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stle

100년 마인드셋

로블록스의 공동창업가이자 현대 대표이사인 David Baszuki는 이 회사를 2002년도에 창업해서 현재 24년째 운영하고 있다. 많은 창업가가 사업을 어느 정도의 궤도까지 올려놓은 후에 본인이 만든 회사를 떠나거나, 아니면 현업에서 손을 떼고, 개인적인 관심사에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쓰는데, 이 분은 오늘도 24년 전과 비슷한 에너지로 사업에 집착한다는 게 정말 놀랍다. 그리고 앞으로 로블록스를 몇 년 더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은퇴할 계획은 전혀 없고 가능하면 20년은 더 하고 싶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자주 하는데, 얼마 전에 내가 들었던 인터뷰에서도 그는 이와 비슷한 발언을 했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고, 본인은 남은 인생을 로블록스에 바치겠다고 했는데, 이 말을 들었을 때 소름이 돋았다.

엔비디아의 공동창업가이자 현재 대표이사인 젠슨황도 엔비디아를 33년 전에 창업했고, 아직도 운영하고 있다. 젠슨 역시 은퇴와는 너무나 먼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아직도 거의 매일 15시간씩, 주말에도 계속 일하고 있다. 엔비디아 초기 멤버들의 말을 들어보면, 오히려 젠슨은 창업 초기보다 요새 더 열심히 일한다고 한다. 젠슨은 로블록스의 데이빗 같이 공개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일 할 수 있을 때까지 엔비디아를 평생 운영할 것이라는 말을 한다고 들었다.

로블록스의 데이빗 사장이 “저는 로블록스에서 20년은 더 일할 거예요.”라는 말을 했을 때, 그리고 내가 이 인터뷰를 들었을 때 온몸에 진한 전기가 찌릿하게 왔다. 그리고 바로 떠올랐던 생각은 “와,,,나도 이제 저런 사람들에게(만) 투자하고 싶다.” 였다.

한 5년 열심히 일해서 소소한 엑싯 하면 다른 사업을 하거나, 현재 사업으론 돈을 벌고 이 돈으로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일 또는 취미 생활을 하겠다는 창업가들은 내 주변에 널렸다. 이들보다 조금 더 장기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은 기간만 5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날 뿐이지, 엑싯하면 그 돈으로 다른 더 재미있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은 동일하다. 그리고 솔직히 스트롱이 투자한 창업가들도 대부분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우리가 이제 14년째 투자를 하고 있으니, 스트롱 포트폴리오 중 가장 오래된 회사는 14년 정도의 역사가 있다. 내가 로블록스 데이빗 사장의 말을 듣고 우리가 그동안 투자한 300개 회사의 창업가들을 비디오처럼 머릿속에서 한 명씩 떠올리며, 어떤 분이 50년 사업할 마음가짐이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솔직히 지금까진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내 판단이다. 물론, 이 중 어떤 분들은 50년 ~ 100년 가는 사업을 만들을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렇다는 게 내 판단이다.

나도 투자를 시작했을 땐 단기적인 마인드로 일했다. 솔직히 스트롱을 만들었던 2012년도에 누군가가 나에게 왜 VC를 하고 싶냐고 물었다면, 전형적으로 멍청하고 1차원 적인 다음과 같은 답변을 했을 것이다. “이렇게 좋은 직업이 어디 있어요. 남의 돈으로 투자해서, 운 좋으면 나도 돈 많이 벌 수 있는데요.” 그런데 고백하건대, 당시엔 정말 이렇게 생각했다. 남의 돈으로 투자하고 한 3년 후에 돈 많이 벌어서 인생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내가 VC를 시작했던 이유의 절반이었다. 그리고 그땐 투자하면 3년, 아무리 길어도 5년이면 회사들이 수천억 원에 엑싯 할 줄 알았다.

14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참 개념 없고 순진했다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그동안 투자를 더 많이 하고, 더 좋은 창업가들을 만나면서 VC라는 업을 바라보는 내 직업관과 내가 이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인생의 목표와 목적에도 굵직한 변화들이 있었다. 이제 나는 5년 안에 큰 엑싯을 해서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을 만드는 창업가들보단, 100년 가는 사업을 만들고 싶은 창업가들에게 투자하고 싶다. 위에서 말한 로블록스의 데이빗 바주키와 엔비디아의 젠슨황 같은 창업가들에게 투자해서 돈도 벌고 싶지만, 이들과 함께 오래가는 기업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그 기업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

이런 창업가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철학과 전략을 더욱더 뾰족하게 다듬어야 한다. 시장의 유행을 따르기보단, 우리만의 사람 중심적인 투자 철학과 전략을 더욱더 갈고 닦아야 하는데, 우리도 이 과정을 계속하다 보면, 어쩌면 스트롱도 100년 가는 기업이 될지도 모르겠다.

실전의 중요성

요새 한국의 주식 시장은 정말 뜨겁다 못해 활활 타오르고 있다. 나도 한국과 미국 주식을 약간 보유하고 있지만, 큰 연구나 분석 없이 내가 좋아하는 기업의 주식을 사기 때문에 한국의 public 시장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조만간 코스피가 1만을 돌파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요샌 한다. 연일 뉴스와 소셜미디어에서는 주식 분석가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본인들의 이론과 전략을 공개하면서 앞으로 주가가 어떻게 변동할지 예측하는데, 이걸 보면서 맨 먼저 들었던 내 생각은 과연 저 수많은 주식 분석가 중 실제로 주식 투자로 돈을 번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이다.

내 주변에도 유명한 주식 분석가가 있다. 언론에도 나오고, 여의도에서는 꽤 유능한 애널리스트로 인정받고 있는 분이다. 나도 이 분이 방송에 출연해서 특정 회사와 분야에 대해 본인이 아는 내용에 관해 설명하는 걸 들었는데, 대학교 교수님보다 더 유식해 보였다. 그런데 막상 이 분은 주식 투자로 돈을 크게 벌진 못했다. 투자를 안 해서 못 번 건 아니고, 투자하는데, 막상 본인이 투자한 회사의 주식으로 수익을 만들진 못했다. 그 회사의 임직원보다 본인이 분석하는 회사에 대해서 잘 알고, 이 회사의 재무제표를 꿰뚫고 있고, 세계 경제의 흐름까지 예측할 수 있는 전문가가 어떻게 주식 투자로 돈을 못 벌 수가 있을까? 세상은 실전으로 돌아가지, 이론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경영대학원을 6개월 동안 매우 짧게 다녔고, 이때 경제학에 대해 조금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경제학은 꽤 재미있는 학문이긴 하지만, 경제학이 이 세상이 돌아가는 기본 법칙과 원리를 담는 학문이라는 이론에 대해서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워튼 경영대학원에서 그 유명한 경제학자들의 수업을 듣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들이 아는 상식은 실물경제에 거의 적용할 수가 없는 죽은 지식이라는 걸 매번 느꼈다. 이론가들이 말하는 세상을 움직이는 경제학 이론 뒤에는 수많은 비현실적인 모델링과 가정들이 있어서 우리의 실생활에는 적용할 수가 없는데, 많은 경제학자는 이런 이론이 고용을 창출하고 실업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이들에게 실물경제에서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본인들의 이론을 기반으로 해결해 보라고 하면 대부분 못 한다. 왜 그럴까? 세상은 실전으로 돌아가지, 이론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몸담은 투자의 세계도 비슷하다. 투자를 책으로 배우고, 이론적으로만 아는 가짜 VC들의 말을 듣다 보면, 정말 투자의 천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벤처투자에 대한 이론은 빠삭하다. 이 기술은 이래서 좋고, 저 기술은 저래서 미래가 없고, 이 회사는 이러므로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이들의 말은 하나씩 따져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정작 이분들에게 본인의 포트폴리오 중 성공한 회사에 관해 물어보면, 말에 비해 실제 투자는 거의 안 했거나, 투자는 좀 했지만, 성공한 회사는 하나도 없다. 벤처 투자 세계도 실전으로 움직이지, 이론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론, 수치, 그리고 데이터를 맹신하진 않는다. 수치와 데이터를 보면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사업은 하면 안 되고, 이론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했을 때 우리의 경쟁사가 우리보다 말도 안 되게 경쟁우위를 갖는 시장에는 들어가면 안 된다. 또는 이와 반대로 수치와 데이터를 보면 무조건 해야 하는 사업은 해야 하고, 우리가 경쟁사를 무조건 이길 수 있는 시장에는 들어가야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건 이론을 기반으로 하는 결정이라서, 일단 해보고 부딪혀 봐야 하는 게 현실이다. 너무 많은 분이 이론만으로 미래를 계획하는데, 실험실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결과는 항상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일단 해봐야 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나는 창업가들이 좋다. 이들은 이론도 참고하지만, 결국 모든 건 실전에서 결정되다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이론적으로 절대로 승산이 없는 분야에서 조 단위 사업을 만들고, 대기업이 독식하고 있는 시장에서 달걀로 바위를 쳐서 정말 바위에 금을 내는 분들을 나는 봤고, 몇 명에겐 우리가 직접 투자했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은 실전이다. 이론 뒤에 숨지 말고, 일단 해보는 걸 권장한다.

기다림의 미학(또는 지루함)

꼰대 같은 내용으로 이 글을 시작해 본다.

이전 세대 사람들이 현재 세대 사람들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요즘 사람들은…” 하면서 불만족을 표현하는 건 인류가 탄생한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반복되는 행위다. 나도 옛날 사람이라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하는데 우리 세대랑 비교했을 때 요즘 세대가 부족한 걸 하나만 꼽아 보라고 하면 나는 “인내심”이라고 할 것이다.

어떤 분들은 인내심을 기다림의 미학이라 하고, 어떤 분들은 기다림의 지루함이라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인내심은 기다림의 미학, 또는 기다림의 예술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내가 언제 이 말을 대학생에게 한 적이 있는데, 이 친구가 나를 외계인처럼 봤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서비스 앞에 “바로”가 붙고, 오늘 밤에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에 배송되는 “로켓” 서비스가 기본이고, 글자 하나씩 읽으면 느려서 책도 잘 안 보고, 영상도 몇 배속해서 보는 즉각적인 만족과 보상의(=instant gratification) 시대에는 인내심이라는 말 자체가 촌스럽고 고인물들의 전유물이 된 것 같아서 많이 아쉽긴 하다.

반면에 내가 고맙게 생각하는 건, 우리가 하는 벤처 투자, 그리고 우리가 투자하는 창업가분들은 대부분 인내심의 미학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즉각적인 만족과 보상보단 장기적인 만족과 보상을 위해 – “장기적”이 5년이 될 수도 있고 30년이 될 수도 있지만 – 불안, 초조, 공황을 참고 오늘도 인내심의 미학을 믿으면서 본인들만의 길을 가고 있다. 이런 분들과 항상 어울리다 보면, 나도 인내심의 미학을 믿게 되고, 인내심과 항상 같이 붙어 다니는 복리의 위력을 배우게 된다.

조만간 하와이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만약에 주말을 끼고 가게 되면 오랜만에 서핑해 볼까 해서, 호놀룰루에서 좋은 서핑 장소, 파도, 서퍼 등과 관련된 기사와 영상을 보면서 여기저기를 웹서핑하면서 생각났던 게 바로 서퍼들이야말로 인내심의 끝판왕이라는 점이다.

서핑의 본질은 기다림이다. 큰 파도를 타고 바다를 가르는 구릿빛 서퍼만큼 멋진 사람들이 없는데, 이 멋짐을 만드는 건 기다림의 미학이다. 어느 정도 잔챙이 파도와 씨름해서 서핑의 기본을 잘 다지면, 누구나 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좋은 파도’를 타고 싶어 한다. 그런데 파도를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없어서, 좋은 파도를 타기 위해서는 보드 위에서 한없이 기다려야 한다. 어떨 때는 몇시간 동안 여러 번의 좋은 파도를 신나게 타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때도 있지만,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기다리다 허탕 치고 귀가하는 서퍼들도 많다. 내가 LA에 살 때 서핑을 배웠던 강사는 3일 동안 매일 5시간 기다렸지만, 맘에 드는 파도를 못 찾아서 그냥 집에 왔다가, 4일째 엄청난 파도를 만나서 인생 최고의 서핑을 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이 분은 강습 시간 내내 서핑 기술보단 기다림의 아름다움에 관해서 이야기해 줬는데, 한참 후에서야 나는 그 이유에 대해서 이해했다.

스타트업도 이렇게 보면 서핑과 비슷한 점이 많다. 당장 성공을 맛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지만, 정말 큰 사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아주 많이. 시장을 잘 파악한 후 나만의 믿음과 시각으로 어느 정도 미래를 예측하고, 남들이 잘 안 가는 길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먼저 자리를 잘 잡는 게 중요하다. 마치, 서퍼들이 남들보다 더 좋은 파도를 타기 위해서 지금은 잔잔하지만, 앞으로 바람이 불어 큰 파도가 올 만한 곳에 가서 자리를 잡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보드 위에서 주변 상황과 여러 지표에 주목하면서, 파도가 올 때까지 계속 기다려야 한다. 바람과 조류의 방향이 바뀌면, 다시 자리를 예측해서 옮겨야 한다. 그리도 또 기다려야 한다.

실은, 이렇게 인내심을 갖고 사업하면서 기다려도, 대부분의 창업가는 파도 한 번 못 타고 그냥 집에 가는 경우가 훨씬 많을 텐데, 그래도 인내심을 갖고 그다음 날 또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만약에 운과 실력 사이 어느 지점에서 큰 파도를 만난다면, 그리고 인내심의 미학이 철저한 준비로 이어졌다면, 이들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하늘을 날고 있을 것이고, 그동안 쌓인 인내심과 기다림이 복리 폭발해서(=compounding explosion) 그 어떤 창업가들보다 앞서갈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스타트업을 많이 해보지 않았다. 그나마 갖고 있는 짧은 경험도 성공한 경험은 아니다. 서핑으로 따지면 그냥 잔챙이 파도와 씨름만 하다가 집으로 간 경험밖에 없지만, 좋은 파도를 타는 것만큼 신나고 짜릿한 느낌이 없다는 것도 간접적으로 잘 알고 있다. 이 큰 파도를 타기 위해서는 기다림의 미학을 배워야 하고, 항상 연습해야 한다. 실은, 언제 올지 모르는 파도를 아무도 없는 뜨거운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기다리는 건 매우 혼란스럽고, 공포스럽고, 불안하고, 짜증 나고, 초조한 경험이다. 이럴 때일수록 인내심의 미학이 우리 모두에겐 필요하다.

물론,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다고 해서 좋은 파도를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아마도 대부분 못 만날 것이다. 하지만, 인내심이 없다면 성공할 수 있는 그 작은 확률조차 없어서 인내심은 모든 창업가의 기본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그런데 또 막상 생각해 보면, 인내심은 요즘 세대뿐만 아니라 인류가 탄생했을 때부터 대부분 사람에게 부족한 자질인 것 같다. 우리 윗세대, 그 윗세대, 그리고 우리 세대를 봐도 인내심의 중요성을 아는 분들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혹시 이 글을 보고 화난 요즘 세대분들이 있다면 사과한다.

최후의 1인(=버티기)

우리는 분기마다 투자팀 전원이 모여서 현재 살아 있는 포트폴리오를 검토한다. 각 멤버는 담당하는 회사의 기업 가치가 현실적인지를 판단하고 만약 현재 상황 대비 기업 가치가 너무 높다고 판단되면 우리가 선제적으로 회사 가치를 감액한다. 예를 들면, 가장 최근 투자를 기업 가치 100억 원에 받았다면, 서류상 이 회사의 적정 기업 가치는 100억 원으로 기재하는데, 만약에 이 가치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판단되면 50억 원과 같은 더 낮은 가치로 감액한다.

만약에 투자사가 사업은 영위하지만, 담당하는 분이 이 회사는 그냥 이렇게 가다가 망할 것 같다고 판단하면 아예 손실 처리한다. 위의 예시를 그대로 사용해 보면, 서류상 회사의 적정 가치는 100억 원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가치를 0원으로 수정하고, 이 회사는 손실 처리한다.

우리와 비슷하게 적극적으로 감액하고 손실 처리하는 VC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하는 게 이 생태계의 모든 이해관계자를 위한 건강한 프로세스라고 생각한다. 회사의 기업가치가 그 회사의 실제 비즈니스 상황을 현실적으로 반영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이걸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게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좋고, 우리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우리의 투자자들을 위해서도 좋다는 게 스트롱의 생각이자 원칙이다.

이런 적극적인 감액과 손실 원칙을 고수하다 보니, 어떤 분기엔 10개의 회사를 감액하고 손실 처리했다. 손실 처리한 회사 중 정식으로 폐업한 곳도 있지만, 아직 버젓이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곳도 있다. 전에 내가 이런 우리의 프로세스를 다른 VC와 공유한 적이 있는데, 이 분이 완전히 기겁하면서 회사가 망하지도 않았고, 더 낮은 밸류에 투자받지도 않았는데, 굳이 이렇게 자기 살을 깎을 필요가 있냐면서 깜짝 놀랐다. 이 분이 정확히 사용했던 표현은 “자해”였는데, 본인이 이렇게 스스로 회사의 가치를 감액하거나 손실 처리하면 – 즉, 자해하면 – 이걸 본인도 못 견디고, 몸담은 VC의 임직원 분들도 못 견딜 것이라고 하면서, 다른 건 몰라도 이 분의 회사는 투자 손실이 발생하는 건 정말 끔찍하게 두려워하고 손실이 조금이라도 발생하면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견디는 게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이에 대한 내 생각은?

돈을 잃는 걸 견딜 수 없다면 투자를 하면 안 된다. 내가 운에 대한 글에서도 강조했지만, 투자는 운의 영역이 크고 실력이 약간의 조미료 역할을 하므로, 아무리 투자를 잘해도 돈을 잃을 수 있고, 언젠가는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얼굴에 펀치 맞는 게 너무 싫고, 내 얼굴이 못생겨지는 걸 견딜 수 없는데도 복싱을 직업으로 하는 것과 비슷하다. 천재 복서라도 언제나 얼굴에 펀치 맞을 수 있고, 많이 맞게 될 것이기 때문에, 얼굴에 펀치 맞는 걸 못 견디면 복싱하면 안 된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예상치 못한 서프라이즈가 너무 싫고, 항상 모든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야 하고, 이 계획과 예측에서 조금이라도 일이 어긋나는 걸 견딜 수 없다면, 스타트업하면 안 된다. 그 무엇도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예상치 못한 서프라이즈로 하루가 가득 채워지기 때문이다.

내가 항상 강조하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투자든, 사업이든, 복싱이든, 그냥 계속 버티면서 ‘경기’를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손실이 엄청나게 발생하고, 이에 따라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를 매일 경험해도 버티면서 계속 투자해야 한다. 얼굴에 펀치를 너무 많이 맞아 피범벅이 돼서 너무 아프고 괴롭더라도 버티면서 계속 펀치를 날려야 한다. 너무 많은 서프라이즈로 과연 오늘 하루를 무사히 끝낼 수 있을지 걱정되고, 아직 출근도 안 했는데 이미 공황 상태가 됐더라도 일단 버티면서 계속 일을 쳐내야 한다.

결국 남들이 다 쓰러지고 나가떨어져도 계속 투자, 경기, 사업을 하는 최후의 1인이 돼야 한다. 영어에서는 이 상태를 표현하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멋진 말이 있다.

“The name of the game is to stay in the game”

계속 투자하면서 결국엔 발생한 손실 이상을 버는 게 잘하는 투자이고, 계속 펀치 날리면서 결국엔 맞은 펀치보다 더 많이 상대방을 때리는 게 잘하는 복싱이다.

결승점

10년 전에 큰 비전과 야망을 갖고, 잘 다니던 대기업에서 퇴사하고 창업했는데, 10년이 지난 이 시점에 현실은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달리 너무 초라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2012년도부터 투자를 시작했고, 당시에 투자한 회사는 대부분 망하거나 엑싯을 했지만, 아직도 꾸준히 사업을 영위하는 곳도 있다. 그리고 그 이후로 투자한 회사 중 이제 사업한 지 거의 10년이 되는 곳들도 생각보다 많다. 최근에 이렇게 사업 시작한 지 10년 정도 되는 투자사 대표님들을 몇 분 만났는데 이분들과 대화하면서 내가 느낀 점들, 그리고 이들에게 내가 드렸던 조언과 생각에 대해서 몇 자 적어 보고 싶다. 참고로, 모두 따로 만났는데 괴로워하는 점들이 비슷했고 대부분 자존감과 자신감에 대한 고민, 그리고 사업의 존재 이유에 대해 스스로 의문하고 있었다.

창업한 지 10년 됐는데, 사업이 잘 되는 분들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 성장도 좋고, 투자도 많이 받았고, 돈도 잘 버는 오래된 창업가분들은 사업을 더 키우고 싶어 하고, 제품, 매출, 사람에 대한 고민과 스트레스는 끊임없이 있지만, 이들은 그래도 사업의 존재 이유에 대한 걱정은 안 한다. 그리고 사업이 너무 안되는 분들에게도 해당 사항이 없다. 이들은 그냥 폐업하면 된다. 누가 봐도 잘 안되는 사업이라서 이렇게 하는 게 당연한 경우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분들은 10년 사업을 했고, 수억 ~ 50억 원 정도 매출을 만들어서 회사의 손익은 어느 정도 맞췄지만, 성장의 기울기 자체는 별로 가파르지 않는, 그런 창업가들이다. 이들이 사업을 시작했을 땐, 5년 안으로 수천억 원 대의 기업, 또는 유니콘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있었고, 시간이 가면서 나름 시장에서 인정받으면서 고객이 돈을 내는 제품을 만들었고, 매출도 발생하지만, 이 속도로 가면 그냥 근근이 먹고 사는 중소기업이 될 것 같은 게 거의 확실하다는 걸 본인들도 알고 있다. 저돌적이고 경쟁심이 강한 대부분의 창업가에겐 이런 현실만큼 괴로운 건 없을 것이다.

특히 남과 비교당하고 비교하기 좋아하는 한국은 이런 현상이 더 심하다. 나랑 10년 전에 같이 창업한 친구는 이미 10조 원짜리 기업을 만들었거나, 나보다 훨씬 더 늦게 나랑 비슷한 사업을 시작한 다른 어린 창업가는 이미 우리보다 투자도 많이 받았고 성장도 가파르다면 자신을 계속 남들과 비교하면서 소위 말하는 현타를 매일 느낀다. “도대체 나는 뭘 하고 있지?”라는 질문을 매일매일 하면서 방황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매일 스트레스 받으면서 사업하는 대표들이 우리 포트폴리오에 꽤 많다. 이 중 어떤 분은 그동안 10년 했던 사업과는 상관없는 다른 제품을 만들면서 테스팅하고 있었다. AI와 관련된 제품이었는데, 내가 봤을 땐 경쟁력이 없고 그동안 이 회사가 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라서 성공 확률이 낮다고 생각했다. 굳이 왜 이 시점에 이런 제품을 만드는지 이야기해 보니, 그 고민의 근원은 위에서 말했던 오랫동안 더딘 성장으로 인한 불안감이었다.

성장이 너무 더뎌서 자존감과 자신감이 바닥을 쳤고, 주위를 돌아보니 1년도 안 된 AI 회사의 기업가치가 10년 사업한 본인의 회사보다 수십 배나 높다는 걸 보고 본인도 빨리 뭔가 다른 걸 해서 더 성장해야겠다는 급한 마음 때문에 그동안 하고 싶었던 걸 AI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정을 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바이브 코딩을 해보니까 껍데기는 어느 정도 쉽게 만들 수 있어서 이 분야를 더 깊게 파고 들어가 보면 뭔가 대박 나는 제품이 탄생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은 처음에 이걸 왜 하는지 물어봤을 때, 원래 본인이 창업했을 때의 비전이 이런 거였고, 지금 만드는 제품은 그 비전에 조금 더 가까이 가기 위한 디딤돌이고, 요샌 AI 툴이 워낙 잘 나와서 드디어 원래 하고 싶었던 그 제품을 만든다는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를 했다. 계속 질문하고 대화를 해보니, 결국엔 너무 오랫동안 정체된 사업을 하다 보니 불안하고, 자존감 떨어지고, 답답해서 그냥 다른 돌파구를 찾다 AI가 대세이니 이 파도를 좀 타서 나도 돈 좀 벌어보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다.

10년 동안 뚝심 있게 매출을 만들고 손익도 맞춘 분이 왜 이런 외부 노이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의아해했지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나도 이렇게 더디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을 10년 운영하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분에게 두 가지 생각을 말씀드렸다.

일단 이 시점에서 큰 피봇을 하려면, 정말 잘 피봇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회사의 성장은 대표이사의 성에 안 차지만,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이 있고 현재 회사의 현금 창출 능력은 전 직원을 먹여 살릴 수 있는데, 굳이 이걸 버리고 다른 걸 하는 이유가 뭔지 잘 고민해 보라고 했다. 그냥 AI로 누구나 다 모든 걸 만들 수 있기 때문에 – 즉, 그냥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건지 – 아니면 정말로 이걸 우리가 해야 하는 거라서 하는 건지, 이 두 개를 잘 구분해 보라고 했다.

두번째는 – 그리고 나는 이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결국엔 누가 더 좋은 회사를 만들 수 있는진 결승점에 도달해서 시합이 끝난 후에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10년째 마라톤을 하고 있고, 아직 결승선은 보이지도 않지만, 달리기할 땐 순위가 계속 바뀔 것이다. 어떤 회사는 첫 10km는 혼자서 독주하다가 넘어져서 탈락할 수도 있고, 어떤 회사는 거북이 같이 느리지만 마지막 5km를 미친 듯이 달려서 1등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회사는 결승점 바로 앞에서 쥐가 나서 꼬꾸라질 수도 있다. 맘에 안 드는 성장을 하고 있지만, 어쨌든 우리 회사는 우리가 만든 제품을 1년에 10억 원 이상 팔고 있는, 솔직히 굉장히 자랑스러운 회사라는 말씀을 드렸다. 이 분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한 게 아니라 내 진심이었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 중 기업가치가 엄청 높은 회사도 있지만, 솔직히 위에서 말한 회사처럼 흑자를 만드는 회사는 우리의 300개 포트폴리오 중 내가 머릿속으로 다 기억할 정도로 그 수가 적어서, 본인은 회사의 성장에 만족하지 못하지만, 내가 봤을 땐 대단한 창업가이다.

이런 상황에 부닥친 창업가들이 꽤 있다. 회사는 굴러가는데 엄청난 성장은 못 하고 있고, 그렇다고 남들처럼 대단한 기업가치에 큰 투자를 받을 상황은 아니고,,,그리고 이 고민과 생각을 매일 하다 보니 공황 상태에 빠진 창업가들을 요새 많이 본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지금까지 잘 뛰었으면 결승점까지 잘 뛰어서 시합을 끝내보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다. 사업은 결국 돈을 벌어서 흑자를 만드는 것이고, 결국엔 돈 버는 놈이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다. 엄청난 마이너스를 만들면서 밸류에이션만 키우고 투자만 받는 사업은 결승점에 도달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