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에 굴복하지 않기

콘텐츠는 많지만, 점점 더 볼 게 없어지는 넷플릭스 구독을 다시 중단할까 고민하면서 손가락을 계속 까닥거리다가 “Nyad의 다섯 번째 파도”라는 영화가 눈에 확 들어왔다. 내가 아는 Nyad가 한 분 있는데, 이게 흔한 이름이 아니라서 반가웠고, ‘파도’라는 단어가 있는 걸 보면 내가 아는 그 Nyad임이 분명해서 더 반가웠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마라톤 수영선수 Diana Nyad에 대한 영화였는데, 나는 11년 전에 이미 이분에 대해서 “이 여자 Diana Nyad (Never give up!)”이라는 포스팅을 올린 적이 있다. 쿠바에서 플로리다까지의 177km를 철망 없이 바다 수영에 성공한 분이고, 4전 5기에 성공했는데 5기 때 이분은 자그마치 64살이었다.

이 이야기는 처음 읽었을 때, 그 자체가 그냥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니. 거기에다 내가 좋아하는 아네트 베닝과 조디 포스터 주연의 영화라니. 마침 설 연휴여서 한 번에 다 봤다. 보면서 관련해서 이것저것 검색해 보니, 이분의 쿠바 – 플로리다 완영에 대해선 논란이 있고 아직도 기록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진 않고 있었지만, 나에겐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큰 감동을 준 영화였다.

우리는 누구나 다 위대함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 같다. 어릴 적엔 어느 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달인이 되는 게 위대함이라고 생각했고, 아주 유명한 사람이 되는 게 위대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위대함이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껍데기가 아니라, 내가 뭔가를 계속 시도하고, 꾸준하게 연마하면서 생기는 나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 만족감이 극에 다다르면 위대함이 되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나이애드씨는 굳이 왜 이런 무모한 도전을 하냐는 질문에 대해서 “평범함에 굴복하기 싫어서”라는 대답을 하는데, 나는 이게 위대함인 것 같다.

위대함이란 평범함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 평범함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 뭔가를 계속 꾸준히 하는 그 행위 자체가 결국 위대함을 만든다. 비록 그 위대함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혼자만의 위대함일지라도. 나이애드씨가 64살에 철망 없이 177km 바다 수영에 성공하기 위해서 훈련했고, 5번 만에 성공했다면, 올해 50살밖에 안 된 나는 그 어떤 것도 시도해서 위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목표는 평범함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쓰레기로 가득 찬 넷플릭스를 끊으려다가 가끔 이런 보석 같은 영상이 있어서 계속 보게 된다…

상호존중

나는 2000년도 중반에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중소기업 영업/마케팅 부서에서 3년 동안 일했다. 내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뭔가 체계가 잡힌 대기업에서 일 한 경험이었는데, 일은 매우 재미있었고, 이때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와 이 회사를 만든 빌게이츠에 대한 깊은 존경과 애사심이 생겼다. 그런데 우리 팀의 상무님과 이사님이 나에게 항상 잔소리같이 했던 말이 있는데, “너는 왜 맨날 혼자 샌드위치 같은 걸로 밥을 때우냐? 부서 사람들과 친해지려면 매일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먹어야지!”였다.

솔직히 말해서 일도 많았고, 아주 바빠서 밥은 그냥 혼자 조용히 먹고 싶었다. 굳이 부서 사람들이랑 우르르 나가서 같이 밥 먹고 술 먹고 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굳이 밥까지 같이 먹는 것도 싫었다. 또한, 당시에만 해도 한국 기업에는 회식 문화가 뿌리를 깊게 박고 있어서 일주일에 거의 매일 회식하는 걸 보고 팀워크라는 명분으로 술 먹는걸 아주 아주 증오하게 됐다. 하지만, 내가 퇴사하기 전까지 매니저들과 1대1 미팅하면 항상 비슷한 피드백을 받았다. 일은 잘하지만, 우리 부서와 다른 부서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내야 하고, 당시 내 매니저분들의 머릿속에는 사람들과 친해지려면 그들과 밥과 술을 같이 먹고, 형.동생 하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나는 당시에 과장 나부랭이였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강하게 반박했다. 직장 동료분들이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회사의 이익이라는 공통 목적을 위해서 모인 사람들인데, 매일 밥을 같이 먹고, 술을 같이 먹는 거랑 일을 잘하는 거랑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선 항상 매니저들에게 지적받았다. 그렇다고 단 한 번도 내 인사고과에 이런 게 영향을 미쳤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나름 일은 잘했고, 실적도 좋았기 때문이다. 이런 과거의 경험 때문인지, 나는 팀워크 향상이라는 명목으로 술 먹는 회식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스트롱은 이 흔한 회식이 아예 없다. 그리고 우린 팀워크를 돈독하게 하기 위한 저녁 자리도 없다. 모든 식사는 점심이고, 모든 팀원이 같이 밥 먹는 건 일 년에 두 번 정도밖에 없다. 물론, 이것도 점심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서로 안 친하고, 팀워크가 안 좋은가? 그 반대다. 스트롱의 팀워크는 매우 스트롱한데, 이 스트롱 한 관계는 같이 일하면서 쌓인 신뢰와 존중 때문이지, 서로 형.누나.언니.동생 하면서 술 먹고 밥 먹어서 생긴 팀워크가 아니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의 좋은 팀워크는 정말 중요하다. 팀워크가 없으면 개인적이나 단체로나 일의 능률이 잘 안 오르고, 회사의 입장에서는 생산성이 매우 저하된다. 하지만, 이 팀워크는 같이 술 먹고 밥 먹으면서 만드는 게 아니라 서로의 존중과 신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존중과 신뢰는 “우리가 남이가” 하는 그런 쓸데없는 친함과는 전혀 상관없다.(참고로, 회사 사람들은 당연히 남이다). 오히려 너무 개인적으로 친해지면, 한국의 수직적 기업 문화와 나이 처먹은 게 그 어떤 것 보다 중요시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존중이라는 게 만들어질 수가 없다. 직장 상사가 후배.동생이라는 명목하에 “야” , “너”라고 하는 팀원과 어떻게 존중의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단 말인가?

좋은 팀워크는 상호존중에서 만들어지고 지속될 수 있다. 그리고 서로 존중하려면 나이, 직급, 성별 등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서로 존댓말을 해야 한다. 아무리 가족이 회사를 같이 만들거나, 친한 친구들이 공동 창업을 해도, 회사와 일과 관련된 곳에서는 무조건 서로 존댓말을 해야 한다. 이 기본적인 게 직장에서 거의 안 지켜지고 있다는 게 놀랍다.

가끔 내가 놀라는 게, 효율과 생산성이 중요하고, 격식이 상대적으로 없는 이 스타트업 현장에서도 팀워크를 다지기 위해서 너무 자주 술 먹고 밥 먹는 분들이 많다는 점이다. 남들이 본인들 회사를 어떻게 운영하든, 이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만, 이렇게 해서 과연 팀워크가 만들어질지,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팀워크가 오래 갈 수 있을지 상당히 의심스럽다. 이런 분들은 팀원 간에 갈등이 생기면 딱 하나의 지침이 있다. “같이 소주 한잔하면서 으쌰으쌰 해야죠.”가 해결책인데 이런 말 들을 때마다 난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코빗에서 비트코인 ETF까지

1월 10일 미국 SEC가 비트코인 ETF를 승인했다. 우리가 한국 최초의 비트코인 거래소 코빗에 첫 투자를 했던 게 2013년 8월인데, 내 기억으론 이 시점에 미국에서 윙클보스 형제가 최초로 비트코인 ETF를 신청했다. 이후 계속 거절, 반려, 그리고 보류를 계속 당하다가 거의 10년 만에 승인받은 건데, 솔직히 나는 이번에도 거절당할 줄 알았다. 그래서인지, 여러 ETF가 승인받았다는 소식을 접했을 땐 약간 비현실적인 느낌까지 들었다.

우린 2013년도에 코빗에 투자했고, 코빗이 넥슨의 지주회사 NXC에 인수되면서 좋은 훈장(=엑싯)을 얻었기 때문에 코빗과 코빗의 창업팀에 매우 고마운 감정을 평생 갖고 살 것이다. 하지만, 이 엑싯 외에도 코빗에 항상 고마운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건 바로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우릴 인도했다는 점이다. 2013년이면 한국에서 비트코인 자체가 거의 안 알려졌을 때이고, 일반인은커녕, 투자자들도 암호화폐나 비트코인이 뭔지 전혀 모를 적이다. 우린 코빗 덕분에 이 흥미롭고 새로운 기술을 알게 됐고, 이후에 비트코인이 암호화폐, ICO, NFT, DAO, Web3로 진화하는 걸 아주 가까이 관찰할 수 있었다. 이 중 많은 것들이 거품같이 꺼졌고, 우리도 이 거품에 투자하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론 모든 게 배움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비트코인 ETF가 승인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감회가 남달랐고, 코빗에 처음 투자할 땐 상상도 못 했던 시장이 10년 만에 왔다는 생각까지 했다. 이젠 나보다 이 시장에 대해서 훨씬 많이 알고, 훨씬 더 투자를 많이 하는 분들이 한국에도 상당히 많기 때문에 비트코인 ETF에 대해서 여러 말은 하지 않겠지만, 어쨌든 그동안 비트코인에 직접 투자하길 꺼렸던 많은 기관 투자자들의 암호화폐에 대한 접근이 대폭 확대될 것이고,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전반에 대한 제도화가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벌써부터 이더리움 ETF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긴 하지만, 이건 또 다른 이야기이다.

ETF가 승인된 지 이제 한 달이 넘어 가는데, 왜 비트코인 가격이 1억 원으로 상승하지 않는지 불만인 사람들이 내 주변에 상당히 많다. 오히려 승인받은 후에 가격이 떨어진 것 같은데, 나는 오히려 이게 좋다. 이제 암호화폐가 서서히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비트코인 가격이 미친 듯이 요동치면 또다시 여론의 공격 받을 것이고, 법과 정책은 여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이후에 생길 수 있는 다른 암호화폐 ETF와 같은 금융 상품 승인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비트코인 가격에 큰 변화가 없는 게 다행인 것 같다. 물론, 장기적으론 더 올라갈 것으로 생각하는데, 과거와 같이 수직상승 하거나 수직하강 하지 않길 바란다.

많은 분들이 비트코인 ETF 승인에 1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는 걸 매우 오래 걸렸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매우 빨리 승인됐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AI가 처음 시장에 등장한 게 거의 30년 전이다. 최근에 Gen AI와 ChatGPT의 등장으로 AI가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진입했는데, 실은 이게 하룻밤에 일어난 건 아니고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비트코인 ETF가 승인받는 데 10년 걸린 건 어쩌면 굉장히 빨리 진행된 거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기대된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했던 이 말이 요새 계속 생각난다.
“If the last 20 years was amazing, the next 20 will seem nothing short of science fiction.”

Vamos Strong!

한국이라는 시장 – part 2

Part 1에 이은, 왜 한국이 엄청난 시장인지에 대한 두 번째 포스팅이다.

우리 투자사 중 당근, 미소, 지바이크, 그리고 플랩풋볼이라는 회사/서비스가 있다. 4개 회사 모두 각각의 영역에서는 누구나 다 아는 브랜드(=household brand)가 됐다. 당근은 누구나 다 알기 때문에 설명하지 않겠다. 미소는 청소 도우미 플랫폼으로 시작했지만, 이젠 홈서비스 종합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고, 얼마 전에 우리 아파트 단지 내에서 미소 로고가 달린 이삿짐 트럭을 봤을 때 기분이 참 좋았다. 지바이크는 한국의 압도적인 No.1 마이크로모빌리티(=킥보드, 전기자전거) 스타트업인데, 최근에 이 분야에서 아시아 No.1 회사가 됐다. 플랩 풋볼은 풋살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풋살 중개 플랫폼인데, 플랩풋볼이 서비스명이고 회사 이름은 마이플레이컴퍼니이다.

이 4개 스타트업의 공통점은 이미 내가 말했듯이, 각각의 분야에서 현재 No.1이라는 점인데, 이 외에도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실은, 이 다른 공통점이 나를 항상 자랑스럽게 만드는데, 바로 비슷한 해외 서비스보다 한국에서 훨씬 잘하고 있어서, 오히려 이 한국 회사들이 글로벌 벤치마크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 해외 서비스를 벤치마킹하는 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어 해외 서비스들이 오히려 한국의 서비스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자랑하고 싶은 내용은 많지만, 그냥 한 회사씩 간략하게 설명해 보겠다.

당근은 미국의 Craigslist, OfferUp, 그리고 Nextdoor라는 서비스들을 동시에 벤치마킹하면서 가장 한국적인 성격의 모바일 앱을 만들었다. 한국인 특유의 감성이 녹아 있는 매너온도 또는 지역 기반의 아기자기한 기능들이 추가되면서 완전히 한국적인 모바일 제품으로 성장했고, 심지어는 토끼 옷을 입은 강아지 마스코트 ‘당근이’도 매우 한국적인 귀여운 이미지의 캐릭터다. 수많은 글로벌 회사가 지역 기반의 앱이나 로컬 검색 엔진을 만드는 노력을 부단히 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는데 – 구글이나 페이스북도 지역 관련 시도를 많이 했지만 대부분 실패 – 이걸 대한민국의 당근이 하고 있다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 이제 해외에서 지역 기반 서비스를 만드는 많은 창업가들이 한국의 당근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조만간 이들이 “우리는 영국의 당근마켓입니다.” , “간략하게 말하면 우리가 하는 건 남미의 당근마켓입니다.”라고 하는 말을 듣길 기대한다.

미소 이전에 미국에 Homejoy라는 꽤 핫 한 YC 출신 서비스가 있었다. 한 500억 원 정도 펀딩을 받았는데 2015년에 망했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도 청소 관련 서비스들이 많이 생겼지만 대부분 망하거나 잘 안됐는데, 유독 미소만 한국 시장에서 잘하고 있다. 인구밀도가 높은 한국 시장이 미소와 같은 서비스가 잘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됐고, 여기에 청소를 꼼꼼히 잘하는 한국의 근면성실한 공급자들이 미소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실은 우리가 미소를 해외 투자자들에게 설명하면, 대부분 의아해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분야에서 유니콘이 된 글로벌 스타트업이 아직 없어서 뭔가 비교할 수 있는 벤치마크가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훨씬 더 많은 투자를 받은 글로벌 스타트업은 잘 못 하는데, 이들의 5분의 1 정도만 투자받은 한국의 스타트업이 어떻게 이렇게 잘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 이제 미소가 홈서비스 플랫폼의 글로벌 벤치마크가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지바이크는 아시아의 No.1 공유킥보드/자전거 마이크로모빌리티 플랫폼이다. 한국 시장점유율 1위였는데, 최근에 아시아의 No.1 회사로 성장했다. 몇 년 전에 해외에서 이런 사업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겼고, 그중 Bird와 Lime이라는 스타트업이 단시간에 대형 유니콘이 됐다. 지바이크는 이 사업들을 벤치마킹했고, 심지어는 한국에서조차 후발주자로 시작했는데 몇 년 내에 아시아에서 이 사업을 가장 잘하는 회사가 됐다. 참고로 Bird는 거의 망했고, 지바이크보다 훨씬 더 투자를 많이 받았던 외국 스타트업도 대부분 잘 안되고 있다. 내가 알기론, 지바이크가 전 세계에서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효율이 좋은 마이크로모빌리티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건 한국 시장이라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인구밀도가 높고, 대중교통이 잘 발달하여 있고, 시민의식이 높은 게 대표적인 이유이다. 이제 외국에서 마이크로모빌리티 사업을 새로 시작하는 창업가들은 한국의 지바이크를 벤치마킹할 것이다.

플랩풋볼은 풋살을 중개해주는 소셜 스포츠 플랫폼이다. 우린 이 회사에 아주 오래전에 투자했는데, 내 기억으론 처음 투자할 때 한 달에 30개의 경기도 소화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한 달에 거의 1만 개의 풋살 경기를 중개하고 있는 대형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굉장히 독특한 사업이고, 풋살이 이렇게 인기 있고 발달한 나라가 전 세계에 별로 없고, 있어도 플랩풋볼같이 수요와 공급을 잘 매칭해주는 플랫폼이 없다. 비교적 작은 공간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운동할 수 있는 종목은 풋살밖에 없는데, 한국 시장의 특성 때문에 플랩풋볼이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은 풋살은 일본이나 싱가폴과 같이 인구 밀집도가 비교적 높고 면적이 작은 지역에서도 관심이 많은 종목이라서 글로벌 확장도 충분히 가능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우리 투자사와 비슷하게, 이제 외국에서 풋살 플랫폼을 만들고 있는 창업가들이라면 한국의 플랩풋볼이 이들의 글로벌 벤치마크가 될 것이다.

실은, 이 외에도 글로벌 벤치마크가 이미 됐거나, 되어가고 있는 한국의 스타트업이 꽤 있는데,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국 시장의 독특한 점들을 잘 살리면 한국에서도 큰 사업을 만들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이 사업이 글로벌 시장의 벤치마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한국은 매력적인 시장이다.

이제 외국 투자자들이 나에게 한국 시장에 대해서 물어보면, 나는 더 이상 한국이 ‘좋은’ 시장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제 나는 한국이 ‘위대한’ 시장이라고 항상 강조한다.

한국이라는 시장 – part 1

2023년은 좀 많이 바쁜 한 해였다. 8월인가,,, 출장 가는 비행기에서 연말에는 꼭 며칠 쉬어야겠다고 다짐했고, 연말에도 중요한 일이 있어서 불발될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서 태국에서 열흘 정도 쉬다 왔다. 코로나 전에는 방콕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갔었는데, 이번에 굉장히 오랜만에 갔다. 태국도 예외없이 물가가 많이 올랐고, 그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이 일어났고, 경제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걸 몸으로 직접 체감할 수가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때 한국 VC들이 동남아 시장에 열광했던 적이 있었다. 내 기억으론 몇몇 VC는 모든 자산을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의 지역에 집중했고, 당시에 동남아에 투자하지 않으면 뭔가 혼자 왕따 되는 FOMO 분위도 형성됐었다. 그래도 우린 동남아 시장에 대해서 전혀 몰랐고 큰 관심이 없어서 그냥 계속 한국과 미국에만 투자했다. 동남아에 투자하는 한국 VC들과 이야기해 보면 대부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한국보다 인구가 많고, 이 인구가 한국같이 노화하고 있는 역피라미드 구조가 아닌 젊은 피라미드 구조이고, 스마트폰 보급률이 현저히 낮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높고, 마치 1970-80년대 한국을 보는 것과 같다는 점들을 강조했다.

이 중 아직도 동남아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분들이 있는진 잘 모르겠다. 동남아 시장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던 내가 아는 대부분의 VC들의 포트폴리오는 거의 망했거나 잘 안 되고 있고, 이분들은 이제 또 next big market을 찾고 있는 것 같다. 인도를 보는 분들도 있고, 동유럽을 보는 분들도 있다.

나에게도 다른 분들이 스트롱은 왜 동남아에 투자하지 않는지 물어보는데, 나는 한국같이 좋은 시장이 우리 나와바리인데, 왜 굳이 다른 나라를 보는지 이해가 안 간다. 그 시장의 언어도 모르고, 네트워크도 없고, 그 시장에 대해서 유일하게 아는 몇 가지 사실은 인터넷 검색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그런 일반적인 내용인데, 이렇게 해서 어떻게 남의 나라에서 좋은 회사를 발굴해서 투자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그동안 짧게 출장과 여행 가서 봤던 동남아 시장, 그리고 작년 말에 태국에서 머물면서 이 시장에 대해서 느꼈던 바를 종합해 보면, 아시아에서는 현재 한국이 가장 좋은 스타트업 시장이고 한국 창업가들만큼 열심히 일하고 똑똑한 인재들이 없다는 게 내 결론이다.

한국 창업가들의 수준은 1등급이다. 이렇게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고, 경쟁심 강하고, 성공에 목말라 있는 분들을 나는 그 어느 곳에서도 못 봤다. 나는 지금까지 똑똑하지 못한 한국 창업가들은 봤어도, 게으른 분들은 만나보지 못했다. 한국이 못 사는 나라일 땐 전 국민이 밤낮없이 열심히 일했는데, 지금은 한국이 굉장히 잘 사는 나라가 됐는데도 근면·성실한 습관은 전혀 없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우리의 DNA는 스타트업의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남이 잘되는 걸 잘 못 보는 한국인의 DNA도 한몫해서 한국의 창업가들은 경쟁심이 정말 강하다. 여기서 우린 지속적인 점진적 혁신을 목격할 수 있다.

똑똑한 창업가들은 많지만, 시장의 크기를 무시할 순 없다. 한국 VC들도 항상 지적하는 부분이 한국 시장의 크기이다. 작은 나라에 5,000만 인구가 사는 시장인데 이게 어떻게 보면 크고, 어떻게 보면 작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과 같은 나라에 비하면 작은 시장이다. 우리도 외국 LP들에게 비슷한 질문들을 많이 받는데, 한국 시장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가 하는 말이 몇 가지 있다.

동남아에서 GDP가 가장 높은 top 다섯 나라가 인도네시아, 태국, 싱가폴, 필리핀, 베트남이다. 이 다섯 나라의 GDP를 다 합치면 약 3,400조 원인데, 한국의 GDP는 2,100조 원이다. 인도네시아를 제외하면 나머지 4개국의 GDP 총합은 한국의 GDP보다 작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시장이 전혀 작은 시장이 아니다. 물론, 한국은 이미 많이 성장했지만, 동남아의 다른 나라들은 이제 막 성장하고 있지 않냐는 논리를 펼칠 수 있다. 이에 대한 내 생각은, 한국은 앞으로 훨씬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인데, 가장 큰 이유는 위에서 언급했던 뛰어나고 위대한 한국인들의 quality이다. 이게 우리나라 성장의 원동력이다. 동남아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고,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것도 맞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이런 폭발적인 성장이 투자자에게 돈이 되는 건 한 50년 후가 될 것 같다. 즉, 우리같이 10년짜리 펀드를 계속 만들어서 투자하는 VC들에겐 지금은 별로 의미가 없는 시장이다.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냐 하면, 이 또한 그 나라 창업가들의 quality 문제이다. 한국 창업가들은 다른 나라의 창업가들보다 압도적으로 똑똑하고, 성실하고, 일을 잘한다.

한국의 exit 시장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스타트업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상장하든 다른 회사에 인수되든, 엑싯이 발생해야지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는데, 이 시장이 약하다는 공격도 많이 받는다. 물론, 아시아의 가장 큰 시장인 중국과 일본보다 한국의 상장 시장 시총은 작지만, 전반적인 거버넌스와 정치/사회적 상황이 불안정한 중국보단 안정적이고, 일본의 상장 시총은 몇 년 후에 뛰어넘을 거로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의 exit 시장은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특히, 동남아에서 상장 시장이 가장 큰 싱가폴, 말레이시아와 태국을 다 합친 것 보다 한국이 더 크기 때문에 exit 시장이 없다는 말은 더 이상 한국에 적용할 수 없는 오래된 발언이다.

이 외에도 왜 한국의 tech 시장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장 중 하나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과 의견이 있는데, 어쨌든 우린 똑똑한 창업가들이 넘쳐흐르는 이 매력적인 시장에 지난 13년간 투자를 했고, 앞으로도 계속 투자할 것이다. Part 2에서는 이런 좋은 한국의 창업가들이 한국이라는 독특한 시장에서 글로벌 벤치마크가 되는 사업들을 만들고 있는 사례에 대해서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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