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암호화폐 – 2018년 이후

굳이 여기서 말하지 않아도, 요새 크립토 시장은 아주 작살났다고 하는게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작년 초 암호화폐 시장이 뜨거웠을 때, 너도나도 이 시장으로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이게 불과 1년 전이라는 게 놀라울 정도로, 단시간 내에 이렇게 많은 up and down이 – 지난 12개월 동안은 거의 down 이었다 – 있었던 시장은 내 기억으로는 없었던 거 같다. 정말 개나 소나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사고팔기를 미친듯이 했고, 이는 블록체인 같은 건 들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는 일반인들한테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나랑 같은 VC 업계의 투자자 중, 100년에 한 번 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모든 걸 뒤로 하고 크립토에 올 인 한 분들도 꽤 많다. 창업가들도 기존에 하던 걸 다 멈추고, 회사의 방향을 ICO와 암호화폐로 돌린 분들도 상당히 많은 거로 알고 있다.

그동안 암호화폐 시총은 거의 90% 떨어진 거 같다. 그리고 크립토 시장은 현재 핵겨울에 꽁꽁 얼어있다. 이 와중에, 아직도 계속 블록체인과 크립토 분야를 열심히 공부하고, 투자하고, 개발하고 있는 분도 있지만, 많은 분이 “이게 아닌가 봐” 라는 생각을 하면서 원래 하던 분야로 돌아가거나, 다시 next big thing을 찾고 있는 거로 알고 있다. 실은, 나는 개인적으로는 더 추운 겨울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비트코인 가격인 $1,000 이하로 떨어져야지 정말로 이 분야를 믿고, 제대로 사업할 창업가와 투자자들을 주축으로 다시 한번 크립토의 전성기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암호화폐 시총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비트코인 가격이 $5,000 이하로 떨어지고, 또 $4,000 이하로 떨어지는 걸 목격하면서, 역시 시장을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더는 그 어떤 시장을 예측하는데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면 안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가 2018년도에 만났던 수많은 수학, 통계학, 공학, 경제학 박사들 중 암호화폐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하던 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수학적으로 비트코인은 절대로 $5,000 이하로 떨어질 수 없다는 말이었다. 실은, 워낙 머리도 좋고, 연구도 많이 하고, 나보다 시장을 잘 아는 분들이고, 이 예측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수학적 논리를 너무 자신 있게 제공해서,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리고 한동안은 이게 맞는 거 같았다. 5,000 달러 이하로 떨어질 거 같으면, 다시 반등했고, 이런 현상이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4,000달러 선이 무너지면서, 나한테 절대로 5,000달러 이하로 떨어질 수 없다고 했던 위의 많은 분이 이젠 암호화폐 분야를 떠나서 다른 걸 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너무 당연하지만, 나도 모르겠다 🙂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은 대략 이렇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이에 익숙지 않은 대중과 시장이 여기에 적응하려면, 저항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새로움의 정도가 클수록 이 저항은 더욱더 크다. 중앙화에 익숙했던 세상이, 지금까지 알고, 경험한 세상과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는 탈중앙화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려면 엄청난 저항을 지속적으로 극복해야 하고, 이 과정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저항이 너무 크면, 변화는 완전히 덮이고 소멸된다. 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도 이 새로운 노력은 소멸된다. 저항이 강해지거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 변화와 새로움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믿음 또한 약해지고, 이 믿음의 네트워크가 소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요새 보고 느끼는 암호화폐 시장 바닥은 아직도 활발하다. 변화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의 의지는 매우 강하다. 이 ‘의지’라는 게 무슨 독립운동하는 사람들의 그런 의지라기보단, 기술의 의지라고 하는 게 맞을 거 같다. 아직 블록체인은 어리고 갈 길이 멀다. 마치 전화선을 이용해서 인터넷에 접속해야 했던 다이얼업 모뎀 시대와 비슷한 거 같다. 아직 속도, 확장성, 변동성, 개발자 네트워크, 개발자 도구 등이 턱없이 부족하고 미약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이런 문제들이 해결된다면 분명히 세상이 바뀔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많은 똑똑한 개발자들이 시간 날 때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연구하고, 테스팅하면서 아직 구체화 된 건 없지만, 지속적인 개선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다 보면 언젠가는 블록체인계의 오라클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가 나오고, 그 이후에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회사가 탄생하지 않을까 싶다.

실은, 우린 코빗에 투자하면서 2013년도에 비트코인과 암호화폐에 눈을 뜨게 됐고, 이는 한국에서는 꽤 이른 편이었지만, 나는 한 번도 암호화폐에 모든 걸 올인 한 적은 없다. 대단한 기술이고, 앞으로 엄청나게 크게 될 거라고 믿고 있지만, 그렇다고 블록체인이 아닌 다른 분야가 없어지거나, 시장이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장을 정말 믿어서 암호화폐에 올인한 창업가와 투자자들이 조금만 더 참고 계속 이 게임을 했으면 한다. 투자가 되어야지만, 좋은 개발자들이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은, 시장이 전반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투자하기에는 이만큼 좋은 시점은 없다고 생각한다.

올라가면 다시 내려오는 게 시장이지만,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는 것도 시장인데, 위에서 말한 대로 이걸 우리가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계속 이 시장에 있으면, 시장이 내려갈 때는 같이 추락하지만, 시장이 올라갈 때는 그만큼 빨리 같이 올라갈 수 있다.

State of Tokens

Fred Wilson의 블로그에 소개된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William Mougayar의 ‘State of Tokens‘라는 자료를 봤다. 36장짜리 슬라이드로 길진 않아서 20분 만에 봤지만, 이후 한 시간 정도 생각을 했다. 요새 너무 혼란스러운 크립토, 블록체인, 토큰 분야에 몇 안 되는 본질주의자라고 항상 생각했는데, 이 슬라이드에는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좋은 내용이 많다고 생각한다. 안 읽어 보신 분들한테는 추천한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21장이다. 토큰이 정말로 유용한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음 3개의 질문을 해보라고 한다:
1/ 이 토큰이 없으면 비즈니스가 어떻게 될까?(=토큰이 없어도 상관없는 비즈니스가 아닌가?)
2/ 블록체인이 왜 필요한가?
3/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게, 블록체인이 어떻게 가능케 하는가?

안타깝지만, 내가 아는 ICO와 토큰 중 이 3가지 질문의 테스트를 통과하는 게 하나도 없다. 2가지 질문을 통과하는 토큰은 한 5% 정도 되는 거 같다.

블록체인이 아니라 비즈니스다

블록체인과 크립토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도, 한 번도 안 들어본 사람은 한국에 없을 정도로 요새 이 분야가 뜨고 있다. 나도 비트코인, 암호화폐, 블록체인, 그리고 ICO에 대해서 많이 공부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관련 분들과 자주 이야기를 한다. 이런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하듯, 이번에 프라이머 13기에 지원한 많은 회사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관련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90년도 후반 인터넷이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퍼지고 있을 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회사 이름 앞에 ‘e’만 붙이고 뒤에 닷컴만 붙이면 눈먼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실제로 이렇게 해서 투자를 받고 망한 회사가 엄청나게 많았고, 이후 닷컴 버블이 무너지면서 1차 인터넷 붐이 꺼졌다. 물론, 인터넷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혁신과 성장을 반복하면서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인프라가 되었다. 요새 블록체인을 보면 비슷한 상황이 보인다. 너도나도 “블록체인 기반의 xxx”를 외치면서 투자자들에게 피칭을 하고 있다. 이게 참 재미있는 게, 정말 재미없어 보이는 스타트업이고, 하나도 섹시하지 않은 비즈니스모델인데도, 이걸 블록체인 기반으로 만들겠다고 하면 갑자기 흥미로워지는 걸 보면, 나도 눈먼 투자자는 아닌지 의심이 간다. 그냥 데이터베이스 위에서 만들면 재미없고, 블록체인 위에서 구현하면 재미있어 지는 게, 참 재미있다.

어쨌든, 나는 블록체인은 많은 걸 변화할 거라고 생각하고, 정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블랙스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모든 게 자연스럽게 블록체인 위에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는 비즈니스를 설명할 때 “인터넷 기반의 비즈니스”라고 꼭 설명을 해야 했다. 그런데 요새는 당연히 모든 비즈니스가 인터넷 기반이기 때문에, 굳이 “우리 비즈니스는 인터넷 기반으로 돌아갑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하다. 블록체인도 마찬가지 일 거 같다. 한 5년~10년 후에는 모든 비즈니스가 기본적으로 블록체인을 활용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블록체인 기반의 비즈니스”라고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직 decentralization보다는 centralization이 더 쉽지만, 미래에는 decentralization이 제대로 구현되어 모든 비즈니스는 분산 인프라 기반으로 돌아갈 것이다.

자, 모든 게 자연스럽게 블록체인 위에 올라간다면, 도대체 어떤 비즈니스가 정말로 이길 수 있을까? 우리 같은 투자자는 블록체인이 아니라 뭘 봐야 할까? 아마도 다시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결국엔 좋은 팀, 좋은 제품, 좋은 시장이 이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요새 “블록체인 기반의 비즈니스”를 볼 때 아예 ‘블록체인’ 자체를 제외하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도 좋은 비즈니스 같다면, 이런 비즈니스에 투자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신세계

1999년, 나는 실리콘밸리의 중심에 있는 스탠포드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당시엔 몰랐지만, 몇 년 후에 1999년~2000년을 뒤돌아봤을 때, 인터넷 태동기에는 엄청난 기회가 있었고, 이를 포착한 사람들은 일생일대의 부를 축적했고, 이보다 더 의미 있는, 세상을 바꾼 혁신을 일으켰다. 후회되지만, 나는 변화의 중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제대로 보지 못 했고, 기회를 실행으로 옮기지 못했다. 1999년은 인터넷이 이제 메인스트림으로 자리 잡을 때인데, 당시에는 명확한 정보의 격차(=digital divide)가 존재했다. 즉, 세상은 ‘인터넷을 아는 사람’과 ‘인터넷을 모르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인터넷을 모르는 사람은 이거는 나랑은 전혀 상관없고, 내 인생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니까 그냥 신경 쓰지 말자 하면서 평소 하던 대로 살았다. 절대다수가 속했던 이쪽 사람들은 인터넷이 가져올 미래를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터넷을 아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삶이 어떻게 바뀔지는 몰랐지만, 뭔가 엄청난 변화가 오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고, 계속 관심을 가졌다. 이들은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을 열어놓고, 꾸준히 공부하면서 업계 종사자들과의 관계를 만들어갔다. 이렇게 하면서, 인터넷 혁명이라는 파도를 가장 앞에서 탈 수 있었고, 이들은 인터넷을 모르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멀리 갔다. 상상하지 못할 속도로 전진하면서 엄청난 부를 창출했고, 세상을 바꾸는 움직임에 크게 기여했다. 나도 가끔 후회한다. 변화의 중심에, 아주 적절한 시기에 있었는데, 왜 조금 더 과감하게 실행하지 못했는지.

2018년 현재, 왠지 모르게 1999년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감지하고 있다. 이번에는 ‘가상화폐(토큰)’와 ‘블록체인’ 이다. 세상은 ‘가상화폐(토큰)/블록체인을 아는 사람’과 ‘가상화폐/블록체인을 모르는 사람’으로 나뉘는 거 같다. 인터넷이 메인스트림으로 들어오기 전에 보이던 정보의 격차가 이 시장에도 확연하게 보인다. 다만, 이번에는 모르는 사람들이 그냥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가상화폐를 혐오하고 있는 수준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이 정보의 격차는 더욱더 큰 거 같다. 얼마 전의 JTBC 비트코인 토론 이후, 내 소셜 타임라인은 비트코인이 가상화폐냐 아니냐에 대한 지인들의 의견과 포스팅으로 도배가 되고 있고, 유시민이 맞냐 김진화가 맞냐에 대한 영양가 없는 분석을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고 있다(솔직히 나는 이 토론 보다가 양쪽 다 짜증 나서 중간에 TV 꺼버렸다).

이렇게 비전문가들이 너도나도 비트코인이 화폐냐 아니냐에 대해서 논쟁을 벌이는 거 자체가 완전 시간 낭비인 거 같다. 실은, 이 분야에 대해서는 모두가 현재는 비전문가일 수밖에 없다. 비트코인이 어떻게 될지, 이게 사기인지, 혁명인지, 그리고 이로 인해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는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실은 99년도에도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냐, 그냥 이러다 마냐에 대한 끝없는 논쟁이 있었다. 그 이전으로 돌아가면 PC가 세상을 바꾸냐, 그냥 비싼 장난감이냐에 대한 끝없는 논쟁이 있던 것처럼.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어쩌면 큰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이런 새로운 것에 관해 관심을 두면서 계속 공부하고, 이로 인해 어떤 신세계가 올지에 대한 상상을 계속 한 사람들이, 정말로 큰 변화가 왔을 때 돈도 많이 벌고, 혁신을 주도했다. 비트코인이 화폐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실은 개인적으로는 화폐가 될 가능성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될진 아무도 모른다. 또한, 비트코인이 실패한 실험으로 끝나더라도, 여기서 파생된 다른 토큰이나 블록체인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이 모든 게 수년 후에 “두려움, 불확실성, 의구심 때문에 발생한 그런 멍청한 사기가 있었지”라면서 회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비트코인이 가져올 수 있는 신세계에 대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미 비트코인/블록체인 개발자 네트워크는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과거에 비해 엄청난 속도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규제 때문에 이런 실험조차 못 하고 있고, 유능한 인재들은 이제 한국을 떠나 스위스나 에스토니아 같은 곳으로 나가고 있는데, 이건 그 누구도 바라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은, 내 주변에는 비트코인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조금 더 확대해서 생각해보면, 우리같이 비트코인을 아는 사람들은 전 세계 인구의 극소수일 것이다. 인터넷을 아는 사람들이 그랬듯이, 이렇게 일방적인 정보의 비대칭 우위를 가진 사람들이 혁신을 일으키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트코인을 책으로만 배운 사람들이 비트코인이 화폐냐 아니냐를 논쟁하고 있을 때, 우리 같은 사람들은 더 파고 들어가야 한다. 화폐가 되면 화폐인 거고, 아니면 아닌 거다. 그런데 이건 그렇게 중요하진 않다. 이로 인해 펼쳐질 신세계를 상상하고, 그려보고, 준비하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싶다.

지하경제의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사건 중 하나가 2013년 FBI가 불법 마켓플레이스 Silk Road를 검거한 것이다. 지하경제에서 불법거래를 위해 비트코인이 사용된다는 보도가 나가면서 이 기술과 가상화폐에 대해서 일반인들도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비트코인 외에 다양한 가상화폐가 생기면서, 이제는 범죄자들이 비트코인 보다는 다른 알트코인을 선호한다는 기사를 최근에 읽었다.

많은 분이 비트코인의 거래 내역은 추적이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는데, 엄밀히 따져보면, 어느 정도 추적은 가능하다. 일단 어떤 주소에서 거래가 시작되고, 어디로 가는지, 그 거래 자체는 블록체인에 다 기록되기 때문에, 이걸 잘 활용해서 특정 주소들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자금 흐름의 패턴을 볼 수 있고, 운 좋으면 범죄자를 검거할 수도 있다. 더 쉬운 예를 들자면, 내가 어떤 이커머스 사이트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그 가게의 주소와 내가 물건을 받을 주소는 블록체인에 공개가 되지만, 물건을 받는 주소에 사는 사람의 이름은 모르는 것이다.

비트코인의 이러한 취약점? 때문에 모네로나 Zcash를 지하경제에서 선호한다고 한다. 모네로(XMR)는 ring signature라는 기술을 이용해서, 보내고 받는 사람들의 주소를 혼합해서 암호화하기 때문에, 실제로 보내고 받는 주소를 파악하기 힘들다. Zcash(ZEC)도 주소를 암호화하기 때문에 주소를 파악하기 힘들다. 물론, 모네로나 지캐시의 개발자들이 의도적으로 범죄를 위한 화폐를 개발하기 시작한 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 프라이버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뭘 구매했는지 굳이 다른 사람한테 공개하기를 싫어하는데, 이런 프라이버시를 위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실은, 앞으로 블록체인 기술이 더 발전하고, 더 좋은 기술이 적용된 가상화폐가 생길수록, 지하경제에서 활동하는 범죄자들의 가상화폐 선택의 폭은 넓어질 것이다. 이걸 어떻게 효과적으로 방지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전체 가상화폐 시장의 극소수인 지하경제의 부정적인 면만을 보고 가상화폐 거래를 전면금지 하는 건 어리석다(금지할 수도 없다). 이건 마치 범죄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선호하는 게 현금거래라고 해서, 현금거래를 전면금지 하는 거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