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바이블 QA

벌이는 놈, 말리는 놈, 치우는 놈

우린 가급적 1인 창업팀에는 투자를 잘 안 한다는 이야기를 전에도 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사업 능력의 이슈라기보단, 사업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힘듦과 외로움 때문인데, 자세한 건 이 글을 참고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가 선호하는 가장 이상적인 창업팀의 구성은 어떻게 될까? 이 질문을 내가 상당히 많이 받는데, 그동안 머릿속의 생각을 명확하게 정리해서 설명하는 게 어려웠다. 그냥 단순하게 개발 잘하는 사람들, 펀딩 잘하는 사람들, 본인보다 똑똑한 사람들 잘 채용하는 사람들, 뭐 이 정도였는데, 나도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가장 이상적인 창업팀의 구성을 조금 더 명확하게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

최근에 이런 생각을 좀 정리해 봤다. 어떤 기준으로 보는가에 따라서 수만 가지의 답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창업팀에는 인원수와는 상관없이 일을 벌이는 놈이 있고, 이걸 말리는 놈이 있고, 그리고 벌인 걸 치우는 놈이 있어야 한다. 이런 성향의 사람들이 창업팀에 골고루 있어서 상호 보완하면서 동시에 상호 견제할 수 있다면, 이 팀은 오랫동안 깨지지 않고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깨지지 않고 사업을 하다 보면, 뭔가 하나 정도는 성공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단 벌이는 놈은 창업가의 전형적인 인재상이다. 모든 걸 일반화하는 건 위험하지만, 이런 분들은 대부분 E 성향이고, 머릿속에 너무나 많은 아이디어가 생기는데, 이걸 스스로 정화하는 능력보단 모든 걸 발산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 그래서 모든 아이디어를 실행해야지만 만족하는 그런 성향의 창업가다. 문제는, 현실적으론 하나만 해도 성공하기 힘든데 하루가 멀다고 새로운 제품이나 기능을 출시하려고 하니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다. 특히 벌이는 놈들의 가장 큰 단점은 벌이기만 하지 마무리를 못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걸 말리는 놈도 창업팀에 있어야 한다. 전형적인 I 성향인데, 그냥 웬만하면 일을 잘 안 벌이는 그런 성향의 창업가다. 아무것도 안 벌이는데 어떻게 창업하게 됐냐고 물어보면, 웬만하면 일을 안 벌이지만 정말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꼭 하는 성격이고, 꼭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창업했다고 한다. 이런 분들의 장점은 옆에서 뭔가를 계속 벌이는 공동창업가의 앞길을 계속 막으면서 일을 못 벌이게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단점은 일을 안 벌이기 때문에 일단 많이 시도해 봐야지만 이 중 몇 가지가 성공하는 확률 게임에서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있다.

벌이는 놈과 말리는 놈이 치열하게 싸우지만, 어쨌든 뭔가를 계속 해야 하는 게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결국엔 벌이는 놈이 항상 이기게 되어 있다.(크게 이기는 건 아니고, 살짝). 위에서 이야기 한 대로 벌이는 놈의 단점은 마무리를 못/안 한다는 건데, 여기서 치우는 놈이 등장해서 똥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일의 매듭을 잘 짓는다.

이런 사람들이 골고루 잘 갖춰진 창업팀이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다. 실은 그 어떤 팀이 하더라도 스타트업은 대부분 실패한다. 하지만, 위에서 말 한대로 이런 사람들로 구성된 창업팀이 안 깨지고 오래 가는 걸 나는 경험했고, 좋은 팀이 깨지지 않고 오랫동안 사업을 같이 하다 보면 반드시 뭔가 하나는 성공하는 걸 가끔 봤다.

버팀의 미학

최근에 우리가 6~8년 전에 투자했고, 아직도 생존하고 있고, 투자 당시의 그 비즈니스를 그대로 하는 스타트업 대표님들을 오랜만에 각각 만났다. 이분들과 이야기하면서 내 머릿속에서는 고마움, 안타까움, 그리고 걱정, 이 세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 힘든 길을 거의 10년 동안 우직하게 가고 있다는 점, 유니콘 사업은 아직 못 만들었지만 그래도 먹고 사는 사업을 만들었고, 어떤 곳은 흑자전환까지 했다는 점은 초기 투자자로서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거의 10년이나 했는데 아직 너무 작은 스타트업으로 남아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 보면 안타까움과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10년 동안 임계 규모를 못 만들었다면, 앞으로 10년 동안도 못 만들 확률이 더 크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우리 투자금은 어떻게 회수할까 현실적인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전 세계의 스타트업을 보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큰 성장을 못 했지만, 탄탄한 사업모델을 만든 창업가들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엑싯이 만들어지는 걸 꽤 많이 봤고, 실은 우리가 투자한 회사도 이 카테고리에 속하는 곳들이 있다. 이 회사들은 대부분의 사업 성공과 성과가 엑싯하기 전 1~2년 동안 다 만들어졌다. 즉, 창업 후 10년 만에 엑싯을 했다면, 9년 동안은 아무도 모르는 회사로 매일매일 진흙밭을 굴렀고, 마지막 1년 동안 갑자기 급성장해서 모든 성과를 만들었다는 의미다.

이런 창업가들은 내가 봤을 때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던 것 같다. 일단, 이분들은 최소 5년 이상 사업을 했고, 사업하는 동안 한눈팔지 않았다. 실은 이렇게 오래 사업을 하면서 성과가 없고, 주변에 많은 동료창업가들이 메타버스나 NFT 같은 아이템에 올인 하기 시작하면 피봇팅을 해볼 만도 한데, 이분들은 그냥 자신이 하던 사업에만 계속 집중했다. 물론, 그 시장에서는 여러 가지 작은 시도를 엄청 많이 하면서 될 것과 안 될 것을 나름 분류했다.

이렇게 오래 사업을 하다 보면 – 그리고 아예 시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사업이 아닌 이상 – up/down이 있지만, 가끔 아주 잘 될 때가 있다. 이 잘 되는 기간에는 한국 시장의 특성상 수많은 경쟁 스타트업들이 시장에 나온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 단기간에 폭발적인 성장을 만드는 게 힘들다고 판단하는 순간 많은 경쟁사가 다른 시장으로 이탈하거나, 너무 이 사업을 쉽게 봤던 스타트업들은 문을 닫는다.

그리고 5년, 7년,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되는데, 어느 날 잠깐 숨을 돌리기 위해서 내 주변을 보면, 그동안 나랑 코피 터지면서 경쟁하던 스타트업들은 다 없어졌고, 어느 순간 나 혼자만 남게 되고 나 혼자만 이 시장에서 잘하고 있다. 마치 높은 산을 오를 때와 비슷하다. 산 아래에는 사람들이 엄청 많고, 등산을 시작할 땐 모두 다 자신감과 의지가 가득 찼지만, 지형이 험해지고, up/down이 심할수록 중간마다 낙오자들이 발생한다. 초반에 너무 페이스를 올렸다가 중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고, 체력이 약해서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쳐서 산행을 중단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냥 남 신경 안 쓰고, 꾸준히 나만의 등산을 하는 사람들만 끝까지 남는다. 이분들은 앞만 보고 자기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데, 산 정상 근처까지 와서 뒤를 보면, 그렇게 많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단 한 명도 보이지 않고 혼자 정상에 서게 된다.

스타트업도 비슷한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한 분야에서 잘 버티던 나만 혼자 이 분야에 남았고, (아직은) 유니콘이 못 됐지만, 어느 순간 이 분야에서 일등이 되어 버린 것이다. 위에서 말한 우리 투자사들이 이런 회사들인 것 같다. 규모는 아직은 작지만, 특정 분야에서 오랫동안 버티면서 사업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 버티칼에서 일등 스타트업이 얼떨결에 되어 있는 것이다. 너무 작은 버티칼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라는 의문도 있지만, 시장이 엄청나게 파편화되어 있는 거지 그렇게 작은 시장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이런 오래된 창업가들에게 거는 희망이 크다.

무작정 버티면서 사업하는 게 정답은 아니다. 오히려 오답일 가능성이 훨씬 크고, 그냥 밑도 끝도 없이 버티는 건 병신 같은 짓이다. 하지만, 느리지만 계속 성과가 만들어지고, 시장이 존재하지만 크게 파편화되어 있어서 규모가 안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면, 언젠가는 큰 사업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럴 경우에는 버텨보길 권장한다. 버팀의 미학은 지금은 너무 고통스럽고 혼란스럽지만, 언젠가는 나를 이 시장의 유일한 절대강자로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기름기 빼기

우린 lean 스타트업을 과할 정도로 찬양하고, 모든 스타트업이 린하게 운영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 lean 하다는 말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기름기가 빠졌다는 의미인데, 모든 창업가들이 자신들이 운영하는 스타트업을 정기적으로 저울에 올려서 무게와 지방을 재야 한다. 절대적인 몸무게도 중요하지만, 체지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비만이라고 판단되면 기름기를 빼는 노력을 상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많은 스타트업이 시작할 땐 아주 lean 하게 운영된다. 워낙 가진 게 없기 때문에 이렇게 시작할 수밖에 없고, 이런 내, 외부 환경 때문에 본질이 뭔지 잘 파악하고, 이 본질에만 집중한다. 즉, 해야 할 일만 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건 안 한다. 초기 스타트업은 이걸 잘하므로 기름기를 뺄 필요가 없다. 이 단계에는 체지방률이 거의 운동선수 수준이다.

하지만, 이렇게 린하게 만든 제품이 시장에서 인정받고, 창업 당시엔 상상도 못 했던 기업가치에 엄청난 투자를 받은 후부터 몸집이 커지면서 지방이 빠르게 축적된다. 돈이 넘쳐흐르면, 대부분의 창업가들이 하는 게 쓸데없이 많은 사람을 채용하고, 이후엔 본인들이 사업하고 있는 분야에서 모든 걸 할 수 있는 슈퍼 앱이 되기 위해서 계속 몸집을 불린다. 이 몸집 불리는 것도 린하게 해야 하는데, 많은 스타트업이 근력을 늘리면서 건강하게 몸을 키우지 않고, 기름기를 섭취해서 지방으로 몸을 키운다. 여기서부터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잘 나가던 회사들이 몸에 기름기가 축적되면서 온갖 성인병(=스타트업병)에 걸려서 무너지는 걸 너무 자주 보고, 듣고, 읽는다.

멀리서 보지 않고, 가까운 우리 투자사들에도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좋은 소프트웨어 DNA를 가진 창업팀이 아주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서 특정 분야에서 조금씩 인지도가 생기고 있고, 꽤 괜찮은 조건에 대규모 투자를 받으면, 원래 본인들이 잘하는 소프트웨어를 더욱더 뾰족하게 만들어서 그 시장에서 압도적인 1등 회사가 되는데 모든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갑자기 돈이 넘쳐흐르고, 사람을 대규모 채용하면서, 하지 않아도 되는 걸 자꾸 하고, 안 써도 되는 곳에 돈을 쓰게 된다. 다른 회사가 만든 하드웨어에 본인들이 가장 잘하는 소프트웨어를 장착해서 사업하던 회사가 갑자기 하드웨어를 본인들이 만들기 시작하거나, 남이 잘 만든 소프트웨어 API를 이용해서 본인들이 가장 잘하는 효율적인 운영이 사업의 핵심인 회사가 갑자기 소프트웨어를 자체 개발하기 시작하는 게 이런 대표적인 현상이다.

돈과 인력이 있으면, 모든 걸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위에서 말 한 소프트웨어 회사는 하드웨어 개발에 엄청난 돈과 시간만 낭비하고 결국엔 원래 사용하던 남의 하드웨어로 다시 돌아갔다. 남의 API를 사용하던 회사도 본인들이 직접 개발을 시도했지만, 역시 엄청난 돈과 시간만 낭비하고 다시 원래 사용하던 남의 소프트웨어로 다시 돌아갔다. 옆에서 보기엔 쉬워보였고 – 왜냐하면, 본인들이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서 – 돈과 사람만 있으면 우리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이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아주 비싸게 배운 것이다.

이렇게 회사에 기름기가 쌓이다 보면, 잘 나가던 회사가 고꾸라지는 건 정말 시간문제다. 다행히 지난 몇 년 동안은 내가 아는 대부분의 회사들은 원래 본인들이 하던 본질로 돌아왔고, 꼭 해야만 하는 일만 하고 있다. 경기가 좋지 않아서 다들 몸에서 기름기를 확 뺐고, 린한 생활을 완벽하게 일상화했다. 불경기가 좋은 계기가 돼서 앞으로 모든 스타트업들이 린한 운영을 일상 생활화하길 바란다.

The Startup Bible – 2023 정리

해마다 12월 마지막 주에는 한 해 동안 쓴 글에 대해 정리하는데, 2023년도 이제 며칠 안 남아서 이 블로그의 한 해를 정리해 본다.

2032년에 난 96개의 글을 – 이 글 포함 – 올렸는데, 이는 3.8일에 한 번씩 블로깅을 한 셈이다. 매주 월요일, 그리고 목요일 포스팅을 하니까, 포스팅 수치는 거의 같다. 긴 휴가를 가거나, 월요일과 목요일이 공휴일이면, 새 글을 잘 안 쓰기 때문에 약간의 차이는 날 수 있다. 96개의 포스팅을 읽기 위해서 The Startup Bible 블로그를 방문한 분은 오늘을 기준으로 총 224,471명이다. 월평균 18,706명, 하루평균 615명이 방문한 셈이다. 작년 대비 15% 정도 트래픽이 증가했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글을 더 자주, 많이 포스팅하면 트래픽이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것 같다. 가끔 예상치 못하게 인기가 많은 글이 올라오면, 이 트래픽은 더 올라간다. 올해는 바빠서 더 자주 포스팅하고 싶다고 생각할 여유도 없어서 그냥 꾸준히 일주일에 두 번만 글을 썼다. 당분간은 이 페이스를 유지할 계획이다.

2023년도에 가장 많이 읽힌 Top 10 글은 다음과 같다:

1/ 스타트업의 지분 할당
이 글이 왜 가장 많이 읽혔는진 나도 잘 모르겠다. 실은 이 글은 내가 우리 투자사 대표들과 자주 공유하는 글인데, 그렇다고 내가 수천 명의 대표들과 이 글을 공유한 건 아니라서 이 글이 많이 읽힌 건 의외였다. 그냥 나름대로 상상해 보면, 많은 스타트업이 성장하면서 더 좋은 인력을 외부에서 영입하거나 내부에서 승진시켜야 하는 필요성을 깨닫고 있고, 이때 회사의 지분이나 스톡옵션을 어느 정도 부여해야 하는지 많이 고민하는 것 같다. 건강한 고민이고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2/ 자존감과 체력
이 글은 실은 나의 원픽이다. 정신적으로 더 힘들수록 육체적으로 더 많은 운동을 하라는 조언인데, 체력이 좋아지면 자존감도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이건 과학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내년도 열심히 운동하시길!

3/ 재택근무, 사이드잡, 그리고 떨
올해 미국 출장을 꽤 많이 갔는데, 갈 때마다 느꼈던 재택근무의 단점에 관해서 쓴 포스팅이다. 동의하는 분들도 있었고, 강하게 동의하지 못한 분들도 있었는데, 이건 사람마다 다르고, 회사마다 다르고, 나라마다 다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개인적으론 재택근무에 대해서는 매우 매우 부정적인 입장이다.

4/ 슈퍼앱의 위험
누구나 다 만들고 싶어 하는 게 모든 걸 다 해결하는 슈퍼앱이지만, 그만큼 만들기 어려운 게 슈퍼앱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모든 창업가들이 쫓는 신기루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하는데, 처음부터 너무 슈퍼앱이라는 허무맹랑한 목표를 잡지 말고, 아주 작은 기능에서 시작해서, 이걸 지속적으로 확장하면 궁극적으론 슈퍼앱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5/ 한국인들의 7 가지 실수
해마다 Top 10에 들어가는 스타트업바이블의 고전이다. 이 글을 쓴 지 13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매해 2,000명 이상 읽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가장 많은 댓글이 달린 글이기도 한데 23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고, 나는 전부 다 읽어 봤는데 댓글들을 읽을 때마다 세상은 참 다양하고, 다양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느낀다.

6/ IRR, Multiple, 그리고 DPI
이 글은 아마도 VC들, 또는 이들에게 자금을 제공해 주는 LP들이 많이 읽지 않았겠느냐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본다. 벤처 펀드를 평가할 때 중요한 지표가 IRR, Multiple, 그리고 DPI인데, 이 중 IRR과 Multiple은 허수가 많이 있고, 투자를 좀 해 본 사람들이라면 DPI라는 수치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잘 알 것이다.

7/ B2B 이탈 방지
B2B – 특히, B2B SaaS – 제품은 개발하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이걸 기업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힘들게 확보한 고객사가 이탈하면 제품을 만들고 있는 스타트업엔 타격이 큰데, 이런 B2B 고객의 이탈에 대한 내 생각을 두서없이 정리해 본 글이다.

8/ 마른 수건 쥐어짜기
올해 정말 힘든 한 해였다. 마른 수건 쥐어짜듯이 비용을 줄이고, 인력도 줄이고, 주변 모든 창업가들이 피똥 싸면서 버텼다. 그런데 우리 투자사들을 보니, 마른 수건을 쥐어짜고, 또 쥐어짜는 걸 반복하면서 비용구조를 극적으로 개선 시키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

9/ 일인 창업팀
항상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일인 창업팀은 좋은 점보다는 그렇지 않은 점이 많은 것 같다는 내 개인적인 생각을 글로 정리해 봤다. 일인 창업가 팀이 혼자서 사업을 잘 못 할 것 같아서 걱정하는 게 아니라, 창업이라는 정말 외로운 길을 혼자서 오래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이다.

10/ 벤처 혹한기의 장점
불경기는 벤처 생태계의 모든 분들에게 괴로운 시기임은 분명하지만, 예상치 못 했던 장점 또한 있다. 돈이 없기 때문에 모두 다 돈을 아끼고, 어떻게 하면 매출을 만들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흑자를 만들 수 있을지, 이런 건강한 고민을 호경기 대비 훨씬 일찍, 그리고 훨씬 자주 고민하기 때문에, 불경기 때 좋은 회사가 창업될 확률은 상대적으로 높다.

이상 2023년에 가장 많이 읽힌 글 10개였다. 작년에도 이 말을 한 것 같은데, 몇 년 전만 해도 가장 많이 읽힌 10개 포스팅을 정리하다 보면, 그 전 해의 탑텐 글과 절반 이상이 겹쳤었는데, 올해는 겹치는 글이 딱 한 개밖에 없었고, 대부분 2023년도에 새로 올라온 글들이 가장 많이 읽혔다. 뭐, 이게 특별히 좋거나 나쁘다는 건 아니고 그냥 해마다 얕게 분석하면서 발견하는 이런 사실이 재미있다.

올해도 이렇게 1년 동안 쓴 글들을 분석하면서 스타트업 바이블의 2023년을 마무리해 본다.

Happy New Year everyone!

제품, 영업, 그리고 시장

한국의 B2B 시장에 대해서는 내가 이 블로그에서도 여러 번 글을 썼는데, 나는 그동안 전형적인 B2C 강국이었던 한국에서도 앞으로 5년 안으로 여러 개의 B2B 유니콘이 – 특히 B2B SaaS 회사 –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우린 지난 몇 년 동안 꽤 많은 한국의 B2B 회사에 투자하면서 이런 우리의 믿음과 가설을 직접 테스팅해보고 있는데, 기대가 매우 크다.

하지만, 지금 당장의 현실은, 이 시장이 활짝 커지려면 아직은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시장의 인식이 많이 바뀌어야 하는데, 이걸 우리가 투자하는 B2B 창업가들과 우리 같은 투자사들이 서서히 바꿔 나갈 수 있길 바란다.

우리 B2B 회사들과 올해는 꽤 많은 대화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사업을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바이럴을 타면 한순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일반소비자를 대상으로 사업하는 B2C 서비스와는 달리 기업을 대상으로 영영업해야 , 의사결정 과정도 복잡하고, 막상 구매 결정을 해도 여러 단계의 결제 과정을 거쳐야 하는 B2B 솔루션은 생각만큼 잘 안 팔린다. 아니, 생각만큼 잘 안 팔리는 게 아니라, 그래도 사용할 만한 제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 1년 동안 단 한 개의 제품도 판매하지 못한 회사들도 있다.

왜 안 팔릴까? 이 부분을 우린 집중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팔리지 않는 문제를 제품의 문제, 영업의 문제, 그리고 시장의 문제로 구분해 봤다.

일단 우리 제품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뜯어봐야 한다. 우리 잠재 기업 고객의 문제점을 우리가 정확하게 파악했는지, 그리고 이 문제를 정확하게 해결해주는 솔루션을 우리가 제대로 개발하고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잘 만들었더라도 다른 경쟁사보다 더 싸고, 더 좋고, 더 빠른 솔루션을 만들었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만약에 어느 정도의 시장이 존재하는데 우리만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건 우리 제품이 후졌거나, 아니면 우리가 영업을 못 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팔릴만한 제품을 만들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위에서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 봤는데 우리 제품에는 전혀 문제가 없고, 이 제품을 살 수 있는 고객들도 충분히 많이 존재한다면, 영업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B2B 제품은 B2C 제품과 같이 제품만 잘 만들어 놓고 메타나 구글에서 유료 광고를 하면 바로 입소문이 나서 바이럴을 타는 성격이 없다. 기업 고객 면전에서 우리가 만든 제품을 보여주고, 사용법을 알려주고, 직접 홍보를 해야지만 판매가 된다. 그것도 여러 번을. 즉, 영업을 아주 잘해야 한다. B2B 영업은 상당히 특별하고 독특한 기술이 필요하고, 한국에 스타트업의 B2B 영업을 제대로 하는 인력은 상당히 귀하다.(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 출신 B2B 영업 인력은 스타트업 영업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전에 내가 여기서 몇 자 적어봤다). 어느 정도의 시장이 존재하고, 우리가 아주 기깔난 제품을 만들었는데 매출이 없다면, 우리의 영업 실력을 의심하고 영업 프로세스를 전면 재검토해 봐야 한다.

제품도 잘 만들었고, 영업도 잘하는데, 판매가 안 된다면, 시장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즉, 이 시장이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우리가 방향을 잘 못 잡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은 제품에 문제가 있으면 더 잘 기획하고 개발해서 제품력을 개선하면 되고, 영업력이 약하면 이 또한 어느 정도 보강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을 잘 못 선택했다면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시장이 생길 때까지 그냥 기다려야 하는데, 스타트업은 그 전에 현금이 고갈되어서 망할 확률이 높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가 시장의 문제라면 그냥 피봇하는걸 나는는 권장한다. 물론, 한국에서만 존재하지 않고 옆나라 일본이나 먼나라 미국에는 수조 원의 시장이 있다면, 글로벌 시장 진출로 전략을 바꿀 수도 있지만, 이건 또 완전히 다른 레벨의 고민거리라고 생각한다.

B2B 사업을 하고 있다면, 그리고 잘 안되고 있다면, 제품, 영업, 또는 시장 중 정확히 어디서 가장 큰 문제가 발생하는지 잘 파악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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