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바이블 QA

내 잠을 설치게 하는 것들

내가 창업가들에게 가끔 물어보는 질문이 있는데, “요새 잠을 잘 자지 못하게 하거나, 잠을 설치게 하는 고민들이 있다면 어떤 게 있나요?”이다. 영어로 하면 “What keeps you up at night?”인데 한국어로 번역하면 조금 어색하긴 하다. 내가 창업가들에게 항상 물어보는 게 아니라, 가끔 물어보는 이유는, 이 질문은 내가 첫 미팅이 아니라, 어느 정도 상대방을 안다고 생각할 정도로 만나 본 후에 물어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우리가 그동안 몇 개월 동안 대화를 하고 있던 우리의 잠재 투자자가 나한테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나는 이 질문을 그동안 창업가들에게 해 왔었지만, 정작 내 잠을 설치게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몇 분 생각을 했었다. 요샌 내가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나를 힘들게 하거나 괴롭히는 것들은 없지만, 현재 내 가장 큰 고민거리는 지금 만들고 있는 새로운 펀드를 빨리 끝내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경험을 보면, 펀드를 하나 새로 만드는 건 힘들고 지루하고 시간이 걸리는 것이지 불가능한 건 아니라서, 이번 펀드도 그냥 시간이 걸릴 뿐이지, 결국엔 다 만들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이건 실은 일시적인 고민이다.

조금 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내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밤잠을 설치는 걱정과 생각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우리가 계속 초기 투자를 하면서 스트롱이라는 브랜드가 어떻게 하면 처음과 끝이 항상 같게, 계속 의미 있는 존재로 남을 수 있을까인데, 이걸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초기 투자자로서 계속해서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이다. 실은 영어로 말하는 게 제일 정확한데, “how do we continue to stay relevant?”이다. 너무 세상이 빨리 바뀌다 보니, 우리도 외부 변화에 맞춰서 빠르게 적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뻔한 말이지만, 결국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건 변화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정신없는 변화 속에서도 우리가 항상 지켜야 할 원칙들이 있다. 이 또한 뻔한 말이지만, ‘원칙’이라는 말에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몇 가지 변하지 않는 원칙, 그리고 그 원칙을 둘러싼, 계속 바뀌어야 하는 변수들, 이 것들을 제대로 구분해서, 원칙을 변수랑 착각하지 않으면서, 지금까지 우리를 존재하게 했던 것들을 계속 유지하는 고민. 이게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첫 번째 고민이다. 시장에서 의미와 영향력이 사라지면, 우리 같은 VC는 그냥 한 방에 훅 가는 것이라서 아주 심각한 고민이다.

두 번째는, 갈수록 늘어나는 남에 대한 신경과 관심을 끄고, 어떻게 하면 남이 아닌 나 자신에게 모든 생각을 집중할 수 있을까이다. 한국은 장점이 너무 많은 나라인데, 단점 또한 많다. 아마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단점은 모두 다 남을 만족하기 위해서 살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남의 목소리, 남의 의견,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이게 과해지면 본인의 목소리, 본인의 의견, 본인의 시선을 점점 잃어버리면서, 결국 내 인생을 불특정 다수의 남을 위해 살다가 죽게 되는데, 한국 사회가 이렇게 가고 있다는 느낌을 가끔 받는다. 틀린 결정을 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보면 된다는 말도 있는데, 한국 사람들은 모두 다 이런 틀린 결정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본인의 생각보단, 항상 남의 의견이 더 중요하니까. 나는 틀린 결정을 하더라도, 남이 결정해서 내가 틀리기보단, 그냥 내가 결정해서 내가 틀리는 걸 선호한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남이 아닌 나에게 모든 걸 집중하고 싶은데, 한국에서 투자하면서 이걸 지킨다는 게 그렇게 쉬운 건 아니다.

며칠 전에도 자기 전에 이 두 가지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잠을 약간 설쳤는데, 그래도 나쁜 고민이라기보단 좋은 고민이고, 뭔가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내가 계속 신경 써야 하는 좋은 점이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생각의 꼬리를 잘라버리고 잠들었다.

노가다에 대해서

투자자나 창업가나 스케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우리가 자주 하는 질문은 과연 특정 사업이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성장이 가능할까인데 영어로 이 질문을 하면 “이 비즈니스가 얼마나 scalable 할까?”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의 유니콘 회사가 아주 빠르게 성장을 했고, 스케일이라는 말을 스타트업 분야에서 워낙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창업가들이 이 단어에 집착한다고 난 생각한다. 아주 효율적으로, 아주 빠르게 성장하는 건 당연히 좋고, 투자자로서 나도 스케일이 가능한 사업을 발견하면 좋아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쉽게, 그리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비즈니스는 요새 정말 찾기 힘들다. 나는 오히려 이런 비즈니스가 있다고 하면 약간 의심하고, 너무 많은 창업가들이 필요 이상으로 스케일이라는 말에 집착하는 것 같다.

최근에 워낙 경기가 안 좋다 보니, 많은 창업가들이 성장보단 생존에 집중하고 있는데, 계속 성장을 하고 싶어 하는 창업가들은 이런 상황이 죽고 싶어질 정도로 답답할 것이다. 우리 투자사 대표 몇 분은 이런 답답함과 짜증 남에 대해서 우리랑 편안하게 자주 이야기하는 편인데, 최근에 했던 이런 대화가 기억난다. B2B 제품을 만들고 있는데 영업 속도가 느리고 매출 성장이 너무 더뎌서 매우 초조해하고 스트레스 받고 있는 분과의 미팅이었다.

일단, 기업에 판매할 B2B 제품은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B2C 제품보단 주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 우리가 투자한 어떤 B2B SaaS 회사들은 제품만 만드는 데 1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힘들게 제품을 만들었는데, 이 제품을 기업 고객에게 판매하는 건, 더 힘들고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첫 번째 B2B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 한 달 이상 영업하는 경우도 자주 보는데, 이렇게 해서 확보한 고객에게 발생하는 매출은 기대 이하이다. 이분은 이런 식으로 하면, 일 년 열심히 영업해도 유료 고객이 15개도 안 될 것이고, 이들로부터 나오는 매출도 크지 않아서, 과연 내가 맞는 방법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지, 이렇게 고객 한 명 한 명씩 영업하는 방법이 맞는 건지 스스로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서 ‘미친 성장’을 하는 다른 스타트업같이 아주 효율적으로 노가다 없이 스케일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회사는 아주 잘될 것이라고 믿는다. 내 솔직한 의견은, B2C 제품이나, B2B 제품이나, 노가다 없이 스케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언론에서는 마치 쉽게 사업을 확장하고, 스케일이라는 말을 모든 스타트업이 가져야 할 필수 덕목같이 포장하는데, 나는 큰 스케일은 수많은 작은 노가다가 축적될 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샌 웬만한 사람들이 다 사용하는 드롭박스 같은 제품도 사업 초반에는 창업자가 직접 지인들 사무실을 방문해서 이들의 PC에 제품을 설치해 주고, 사용법을 가르쳐주면서 성장했고, 에어비앤비도 창업자들이 직접 호스트의 숙소를 방문해서 사진을 찍어서 대신 올려주면서 성장했다. 우리 투자사 당근도 판교에서 아주 작게 시작했는데, 창업자들이 직접 물건을 하나씩 올려서 판매하면서 시작했다.

동네 가게를 위한 B2B 제품을 만들고 있다면, 우리가 만든 제품을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노력으로 가장 많은 동네 가게 사장님들에게 한 방에 크게 노출할 수 있는지 고민할 시간에, 그냥 하루 종일 동네 가게 문 두드리고 찾아가서 영업하는 게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루 종일 뚜벅뚜벅 걸어 다니면서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이들에게 직접 제품을 설치해 주다 보면, 진짜 사업에 대해서 배울 수 있고, 세상이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 몸으로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고객 한 명씩 상대하면서 노가다 작업을 하는 게 맞는 방법인지 계속 스스로 의심하겠지만, 고객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두 명이 다섯 명이 되고, 다섯 명이 50명이 되면서, 그때부터 사업엔 스케일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스케일이 생기기 전 까진 그냥 옛날 방식대로 하나씩 해야 한다. 소위 말하는 노가다를 뛰어야 한다.

스케일은 가만히 책상에 앉아서 손가락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직접 발로 뛰어야 하고, 이런 노가다를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큰 스케일이 만들어진다. 대신, 멈추지 말고 계속 해야 한다. 내가 이전 포스팅에서도 말했지만, 세상의 모든 큰 일은 아주 작은 일을 계속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회사는 놀이터가 아니다

내가 약 5개월 전에 쓴 글 ‘개발자도 회사의 조직원이다’가 최근에 여기저기서 공유가 많이 된 것 같다. 뭐, 이곳은 내 개인적인 블로그라서 남 눈치 안 보고 그냥 내 생각을 끄적거리는데,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도 다르고, 특정 주제에 대한 생각도 달라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여러 가지 의견을 댓글로 남겨줬다.

댓글, 댓글의 대댓글, 그리고 여기에 대한 주인장의 댓글을 모두 합치면 50개가 넘는 코멘트가 있다. 이 중, 그래도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이야기가 가능한 분위기의 댓글에는 내가 최대한 진정성 있는 코멘트를 남겼는데, 그냥 개싸움이 될 것 같은 분위기의 댓글은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그런 코멘트에 대해서는 이번 포스팅을 통해서 아주 간략하게 내 생각을 종합적으로 다시 한번 공유하고 싶다.

일단, 이 글에 이렇게 격한 반응을 해주신 걸 보니, 한국에도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고, 성공에 목마른 개발자들이 많은 것 같아서 너무 다행이다. 이런 분들이 더 많아져야지 스타트업도 잘 되고, 경쟁력 있는 회사들이 많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사과하고 명확하게 하고 싶은 건, 내가 개발자들을 공격하려는 의도로 이전 글을 쓴 건 아니라는 점이다. 기획자이든 마케터이든 개발자이든, 모든 직원은 회사의 조직원인데 굳이 개발자를 꼭 집어서 글을 썼던 이유는 내가 아는 대부분의 조직에선 제품을 만들고 판매해서 돈을 버는 핵심 업무를 하는 그룹 군에서 돈을 버는 기능에 가장 관심이 적은 조직이 개발 조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관점이다.

몇 개의 댓글을 읽어보면, 회사가 잘 돼 봤자 사장만 돈 버는데 내가 굳이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다. 특히나 회사의 지분도 없는데. 이런 분들은 내 블로그에서 불평하지 말고, 소속된 회사의 사장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권장한다. 회사에 돈을 벌어 주는 일을 열심히 하는 직원에게 스톡옵션 또는, 그 어떤 보상도 하지 않는 사장이라면 굳이 이런 회사에 계속 다닐 필욘 없을 것 같다. 그냥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 만약 본인이 열심히 일하지 않거나 실력이 없어서 보상받을 수준이 안되면 그냥 불평하지 말고 그 회사 계속 다니면 된다. 어쨌든 이런 불평을 하면서도 계속 그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본인 자신의 실력을 의심해 봐야 한다.

개발자로서 기술적 모험이 제한된다면 굳이 스타트업에 갈 필요가 없다고 한 분도 있다. 이런 의견에 대한 내 생각 두 가지를 공유한다. 일단 본인이 기술적 모험을 하고 싶다면, 그리고 이 모험이 회사의 비즈니스 방향과 크게 상관없다면(=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면) 이걸 허락하는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 그런데 돈 버는 거와 상관없는 기술적 모험을 허락하는 내가 아는 곳들은 학교 아니면 연구소다. 회사는 아닐 것이다. 또 다른 생각은, 스타트업을 포함한 모든 회사는 개발자들이 기술적인 모험을 하는 놀이터가 아니다. 남의 돈으로 빨리 돈을 벌어서 압축적인 성장을 해야 하는 조직이다. 회사는 돈 받고 그냥 하루 종일 놀다 퇴근하는 곳이 아니다.

또한, 회사라는 조직은 분명히 회사라는 집단의 목표가 있고, 이를 달성해야 하지만, 어떤 분들이 주장하는 개인적인 발전도 동시에 균형 있게 가져가야 한다. 나도 이건 동의한다. 하지만, 우선순위를 매기자면 무조건 회사의 목표가 먼저이고, 이게 어느 정도 된 후에 회사의 목표를 같이 만드는 개인의 발전에 신경 써줄 수 있다. 회사의 목표는 무조건 돈 버는 게 돼야 하고, 여기에 먼저 동참할 수 없다면 개발자든 마케터든 회사에겐 부채가 되고, 부채는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하는 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떤 분들의 댓글을 보고 나는 정말로 이 사람들이 일하는 회사가 어딘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 회사 동료들이 너무 불쌍해서…

이 글 밑에 분명히 멋진 댓글도 많이 달릴 거지만, 거지 같은 댓글도 많이 올라올 것이다. 그 수준과 정도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필요하면 또 한 번 내 의견을 공유하는 포스팅을 올릴 계획이다. 그런데 키보드 뒤에서 인신공격적인 코멘트를 달거나, 너무 멍청한 코멘트를 다는 분들은 익명이 아니라 실명을 밝혀주시면 오히려 더 건설적인 이야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평판 만들기

작년에도 12개월이 참 빨리 지나갔는데, 올해는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 같다. 우린 올해도 창업가들 많이 만나고 있고, 투자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펀드도 만들고 있는데, 요새 워낙 경기가 안 좋아서 남의 돈을 받는 게 정말 어렵다는 걸 매번 느끼고 있다. 특히, 미국 투자자들은 미국의 주식 시장이 워낙 좋고, 미국 VC들의 성적도 좋기 때문에, 그냥 미국에 투자하면 돈을 어느 정도 벌 수 있어서, 굳이 우리같이 한국 시장에 투자하는 펀드에 투자할 이유가 매우 강하진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우린 돈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나는 정기적으로 해외 투자자들을 만나서 열심히 영업하고 있는데, 그동안 스트롱의 성적이 그렇게 나쁘지 않음에도 투자자들을 시원하게 설득하는 게 매우 어렵다. 그래서 한 2~3주 외국 나갔다 다시 한국 들어올 때 빈손이면(=돈을 한 푼도 못 받음) 힘이 많이 빠지긴 한다.

하지만, 최근에 내가 외국 투자자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당장 돈을 주진 않지만, 아주 기분 좋은 피드백을 주는 분들이 있었다. 처음 만나는 어떤 투자자가 악수하면서 “우리 이미 Strong에 대해서 들어봤어. Your reputation precedes you.”라는 말을 하는데, 먼 땅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으니까, 기분이 묘하게 좋긴 했다. 실은 이 말은 부정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고, 긍정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는데, 내 앞에서 이 말을 직접 했으니까 아마도 긍정적인 의미였을 거로 생각한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스트롱의 평판은 익히 들었기 때문에 너희 믿을 만 한 거 알고 있어.” 정도의 의미일 것 같다.

아마도 이 말은 우리가 투자를 엄청나게 잘해서라기 보단, 10년 넘게 크게 욕먹거나 나쁜 짓하지 않고 꾸준히 투자하고 있어서 들었던 것 같다. 평판이라는 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 또한 내가 자주 강조하는 복리의 힘이 제대로 작용하는, 정량화하기 힘들지만, 우리 같은 VC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인생/직장에서의 KPI가 아닐까 싶다.

투자하다 보면 성적표가 계속 왔다 갔다 한다. 누구나 다 아는 유니콘 회사에 투자해서 돈을 벌 수도 있고, 누구나 다 아는 대박 망하는 회사에 투자해서 돈을 잃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부침을 반복하면서도 자기만의 철학으로 투자를 꾸준히 해야지만, 투자자로서의 평판을 만들 수 있다. 그냥 계속 한 우물을 꾸준히 파다 보면,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할 수 있고, 오랫동안 사업을 하면서 살아남으면 항상 좋은 기회가 생기는 걸 나는 몇 번 경험했다. 그리고 이렇게 오랫동안 좋은 사업을 하면 평판이라는 게 조금씩 만들어진다.

이건 우리 같은 투자자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투자하는 창업가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 주변에는 유행만 쫓아가면서 3년 만에 돈 좀 벌어서 엑싯하고 싶어 하는 창업가들도 너무나 많고, 이 중 똑똑하고 사업 잘하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스트롱이 투자하고 싶어 하는 창업가들은 최소 10년은 바라보면서 꾸준히 사업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유행에 너무 민감해서 한 우물을 못 파는 창업가들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물론,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도 이런 분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쉽게 사업을 하고 싶어 하고, 유행을 좇고, 피보팅을 끊임없이 한다. 물론, 이렇게 해서 잘 되는 경우도 가끔 봤지만, 대부분 그냥 맥없이 망한다. 그리고 이런 분들은 평판이란 것 자체가 안 만들어진다.

한국에서도 이런 말을 요새 들었는데, 미국에서도 이제 창업가들이 일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본인을 홍보하고, 소셜미디어에서 하루 종일 떠들어야 하고, 여기저기 강연도 다니고, 다른 회사에 개인 투자도 하고, 딴짓도 많이 해야지 사업도 잘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뭐, 누구나 다 자기만의 생각이 있지만, 나는 이 말에 별로 동의할 수 없다. 내가 아는 좋은 사업을 만든 모든 창업가는 절대로 딴짓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고, 사업가로서의 평판은 본인의 사업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제품과 고객에게 집착하고, 좋은 사람들을 회사로 데려오는데 시간을 쓰는 대신, 행사만 다니고 자기 홍보만 하면 초반에는 바이럴을 만들고, 어쩌면 펀딩은 크게 받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10년 이상 가는 사업을 만드는 창업가는 없었던 것 같다. 창업가나 VC나 펀딩을 크게 받거나 큰 펀드를 만들면 단기적으론 유명해지겠지만, 장기적인 평판을 만드는 건 좋은 사업과 좋은 투자이고, 이건 인내심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아무리 복싱 연습을 열심히 해도, 실제 링 위로 올라가는 건 정말 어렵다. 하지만, 링 위에 올라가는 것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건 링 위에서 12라운드 동안 계속 버티면서 싸우는 거다. 평판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경쟁에 임하는 자세

여전히 난 아침에 운동하면서 음악과 팟캐스트를 번갈아 듣고 있다. 얼마 전에 비즈니스 관련 흥미로운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몇 가지 메모를 했었는데, 내가 평소 경쟁에 대해서 생각했던 부분과 일맥상통하는 포인트가 있어서, 내 머릿속에서 스스로 정리하는 차원에서 여기서 몇 자 또 적어본다.

미국의 한적한 휴양지 동네에 있는 작은 멕시칸 타코 식당을 운영하는 한 오너쉐프가 사업 하면서 지금 가장 어려운 점에 대해서 이미 이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선배 창업가의 조언을 듣는 인터뷰인데, 이 자영업자/창업가가 요새 밤잠을 설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는 처음 들어봤지만, 쉐프들에게 주는 꽤 유명한 상을 받은 이 창업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동네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타코 가게를 몇 년째 운영 중이다. 인상적인 내용은 살사(소스)를 직접 가게에서 만들고, 또르띠야랑 칩스도 외주 주문하는 게 아니라 가게에서 직접 하나씩 다 만드는, 말 그대로 수제 타코 가게인데, 이 말만 들어도 맛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멕시칸 프랜차이즈의 헤비웨이트인 치포틀레가 이 동네로 진출한다는 발표를 했고, 공교롭게도 치포틀레 매장이 이 창업가의 가게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오픈한다는 공포스러운 소식 또한 발표됐다.

이 창업가의 질문은, 이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예상될 때, 다윗이 취할 자세와 구사할 전략에 관해서였다. 이에 대해 좋은 피드백이 많이 제공됐는데 내가 평소 경쟁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에 대해 생각했던 부분과 상당히 비슷했다. 이미 대형 경쟁사와 싸워 본 경험이 있는 선배 창업가들의 피드백과 평소 내 생각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일단, 쉽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치열하게 싸워도 질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고, 성경에서는 운 좋게 다윗이 이겼지만, 현실에서는 골리앗이 대부분 이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들과 할 수 있는 것들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건, 경쟁사의 우리 골목상권 진입을 막거나 방해하는 것이다. 이미 우리 구역으로 진출하기로 했고, 이와 관련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어떤 것도 없다. 여기에 괜히 시간과 에너지는 쓰지 말자. 우리가 또 할 수 없는 건, 이들과 가격으로 경쟁하는 것이다. 치포틀레와 같은 대기업은 볼륨의 왕이기 때문에, 우리보다 원가는 항상 낮을 수밖에 없고, 이들이 원한다면 우리보다 항상 가격을 낮출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가격을 낮추든 안 낮추든, 일단 우리 마진의 30%는 무조건 날아갈 것이라는 걸 명확하게 인지해야 하고, 명확하게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지 않아도 된다. 작은 가게도 충분히 강점이 있고, 할 수 있는 게 있다. 대기업이 잘하는 게 많지만, 작은 가게가 잘하는 것도 많다. 이 타코 가게의 경우 모든 음식을 즉석에서 요리해 주는데, 이렇게 하면 맛은 월등할 수밖에 없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제공할 수 없는 탁월한 맛을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 동네에서 장사를 해서 이 가게는 이미 동네 주민 커뮤니티의 일부가 됐고, 이런 소속감과 커뮤니티십을 잘 활용하면 단골 손님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가지 나온 예시가, 지역에서 활동하는 음악인과 밴드를 매주 초대해서 라이브 음악을 들으면서 수제 타코를 먹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기업이 잘 못 하는 고객과의 접점을 더욱더 강화해서 서비스의 수준을 지속적으로 높이는 것이었다.

종합하자면, 우리만의 차별점을 더 뾰족하게 만들어야 하고, 식당의 경우 이건 주로 맛과 서비스를 더욱더 갈고 닦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은, 너무나 당연한 건데, 이렇게 당연한 게 대부분 잘 안 지켜진다.

한국은 골목상권과 대기업 간의 싸움이 미국보다 더 언론화되고 큰 이슈 거리가 된다. 대기업이 골목상권에 진입하면, 우리나라의 정서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골목상권과 자영업자의 편이 돼서 대기업을 맹공한다. 나도 대기업이 모든 걸 다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력하지만, 반대로 누구나 다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다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제일 아쉽고 짜증 나는 건, 위에서 말 한 타코 가게 창업가같이 이 어려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자영업자들이 많이 없다는 점이다. 모두 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입을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주장만 하는데, 막상 이들의 골목 빵집, 분식집, 슈퍼, 밥집에 가보면 거지 같은 서비스에 형편없는 제품을 팔면서, 힘들어 죽겠다고 불평하는 자영업자들도 너무 많다.

이 치열한 세상에서 뭐라도 제대로 하고 싶다면, 작은 경쟁이든, 큰 경쟁이든, 경쟁을 피할 순 없다. 이럴 때 우리가 경쟁에 어떤 자세와 태도로 임하는지가 매우 많은 걸 결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