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랩

*이 글은 우리 투자사의 홍보성 내용을 포함합니다. 관심 없거나, 이런 홍보성 내용이 싫으면 그냥 안 읽으면 됩니다.

우리 사무실이 위치한 삼성역엔 식당이 엄청 많다. 점심을 항상 밖에 나가서 먹진 않지만, 나가서 먹는다면 도보로 갈 수 있는 식당이 1,500개는 충분히 되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다가 배달 음식까지 포함하면, 식당과 메뉴의 선택지는 정말 많아진다. 그런데도 나를 포함한, 삼성역에서 근무하는 모든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오늘 뭐 먹지?”라는 고민을 한다. 아마도 대한민국 모든 직장인들이 공통으로 매일 같은 질문을 할 것이고, 이건 외국의 직장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렇게 선택할 옵션이 넘쳐흐르는데도, “오늘 점심 뭐 먹지?” 고민은 한국의 직장인들이 수십 년 동안 했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으로 생각해서, 우린 계속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았었다. 완벽한 솔루션은 아니었지만, 플레이팅이라는 회사에 여러 번 투자하면서 이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길 바랬지만, 플레이팅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서, 고객들에게 배달하는 사업은 돈 버는 게 정말 어렵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보통 이런 경험을 하면, 많은 분들이 이런 사업은 어렵고 우리가 투자한 회사가 망했기 때문에 이와 비슷한 분야나 사업에는 다시 투자하지 않는다. 우린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는 잘 안됐지만, 아직도 오늘 뭘 먹을지라는 문제는 존재하고, 오히려 물가가 상승하면서 이 문제는 더욱더 심각하고 커지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 다른 방식으로 이 시장에 접근해서 성공한다면 엄청나게 큰 성공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른 창업가들을 만났지만, 항상 2% 부족한 점들이 보였고, 이미 우리가 F&B 분야에 투자를 좀 많이 하면서 돈 버는 게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걸 많이 경험해서 그런지, 조금 더 보수적으로 검토하다 보니, 선뜻 투자하진 못했다. 그러다 런치랩을 검토하게 됐고, 비즈니스 모델도 꽤 단단하고, 창업가도 용병형 성향이 강해서 몇 달 전에 런치랩의 첫 기관투자자가 됐다.

런치랩의 사업은 간단하다. 가정식, 샐러위치(샐러드+샌드위치), 샐러드밀 중 하나만 고르면, 매일 회사로 점심을 배달해 주고, 먹은 후에는 음식쓰레기까지 포함한 남은 모든 걸 다시 수거해간다. 메뉴는 회사에서 정하기 때문에, 별로 안 좋아하는 식단이 걸릴 수도 있지만, 오히려 선택 장애를 없애주기 때문에 많은 바쁜 직장인들이 훨씬 더 좋아한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메뉴를 단순화하는 게 운영 효율 면에서도 훨씬 비용이 덜 든다. 참고로, 가정식 도시락은 밥과 국을 따뜻한 상태로 그대로 배달해 줘서 가정식과 비슷한 분위기의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다.

원래 런치랩의 주 고객층은 대기업보단 사내 카페테리아나 식당이 없는 직원 50명 이하의 회사였는데, 요샌 대기업도 종종 문의가 들어오면서 런치랩의 점심 서비스를 그룹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회사 규모와 무관하게 인원수(4~5명), 이용주기(주 2회 이상만) 등 기본 요건만 맞으면 누구든 런치랩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에서 문의하거나, 바로 점심 체험하기를 신청해 보면 된다. 이 블로그를 보고 알게 됐다고 하면, 할인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금 더 잘 해줄 거다.

슈퍼마리오 효과

얼마 전에 팟캐스트를 듣다가 ‘슈퍼마리오 효과’에 대해서 알게 됐다. 꽤 흥미로운 컨셉인데, 여기서 너무 자세히 이야기는 하지 않을 테니, 궁금한 분은 유튜브에서 검색해 보면 된다. 슈퍼마리오류의 미로 탈출 게임을 한 두 실험군이 있었는데, 한 그룹엔 실패하면 “잘 안됐네요. 다시 시도해 보세요.”라는 메시지가 보였고, 다른 그룹엔 “방금 5점을 잃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보였다. 어떤 그룹이 결국엔 게임을 더 잘했을까?

심리학적으론, 인간은 보상에 대한 갈망보단,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에 점수를 잃었다는 메시지를 본 그룹이 점수에 대한 손실과 실패에 대한 공포 때문에 결국엔 게임을 더 잘했을 거라고 난 생각했는데, 결과는 그 반대였다. “다시 시도해 보세요.”라는 메시지를 본 그룹이 월등하게 더 잘했는데, 간단하게 정리하면 실패나 실수보다 목표에 집중하는 게 이기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이다.

실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말이 되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슈퍼마리오 효과를 조금 더 파고 들어가 보면, 더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도대체 사람의 신체와 뇌에서는 어떤 반응이 일어나길래 성공의 확률이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상승할까? 해답은 ‘반복’이라고 한다. 위의 예에서 점수를 잃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점수를 잃을까 봐 두려워서 게임을 여러 번 반복하진 않고, 심지어 중도 포기하기도 하지만, “다시 시도해 보세요.”라는 메시지를 본 그룹은 계속 반복하고, 여러 번 반복하면 할수록 이길 확률은 올라간다고 한다. 이 현상을 조금 더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반복을 더 많이 할수록, 더 많은 실수를 하고, 더 많은 실수를 할수록 몸이 알아서 그 실수의 원인을 찾게 되고, 그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서 뇌가 학습과 변경을 위해서 신경 회로를 변화시키고 재구성한다고 한다.(이런 뇌의 현상을 전문 용어로 neuroplasticity라고 한다).

결국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가장 짧은 시간 동안 가장 많은 반복을 하는 것이다. 반복의 횟수가 핵심이다. 운동을 새로 배운다면, 가장 짧은 시간 동안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위에서 말한 현상이 작동해서 더 빨리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이론에 의하면, 우리가 잘 아는 ‘1만 시간의 법칙’도 실은 반만 맞는 법칙이다.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1만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1만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반복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는지가 학습의 핵심이라는 말이다.

내가 왜 이 슈퍼마리오 효과에 관심을 더 갖게 됐냐 하면,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반복을 하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실수를 하면서 학습하고 성장하는 이 과정이 마치 창업가들이 제품을 개발하고 초기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장 빠르고, 가장 효율적으로 초기 제품을 개발하는 방법은 가설을 세우고, 지속적인 테스팅을 통해 이 가설들을 검증하면서 틀린 가설은 버리고, 맞는 가설은 계속 더 뾰족하게 발전시키는 것이다. 가설과 테스팅의 핵심은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가장 많은 product iteration과 testing을 반복하는 것인데, 위에서 말한 이런 과정 중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제품 개발 과정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반복의 횟수를 늘리면, 더 많은 틀린 가설을 검증할 수 있고(=실수), 조직은 이 틀린 가설의 원인을 찾기 위해 매우 열린 자세로 학습하고, 이 과정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시장이 원하는 제품으로 진화할 수 있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번에 모든 걸 완벽하게 끝내기 보단 – 이렇게 할 수가 없다 – 완벽함 보단 실행에 무게를 실으면서 지속적인 반복을 통해서 다양한 실수와 실패를 하고, 이를 통해서 성장하는 창업가가 정말 단단한 사업가가 된다. 이들은 실패에 집중하지 않고, 성공하겠다는 그 목표에 집중하고, 목표에 달성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행동한다. 비록, 그 행동 중 대부분이 틀리더라도. 초기 스타트업에서 창업가의 성장은 곧 조직의 성장과 맞물려 있는데, 내가 그동안 직접 보고 경험했던 이 스타트업의 현장이 팟캐스트에서 슈퍼마리오 현상에 대해서 들으면서 계속 생각났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무시하고, 실패보단 목표에 집중하고, 지속적인 반복과 배움 자체에 집중하는 태도를 의식적으로 계속 연습하다 보면 더 많은 성공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선교사와 용병

창업가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요새 내가 “이분은 이렇다. 저분은 저렇다.”라고 구분할 때 자주 사용하는 비유가 missionary와 mercenary 창업가다. 우리말로 딱 떨어지는 번역은 없지만, 편의를 위해서 나는 missionary 파운더를 사명형 창업가라고 하고, mercenary 파운더를 용병형 창업가라고 한다. 사명형 창업가는 어떤 깊은 목적이나 사명감 때문에 창업했고, 사업을 하면서도 결국 이 사명감을 실천하는 것에 집중한다. 용병형 창업가는 이 반대의 의미인데 단기적인 수익이나 큰 엑싯을 꿈꾸면서 창업했고, 사업을 하면서도 계속 돈에 집중한다.

쉽게 말하면, 사명형 창업가는 큰 비전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고, 용병형 창업가는 세상을 바꾸는 건 잘 모르겠고, 그냥 돈을 엄청 많이 벌고 싶어 한다. 실은, 막상 이 두 유형의 창업가들을 만나보면, 이런 사전적인 의미같이 흑백으로 이분들을 구분하기보단, 어떤 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냐,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즉, 사명형 창업가도 엑싯을 하고 싶고 돈도 벌고 싶어 하지만, 미션/비전 또는 돈 중 하나만 선택하자면 전자이고, 용병형 창업가도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 미션과 비전이 있지만, 하나만 선택하자면 돈을 선택한다.

나한테 굳이 어떤 유형의 창업가를 선호하는지 물어본다면 나는 항상 용병형 창업가를 조금 더 선호했다고 할 수 있고, 최근 5년간 이런 내 선택은 더욱더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용병들 쪽으로 기울어졌다. 많은 투자자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에 투자하고, 물질적인 욕심보단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창업가들을 선호하는데, 나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미션을 주장하는 창업가보단, 그냥 미팅에서 “어렸을 때 가난해서, 돈을 정말 많이 벌고 싶다.”라고 솔직히 말하는 창업가들을 좋아했다. 돈 벌기 위해서 사업하는 건 어떤 사람들이 보기엔 깊이가 없고 얕아 보일 수 있지만, 지금까지 내 경험에 의하면 돈은 사업의 성공을 위한 최고의 동기 부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보고 느낀, 이 두 부류 창업가들의 또 다른 점은 바로 이들의 진화의 과정이다. 나는 오히려 용병형 창업가가 시간이 갈수록 사명형 창업가가 되는 걸 봤는데, 사명형 창업가는 계속 더 사명형 창업가가 되는 걸 경험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세상을 바꾸는 것과 미션 따위는 전혀 상관없이 그냥 단순히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창업한 분들이 시간이 흐르고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이들에겐 아직도 돈이 매우 중요하지만, 뭔가 세상에 좋은 기여를 하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돈이 생기면 마음의 여유가 조금 더 생기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반대로, 사명형 창업가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 세상을 바꾸겠다는 미션에 대해 더 집착하고 더 깊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아는 많은 하드코어 사명형 창업가들은 이런 강한 개인적인 성향을 주장하면서 돈을 버는 것엔 관심을 덜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용병형 창업가들은 거창한 전략이나 로켓 성장하는 미래를 약속하기보단, 그냥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매출을 만들고 사업을 잘 돌아가게 만드는 데 집중한다. 대부분 학벌이나 경험이 그다지 대단하진 않지만, 무조건 돈을 벌고, 사업 놀이가 아닌, 진짜로 사업을 하겠다는 그릿(grit)이 다른 창업가들보단 강한데, 얼마나 강한가 하면 이런 용병 정신이 실제로 눈빛에서 보인다.

나는 미셔너리인가, 아니면 머서너리인가? 돈 버는 사업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사업 놀이를 하고 있는가? 모두 한번 생각해 보자.

모든 스타트업이 어른을 필요로 하는가?

우리는 투자할 때 창업가의 다양한 면을 관찰한 후에, 이분에게 투자하고 오랫동안 같이 한 방향을 보고 갈지 결정한다.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는 거라서, 수학같이 딱 떨어지는 공식은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다양한 우리만의 데이터와 각자에게 축적된 비정형화 된 휴먼 지능을 잘 활용해서 결정하려고 하는데, 아주 크게 보면 제품, 펀딩, 채용에 대한 창업가의 생각과 능력을 판단해 본다.

이 중요한 세 가지 중 하나인 채용과 관련된 이야기다. 그동안 나는 채용에 대해서 수많은 글을 올렸고, 스타트업 대표는 시간의 대부분을 좋은 사람을 채용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습관처럼 하고 다닐 정도로 채용은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모든 회사에 제일 중요한 기둥이다. 스타트업이 시작할 땐, 좋은 제품이 있어야 하고, 이 좋은 제품을 좋은 사업으로 만들기 위해선 펀딩이 중요하고, 이후에 정말 큰 회사로 성장하기 위해선 이 제품과 돈을 제대로 사용해서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즉, 스타트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기둥이 채용이다.

나도 과거에 항상 강조했던 점이 회사가 어느 정도 규모에 도달하면, 조직이 제대로 된 회사같이 돌아갈 수 있게 어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어느 정도 규모”란, 내 기준으론, 제품은 이제 돈을 받고 팔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고, 이 제품으로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 비즈니스 모델도 어느 정도 방향이 잡힌 단계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어른”은, 나이가 많은 어른이라기보단, 큰 기업에서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제품을 직접 만든 경험은 없지만 남이 만든 제품을 잘 판매할 수 있는 전략을 만들어보고 이를 실행해 본 경험이 있는, 그리고 작은 조직이 큰 조직으로 성장하는 걸 직접 그 조직의 핵심 멤버로서 보고, 경험하고, 본인이 이 성장에 어느 정도 관여를 했던, 그런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이 정도 경험을 했다면 나이가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꼬꼬마 때 초기 투자한 스타트업이 50명 이상의 조직으로 성장하고, 수백억 원의 매출을 만들면, 주변 지인 중 큰 조직에서 어느 정도의 경험을 쌓은 ‘어른’을 찾았다. 그리고 이런 분을 채용해야지만, 동아리 같은 분위기의 회사가 진짜 회사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내 생각에 동의하는 창업가분들도 있었지만,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었는데,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동의하지 않는 분들에게도 가능하면 외부에서 경험 있는 분들을 경영진으로 영입하라고 계속 강요했다. 이제 회사는 제대로 된 전략이 필요하고, 투자자나 외부 파트너와 이야기할 때 더 professional 하게 대응할 수 있는 분들이 필요하다는 잔소리를 계속했다. 실은, 당시엔 나도 그렇게 하는 것만이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실제로 우리 투자사나 내가 아는 꽤 많은 스타트업이 이렇게 경험이 많은 어른을 회사로 영입했다. 이들이 받던 연봉이 있기 때문에 회사에 오랫동안 일 하면서 실제로 회사의 기반을 탄탄하게 만들었던 다른 멤버분들보다 더 비싼 연봉을 주고 영입해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게 능력 있는 경험자를 영입한 회사들 대부분이 다시 이분들을 해고하거나, 본인들이 알아서 회사를 나갔다. 이유는 저조한 실적과 적응 실패였다. 처음에 나는 이게 이해가 안 갔다. 외부에서 영입한 어른 중 몇 명은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이었고, 과거 직장에서 그 능력도 인정받던 분들이었다. 저렇게 일을 잘하고 큰 조직을 관리하던 분들이 왜 더 작은 조직에서 실적이 안 나오고, 더 자유롭고 능력 위주로 돌아가는 스타트업 문화에 적응하지 못할까?

이들은 남이 잘 차려 놓은 밥상에 은수저를 갖고 와서 먹을 준 알지만, 그 밥상을 직접 차려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퍼포먼스의 차이가 나고, 각자 먹을 걸 직접 준비하는 스타트업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 번도 본인 손으로 밥상을 차려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기존 인력과 문화 충돌이 나면서, 전 직장에서 날아다니던 사람들이 갑자기 기어다니는 것이다. 물론, 모든 경력자들이 이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기업 임원 하다가 작은 회사로 와서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잘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분들은 내 경험에 의하면 아웃라이어다. 내가 전에 이 블로그에도 썼지만,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이 큰 회사에서 100명 이상의 영업 조직을 관리하면서 분기마다 목표를 초과 달성 하던 ‘영업의 신’이 왜 작은 스타트업으로 오면 소프트웨어를 한 카피도 못 팔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은 영업이 필요가 없는 제품이지만, 작은 스타트업의 듣보잡 제품은 정말로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남이 차린 밥상에서 잘 먹을 준 알지만, 그 밥상을 본인이 직접 못 차리는 비유와 비슷한 상황이다.

이제 나는 우리 투자사에서 학벌도 좋고, 경험도 많은 외부 인력을 경영진으로 영입한다고 하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한다. 3억 원의 연봉을 받는 새로운 분과 이미 회사에서 잘하고 있는 3,000만 원 연봉을 받는 신입 사원의 능력이 정말로 2억 7,000만 원의 차이가 날까? 물론, 실제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는데 한 표를 던져본다.

좋은 학벌, 좋은 직장 경험, 크고 풍요로운 조직에서의 눈부신 성과, 그리고 좋은 말발. 모든 스타트업이 이런 어른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외부에서 이런 분들을 영입하기 전에, 우리 회사 안에서 직접 밥상을 차릴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는 것을 권장한다.

더 쉽게 만들어야 한다

얼마 전에 How I Built This에서 PayPal 마피아 중 한 명이고, 실제로 시스템을 설계하고 만든 CTO Max Levchin의 2022년도 인터뷰를 다시 들었다. 2022년도에 이 팟캐스트를 정말 재미있게 들었고, 당시 내 생각과 회고를 포스팅했었는데, 이번에 다시 들어보니 여전히 재미있었지만, 몇 가지 내용은 새롭기까지 했다. 아마도 그때의 내 지식, 경험과 3년 후 지금의 내 지식, 경험은 다르므로, 같은 팟캐스트를 들어도 내 지식과 경험의 수준에 따라서 그 내용이 다르게 와닿았던 것 같다.

나도 오래전에 맥스와 교류했던 경험이 있는데, 정말 똑똑한 엔지니어지만, 비즈니스 감각도 아주 뛰어난 창업가로 기억한다. 이 인터뷰에서 맥스는 페이팔을 만들 때 가장 고민했던 점은 이 서비스를 더 쉽게 만들어야 했던 부분이라고 한다. 당시에 페이팔 말고도 인터넷으로 돈을 보낼 수 있는 다른 제품도 있었는데, 시장에서 도입률은 매우 낮았다. 그 이유는 뒷단의 엔지니어링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 복잡한 뒷단의 엔지니어링이 그대로 앞단에도 적용돼서, 남에게 내 돈을 보내는 준비만 하다가 사용자가 지쳐서 서비스 이탈이 너무 자주 일어났다고 한다.

페이팔이 없어도 사람들은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결제를 이미 잘하고 있었다. 물론, 더 쉽게 만들 수 있었지만, 특별하게 고장 나지 않은 프로세스와 문화를 바꾸기 위해선, 페이팔은 무조건 더 쉽게 설계되고, UI와 UX가 딱 보면 직관적이어야 했다. 오프라인에서 무언가 사기 위해선 주머니나 백 안의 지갑을 꺼내고, 이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서 지급하면 된다. 카드도 마찬가지다.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고, 이걸 그냥 긁으면 된다.(요샌 긁지 않고 갖다 대기만 하면 되는데, 당시엔 NFC 기술이 약했다). 온라인 서비스로 따지면 두 번의 클릭으로 결제가 가능한 것인데, 페이팔이 엄청나게 커지기 위해선, 현재의 결제 방식보다 더 쉬워야 한다는 건 페이팔 초기 멤버 모두가 동의했던 몇 안 되는 내용 중 하나였다.

이 부분에서 맥스의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이 돋보인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아는 많은 뛰어난 개발자들은 남들이 잘 못 하는 걸 하고 싶어 한다. 이러다 보면 더 좋은 제품엔 더 복잡한 기술이 들어가고, 더 복잡한 엔지니어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이게 어쩌면 맞을 수도 있지만, 실은 가장 뛰어난 기술과 복잡한 엔지니어링으로 만든 제품이 가장 좋은 제품이 되기 위해서는 고객의 입장에서 가장 사용하기 쉬운 제품이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말하는 UI/UX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하고, 이 건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정말 중요하다.

페이팔이 그 전형적인 사례였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 돈을 보내는데, 그 사람의 이메일만 입력하면 그에게 돈이 간다는 건 당시에 충격적인 센세이션이었다. 돈을 보내고도 정말로 내 돈이 갔는지 약간 의심할 정도로 UI/UX를 쉽게 만들었다. 하지만, 뒷단에는 그 시대 최고의 암호화 기술이 이 복잡한 돈의 움직임을 매끄럽게 만들어줬다.

그 어떤 서비스를 만들더라도 – 이건 B2C든 B2B든 상관없다 – 무조건 쉽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쉬운 서비스의 정의는 주로 고객과의 최종 접점인 UI와 UX에서 결정된다. 사용하기 쉬우면, 쉽고 좋은 서비스다. 꽤 많은 분들이 아직도 사용하기 쉬운 제품은 기술력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착각이다. 가장 기술력이 뛰어난 제품은 가장 사용하기 쉬운 제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