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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머 15기 데모데이

내가 벤처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국내 1호 악셀러레이터 프라이머 15기 데모데이가 내일 열린다. 한국과학기술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진행되는데, 누구나 다 무료로 참석 가능한 행사이며, 여기에서 사전등록하면 된다. 100개 넘는 회사에 투자한 스트롱벤처스 하나 운영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이보다 더 많은 거의 150 이상의 스타트업에 투자한 프라이머 파트너로도 활동하는 게 가끔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느낀다. 하지만, 꿈 하나만을 믿고, 이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모든 걸 다 희생하는 창업가들을 보면, 오히려 내가 이분들한테 많이 배울 수 있고, 이런 걸 배울 수 있는 프라이머 파트너로 활동한다는 건 소수한테만 주어지는 특권이라고 생각을 한다.

15기 데모데이에는 AI, 여행, B2B, 마켓플레이스, 콘텐츠, 공간, 친환경 등의 분야의 9개의 최첨단 회사가 무대에 서는데,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와서 확인하길 바란다. 그리고 짧지만, 나도 후반부 시작하기 전에 간단한 발표가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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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사와 경쟁하기

이 블로그를 통해서도 여러 번 강조했고, 미팅 할 때도 나는 아주 공공연하게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경쟁사에 관한 내용이다. 너무 많은 대표가 경쟁사가 하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솔직히 어떤 대표는 본인 사업에 대해서 신경 쓰는 시간보다, 경쟁사의 동향에 대해서 신경 쓰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로 히스테리컬하게 경쟁사를 의식하고 있는데, 이런 건 회사가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비즈니스 역사를 보면, 많은 회사가 생겼다 없어지기를 반복하지만, 이 회사들이 망한 원인을 자세히 파악해보면, 경쟁사의 출현 때문에 사라진 회사는 거의 없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 회사들이 망한 이유는 오히려, 경쟁사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정말로 회사에 중요한 고객한테 쏟아야 할 관심과 힘이 빠지면서, 좀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경쟁사가 고객이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4시간 시장을 향해 눈과 귀를 열어놓아도 놓치는 게 많은데, 24시간 경쟁사만 보고, 경쟁사 소식만 듣다 보면 우리는 경쟁사를 위해서 존재하는 회사가 된다는 걸 많은 창업가가 잊고 있는 거 같다. 경쟁사가 가격을 내리면, 우리도 똑같이 가격을 내리고, 경쟁사가 유명 연예인을 이용해서 홍보하면, 우리는 그 연예인의 경쟁 연예인을 이용해서 광고를 만들고, 이런 일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결국 우리 비즈니스는 경쟁사의 비즈니스를 따라가면서, 우리가 처음에 사업을 시작했던 비전과 원칙, 그리고 우리만의 엣지와 방향 자체가 다 무너져버리는 걸 나도 여러 번 본 경험이 있다.

이젠 좀 식상한 이야기가 됐지만, 경쟁에 관해 이야기 할 때, 넷플릭스와 블록버스터 이야기를 빼놓을 순 없을 거 같다. 업계의 정설은, 비디오테이프를 대여해주던 왕국 블록버스터가 망한 이유는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경쟁사 때문이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도 미국에서 유학할 때, 영화를 보고 싶을 때마다 자전거 타고 근처 블록버스터를 방문하는 게 참 귀찮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디오테이프를 한 번에 다 빌려서 기숙사에 쌓아놓고 장기간에 걸쳐 볼 순 없었다. 살인적인 연체료 때문이었다. $2.99를 내고 대여한 테이프를 5일 연체하면, 연체료가 $15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아예 돌려주지 않고 그냥 이사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참 이해할 수 없었던 게, 누가 봐도 너무 가혹한 연체료 때문에, 이렇게 블록버스터를 자주 이용하고 즐기던 고객들이 힘들어하는데, 수년 동안 이 정책을 굳이 고수할 필요가 있었을 까이다. 그렇다고 회사가 돈을 못 버는 것도 아니고, 고객을 만족시키면서 회사가 성장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장과 고객의 목소리를 개무시하면서 이윤을 취하는 게 필요했을까 싶다. 고객의 불만이 쌓이는 동안, 넷플릭스라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넷플릭스 대부분의 팀원이 이미 블록버스터의 고객이었고, 이들 또한 연체료에 대한 불만이 많았기 때문에, 고객의 생각과 목소리를 그대로 반영한 넷플릭스 서비스가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 나는 블록버스터는 넷플릭스라는 경쟁사 때문에 망한 게 아니라, 고객한테 집중하지 않았고, 고객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기 때문에 망했다고 생각한다.

좀 민감한 이슈이긴 하지만, 시장에서 말이 많은 타다와 택시의 대립 또한 나는 이 프레임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택시 산업은 타다를 무조건 경쟁으로만 보고 있고, 이 경쟁사에만 – 실은 경쟁이라고 보기엔 타다의 시장점유율이나 규모는 택시 산업에 비해 너무 미미하다 – 너무 집착하는 것 같다. 하지만, 택시 산업은 타다라는 경쟁에 대해서만 생각했지, 정말로 중요한 승객/고객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 거 같다. 왜 시장은 타다를 원하고, 타다를 타는지, 한번 잘 생각해볼 필요는 있을 거 같다. 택시에 대한 시장의 불만은 이미 수년 동안 존재했지만, 그 누구도 지금까지 고객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았는데, 타다는 이걸 엄청나게 잘 했기 때문에 시장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택시조합에 밀려서 타다가 없어진다고 해도, 고객한테 집중하지 않고 경쟁사만 방해하는데 신경을 쓰는 택시 산업의 장래는 밝을 수가 없다.

경쟁사가 우리보다 더 잘하는 이유를 객관적으로 보면, 고객에게 더 집중하고 고객의 목소리를 더 자세히 듣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쟁사와 경쟁하려면, 경쟁사만 따라 하지 말고, 우리의 고객이 누구인지 다시 한번 정의해보고, 경쟁사가 아닌 고객한테 다시 집중해야 한다.

1.07%

스타트업을 하는 게 힘들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유니콘이 일반적인 사례가 아니라 극히 드문 아웃라이어라는 것도 대부분 알고 있다. 이제 8년이 된 우리 첫 번째 펀드의 경우, 5년 뒤에 거의 절반의 스타트업이 망한 걸 보면, 스타트업 생존율은 정말 낮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CB Insights에서 Venture Capital Funnel이라는 제목으로 스타트업의 생존 관련한 다양한 수치를 트래킹하는데, 나는 이걸 흥미롭게 읽고 있다. 참고로 2015년 12월에 처음으로 이 연구를 시작했고, 그 이후 2017년 3월, 그리고 2018년 9월에 동일한 샘플을 대상으로 세 번째 조사를 했다.

2008년~2010년 사이 미국에서 시드펀딩을 받은 1,119개의 스타트업이 시드펀딩을 받은 후, 후속 투자를 어떻게 받고, 몇 개의 회사들이 살아남는지를 계속 트래킹했는데, 이 중 67%의 스타트업이 특정 시점 이후 후속 투자를 못 받아서 엑싯에 실패하고, 15% 만이 4번째 펀딩(주로 시리즈 C)에 성공했다고 한다. 몇 가지 결과는 다음과 같다:
–1,119개 회사 중 거의 절반인 48%가 시드펀딩 이후 첫 번째 후속 펀딩을 받는다.
–67%가 망하거나, 좀비 회사가 되거나, 또는 먹고사는 회사가 된다(먹고 사는 건 회사에는 좋지만, 투자자한테는 전혀 아니다). 또한, 이 먹고사는 회사는 수년 동안 근근이 먹고 살다가, 결국엔 망하는 경우가 더 많다.
–30%가 IPO나 M&A로 엑싯을 했다.
–위의 30% 중 13개의 회사가 5,000억 원($500M) 이상으로 엑싯했는데, 인스타그램(페이스북이 1조 원에 인수), 젠데스크($632M IPO)와 트윌리오($1.1B IPO)가 여기에 포함된다.

자, 이제 모두가 관심 갖는 질문. 도대체 몇 퍼센트가 유니콘이 됐을까? 상당히 낮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단 높다. 12개의 스타트업이 유니콘이 됐는데, 1,119개 회사 중 1.07%이며, 우버, 에어비앤비, 슬랙, 스트라이프 등이 이 유니콘들이다.

뭐, 이 연구 결과에서 특별한 배움이 있거나, 교훈이 있다는 건 아니다. 그리고 미국이랑 한국은 완전히 다른 시장이라서, 딱히 한국의 창업가들이 뭔가를 벤치마킹하고 배울 수 있는 건 없지만, 여기서 말하는 큰 결론은 미국이나 한국의 스타트업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투자받는 건 정말 어렵지만, 좋은 회사라면 그래도 어떻게 해서 첫 번째 투자는 받는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지속적으로 후속 투자를 받는 회사의 수는 급격하고 감소하고, 이 중 1% 만이 유니콘이 된다는 결과는 참 맥빠지는 수치지만, 그만큼 치열하고 어려운 분야이니 더욱더 허슬링하고 열심히 하게 만드는 자극이 될 수도 있는 거 같다.

2019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보고서 – 서울과 부산

global startup econsystem rank스타트업 생태계를 조금은 다른 눈으로 보면서, 항상 이색적인 연구와 조사를 하는 Startup Genome에서 얼마 전에 Global Startup Ecosystem Report 2019를 발행했다. 전 세계 어떤 나라, 어떤 도시에서 스타트업 생태계가 얼마나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는지 자체적인 기준을 활용해서 평가하고 정리했는데, 뭐 완전히 맞진 않지만, 그래도 대략 큰 그림을 이해하기에는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한국도 살짝 커버됐고, 신기하게도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에도 지면이 할당됐는데, 그냥 몇 가지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전체 점수를 합산해보면, 실리콘밸리가 세계 1등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뭐, 이건 전혀 놀랍지 않은 결과다.
2/ 2위는 뉴욕, 그리고 공동 3위에 런던과 베이징이 올라와 있다.
3/ 아쉽게도 서울은 글로벌 top 30위에는 못 들었지만, 급부상하고 있는 “Challenger(앞으로 5년 안으로 top 30 진입 가능)” 분야에 선정되었고, 중국의 선전과 일본의 동경도 나란히 이 분야에 있다.
4/ 서울은 이제 글로벌화가 시작되고 있는 “Early Globalization 단계”로 분류되었는데, 상대적으로 펀딩과 exit 지표가 좀 낮은 거 같다. 재미있는 내용이 있는데, 왜 당신의 스타트업을 서울에서 해야 하냐에 대한 이유로, 정부의 공격적인 스타트업 생태계 지원과 투자, 그리고 한국이 전 세계에서 R&D에 5번째로 많은 투자를 하는 나라(약 80조 원)라는 점이 강조된다.
5/ 부산은 이제 막 생태계가 시작하고 있는 “Activation 단계”로 분류되었는데, 서울과 비슷하게 역시 펀딩과 exit 지표가 아주 낮지만, 스타트업 들의 output 지표는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다. 아마도, 투자 대비 아웃풋을 말하는 거 같다. 왜 당신의 스타트업을 부산에서 해야 하냐에 대한 이유로는, 다양한 세금혜택과 좋은 인프라를 강조하는데, 이건 좀 갸우뚱이다.

앞으로 5년 안으로 서울이 글로벌 top 30 스타트업 생태계 도시가 될 수 있도록 모두 열심히 노력했으면 좋겠다. 분명히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Startup Genome>

무엇 보단, 누구

동일한 사업을, 동일한 시장에서 하는 회사가 두 개 이상이 있는데 – 어떤 경우는 10개가 넘는다 – 어떤 회사는 너무 잘 되고, 어떤 회사는 잘 안 되는 현상을 우린 자주 경험한다. 실은 이유는 너무 많다. 겉으로 봤을 때는 완전히 똑같은 비즈니스 같지만, 실제로 깊게 들여다보면 조금씩 다른 경우도 많고, 크게 보면 같은 시장이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지갑을 열어서 돈을 내는 고객은 다른 경우도 많다. 그런데 정말로 동일한 시장을 대상으로, 똑같은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인데, 한 회사는 일등이고, 다른 회사는 꼴등인 경우가 있는데, 내 경험에 의하면, 이건 정말 누가 이 비즈니스를 하고 있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거 같다.

투자하는 사람들은 “뭘 하냐 보단, 누가 이걸 하냐가 정말 중요하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나도 실은 입으로는 이 말을 그동안 해 왔지만, 실제로 몸이나 마음으로는 이게 정확히 어떤 말인지 잘 몰랐다. 그런데, 우리 투자사가 동일한 비즈니스를 하는 경쟁사보다 월등하게 잘하거나, 또는 월등하게 못 하는 걸 보면서, 어떤 비즈니스를 하거나, 어떤 시장에 있거나, 어떤 제품을 팔거나, 이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이걸 누가 하냐라는걸 최근에 제대로 경험하고 있다.

실은 잘못하고 있는 우리 회사들이 더 많지만, 그래도 여기선 잘하는 회사를 예로 들고 싶다. 한국에서도 워낙 미디어를 많이 타서,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거 같은데, Morning Recovery라는 숙취 해소 드링크를 미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More Labs의 이시선 대표의 올해 3월 조선일보 인터뷰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올해 예상대로 매출 2,000만달러를 돌파하면 원조인 한국 숙취 해소 음료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국내에서 ‘여명808’을 만드는 그래미의 2017년 매출은 310억원이다. 향후 2~3년 안에 원조(元祖)를 제칠 가능성도 높다.” 올해 과연 이 매출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앞으로 3년 안으로 원조를 제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건 시간이 증명해 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왜냐하면, 이미 여명 808이나 컨디션은 미국 시장 진출을 시도해봤고,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 결과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내가 직접 보고 아는 건, 두 회사/제품 모두 LA의 코리아타운을 벗어나지 못했고, 미국의 메인스트림 시장으로는 전혀 침투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렇게 해서 내린 결론은 미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같이 술을 별로 안 먹고, 회식 같은 걸 안 하기 때문에, 이런 숙취 해소 드링크를 위한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 다였던 거 같다. 그리고 이런 말이 “~카더라”라는 채널을 통해서 마치 정설과 같이 고정된 거 같다.

우리도 실은 이 회사의 비즈니스를 처음 접했을 때, 비슷한 생각을 했었지만, 이시선 대표를 만나고는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다. 그동안 그 누구도 백인들한테 한국 스타일의 숙취 해소 드링크를 못 판 건, 시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걸 시도했던 사람들이 잘 못 했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미국은 밀레니얼들이 가장 술을 많이 먹기 때문에, 한국과 같이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마케팅하고 판매하는 아저씨 전략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색다른 메시징/패키징/마케팅으로 미국 학생들과 밀레니얼들을 대상으로 홍보와 판매를 시작했고, 이 전략이 잘 통했다. 숙취 해소 드링크로 시작한 회사가 이젠 Red Bull과 같은 라이프스타일 회사가 되겠다는 큰 비전을 세우고, 조만간 두 번째 제품인 Liquid Focus를 출시한다. 모닝리커버리가 한국의 재료인 헛개 기반의 숙취 해소 드링크라면, 리퀴드포커스는 인삼이 재료인 에너지 드링크이다.

이런 걸 직접 옆에서 보고, 경험하면서 다시 한번 느끼고 있다. 무엇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이걸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