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에 대해서

투자자나 창업가나 스케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우리가 자주 하는 질문은 과연 특정 사업이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성장이 가능할까인데 영어로 이 질문을 하면 “이 비즈니스가 얼마나 scalable 할까?”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의 유니콘 회사가 아주 빠르게 성장을 했고, 스케일이라는 말을 스타트업 분야에서 워낙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창업가들이 이 단어에 집착한다고 난 생각한다. 아주 효율적으로, 아주 빠르게 성장하는 건 당연히 좋고, 투자자로서 나도 스케일이 가능한 사업을 발견하면 좋아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쉽게, 그리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비즈니스는 요새 정말 찾기 힘들다. 나는 오히려 이런 비즈니스가 있다고 하면 약간 의심하고, 너무 많은 창업가들이 필요 이상으로 스케일이라는 말에 집착하는 것 같다.

최근에 워낙 경기가 안 좋다 보니, 많은 창업가들이 성장보단 생존에 집중하고 있는데, 계속 성장을 하고 싶어 하는 창업가들은 이런 상황이 죽고 싶어질 정도로 답답할 것이다. 우리 투자사 대표 몇 분은 이런 답답함과 짜증 남에 대해서 우리랑 편안하게 자주 이야기하는 편인데, 최근에 했던 이런 대화가 기억난다. B2B 제품을 만들고 있는데 영업 속도가 느리고 매출 성장이 너무 더뎌서 매우 초조해하고 스트레스 받고 있는 분과의 미팅이었다.

일단, 기업에 판매할 B2B 제품은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B2C 제품보단 주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 우리가 투자한 어떤 B2B SaaS 회사들은 제품만 만드는 데 1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힘들게 제품을 만들었는데, 이 제품을 기업 고객에게 판매하는 건, 더 힘들고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첫 번째 B2B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 한 달 이상 영업하는 경우도 자주 보는데, 이렇게 해서 확보한 고객에게 발생하는 매출은 기대 이하이다. 이분은 이런 식으로 하면, 일 년 열심히 영업해도 유료 고객이 15개도 안 될 것이고, 이들로부터 나오는 매출도 크지 않아서, 과연 내가 맞는 방법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지, 이렇게 고객 한 명 한 명씩 영업하는 방법이 맞는 건지 스스로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서 ‘미친 성장’을 하는 다른 스타트업같이 아주 효율적으로 노가다 없이 스케일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회사는 아주 잘될 것이라고 믿는다. 내 솔직한 의견은, B2C 제품이나, B2B 제품이나, 노가다 없이 스케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언론에서는 마치 쉽게 사업을 확장하고, 스케일이라는 말을 모든 스타트업이 가져야 할 필수 덕목같이 포장하는데, 나는 큰 스케일은 수많은 작은 노가다가 축적될 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샌 웬만한 사람들이 다 사용하는 드롭박스 같은 제품도 사업 초반에는 창업자가 직접 지인들 사무실을 방문해서 이들의 PC에 제품을 설치해 주고, 사용법을 가르쳐주면서 성장했고, 에어비앤비도 창업자들이 직접 호스트의 숙소를 방문해서 사진을 찍어서 대신 올려주면서 성장했다. 우리 투자사 당근도 판교에서 아주 작게 시작했는데, 창업자들이 직접 물건을 하나씩 올려서 판매하면서 시작했다.

동네 가게를 위한 B2B 제품을 만들고 있다면, 우리가 만든 제품을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노력으로 가장 많은 동네 가게 사장님들에게 한 방에 크게 노출할 수 있는지 고민할 시간에, 그냥 하루 종일 동네 가게 문 두드리고 찾아가서 영업하는 게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루 종일 뚜벅뚜벅 걸어 다니면서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이들에게 직접 제품을 설치해 주다 보면, 진짜 사업에 대해서 배울 수 있고, 세상이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 몸으로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고객 한 명씩 상대하면서 노가다 작업을 하는 게 맞는 방법인지 계속 스스로 의심하겠지만, 고객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두 명이 다섯 명이 되고, 다섯 명이 50명이 되면서, 그때부터 사업엔 스케일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스케일이 생기기 전 까진 그냥 옛날 방식대로 하나씩 해야 한다. 소위 말하는 노가다를 뛰어야 한다.

스케일은 가만히 책상에 앉아서 손가락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직접 발로 뛰어야 하고, 이런 노가다를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큰 스케일이 만들어진다. 대신, 멈추지 말고 계속 해야 한다. 내가 이전 포스팅에서도 말했지만, 세상의 모든 큰 일은 아주 작은 일을 계속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50살

얼마 전에 내 생일이었다. 이제 나는 반백 년을 살았으니까, 올해 50세가 됐다. 아주 오래전부터 난 생일을 안 챙기기 시작해서 나이와 생일에 대한 감흥이 실은 별로 없고, 생일 당일에도 특별한 이벤트나 식사 같은 걸 하지 않았다. 카톡이나 소셜미디어에서도 생일 알림을 다 꺼서, 내 생일을 기억하는 가족이나 친구들 외엔 특별한 생일 축하 메시지도 오지 않아서 굉장히 편하고 행복한 하루였다.

젊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고, 전 세계가 노화 방지에 열광하고 있는데, 솔직히 나에게 다시 젊은 배기홍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생각도 하지 않고 ‘NO’라고 할 것이다. 나의 10대, 20대, 30대, 40대 모두 행복하고 감사한 시절이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별로 후회가 없는 즐거운 시절이었지만, 솔직히 나는 지금이 가장 좋다. 동갑내기 친구들끼리 골프도 치고, 밥도 먹고, 술도 먹다 보면, 다들 나이에 대해서 항상 한마디씩 하는데, 들어보면 긍정적인 내용은 없고 모두 부정적이다. 특히나, 한국은 미국 보단 늙어 가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안 좋은 인식을 갖고 있어서 “늙으면 죽어야 해”라는 말을 반농담처럼 하는데, 내가 언젠가 이 말을 어떤 미국인에게 웃자고 했는데, 이분이 엄청나게 언짢아하면서 다시는 그런 말 듣고 싶지 않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생각해 보면 50살을 살았다는 건 대단하고, 이제 인생 경험이 꽤 쌓인 것 같다. 이걸 부정적으로 보면 이제 내 전성기는 지나갔고, 내려갈 일만 남았다고 하는 분들도 많지만, 나는 오히려 내 30대와 40대보다 지금이 더 건강하고, 활기차고, 인생이 풍요롭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제까지 살지 모르겠지만, 모두의 인생 자체는 속도만 다르지, 계속 발전하면서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매일 매일을 긴 연장선상에서의 꾸준함의 연속이라고 보는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블로그에서 여러 번 공유했는데, 내가 아침마다 읽고 있는 문구가 있다. 동화 작가 강미정 씨의 ‘아주 작은 일’이라는 시이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일주일을 계속하면 성실한 것입니다.
한 달을 계속 한다면 신의가 있는 것입니다.
일 년을 계속 한다면 생활이 변할 것입니다.
십 년을 계속 한다면 인생이 바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큰 일
아주 작은 일을 계속 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언제까지 일진 모르겠지만, 이 시의 내용처럼 앞으로 10년마다 계속 내 인생이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도록 오늘도 아주 작을 일을 계속 할 것이다.

자신감에 대해서 – part 2

이전 글 part 1에서 못 담았던 자신감 관련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 싶다. 우리가 시작했던 LA 시장에서도 이런 창업가와 VC들의 자신감이 크게 상승했던 큰 이벤트가 있었는데, 바로 Snap(구 Snapchat)의 IPO였다.

스냅챗은 아주 LA스러운 창업가 Evan Spiegel에 LA의 Venice Beach에서 창업했고, 2017년 3월 2일에 IPO를 했다. 최근 시가총액은 20조 원을 왔다 갔다 하고 있어서 IPO 당시 시총보단 한참 작지만, 높을 땐 40조 원이 넘는, 디즈니와 Amgen에 이어 LA 지역에서 세 번째로 시총이 높은 회사였다. 스냅의 IPO가 LA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미친 영향은 엄청났는데, 가장 큰 건 이전 포스팅에서 내가 강조한 ‘자신감’이다. 당시에 LA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벤처생태계 중 하나였고, 그동안 많은 좋은 스타트업이 창업되고 엑싯도 잘했다. 그런데 이 엑싯들을 보면 대부분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 대의 M&A였고, 아주 가끔은 조 단위의 엑싯도 LA 지역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스냅 IPO 이전에는 대부분의 LA 창업가들은 적당히 회사를 키운 후에 수백억 ~ 수천억 원 규모에 더 큰 회사에 파는 엑싯 전략을 기반으로 사업을 했고, 그 이유는 그 정도의 자신감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26살의 젊은 창업가 Evan이 스냅챗을 수십조 원짜리 회사로 상장시켰을 때, LA 지역의 창업가들은 이 IPO로 인해 굉장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 LA에서 수천억 원 ~ 수조 원의 엑싯은 심심찮게 나왔지만, 수십조 원의 IPO도 가능하다는 걸 스냅이 입증해 줬기 때문에, 더 많은 창업가가 “나도 굳이 실리콘밸리나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아도, 내가 사랑하는 따뜻한 LA에서 잘만 하면 수십조 원짜리 회사를 만들어서 상장시킬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엄청난 자신감을 갖게 됐다. 스냅의 IPO 이후엔 더 많은 LA의 창업가가 더 큰 꿈과 비전을 갖고, 이왕 시작한 회사를 가능하면 대형 IPO가 가능한 규모로 키울 생각을 하게 됐는데, 나는 이게 엄청난 긍정적 자신감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스냅의 성공적인 IPO로 인해서 다양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가장 눈에 띄는 변화 몇 가지에 대해서 적어보고 싶다. 일단 LA의 북동쪽에 위치한 캘리포니아공대(Caltech) 학생들의 창업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칼텍 학생들이 전반적으로 MIT나 스탠포드 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는데(smart이기도 하지만, 훨씬 더 geeky하고 nerdy 하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창업보다는 연구에 관심이 많았다. 이 학교 졸업생들은 대부분 석사/박사 과정까지 하고, 이후에는 교수, 또는 NASA나 JPL(제트추진연구소)에 취직해서 인류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찾는 커리어를 선호한다. 하지만, 스냅 IPO 이후에는 칼텍 학생들도 창업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렇게 좋은 창업가들이 뭔가를 시작한다는 건 LA의 창업 생태계에는 엄청난 긍정적인 변화와 자신감을 가져오는 계기가 됐다.

또한, 스냅의 IPO로 인해, 굉장히 많은 부자들이 탄생했다. 스냅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이 IPO로 번 돈은 엄청났고, 이들은 LA 생태계에 계속 돈을 투입하면 더 많은 성공적인 회사들이 나올 것이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확고한 자신감이 생겼다. 또한, 이들에게 자금을 제공해 주는 LP 들도 LA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신념이 생기면서 계속 대규모 자본이 LA 스타트업에 투입되는 선순환 사이클이 만들어졌다.

스냅의 많은 직원들도 이 IPO로 인해서 백만장자가 됐다. 이들은 성공적인 회사를 만들었고, 돈도 벌면서 새로운 레벨의 자신감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다른 스타트업에 개인 투자를 하거나, 후배 양성을 위한 액셀러레이터나 VC 펀드를 설립해서 본인이 사업하면서 남들한테 받았던 도움을 다시 pay it forward 하기 시작했다. 이런 사이클이 몇 번 반복되면서 LA도 실리콘밸리와 같은 두터운 창업가와 투자자의 인프라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내가 말하는 자신감이 여기저기서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스냅의 IPO로 큰돈을 못 번 직원들도 작은 회사가 초고속 성장해서 IPO까지 가는 걸 경험했기 때문에, 이러한 경험, 배움, 그리고 자신감을 다른 스타트업으로 그대로 가져가서 스냅과 같은 성공 케이스를 계속 만들기 시작하면서, LA 스타트업 생태계의 자신감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현상이 한국에서도 이제 막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스타트업 분들이 기대하고 있는 토스의 IPO가 초대박이 나길 바라고 있고 마켓컬리 같은 회사도 아주 잘 되길 바란다. 참고로, 우린 토스나 마켓컬리 투자자는 아니다.

자신감에 대해서 – part 1

요새 나는 한국보단 해외 투자자들을 훨씬 더 많이 만나서 이들에게 돈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에게 돈 받는 건 항상 어려운 일이고, 특히나 요새 같이 이자율이 높고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불경기엔 펀딩이 더욱더 힘들어 진다.(VC들의 펀딩이 이렇게 어렵다 보니, 우리 같은 VC에게 투자받아야 하는 창업가들의 펀딩은 더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몇 년 전과 비교해 보면 좋아진 점도 있는데, 그건 바로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와 한국의 벤처 시장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는 것이다. 전에는 잠재 LP들에게 왜 스트롱 같이 한국에 투자하는 VC에 출자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데만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이 설명의 기간이 어떤 경우엔 수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젠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한국이라는 시장에 대한 의문이나 의심은 없을 정도로 한국의 벤처생태계가 그동안 많은 발전을 했다.

내가 잠재 LP들에게 최근에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어떻게 이렇게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안에 한국의 스타트업 시장이 좋아졌냐인데, 이 질문에 대한 짧은 답변은 아주 간단하게 그냥 한국 창업가들의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럼, 왜 한국 창업가들의 수준이 이렇게 좋아졌을까? 여기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 생각, 그리고 각자의 경험이 있지만, 내가 딱 한 가지만 강조하자면, 그건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창업가의 자신감은 정말 중요하다. 내가 하는 사업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 내가 만들고 있는 제품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은 안 되는 사업도 되게 하고, 못 받던 펀딩도 받게 한다. 평소에 잘 안되던 것들이 자신감과 이로 인한 파급 효과로 인해서 하나씩 만들어지는 걸 경험하는 순간, 잠재의식 속에서는 더 큰 자신감이 무의식적으로 생기고, 이건 결국엔 성공의 확률을 높일 수밖에 없다. 창업가들이 이렇게 자신감으로 무장되면, 기업가치 300억 원의 회사를 만들겠다던 목표가 1,000억 원이 된다. 그리고 이 목표가 계속 커져서 결국엔 10조 원짜리 데카콘까지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게 창업가의 자신감이다.

비공식적인 기록이지만, 한국에는 유니콘 기업이 22개나 있다. 작은 나라치곤 엄청나게 많은 유니콘이다. 이런 사실도 한국 창업가들에겐 큰 자신감을 준다.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기업가치가 1조 원 이상인 비상장 회사가 이렇게 많다는 점, 이 중 몇 개의 기업은 본인이 개인적으로 아는 창업가들이 만들었는데, 그들도 그냥 나랑 비슷한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 그래서 어쩌면,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수천억 원의 펀딩을 받고 유니콘 기업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이 창업가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수 있다.

쿠팡의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은 한국 창업가들의 마음에 큰불을 질렀다. 한국 시장만을 상대로 이커머스 사업을 하는 회사가 미국에서 IPO를 했고, 지금은 좀 내려갔지만, 한때는 기업가치가 100조 원에 육박했다는 사실은 한국 창업가들에게 엄청난 자신감을 준 큰 사건이었다. 그동안 항상 한국 시장이 작고,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상장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부정적인 이야기만 들었고, 한국인들도 항상 곧 망할 거라고 확신했던 쿠팡이라는 회사를, 김범석이라는 창업가가 이런 비관론자들에게 마치 fuck you를 날리듯 보기 좋게 성공시켰다.

배달의민족 엑싯도 한국 창업가들에게 큰 자신감을 줬다. 국내에서 학교를 다녔고, 국내에서만 일 한 경험이 있는 순수 토종 창업가 김봉진 대표가 만든 한국의 스타트업이 수조 원의 기업가치에 외국 회사에 인수됐을 때, 많은 한국의 창업가들이 “아, 유니콘은 외국에서 공부한 엄친아들만 만들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구나. 나도 더 열심히 하면 배달의민족보다 훨씬 더 큰 회사를 만들 수도 있겠다.”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할 수 있다는 아주 큰 자신감이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자신감은 창업가들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이들에게 투자했던 VC들에도 해당한다. 스타트업에 투자해서 큰돈을 버는 건 외국 VC에만 해당하는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국내 VC들도 투자한 회사들이 유니콘이 되고, 이들이 엑싯했을 때 엄청나게 큰돈을 벌면서, 앞으로 더욱더 많은 유니콘 회사를 발굴해서 투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 자신감으로 이들은 더 큰 펀드를 만들고, 더 큰 펀드로 더 많은 좋은 회사에 투자하고 있다.

이런 자신감들이 처음에는 작게 생기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서 생기고, 이게 계속 쌓이면서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커지는데, 이럴 때 대단한 일들이 벌어진다.

지금이 바로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앞으로 한국의 스타트업 시장은 더욱더 좋아질 거라고 확신한다.

Part 2에서도 자신감 관련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 싶다.

회사는 놀이터가 아니다

내가 약 5개월 전에 쓴 글 ‘개발자도 회사의 조직원이다’가 최근에 여기저기서 공유가 많이 된 것 같다. 뭐, 이곳은 내 개인적인 블로그라서 남 눈치 안 보고 그냥 내 생각을 끄적거리는데,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도 다르고, 특정 주제에 대한 생각도 달라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여러 가지 의견을 댓글로 남겨줬다.

댓글, 댓글의 대댓글, 그리고 여기에 대한 주인장의 댓글을 모두 합치면 50개가 넘는 코멘트가 있다. 이 중, 그래도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이야기가 가능한 분위기의 댓글에는 내가 최대한 진정성 있는 코멘트를 남겼는데, 그냥 개싸움이 될 것 같은 분위기의 댓글은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그런 코멘트에 대해서는 이번 포스팅을 통해서 아주 간략하게 내 생각을 종합적으로 다시 한번 공유하고 싶다.

일단, 이 글에 이렇게 격한 반응을 해주신 걸 보니, 한국에도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고, 성공에 목마른 개발자들이 많은 것 같아서 너무 다행이다. 이런 분들이 더 많아져야지 스타트업도 잘 되고, 경쟁력 있는 회사들이 많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사과하고 명확하게 하고 싶은 건, 내가 개발자들을 공격하려는 의도로 이전 글을 쓴 건 아니라는 점이다. 기획자이든 마케터이든 개발자이든, 모든 직원은 회사의 조직원인데 굳이 개발자를 꼭 집어서 글을 썼던 이유는 내가 아는 대부분의 조직에선 제품을 만들고 판매해서 돈을 버는 핵심 업무를 하는 그룹 군에서 돈을 버는 기능에 가장 관심이 적은 조직이 개발 조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관점이다.

몇 개의 댓글을 읽어보면, 회사가 잘 돼 봤자 사장만 돈 버는데 내가 굳이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다. 특히나 회사의 지분도 없는데. 이런 분들은 내 블로그에서 불평하지 말고, 소속된 회사의 사장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권장한다. 회사에 돈을 벌어 주는 일을 열심히 하는 직원에게 스톡옵션 또는, 그 어떤 보상도 하지 않는 사장이라면 굳이 이런 회사에 계속 다닐 필욘 없을 것 같다. 그냥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 만약 본인이 열심히 일하지 않거나 실력이 없어서 보상받을 수준이 안되면 그냥 불평하지 말고 그 회사 계속 다니면 된다. 어쨌든 이런 불평을 하면서도 계속 그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본인 자신의 실력을 의심해 봐야 한다.

개발자로서 기술적 모험이 제한된다면 굳이 스타트업에 갈 필요가 없다고 한 분도 있다. 이런 의견에 대한 내 생각 두 가지를 공유한다. 일단 본인이 기술적 모험을 하고 싶다면, 그리고 이 모험이 회사의 비즈니스 방향과 크게 상관없다면(=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면) 이걸 허락하는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 그런데 돈 버는 거와 상관없는 기술적 모험을 허락하는 내가 아는 곳들은 학교 아니면 연구소다. 회사는 아닐 것이다. 또 다른 생각은, 스타트업을 포함한 모든 회사는 개발자들이 기술적인 모험을 하는 놀이터가 아니다. 남의 돈으로 빨리 돈을 벌어서 압축적인 성장을 해야 하는 조직이다. 회사는 돈 받고 그냥 하루 종일 놀다 퇴근하는 곳이 아니다.

또한, 회사라는 조직은 분명히 회사라는 집단의 목표가 있고, 이를 달성해야 하지만, 어떤 분들이 주장하는 개인적인 발전도 동시에 균형 있게 가져가야 한다. 나도 이건 동의한다. 하지만, 우선순위를 매기자면 무조건 회사의 목표가 먼저이고, 이게 어느 정도 된 후에 회사의 목표를 같이 만드는 개인의 발전에 신경 써줄 수 있다. 회사의 목표는 무조건 돈 버는 게 돼야 하고, 여기에 먼저 동참할 수 없다면 개발자든 마케터든 회사에겐 부채가 되고, 부채는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하는 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떤 분들의 댓글을 보고 나는 정말로 이 사람들이 일하는 회사가 어딘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 회사 동료들이 너무 불쌍해서…

이 글 밑에 분명히 멋진 댓글도 많이 달릴 거지만, 거지 같은 댓글도 많이 올라올 것이다. 그 수준과 정도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필요하면 또 한 번 내 의견을 공유하는 포스팅을 올릴 계획이다. 그런데 키보드 뒤에서 인신공격적인 코멘트를 달거나, 너무 멍청한 코멘트를 다는 분들은 익명이 아니라 실명을 밝혀주시면 오히려 더 건설적인 이야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