 좋게 성공시켰다.

배달의민족 엑싯도 한국 창업가들에게 큰 자신감을 줬다. 국내에서 학교를 다녔고, 국내에서만 일 한 경험이 있는 순수 토종 창업가 김봉진 대표가 만든 한국의 스타트업이 수조 원의 기업가치에 외국 회사에 인수됐을 때, 많은 한국의 창업가들이 “아, 유니콘은 외국에서 공부한 엄친아들만 만들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구나. 나도 더 열심히 하면 배달의민족보다 훨씬 더 큰 회사를 만들 수도 있겠다.”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할 수 있다는 아주 큰 자신감이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자신감은 창업가들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이들에게 투자했던 VC들에도 해당한다. 스타트업에 투자해서 큰돈을 버는 건 외국 VC에만 해당하는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국내 VC들도 투자한 회사들이 유니콘이 되고, 이들이 엑싯했을 때 엄청나게 큰돈을 벌면서, 앞으로 더욱더 많은 유니콘 회사를 발굴해서 투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 자신감으로 이들은 더 큰 펀드를 만들고, 더 큰 펀드로 더 많은 좋은 회사에 투자하고 있다.

이런 자신감들이 처음에는 작게 생기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서 생기고, 이게 계속 쌓이면서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커지는데, 이럴 때 대단한 일들이 벌어진다.

지금이 바로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앞으로 한국의 스타트업 시장은 더욱더 좋아질 거라고 확신한다.

Part 2에서도 자신감 관련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 싶다.

회사는 놀이터가 아니다

내가 약 5개월 전에 쓴 글 ‘개발자도 회사의 조직원이다’가 최근에 여기저기서 공유가 많이 된 것 같다. 뭐, 이곳은 내 개인적인 블로그라서 남 눈치 안 보고 그냥 내 생각을 끄적거리는데,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도 다르고, 특정 주제에 대한 생각도 달라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여러 가지 의견을 댓글로 남겨줬다.

댓글, 댓글의 대댓글, 그리고 여기에 대한 주인장의 댓글을 모두 합치면 50개가 넘는 코멘트가 있다. 이 중, 그래도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이야기가 가능한 분위기의 댓글에는 내가 최대한 진정성 있는 코멘트를 남겼는데, 그냥 개싸움이 될 것 같은 분위기의 댓글은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그런 코멘트에 대해서는 이번 포스팅을 통해서 아주 간략하게 내 생각을 종합적으로 다시 한번 공유하고 싶다.

일단, 이 글에 이렇게 격한 반응을 해주신 걸 보니, 한국에도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고, 성공에 목마른 개발자들이 많은 것 같아서 너무 다행이다. 이런 분들이 더 많아져야지 스타트업도 잘 되고, 경쟁력 있는 회사들이 많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사과하고 명확하게 하고 싶은 건, 내가 개발자들을 공격하려는 의도로 이전 글을 쓴 건 아니라는 점이다. 기획자이든 마케터이든 개발자이든, 모든 직원은 회사의 조직원인데 굳이 개발자를 꼭 집어서 글을 썼던 이유는 내가 아는 대부분의 조직에선 제품을 만들고 판매해서 돈을 버는 핵심 업무를 하는 그룹 군에서 돈을 버는 기능에 가장 관심이 적은 조직이 개발 조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관점이다.

몇 개의 댓글을 읽어보면, 회사가 잘 돼 봤자 사장만 돈 버는데 내가 굳이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다. 특히나 회사의 지분도 없는데. 이런 분들은 내 블로그에서 불평하지 말고, 소속된 회사의 사장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권장한다. 회사에 돈을 벌어 주는 일을 열심히 하는 직원에게 스톡옵션 또는, 그 어떤 보상도 하지 않는 사장이라면 굳이 이런 회사에 계속 다닐 필욘 없을 것 같다. 그냥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 만약 본인이 열심히 일하지 않거나 실력이 없어서 보상받을 수준이 안되면 그냥 불평하지 말고 그 회사 계속 다니면 된다. 어쨌든 이런 불평을 하면서도 계속 그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본인 자신의 실력을 의심해 봐야 한다.

개발자로서 기술적 모험이 제한된다면 굳이 스타트업에 갈 필요가 없다고 한 분도 있다. 이런 의견에 대한 내 생각 두 가지를 공유한다. 일단 본인이 기술적 모험을 하고 싶다면, 그리고 이 모험이 회사의 비즈니스 방향과 크게 상관없다면(=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면) 이걸 허락하는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 그런데 돈 버는 거와 상관없는 기술적 모험을 허락하는 내가 아는 곳들은 학교 아니면 연구소다. 회사는 아닐 것이다. 또 다른 생각은, 스타트업을 포함한 모든 회사는 개발자들이 기술적인 모험을 하는 놀이터가 아니다. 남의 돈으로 빨리 돈을 벌어서 압축적인 성장을 해야 하는 조직이다. 회사는 돈 받고 그냥 하루 종일 놀다 퇴근하는 곳이 아니다.

또한, 회사라는 조직은 분명히 회사라는 집단의 목표가 있고, 이를 달성해야 하지만, 어떤 분들이 주장하는 개인적인 발전도 동시에 균형 있게 가져가야 한다. 나도 이건 동의한다. 하지만, 우선순위를 매기자면 무조건 회사의 목표가 먼저이고, 이게 어느 정도 된 후에 회사의 목표를 같이 만드는 개인의 발전에 신경 써줄 수 있다. 회사의 목표는 무조건 돈 버는 게 돼야 하고, 여기에 먼저 동참할 수 없다면 개발자든 마케터든 회사에겐 부채가 되고, 부채는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하는 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떤 분들의 댓글을 보고 나는 정말로 이 사람들이 일하는 회사가 어딘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 회사 동료들이 너무 불쌍해서…

이 글 밑에 분명히 멋진 댓글도 많이 달릴 거지만, 거지 같은 댓글도 많이 올라올 것이다. 그 수준과 정도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필요하면 또 한 번 내 의견을 공유하는 포스팅을 올릴 계획이다. 그런데 키보드 뒤에서 인신공격적인 코멘트를 달거나, 너무 멍청한 코멘트를 다는 분들은 익명이 아니라 실명을 밝혀주시면 오히려 더 건설적인 이야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제품도 없는데 수익은 어떻게?

얼마 전에 TechCrunch에서 배양육 산업 관련 기사를 읽었다. 우리도 국내 최초의 배양육 스타트업 셀미트에 투자했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기사를 정독했다. 기사의 제목은 “Even after $1.6B in VC money, the lab-grown meat industry is facing ‘massive’ issues” 였고, 내용은 암울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너도나도 대체 단백질과 배양육 시장에 투자하기 바쁠 땐, 거의 묻지마 투자 수준으로 많은 돈이 이 시장에 투입됐지만, 연구개발에 생각보다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하고, 이후에 관계 정부 부서의 승인 받는 것도 어렵다는 걸 이제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현실은, 연구개발을 하고 승인을 받아도, 결국 돈을 벌기 위해선 배양육 제품을 팔아야 하는데, 시장에서 수용할 수 있는 가격대에 대량 생산하기 위해서는 상상 이상의 돈이 설비와 공장에 투입돼야 하므로 투자자들이 이젠 이 분야를 등한시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실은, 순수 소프트웨어 사업이 아닌, 사람의 개입이 필요한 operation이 필수인 사업도 비슷한 문제에 항상 직면해 있긴 하다. 멀리 볼 필요도 없고 가까운 스트롱 포트폴리오 네트워크에만 보더라도 이런 회사들이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예가 모바일 세탁소 세탁특공대인데, 앱으로 세탁을 맡길 수 있지만, 결국엔 회사에서 세탁물을 수거해서 본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세탁공장으로 운반하고, 여기서 세탁한 후에 다시 고객들에게 배송해야 한다. 분명 소프트웨어 비즈니스이지만, 사업의 절반 이상이 전통적인 물류와 공장 운영이다. 굉장히 돈이 많이 필요하고, 상상 이상의 돈이 설비와 공장에 투입되어야 한다는 점은 위에서 언급한 배양육 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세탁이라는 업은 첫 매출을 만들기 위한 R&D는 필요 없다. 사업을 개선해서 더 많은 매출을 만들기 위한 R&D는 있지만, 이게 없어도 세탁업은 시작할 수 있고, 매출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든 매출과 다른 의미 있는 수치를 기반으로 계속 적당한 밸류에이션에 투자 받으면서 사업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배양육 사업은 오랜 기간 동안 아주 무거운 R&D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제품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돈을 버는 건 시작도 못 한다.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돈을 아예 못 벌면, 투자받는 게 쉽지 않다. 경기가 아주 좋을 땐, 기술력을 평가하고 미래의 수익성을 기반으로 좋은 조건에 큰 투자를 하는 투자자들이 꽤 있다. 실은 우리 투자사 셀미트를 비롯한 이 분야의 많은 회사들이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식으로 투자를 잘 받았다. 하지만, 요새 같은 불경기에 투자자들이 회사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매출이다. 투자자들은 매출을 선호하고, 더 나아가서 수익을 선호한다. 이 상황에서 팔 제품 자체가 없는 스타트업은 어떻게 수익을 만들고, 어떻게 투자를 받을 수 있을까?

아마도 이런 상황에 놓인 창업가들이 꽤 있을 것 같고, 최근에 이런 고민을 하는 분과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이분이 나한테 열변을 토했다. “아니, 아직 제품도 없는데 어떻게 매출을 만드나요? 어떻게 우리 같은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매출을 기반으로 산정합니까? 그러면 우린 밸류에이션이 0인 회사인데요.”

이분은 시드 투자를 받아서 한 2년 동안 열심히 R&D를 해고, 연구 결과도 좋고 방향도 좋아서 실제 제품을 만들고 매출을 발생시키기 위해 추가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만나는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매출이 없어서 거절하거나, 관심 있는 투자자는 매출이 없어서 (본인이 생각하기엔) 터무니없이 낮은 기업 가치를 제시하는 좋지 않은 상황에 부닥쳐있다.

솔직히 나도 이분에게 특별히 해 줄 말이 없었다. 경기가 좋고 시장에 돈이 넘쳐흐를 땐, 제품도 없고 매출이 없어도 기술 그 자체나 시장의 가능성에 투자하는 VC들이 많았지만, 이젠 대부분의 VC들이 매출이 발생하는 회사를 선호하고, 어떤 VC는 매출로도 부족하고 손익분기를 해서 이익이 발생하는 회사에만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창업가가 투자받는 건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런 상황에 처한 창업가가 있다면, 그냥 최대한 많은 투자자를 만나서 제품과 매출이 없는 회사에도 투자하는 곳을 찾는 수밖에 없다. 만약에 운 좋게 이런 곳을 찾더라도, 회사의 밸류에이션과 투자 조건을 결정하는 건 전적으로 투자자의 특권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말을 쉽게 해석해 보면, 투자받는 것도 mission impossible이고, 운 좋게 우리 회사에 관심 갖는 투자자를 찾더라도 좋지 않은 조건에 투자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입장 바꿔서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 즉, 이런 회사들을 자주 만나는 VC의 입장에서,,,실은 지금 이런 상황에 부닥친 회사에 투자하면, 정말 매력적인 조건에 투자할 수 있다. 이 회사에 살아 남아서 정말로 좋은 기술로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면,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확실한 해자를 만들면서 성장하기 때문에 멈출 수 없을 정도로 매출이 잘 나올 것이다. 특히나, 이런 기술을 잘 이해하고, 이 시장을 잘 이해하고 있는 대기업의 전략적 투자 부서가 이런 플레이를 스마트하게 하면, 그 대기업의 미래 먹거리를 생각보다 쉽게 확보할 수도 있다.

노력의 부족으로 실패하지 말자

역대 최악의 성적이 예상됐지만, 반대로 한국이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둔 파리 올림픽이 지난주에 잘 마무리됐다. 나는 대부분의 올림픽 종목을 별로 안 좋아하지만, 국가 대표들이 열심히 경쟁하는 경기라서 그런지 매일 저녁 한국이 참여하는 대부분의 종목을 와이프랑 정말 재미있게 봤던 즐거운 2주였다. 한국은 금 13개, 총 32개의 메달을 따면서 8위로 끝났는데 너무 잘했고, 모두 너무 자랑스럽다. 안세영 선수의 발언과 더불어 그동안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 여러 협회에 대한 불미스러운 일들도 있었지만, 나는 이런 과정이 체육협회와 선수들이 모두 다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는데,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다양한 이변이 많았고, 메달이 당연시됐던 선수들이 형편없는 성적으로 예선 탈락했고, 전혀 기대되지 않았던 선수들이 선전해서 메달을 따기도 했다. 우리나라 태권도 김유진 선수가 그중 하나였던 것 같은데, 세계 랭킹 12위가 세계랭킹 1위와 2위를 모두 이기고 금메달을 획득한 건, 태권도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이변 중 대이변이었다.

이 선수 외에도 랭킹이 한참 아래였거나, 거의 무명의 선수들이 메달을 획득한 사례가 다른 나라에도 몇 개 있었는데, 이 중 몇 명의 경기 후 인터뷰를 보면, 다들 하는 말이 거의 비슷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선수들의 외부 랭킹만 보고 승패를 예측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스스로가 얼마나 열심히 연습하고 훈련했는지 알기 때문에, 충분히 우승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고, 이런 땀과 노력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남들은 이변이라고 하는 결과가 본인에겐 전혀 놀랍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선수는 이런 말을 했는데 이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내 연습량을 내가 잘 알고 있고, 훈련의 양에 있어서는 그 어떤 선수도 나를 능가할 수 없다는 걸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메달이 전혀 신기하지도, 놀랍지도 않다. 당연히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질 수도 있다. 하지만, 패배의 원인이 노력의 부족이면 절대로 안 된다. 노력의 부족 때문이 아닌 다른 이유로 진다면, 아쉽겠지만 절대로 후회는 안 한다.”

실은 내가 우리 창업가분들과 자주 하는 말과 너무 비슷해서 나에겐 더욱더 인상 깊었던 말이었던 것 같다. 우린 모두가 항상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말을 밥 먹듯이 하지만, 또 한 편으론 내가 봤을 때 최선을 다하지 않는 분들도 종종 본다. 물론, 이건 굉장히 주관적인 입장이고 최선의 개념은 모두에게 다르다. 어쨌든, 정말로 사업과 본인의 미션에 헌신(=commitment)을 보이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업도 올림픽 경기와 같이, 아무리 열심히 하고 죽기 살기로 노력해도 잘 안될 수도 있다. 아니, 성공의 확률이 낮기 때문에 잘 안되는 게 오히려 어쩌면 정상적이다. 그래서 사업은 실패할 수도 있고, 실패한 사업가들이 욕을 먹는 건 가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실패의 원인이 노력의 부족이라면,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포트폴리오 회사들이 더는 버티기 힘들어서 폐업을 결정하면, 이런 대화를 많이 한다. “최선을 다했나요? 대표님만큼 치열하고 열심히 노력한 사업가가 주위에 없을 정도로 열심히 했나요? 그랬다면 잘했습니다. 실패의 원인이 노력의 부족이 아니었다면 편안하게 사업 접고 좀 쉬세요.”

실패의 원인이 노력의 부족이 되지 않게 모두 다 치열하게 헌신하는 하루, 일주, 그리고 일 년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