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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콜

pagecall더 나은 통합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을 만들고 있는 우리 투자사 플링크에서 오랫동안 개발하고 튜닝한 PageCall을 베타 출시했다. 사용하는 만큼 돈을 내야 하는 유료 서비스지만, 첫 1,000분 까지는 모두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데, 멀리 있는 비즈니스 파트너나 고객과 음성, 영상, 그리고 칠판을 이용해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분이면 꼭 사용해보길 권장한다.

내가 플링크의 최필준 대표를 처음 만난 건 2017년 2월이다. 우리 LP 중 한 분이 괜찮은 기술력을 가진 서울대생들이 있는데, 아직 사업 방향을 제대로 못 잡은 거 같으니 한 번 만나보라고 해서 연결이 됐다. WebRTC를 기반으로 스카이프와 행아웃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팀인데, 만나자마자 좋은 팀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비즈니스는 내가 보기에 조금 더 좋은 방향이 있을 것 같아서 다양한 피드백을 드렸고, 펀드레이징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그림을 함께 그려봤다. 우리는 LA와 서울에 사무실이 있고, 투자도 이 두 지역에 하기 때문에 우리 내부적으로 스카이프, 카카오톡, 행아웃, 페이스타임 등 실제 전화만 빼곤 인터넷 기반의 무료 커뮤니케이션 툴로 소통을 엄청 많이 하고, 미국에 있는 회사들과도 화상 미팅을 상당히 많이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항상 안타까운 점이 있는데, 자율주행 자동차가 출시되고 하늘을 나는 비행 자동차를 논하고 있는 2019년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화상 미팅을 하려면 아직도 셋업 하는데 10분 이상이 소비된다는 것이다. 30분 화상통화를 하면, 이 중 절 반은 시스템 셋업 하고, 중간에 통신 끊기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허비된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이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한 온디맨드 커뮤니케이션 소프트웨어는 최근에 IPO 신청한 Zoom이라는 미국 회사다. Zoom이 처음 출시될 때부터 나는 사용해봤는데 – 유료화된 이후부턴 사용하지 않는다 – 너무 잘 만들었고, 지금까지 사용해 본 화상 미팅 솔루션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직도 이 시장에서 더 빠르고, 더 좋고, 더 저렴한 솔루션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생각도 항상 하고 있던 차에 플링크를 알게 됐을 때 관심이 많이 갔다.

페이지콜은 음성, 영상, 칠판 기능을 다 지원하는데, 이 제품의 차별점은 실시간 칠판(=canvas) 기능이다. 상대방과 단순히 통화를 하는 거면 칠판 기능이 굳이 필요 없지만, 뭔가 자료를 같이 보면서, 그 내용을 상대방한테 설명하려면 래그가 없는 준실시간 칠판 기능이 필요하다. 선생님이 학생한테 화상으로 수학 과외를 하려면 공식을 설명하고, 도형과 기호를 그리면서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끊기지 않고 필기 순서가 꼬이지 않는 칠판 기능은 필수이다. 보험설계사가 비대면으로 고객에게 보험약관을 설명하려면, 둘 다 약관을 보면서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칠판 기능이 필요하다. 성형외과 의사가 환자에게 얼굴의 어느 부위를 어떻게 수술할 건지 비대면으로 설명하려면, 칠판 기능이 필수이다. 여기에 페이지콜의 강점이 존재한다.

비즈니스 용도로 페이지콜을 사용하려면, 간단한 API를 이용해서 직접 나만의 온디맨드 커뮤니케이션 솔루션을 구축할 수 있다. 위에서 수학 과외 이야기를 했는데, 엄청난 시청률을 자랑했던 JTBC 드라마 ‘SKY 캐슬’에서 소개된 화상 과외 솔루션 ‘수파자‘가 플링크의 페이지콜 API를 적용해서 만들어진 서비스다. 굳이 자체 제품을 만들기보단, 이렇게 남들의 좋은 온디맨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쉽게 구축할 수 있게 도와주는 통합 커뮤니케이션 API를 제공하는 B2B SaaS 비즈니스 모델이 한국에서는 아직 정착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이 시장은 무궁무진해질 거 같다. 특히, 경제와 고용 시장이 점점 비대면으로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자본이 전략이 될 때

미국에서 온 친한 VC랑 최근에 투자를 받아서 당장 돈이 필요 없는 벤처가 또 급하게 펀드레이징을 굳이 할 필요가 있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투자를 받은 지 얼마 안 돼서 통장에 현금이 꽤 넉넉하게 있고, 비즈니스도 나쁘지 않게 되고 있는 우리 투자사가 있는데, 나는 이 회사가 당장은 돈 걱정이 없으니까 제품 개발과 고객 발굴에 더 집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돈 떨어지기 한 6개월 전부터 다시 시장에 나가서 투자유치를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온 내 친구는 투자는 필요할 때 받지 말고, 돈을 주겠다는 사람들이 있을 때 받는 게 가장 좋고, 이 회사는 현재 성장도 좋고 지표도 좋으니까, 지금 당장 투자를 받아도 창업가들이 원하는 조건에 투자를 받을 수 있으니, 지금 투자를 받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을 계속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본을 단순히 돈으로 보지 말고, “자본을 돈이 아닌, 전략으로 사용하자”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조금 더 풀어 설명하자면, 얼마 전에 쿠팡이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받은 2조 원을 사례로 사용하면 좋을 거 같다. 실은 나도 인사이더는 아니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쿠팡이 원래 필요했던 금액은 이 정도는 아니였다고 한다. 2조 원 까지 유치할 계획이 아니었지만, 소프트뱅크에서 그냥 더 많이 받으라고 주장했던 배경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시장에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전달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돈 엄청 많아. 너네 덤비려면 덤벼봐.” 즉, 자본을 전략으로 사용하는 건데, 다른 경쟁사들이 쉽게 카피할 수 없는 그런 전략 – 혹자는 돈지랄이라고 하는 – 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 소식이 시장에 전달되자마자, 쿠팡의 경쟁사들은 걱정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본인들은 열심히 일해서 스스로 벌어서 그 돈으로 회사 운영하고, 마케팅해야 하는데, 쿠팡은 그냥 쓸 수 있는 돈이 마치 2조 원이나 있으니, 게임 끝났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내가 듣기로는 어떤 회사들은 그냥 백기를 들거나, 핵심 인력이 다른 회사로 갔다고 한다.

그렇다고 쿠팡이 돈이 엄청 많아서 이 투자금이 전혀 필요 없었던 건 아니다. 성장에 집중하면서 계속 손실이 나고 있었기 때문에 큰 투자금이 필요한 건 맞았지만, 필요 이상으로 투자를 받은 배경 뒤에는 자본을 전략으로 사용하는 논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더 큰 펀드를 운용하고, 나보다 더 큰 시장에서 더 복잡하고 정교한 투자를 하는 VC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펀드레이징에 대해서 내가 갖고 있었던 생각에도 조금 변화가 생겼다. 돈이 필요하면 투자받지만, 굳이 돈이 필요 없으면 비즈니스에만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아직도 기본적으로는 이렇게 사업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경쟁사들이 나랑 경쟁하는 생각조차 못 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시장에 우리가 이 분야에서 제일 잘 나가는 회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돈 자체를 위한 펀드레이징이 아닌, 전략으로서 펀드레이징을 활용하는 것도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방법인 거 같다. 물론, 밸류에이션과 같은 조건이 맞다면.

행동의 가치

우리가 올해 투자한 회사 중 유아동복을 리세일(=중고위탁판매)하는 코너마켓이라는 스타트업이 있다. 미국에서는 엄청 커진 thredUP과 유사한 비즈니스다. 얼마 전에 코너마켓 새로 이사한 사무실에 갔다가 개인적으로 생각난 점이 있어서 몇 자 적어본다.

이 회사 김준모 대표님을 처음 만난 건 한 2년 전이다. 내가 벤처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프라이머에 지원했고, 그때 비즈니스는 자전거 관련 사업이었는데, 잘 안 될 것 같았고, 그냥 하다가 포기할 줄 알았다. 그런데 프라이머 그다음 배치에 다시 지원했다. 그게 코너마켓 모델이었는데, 이 비즈니스가 좋았다기 보단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사업을 하고 있고, 프라이머 탈락했지만 다시 지원해준 게 고맙기도 해서 또 인터뷰를 했다. 나는 미국의 thredUP 이라는 비즈니스를 알고 있었고, 이 시장이 한국도 엄청 클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직 이 팀은 준비가 되지 않은 거 같았고, 과연 이 비즈니스를 제대로 시작할 수 있는 온라인/오프라인 실행력이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비즈니스는 좋고, 시장도 좋고, 타이밍도 좋은데, 조금만 더 지켜보자라는 결정을 내렸고, 일단 프라이머 두 번째 도전도 탈락시켰다. 그런데 그다음 배치에 다시 지원했고, 이번에는 코너마켓 모델을 꽤 날카롭게 다듬었고, 긍정적인 초기 시장 피드백을 갖고 왔다. 프라이머 권도균 대표님과 이기하 파트너님과 그때 아마도 내부적으로 “비즈니스는 실력보단 의지가 중요한데, 이 팀의 의지는 좋은 거 같다. 그리고 3번씩 프라이머 지원했으면, 우리가 도와줘야 하는 게 아니냐”라는 이야기를 했던 거 같고 이번에는 선발했다.

그리고 나랑 한 3개월 정도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비즈니스도 다듬고, 여러 가지 기초 작업하는 걸 옆에서 나는 조금 도와줬다. 실은 이게 앞단에서 보면 이커머스지만, 뒷 단에서 보면 노가다가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옷을 수거해야 하고, 수거한 옷을 정리하고, 사이트에 올리고, 판매될 때마다 또 배송해야 하기 때문에, 전형적인 물류, unit economics와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힘든 비즈니스라서, 돈 없는 작은 스타트업이 하기에는 참 어렵다는 걸 이 비즈니스를 옆에서 보면서 나도 매일같이 느꼈다. 그래도 조금씩, 계속 발전이 있었다. 외형적인 매출도 조금씩 증가했지만, founder들이 비용과 물류에 대한 감을 조금씩 잡아갔고, 아주 작은 operation이었지만, 나름대로의 공식을 찾기 위해서 계속 실험하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우리가 이 회사에 투자를 해야겠다고 결정한 계기는, 수거한 옷이 증가하면서, 작은 창고로 사용할 수 있는 새로 이사한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였던 거 같다. 중랑구 중화동, 1층에 닭강정집이 있고, 3층에 과격한 순복음 교회가 있는 허름한 건물의 4층이었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물류 과정을 최적화하기 위해서 나름 배치를 잘했고, 두 분의 남매 코파운더가 진흙탕에서(영어로는 shithole이라고도 한다) 구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몸으로 체험하면서 모든 걸 배워가고 있었다. 그때 나는 이런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더 크게 확장하면 어떤 모습이 될지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그림을 그렸고, 얼마 후에 스트롱에서 조금 투자를 했다.

이후 처리해야 할 물량이 커지면서, 다시 한번 회사는 이사를 갔다. 돈을 아끼면서, 사람도 채용하고, 배송도 고려해서 경기도 남양주의 창고형 사무실로 이사 갔는데, 얼마 전에 내가 방문해서 찍은 사진 몇 개를 올린다.

사진 2019. 3. 6. 오후 6 49 10

실은, 창고에 들어가자마자 많이 놀랐다. 이젠 제법 옷이 많아져서 그럴듯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사진 2019. 3. 6. 오후 8 02 43

사진 2019. 3. 6. 오후 8 03 40

그리고 원래는 단층이었던 창고를 김준모 대표가 직접 설계해서 – 과거에 설계를 좀 했었다 – 복층으로 만들었는데, 이 또한 운영의 최적화를 고려한 설계였다.

아직 갈 길이 너무너무 멀긴 하다. 앞으로 투자도 더 받아야 하고, 매출도 더 커져야 하고, 좋은 사람도 많이 채용해야 한다. 그래도 쉽지 않은 사업이다. 하지만, 누가 이미 만들어 놓은 회사에 들어가서, 이미 오랜 세월 동안 하던 일을 배운 팀이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경험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스스로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좋다. 말 잘하는 사람도 멋있고, 말이 창출하는 가치가 있지만, 행동이 만드는 가치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정말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좋을 딜을 위한 나쁜 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북미정상회담은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결과로 끝나진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트남을 떠나면서 “나쁜 딜 보단, 노 딜이 낫다”는 너무나 딜메이커다운 말을 남겼는데, 실은 이 말은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그 누구도 나쁜 딜을 하고 싶어 하진 않고, 손해 보는 딜을 할 바에야 딜을 하지 않는 게 훨씬 좋다. 우리가 하는 벤처투자도 마찬가지다. 나쁜 투자를 해서 돈을 잃기보단 그냥 투자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여러모로 좋다.

그런데 벤처투자는 – 특히, 초기 투자는 – 이게 말처럼 쉽진 않다. VC들끼리 하는 농담 중 하나가, “모든 VC의 첫 번째 펀드는, 그리고 어쩌면 두 번째 펀드까지, 대부분 수업료다”인데, 그만큼 좋은 딜을 발굴하고 투자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내 짧은 경험에 비춰봐도, 벤처 투자를 시작하고 한 4년 정도 이 바닥에서 구르고, 실수하고, 나쁜 판단을 해야지만,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는 기초체력이 만들어지는 게 정말 맞는 말인 거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대로 나쁜 딜 보단, 노 딜이 낫지만, 나쁜 딜을 많이 해야지만 좋은 딜을 할 수 있고, 노 딜만 하다 보면 좋은 딜은 절대로 못 한다. 왜 그럴까? 내가 다른 VC를 대변할 순 없지만, 크게 보면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생각은 우리같이 작은 초기 투자자한테 더 잘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일단 초기 투자의 성공은 확률과 운의 게임인 거 같다. 이제 유니콘이 된 회사에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돈을 제공한 투자자들과 사적인 자리에서 이야기를 해보면 – 공적인 자리에서는 본인들이 그 회사의 미래를 예측했고 창업가의 포텐을 첫 만남에서 알아봤다고 하는 개소리를 가끔 하기 때문에 – 그냥 느낌이 좋았고, 여기에 베팅했고, 그게 운이 좋아서 잘 풀렸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 우리 포트폴리오에는 아직 유니콘이 된 스타트업이 없지만, 잘 하는 회사를 보면 나한테도 이 확률과 운의 게임이 그대로 적용되었던 거 같다. 즉, 많이 투자해야지, 그중에서 확률적으로 잘 될만한 회사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많이 투자해야 한다”는 그냥 돈을 막 뿌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경험과 통찰력과 네트워크로 만들어진 투자자의 능력이 어느 정도는 적용되어야 하는데, 이 능력이 만들어지려면 역시 많은 투자를 통해서 단맛 쓴맛 모두 경험을 해야한다. 여기에서 홈런왕 베이브 루스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순 없을 거 같다. 많은 분이 베이브 루스가 홈런왕이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삼진도 많이 당했다는 건 잘 모르는 거 같다. 그만큼 배트를 많이 휘둘렀기 때문에 홈런도 확률적으로 많이 칠 수 있었던 거다.

두 번째 이유는, 이렇게 나쁜 딜을 많이 하면서, 가끔 운이 좋으면 좋은 딜도 하고, 뭐 이러면서 죽지 않고 살아남으면, 이 살아남은 실적 자체가 고스란히 투자자의 평판이 된다. 위에서 초기 투자 성공은 운과 확률의 게임이라고 했는데, 이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좋은 창업가와 좋은 팀이 알아서 투자자를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VC라도, 그리고 아무리 같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했더라도, 모든 스타트업을 다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직접 모든 회사를 다 찾아다니면서 만날 수가 없다. 그러면, 본인이 좋은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좋은 딜이 나한테 수동적으로 오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서는 평판이 필요하다.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세쿼이아나 앤드리슨호로위츠와 같은 유명한 VC가 좋은 회사에 많이 투자할 수 있는 이유는 중 하나는 바로 좋은 창업가들이 VC의 평판을 믿고 먼저 연락하고 찾아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평판이라는 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시간이 걸린다. 아니,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다. 이 긴 시간 동안 계속 투자를 꾸준히 해야 하는데,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나쁜 딜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만약, 나쁜 딜을 하지 않으려고, 전혀 투자하지 않으면, 펀드의 원금은 보존하겠지만, 투자자로서의 가치는 떨어지고 평판 자체가 아예 생기지 않는다. 나도 자주 하는 말이지만, VC 평판에 최악의 영향을 미치는 건 나쁜 투자를 많이 한 것보단, 아예 투자하지 않는 것이다. 투자를 아예 안 하면, 창업가 커뮤니티에서 잊히고, 이러다 보면 좋은 창업가들이 아예 찾아주지 않기 때문에 굿 딜을 하는 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나쁜 딜을 많이 해도, 투자를 계속하면, 그래도 딜들이 계속 들어오긴 한다. 물론, 여기서 옥석을 가리는 건 또 다른 이야기지만.

뭐, 결론은…투자는 참 어렵다는 이야기다. 나도 나쁜 딜은 하기 싫고, 나쁜 딜을 할 바에야 아예 딜을 하지 않고 싶지만, 이 다이나믹한 초기 투자 시장에서는 나쁜 딜은 좋은 딜을 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너무나도 존경하는 워렌 버핏이 자주 하는 말 중, “공이 지나갈 때마다 휘두르지 마라”라는 말이 있고 나도 이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고 있지만, 초기 투자를 많이 할수록 이 말은 우리한테는 잘 안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외부 의존도가 100% 이면

요새 카카오와 타다/쏘카가 택시 조합과 정부와 싸우는 걸 보면서 정말 한국은 필요 이상의 규제가 너무 많다는 느낌을 받는다. 규제와 싸우는 것만이 최고의 방법은 아니지만, 나는 타다가 끝까지 버티면서 싸워주길 개인적으로는 내심 바라고 있다. 모빌리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닌데, 이 분야 말고도 정부의 규제가 스타트업의 발목을 묶는 분야는 상당히 많다. 규제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미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하고 있는 기존 플레이어가 존재하는 분야가 대부분이다. 이걸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겠지만, 나는 정부의 규제가 소비자를 보호하기보단, 그냥 기존 플레이어들을 – 주로 대기업 또는 대량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단체 –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생각을 요새 더욱더 하고 있다.

규제가 심한 산업에서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에게는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돈도 없고, 사람도 없고, 힘도 없는 스타트업은 더 큰 기존 플레이어와 경쟁하는 것도 벅찬데, 여기에 규제까지 골리앗을 돕는다면 작은 회사는 생존의 위협마저 느낄 것이다. 한 1년 전에 이런 규제 때문에 발목이 묶인 산업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대표를 만난 적이 있다. 좋은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지만, 사업을 너무 이상적으로 바라본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고, “정부에서 이것만 해주면…” 이라는 말을 계속했다. 대기업을 보호하고 자기 사업을 가로막는 규제를 정부 부처에서 곧 없앨 것이라는 발표를 했기 때문에, 규제가 없어지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고, 이렇게 되면 오랫동안 준비한 사업이 커져서 대박 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가 이 분과 조금 더 이야기해보니, 정부에서 이와 비슷한 발표를 한 건 맞지만, “규제 완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라고 말 한 거지 당장 규제를 없애겠다고 말한 건 아니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그 이후에는 실제로 스타트업한테 유리하게 규제를 완화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거센 반대에 부딪혀서 1년이 넘은 이 시점에도 이분은 제대로 사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계속 정부가 이것만 해주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고 자신을 위안하고, 직원들을 설득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이분이 바라는 대로 정부가 규제를 곧 완화할까? 1년 동안 아무 변화가 없었는데, 앞으로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런데 운이 좋아서 정말로 규제가 완화됐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이분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정말로 사업이 대박날까? 실은, 그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안 그래도 불확실성 투성이인 벤처인데, 그리고 이런 불확실성을 되도록 최소화하는 게 사업의 목적 중 하나인데, 회사의 존재 자체를 내가 기본적으로 전혀 컨트롤 할 수 없는 남한테 의존해서 잘 된 사례를 나는 본 적이 없다. 그것도 그 ‘남’이 정부일 경우에는 더욱더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끔 회사들을 만나면 “앞으로 어떤 굵직한 일이 외부에서 발생하면, 회사가 크게 성공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하는데, 여기에 대한 답변인 “만약에 이게 되면, 사업이 잘될 것이다”에서 그 일이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내부적으로 전혀 컨트롤 할 수 없는 일이고, 그냥 잘 될 거라는 현실성이 부족한 희망이 만든 환상이라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