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힘내자

올해도 얼마 안 남았는데, 창업가와 투자자 모두 2020년은 힘든 한 해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항상 힘들지만, 올해는 정말로 그 어떤 해보다 신기하고, 다르고,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요새 운동할 때 영화 록키의 사운드트랙을 듣는다. 유튜브에서 계속 추천하는 록키 관련 음악을 듣다 보면, 지친 육체와 영혼이 긍정적인 힘을 많이 받는걸 느끼는데, 이 중 요새 나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주는 동영상을 하나 소개하고 싶다. 4분이 안 되는 동영상이니, 모두 한 번씩 감상하길 바란다.

록키 시리즈에서 록키 발보아가 아들한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는데, 이 각본을 누가 썼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힘들고 힘이 빠질 때, 그리고 정신이 나태해졌을 때 항상 자신을 각성하고 영감이 충만하게 해준다.

“Let me tell you something you already know. The world ain’t all sunshine and rainbows. It’s a very mean and nasty place and I don’t care how tough you are, it will beat you to your knees and keep you there permanently if you let it. You, me, or nobody is gonna hit as hard as life. But it ain’t about how hard you hit. It’s about how hard you can get it and keep moving forward. How much you can take and keep moving forward. That’s how winning is done! Now if you know what you’re worth then go out and get what you’re worth. But you gotta be willing to take the hits, and not point fingers saying you ain’t where you wanna be because of him, or her, or anybody! Cowards do that and that ain’t you! You’re better than that!”

실은 이 말을 록키가 아들한테 해주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들, 특히 창업가들에게 해주는 외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삶은 아름답지 않고 정말 빡세고, 내가 아무리 잘나도 항상 나를 좌절시킬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남 탓하지 말고 오롯이 내가 모든 걸 책임져야한다. 우리가 삶을 이길 순 없고, 매번 패배하고 넘어질 것이지만, 그때마다 다시 일어나서 계속 전진하는 거, 이런걸 winning이라고 한다.

나도 올 해 여러 번 넘어졌고 패배했지만, 죽지 않고 일어나서 계속 전진했다. 아마 모두 그렇게 했을 것이다. 모두 힘내자.

대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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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오후의사진관 / 크라우드픽

올해 팬데믹이 창궐하기 시작한 2월 말에 조지윤 책임심사역이 스트롱에 조인했다. 우리와는 5년 넘게 알고 지냈고, 스트롱 이전에 이미 다양한 경험과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수습기간 없이 바로 현장에 투입됐다. 그리고, 나와 함께 지금까지 9개월 동안 발로 뛰면서 회사 발굴하고, 투자하고, 기존 투자사들을 도와주고 있다. 전에 지윤님과 이야기할 때, 밖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일 하면서 느낀 점은, 스트롱은 파운더들의 ‘대나무숲’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나무숲의 의미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창업가들이 남한테 말 못할 힘든 점을 우리와는 솔직하게 계급장 다 떼고 이야기 할 수 있고, 이런 내용은 외부로 발설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 투자사 중 잘 하는 회사는 잘 되는 회사만의 고민을 창업가들이 갖고 있고, 못 하는 회사는 잘 안되는 회사만의 고민을 갖고 있다. 어떤 고민이 더 크고, 문제가 심각한지는 내가 점수를 매길 순 없지만, 그래도 주로 잘 안되는 회사 대표들의 고민이 더 심각하고, 우리의 즉각적인 도움과 지원이 필요하다. 해마다 비즈니스는 더욱더 어려워지지만, 올 해는 코비드19 때문에 훨씬 더 어려웠던 한 해였고, 이로 인해 우리도 가장 힘들고, 잘 안되는 투자사 대표들과 더 많이 만나고 이야기하는, 모두 다 고통스러웠지만, 결국엔 힐링되는 시간을 많이 가졌던 것 같다.

USV의 프레드 윌슨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얼마 전에 한 적이 있다. 초기 투자하는 펀드의 실적을 수년 후에 보면, 소수의 회사가 전체 펀드 실적의 90% 이상을 만드는 양상을 볼 수 있는데, 우리도 과거 펀드들을 보면 이와 다르지 않다. 파레토의 법칙은 펀드에도 존재하는데, 초기 펀드에는 이 80:20 법칙이 더 극단적으로 적용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VC가 이 소수의 잘 될 회사에만 집중하면 안 되는데, 프레드는 이런 현상을 한 반을 담당하고 있는 담임선생님에 비교한다. 내 기억으로는 나 초등학교 시절에도 우리 담임선생님이 우리 반에서 가장 이뻐했던 최애 학생들이 몇 명 있었다. 반장, 부반장, 그리고 공부 제일 잘하는 학우가 이런 친구들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고 선생님이 이 친구들만 신경 쓰지 않고, 우리 학급 모든 학생에게 골고루 관심을 주면서, 학교생활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에서 모두를 도와줬다. 선생님이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 학생들이 공부도 잘하고 학교생활을 잘 할 때 뿌듯함과 보람을 가장 많이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개인적인 보람은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해야 하는 일은 소수의 학생에게만 관심을 주는 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을 공평하게 지도하고 도와줘야 하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학교 생활에 적응 못 하고, 학습 진도가 더딘 학생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은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는 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스트롱의 수익률은 극소수의 투자사들이 만들고, 우린 이 회사와 창업가들에게 평생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의 진정한 일은 수익률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투자사, 창업가와 같이 진흙탕에서 구르면서 이들의 대나무숲 역할을 하는 것이고, 오히려 진정한 보람은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50권

사진 2020. 11. 18. 오후 5 40 22

플라이북 앱

나는 신년 계획 같은 건 안 세운다. 그냥 항상 하던 대로, 꾸준히 뭔가 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계획은 세우지만, 해마다 다짐 같은 걸 하진 않는다. 그런데 연초에 계획하는 게 딱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한 해 동안 읽을 독서량이다. 전에 내가 독서 습관 관련해서 쓴 이 있는데, 나는 우리 투자사 플라이북국민도서관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올해 또 재미를 붙인 게 구립도서관 이용이다. 플라이북에서 읽고 싶은 책을 등록하고, 국민도서관에서 이 책들을 대여하는데, 국민도서관에 없는 책을 찾기 위해 동네 도서관을 방문하기 시작했는데, 재미도 있고 경험도 좋다. 많은 책이 물리적으로 있는 도서관에 가서 이 책들을 눈으로 보고, 만지고, 그리고 우연히 책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해서 요샌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구립 도서관에 간다. 그렇게 대여한 책들을 읽은 후에 서평을 또 플라이북에 쓰면, 그 책에 대한 한 사이클이 마무리된다. 나중에 책의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을 때 다시 내 플라이북 서평을 찾아서 읽어보면, 당시 내 생각과 느낌을 떠올릴 수 있어서 이렇게 모든 걸 기록하는 게 쓸데없진 않다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된다.

2020년 초에 세웠던 올해 목표 독서량은 50권이다. 매달 4권, 즉 매주 1권씩 읽고, 어떤 달은 2권씩 읽으면 달성 가능한 숫자다. 그런데 안 그래도 바쁜데 1주일에 책 1권 읽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주중에 최대한 저녁 약속을 잡지 않았고, 집에 좀 일찍 와서 TV를 보거나 이메일을 하지 않고 매일 꾸준히 책을 읽는 습관을 만들었다. 주말에도 코비드19 때문에 많이 못 돌아다녀서 – 그리고 우리 부부는 원래 집에 있는걸 좋아하는 편이다 – 독서를 꽤 많이 했다. 이렇게 목표를 세우고, 의도적으로 달성하려고 노력해서인지, 예상보다 더 빨리 50권을 읽었다. 월 평균 4.5권을 읽었고, 총 17,000 페이지 정도 읽었다. 이 페이스대로 계속 책을 읽다 보면 연말까지 55권 정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정 분야의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다짐은 하지 않았기에, 그냥 닥치는대로 많이 읽었는데, 독서한 50권 책 리스트를 보니 비즈니스 관련 책은 거의 없고 대부분 수필, 산문, 그리고 소설이었다. 아무래도 직업과는 조금 동떨어진 독서를 의도적으로 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

내년에도 나는 50권 독서를 목표로 설정할 예정이다. 올해 읽은 책이 모두 좋은 책은 아니었고, 허접한 책도 많았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쌓인 다른 사람의 경험, 지식과 생각을 한 권의 책을 통해서 비교적 짧은 시간에 간접적으로 습득하는 건 여러모로 봤을 때 큰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다름의 힘

사진 2020. 11. 18. 오전 7 34 19

Together We are All Strong!

초등학교 친구 존이랑 스트롱벤처스를 2012년도에 창업했고, 이후 4년 정도는 우리 둘이서 회사와 펀드를 운용했다. 처음에는 펀드도 작았고, 투자한 회사도 몇 개 없었기 때문에 둘이 열심히 하면 어느 정도 운영이 가능했지만, 2016년도부터 우리도 사람을 조심스럽게 채용하기 시작했고, 이제 스트롱 팀이 어느덧 6명까지 커졌다. 그리고 그동안 너무 열심히 뛰기만 해서, 11월 초에 존이 한국에 나온 기회를 이용해서, 조금 숨도 쉬고, 주위도 보는 기회를 갖는 차원에서 스트롱 창립 이후 최초의 워크숍을 부산으로 갔다. 굉장히 알찬 1박 2일이었고, 그동안 우리가 왔던 길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고, 앞으로 갈 길은 어떨지에 대한 생산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

워크숍에서 각자의 성향을 파악해 볼 수 있는 간략한 MBTI 테스트를 했는데, 나는 오래전에 했던 거와는 다른 결과인 ISTJ가 나왔고, 내 파트너 존은 ENFP 성향이 나왔다. MBTI를 해보신 분들은 잘 알 텐데, ISTJ랑 ENFP는 4개의 각 항목(=알파벳)에서 완전히 극과 극으로 다른 성향을 나타낸다. 실은, 둘이 굉장히 다른 성향을 가졌다는 걸 그동안의 우정과 업무 경험으로 둘 다 매우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수치로 이걸 확인하니 참 신기하긴 했다. 이런 다른 성향 때문에 실은 스트롱 초반에는 둘이 엄청 싸웠다. 물론, 지금도 의견 차이가 크고, 많이 싸우기도 하지만, 워낙 오랫동안 같이 일하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이 쌓였기 때문에, 이 극과 극의 성향으로 인해 발생하는 다름은 내가 그동안 그 어떤 조직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상호보완적인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다름의 힘을 내가 자주 경험하고 있는 또 다른 팀은 프라이머 파트너팀이다. 프라이머에는 여러 명의 훌륭한 파트너가 있는데, 주로 앞단에서 회사들과 교류하는 파트너는 권도균 대표님, 이기하 대표님,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다. 우리 셋도 비슷하기보단, 다른 성향을 훨씬 더 많이 갖고 있다. 특정 회사나 창업가에 관해서 이야기 할 때마다 매번 느끼지만, 어떻게 같은 파트너십에서 이렇게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겠냐는 생각을 할 정도로 각자의 생각과 의견이 다르다. 하지만, 그동안 오랫동안 호흡을 같이 맞춰왔고, 기본적으로 바탕에는 서로에 대한 믿음, 신뢰와 존경이 깔려있기 때문에, 이런 다름이 항상 프라이머의 장점으로 작용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이런걸 ‘다름의 힘’이라고 부른다. 일하면서, 서로 다름에서 나오는 힘은, 비슷하거나 같음에서 나오는 힘보다 훨씬 더 크다는걸 스트롱과 프라이머를 통해서 항상 느끼고 있어서, 우리도 투자할 때 창업멤버들의 다름을 많이 강조하고 있는 편이다. 물론, 아주 비슷한 성향이 있는 창업가들이 만든 회사가 잘 되는 경우도 많지만, 유니콘 가능성을 가진 회사는 항상 극과 극의 성향을 지닌 창업가들이 만든 회사일 확률이 더 높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하는 점은, 이 다름의 힘을 잘 다스리면서 이걸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름으로 인한 분열, 혼돈, 그리고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고,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면, 적정한 수준에서 합의 또한 볼 줄 알아야 한다. 이 다름으로 인해서 분열이 생기면, 이건 완전히 재난으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 팔아야 할까?

얼마 전에 USV Fred Wilson의 트위터에서 한참 논쟁이 됐던 주제가 투자자들이 투자사 주식을 언제 매도하냐이다. 내 생각으로는 프레드는 비트코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거 같은데, 트위터 이벤트를 보면 코인 뿐만 아니라 일반 스타트업 지분에 대한 좋은 이야기와 논쟁이 많았다.

우리는 역사가 오래되지 않아서, 엑싯할 기회가 아직 많진 않지만, 이런 기회가 간혹 발생하면, 우리도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이 트위터 이벤트 내용과 비슷한 이야기를 내부적으로 여러 번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우리보다 투자를 더 오래 했고, 더 많은 엑싯을 통해서 다양한 경험을 한 다른 글로벌 VC들의 의견을 자세히 읽어봤는데, 역시 주식을 팔아야 하는 시점에 대한 정답은 없고, 이 또한 회사의 전략과 철학, 타이밍, 그리고 그 시점의 여러 가지 내, 외부 요인에 의해서 그때그때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일단 이 트윗의 주인공 프레드 윌슨의 철학은, 투자한 회사(또는 비트코인)의 가치가 올라갔고, 이 주식을 팔 기회가 생긴다면, 가장 먼저 원금은 회수한다는 원칙이다. 본전은 일단 뽑고, 나머지 수익을 계속 보유했을 때 최적의 결과를 경험했다는 게 그의 논리이다. 여기서 말하는 최적의 결과는 수익을 극대화했다는 게 아니다. 일단 본전을 뽑았으니, 원금을 날리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렇게 하면 펀드의 출자자들에게도 미안하지 않고, 스트레스도 덜 받고, 그래서 잠도 더 잘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나중에 이 회사가 대박 나면, 그때 왜 팔았을까 후회할 수도 있고, 실제로 그렇게 후회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낮은 결과에 너무 의존하다가 원금까지 모두 날리게 되면 모두에게 최악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반박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재미있고,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다. 특히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들은 대부분 엑싯에 대해서는 100% 틀리거나(=돈을 다 날림), 또는 100% 맞는(=대박) 전략을 취해야지만 홈런을 쳐서 소수의 엑싯으로 전체 펀드를 돌려줄 수 있다는 입장이고, 너무 일찍 엑싯을 해서 후회를 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투자자도 있다. 좋은 회사라면 절대로 팔지 말고, 끝까지 갖고 있으면 항상 최고의 수익이 발생한다는 철학을 가진 투자자도 있다.

나도 이런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고, 앞으로 더 많은 경험이 쌓이지 않을까 싶지만, 정답은 없는 것 같다. 펀드의 규모, 펀드가 투자하는 회사의 종류, 펀드의 만기일, VC들의 성향, 회사의 철학 등에 따라서 이런 엑싯 전략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펀드에 출자하는 LP, 이 돈을 굴리는 우리 같은 VC, 그리고 우리가 투자하는 포트폴리오 회사 경영진들의 엑싯에 대한 생각이 어느 정도 일치할 때 제일 좋은 결과가 발생한다는 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