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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보고서 – 서울과 부산

global startup econsystem rank스타트업 생태계를 조금은 다른 눈으로 보면서, 항상 이색적인 연구와 조사를 하는 Startup Genome에서 얼마 전에 Global Startup Ecosystem Report 2019를 발행했다. 전 세계 어떤 나라, 어떤 도시에서 스타트업 생태계가 얼마나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는지 자체적인 기준을 활용해서 평가하고 정리했는데, 뭐 완전히 맞진 않지만, 그래도 대략 큰 그림을 이해하기에는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한국도 살짝 커버됐고, 신기하게도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에도 지면이 할당됐는데, 그냥 몇 가지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전체 점수를 합산해보면, 실리콘밸리가 세계 1등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뭐, 이건 전혀 놀랍지 않은 결과다.
2/ 2위는 뉴욕, 그리고 공동 3위에 런던과 베이징이 올라와 있다.
3/ 아쉽게도 서울은 글로벌 top 30위에는 못 들었지만, 급부상하고 있는 “Challenger(앞으로 5년 안으로 top 30 진입 가능)” 분야에 선정되었고, 중국의 선전과 일본의 동경도 나란히 이 분야에 있다.
4/ 서울은 이제 글로벌화가 시작되고 있는 “Early Globalization 단계”로 분류되었는데, 상대적으로 펀딩과 exit 지표가 좀 낮은 거 같다. 재미있는 내용이 있는데, 왜 당신의 스타트업을 서울에서 해야 하냐에 대한 이유로, 정부의 공격적인 스타트업 생태계 지원과 투자, 그리고 한국이 전 세계에서 R&D에 5번째로 많은 투자를 하는 나라(약 80조 원)라는 점이 강조된다.
5/ 부산은 이제 막 생태계가 시작하고 있는 “Activation 단계”로 분류되었는데, 서울과 비슷하게 역시 펀딩과 exit 지표가 아주 낮지만, 스타트업 들의 output 지표는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다. 아마도, 투자 대비 아웃풋을 말하는 거 같다. 왜 당신의 스타트업을 부산에서 해야 하냐에 대한 이유로는, 다양한 세금혜택과 좋은 인프라를 강조하는데, 이건 좀 갸우뚱이다.

앞으로 5년 안으로 서울이 글로벌 top 30 스타트업 생태계 도시가 될 수 있도록 모두 열심히 노력했으면 좋겠다. 분명히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Startup Genome>

무엇 보단, 누구

동일한 사업을, 동일한 시장에서 하는 회사가 두 개 이상이 있는데 – 어떤 경우는 10개가 넘는다 – 어떤 회사는 너무 잘 되고, 어떤 회사는 잘 안 되는 현상을 우린 자주 경험한다. 실은 이유는 너무 많다. 겉으로 봤을 때는 완전히 똑같은 비즈니스 같지만, 실제로 깊게 들여다보면 조금씩 다른 경우도 많고, 크게 보면 같은 시장이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지갑을 열어서 돈을 내는 고객은 다른 경우도 많다. 그런데 정말로 동일한 시장을 대상으로, 똑같은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인데, 한 회사는 일등이고, 다른 회사는 꼴등인 경우가 있는데, 내 경험에 의하면, 이건 정말 누가 이 비즈니스를 하고 있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거 같다.

투자하는 사람들은 “뭘 하냐 보단, 누가 이걸 하냐가 정말 중요하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나도 실은 입으로는 이 말을 그동안 해 왔지만, 실제로 몸이나 마음으로는 이게 정확히 어떤 말인지 잘 몰랐다. 그런데, 우리 투자사가 동일한 비즈니스를 하는 경쟁사보다 월등하게 잘하거나, 또는 월등하게 못 하는 걸 보면서, 어떤 비즈니스를 하거나, 어떤 시장에 있거나, 어떤 제품을 팔거나, 이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이걸 누가 하냐라는걸 최근에 제대로 경험하고 있다.

실은 잘못하고 있는 우리 회사들이 더 많지만, 그래도 여기선 잘하는 회사를 예로 들고 싶다. 한국에서도 워낙 미디어를 많이 타서,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거 같은데, Morning Recovery라는 숙취 해소 드링크를 미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More Labs의 이시선 대표의 올해 3월 조선일보 인터뷰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올해 예상대로 매출 2,000만달러를 돌파하면 원조인 한국 숙취 해소 음료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국내에서 ‘여명808’을 만드는 그래미의 2017년 매출은 310억원이다. 향후 2~3년 안에 원조(元祖)를 제칠 가능성도 높다.” 올해 과연 이 매출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앞으로 3년 안으로 원조를 제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건 시간이 증명해 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왜냐하면, 이미 여명 808이나 컨디션은 미국 시장 진출을 시도해봤고,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 결과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내가 직접 보고 아는 건, 두 회사/제품 모두 LA의 코리아타운을 벗어나지 못했고, 미국의 메인스트림 시장으로는 전혀 침투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렇게 해서 내린 결론은 미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같이 술을 별로 안 먹고, 회식 같은 걸 안 하기 때문에, 이런 숙취 해소 드링크를 위한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 다였던 거 같다. 그리고 이런 말이 “~카더라”라는 채널을 통해서 마치 정설과 같이 고정된 거 같다.

우리도 실은 이 회사의 비즈니스를 처음 접했을 때, 비슷한 생각을 했었지만, 이시선 대표를 만나고는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다. 그동안 그 누구도 백인들한테 한국 스타일의 숙취 해소 드링크를 못 판 건, 시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걸 시도했던 사람들이 잘 못 했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미국은 밀레니얼들이 가장 술을 많이 먹기 때문에, 한국과 같이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마케팅하고 판매하는 아저씨 전략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색다른 메시징/패키징/마케팅으로 미국 학생들과 밀레니얼들을 대상으로 홍보와 판매를 시작했고, 이 전략이 잘 통했다. 숙취 해소 드링크로 시작한 회사가 이젠 Red Bull과 같은 라이프스타일 회사가 되겠다는 큰 비전을 세우고, 조만간 두 번째 제품인 Liquid Focus를 출시한다. 모닝리커버리가 한국의 재료인 헛개 기반의 숙취 해소 드링크라면, 리퀴드포커스는 인삼이 재료인 에너지 드링크이다.

이런 걸 직접 옆에서 보고, 경험하면서 다시 한번 느끼고 있다. 무엇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이걸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하던 거나 잘하기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게 대한민국 정부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부인할 수 없는 fact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도 모태펀드의 돈을 받았고, 내가 아는 대부분의 한국 VC는 금액은 차이 나지만, 정부의 출자를 받아서 이 돈을 민간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정부에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우리 같은 민간 조직보단 느리고, 제약 사항이 있어서 명확한 한계가 있지만, 이렇게 스타트업 생태계를 위해서 노력하는 대통령과 그 밑에 있는 분들한테는 비난보단 감사와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래도 항상 아쉬운 부분은 있는데, 내가 그동안 정부 관계자분들과 이야기하고, 같이 일하면서 항상 조언하고, 가끔은 화도 냈던 몇 가지 주제가 있었는데, 최근 수개월 동안 정부의 여러 부처에서 발표하고 시행한 많은 정책과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직은 갈 길도 멀고, 해야 할 일도 많다는 걸 느끼면서 몇 자 적어본다.

일하면서 누구한테나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역할과 분수를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스타트업 생태계와 함께 일 하면서, 항상 지켜야 하는 제1의 원칙이 있는데, 그건 바로 정부는 leader가 아니라 feeder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더는 말 그대로 스타트업 생태계를 앞장서서 이끄는 사람/기관인데, 이 역할은 항상 현재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창업가 또는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맡아야 한다. 피더는 리더들이 생태계를 잘 운영할 수 있도록 옆에서 여러 가지 도움과 지원을 제공(=feed)해주는 사람이다. 주로 정부, 대학, 기관, 대기업 등이 이 피더 역할을 해야 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벤처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한데, 한국에서 앞으로 몇 개의 유니콘을 만들겠다는 발표를 할 때마다 나는 정부가 피더가 아니라 리더를 자칭하면서, 분수를 잊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정부는 리더가 절대로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리더들의 가장 큰 특징이자 필수조건은 ‘입으로 하는 리딩’이 아닌 ‘행동으로 하는 리딩’인데, 정부는 태생적으로 행동이나 실행과는 거리가 조금 멀 수밖에 없다.

몇 년 전보단 훨씬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정부에서 발표하는 창업 지원정책은 이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보면 스타트업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 걸 느낀다. 담당자들이 스타트업에 대해서 너무 몰라서 발생하는 현상인데, 미안하지만, 이 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혀 발전이 없는 부분이다. 스타트업 경험을 못 한 정부 담당자들은 – 그리고 대부분 스타트업 경험이 없다 – 사업을 시작하고, 미친 듯이 정신적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를 참는다는 게 뭔지 잘 모른다. 책으로만 습득하고, 본질을 파악하지 못 하는 주변 지인을 통해서 들은 얕은 지식을 정책에 적용하려고 하니까 이런 일이 항상 발생한다. 이건 어떻게 개선의 여지가 별로 보이지 않는 부분이긴 하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이게 우리한테 가장 필요한 거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장기적인 꾸준함과 인내를 갖고 정책과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킬 수 있는 배짱과 끈기를 가진 공무원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국가의 정책이란 것 자체가 긴 호흡을 갖지 못한다. 특히 한국은 더 그렇다. 5년짜리 단임제 대통령, 그리고 1년이 멀다 하고 자리가 바뀌는 정부 관료들의 숨은 절대로 긴 호흡을 가지지 못한다. 현실적으로 보면,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한 3개월 동안은 새로운 정부에 적응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아무런 활동이 없다. 그다음 6~8개월 동안은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고, 담당자들이 바뀌고, 계획을 세우고, 정책을 만들고, 발표한다. 일단 이러면서 1년이 지나간다. 남은 4년 중 3년 동안 새로운 정책들이 부분적으로 실행되고, 마지막 1년은 또 그다음 정권 준비한다고 날아간다. 이런 현실이다 보니, 정부 관료들은 3년 동안 무조건 실적을 만들어야 하는데, 여기서 큰 착각이 발생하는 거 같다. 이 실적이라는 게 범국가적인 실적이 되어야 하는데, 정부 관료들은 “내 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이러다 보니, 담당자가 바뀌면, 이전의 정책과 프로그램이 아무리 잘 돌아가고 있어도, 백지화시키고 나만의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고 도입한다.

스타트업은 장기 마라톤이다.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길게는 2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데, 벤처를 위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설계하려면, 이런 스타트업의 주기를 잘 이해하고 이 주기에 맞게 생각해야 한다. 실은, 정부에서 만든 정책 중 꽤 잘 만들었고, 잘 돌아가고 있는 것도 있다. 새 정권이 들어서고, 새 담당자가 오더라도, 자꾸 새로운 걸 하지 말고 그냥 원래 하던 거만 잘해도, 지금보단 훨씬 더 좋은 그림이 만들어질거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벤치마킹하기

한국에만 존재하는 서비스나 컨셉을 미국으로 가져가서, 더 큰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사업을 하는 대단한 창업가도 요샌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우리 투자사 대표도 이런 분들이 있다. 그래도, 아직은 미국에서 먼저 생긴 제품이나 서비스가 잘 되는 걸 보고, 이 컨셉을 한국으로 가져와서 그대로 베끼거나 또는 한국 시장에 조금 더 맞게 로컬라이즈하고 화인튜닝해서 사업을 크게 하는 창업가들이 더 많은 거 같다. 아무래도, 기존에 없던 비즈니스 모델을 한국보단 미국 창업가들이 더 먼저 잘 만들고, 규제와 같은 이슈가 상대적으로 덜 하기 때문에, 더 많은 투자를 더 빨리 받아서, 빠른 속도로 스케일을 만들기 때문에 이런 비즈니스를 보고, “저거 한국에서도 하면 잘 될 거 같은데”라는 생각으로 한국에서 출시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이렇게 시작한 서비스를 설명할 때 주로 “우린 한국의 xyz(우버, 아마존, 위워크 등) 입니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이러면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을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투자자는 바로 이해하기 때문에 꽤 편하다. 나도 정확하게 세어 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만나는 회사의 50% 이상이 이렇게 미국에서 잘 되는 모델을 카피해서 한국에서 창업한 케이스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았으면 하는 게, “카피”라고 하면 좀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다른 나라의 비즈니스를 베껴서 한국에서 하는 거에 대해서 나는 전혀 이상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남들이 잘 만들어 놓은 게 있으면, 우린 그 비즈니스를 잘 연구해서, 우리가 사는 시장에 맞게 출시하면 된다. 그만큼 시간도 절약하고, 비용도 절약하고, 무엇보다 이미 이 길을 걸어간 비즈니스가 잘 못 한거는 버리고, 잘 한 것만 참고하면 되는 이점이 있다.

그런데, “한국의 xyz” 또는 “한국형 xyz”를 만든다고 하는 창업가들한테 제품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을 하면 – 특히 UX와 서비스의 흐름 관련된 – 잘 모른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나는 이미 미국에서 이 제품을 유저로서 여러 번 사용해봤기 때문에, 서비스의 요모조모를 잘 알고 있는데, 이걸 만들겠다는 분들이 나보다 제품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 이상해서 “혹시 이 서비스 직접 사용해봤나요?”라고 물어보면, 놀랍게도 많은 분이 직접 사용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분은 미국에 사는 친한 친구나 가족을 통해서 이런 서비스가 있는데 굉장히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런 지인들을 통해서 서비스가 어떻게 작동되고 비즈니스 모델이 어떤지 간접적으로 접했다고 한다. 어떤 분들은 그냥 웹사이트만 몇 번 봤고, 또는 검색을 통해서 어떤 서비스인지 공부하고, 기사를 통해서 비즈니스 모델을 스터디했다고 한다.

이 중 한국에서는 아예 제공되지 않아서 사용조차 할 수 없는 서비스가 대부분이다. 미국 신용카드가 없어서 결제 부분을 경험하지 못한 분들도 있었고, 미국 주소가 없어서 직접 물건을 배송받아보지 못 한 분들도 있었다. 그리고 극소수이지만, 아주 쇼킹하게, 영어를 못해서 제품을 제대로 사용해보지 못한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나한테는 다 게으른 변명으로 들린다. 물론, 위에서 말한 이유로 한국에서 이런 서비스를 쉽게 사용하는 건 어렵지만, 이런 제품을 한국에서 만들겠다는 창업가들이 이미 우리보다 몇 발 앞서있는 비슷한 비즈니스를 A부터 Z까지 사용하고 경험하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제품도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iteration 했고, 투자도 많이 받았고, 유저도 압도적으로 많은 글로벌 서비스를 잘 벤치마킹하면, 그만큼 우린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어서 아주 빠른 follower가 될 수 있고, 이렇게 기본기를 탄탄하게 만든 후에 한국 시장에 맞게 로컬라이징 하면, 정말 많은 시간, 돈,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벤치마킹을 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확실하게 해야 한다. 겉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뼛속까지 깊게 들어가서 이 서비스는 왜 이런 프로세스를 만들었는지를 모두 경험하고 이해를 해야 한다. 회원 가입부터 결제, 그리고 만약에 이커머스라면, 실제 물건을 받는 과정, 그리고 반품과정까지,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다 테스트해봐야 한다. 내가 이커머스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이유는, 배송이라는 오프라인 프로세스가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모든 걸 경험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전환율이 높은 이커머스 플랫폼의 경우,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는 과정, 몇 시간 안으로 장바구니 물건을 구매하지 않았을 때 사용자가 받는 이메일이나 문자 등과 같은 디테일은 그냥 남을 통해서 들어서는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거라서 직접 스스로 다 해봐야 한다.

내 주변에는, 본인들이 벤치마킹하는 미국 서비스를 제대로 사용해보기 위해서, 그리고 오롯이 이것만을 위해서 미국에서 두 달 동안 살다 온 창업가도 있다. 이분들같이, 필요하다면, 직접 미국까지 가서 경험해보길 권장한다. 그만큼 중요하다.

차이를 인정하기

우리도 요새 새 펀드를 만들고 있고, 아무리 업력이 좀 있고, 숫자가 나쁘지 않아도, 역시 남의 돈 받는 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인거라는걸 매일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다. 좋은 회사에 투자하는 것도 어렵지만, 투자하기 위해서 남의 돈 투자 받는 거에 비하면, 투자는 오히려 쉽다는 생각도 가끔 하고 있다. 스타트업 대표님들이 피칭할 때 느끼겠지만, VC도 매우 다양하다. 모두 성향이 다르고, 투자 분야, 스테이지 등에 따라서 선호하는 회사와 창업가가 다르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 같은 펀드에 출자하는 LP들도 모두 다르다. 이건 LP들 개인적인 성향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그 회사의 역사와 색깔 등에 따라서도 아주 다르다는 점을 항상 느낀다. 예를 들면,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는 손실을 보호하는데(=downside protection) 너무 신경 쓰진 않는다. 초기 투자의 성격상 리스크가 크고 어차피 손실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수익을 극대화하는데 모든 노력과 초점을 맞추는 편이다. 손실은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초기 투자에서 홈런을 친다면 이 손실을 모두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전략을 좋아하는 LP도 있지만, 엄청나게 싫어하고 이런 투자를 이해하지 못 하는 LP도 있다.

한국과 외국 LP 간에도 여러 가지 차이점이 존재하는데, 한국 LP는 거의 물어보지 않지만, 해외 LP는 항상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스트롱벤처스 파트너들의 파트너십이 정말 strong 하냐? 내가 돈 맡겼는데, 너희 둘이 싸워서 파트너십이 깨지면 어떻게 하냐?” 이다. 우리 회사와 펀드의 수익률 등의 정량적인 수치도 당연히 중요시하지만, 내가 요새 느끼는 건, 큰 해외 LP는 수치보단 이런 파트너십의 역사와 견고함에 엄청 신경 많이 쓴다는 점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많은 VC가 만들어졌다가 다시 해체되는데,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VC의 실적보단, 파트너십의 문제 때문이다. 파트너들이 서로 싸워서 헤어지면서, VC가 해체되는 걸 나도 꽤 많이 봤는데, 결국 이들을 믿고 돈을 맡긴 LP 한테는 치명적인 리스크가 된다. 또한, 담당 파트너가 만약에 회사를 나갔다면 투자사들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져서 곤혹을 치르는걸 많이 봤다(전문용어로는 ‘고아’가 됐다고 한다).

실은, 이 질문을 받으면 나랑 존의 파트너십은 아주 탄탄하다는 걸 뭔가 정량적으로 증명하는 게 쉽진 않지만, 내가 강조하는 몇 가지 포인트가 있긴 하다. 일단 우리 둘을 모두 아는 분들은 공감하겠지만, 우린 정말 다르다. 성향도 다르고, 회사에 대한 시각도 다르고, 무엇보다도 성격 자체도 아주 다르다. 이런 다른 두 사람이 같이 사업을 하다 보면 엄청 많이 부딪히고, 엄청 많이 싸우는데, 우리도 실은 그렇다. 8년 동안 맨날 싸웠고, 서로 동의하지 못했고, 요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파트너십은 더욱더 strong 해졌고, 앞으로 더 strong 해질 것이다. 여기엔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거 같은데, 일단 우린 비즈니스 동료이기 전에 초등학교 친구라는 점이 강하게 작용하는 거 같다. 워낙 어릴 적부터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자랐기 때문에 – John은 내 세컨드 와이프라는 농담도 자주 한다 – 아무리 의견 차이가 커서 대판 싸워도, 파트너십이 안 깨진다. 그리고 올해로 우리가 8년째 스트롱을 같이 운영하다 보니, 이미 그동안 너무 많이 의견충돌하면서 서로를 솔직하게 경험했고, 이게 8년 동안 지속하다 보니까 이젠 웬만하면 금이 가지 않는 파트너십이 만들어진 거 같다.

이렇게 서로의 의견 차이를 인정하면서 같은 방향을 보고 비즈니스 하는 걸 잘 표현한 영어가 있는데 바로, “agree to disagree”라는 말이다. 말 그대로, 서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걸 동의한다는 의미이며, 역사가 오래된 VC 파트너십의 관계를 잘 설명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의 브랜드를 갖고 비즈니스를 한다는 건, 파트너들이 모두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거 같다. 하지만, 같은 방향을 보더라도, 어떤 사람은 천천히 가고, 어떤 사람은 빨리 가고, 어떤 사람은 지름길을 택하고, 어떤 사람은 일부러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이런 방법론에서 상당히 많은 fine tuning이 필요한데, 여기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게 매우 중요한 거 같다.

우린 이제 VC로서 8살이 됐다. 솔직히 8년 경력으로는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민다. 한국은 찾기 힘들지만, 미국의 경우 파트너십의 역사가 20년 이상인 좋은 VC가 많은데, 이들에 비하면 우린 아직은 완전 주니어 VC이지만, 남이 만들어 놓은 하우스에 취직한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든 하우스를 8년 동안 잘 지켰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