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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부족으로 실패하지 말자

역대 최악의 성적이 예상됐지만, 반대로 한국이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둔 파리 올림픽이 지난주에 잘 마무리됐다. 나는 대부분의 올림픽 종목을 별로 안 좋아하지만, 국가 대표들이 열심히 경쟁하는 경기라서 그런지 매일 저녁 한국이 참여하는 대부분의 종목을 와이프랑 정말 재미있게 봤던 즐거운 2주였다. 한국은 금 13개, 총 32개의 메달을 따면서 8위로 끝났는데 너무 잘했고, 모두 너무 자랑스럽다. 안세영 선수의 발언과 더불어 그동안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 여러 협회에 대한 불미스러운 일들도 있었지만, 나는 이런 과정이 체육협회와 선수들이 모두 다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는데,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다양한 이변이 많았고, 메달이 당연시됐던 선수들이 형편없는 성적으로 예선 탈락했고, 전혀 기대되지 않았던 선수들이 선전해서 메달을 따기도 했다. 우리나라 태권도 김유진 선수가 그중 하나였던 것 같은데, 세계 랭킹 12위가 세계랭킹 1위와 2위를 모두 이기고 금메달을 획득한 건, 태권도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이변 중 대이변이었다.

이 선수 외에도 랭킹이 한참 아래였거나, 거의 무명의 선수들이 메달을 획득한 사례가 다른 나라에도 몇 개 있었는데, 이 중 몇 명의 경기 후 인터뷰를 보면, 다들 하는 말이 거의 비슷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선수들의 외부 랭킹만 보고 승패를 예측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스스로가 얼마나 열심히 연습하고 훈련했는지 알기 때문에, 충분히 우승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고, 이런 땀과 노력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남들은 이변이라고 하는 결과가 본인에겐 전혀 놀랍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선수는 이런 말을 했는데 이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내 연습량을 내가 잘 알고 있고, 훈련의 양에 있어서는 그 어떤 선수도 나를 능가할 수 없다는 걸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메달이 전혀 신기하지도, 놀랍지도 않다. 당연히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질 수도 있다. 하지만, 패배의 원인이 노력의 부족이면 절대로 안 된다. 노력의 부족 때문이 아닌 다른 이유로 진다면, 아쉽겠지만 절대로 후회는 안 한다.”

실은 내가 우리 창업가분들과 자주 하는 말과 너무 비슷해서 나에겐 더욱더 인상 깊었던 말이었던 것 같다. 우린 모두가 항상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말을 밥 먹듯이 하지만, 또 한 편으론 내가 봤을 때 최선을 다하지 않는 분들도 종종 본다. 물론, 이건 굉장히 주관적인 입장이고 최선의 개념은 모두에게 다르다. 어쨌든, 정말로 사업과 본인의 미션에 헌신(=commitment)을 보이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업도 올림픽 경기와 같이, 아무리 열심히 하고 죽기 살기로 노력해도 잘 안될 수도 있다. 아니, 성공의 확률이 낮기 때문에 잘 안되는 게 오히려 어쩌면 정상적이다. 그래서 사업은 실패할 수도 있고, 실패한 사업가들이 욕을 먹는 건 가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실패의 원인이 노력의 부족이라면,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포트폴리오 회사들이 더는 버티기 힘들어서 폐업을 결정하면, 이런 대화를 많이 한다. “최선을 다했나요? 대표님만큼 치열하고 열심히 노력한 사업가가 주위에 없을 정도로 열심히 했나요? 그랬다면 잘했습니다. 실패의 원인이 노력의 부족이 아니었다면 편안하게 사업 접고 좀 쉬세요.”

실패의 원인이 노력의 부족이 되지 않게 모두 다 치열하게 헌신하는 하루, 일주, 그리고 일 년이 되길.

전력 증강자

미국 사업가들이 자주 하는 말과 비즈니스 관련 글을 보면 가끔 등장하는 어휘 중 force multiplier라는 단어가 있다. 원래 군대에서 유래된 말인데 찾아보니 우리말의 정확한 어휘는 ‘전력 증강자’ 또는 ‘전력 승수’이고, 사전적인 의미는 전투 부대에 추가적으로 사용되었을 때 부대의 전투력을 두드러지게 증가시키고 나아가서 부대의 임무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역량 혹은 능력이다. 이런 전력 증강자의 대표적인 사례가 특수부대, GPS와 같은 기술, 또는 육해공군의 연합 등이다.

이 단어는 스타트업 분야에서도 꽤 다양한 의미로 자주 사용되는데, 2주 전에 미국에서 어떤 창업가와 이야기하다가 이 force multiplier라는 말을 내가 오랜만에 언급됐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랑 절대로 말을 안 한다. 특히나 비행기에서는 조용히 가는 걸 선호해서 옆 사람이랑 눈도 되도록 맞추지 않고, 누가 말을 걸어도 두 번째 질문은 못 하게 아주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편이다. 이날은 어떤 젊은 백인 여성분이 내 옆에 앉았고, 3시간 반 비행을 같이 하게 됐다. 비행 내내 둘 다 각자의 노트북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는데 불규칙한 키보드 타격 소리와 속도로 봤을 때 아마도 글을 쓰거나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비행 내내 글이 잘 안 써지거나, 생각이 정리가 안 되거나, 영감이 안 떠오르는지 혼자 계속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실은 나도 뭔가를 쓸 때, 정리가 안 되거나, 영감이 안 떠오르면 이런 행동을 하므로 금방 알 수 있었는데, 이분은 이런 행동과 동작이 좀 과격했다.

그래서 이분에게 “그냥 궁금해서 그런데, 뭐 쓰고 있어요? 잘 안되나 보죠?”라고 물어봤고 그때부터 한 15분 정도 우린 이야기를 나눴다. 본인은 시카고 외곽 동네에서 수공예품을 직접 만들어서 파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인데, 그동안 오프라인 가게에서만 제품을 판매하다가 이제 미국의 다른 도시나 주에서 구매 문의가 와서 Shopify로 만든 사이트로 최근에 이커머스를 시작한 초보 창업가라고 소개했다.

돈이 별로 없어서, 직원 고용은 아직 생각도 못 하고 있고, 혼자서 제품을 직접 만들고, 혼자서 사이트도 운영하고, 혼자서 포장과 배송도 직접 하고 있는데, 어쨌든 힘들지만, 굉장히 재미있고 보람찬 일이라고 자랑했다. 온라인 마케팅 예산이 없어서 공짜이면서 동시에 효율이 좋다고 하는 블로그와 뉴스레터 기반의 콘텐츠 마케팅을 이제 3개월째 하고 있는데, 막상 없는 콘텐츠를 만드는 작업이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투입되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고, 이렇게 투자하는 에너지와 시간 대비 눈에 띄는 결과가 전혀 안 보여서, 이런 콘텐츠 마케팅이 정말 될까 굉장히 회의적이라고 고민을 토로했다. 그리고 지금 이 비행기에서도 다음 주에 발송할 뉴스레터에 실을 내용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고, 격주로 포스팅하는 블로그에 올릴 소재가 이미 다 떨어져서 계속 한숨만 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VC라는 말은 안 했다. 하지만, 내 블로그에 관해서 이야기를 좀 해줬다. 내가 운영하는 개인 블로그를 2007년부터 쓰기 시작했고, 지금도 꾸준히 17년째 쓰고 있는데, 이게 확실히 개인적이든 사업적이든 force multiplier가 될 수 있다는 건 내가 경험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고 해줬다. 그런데 이게 진정한 전력 승수가 되려면, 최소 2년은 꾸준히 해야 하고, 여기서 명심해야 하는 건 블로그의 첫 2년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만드는 force multiplier가 아니라 그 반대인 force divider라는 점도 알려줬다.

전력 승수를 위한 기반을 만들기 위한 첫 2년은 콘텐츠를 만드는데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지만, 그로 인한 효과는 눈에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일단 아무도 이런 콘텐츠가 있다는 걸 모르고, 아무리 좋은 포스팅이라도 이런 블로그가 존재한다는 것도 모른다. 이 기간 동안엔 블로그나 뉴스레터를 활용하는 콘텐츠 마케팅은 전형적인 force divider가 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결국 복리의 마법은 항상 작동한다. 꾸준히, 정기적으로,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면, 누군가는 읽을 것이고, 남들과 계속 공유할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나 어떤 계기를 통해서 그동안 꾸준히 만들었던 양질의 콘텐츠는 엄청난 전력 증강자가 될 것이다.

뭐, 대충 이런 이야기를 비행기에서 옆 좌석 분과 했다. 그리고 이제 시작했고, 아직은 결과가 나오지 않지만, compounding과 force multiplier라는 단어를 무조건 기억하라고 했다.

누구나 다 인생에서, 또는 직장에서 이런 전력 증강자를 원할 것이다. 실은, 누구에게나 가능하고 누구나 스스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약간의 노력과 꾸준함이 필요할 뿐이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요새도 MBTI 이야기를 사람들이 많이 하는지 모르겠지만, 한때는 우리가 검토했던 회사 자료의 팀 슬라이드에 각 팀원의 MBTI가 보일 정도로 이게 유행했을 때가 있었다. 나는 MBTI를 맹신하진 않지만, 나름의 과학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MBTI 풀 버전을 2005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할 때 처음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내가 E 성향이 강했는데, 그동안 이게 I로 바뀌었고, 요샌 나는 아주 행복한 I의 삶을 살고 있다. 성향이 I라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바빠서 그런지, 나는 외부 활동을 잘 안 하고, 사람들을 잘 안 만난다. 정확히 말하자면, 원래 아는 사람들과 친구들은 자주 만나지만, 새로운 사람들은 되도록 잘 안 만난다.

그래도 예외를 두고, 가능하면 시간을 만들면서 꼭 만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제 막 본인의 이름으로 VC를 시작해서 첫 번째 펀드를 만들고 있는 투자자들, 그리고 우리가 투자는 안 했지만, 음악 분야에서 스타트업하는 창업가들이다.

이제 첫 번째 펀드를 만들고 있는 VC들을 보면 내가 12년 전에 스트롱 1호 펀드 만들 때가 생각난다. 남의 돈을 받는 건, 그때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고 앞으로도 항상 어려울 것이다. 참고로 우린 이제 5호 펀드를 만들고 있는데, 1호 펀드보다 규모만 커졌지 돈 모으는 건 항상 더럽게 어렵다. 그런데 성적이 전혀 없는 첫 번째 펀드를 만드는 VC를 뭘 믿고 누가 돈을 줄까? 그래서 나는 이런 분들을 보면, 우리가 첫 번째 펀드 만들 때가 많이 생각난다. 그때 참 힘들고, 외롭고, 서럽기도 했는데, 그나마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나보다 먼저 이 힘든 길을 지나왔던 선배 VC들의 격려와 조언이었다. 그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원래 처음엔 힘든데, 계속 지치지 않고 하다 보면 더 쉬워질 거야.” , “그래도 너는 내가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훨씬 잘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 “원래 펀드 못 만들 것 같아도, 계속하다 보면 다 하게 된다. 그냥 시간이 걸릴 뿐이야.” 뭐, 이런 말들이었는데, 그땐 이 조언들이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모른다.

근데 참 웃긴 게, 나도 이제 시작하는 후배 VC 분들을 만나면, 12년 전에 내가 들었던 말과 거의 동일한 조언을 해준다. 그리고 이들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걸 내가 이미 경험했다면, 가감 없이 모든 경험을 다 공유하고, 가능한 선에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소개해 주고 연결해 준다. 그래서 이분들이 힘든 길을 가는데 조금이나마 위안과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을 항상 한다.

음악 분야에서 스타트업하는 창업가들에게도 내가 아주 오래전에 뮤직쉐이크를 하면서 경험하고 느꼈던 점들을 아주 솔직하게 공유해주고 이들이 시행착오를 줄이고 조금이라도 정신적인 평화를 찾을 수 있길 바란다. 나도 15년 전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완전히 아무것도 모를 때 이미 그 길을 걸었던 선배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출장에서 수년 동안 내가 알고 지낸 잠재 투자자를 만났다. 유명하고 큰 투자자인데, 누구나 다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서 아주 바쁜 분이다. 그런데 이 분은 내가 미국에 올 때마다 연락하면 항상 시간을 만들어서 나를 만난다. 시간이 많을 땐 밥도 같이 먹고, 정말 바쁘면 15분이라도 짧게 시간을 내서 얼굴이라도 본다. 나를 볼 때마다 20년 전에 본인이 투자를 시작했을 때가 생각난다고 하면서 원래 남의 돈 받는 건 무지하게 어려운데, 그래도 스트롱은 아주 잘하고 있다는 큰 격려의 말을 해줬다. 그리고 본인도 시작할 때, 이렇게 만나서 긍정의 말 한마디 해주는 선배 투자자들이 정말 고마웠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항상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아무리 바쁘지만, 내가 처음에 어떻게 시작했고, 어디서 왔는지 기억하자는 다짐을 한다. 나는 아직 개구리로 완벽하게 변신하진 못했지만, 올챙이 시절은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애송이 시절이 있었고, 누구나 다 올챙이를 거쳐서 개구리가 된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절대로 잊지 말자는 다짐을 오늘도 해본다.

불평하지 않는 길

작년 말에는 지금쯤 되면 경기가 좀 회복되고, 투자 시장에 활기가 돌아올 줄 알았는데, 내가 요새 체감하는 건, 아직 정상화되려면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릴 것 같다. 아니면, 지금 이 불경기가 어쩌면 정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뭔가 느낌이 좋진 않다.

우리 같은 투자자도 이런 느낌인데, 매일 힘든 사업을 해야 하는 우리의 창업가들은 오죽하랴. 정말 요새 죽을 맛이다. 특히, 자금이 떨어져서 펀딩을 해야 하는 대표들은 정말 살면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투자사 대표들에게 런웨이가 12~18개월 정도 있으면, 웬만하면 펀딩하지 말고 사업에 집중하고, 나중에 수치들이 더 좋아지면 그때 투자유치를 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그래도 돈이 다 떨어졌으면, 경기랑 상관없이 투자를 받아야 한다. 우리 투자사들도 요새 펀딩하고 있는 곳들이 많긴 한데, 모두 다 힘들어하고, 회사가 원하는 투자 조건과는 한참 동떨어진, 그냥 주는 대로 받는 전략으로 가는 곳들도 많고, 우리도 기투자자로서 이런 조건이라도 투자받을 수 있으면 받아서, 일단 살아남으면서 버티자는 스탠스다.

이 중에서도 특히나 힘들게 투자유치를 하는 회사가 몇 군데 있다. 일단 펀딩 하는데 걸린 절대적인 시간이 너무 길고, 투자를 커밋했던 VC들이 시간이 지연되면서 슬그머니 말을 번복하고, 이미 최종 투심까지 가서 결정된 곳들도 갑자기 정말 미안한 사정이 생기면서 취소되고, 이런 일이 생기다 보니 확신을 갖고 후속 투자를 준비하던 기존 투자자들도 하나둘씩 말이 달라지고 있다. 대부분 6개월 정도 힘들게 투자유치를 하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기면 대표는 지치면서 번아웃되고, 런웨이가 없어지니 직원들도 불안해하면서 어떤 분들을 퇴사하고, 결국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펀딩 전략을 새로 만들고 있다. 이 와중에 어떤 곳들은 투자자들과 이야기가 아주 잘 되고 있었는데, 같은 분야의 경쟁사가 상대적으로 낮은 밸류에 투자를 받으면서 그동안 합의됐던 밸류에이션이 조정되고 있고, 어떤 곳은 동종 업계의 회사가 상장했는데, 상장 후 주식가격이 형편없이 떨어지면서 다시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여기까지 오면, 우리 같은 기존 주주들도 정말 힘이 빠지는데, 이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큰 타격을 받은 대표는 돌아버리기 일보 직전이다. 그냥 남 탓하면서 욕하고, 포기하고 싶을 것이다. 뭐 하나 뜻대로 되는 게 없다.

어떻게 보면 이 창업가들의 잘못은 아니다. 우린 잘하고 있는데, 경기가 좋지 않아서 시장에 유동성이 부족해서 투자받는 게 힘든 것이다. 우린 잘하고 있는데, 동종 업계의 다른 회사가 잘 못 해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는 것이다. 갑자기 투자자가 투자 결정을 철회한 것도 대표의 잘못이 아니다. 이건 그 투자자가 나쁜 놈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을 탓하고, 불평해도 되지만, 우리가 투자하는 창업가들은 불평하지 않는다. 이들은 최선을 다한다. 그래도 일이 잘 안 풀리는 건 본인들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그냥 또 다른 방법을 찾는다. 불평하지 않고 그냥 또 길을 찾는다.

나도 이런 힘 빠지는 경험을 자주 한다. 새로운 펀드를 만들면서 너무 많은 거절을 당하고, 꼭 돈을 줄 것 같았던 투자자가 결국엔 투자하지 않는다. 동시에 우리가 투자한 너무 많은 회사가 망한다. 꼭 잘될 것만 같았던 회사들이 잘 안되고, 안 될 것 같았던 회사는 항상 잘 안된다.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이로 인한 피로감이 쌓일수록 자신감이 떨어진다. 정말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실은, 이런 상황에서 나는 그냥 이래저래 불평만 하고 싶다. 나는 잘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나쁜 놈들이고, 내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핑계를 대고 싶다. 하지만, 우리가 투자하는 창업가들이나 이들을 지원하는 우리나 모두 불평하는 데 익숙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주 거절당하고, 자주 넘어지지만, 그럴 때마다 불평하지 않고 다시 일어난다. 다시 일어나서 그냥 내가 해야 할 일을 한다. 우리가 선택한 길은 불평이라는 옵션이 없는 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