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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스타트업이 바로 lean 스타트업이다

이 분야에서 일하면 ‘lean 스타트업’ 이나 ‘lean 방식’ 이란 말을 굉장히 자주 듣는다. 솔직히 나도 좋아하는 말이고 Eric Ries의 책 The Lean Startup을 처음 읽었을때는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출간된지 5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린 방식’에 대해서 강연하고 컨설팅하면서 먹고 사는 분들이 있으니 정말 대단한 방법론이다.

나는 아직도 모든 스타트업들한테 무조건 ‘lean’ 하게 회사를 운영하라고 하지만 이들한테 듣기 싫은건, “린 스타트업 방식에 위배됩니다.” 라는 말이다. 오랜 고민 후 뭔가 하려고 했는데, 책 또는 관련된 기사나 논문을 읽어보니 본인들이 생각하는 바가 린 스타트업 방식과 다르기 때문에 실행하지 않고 계속 남들이 린 방식에 대해서 정의해 놓은 틀에 본인의 사고와 방법을 끼워맞추려는 창업가들을 가끔씩 본다.

이들한테 나는 항상 역으로 “도대체 당신이 생각하는 린 스타트업이 뭔데?” 라고 묻는다. 린 스타트업 공식이란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대부분 이론과 내용이 그렇듯이 에릭 리스가 ‘린 방식’을 발명한건 아니다. 이미 수 십년 동안 창업가들이 실행하는 걸 잘 관찰한 결과를 구체적, 논리적, 분석적으로 설명한거다. 내가 생각하는 린 방식은 별거 없다. 비용을 최대한 아끼고, 내가 가진 한정된 자원을 십분 활용하면서 제품을 개발하고 마케팅하고 비즈니스를 만들어 가는거다. 더 간단히 말하면 그냥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하기’ 다. 이는 대부분의 벤처인들이 이미 매일 고민하고 몸소 실행하는 방법이자,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굳이 내가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이 린 한지, 린 하지 않은지 고민하느라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정답이 없는 스타트업 세계에서 나를 굳이 린 방식이라는 틀에 맞출 필요는 없다. 돈 아끼고, 열심히 일하고, 조금씩 발전한다면 당신이 운영하는 스타트업이 바로 린 스타트업이고, 그게 바로 린 방식이다.

타협하면 안 되는 4가지

no compromise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건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인생의 다양한 면을 경험하는 거와 비슷하다. 인생은 결정의 연속이자, 타협의 연속이기도 하다.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세상이 내 사정을 봐주지 않기 때문에 많은 경우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해야 한다. 스타트업도 여러 가지 상황을 봐가면서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므로 가끔은 타협을 해야 한다.

하지만 – 특히,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 절대로 타협하면 안 되는 게 몇 가지 있는데 내 경험과 생각에 의하면 제품, 채용, 숫자와 현금흐름이다.

1/제품 – 좋은 제품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제품을 출시했는데 예상보다 냉담한 시장의 반응, 투자자들의 무관심, 현저하게 저조한 사용률 등, 이 흔한 문제들은 마케팅을 잘 못 해서가 아니다. 제품이 후졌기 때문이다. 제품을 제대로 만들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많은 경우, 스타트업은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핑계로 제품의 완성도에 대해서 타협하는 창업팀을 본다. 원래 의도했던 기능을 구현하려면 6개월이 더 걸리고, 더 많은 개발인력이 필요하므로 “일단 이 정도만 해놓고 출시하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라는 말로 자신을 정당화하고 위안하면서 출시를 강행한다. 하지만,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실패다. 그리고 그나마 몇 안 되었던 초기 사용자들은 완성도가 떨어지는 B급 제품을 사용하면서 이미 좋지 않은 사용자 경험을 했기 때문에 회사와 제품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떠난다. 이들을 다시 부르는 건 쉽지 않다.
사진을 올리면 비율이 깨져서 매우 보기 싫은 서비스가 있었다. 창업팀에게 물어보니, 사진 올리는 기능 자체는 작동하니 – 그래서 MVP를 만들었으니 – 비율 깨지는 건 일단 사용자 피드백을 받은 후에 고칠 계획이라고 하는데 이건 잘못된 접근 방법이다. 일단 이들은 MVP의 정의 자체를 잘 모르고 있다. 그리고 사소해 보이지만, 결국 돈을 버는 제품을 만드는 건 디테일이다.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제품의 완성도와 타협하면 안 된다. 원래 의도한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솔직히 이렇게 만들어서 출시해도 잘 안 될 확률이 90%이다. 출시가 늦어져도 상관없다. 출시가 늦어지는 게, 이상한 제품을 조기 출시했다가 다시는 이 바닥에서 명함을 못 내미는 거 보다는 낫다.

2/채용 – 항상 강조하는 거지만, “당신이 지금 힘들게 채용해서 만드는 team이 바로 당신이 만들 회사 그 자체임을 잊지 말아라” 솔직히 아무도 모르는 가난한 스타트업이 좋은 사람을 채용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능력 있는 개발자들은 돈 많이 주는 회사에서 편하게 일할 수 있는데 굳이 미래가 불투명하고 월급도 제대로 못 주는 스타트업에 올 이유가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창업가는 시간이 갈수록 인재채용의 기준을 낮추고, 결국 적당한 수준만 되면 아무나 채용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개발자를 채용하고 싶었지만, 결국엔 “그래, 우리 형편에 이 정도가 어디냐” 하면서 스스로와 타협한다.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채용할 때 절대로 타협하면 안 된다. 가능성이 보이니 일단 같이 일하면서 모자란 20%는 우리가 채워줘야지 하는 접근도 바람직하지 않다. 바로 현장에 투입되어 일하고 즉시 회사에 가치를 더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이 단계에서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며 대부분의 사람이 나와 동의하지 않지만, 나는 스타트업 최초 10명의 멤버들을 채용함에서는 100% 맘에 들지 않으면 채용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100% 맘에 드는 사람을 찾지 못하면, 타협하지 말고 그냥 다른 기존 멤버들이 조금 더 열심히 일하는 게 맞다. 돈 없는 스타트업의 최고의 채용 전략은 100% 맘에 들지 않으면 채용하지 않는 거다.

3/숫자 – 출시 후 지속해서 제품을 개선할 의지가 있다면 다양한 지표를 모니터링 해야 한다. 어떤 숫자가 중요한지는 회사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funnel을 체계적으로, 정량적으로, 그리고 미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나도 뮤직쉐이크 시절 여러 가지 숫자들을 관리했는데 가끔 이 수치들과 타협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매주, 그리고 매달 목표 수치들이 있는데 약간 모자라지만 거의 비슷하면 목표달성이라고 자신을 격려한 적이 몇 번 있다. 좋지 않은 습관이다. 왜냐하면, 조금씩 모자란 숫자들이 쌓이다 보면 나중에 큰 차이가 발생하고, 그렇다고 회사가 망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제품과는 그만큼 멀어지기 때문이다. 지표들이 조금이라도 이상하거나, 숫자들이 미달이라면, 왜 그런지 정확한 원인을 밝혀야 한다. 숫자와 타협을 하면 이런 원인분석 과정을 건너뛰는데 이는 서비스 개선을 방해하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4/현금흐름 – 위에서 말한 3가지 정말 중요하지만, 현금흐름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초기 스타트업은 무조건 비용을 아껴야 한다. 사장들은 매일 1원 수준까지 미시적으로 비용을 관리해야 한다. 솔직히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사장이 신경 쓸 일이 매우 많다. 창업 초기에는 모든 걸 해야 하는데 일일이 영수증 관리하고 청구서 확인하는 게 은근히 귀찮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일이다. 그런데 귀찮다고 청구서 내역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이미 처리한 걸 다시 내는 경우도 있다.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이 작은 비용들이 쌓이면 큰 비용이 되고 “내야 하는 거니까 청구되었겠지.”라는 사고방식이 머리에 굳어지기 시작하면 매출이 없는 스타트업의 죽음이 시작된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으면 개인이나 기업이나 파산한다는 건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사실인데 스타트업들은 존재하는 첫날부터 경제학의 이 기본 법칙을 위배하기 때문에 이런 현실에서 살아남으려면 현금흐름 관리에 있어서 절대로 타협하면 안 된다.

한국에서도 꽤 잘 알려진 Y Combinator의 Kevin Hale이 얼마 전에 브라운대학에서 이와 비슷한 조언을 했다.

숫자에 집중해라. 비용을 최소화하고, 집을 사무실로 사용해라. 사람들이 요구하는 제품을 만들고 사용자들과 대화해라.

타협은 유연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유연성은 일반적으로는 좋다. 하지만 제품, 채용, 숫자, 현금흐름과는 타협하면 안 된다. 창업 초기만큼은.

<이미지 출처 = https://chicagoagentmagazine.com/what-will-homebuyers-compromise-on-in-2013/>

정부과제로 먹고 사는 회사들

대한민국같이 나라가 앞장서서 스타트업들을 도와주고 생태계를 만드는데 이렇게 노력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괄목할만한 발전을 한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보면 나도 가끔 놀란다. 이 발전에 정부가 직, 간접적으로 많은 공헌을 한 걸 부정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부의 캠페인들이 모두 잘 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잘 안된 것들이 더 많고 그중 일부는 스타트업들을 오히려 죽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중 대표적인 건 수도 없이 많이 생기는 정부과제 및 프로젝트들이다. 내 주위에 있는 스타트업 중 정부과제를 한두 개 하지 않은 업체가 별로 없을 정도로 많다.

좋은 취지로 시작된 정부과제들이 안타깝게도 많은 스타트업들한테는 마약과도 같은 존재가 된 거 같아서 좀 아쉽다. 일단 대부분 과제를 자세히 보면 상용화할 수 있는 기술이나 제품을 만들기보다는 유행을 따라가는 내용이 더 많다. 예를 들면, 핀테크나 IoT가 요새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니 정부도 이 분야에서 뭔가 해야 한다는 압박에 – 그리고 분명히 대통령이나 장관급 레벨에서 “요새 핀테크가 대세인 거 같은데 우리도 뭐 좀 합시다”와 비슷한 말을 회의에서 했을 거다 – 굉장히 모호한 주제의 과제들을 발표한다. 주제도 모호하지만, 담당자들도 이 분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그러므로 외부심사위원단을 만드는데, 주로 교수님이나 연구원들을 위주로 구성한다. 안타깝게도 이들도 시장에서 이런 기술들이 어떻게 구현되어 서민들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들어지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과제들은 엉뚱한 방향으로 포지셔닝 된다. 물론, 거창한 보고서를 작성하기에는 매우 좋다. 주제가 모호할수록 보고서는 거창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과제이기 때문에 솔직히 목에 걸면 목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기술력 있는 스타트업들이면 웬만하면 과제에 회사를 끼워 맞춰서 지원이 가능할 거 같다. 과제선정을 하는 사람들도 잘 모르기 때문에 특정 과제와 상관없는 스타트업들이 선정되는 걸 자주 봤다.

나는 개인적으로 스타트업들한테 웬만하면 정부과제에 손을 대지 말라고 한다 – 회사가 정말로 돈이 없는데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면, 그리고 정부과제 외에는 정말로 대책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부과제가 눈먼 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절대로 아니다. 일단 그 기간 동안 개발하는 제품이 회사의 비즈니스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리고 완전히 다른 걸 개발했기 때문에 과제 기간 동안의 경험이나 지식을 자산화하는 게 쉽지 않다. 더욱더 중요한 건 그만큼 본업에 충실해야 할 시간을 낭비한 셈이 된다. 정부과제를 하면서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들도 상당히 많다(간혹 이런 게 없는 운 좋은 과제들도 있다.).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본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노가다를 할 바에야 그냥 다른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여러모로 봤을 때 좋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게 그런데 참 마약같다…..일단 자체 제품이 정상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살아남기 위해서 정부과제 하나만 하겠다고 시작한 게, 해보니까 법인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게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도 좋으니 하나만 더 하고, 두 개가 세 개가 되고 시간이 흐르다 보니 정부과제로만 먹고 사는 회사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간혹 본다. 그리고 본업과는 상관없는 정부과제 수행 전용인력을 채용하고, 여러 개를 하다 보니 정부과제 관련 문서 작업만 따로 하는 인력을 채용하고 – 주로 hwp 문서작업에 능숙한 – 식구가 늘다 보니 부담감이 늘어서 계속 사업을 유지하고,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과제를 계속하게 된다.

솔직히 나는 정부과제를 별로 해보지 않았고 – 2000년도 초반에 한국의 B2B 벤처기업 자이오넥스에서 조금 해 봤다 – 최근에는 전혀 안 해서 정확한 건 잘 모른다. 위에서 말한 시나리오는 그냥 지금까지 만났던 정부과제로 먹고사는 회사들과 이야기한 내용을 기반으로 그려본 거다. 그리고 분명히 본업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정부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스타트업들도 있고, 충분히 자산화가 가능한 과제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정말 이야기하기 싫고, 만나기 싫은 회사들이 있다. “뭐, 정부과제 몇 개 더 하면서 버텨보죠.”라고 하는 스타트업들이다.

존재하지 않는 문제 해결하기

최근에 만난 스타트업들한테 가장 많이 사용했던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문제”였던 거 같다. 세상에는 갈수록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스타트업들 또한 더욱더 많이 생기고 있다. 이로 인해 전반적으로는 아주 긍정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부작용도 보이는 거 같다. 아니, 부작용이라고 할 수는 없고 “억지 비즈니스”라고 하는 게 맞을 거 같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거 같다. 그리고 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억지로 창업을 하는 경우도 보이는 거 같다. 창업팀의 프라이버시를 위해서 내가 만난 회사들의 특정 아이템이나 이름을 거론하고 싶지는 않지만 얼마 전에 미디어에서 본 제품 이야기는 하고 싶다. 참고로,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이 회사 상황이 현재 어떤지 전혀 모르고 시장에서 엄청나게 좋은 반응을 일으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스마트 물병을 만드는 회사였다. 개인의 신체 정보를 (체중, 나이 등) 입력하고, 물을 마시는 패턴 등을 물병과 앱이 기계학습을 한 후에 몸에 물이 부족하면 물을 마시라고 push 알람을 해주는 물병이다. 요새 유행하고 있는 IoT, 빅데이터, 하드웨어 등 모든 키워드가 적용될 수 있는 비즈니스이다. 그런데 내 몸에 물이 부족하다는 걸 굳이 기계가 나한테 말을 해줘야지 알 수 있을까? 태어난 지 1살도 안 된 갓난아기도 목마르면 물 달라고 운다. 말을 못하는 우리 집 개 마일로도 목마르면 직접 물을 마신다.

이 회사가 주장하는 건 전 세계 인구 대부분이 물을 충분히 안 마셔서 탈수 상태로 살고 있다고 한다. So what? 나도 물을 충분히 안 마시고 살지만, 사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몸에서 목이 마른다는 신호가 오면 그냥 물을 마시면 된다. 굳이 이걸 위해서 물병을 구매하고, 새로운 앱을 설치하고, 회원가입을 하고, 정보를 입력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좋은 하드웨어/소프트웨어/머신러닝 등의 고급 기술들이 적용된 비즈니스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품을 만들고 있는 거 같다. 특히 IoT나 웨어러블 분야에서 이런 제품들을 많이 접하는 거 같다. 대부분 빅데이터나 머신러닝으로 포장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인 거 같다.

물론, 창업팀한테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고 나름 큰 시장이 보이기 때문에 리스크를 감수하고 창업을 했을 것이다. 제발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모두 성공해서 잘 되면 좋겠다. 그런데 나는 절대로 구매하지 않을 거 같다.

Long tail과 “좀 기다려 봅시다”

뭔가 새로운 기술이나 움직임이 시장에서 포착될 때 대부분의 기업은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니 좀 기다려 봅시다.”라는 말들을 한다. 이런 기업들의 공통점들이 있다 – 모두 후발주자가 되어 선두주자를 따라잡기 위해 허덕거린다(이런 기술이나 움직임이 시장의 주류가 되는 경우).

왜 그럴까? 특히 나는 이 “좀 기다려 봅시다”를 대기업 분들한테 최근에 정말 많이 들었는데 이분들의 논리는 재미있는 기술이지만 아직 의미가 있는 비즈니스가 될지, 돈을 벌 수 있을지, 이러다가 그냥 조용히 사라질 것인지 판단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기 때문에 조금 더 예의주시하면서 뭔가 더 진행되거나 발전이 되면 그때 본격적으로 검토를 해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분들이 간과하고 있는 건 이미 오랜 시간 동안 long tail 들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쌓여왔고, 시장에서 누군가 이걸 눈치채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이건 주류가 될 수 있는 확률이 그렇지 않을 확률보다 더 커졌기 때문에 더 기다리면 이미 늦었다는 걸 의미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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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n 2015. 5. 31. 오후 3.58이 그림은 전형적인 하키 스틱 성장 그래프이다(J curve라고도 하고 exponential curve라고도 한다. 오랫동안 천천히 성장하다가 – 너무 천천히 성장해서 멀리서 보면 성장하지 않는 거 같아 보임 – 한순간 갑자기 확 성장하는 그래프 모습이 하키선수들이 사용하는 하키 스틱 모양과 같다고 해서). 천천히 성장하다가 갑자기 확 뛰는 그 시점 바로 전까지는 누구나 다 “좀 기다려 봅시다.”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조금만 더 자세히 관찰하면 이미 오랜 시간 동안 long tail 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패턴이 보인다는 점이다. 연구원들이나 박사들한테만 보이는 게 아니다. 그 누구라도 시간과 관심을 두고 보면 이런 패턴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사람의 심리라는 게 이 작은 long tail들이 한방에 확 뛰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성장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비약적인 성장을 하면 그동안 언저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모든 기업이 관심을 두기 시작하며, 이게 바로 미래인 것처럼 파리같이 달려든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누군가는 이 트렌드를 이미 파악했고 이 분야에 엄청난 투자와 집중을 했기 때문이다. 하키 스틱 헤드가 시작되는 시점은 이미 늦었다. 이미 저 앞에 가고 있는 선두주자를 따라잡아야 하는 피곤하고 비싼 게임을 해야 한다.

이런 내 생각에 대한 반론 또한 충분히 존재한다. 좀 더 기다리지 않고 매우 많은 자원을 투자했는데, 하키 스틱 커브가 위로 안 가고 밑으로 가서 눈 깜작할 사이에 이 산업이 망해버리면? 당연히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고 어쩌면 이렇게 될 확률이 더 높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기업은 – 요샌 중소기업도 – 소위 말하는 ‘신사업’을 담당하는 전담팀들을 가지고 있다. 우수한 내부 인력 또는 외부에서 주로 전략이나 컨설팅하던 분들을 영입해서 구성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이런 신사업 팀들은 실패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아무도 하지 않는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는데 어떻게 성공만 할 수 있나? 오히려 실패하는 게 당연하다. 이들은 long tail 들이 생기는 게 보이면, 과감하게 베팅을 해야 한다. 실패해도 이 정도 투자는 회사에서 충분히 할 수 있고, 실패하면서 얻는 많은 배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명실상부한 시장의 일인자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뒤늦게 출발한 후발주자들이 하키 스틱 헤드가 이미 진행된 산업에서 1등을 따라잡는 건 정말 쉽지 않기 때문에 매우 유리한 포지셔닝을 할 수 있다. 이후부터는 실행만 잘하면 기업의 제2의 성장을 위한 발판을 탄탄하게 다질 수 있을 것이다.

예전부터 이 포스팅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 한국 대기업 담당자들의 “좀 더 두고 봅시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또 얼마 전에 “LOSING THE SIGNAL”이라는 블랙베리의 급성장과 몰락을 다룬 신간 도서에 대한 소개를 읽으면서 오늘 포스팅해봤다. 블랙베리야말로 “좀 기다려 봅시다”의 전형적인 사례인 거 같다. 아이폰이 나온 후 이미 시장에서는 터치스크린, 앱, 그리고 아름다운 디자인에 대한 long tail 욕구/필요성 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자세히 관찰했으면 앞으로 시장은 이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게 너무나 명확했지만, 블랙베리 임원들은 자신의 후광에 취해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계속 두고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정말 너무나 갑자기 시장이 바뀌었다. 그제야 정신 차린 블랙베리는 Storm이라는 키보드가 없는 터치크스린 폰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기 출시했다. 정말 최악의 제품이었고 완전 실패작이었다. 그리고 캐나다의 자존심이자 세계 최고의 폰 회사였던 블랙베리의 시장점유율은 8년 만에 0.4%로 하락했다.

또 뭐가 있을까? 비트코인? 한류? K-pop? 나는 개인적으로 비트코인에 한 표 주는데 다른 분들의 의견과 생각도 궁금하다.

<이미지 출처(하키스틱) = http://artimagesfrom.com/hockey-stick-clip-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