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ersAtWork

이메일 쓰기

letters-2794672_1280바로 전 글에서 진한 감동이 전달되는 이메일에 대해서 썼는데, 내가 수많은 이메일 중 하나에 감동하였던 이유는 내용의 절실함이 나한테 전달됐기 때문이지만, 이런 절실함이 나한테 전달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창업가의 비대면 커뮤니케이션 능력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와이프가 농담처럼 나한테 하는 말 중, “당신 일 자체가 이메일이잖아”가 있는데, 그만큼 내가 대부분의 업무 관련 커뮤니케이션을 이메일로 하고,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것 중 하나가 이메일이다. 그리고 점점 더 바빠지고, 점점 더 커버해야 하는 지역이 넓어지면서 이메일이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렇게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글을 통해서 하다 보니까, 나도 이메일을 쓸 때에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어떻게 하면 가장 적게 글을 써서, 가장 많은 내용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을 상당히 많이 하게 된다. 이렇게 상대방을 보지도 않고, 통화하지도 않으면서, 오롯이 글을 통해서 가장 효율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의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이젠 누가 나한테 쓴 이메일만 읽어봐도 이 사람의 내공, 커뮤니케이션 능력, 사고방식, 그리고 비즈니스에 대한 철학 등이 어느 정도 보인다. 항상 맞진 않지만, 워낙 많은 이메일을 접하고, 이 사람들을 직접 만나도 보니까, 이메일을 통해서 내가 이해해서 대략 머릿속에 그린 창업가의 이미지와 태도는 거의 일치한다.

그래서 나는 창업가가 가져야 할 중요한 능력 중 하나가 바로 글을 잘 쓰고, 이메일을 잘 쓰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좋은 창업가 중 이메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고, 아무리 짧아도, 이들이 쓴 이메일을 보면 항상 간결하고, 직설적이고, 알아야 할 모든 사항이 잘 정리되어 있다. 이와는 반대로, 읽은 후에 도대체 무슨 말인가 하고 머리를 긁적거리게 만드는 이메일을 쓰는 창업가들도 많은데, 역시 이런 사람들은 만나보면 사업을 잘할만한 태도가 잘 안 보인다. 나는 우리 투자사 대표들한테는 나한테 웬만하면 이메일로 커뮤니케이션하라고 한다. 실은 전화 통화하거나, 아니면 그냥 카톡으로 내용을 전달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일부러 같은 내용을 이메일로 보내 달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 사람의 글 쓰는 실력, 그리고 글을 통해서 상대방을 설득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실력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나한테 콜드 이메일을 보내면, 메일의 첫 한 줄만 읽어 보면 내가 이메일 전체를 읽을지, 그리고 이분이 내가 만나고 싶어 할만한 분인지가 바로 결정된다. 글을 잘 쓰면, 계속 읽고, 만날 확률이 높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냥 한 줄 읽고 바로 지워버린다. 실은, 이메일 쓰는 게 익숙지 않은 창업가도 많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 일을 계속하려면, 효과적인 이메일 커뮤니케이션은 필수이기 때문에, 무조건 연습과 훈련하길 권장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마음에서 우러러나오는 편지

157196504812610월은 많이 바쁜 한 달이었다. 뭐, 우리 같은 투자자는 기본적으로 다 바쁘지만, 이번 달은 스트롱 미팅, 프라이머 16기 선발 미팅, 그리고 두 번의 짧은 해외 출장이 있었다. 일본과 동남아에 도착하자마자 미팅만 몇 개 하고 바로 다시 서울로 오니까, 시차는 거의 없지만, 역시 체력적으로 상당히 힘들었다. 그 와중에 한국에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빡빡하게 회사들과 미팅하니까, 집에 오면 온종일 노가다 한 사람같이 쓰러졌다.

그중 하루는 집에 오니까 목이 쉬어서 목소리도 안 나오고 기가 다 빠진 그런 날이었다. 나는 아직도 이메일 받은편지함을 비우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이메일을 하나씩 확인하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이런 긴 하루를 보내면, 중간에 이메일 확인할 시간이 없어서, 엄청나게 많은 이메일이 읽히길 기다리고 있는데, 특히 이날은 보기만 해도 토할 정도로 많았다. 그래서 그냥 중요한 내용만 답변해주고,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이메일은 읽기만 하고, 모르는 사람한테 온 이메일은 그냥 대충 넘어가고 빨리 자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유독 한 이메일이 내 눈길을 끌었다. 모르는 주소에서 온 이메일이라서 그냥 대충 보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 진정성 있는 내용과 창업가의 구구절절한 스토리에 잠이 확 달아났고, 나는 어느새 그 긴 이메일을 한 자도 놓치지 않고 읽고 있었다. 이메일의 단어 하나하나, 그리고 매 줄에서 묻혀 나오는 절박함에서 이분의 얼굴과 표정, 그리고 심정까지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였으니, 이건 엄청나게 잘 쓴 하나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왜 그랬을까? 피곤해서 목소리도 잘 안 나오는 그런 하루였고, 빨리 자고 싶었고, 솔직히 모르는 사람이 나한테 장황한 이메일에 사업계획서를 첨부해서 보내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굳이 이 이메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 이유는?

왠지 이분의 이메일을 읽으면서 나도 뮤직쉐이크 할 때가 생각났던 거 같다. 솔직히 그땐 정말로 돈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였지만, 내가 스타트업 경험이 없어서 아는 투자자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스탠포드와 워튼 동문 주소록을 뒤지면서, 현재 직업이 VC인 동문들한테 하나씩 이메일을 했다. 이때 내 심정은 정말 절실했다. 2008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리만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세계 경제는 곤두박질쳤고, 우리한테까지 돌아올 투자금은 더는 없었다. 그래서 한 명의 VC한테 이메일을 쓰기 위해서, 이분과 이 VC에 대해서 정말 자세히 공부하고 뒷조사를 한 후에야 이메일을 썼는데, 하나 쓰는데 한 시간 넘게 걸린 적도 있었다. 썼다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내 마음이 0과 1의 바이너리가 아닌, 정말 진심으로 상대방에게 비치고 내 간절함이 전달되길 기원하는 (전자)편지를 썼다. 이 중 90%는 답장을 못 받았고, 아마도 읽히지도 않았겠지만, 10%는 어떤 형태로든 나한테 답장을 해줬다. 물론, 이 10%도 결국 “우린 관심 없다” 였지만, 이 중 몇 명의 투자자는 당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나한테 조금만 더, 하루만 더 버틸 수 있는 큰 힘이 되는 지원과 위로의 답변을 해 줬는데, 지금 생각해도 감동이다.

“아, 나도 뮤직쉐이크 할 때 이런 심정이었지. 이분들은 정말 얼마나 절실하게 나한테 본인들의 사업과 인생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꼭 답해주고, 가능하면 만나봐야겠다.” 아마도 위에서 말한 그 이메일을 읽으면서 내가 이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손가락으로 치고, 이게 0과 1로 표시되고, 네트워크를 통해서 나한테 화면으로 전달됐지만, 나한테는 진짜로 마음에서 우러러나오는 편지였다. 그리고 굉장히 피곤한 하루였지만, 이 이메일을 읽은 후에는 참 평온하게 잘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 크라우드픽>

물고기 잡는 법

fish-3062032_1280스트롱과 같은 초기 투자자, 그리고 내가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프라이머와 같은 악셀러레이터는 단순 돈보다는 더 큰 도움을 스타트업한테 제공한다. 어떤 투자사는 체계적으로 제품 빌딩, 팀 빌딩, 투자유치 등과 같은 주제로 교육 코스를 만들어서 초기 창업가들을 도와주면서 포트폴리오 회사에 큰 부가가치를 제공한다. 우리는 이런 시스템을 갖고 있진 않지만, 이제 시작하는 회사가 필요한 여러 가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서 도움을 주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product market fit을 같이 찾고, 능력 있는 인재를 유치할 때 나도 그분을 면접하기도 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스타트업이 성장할 때 가장 필요한 건 좋은 제품, 좋은 돈, 좋은 인재인데, 여기서 좋은 제품은 VC들이 아무리 도와줘도 한계가 있다. 제품 자체는 투자자보단 창업가들이 더 잘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VC들의 도움이 가장 많이 필요한 부분은 후속 펀드레이징과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했을 때, 이 성장을 잘 관리하고 가속할 수 있는 좋은 인재 소개 및 연결이다.

우리도 이제 투자사가 120개가 넘기 때문에, 모든 회사에 내가 이런 도움을 매일 적극적으로 줄 수가 없다. 마음이야 항상 회사의 co-founder와 같이 열심히 대표들과 같이 바닥에서 구르고 싶고, 체력도 아직 20대랑 맞짱뜰 자신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가 없다. 7년 전에 1호 펀드 하나만 운용할 때는 투자사가 별로 없었고, 우리 일도 지금같이 복잡하고 바쁘지 않았기 때문에, 존이랑 나랑 우리 투자사들과 정말 타이트하게 같이 일했고, 특히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 회사들의 미국 지사 역할을 했다. 비석세스가 시작할 때 2012년 beLaunch라는 2,000명 이상이 참석한 큰 행사를 한국에서 했는데 해외에서 온 대부분의 이름있는 손님은 존이란 내가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초대했고, 비론치 행사 준비와 운영에 우리도 깊게 관여했었다. 코빗 같은 경우도, 우리가 제일 먼저 투자했고, 2차 투자는 Tim Draper와 엔젤리스트의 Naval Ravikant와 같은 미국의 좋은 엔젤한테 받았는데, 이 사람들을 연결하고, 투자 관련 대부분의 일을 존이 미국에서 하면서 투자유치를 성공시켰다. 쿠팡에 인수된 Recomio라는 회사의 경우도, 인수 전 과정에 우리가 상당히 적극적으로 관여했고, 이 회사에는 엔지니어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회사의 비즈니스 담당자 역할을 했다.

실은, 이렇게 하니까 우리도 뭔가 뿌듯했고, 결과도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을 해보면, 투자자가 또 너무 이렇게 앞단에 나서서 창업가들과 같이 실무를 하는 게 항상 좋지는 않은 거 같다. 일단 우리같이 많은 회사에 투자하는 VC에게는 한 회사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봤을 때 시간을 가장 생산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아니다. 많은 회사,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기 때문에, 한 회사와 깊게 일하다가, 다시 빠지고, 또 다른 회사와 깊게 일하고, 이 과정을 지속해서 반복해야 하는데, 특정 회사와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면 다른 곳에서 빵꾸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하지만, 현실은…나는 힘들어하는 특정 회사들과 시간을 상당히 많이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안 좋은 건, VC가 힘든 일을 다 대신해주면, 창업가의 경쟁력과 전투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능성이 있는 창업가들한테 투자하고, 이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걸 도와주는 게 초기 VC인데, 이 과정은 시간이 걸리고,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그래서 시간도 없고, 남을 가르치는 것보다 내가 일단 일을 처리하는 게 더 쉽고 간단하기 때문에, 앞단에 내가 나서서 창업가 대신 많은 일을 처리하곤 했는데, 이렇게 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창업가의 경쟁력이 오히려 약해진다는 걸 많이 느꼈다. 펀드레이징 예를 들면, 전에는 피칭 자료를 아예 내가 수정해주고, VC 직접 소개하고, 미팅까지 참석하고, 그 이후의 과정을 follow-up 하는 것까지 내가 다 해주기도 했다. 이렇게 하면, 내가 훨씬 더 익숙한 과정이라서 시간도 절약하고 중간에 발생할 수 있는 마찰과 소음을 줄일 수 있지만, 창업가들이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어려운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배우는 게 별로 없다. 결국, 그다음 라운드를 진행하게 되면,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걸 많이 경험했고, 이러면 오히려 나만 지치고 더 피곤해진다.

그래서 이제 나는 웬만하면 모든 걸 창업가들한테 위임한다. VC 소개가 필요하면 당연히 연결은 내가 해 주지만, 이메일로 한 번 연결하고, 그 이후의 모든 건 알아서 해보라고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우리 투자사와 다른 VC와의 미팅에는 참석하지 않고, 진행하다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좋은 창업가들은 알아서 본인들이 모든 일을 잘 처리하는 걸 종종 경험한다. 대표의 경험 부족과 미숙함 때문에 큰 실수를 해서 일이 잘 안 풀리면, 안타깝긴 하지만, 이것도 나는 이분한테는 값진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더 잘할 것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않을 것이다.

투자를 하다 보면, 한 회사에 우리 단독으로 투자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VC랑 같이 투자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런데 VC마다 철학이 다르고, 전략이 다르고, 투자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중간에 창업가가 이런저런 미세 조정과 조율을 잘 해야 한다. 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커뮤니케이션이 조금만 어긋나도, 큰 오해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오해가 생길 때마다, 나는 전화기를 들고 다른 VC한테 직접 전화해서 우리끼리 잘 이야기하고 오해를 풀고 싶은 충동이 생기지만, 항상 창업가를 통해서 이야기한다. 이렇게 해야지만, 이 창업가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향상되고, 앞으로 있을 수많은 라운드와 인간관계를 핸들링 할 수 있는 경험과 배움이 쌓이기 때문이다. 정말 답답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나는 웬만하면 이젠 절대로 나서지 않는다.

물고기를 잡아주면 하루의 양식이 되지만,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면 평생의 양식이 된다는 말이 있다. 나도 요샌 이 말의 의미를 몸소 체험하고 있고,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게 나한테도 훨씬 편하고, 단기적인 스트레스는 생기지만 장기적인 스트레스는 덜 생긴다는 걸 자주 경험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스톡옵션 가격

전에 스톡옵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글을 꽤 많은 분이 유용하게 읽었다는 이야기를 요새도 가끔 듣는데, 오늘도 스톡옵션 관련 내용이다. 좋은 인재를 영입하고, 이분들이 다른 회사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우리 회사에 계속 남아서 열심히 일하게 하려면 고액 연봉도 필수지만, 회사의 오너십을 일부 갖게 해서 개인과 회사의 이해관계를 일치하게 만들어야 한다. 스톡옵션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회사의 지분을 약속받게 되면 – 지금 당장 받는 게 아니라 미래의 일정 시점에 일정 가격에 회사의 지분을 더 싸게 구매할 수 있고, 어쨌든 본인이 가진 지분의 가치가 높아지려면 회사가 잘 돼야 하고, 회사가 잘 되려면, 본인이 열심히 일해야 하기 때문에 – 옵션이 없는 것보단 애사심을 갖고 열실히 일한다. 이렇게 돼서 나중에 회사가 잘 되면, 창업자, 직원, 투자자 모두한테 가장 이상적인 결과가 만들어진다.

이런 이유로 우리도 일정 수준의 옵션 풀을 적용해서 투자한다. 투자자마다 다르지만, 적게는 10%, 그리고 많게는 25%까지 적용하는 걸 봤다. 옵션 풀을 확보해 놓으면, 그만큼 스톡옵션을 주는 게 쉽고, 그때마다 주주명부를 크게 바꾸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많은 대표가 좋은 인재를 모집하기 위해서 스톡옵션을 부여할 때, 옵션의 가격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궁금해하고, 나 역시 최근에 이와 관련된 질문을 많이 받았다. 비상장 회사의 주식 가격을 산정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로 Fair Market Value(=FMV)를 사용한다. 복잡한 건 아니고, 가장 최근에 투자 받았을 때의 주식 가격을 주로 FMV라고 한다. 우리 회사가 지난주에 주식당 가격 100만 원에 투자를 받았다면, 현재 우리 주식의 FMV는 100만 원이라고 하는 게 그렇게 이상하진 않다. 하지만, 만약에 2년 전에 마지막 투자를 받았고, 그때 가격이 100만 원인데, 그 사이에 회사의 매출이 10배 이상 성장했다면 현재의 주식 가격은 훨씬 더 높아졌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이걸 고려해서 가격을 책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수적으로 그냥 100만 원을 FMV라고 가정한다. 물론, 회사의 가치가 내려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보편적으로는 가장 최근에 투자받은 가격을 기준으로 주식 가격을 책정한다.

그래서 주로 이 FMV 가격을 기준으로, 스톡옵션 가격을 약간 할인해서 산정하는 게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면 가장 낮은 가격에 스톡옵션을 부여하라고 조언한다. 회사와 상관없는 남한테 주는 게 아니라, 모든 이해관계자한테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회사의 밸류를 극대화하는데 가장 핵심이 되는 좋은 인재들에게 부여하는 거라서 굳이 높은 가격에 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열심히 일 한 사람들이 회사에 많은 기여를 하고, 이들이 나중에 옵션을 행사할 때 부담이 안 되는 가격에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어떤 회사는 스톡옵션 가격을 액면가에 주는 경우도 있는데, 이게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가능하다고 알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이게 법적으로 어느 정도 제한되어 있다. 오래전에 미국 국세청에서 409a라는 법을 만들었는데, 이 법에 의하면 스톡옵션이 실제 시장가격(=FMV)보다 너무 낮게 부여되면, 옵션을 받는 사람은 미래에 행사하는 시점이 아니라 옵션을 받는 그 시점에 세금을 내야하고, 회사도 이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복잡한 절차가 있다. 세금을 내지 않으려면, 회사는 제삼자를 통해서 이 스톡옵션의 적당한 시장가격(=FMV)을 정해야 하는데, 위에서 말한 대로 최근에 투자 받았을 때의 주식 가치를 기반으로 주로 산정된다. 한국에는 아직은 이런 법이 없다. 나도 한국법에 대해서 잘 모를 때는, 미국의 409a 법을 생각해서 최근 투자받았던 주식 가격보다 조금 낮게 스톡옵션을 발행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회사의 경영진과 주주들만 동의한다면, 회사에 기여도가 높은 직원들에게는 웬만하면 액면가 또는 그 가격보다 너무 높지 않은 가격에 스톡옵션 주는 걸 권장한다.

그런데 어떤 투자자들은 액면가나 너무 낮은 가격에 스톡옵션을 발행하는 걸 반대한다. 본인들은 이 회사에 투자할 때 훨씬 더 비싼 가격으로 주식을 구매했는데, 그리고 이후 회사의 실적이 더 좋아져서 가치는 올랐는데, 직원들에게 이보다 더 낮은 가격에 스톡옵션을 주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니고, 나도 미국 관점에서 봤을 때는 이런 지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법적으로 가능한 가장 낮은 가격에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을 주는 게 장기적으로는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Under-promise and over-deliver

페이스북이나 링크드인과 같은 long form 콘텐츠를 쓰고 공유 가능한 소셜미디어에는 정말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있고, 이 들은 온갖 종류의 생각, 글, 동영상과 사진을 공유한다. 내가 스타트업 분야에서 일하고 있어서인지, 내 페이스북 친구의 절반 이상은 아마도 일과 연관된 사람들일 것이다. 너무 많아서, 어느 순간 친구 수락 자체를 나는 포기했다. 나도 하루에 여러 번 페이스북에 습관처럼 들어가서 이런저런 글들도 포스팅하고, 남이 포스팅한 글도 보는데, 정말 유용한 정보도 많이 있지만, 대부분 자기자랑글이라는걸 부인할 순 없을 거 같다. 나도 여기에 포함된다.

내가 요새 우리 투자사 대표들한테 좀 자제해달라고 부탁한 부분은, “나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다” 내용의 자랑글은 가능하면 포스팅하지 말아달라 이다. 팀원들과 하루 20시간 이상 일하고 있다는 글, 미친 성장을 위해서 폭풍 야근을 하고 있다는 내용, 제품 론치하기 위해서 매일 밤샘하고 새벽 4시에 집에 가는 걸 자랑하는 글, 주문이 폭주해서 최고의 일매출 도달한 스크린샷, 등등…뭐 이런 내용의 글이다. 뭐, 이게 나쁜 건 아니고, 스스로 어필하고, 회사를 마케팅하는 방법의 하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대한 게 높을수록 실망도 크듯이, 이렇게 계속 대표이사가 페이스북 펌프질하는걸 보고 뭔가 대단한 게 있을 줄 알고 투자자들이 미팅한 후, 숫자를 까보니까 별거 없는 경우가 더 많아서, 크게 실망하고, 오히려 그 대표와 회사에 대한 믿음을 잃는 경우가 더 많은 거 같다. “1년 365일 전 직원이 폭풍야근을 하고, 미친 열정을 갖고 일만 생각하면서, 매월 엄청난 매출 성장과 ROAS를 만들고 있는 회사가 이것밖에 못해?”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가만히 있었으면 본전은 하는데, 오히려 본전도 못 챙기는 상황이 발생한다.

내가 아는 대부분 창업가는 진짜 열심히 일한다. 우리 투자사 대표 중 몇 년째 하루 20시간 일하는 사람도 있고, 이분들한테는 스타트업이 인생 그 자체다. 이렇게 깊은 사명감으로, 정말 열심히 일하면, 솔직히 소셜미디어에 하루가 멀다고 주저리주저리 포스팅할 시간도 없다. 이런 분들은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않고, 행동으로 실행하고 숫자로 보여준다.

내가 우리 대표들한테 드리는 충고는 “under promise, over deliver(덜 약속하고 더 해주어라)”이다. 여기저기 너무 과장 광고를 많이 하고 다니면 어쩔 수 없이 더 약속하고 덜 해주게 되는데, 열심히 일했다는 내용의 긴 포스팅을 쓸 시간에 고객 한 명 더 만나거나, 그냥 잠을 더 자는 게 회사에는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