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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습관

얼마 전에 우리의 오래된 투자사의 이사회 미팅에 참석했다. 아주 힘든 사업을 하고 있는데, 10년 전 창업할 땐, 창업가들도 이렇게 힘든 사업인 줄 몰랐고, 투자자들도 이렇게 힘든 사업인 줄 몰랐다. 그동안 실수도 많이 했고, 돈도 많이 까먹으면서 개고생했는데, 이제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적인 운영 방법을 찾았고, 그동안 마이너스 나는 사업을 하다가 작년부터 손익분기점을 넘으면서 흑자를 만들고 있다. 나도 이런 창업가들과 오랫동안 같이 일하다 보면 정말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사업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지만, 실제론 인생에 대해서 정말 많이 배운다. 이런 힘든 사업을 무에서 시작해서 돈을 버는 과정을 옆에서 보다 보면, 가끔은 제삼자인 내가 토할 정도로 힘든 사업을 이분들은 어떻게 저렇게 버티면서 묵묵히 앞으로 나갈까,,,라는 존경심이 항상 생긴다. 어쨌든, 창업가 예찬은 다른 포스팅을 통해서 따로 하겠다.

같은 이사회 멤버인 다른 투자자분이 이 회사가 드디어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을 보고, “흑자를 내는 것도 습관입니다. 앞으로 계속 이 습관을 유지하세요.”라는 말씀을 했는데, 나도 이 말에 너무 격하게 공감했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다. 일주일, 한 달, 일 년, 십 년의 반복을 통해서 만든 습관은 생활을 변하게 하고, 결국엔 인생을 바꿔놓는다. 습관을 만드는 것도 어렵고, 이후에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만드는 게 더 어렵다. 일단 한번 잘 만들어 놓으면, 몸이 기억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이 습관을 불러 올 수 있다.

회사가 돈 버는 것도 마찬가지다. 돈 버는 습관을 만드는 건 정말 어렵다. 하지만, 쓸데없는 짓 하지 않고, 거창한 스타트업 놀이하지 말고, 겉만 번지르르한 사업을 하지 않고, 그냥 매일, 일주일, 한 달, 일 년, 십 년 동안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벌기 위해서 노력하다 보면 돈 버는 게 습관화되고, 흑자를 내는 것도 습관이 된다. 한 번 만든 흑자는 두 번의 흑자를 만들고, 이는 평생의 흑자로 이어질 수 있는, 창업가들의 인생과 회사의 미래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얼마 전에 ‘슈퍼 마리오 효과‘라는 글을 썼는데, 돈을 버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해야 하고, 이를 계속 반복하다 보면, 실수를 많이 할 것이다. 실수하면, 우리 몸은 이 실수를 고치기 위해서 노력한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그리고 운이 좀 따른다면, 돈 버는 사업이 만들어지고, 이를 또한 계속 반복하다 보면 흑자가 만들어진다. 한 번 온몸으로 경험한 흑자 만드는 방법은 몸에 습관처럼 남기 때문에, 앞으로 이를 계속 반복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마치 운동선수의 우승과 비슷하다. 이겨본 놈이 계속 이길 수 있다는 말을 우린 자주 하는데, 시합에서 한 번 이긴 선수는 승리의 자신감이 생기는데, 이 자신감은 뇌 일부분을 자극하고, 이 부분이 자극받으면 반복적으로 우승할 수 있다.

흑자를 내는 것도 습관이다. 스타트업 놀이 말고, 돈 버는 걸 습관으로 만들어라.

선교사와 용병

창업가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요새 내가 “이분은 이렇다. 저분은 저렇다.”라고 구분할 때 자주 사용하는 비유가 missionary와 mercenary 창업가다. 우리말로 딱 떨어지는 번역은 없지만, 편의를 위해서 나는 missionary 파운더를 사명형 창업가라고 하고, mercenary 파운더를 용병형 창업가라고 한다. 사명형 창업가는 어떤 깊은 목적이나 사명감 때문에 창업했고, 사업을 하면서도 결국 이 사명감을 실천하는 것에 집중한다. 용병형 창업가는 이 반대의 의미인데 단기적인 수익이나 큰 엑싯을 꿈꾸면서 창업했고, 사업을 하면서도 계속 돈에 집중한다.

쉽게 말하면, 사명형 창업가는 큰 비전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고, 용병형 창업가는 세상을 바꾸는 건 잘 모르겠고, 그냥 돈을 엄청 많이 벌고 싶어 한다. 실은, 막상 이 두 유형의 창업가들을 만나보면, 이런 사전적인 의미같이 흑백으로 이분들을 구분하기보단, 어떤 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냐,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즉, 사명형 창업가도 엑싯을 하고 싶고 돈도 벌고 싶어 하지만, 미션/비전 또는 돈 중 하나만 선택하자면 전자이고, 용병형 창업가도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 미션과 비전이 있지만, 하나만 선택하자면 돈을 선택한다.

나한테 굳이 어떤 유형의 창업가를 선호하는지 물어본다면 나는 항상 용병형 창업가를 조금 더 선호했다고 할 수 있고, 최근 5년간 이런 내 선택은 더욱더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용병들 쪽으로 기울어졌다. 많은 투자자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에 투자하고, 물질적인 욕심보단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창업가들을 선호하는데, 나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미션을 주장하는 창업가보단, 그냥 미팅에서 “어렸을 때 가난해서, 돈을 정말 많이 벌고 싶다.”라고 솔직히 말하는 창업가들을 좋아했다. 돈 벌기 위해서 사업하는 건 어떤 사람들이 보기엔 깊이가 없고 얕아 보일 수 있지만, 지금까지 내 경험에 의하면 돈은 사업의 성공을 위한 최고의 동기 부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보고 느낀, 이 두 부류 창업가들의 또 다른 점은 바로 이들의 진화의 과정이다. 나는 오히려 용병형 창업가가 시간이 갈수록 사명형 창업가가 되는 걸 봤는데, 사명형 창업가는 계속 더 사명형 창업가가 되는 걸 경험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세상을 바꾸는 것과 미션 따위는 전혀 상관없이 그냥 단순히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창업한 분들이 시간이 흐르고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이들에겐 아직도 돈이 매우 중요하지만, 뭔가 세상에 좋은 기여를 하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돈이 생기면 마음의 여유가 조금 더 생기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반대로, 사명형 창업가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 세상을 바꾸겠다는 미션에 대해 더 집착하고 더 깊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아는 많은 하드코어 사명형 창업가들은 이런 강한 개인적인 성향을 주장하면서 돈을 버는 것엔 관심을 덜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용병형 창업가들은 거창한 전략이나 로켓 성장하는 미래를 약속하기보단, 그냥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매출을 만들고 사업을 잘 돌아가게 만드는 데 집중한다. 대부분 학벌이나 경험이 그다지 대단하진 않지만, 무조건 돈을 벌고, 사업 놀이가 아닌, 진짜로 사업을 하겠다는 그릿(grit)이 다른 창업가들보단 강한데, 얼마나 강한가 하면 이런 용병 정신이 실제로 눈빛에서 보인다.

나는 미셔너리인가, 아니면 머서너리인가? 돈 버는 사업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사업 놀이를 하고 있는가? 모두 한번 생각해 보자.

소프트웨어는 방법을 찾는다

2월 26일 엔비디아가 4Q 실적 발표를 했다. 이렇게 큰 회사가 아직도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면서 AI 시장을 장악하는 동시에 스스로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때 나는 출장 중이었는데, 호텔에서 CNBC의 실적 발표 후 젠승황과의 인터뷰를 봤다. 여러 가지 재미있는 내용, 젠슨황의 자신감, AI가 가져올 큰 변화 등이 그대로 느껴지는 인터뷰 내용이었다.

젠슨은 일도 잘하고, 영어도 완전히 미국인처럼 유창하게 하고, 자기 관리도 철저해서 언론에 나오면 항상 보기도 좋고 듣기도 좋은 CEO라고 생각한다. 그와의 인터뷰는 항상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이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소프트웨어는 알아서 방법을 찾는다(software finds a way)”

대충 무슨 말인진 모두 다 알 것이다. 엔비디아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GPU 칩을 만드는 하드웨어 회사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엔비디아는 소프트웨어 회사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설명이다. 이들은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을 때, 일찍이 GPU를 만들기 시작했고, 남들보다 너무 일찍 시작했기 때문에 지난 30년 동안 GPU 하드웨어에 대한 독보적인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했다. 실은, 이 하드웨어 경험만으로도 따라잡기 힘들 텐데, 여기에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실력도 그동안 연마할 수 있었다. 결국엔 하드웨어를 잘 구동 시켜서 같은 환경에서 더 높은 성능을 뽑기 위해선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다는 걸 그동안 배웠기 때문에, 내가 여기저기서 듣기로는, 엔비디아의 높은 기업가치는 하드웨어보단 이런 소프트웨어 실력 덕분인 것 같다.

하드웨어는 한 번 만들면 고치기 힘들고, 그 구조 자체가 경직되어 있어서 유연성과는 거리가 멀다. 반면에, 소프트웨어는 추가 비용 없이 초기 버전을 얼마든지 수정하면서 비약적인 개선이 가능하다. 유연한 소프트웨어는 물과 같이 흐르면서, 물리적으로 제한된 하드웨어, 나라마다 다른 산업적 규제, 그리고 계속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기술을 진화시키고 최적화하면서 지금, 이 시점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방향으로 제자리를 항상 찾아간다.

그런데, 젠슨의 이 말을 조금 더 깊게 들어가서 해석해 본다면, 아마도 이분은 항상 방법을 찾는 소프트웨어를 찬양한 게 아니라, 이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드는 엔지니어들을 찬양하기 위해서 이 말을 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우리 투자사 창업가분들과 오랫동안 같이 일하다 보면, 항상 많은 걸 배우면서 느끼는데, 역시 가장 놀라운 건 이들의 생존력과 적응력이다.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아도, 이들은 절대로 망하지 않고, 어떻게든 사업을 지속하기 위한 방법을 알아서 찾는다. 내가 이런 분들을 보고 바퀴벌레 같다는 존경의 비유를 자주 하는데,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에 바퀴벌레를 가두어도 결국엔 방법을 찾아서 탈출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큰 위기에 봉착해서 더 이상 길이 안 보이는데, 우리의 창업가들은 무조건 방법을 찾는다.

이런 사람들이 만든 소프트웨어는 젠슨이 말 한대로, 불가능을 가능케 할 것이고,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만들 것이다. 나는 젠슨의 인터뷰를 보면서, 이분이 엔비디아의 뛰어난 소프트웨어를 칭찬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는 뛰어난 엔지니어들을 찬양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알아서 방법을 찾는 사람들은 엔비디아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매일 만나고 투자하는 창업가들이야말로 항상 알아서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다.

등잔 밑은 항상 어둡다

(이 블로그에 쓰는 글은 당연히 다른 사람이 다 읽을 수 있지만, 이 글은 남보단 내 스스로의 반성, 배움, 그리고 성장을 위해서 쓴다.)

우리가 2018년도에 투자한 Norae라는 미국 스타트업이 있다. Ryan이라는, 한국 분은 아니지만,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을 좋아하는 창업가가 시작한 회사다. 회사 이름 Norae(노래) 자체가 이 팀이 얼마나 케이팝을 좋아하는지 그대로 보여주는데, 첫 번째 비즈니스는 틱톡의 모태가 된 Musical.ly랑 동일했다. 립싱크하는 동영상과 커버댄스 동영상을 남들과 공유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였는데, 여기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콘텐츠가 케이팝이었다.

콘셉트는 재미있었지만, 사업 자체는 썩 잘되지 않았다. 아니, 잘 안된 게 아니라 진짜 별로였다. 똑똑한 창업가들이 정말 열심히 일했지만, 워낙 작은 회사라서 돈도 없었고, 나도 뮤직쉐이크를 통해서 배웠지만, 음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소셜 미디어가 돈을 제대로 벌 수 있는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건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작은 투자금은 다 썼고, 팀원은 대부분 떠났고, 그러면서 우리가 흔히 아는 스타트업 폐업의 길로 접어들었다. 물론, 이 창업가는 포기하지 않았다. 공동 창업가와 방법을 찾아서 계속 서버비를 벌고 앱 자체는 운영이 되게 정말 열심히 허슬했다. 중간에 한 명씩 차례로 다른 회사 업무를 해주면서 외주비도 벌고, 하여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동원해서 바퀴벌레같이 살아남았다.

그런데 틱톡이 너무 커지자, Norae의 가능성은 점점 더 없어졌고, 아마도 이 시점에 다다르면 대부분 창업가들이 그냥 회사 문을 닫을 텐데, 이 회사의 코파운더들은 피봇을 시도했고, Coverstar라는 어린이들을 위한 안전한 TikTok과 유사한 앱을 만들어서 출시했다.

미국 회사라서 한국 창업가만큼 자주 연락하거나 만날 순 없었지만, 그래도 정기적으로 계속 이야기하고, 상의할 게 있으면 조언도 하면서 이 팀의 변화를 나는 계속 지켜봤다. 내가 항상 바퀴벌레같이 절대로 죽지 말고 살아남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맘속에서는 그냥 회사 문 닫는 게 모두를 위해서 맘 편할 텐데 또 안 될 앱을 새로 만드는 게 안쓰럽기도 했다.

어쨌든 이렇게 꾸역꾸역 조금씩 진도를 나아갔고, 우리가 첫 기관 투자자이기도 하지만, 초반부터 창업가의 허슬과 노가다를 가까이서 봤기 때문에, 사업 관련 모든 내용을 지속적으로 투명하게 공유해줬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우리에게 추가 투자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개인적으로 친한 주관적인 감정과 느낌을 배제하고 냉철하게 이 사업, 제품, 팀을 – 팀이라고 해봤자, 코파운더 두 명밖에 안 남았다 –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판단하면 잘 될 가능성이 너무 낮은 사업이라고 판단해서 이 회사에 스트롱이 단독으로 추가 후속 투자하는 건 아니라는 결론을 매번 내렸다. 여러 번 검토했지만, 매번 우리 팀에서는 pass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최근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a16z에서 이 회사에 투자한 것이다. 그것도 단독으로. 이 투자자에게 피칭했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지만, 실제로 텀싯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내가 들었을 때, 즉시 내 머릿속에 “왜 우린 투자하지 않았지?” , “우리만 뭔가 못 봤던 건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크고 유명한 VC에게 투자받는다고 해서 사업이 잘되는 건 아니고, a16z가 잘 못 판단한 투자도 수두룩하게 많다. 그래도 이렇게 크고 경험이 많은 VC가, 우리가 수년 동안 잘 알고 있었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매번 투자하지 않은 우리 포트폴리오사에 후속 투자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기쁘기도 했지만, 뭔가 아쉽고 허전했다. 우리가 만약에 이전에 이 회사에 추가 투자했다면, 훨씬 더 싸고 좋은 조건에 투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까 약간 배가 아프기도 했다.

전형적으로 등잔 밑이 어두웠던 케이스였다.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제일 친하다고 생각했던 우리 포트폴리오사를 실은 우리가 제일 잘 몰랐던 것이다. 아니, 몰랐던 건 아니고, 오히려 너무 잘 알고, 너무 오랫동안 본 팀이고, 이 팀이 그동안 어떤 고생을 했는지 샅샅이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어쩌면 우린 그 뒤에 숨은 장기적인 가능성을 간과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크고 유명한 VC에서 투자했다고 그 회사가 장기적인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순 없지만, 어쨌든 난 스스로 이번 계기를 통해서 여러 가지 역발상적인 생각과 반성을 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지난 13년 동안 투자했던 모든 포트폴리오사를 다시 한번 검토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팀 전원이 좋은 창업가와 회사를 남보다 먼저 찾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는데, 어쩌면 스트롱 포트폴리오에 이런 분들이 있는데 등잔 밑이 어두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너무 가까이 있어서 너무 친하고, 너무 잘 알고, 너무 당연한 것들의 진가를 우린 못 알아볼 때가 있는 것 같다. 우리 투자사의 후속 투자가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됐는데, 이는 투자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서 생각해서 봐야 하는 쉬워 보이지만 매우 어려운 숙제다.

세상은 노가다

몇 년 전에 넷플릭스에서 화제가 됐던 요리 다큐멘터리 ‘길 위의 셰프들’을 이제서야 난 봤다. 한국 편에서는 광장시장도 소개되고 칼국수와 빈대떡 같은 한국 요리도 하이라이트 돼서 한국에서도 꽤 인기가 많았던 다큐멘터리였던 것 같다.

태국 편에서 태국 길거리 음식의 여왕이라는 쩨파이라는 분이 소개됐다. 방콕의 ‘란쩨파이(=쩨파이네 식당)’ 식당의 오너셰프인데 길거리 식당 치곤 드물게 미쉐린 1스타를 받은 식당이라서 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식당이다. 항상 손님들이 줄 서 있고, 블랙핑크의 리사를 비롯한 웬만한 유명 인사가 방콕을 방문하면 꼭 들리는 필수 명소다. 이 식당은 원래 현지에서는 유명했지만, 2017년도에 미쉐린 별을 받으면서 란쩨파이는 세계적인 식당의 반열에 올라갔고, 쩨파이는 유명 인사가 됐다.

쩨파이씨와의 인터뷰를 보면 미쉐린 1스타를 받은 2017년도가 그녀의 인생이 완전히 바뀐 한 해(=transformational year) 였다고 한다. 그전에는 그냥 평범한 태국 요리를 재미있는 방식으로 요리하는 길거리 요리사였는데, 2017년 이후에 그녀는 평범한 태국 요리를 그녀만의 창의적인 방법으로 해석해서 재탄생시키는 글로벌 셰프가 됐고, 이후에 전 세계에서 방콕을 방문한 김에 란쩨파이에 오는 손님들에서 란쩨파이에서 먹기 위해서 방콕을 방문하는 손님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쩨파이씨는 전 세계 요리사들의 부러움의 대상이다. 한 번도 정식으로 요리 훈련을 받거나 요리 학교나 학원에서 공부한 적이 없이, 그냥 어릴 적부터 요리를 어깨 넘어 따라 하면서 배운 사람이 미쉐린 별을 받는 경우가 그렇게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요리사들이 그녀를 부러워하고, 어떤 분들은 시기하기도 한다. 어쩌다가 반짝 떴고, 운 좋게 개천에서 용이 탄생했다고 이들은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쩨파이씨는 1970년 말에 요리에 입문했고, 단 한 순간도 요리를 멈춘 적이 없다. 그녀는 매일, 매시간, 새로운 방식의 요리에 대해서 연구했고, 새로운 재료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녀는 미쉐린 별을 받은 2017년도가 인생을 바꾼 한 해였다고 하지만, 실은 그 1년 뒤엔 남들이 모르는 40년의 노력이 있었다. 40년 동안의 끊임없는 노가다, 즉 끊임없는 육체적 노동이 단련되고 쌓이면서 그녀의 인생을 바꾼 2017년도에 폭발한 것이다. 인생을 완전히 바꾼 이 일 년이 만들어지기까진 수십 년의 노력, 근면, 성실, 그리고 노가다가 있었다는 점을 많은 분들이 무시하거나 간과한다.

우리 같은 VC는 주로 기술에 투자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해야 하는 노가다를 경시한다. 우린 항상 자동화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빠른 스케일을 신격화한다. 우린 모든 걸 건너뛰고 미친 듯이 성장하는 제이 커브를 꿈꾸고, 투자하는 사람들이 맨날 이런 이야기만 하니까 이들에게 투자받기 위해서 창업가들도 무리하게 제이 커브로 성장하는 방향으로 모든 자원을 집중하고,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사업과 벼락 성공을 항상 꿈꾼다.

그런데, you know what? 이렇게 단시간 안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건 이 세상에 없다. 우리 주위의 어떤 사업들은 하룻밤 만에 대박 난 것 같지만, 제대로 된 사업이라면, 그 대박 나는 하룻밤 뒤엔 성공과는 굉장히 먼 피와 땀으로 얼룩진 수천 ~ 수만 밤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엔 모든 성공은 아주 오랫동안의 – 어떤 경우엔 수십 년의 – 노가다로 만든 탄탄한 기초가 있을 것이다. AI의 세상이 오면서 모든 게 더 빨리 변할 것이고, 모든 게 더 빨리 자동화가 될 것이다. 하지만, AI가 세상을 지배해도, 그 밑엔 더 큰 노력, 근면, 성실, 그리고 노가다가 반드시 필요하다.

육체적 노동과 단순한 반복 작업을 무시하면 안 된다. 결국, 모든 성공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보면, 그 폭발적인 성공의 순간을 만들기 위해서 수년, 또는 수십 년의 노가다가 반복됐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벼락부자와 벼락 성공을 바라지 말고, 지금부터 작은 노가다를 시작해 봐라.

Things take time. They just do. There is no shortc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