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stle

2 퍼센트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환경에서의 행동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에스컬레이터 옆에 계단이 있을 때, 100명 중 2명만 계단을 이용한다고 한다. 이건 그 어떤 나라에서 연구해도 거의 비슷하게 2%라는 수치가 나오는데, 이 현상을 단순하게 설명하면 대부분의 인간은 게으르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이 말엔 동의한다.

그런데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면, 이 현상은 인류의 진화 과정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너무 당연한 것 같다. 우리는 불편한 것보단 편한 것을 항상 선택하는 DNA를 보유하고 있고, 인류의 모든 발전은 – 특히, 기술적인 발전은 – 우리가 더 편하게 살고 일하기 위한 방향으로 최적화 되어있다. 편하게 살 수 있는데, 굳이 불편하게 살 필욘 없지 않으냐.

맞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다. 편하게 할 수 있는걸, 굳이 왜 불편하게 하려고 하는가? 그래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98%를 게으른 사람들이라고 욕할 순 없다. 오히려 계단을 선택하는 2%의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 행동 연구에서 더 재미있는 건, 계단으로 올라가든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든, 100명 모두 다 계단을 이용하는 게 에스컬레이터보단 본인들에게 장기적으로 훨씬 더 좋다는 걸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계단으로 올라가는 게 건강, 노화, 시력 등을 위해 장기적으론 여러 가지 면에서 몸과 정신에 좋다는 걸 알면서도 단기적인 편안함을 선택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선, 난 이 98%가 게으르다는 생각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그럼, 계단을 선택한 2%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편안함보다 불편함을 더 좋아하는 변태들인가? 아마도 그렇진 않을 것이다. 이들은 장기적인 혜택을 위해서 단기적인 편안함을 잠시 접은, 하기 싫은 일을 일부러 했을 때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는지 잘 아는, 오히려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날 때부터 의지가 강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보단 살면서 주위 사람들의 98%가 편안한 방법을 택할 때 이들은 불편함을 택했는데, 이로 인해 장기적으로 큰 보상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이 경험을 계속 기억하면서 불편함을 택하는 2%로 살아가기로 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했듯이, 편안하게 살려고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버는 현대 사회에서 굳이 불편하게 사는 건 좀 그렇지만, 하루에 하나 정도는 일부러 불편하고 어려운 일을 하는 건 할만하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상대방에게 싫은 소리를 절대로 못 하는데 이 큰 불편함을 무릅쓰고 본인이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남들에게 이야기하는 걸 택했고, 나는 이보단 약소하지만, 침대에서는 절대로 핸드폰을 보지 않는 불편함을 택했다. 장기적으론 나에게 좋다는 걸 잘 아니까.

실은 창업가들은 이미 이 2% 안에 들어왔다. 편한 길을 버리고 스스로 불편함을 택했으니까. 사업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나는 이 경험이 장기적으로 아주 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오늘부터 하루에 하나씩 편안함보단 불편함을 선택하는 걸 권장한다.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싸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직업은 무엇일까? 내가 전 세계의 모든 직업을 알진 못하지만,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직업은 창업가이고,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전투싸움을 하고 있다. 전투라고 썼다가 지운 이유는, 그래도 같이 싸워주는 부대가 있어서 어느 정도는 쪽수가 맞아야지 전투라고 할 텐데,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온 세상을 상대로 혼자 외롭게 싸우기 때문에 이건 싸움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안쓰럽지만, 대부분의 창업가 주변 지인들은 이들을 믿지 않고, 이들이 하는 것도 믿지 않는다. 실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분 중 대단하게 큰 스타트업을 만든 분들이 아니라면 – 즉, 이 글을 읽는 대다수 – 당신들이 하는 일을 당신들 친구도 믿지 않고, 심지어는 가족들도 믿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서 이렇게 외로운 직업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매일 온 세상을 상대로 외롭게 싸워야 하는 이런 직업이 어디 있을까?

얼마 전에 이런 외로운 싸움을 5년째 하고 있는 창업가를 만났다. 그리고 며칠 후에 10년 넘게 큰 성장 없이 사업을 하는 분을 만났다. 이분들과 조금 더 깊게 이야기해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든 것 같다. 처음 시작할 땐, 자신을 불신하고 무시했던 사람들을 엿먹이고 싶었고, 그들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 주고 싶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렀고, 5년,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도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세상 그 누구도 안 믿어도 굳게 자신을 믿었던 본인에 대한 불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와 세상과의 외로운 싸움이, 어느 순간 나와 나와의 싸움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나마 계속 이 힘든 일을 할 수 있던 몇 가지 계기가 있었는데, 그건 가끔, 아주 가끔 본인을 믿어주는 사람들을 만났고 – 직원과 투자자 – 이들과 같이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솔직히 좀 안쓰럽고 짠하고,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이들을 존경하고 응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세상에는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 이렇게 두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 이들은 하는 사람들이고, 이들을 비난하는 모든 사람들은 안 하는 사람들이다. 안 하는 사람이 하는 사람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

오늘도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창업가들 파이팅. 결과가 어떨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당신들은 본인의 믿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인생의 승자들이다.(하지만, 사업에서 승자가 될진 잘 모르겠다.)

스토커와 같이 집착해라

공식 라이선스 스포츠용품을 판매하는 Fanatics라는 미국 회사가 있다.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인이라면 Fanatics 사이트 또는 이 회사가 운영하는 수많은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뭐라도 한 번은 사 봤을 것이다. 미국 모든 대학교의 공식 라이선스 제품을 판매하고 있고, NBA, NFL, MLB 등 프로 스포츠 공식 라이선스 제품도 다 판매하는, 기업가치 약 40조 원의 거대한 이커머스 회사이다.

나도 여기서 돈을 꽤 많이 썼는데, 운동용품과 굿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Fanatics.com에서 한 시간은 거뜬히 체류할 수 있다. 그만큼 다양한 제품이 있고, 사이트도 잘 만들었다. 얼마 전에 이 회사의 창업가 마이클 루빈의 인터뷰를 들었는데, 다른 모든 창업가들의 이야기와 비슷하게, 이분의 인터뷰도 너무 재미있게 들었다.

감명 깊게 들었던 건 이 창업가의 집착이었는데, 뭐를 하던지 고객과 제품에 대한 거의 스토킹 수준의 집착으로 남보다 더 빠른 학습 커브를 만든 내용이 머릿속에 남는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시장에 어떤 신발을 판매하면 가장 인기 있고, 가장 많이 팔 수 있을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밖에서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이 뭘 신고 다니는지, 그리고 어떤 신발을 신는지 관찰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루 종일 신발만 보니 시장에 대한 감이 생기고, 어떤 발/다리 모양이 어떤 신발을 많이 착용하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했다고 한다. 이 짓을 수개월 동안 해서 목디스크가 생겼다는 웃픈 이야기를 했는데, 이 일화는 내가 평생 기억할 것 같다.

몇 달 전에 ‘고객에게 미친 사람들’이라는 글에서 이와 비슷하게 고객의 목소리에 집착하는 창업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솔직히 이런 창업가들이 점점 희귀해진다는 생각을 최근에 많이 한다. 요새 내가 만나는 창업가들은 과거 대비 학벌도 더 좋고, 영어도 더 잘하고, 개발도 더 잘하고, 펀딩도 더 잘해서 확실히 high quality 창업가들이긴 하지만, Fanatics 창업가와 같은 스토커 수준의 집착은 오히려 점점 더 찾아보기 힘들다.

스타트업은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무서운 상대방과 불공평한 경기를 해야 한다. 이 우승 확률이 낮은 경기에서 그나마 확률을 높이기 위해선,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야 하고, 이 제품을 사업으로 키우기 위한 자금을 확보해야 하고, 이 사업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기기 위해 좋은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 이 모든 걸 운동장의 반대편에 있는 상대방이 현재의 일등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걸렸던 시간보다 훨씬 더 빨리 압축해서 해야 한다. 결론은 매사에 열심히 해야 하고, 매사에 집착해야 한다. Fanatics 대표가 하루 종일 대가리를 땅에 처박고 사람들의 신발만 봤던 그 자세로 스토커같이 집착해야 한다.

우리 회사 임직원들은 우리가 만드는 제품에 대해서 이렇게 하루 종일 생각하는가? 우리 고객이 뭘 원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스토커와 같은 마인드로 집착하고 있나? 날이 갈수록 경쟁이 심화되고, 기울어진 운동장의 경사는 더 가팔라지는데, 스토커와 같은 마인드로 우리 제품, 고객, 직원, 성공에 집착하지 않으면 매번 지는 경기를 할 것이다.

언젠가는

2주 전 열렸던 2025년도 마스터스 골프 대회를 드디어 로리 맥길로이가 우승했다. 맥길로이가 2009년도를 시작으로 그동안 17번이나 마스터스에 참가했는데, 탑텐은 여러 번 했고 준우승도 한 번 했지만, 우승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16년 만에 거머쥔 우승 트로피였고, 그 누구보다 우승을 간절히 원했던 선수였기 때문에, 이번 우승은 나에게도 굉장히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우승 인터뷰에서 맥길로이가 이런 말을 했다. “과연 내가 이 대회를 우승할 수 있을지 의문하기 시작했다.(I started to wonder if my time would ever come)”. 그가 울먹이면서 이 말을 하는 그 순간, 바로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의 모습이 그대로 떠올랐다.

맥길로이가 마스터스 대회에 첫 출전 했을 때의 나이가 18살이었다. 엄청난 거물 신인이었고, 그의 기세와 실력은 마스터스 대회를 한 10번은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출전부터 우승을 노렸지만, 우승하지 못했을 때 그의 심정은, “첫 출전이니까 괜찮아. 나는 젊고 앞으로 기회는 너무 많아. 내년엔 우승해야지.” 정도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그다음 해에도 우승에 실패했다. 이번에도 “괜찮아. 난 아직 10대야. 내년에 이기면 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3년 차도 우승하지 못했고, 그다음에도 못 했고, 수년 동안 계속 우승에 실패했다. 어떤 해엔 우승에 가까이 갔지만, 반면에 형편없는 성적으로 마친 적도 많다. 그러면서 맥길로이도 20대가 됐고, 다시 30대가 됐다. 체력도 예전 같지가 않고, 민첩성과 시력도 떨어지면서 더 이상 “내년에 우승하면 돼.”라는 자신감보단, “내가 과연 우승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나는 맥길로이는 개인적으로 모르지만, 그가 지난 17년 동안 마스터스 대회에 대해서 느꼈던 이 감정의 변화는 아주 정확하게 이해한다. 나도 스트롱을 운영하면서 비슷한 과정을 겪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이 맥길로이가 거친 과정을 그대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스트롱 이야기를 해보자. 2012년도에 우린 1호 펀드를 만들었고, 2015년도에 2호 펀드를 만들었다. VC를 처음 시작할 땐, TechCrunch나 WSJ에서 읽는 것처럼, 우리도 좋은 회사에 투자해서 50배, 100배의 수익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과 순진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투자를 시작하고, 첫 2년이 지났을 땐 “이 회사들은 아직 시간이 걸려. 조금만 더 지나면 엑싯이 한두 개는 나올 거야.”라는 희망과 자신감이 아직 충만했다. 그런데 3년, 그리고 4년이 지나면서 이 희망이 서서히 의구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유니콘이 될 거로 생각했던 투자사들이 점점 더 싹수가 노래 보이면서, 과연 이 중 엑싯이 하나라도 나올지 스스로에게 의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의구심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조바심과 절망감으로 매우 빠르게 바뀌면서 “나는 과연 투자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나에게도 엑싯이라는게 생길까?”를 의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하는 투자가 맞다면 언젠가는 좋은 결실을 볼 것이라는 믿음을 억지로라도 스스로에게 주입하면서 계속 버텼고, 2017년도에 우리가 가장 먼저 투자했던 코빗이 좋은 엑싯을 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쌓인 의구심이 다시 자신감과 희망으로 바뀌었고, 이후 우린 계속 좋은 투자를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나는 맥길로이가 겪었던 그 똑같은 희망 -> 의심 -> 절망, 변화의 과정을 거쳤고, 이게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잘 이해하고 있다.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도 모두 다 이런 과정을 경험한다. 아마도 대부분 5년 정도 사업하면 좋은 엑싯을 하거나, 회사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창업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업이라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첫 1년은 개고생인데, 이때만 해도 체력도 있고, 희망도 있고, 자신감도 있어서 “한 2년만 더 하면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한다. 제품도 열심히 만들고, 펀딩도 열심히 하고, 좋은 사람도 열심히 채용한다. 하지만, 잘 안된다. 제품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고객은 안 생기고, 수많은 투자자를 만나지만 그 누구도 돈은 안 주고, 아무도 우리 회사에 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 희망과 자신감으로 몇 년을 더 버틴다. 딱 일 년만 더 하면 모든 게 잘될 거라는 생각으로. 이 과정을 거치면서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다. 회사는 안 망했지만, 창업 초기에 꿈꿨던 성장은 아직도 너무 멀리 있고, 이 10년 동안 창업가의 희망은 의구심으로 바뀌면서 “과연 내가 이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매일 하게 된다. 이게 요새 내가 거의 매일 경험하는 상황이다.

맥길로이가 걸어온 길과 그 감정의 변화를 나는 잘 알기 때문에, 내가 그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그의 이번 마스터스 우승은 감동 그 자체였다. 그는 또, “꿈이 있으면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다시 일어나서 도전해라. 계속 열심히 노력해라. 그러면 꿈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실은, 이 말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너무 뻔한 말이긴 하지만, 이 말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 말을 할 자격이 없지만, 맥길로이는 이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스스로 얻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창업가들이 나에게 자주 물어본다. “대표님, 저도 이 미친 짓 한지가 이제 8년째인데요, 제가 과연 이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요?”
솔직히, 내가 대답하기에 굉장히 부담스럽고 어려운 질문이라서 나도 항상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럼에도 내 대답은 항상 “지금까지 안 망했으면 뭔가는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계속 도전하고, 계속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입니다.”이다.

그 언젠가가 정말로 언제일진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할 수 있다는 믿음조차 없다면 우린 이 험난하고 미친 여정을 계속할 수 없을 것이다.

미친 사람들과 같이 일하기

미친 사람들. 이게 내가 요새 우리 투자사 창업가들과 만날 때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다.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은 본인들의 사업이 잘되든, 잘 안되든, 내가 지금까지 만난 모든 직장인 중 일 잘하는 순위를 매겨보면 상위 1%에 들어가는 분들이다. 일을 좀 하는 분들이 아니라, 오지게 잘하는 분들이고, 남이 만들어 놓은 회사에서 직장인 생활을 하면 날아다닐 정도로 야무지게, 그리고 진취적으로 일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결과를 만드는 그릿이 있는 분들이다. 아마도 이들이 대기업에 취직한다면, 대부분 초고속 승진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분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똑똑하고 일 잘하는 사람들이 그냥 직장 생활을 하면 아주 잘 살 텐데, 굳이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힘든 창업의 길을 택한 걸 보면 정말로 미친 사람들인 것 같다. 솔직히 미치지 않았다면 이 진흙탕에 스스로 들어가서, 나오지도 못하면서 수년 동안 뒹굴지 못할 것이다. 어쨌든 내가 봤을 땐, 머리가 돌지 않고선, 이들이 선택한 ‘남이 덜 다닌 길’로 절대로 안 갈 것인데, 우리는 이미 280명이 넘는 이런 미친 사람들에게 투자했다니, 이것도 미친 짓이긴 하다.

작년부터 올해 내내 너무 힘들어하는 창업가분들과 매일 만나고 있다. 어떤 분들은 우리가 투자한 지 1년이 안 됐지만, 어떤 분들은 우리가 옆에서 10년 이상 진흙탕에서 구르는 걸 보고 있는 분들이다. 항상 돈 없고, 항상 사람 없고, 항상 모든 게 쪼들리는 스타트업의 대표로 10년 동안 살아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내 앞의 대표님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그들의 가족은 뭐라고 생각할까? 내가 이분들과 미팅하면 실시간으로 내 머릿속에서 계속 떠오르는 몇 가지 공통된 질문들이다.

어떤 분들은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고 하고, 어떤 분들은 내 앞에서 펑펑 울기도 한다. 나는 감정이 좀 메마른 인간이지만, 이런 분들을 보면 같이 펑펑 울어 주고 싶을 정도로 안쓰럽다. 그리고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이들에게 그렇게 힘들면 그만하라고 한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의 대표에게 사업 그만하라는 말은 투자자로서는 아쉽지만, 같은 인간으로서는 최선을 다해서 인생을 살고 있는 분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참 신기한 건, 그렇게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그만하라고 해도 대부분 그 힘든 사업을 계속한다. 계속 한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힘든 것 같은데도 계속한다. 죽을 만큼 힘들어서 매일 포기하고 싶지만, 반대로 죽을 만큼 재미있어서 계속하고 싶다고 말하는데, 이런 말을 나는 들을 때마다 이분들이 미친 사람인 건 확실하고, 여기에다가 변태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미친 인간들을 너무 좋아한다. 이런 분들과 항상 같이 일하고, 힘들게 사업하는 걸 가까운 곳에서 보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VC라는 직업은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큰 특권이자 특혜라고 생각한다. 누가 보면 하찮은 사업이지만, 바퀴벌레같이 절대로 죽지 않고, 스스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시도를 하는,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나는 정말 좋다. 원래 내 성향이 그냥 뭐든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좋아했는데 – 나도 그런 편이다 – 초기 투자를 하면서 이런 사람들을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존경하고 사랑하게 됐다. 열심히 한다는 게 이렇게 글로 쓰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 창업가들만큼 열심히 사는 사람이 그렇게 많진 않다.

이번 주도 이런 미친 사람들과의 미팅으로 일정이 빡빡하다. 솔직히 이렇게 힘들어하는 분들과 만나는 게 나도 육체적, 심리적으로 기가 많이 빨려서 힘들지만, 동시에 너무너무 즐겁다. 하시는 사업이 모두 다 잘 되길 바라지만, 이 중 대부분 망할 것이고, 실은 본인들도 그걸 알고 있다. 그런데도 편안한 길을 버리고 남이 덜 다닌 진흙탕과 가시밭을 맨발로 걸어 다니면서 아프지만 너무 즐겁다는 이 미친 인간들을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을까?

이 글을 다시 읽어보니 나도 이제 미친놈이 다 된 것 같다. 오늘도 모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