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B2C와 B2B

우린 작년부터 B2B 회사에도 꽤 활발하게 투자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투자는 B2C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했다. 꼭 어느 쪽이 더 좋은 비즈니스라고 하긴 어려운데, B2C 회사가 조금 더 이해하기 쉽고, 바이럴성이 더 강해서 B2B 회사보단 폭발적인 성장이 더 잘 일어나긴 한다. 하지만, 이런 성장을 위해서는 많은 투자금이 희생되어야 하고, 엄청난 마케팅 싸움 또한 동반되야한다. 이렇게 피튀기는 싸움을 해도 더 큰 경쟁사가 더 많은 돈을 갖고 나타나면, 시장을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에 특히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제품에게는 스피드가 매우 중요하다. B2B 회사는 바이럴을 타는 건 쉽지 않지만, 한번 고객을 확보해놓으면 꾸준히 매출을 발생하는 장기적인 기업고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업을 하다 보면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시 B2C 회사로 돌아오면, 어차피 똑같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기업고객한테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대표들이 B2C와 B2B 사업을 동시에 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물건을 만들어서 인터넷으로 개인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D2C 비즈니스를 B2C로 시작했는데, 얼마 후에 기업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B2B 사업도 동시에 같이 하는 회사들이 우리 투자사 중에도 꽤 있는데, 이런 비즈니스를 관찰하면서 느낀 점이 몇 가지 있다.

가장 큰 배움은, 일단 똑같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그대로 판매하더라도, B2C와 B2B는 결국엔 완전히 다른 비즈니스가 될 확률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즉, 회사가 웬만큼 커져서 인력과 돈이 많이 없으면, 되도록 이 둘 중 하나에만 집중하는 게 더 잘 성장하고, 결국엔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태생이 B2C인 비즈니스가, 같은 제품으로 B2B를 하게 되면 우리의 실질적인 고객은 – 즉, 우리한테 돈을 내고 물건을 사는 사람 – 우리 제품을 최종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C(Consumer)가 아니라 B(Business)가 되는데, 이렇게 되면 사업이 완전히 달라진다. D2C 비즈니스를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 이커머스 플랫폼을 통해서 소비자에게 직접 물건을 판매하면, 최종 소비자들이 많이 있는 곳에서 집중적으로 마케팅을 하게 된다. 아마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 다양한 기법을 통해서 마케팅을 할 것이다. 또는, 많은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검색 엔진에서 SEO 등과 같은 기법을 통해서 마케팅하고, 이 잠재 고객이 우리 플랫폼을 방문하면, 이들의 데이터를 최대한 많이 확보해서 앞으로 계속 우리 물건을 더 많이 사고, 더 자주 살 수 있도록 모든 마케팅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최대한 많은 개인들한테 우리 물건을 마케팅하고 이들이 더 많이 구매할 수 있게 하는 게 B2C 비즈니스의 목표다.

B2B로 전환을 하면 달라진다. 그냥 우리 물건을 대량으로 사입할 수 있는 기업에 우린 팔면 된다. 그 다음에 이 기업이 최종 소비자한테 어떻게 판매하는지는 우리와는 큰 상관이 없다. 우리는 이 기업에 돈을 받고, 이들이 우리의 고객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B2C 비즈니스보단 더 간단한 것 같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일단 영업이라는걸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에 하던 갑과 을이 존재하는 그런 고전적인 영업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기업의 담당자를 만나서 우리 회사와 제품 설명을 해야 하고, 계속 판매를 하기 위한 영업 활동을 해야 한다. 실은 이렇게 해서 B2B 고객이 많이 생기면 회사 매출에는 도움이 되는데, 장기적으로 보면 이 B2B 고객들이 실제로 우리 물건을 판매하는 최종 소비자들에 대한 그 어떤 데이터도 우리가 확보할 수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요새같이 인터넷이 발달하여 있는데, 우리의 최종 소비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사는 곳은 어디인지, 연락처는 어떻게 되는지(이메일, 전화 등), 얼마나 자주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지, 신용카드 정보 등과 같은 고객의 정보는 앞으로 우리가 이 분들한테 더 많은 물건을, 더 자주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하는데 우리는 그냥 다른 기업에 물건만 팔면 되는 경우에는 이런 데이터를 확보하는 게 힘들다.

요샌 많이 좋아지고 있는데, 현금 흐름 면에서도 B2C 비즈니스가 B2B를 하다 보면 불리한 점이 가끔 있다. 제품의 최종 소비자 가격은 항상 같거나 거의 비슷해야 하는데, 우리가 고객에게 직접 판매하는 B2C 모델과는 달리 B2B로 판매를 하면, 우리 고객이 되는 기업이 중간에 가져가야 하는 마진도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우리한테 떨어지는 매출은 많게는 50% 이상 줄어들 수가 있다. D2C 비즈니스의 경우, 백화점에 입점하는 B2B 시도를 할 때 이런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백화점은 수수료의 명목으로 상당히 높은 할인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사몰에서 물건을 직접 고객에게 판매하면, 판매가 완료된 후에 바로 우리 계좌로 입금이 되는데, 기업들과 거래를 하다 보면, 심한 경우 90일 후에 결제해주는 곳도 있어서 장부상 매출은 잡히지만 실제 현금은 3개월 후에 들어오는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하는 경우도 나는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B2B 비즈니스가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약점도 있지만, 큰 기업이 우리 제품을 구매한다는건 우리한테는 상당히 좋은 브랜딩이 될 수도 있고, 그래도 한 번에 대량의 구매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서 일시적으로는 매출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보면, B2C와 B2B를 모두 잡아야하는게 맞다. 결국, 이렇게 시장을 선점하면서 성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초반부터, 태생 자체는 B2C 비즈니스인데 B2B도 같이 하려고 하면, 처음에는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규모가 더 커질수록, consumer와 business는 완전히 다른 성격과 행동패턴을 가진 다른 고객이라는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초반에는 선택과 집중을 잘 해야 한다.

1,000만 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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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당근마켓

우리 투자사 당근마켓의 MAU(Monthly Active Users: 한 달 동안 서비스를 이용하는 unique한 이용자 수)가 1,000만 명을 돌파했다는 기사가 며칠 전에 보도됐다. 회사의 상황을 남들보다는 더 깊게 알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의 성장 속도를 봤을 때 1천만이라는 수치는 당연한 산출물이지만, 막상 이 숫자를 돌파 했을 때는 조금 먹먹해졌다. 한국 인구 5,200만 명, 스마트폰 인구 5,000만 명인데, 이 중 20%인 1,000만 명이 당근마켓을 매달 사용한다는 건 이제 갓 5년 된 앱이 만든 대단한 실적이다. 작년 7월 MAU가 300만, 이후 9개월 만에 2배가 넘는 700만, 그리고 다시 4개월 만에 1,000만 MAU 고지를 점령했다. 우리가 첫 투자를 했고, 분명히 잘할 팀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는데, 항상 우리의 예상과 기대를 가뿐히 넘어주는 당근마켓 팀이 너무 자랑스럽다.

이 1,000만이라는 숫자도 엄청나지만, 당근마켓은 중고거래를 기반으로 동네 주민의 문화, 생각, 태도를 확실히 바꾸고 있고, 이게 실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최근에 당근마켓 거래를 하면서 경험하고 느꼈던 점을 공유하고 싶다. 오래된 계산기를 18,000원에 판매한다고 올렸는데, 잠원동 분이 아파트 정문으로 오겠다고 했다. 배터리가 오래 돼서 액정이 깜박거렸는데, 그냥 배터리는 알아서 교체하라고 설명에 적었다. 아주 발랄한 여대생 분이 따릉이를 타고 왔고, 개강해서 회계용 계산기가 필요했는데 너무 고맙다고 여러 번 인사하면서 물건을 받아 갔다. 나는 계산기 배터리가 수명이 다 돼서 교체해야하는데(3V 배터리 실물까지 보여주면서), 계산기 특성상 배터리 교체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에, 유튜브 영상보고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집으로 오면서 걱정이 됐다. 혹시 배터리가 문제가 아니라 계산기가 너무 낡아서 액정이 문제면? 저렇게 밝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크게 실망하지 않을까, 그리고 숙제하는데 지장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했는데, 이런 걱정은 솔직히 중고거래 판매자가 하는 그런 일반적인 걱정은 아니다. 그냥 팔면 장땡이고, 문제가 있어도 난 몰라하는 마인드가 일반적인데 우리 동네 사람이고, 돈 없는 학생이고, 내 매너온도가 걸려있는 문제이고, 등등 이런 것들이 다 마음에 걸렸다.

아니나 다를까, 배터리를 힘들게 교체했는데도 액정이 깜박거린다고 다음날 당근을 통해서 연락이 왔다. 나는 고민 한번 하지 않고, 계산기값 18,000원에 배터리값 3,000원까지 해서 21,000원을 환불해드렸다. 솔직히 나는 막 착한 사람도 아니고, 손해 보는 거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이런 내 행동을 봤을 때, 확실히 당근마켓은 독특한 동네, 로컬, 중고거래 문화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좋은 건 이게 net negative가 아니라 net positive한 좋은 문화라는 점이다. 이런 디테일이 모여서 1,000만 MAU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진입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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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Jaylee102 / 크라우드픽

VC들이 창업가들에게 많이 물어보는 것 중 하나가 진입장벽에 관한 질문이다. 네이버나 구글 같은 회사가 우리랑 똑같은 비즈니스를 하면 어쩔거냐, 그렇게 했을때 우리가 그냥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우리만의 강점, 즉, 진입장벽이 뭐냐는 질문을 웬만한 창업가라면 수도 없이 들었을 것이다. 나는 요샌 잘 안 하지만, 전에는 항상 하던 질문 중 하나였다. 이 진입장벽이라는 용어는 참 애매하긴 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VC가 원하는 진입장벽에 대한 답변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기술력’과 같은 측정할 수 있는 하드 팩트인데, 이런 하드 팩트를 진입장벽으로 가진 회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가 투자하는 소위 말하는 이해하기 쉬운 소비자 인터넷 분야의 회사들은 대부분 아주 좋은 기술력을 지녔지만, 이 기술력이 밖으로 노출되진 않는다. 투자자의 눈에 보이는 건 이런 기술력이 뒷받침하는 재미있고 유용한 서비스이기 때문에, 이커머스나 서비스 기반의 마켓플레이스 스타트업은 진입장벽에 대한 시원한 답변을 주는 게 쉽지 않다. 본인들은 경험을 기반으로 확실한 진입장벽이 있다고 믿고 있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런 게 항상 대기업이 돈과 사람으로 밀어붙이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슷한 분야에서 거의 동일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회사들이 수없이 많아도, 이 중 항상 제일 잘하는 회사가 있다. 그리고 비슷한 사업을 남들보다 더 잘 하는 이유는 명확한 진입장벽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동안 내가 여러 회사를 보면서 느꼈던 다양한 진입장벽은 대략 이런 거 같다.

일단 분야를 막론하고, 그 어떤 회사라도 좋은 기술력은 훌륭한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 남들보다 브레인파워가 더 높은 엔지니어들이 있는 회사는 어쩔 수 없이 그렇지 못한 회사에 비해 월등한 기술적 장벽을 갖게 된다. 다만, 이 기술적 장벽에 대해서 내가 배운 게 있다면, 처음부터 높은 기술적 장벽을 갖고 시작하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시간이 가면서 기술적 장벽을 만들어 가는 회사가 있다. 대부분의 투자자는 전자에 관심이 많다. 즉, 창업팀에 공학 박사가 있거나 좋은 개발인력이 있으면, 이 회사는 기술적 장벽이 높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반만 맞다고 생각한다. 높은 기술적 장벽을 갖고 시작해도, 그 어떤 진입장벽과 마찬가지로, 이건 따라 잡힐 수 있다. 다른 회사에서 더 뛰어나고 비싼 엔지니어를 더 많이 채용하면 따라 잡힐 수 있다. 나는 오히려 비즈니스 모델을 정교화하기 위한 기술개발을 오랫동안 하면서 얻는 기술력이 훨씬 더 방어하기 좋은 진입장벽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간과하기 쉬운 또 다른 진입장벽은 운영의 진입장벽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우리가 투자한 많은 회사들의 강점이기도 한데, 이거야말로 겉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증명하는 게 어렵다. 예를 들면, 유통기한이 있는 물건을 사입해서 자체 창고에 보관하고, 이걸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이커머스 비즈니스를 한 번 생각해보자. 겉으로는 그냥 모바일 앱으로 고객들이 물건을 구매하면 늦지 않게 배송해주는 그런 일반 이커머스 비즈니스랑 똑같아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들어가보면, 유통기한이 있기 때문에 창고에 보관하는 방식도 달라야하고, 재고가 너무 많으면 물건이 상하기 때문에 정확한 수요예측과 재고 관리를 해야 하고, 주문을 어떤 주기로 취합해서 하루에 한 번 배송할지 여러 번 배송할지 등을 잘 관리하고 최적화해야지만 이 비즈니스를 잘 운영할 수 있다. 이런 건 우리만의 독특한 운영 방식이라서 책에서 배울 수도 없고, 남이 이미 경험을 했더라도 공개되지 않은 영업비밀이라서 스스로 터득해야한다. 말이 ‘터득’이지, 이건 수많은 시행착오, 실험, 그리고 노가다가 필요하다. 이런 운영의 진입장벽은 남들이 따라잡기가 쉽지 않고, 따라잡더라도 많은 시간, 돈, 그리고 피와 땀이 필요하다. 내가 제일 존경하는 진입장벽 중 하나이다.

과거에는 돈도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수천억 ~ 수조 원의 투자를 받고 유니콘이 된 회사들이 코비드 19로 인해서 자금이 마르자 급격하게 망가지는 모습, 그리고 상장 후 시장에서 박살나는걸 목격한 후, 돈은 더이상 진입장벽이 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실은 초반에 잠깐 진입장벽이 되더라도, 돈만큼 무너뜨리기 쉬운 진입장벽은 없다. 그냥 더 많은 돈으로 이 진입장벽을 무너뜨리면 되니까.

마지막으로,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고, 따라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진입 장벽은 사람 그 자체이다. 전에 ‘불가항력‘이라는 비슷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어떤 걸 만들고 어떤 서비스를 하는 게 아니라, 누가 이걸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가장 위대한 비즈니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회사를 보면 시스템이 일을 하는 특정 시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이 회사의 사람 자체가 가장 극복하기 힘든 진입 장벽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돈, 기술, 운영과는 달리 사람이라는 진입 장벽은 복사하거나 따라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젠 없어진 KBS 개그콘서트 프로의 봉숭아 학당 코너에 개그맨 정종철 씨의 역할은 ‘옥동자’라는 캐릭터였다. 인물이 많이 빠지는 그런 캐릭터였는데, 다른 캐릭터들이 옥동자에게 “넌 얼굴 자체가 무기야.”라는 우스갯소리를 많이 했다. 만약에 얼굴 자체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진입 장벽이라면, 이걸 남들이 따라하기란 거의 불가능한데, 이런 진입장벽이 사람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손에 흙 묻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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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크리에이티브열정 / 크라우드픽

투자 받을 때 가능하면 최대한 많은 투자자를 만나보라고 나는 항상 조언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많은 VC를 만날수록 다양한 시장의 피드백을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투자자마다 회사와 시장을 바라보는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 비즈니스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받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VC를 만날수록 창업가의 피칭 실력이 향상한다. 어떤 질문을 할지, 그리고 특정 질문을 하면, 어떤식으로 답변을 해야지 계속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등에 대한 감이 생기고, 이걸 더 할수록 이런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처하는 방법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 또 다른 이유는, 투자 받는 것도 결국엔 확률게임이기 때문에, 투자자를 많이 만날수록 투자받을 확률 또한 높아진다.

내가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우리랑 궁합이 잘 맞는 VC를 만나면 일이 수월하게 풀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궁합이 잘 맞는다는 말이 모호하긴 하지만, 많은 VC를 만나본 창업가라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직감적으로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나자마서 뭔가 이야기가 술술 풀리고, 왠지 우리 서비스를 잘 이해하는 것 같고, 대화하면서 편한 느낌을 받는 그런 투자자들이 있는데, 이런 분들이 주로 우리랑 궁합이 잘 맞는 VC가 될 확률이 높다. 이런 VC는 사상, 철학, 가치 등이 창업가와 비슷할 가능성이 크기도 하지만, 대부분 우리가 운영하는 서비스를 실제로 사용해봤거나, 아니면 서비스를 사용하는 친구 또는 가족이 있을 확률이 높다. 어떤 VC는 이미 우리 서비스의 열렬한 팬인 분들도 있을 텐데, 이런 분들과는 매우 매끄럽고 질 좋은 미팅과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한테는 너무나 유리한 상황이다.

영어에는 “get your hands dirty”라는 말이 있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직접 팔/소매 걷어붙이고 아주 적극적인 태도로 임한다는 의미 정도가 될 듯싶다. 즉, 본인이 직접 자기 손을 더럽혀가면서 뭔가를 실제 해본다는 의미인데, 투자를 받을 때는 이런 손에 흙을 묻히면서 우리 서비스를 직접 사용해본 VC와 대화할 때, 확률이 높아진다. 나도 내가 사용하고, 애용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팀과 이야기 할 때 훨씬 더 좋은 대화를 할 수 있고, 투자할 확률이 높고, 우리 투자사도 후속 투자를 받을 때 이들의 제품을 알거나, 사용해봤거나, 또는 열렬한 애용자인 VC한테 투자받는 경우가 많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모바일 세탁소 세탁특공대에 우리가 처음 투자하기 전에 이미 우리 집은 세탁특공대의 고객이었다. 당시에는 아직 제품에는 미흡한 점들이 많았지만, 사용하면 할수록 편리하고,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될지 나름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에 투자결정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레인지엑스라는 골프 관련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에 투자할 때도 내가 골프를 치고, 좋아하기 때문에 남들이 잘 보지 못 했던 부분들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코너마켓이라는 유아동복 리세일 플랫폼에는 많은 여성 VC 분들이 관심을 갖는데, 본인들이 엄마로서 직접 이 서비스를 사용해봤기 때문이다. 플랩풋볼은 풋살(=미니축구)을 중개해주는 소셜 스포츠 플랫폼인데, 실제로 플랩풋볼을 통해서 현재 풋살을 하는 젊은 VC들이 투자에 관심이 훨씬 더 높다. 한 달에 1,000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당근마켓도 마찬가지다. 뭐, 이런 이야기는 하루 종일 할 수도 있을것 같다.

그래서 가능하면 창업가들은 우리와 궁합이 잘 맞는 VC들을 만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고, 우리 서비스를 잘 사용하고 있는 투자자와 이야기하고 있다면, 이분한테 투자받을 수 있는 확률이 꽤 높다는 점을 잘 기억하면 좋겠다.

가족 창업

한국에서는 절대로 가족 또는 친한 친구랑 동업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실은 미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을 많이 들었다. 그만큼 사업은 어렵고, 실패할 확률이 높고, 잘 안되면 가족이나 친구랑 좋지 않은 관계로 끝날 수 있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이런 격언이 존재하는 거 같다. 많은 사람이 이 말에 동의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친구나 가족이랑 창업하는 걸 권장하고 싶다. 스타트업의 핵심은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일을 하는 건데,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동료 간에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가장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오랜 친구 또는 가족일 확률이 매우 높다.

친구나 가족이랑 창업했는데, 결국 완전히 원수가 된 창업 사례도 나는 많이 알고 있지만, 이와 반대로 너무 궁합이 잘 맞아서 좋은 비즈니스를 만들었고, 아직도 잘 운영하고 있는 사례는 더 많다. 실은 나도 이런 경험이 개인적으로 있기 때문에 더욱더 친구나 가족이랑 창업하라고 권장한다. 지금 하는 스트롱벤처스의 파트너이자 공동대표인 존 남은 내 초등학교 친구이다. 중간에 서로 다른 대륙에 살았기 때문에 연락이 끊겼던 시기가 있었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우린 꾸준히 계속 연락을 하면서, 이제 스트롱벤처스를 같이 8년째 그럭저럭 잘 꾸려가고 있다. 우리 둘을 아는 분들은 잘 알겠지만, 우리는 성향, 성격, 철학 등이 매우 다르다. 그래서 의견 충돌도 많지만, 비즈니스 파트너 이전에 아주 오래된 친구라서 그런지 기본적으로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고, 이런 절대적인 신뢰가 우리를 항상 끈끈하게 본딩해주고 있다.

미국에서 했던 뮤직쉐이크도 나는 서철이라는 아주 오래된 친구랑 같이 했었다(참고로, 철이랑 존은 모두 어릴 적 같은 학교 다닌 친구들이다). 이땐 정말 down의 연속이었지만, 이 시기를 아주 용감하게 잘 견딜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철이라는 친구와 같이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오래된 친구라서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기에 오히려 더 심하게 싸우고, 격한 의견충돌이 있었지만, 상대방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엔 모든 문제를 긍정적으로 잘 해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이 작용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투자한 회사 중 가족이 창업한 스타트업이 꽤 있다. 어제 오랜만에 만났던 공동창업가 분들도 가족이었는데, 집에 오면서 우리 투자사 중 가족이 창업한 회사를 세어보니 무려 15개나 되었다. 이 중 부부 창업한 회사가 – 창업 당시 부부였거나 또는 창업할 때는 남친 여친이었다가 부부가 된 – 11개, 그리고 남매 또는 형제 창업한 회사가 4개다. 물론, 친한 친구들이 창업한 회사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 15개 회사 중 이미 망한 회사도 있지만, 가족과 관계가 나빠져서 폐업한 회사는 단 하나도 없다. 계속 운영하는 회사들은 너무 잘 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가족 창업과 친한 친구와의 창업을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이유이다. 특히 이렇게 피와 의리로 맺어진 공동창업자 관계는 비즈니스가 어려울 때 그 진가를 제대로 발휘한다. 이 또한 내 경험에서 말을 하는데, 나도 많이 힘들었던 때가 있었고, 지금도 많이 힘들지만, 이때마다 정신적 좀비가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같이 일하던 내 동료이자 친구 철이, 그리고 지금의 스트롱 파트너 존 때문이다. 투자자 배기홍이 아닌, 그냥 인간 배기홍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동료이자 친구들이기에 힘든 시기에 파트너십이 깨지지 않고 서로를 다독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거 같다.

가족과 같이 일하면,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24시간 일에 대해 이야기만 하는 명확한 단점이 존재하지만, 내가 아는 가족창업가 분들에게는 가족한테 욕먹지 않고 이렇게 24시간 사업 생각만 하고 사업 이야기만 할 수 있는건 오히려 축복이자 장점이기도 하다. 특히, 비즈니스 상황이 좋지 않으면, 관계가 정말 끈끈하지 않으면 이 공동창업자의 관계는 박살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피로 맺어진 관계는 웬만하면 부서지지 않는, 정말로 끈끈한 관계라는 걸 나는 옆에서 수없이 지켜봤기 때문에 항상 가족 창업을 권장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