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다음 생과 꾸준함

올해도 이제 거의 다 끝나간다. 정확히 세어 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6개월 이상을 집에서 줌과 함께 살았던 거 같다. 그래도 코비드19이 없을 때만큼 많은 회사를 만났고, 그 이상의 회사에 투자한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워낙 많은 분, 그리고 참 다양한 창업가를 만났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몇몇 분들이 있다.

실은 대부분의 VC가 젊은 창업가에게 투자하는 걸 선호한다. 차별을 두는 건 아닌데, 그냥 경험상으로 신체적 나이가 어릴수록 체력이 좋고, 경험이 없는데, 창업에 있어서는 경험이 없는 게 오히려 더 과감한 새로운 시도를 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반대로 나이와 경험이 있는 창업가들은 본인들만의 고집이 센 편이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아서, 같이 일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은 경험이 개인적으로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모두 다르고, 사업도 항상 다르기 때문에, 올해도 40대 창업가, 심지어는 50대 창업가도 몇 분 만나서 좋은 이야기를 했다.

그중 우리가 투자한 회사는 실은 하나도 없지만, 이분들과의 미팅에서 많은걸 느끼고 배웠다. 내 주변의 많은 40대와 50대분들은 뭔가 새로운 도전에 대해 고민하다가 항상 “이 나이에 뭘 시작해. 이생망이고 그냥 이대로 살래.” 또는 “젊었을 때 고민했어야 하는데, 이제 나는 너무 늙었어. Too late.”라는 말을 하면서 현실에 안주하는데, 이런 쉽지 않은 도전을 하는 분들이 매우 존경스러웠다. 그중 한 분에게 지금 시작하면 너무 늦지 않냐고 물어봤는데, 이런 대답을 했다. “우리 나이 되면, 대부분 지금 시작해서 언제 사업 성장시키고 돈 벌겠냐라는 걱정을 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데, 실제로는 1년 정도만 꾸준히, 매일 한두 시간만 투자해서 한 분야를 파고 들어가 보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에요. 물론, 나이가 있으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하지만, 지금까지 47년 살았는데 이깟 1~2년이 대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에 나는 너무 동의했다. 다들 시간 없고, 바쁘고, 이미 늦었다는 핑계를 대면서 새로운 시도는 안 하고 나이 탓만 하면서 후회하는데, 그럴 시간 있으면 뭔가를 꾸준히 한번 해보길 권장한다. 이 중 한 분은 이커머스를 하고 싶은데, 사람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카페24를 몇 개월 동안 파고들어서 꽤 근사한 이커머스 사이트를 만들기도 했다. 나도 코딩을 배우고 싶지만, “지금 코딩 시작해서 언제 배우냐.”라는 핑계를 하면서 한 번도 제대로 시작해 본 적이 없는데, 스스로 반성을 많이 하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매일 꾸준히 시간을 투자할 의지만 있다면, 특정 학문에 대해서 유튜브와 구글로만 열심히 공부하면, 노벨상까진 아니지만, 석 박사급 정도의 지식을 얻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전에 어떤 대학교수가 한 적이 있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의지와 꾸준함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특히, 매일 매일 꾸준히 뭔가를 하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생을 기다리지 말고, 그냥 지금 시작해보자. 그리고 꾸준히 해보자.

프라이머 18기 미팅

얼마 전에 내가 벤처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국내 1호 악셀러레이터 프라이머 18기 선발 대면 인터뷰를 다 마쳤다. 서류지원 이후 50개+ 회사를 후보로 뽑았고, 이 회사들을 3주 동안 1시간씩 대면 미팅을 했는데, 항상 느끼는 거지만 굉장히 힘들다. 주중에는 나도 일이 많아서 대부분 주말을 이용해서 미팅했는데, 다시 한번 주말에 시간 내주셔서 나랑 미팅한 창업가분들에게 이 포스팅을 빌려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달하고 싶다.

빽빽하게 앞뒤로 잡힌 미팅으로 도배가 된 토/일 캘린더를 보면 실은 스트레스 엄청 쌓이고 한숨까지 나오는데, 이게 또 막상 회사들을 만나보면 오히려 에너지가 충만해져서 하루를 마무리하게 된다. 이번에도 너무나 다양한 분야에서,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로 사업을 하는 분들도 있었고, 너무나 뻔한 아이디어지만 시장의 다른 플레이어보다 훨씬 더 잘 하는 창업가들도 많았다. 전형적인 엄친아 창업가, 해외 유명 대학 출신 창업가, 현재 대기업 소속인 스텔스 창업가 등, 다양했다. 내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분은 부모님 빚을 갚기 위해서 길거리에서 시작한 창업가, 그리고 무명 연습생 생활을 오랫동안 한 창업가였다. 프라이머 선발과는 무관하게 모두 모두 파이팅이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젊은이들이 한국에 너무 많고, 이런 친구들 때문에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른들이 많지만, 반면에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열심히 사는 젊은 창업가들도 많다는 걸 이번에도 나는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스트롱도 워낙 초기에 투자하지만, 프라이머는 우리보다 더 앞 단계에 투자하기 때문에 이렇게 여러 명의 파운더들을 짧은 기간 안에 만나보면 요샌 어떤 서비스와 제품이 시장에서 유행하고 있고, 창업가들은 어떤 트렌드에 민감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MZ 세대는 요새 뭐하고 있는지, 즉 이 시장에 대한 맥을 어느 정도 짚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프라이머 기수를 진행할 때마다 느끼는 점은, 한국의 창업 생태계는 매우 활발하고 앞으로 더 폭발적으로 성장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실은, 여러 가지 매크로 지표를 보면, 앞으로 한국 경제가 어려울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지만, 그래도 유일한 희망이 스타트업 생태계이며, 나도 여기서 일하고 있는 일원인 만큼, 이 분야만이라도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항상 간절하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초기 창업가들을 많이 만날수록 마음의 위안이 된다.

대부분 간절하게 프라이머 투자를 받고 싶어 하지만, 아쉽게도 대부분 선발되지 못한다. 내가 이 분들한테 항상 강조하는 건, 프라이머 투자가 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자기만의 사업을 하라고 한다. 이 창업가들이 그 좋은 학교 나와서, 그 좋은 직장 다니다가, 이 어려운 길을 가는 이유가 프라이머 투자 받기 위한 건 아닐 것이다.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고, 더 큰 의지가 있을 것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힘든 일들이 많이 생길 것이고, 주변에 잡음도 많이 들릴 것이다. 이게 너무 많이 쌓이다 보면, 내가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는지,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본질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한 박자 쉬면서, 항상 이 초심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결국, 사업 자체가 좋아서 하는 거지, 투자를 받고, 어떤 투자자한테 인정받기 위해서 이 지저분하고 힘든길을 가는 건 아니지 않냐.

재충전

지난주 부터 한 일주일 동안 여수의 시골 어촌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다. 웬만하면 월, 목 글을 포스팅하는 걸 빼먹지 않고, 이번 휴가 동안에도 글을 쓰려고 했지만, 쉬다 보니 몇 번 건너뛰게 됐다. 30대였을때만해도 나는 휴가나 재충전이라는걸 믿지 않았다. 그런 건 약한 사람들을 위한 거고, 정말 열심히, 열정적으로, 성공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항상 일 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은 개똥철학이었던 거 같다.

이제 나는 쉬는 거에 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옹호자가 됐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시간을 내서라도 일에서 손을 좀 떼고 쉬는걸 주장하는, 휴가에 대해서는 유러피안 마인드를 고집하고 있다. 나도 짧게는 3개월에 한 번씩, 또는 6개월에 한 번 정도 짧게 쉬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데, 올 해는 한 번도 이런 시간을 갖지 못 해서 몸과 마음이 조금 지치긴 했다. 올 해는 예상치 못 했던 큰 변수가 코비드19 이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바뀔 때마다 재택 근무와 사무실 근무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일 년이 거의 다 갔고, 이제 이렇게 스위칭 하는 게 익숙해졌으니, 조금 쉬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뭐, 그렇다고 일을 완전히 놓을 순 없다. 여기에서도 매일 일정 시간을 정해놓고 이메일 확인하고, 중요한 일들은 처리하고 있는데, 딱 정해진 시간에만 일을 하다 보니 우선순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일은 다 미루고 있다. 우리도 이제 투자사 숫자가 늘어나다 보니 해야 할 일도 많고, 챙겨야 할 것도 많고, 여러 가지가 8년 전에 존이랑 나만 사업을 할 때 보단 복잡해졌다. 그래서 스트롱 인원도 충원했지만, doing more with less 전략을 취하다 보니, 항상 일이 넘친다. 그래도 내 파트너 존, 그리고 조지윤 책임과 허연정 매니저와 같은 좋은 동료들이 있어서 큰 걱정하지 않고 편하게 쉬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재충전 하고 있다.

잠깐 쉬면서 재충전하는 게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는 말을 많이들 하는데, 이 말을 나는 요새 굳게 믿는다. 아니, 더 나아가서 십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모두 너무 바쁘다 보니 쉴 시간도 없고 휴가 갈 시간도 없고, 며칠 자리를 비우면 큰 일이 날 것 같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그래도 아무 문제 없이 모든 게 잘 돌아가더라. 그래서 일부러라도 자주 채충전의 시간을 갖는걸 권장한다.

이 사진은 지금 에어비앤비로 머무는 숙소의 마당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마도 콜하고 있는 거 같은데, 사진 제목은 ‘노인 VC와 바다’ 이다.

사진 2020. 10. 13. 오후 5 59 30

노인 VC와 바다

숫자 싸움

투자받는 순서에 따라서 우린 펀딩 라운드를 시리즈 A, B, C, D 등의 알파벳으로 표시한다. 여기에 특별한 의미는 없고, 그냥 말 그대로 순서에 따라서 구분하는 것이다. 스트롱은 주로 시리즈 A 이전에 투자하는 초기 투자자인데, 이때는 대부분의 사업이 완성된 제품도 없고, 제품이 없기 때문에 고객이 없고, 고객이 없기 때문에 사용자나 매출과 같은 수치가 거의 없다. 그래서 그 팀을 보고 투자하고, 팀을 보고 투자하기 때문에 창업가의 스토리, 성품, 실행력, 스트레스에 대한 면역력 등을 그 어떤 특징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시리즈 A부턴 투자자들이 숫자를 따진다. 미국의 경우 100억 원 이상을 주로 시리즈 A라고 하는데, 한국은 이보다 조금 작은 거 같고, 내가 봤던 한국의 시리즈 A는 30억 원 이상인 것 같다. 이 정도 규모의 투자를 받으려면, VC도 어느 정도 규모가 돼야 하고, 회사도 이 규모의 투자를 받기 위한 그릇이 돼야 하는데, 이 그릇은 대부분 숫자다. 전에 내가 미국의 Shark Tank 프로에 나왔던 창업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회사의 성장이 좋고 숫자가 좋으면 모든 투자자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요새 Y Combinator가 약간 맛이 간 거 같지만, 그래도 다른 악셀러레이터 출신 회사보단 아직 YC 출신 회사들이 훨씬 수준이 높다고 생각한다. YC 데모데이는 한국의 데모데이랑은 조금은 다른데, 일단 발표 시간부터 2분 30초로, 주로 5분 발표를 하는 다른 데모데이보다 짧다. 이 2분 30초 동안, 대부분의 창업가는 정성적인 이야기보단 정량적인 숫자 이야기를 한다. 즉, “우린 창업 후 15개월 동안 매달 20% 성장했습니다.”와 비슷한 이야기로 발표를 시작하는 스타트업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나머지 남은 시간도 거의 숫자로만 도배된 슬라이드로 발표를 한다. 발표 자료에 숫자가 없는 스타트업은 대부분 실적이 좋지 않은 회사들이다.

스타트업은 종합 예술이다. 비전도 중요하고, 장기적인 전략도 중요하고, 어떻게 창업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스토리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창업 초기에 시드 투자 받을 때는 이런 정성적인 내용을 투자자들이 많이 참고하게 된다. 하지만, 규모가 더 큰 투자를 받으려면 점점 더 이런 정성적인 부분의 중요도는 떨어지고, 숫자가 왕이 되기 때문에, 정량적인 수치가 중요하다는걸 모든 대표들은 명심해야 한다. 우리 투자사 대표 중에도 숫자를 유독 잘 보면서 관리하는 분들이 있는 반면, 기본적인 회사의 매출이나 MAU 조차도 잘 못 외워서 물어볼 때마다 다시 엑셀을 열어봐야 하는 분들이 있다. 심지어 대부분의 지표를 머리 속에 담가 다니면서, 누가 물어보면 기계적으로 줄줄 외우는 분들도 있는데, 이런 분들이 대부분 사업을 정말 잘한다. 외우기 위해서 이런 숫자를 외운 게 아니라, 하루에도 수십 번 확인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런 수치를 개선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자동으로 뇌에 박히는 것이다.

어떤 투자사들은 아예 실시간으로 비즈니스의 수치를 확인할 수 있는 대시보드를 내부용뿐 아니라 투자자들과도 공유한다. 이걸 보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KPI들이 보이고, 작은 회사지만 이런 깊이 있는 수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란다. 그렇다고 이런 수치만 계속 보고, 실시간으로 트래킹한다고 모두 다 사업을 잘 하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아는 대표 중 시리즈 A 이상의 투자를 받은, 사업을 정말 잘하는 분 중 본인들 비즈니스의 숫자를 잘 모르는 분 들은 단 한 분도 없다. 내 사업의 KPI를 모두 다 줄줄 외우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어딘가 계속 기록하면서 모니터링하고 트래킹하고 있어야 하며, 결국 이런 걸 하루에도 수십 번씩 확인하고 보면 기억력이 좋지 않아도 결국 외우게 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런 숫자를 잘 관리해야 하고, 결국 사업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숫자로 보여주는게 중요하다는 그 마인드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베이브 루스 vs. 스즈키 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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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Nchuccida / 크라우드픽

조지 허먼 루스 주니어는 베이브 루스(Babe Ruth)라는 별명으로 더 널리 알려진 메이저 리그 야구의 전설적인 홈런왕이었다. 베이브 루스는 메이저 리그에서 22시즌을 뛰며 통산 714개의 홈런을 쳤다.
우리한테 조금 더 친숙한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 선수는 현역때 별명이 ‘안타제조기’ 였는데, 일본과 미국에서 친 안타는 총 4,367개이다. 이걸 어떻게 보냐에 따라서 의견이 다르지만, 일단 숫자로만 따지면 야구 역사상 가장 많은 안타를 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안타를 잘 치는 선수라서 홈런은 베이브 루스보단 한참 떨어지는 118개를 쳤다.

나는 야구 보는걸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기록을 다 외우면서 특정 구단과 선수를 응원하는 그런 열성 팬은 아닌데, 오늘 이렇게 베이브 루스랑 이치로 선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야구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요새 내가 계속 생각하는 것과 야구 선수들과 비슷한 점이 많아서 몇 자 적어보고 싶어서이다.

누군가 스트롱은 어떤 스타일, 전략의 투자를 하냐고 물어보면, 이 질문의 의도에 따라서 답은 다양해진다. 이 업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한테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우린 이치로의 안타 전략 보단 베이브 루스의 홈런 전략에 더 가까운 스타일이라고 한다. 실은 투자를 시작할 때부터 존이랑 나랑 스트롱은 무조건 홈런을 치는 전략으로 투자하자고 합의를 본 건 아니다. 실은 그땐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좋은 tech 회사에 투자하기 위해서 펀드를 만들어서 시작했고, 다른걸 떠나서 우린 창업가 그 사람 자체에 투자하는 게 가장 성공 확률이 높은 투자라는 생각을 해서, 가급적이면 좋은 창업가에게 아주 초기에 소액을 투자하는 초기 투자를 했다(물론, 그렇게 했던 또 다른 이유는 돈 모으기가 힘들어서, 펀드가 작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투자를 시작했고, 막 크진 않지만, 펀드 규모가 조금씩 커지면서, 우리도 투자 전략이라는 게 조금씩 만들어져 갔다. 전략이라고 하면 좀 거창하지만, 우리는 소액의 자금을, 초기 단계의 회사에, 그리고 비즈니스/시장/숫자보단 창업팀을 보고 투자하는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정확한 숫자를 세어보진 않았지만, 우리가 지난 8년 동안 투자한 150개가 넘는 회사 중 절반 이상의 회사에 스트롱이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기관투자를 했고, 심지어 어떤 회사는 우리 투자금으로 법인 설립을 할 정도로 우린 일찍 투자했다. 이 전략이 맞아떨어지면, 회사가 exit 할 때의 배수 자체가 어마어마하다. 워낙 일찍, 상대적으로 싸게 투자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exit이 많진 않았지만, 몇 개의 사례를 보면 모두 남들이 갸우뚱 할 때 우린 초기에 들어가서 회사가 잘 됐을 때 엄청 높은 배수의 위닝을 했다. 바로 위에서 말한 베이브 루스의 홈런 전략이다.

그런데 이렇게 투자해야 하고, 우린 너무 잘한다는 자랑을 하는 게 아니다. 실은 이렇게 투자하는 건 그만큼의 리스크가 동반된다. 베이브 루스가 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는데, 공을 치기 위해서는 무조건 배트를 휘둘러야 하고, 그는 이 말에 충실해서 홈런도 많이 쳤지만, 친 홈런의 두 배 이상인 1,300개 이상의 삼진 아웃을 당했다. 우리도 크게 다르진 않다. 홈런 exit이 하나 나오려면, 일단 exit이 가능한 회사가 많아야 한다. 그래서 그만큼 많은 회사에 투자하고 있는데, 현실은 이 중 많은 회사가 망한다. 그래도 계속 공을 제대로 보면서, 열심히, 힘껏 배트를 휘두르다 보면 언젠간 홈런을 칠 수 있고, 이렇게 믿고 계속 배트를 휘둘러야 한다. 투자를 보는 관점도, “여기 투자했다가 잘 못 되면 어떻게 하지”가 아니라 “여기 투자해서 잘 되면 엄청나겠는데”라는 쪽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이 베이브 루스 전략이 모두에게 맞는 건 아니다. 규모가 더 큰 투자를 하는 분들은, 오히려 큰 홈런보단, 작은 안타를 더 많이 치는 게 회사의 전략과 맞다. 이건 회사와 파트너의 성향, 펀드의 규모, 투자 철학 등과 맞물리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 티끌 모아 태산 전략을 선택하면 이치로와 같은 안타 전략이 더 맞고, 크게 벌려고 하면 크게 휘둘러서 홈런을 치는 베이브 루스의 홈런 전략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