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거나 잘하기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게 대한민국 정부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부인할 수 없는 fact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도 모태펀드의 돈을 받았고, 내가 아는 대부분의 한국 VC는 금액은 차이 나지만, 정부의 출자를 받아서 이 돈을 민간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정부에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우리 같은 민간 조직보단 느리고, 제약 사항이 있어서 명확한 한계가 있지만, 이렇게 스타트업 생태계를 위해서 노력하는 대통령과 그 밑에 있는 분들한테는 비난보단 감사와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래도 항상 아쉬운 부분은 있는데, 내가 그동안 정부 관계자분들과 이야기하고, 같이 일하면서 항상 조언하고, 가끔은 화도 냈던 몇 가지 주제가 있었는데, 최근 수개월 동안 정부의 여러 부처에서 발표하고 시행한 많은 정책과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직은 갈 길도 멀고, 해야 할 일도 많다는 걸 느끼면서 몇 자 적어본다.

일하면서 누구한테나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역할과 분수를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스타트업 생태계와 함께 일 하면서, 항상 지켜야 하는 제1의 원칙이 있는데, 그건 바로 정부는 leader가 아니라 feeder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더는 말 그대로 스타트업 생태계를 앞장서서 이끄는 사람/기관인데, 이 역할은 항상 현재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창업가 또는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맡아야 한다. 피더는 리더들이 생태계를 잘 운영할 수 있도록 옆에서 여러 가지 도움과 지원을 제공(=feed)해주는 사람이다. 주로 정부, 대학, 기관, 대기업 등이 이 피더 역할을 해야 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벤처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한데, 한국에서 앞으로 몇 개의 유니콘을 만들겠다는 발표를 할 때마다 나는 정부가 피더가 아니라 리더를 자칭하면서, 분수를 잊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정부는 리더가 절대로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리더들의 가장 큰 특징이자 필수조건은 ‘입으로 하는 리딩’이 아닌 ‘행동으로 하는 리딩’인데, 정부는 태생적으로 행동이나 실행과는 거리가 조금 멀 수밖에 없다.

몇 년 전보단 훨씬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정부에서 발표하는 창업 지원정책은 이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보면 스타트업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 걸 느낀다. 담당자들이 스타트업에 대해서 너무 몰라서 발생하는 현상인데, 미안하지만, 이 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혀 발전이 없는 부분이다. 스타트업 경험을 못 한 정부 담당자들은 – 그리고 대부분 스타트업 경험이 없다 – 사업을 시작하고, 미친 듯이 정신적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를 참는다는 게 뭔지 잘 모른다. 책으로만 습득하고, 본질을 파악하지 못 하는 주변 지인을 통해서 들은 얕은 지식을 정책에 적용하려고 하니까 이런 일이 항상 발생한다. 이건 어떻게 개선의 여지가 별로 보이지 않는 부분이긴 하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이게 우리한테 가장 필요한 거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장기적인 꾸준함과 인내를 갖고 정책과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킬 수 있는 배짱과 끈기를 가진 공무원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국가의 정책이란 것 자체가 긴 호흡을 갖지 못한다. 특히 한국은 더 그렇다. 5년짜리 단임제 대통령, 그리고 1년이 멀다 하고 자리가 바뀌는 정부 관료들의 숨은 절대로 긴 호흡을 가지지 못한다. 현실적으로 보면,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한 3개월 동안은 새로운 정부에 적응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아무런 활동이 없다. 그다음 6~8개월 동안은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고, 담당자들이 바뀌고, 계획을 세우고, 정책을 만들고, 발표한다. 일단 이러면서 1년이 지나간다. 남은 4년 중 3년 동안 새로운 정책들이 부분적으로 실행되고, 마지막 1년은 또 그다음 정권 준비한다고 날아간다. 이런 현실이다 보니, 정부 관료들은 3년 동안 무조건 실적을 만들어야 하는데, 여기서 큰 착각이 발생하는 거 같다. 이 실적이라는 게 범국가적인 실적이 되어야 하는데, 정부 관료들은 “내 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이러다 보니, 담당자가 바뀌면, 이전의 정책과 프로그램이 아무리 잘 돌아가고 있어도, 백지화시키고 나만의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고 도입한다.

스타트업은 장기 마라톤이다.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길게는 2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데, 벤처를 위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설계하려면, 이런 스타트업의 주기를 잘 이해하고 이 주기에 맞게 생각해야 한다. 실은, 정부에서 만든 정책 중 꽤 잘 만들었고, 잘 돌아가고 있는 것도 있다. 새 정권이 들어서고, 새 담당자가 오더라도, 자꾸 새로운 걸 하지 말고 그냥 원래 하던 거만 잘해도, 지금보단 훨씬 더 좋은 그림이 만들어질거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벤치마킹하기

한국에만 존재하는 서비스나 컨셉을 미국으로 가져가서, 더 큰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사업을 하는 대단한 창업가도 요샌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우리 투자사 대표도 이런 분들이 있다. 그래도, 아직은 미국에서 먼저 생긴 제품이나 서비스가 잘 되는 걸 보고, 이 컨셉을 한국으로 가져와서 그대로 베끼거나 또는 한국 시장에 조금 더 맞게 로컬라이즈하고 화인튜닝해서 사업을 크게 하는 창업가들이 더 많은 거 같다. 아무래도, 기존에 없던 비즈니스 모델을 한국보단 미국 창업가들이 더 먼저 잘 만들고, 규제와 같은 이슈가 상대적으로 덜 하기 때문에, 더 많은 투자를 더 빨리 받아서, 빠른 속도로 스케일을 만들기 때문에 이런 비즈니스를 보고, “저거 한국에서도 하면 잘 될 거 같은데”라는 생각으로 한국에서 출시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이렇게 시작한 서비스를 설명할 때 주로 “우린 한국의 xyz(우버, 아마존, 위워크 등) 입니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이러면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을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투자자는 바로 이해하기 때문에 꽤 편하다. 나도 정확하게 세어 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만나는 회사의 50% 이상이 이렇게 미국에서 잘 되는 모델을 카피해서 한국에서 창업한 케이스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았으면 하는 게, “카피”라고 하면 좀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다른 나라의 비즈니스를 베껴서 한국에서 하는 거에 대해서 나는 전혀 이상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남들이 잘 만들어 놓은 게 있으면, 우린 그 비즈니스를 잘 연구해서, 우리가 사는 시장에 맞게 출시하면 된다. 그만큼 시간도 절약하고, 비용도 절약하고, 무엇보다 이미 이 길을 걸어간 비즈니스가 잘 못 한거는 버리고, 잘 한 것만 참고하면 되는 이점이 있다.

그런데, “한국의 xyz” 또는 “한국형 xyz”를 만든다고 하는 창업가들한테 제품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을 하면 – 특히 UX와 서비스의 흐름 관련된 – 잘 모른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나는 이미 미국에서 이 제품을 유저로서 여러 번 사용해봤기 때문에, 서비스의 요모조모를 잘 알고 있는데, 이걸 만들겠다는 분들이 나보다 제품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 이상해서 “혹시 이 서비스 직접 사용해봤나요?”라고 물어보면, 놀랍게도 많은 분이 직접 사용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분은 미국에 사는 친한 친구나 가족을 통해서 이런 서비스가 있는데 굉장히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런 지인들을 통해서 서비스가 어떻게 작동되고 비즈니스 모델이 어떤지 간접적으로 접했다고 한다. 어떤 분들은 그냥 웹사이트만 몇 번 봤고, 또는 검색을 통해서 어떤 서비스인지 공부하고, 기사를 통해서 비즈니스 모델을 스터디했다고 한다.

이 중 한국에서는 아예 제공되지 않아서 사용조차 할 수 없는 서비스가 대부분이다. 미국 신용카드가 없어서 결제 부분을 경험하지 못한 분들도 있었고, 미국 주소가 없어서 직접 물건을 배송받아보지 못 한 분들도 있었다. 그리고 극소수이지만, 아주 쇼킹하게, 영어를 못해서 제품을 제대로 사용해보지 못한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나한테는 다 게으른 변명으로 들린다. 물론, 위에서 말한 이유로 한국에서 이런 서비스를 쉽게 사용하는 건 어렵지만, 이런 제품을 한국에서 만들겠다는 창업가들이 이미 우리보다 몇 발 앞서있는 비슷한 비즈니스를 A부터 Z까지 사용하고 경험하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제품도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iteration 했고, 투자도 많이 받았고, 유저도 압도적으로 많은 글로벌 서비스를 잘 벤치마킹하면, 그만큼 우린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어서 아주 빠른 follower가 될 수 있고, 이렇게 기본기를 탄탄하게 만든 후에 한국 시장에 맞게 로컬라이징 하면, 정말 많은 시간, 돈,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벤치마킹을 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확실하게 해야 한다. 겉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뼛속까지 깊게 들어가서 이 서비스는 왜 이런 프로세스를 만들었는지를 모두 경험하고 이해를 해야 한다. 회원 가입부터 결제, 그리고 만약에 이커머스라면, 실제 물건을 받는 과정, 그리고 반품과정까지,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다 테스트해봐야 한다. 내가 이커머스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이유는, 배송이라는 오프라인 프로세스가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모든 걸 경험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전환율이 높은 이커머스 플랫폼의 경우,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는 과정, 몇 시간 안으로 장바구니 물건을 구매하지 않았을 때 사용자가 받는 이메일이나 문자 등과 같은 디테일은 그냥 남을 통해서 들어서는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거라서 직접 스스로 다 해봐야 한다.

내 주변에는, 본인들이 벤치마킹하는 미국 서비스를 제대로 사용해보기 위해서, 그리고 오롯이 이것만을 위해서 미국에서 두 달 동안 살다 온 창업가도 있다. 이분들같이, 필요하다면, 직접 미국까지 가서 경험해보길 권장한다. 그만큼 중요하다.

언제나 겸손하게, 매일 허슬하기

지난주에 포춘지에서 충격적인 기사를 읽었다. “How the Kleiner Perkins Empire Fell”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는데, 1972년도에 설립되어, 거의 30년 동안 실리콘밸리 최고의 명문 VC 명성을 유지했던 클라이너 퍼킨스의 몰락에 대한 내용이었다. 솔직히 이 VC가 과거에 비해서 좋은 회사를 많이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직감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몰락할 정도로 바닥으로 내려왔다는 건 이 기사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물론, 미디어가 항상 현실을 100%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포춘 정도면 신빙성 있고, 글의 내용 자체는 상당히 공감이 갔다. 기자가 쓴 다음 문장이 클라이너 퍼킨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 같다. “20년 전에 클라이너 퍼킨스는 벤처캐피탈 산업의 꼭대기에 우뚝 서 있었다. 요샌, 그냥 살아남기 위해서 경쟁하는 여러 VC 중 하나일 뿐이다.”

오늘은 클라이너 퍼킨스가 왜 잘 못 하고 있는지에 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건 이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된다. 뭐, 기사가 모든 걸 말해주는 건 아니고, 한때 거의 벤처캐피탈의 왕이라고 불리던 회사가 몰락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밑에는 너무 자만하고 방심했다는 이유가 깔려있지 않을까 싶다. 투자하는 회사마다 대박 나고, 주변에서 계속 칭찬하고 받들어주면, 아무리 겸손한 사람이라도 자만하기 쉽고, 이 자만심이 너무 커지면 다시 겸손해지는 건 굉장히 어려워진다. 아마도 여기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 게 아닐까 싶다.

이 글을 읽고 다시 한번 스스로 다짐했다. 항상 겸손하게 행동하고, 마치 오늘 투자를 시작한 사람처럼 매사에 긴장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물론, 우리가 클라이너 퍼킨스랑 같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다. 한참 멀었고, 어쩌면 아무리 잘해도 이 회사만큼 투자를 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래도 같은 일을 몇 년 하다 보면, 자기만의 일하는 스타일이 생기고, 나만의 방법론이 만들어지는데, 운이 좋아서 이런 나만의 방법으로 인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자만할 수 있고, 자만하는 그 순간부터는 절대로 올라갈 수가 없고 내려갈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실은 VC야 말로 자만하면 한 방에 훅 없어질 수 있는 직업이다. 왜냐하면, VC 산업만큼 ‘경험’과 ‘연륜’이라는 게 별 의미가 없는 분야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항상 말하지만, 30년 경험 있는 파트너와 이제 갓 대학교를 졸업한 초짜 심사역이 투자한 회사 중 어떤 회사가 성공할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즉, 경험이 많다고 일을 더 잘하는, 대부분의 다른 분야에서는 너무나 당연시되는 이 원칙이 투자업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이가 많든 적든, 경험이 많든 적든, 모든 VC는 치열하게 경쟁하고 항상 허슬링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클라이너 퍼킨스 기사를 읽고 요새 나는 다시 한번 바짝 긴장하면서 자신을 푸쉬하고 있다.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이메일 하나하나, 미팅 하나하나, 전화 통화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서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실은, 얼마 전에도 이런 계기가 있었는데, 타이거 우즈의 마스터스 우승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아무리 골프천재라도, 그리고 우승이 확실시되어도, 매 샷 마다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서 임하는걸 보고 나도 똑바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겸손하게, 언제나 허슬하다보면, 그리고 운이 억세게 좋으면, 가끔씩 대박도 나고 우승도 하는거 같다.

차이를 인정하기

우리도 요새 새 펀드를 만들고 있고, 아무리 업력이 좀 있고, 숫자가 나쁘지 않아도, 역시 남의 돈 받는 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인거라는걸 매일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다. 좋은 회사에 투자하는 것도 어렵지만, 투자하기 위해서 남의 돈 투자 받는 거에 비하면, 투자는 오히려 쉽다는 생각도 가끔 하고 있다. 스타트업 대표님들이 피칭할 때 느끼겠지만, VC도 매우 다양하다. 모두 성향이 다르고, 투자 분야, 스테이지 등에 따라서 선호하는 회사와 창업가가 다르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 같은 펀드에 출자하는 LP들도 모두 다르다. 이건 LP들 개인적인 성향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그 회사의 역사와 색깔 등에 따라서도 아주 다르다는 점을 항상 느낀다. 예를 들면,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는 손실을 보호하는데(=downside protection) 너무 신경 쓰진 않는다. 초기 투자의 성격상 리스크가 크고 어차피 손실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수익을 극대화하는데 모든 노력과 초점을 맞추는 편이다. 손실은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초기 투자에서 홈런을 친다면 이 손실을 모두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전략을 좋아하는 LP도 있지만, 엄청나게 싫어하고 이런 투자를 이해하지 못 하는 LP도 있다.

한국과 외국 LP 간에도 여러 가지 차이점이 존재하는데, 한국 LP는 거의 물어보지 않지만, 해외 LP는 항상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스트롱벤처스 파트너들의 파트너십이 정말 strong 하냐? 내가 돈 맡겼는데, 너희 둘이 싸워서 파트너십이 깨지면 어떻게 하냐?” 이다. 우리 회사와 펀드의 수익률 등의 정량적인 수치도 당연히 중요시하지만, 내가 요새 느끼는 건, 큰 해외 LP는 수치보단 이런 파트너십의 역사와 견고함에 엄청 신경 많이 쓴다는 점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많은 VC가 만들어졌다가 다시 해체되는데,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VC의 실적보단, 파트너십의 문제 때문이다. 파트너들이 서로 싸워서 헤어지면서, VC가 해체되는 걸 나도 꽤 많이 봤는데, 결국 이들을 믿고 돈을 맡긴 LP 한테는 치명적인 리스크가 된다. 또한, 담당 파트너가 만약에 회사를 나갔다면 투자사들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져서 곤혹을 치르는걸 많이 봤다(전문용어로는 ‘고아’가 됐다고 한다).

실은, 이 질문을 받으면 나랑 존의 파트너십은 아주 탄탄하다는 걸 뭔가 정량적으로 증명하는 게 쉽진 않지만, 내가 강조하는 몇 가지 포인트가 있긴 하다. 일단 우리 둘을 모두 아는 분들은 공감하겠지만, 우린 정말 다르다. 성향도 다르고, 회사에 대한 시각도 다르고, 무엇보다도 성격 자체도 아주 다르다. 이런 다른 두 사람이 같이 사업을 하다 보면 엄청 많이 부딪히고, 엄청 많이 싸우는데, 우리도 실은 그렇다. 8년 동안 맨날 싸웠고, 서로 동의하지 못했고, 요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파트너십은 더욱더 strong 해졌고, 앞으로 더 strong 해질 것이다. 여기엔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거 같은데, 일단 우린 비즈니스 동료이기 전에 초등학교 친구라는 점이 강하게 작용하는 거 같다. 워낙 어릴 적부터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자랐기 때문에 – John은 내 세컨드 와이프라는 농담도 자주 한다 – 아무리 의견 차이가 커서 대판 싸워도, 파트너십이 안 깨진다. 그리고 올해로 우리가 8년째 스트롱을 같이 운영하다 보니, 이미 그동안 너무 많이 의견충돌하면서 서로를 솔직하게 경험했고, 이게 8년 동안 지속하다 보니까 이젠 웬만하면 금이 가지 않는 파트너십이 만들어진 거 같다.

이렇게 서로의 의견 차이를 인정하면서 같은 방향을 보고 비즈니스 하는 걸 잘 표현한 영어가 있는데 바로, “agree to disagree”라는 말이다. 말 그대로, 서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걸 동의한다는 의미이며, 역사가 오래된 VC 파트너십의 관계를 잘 설명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의 브랜드를 갖고 비즈니스를 한다는 건, 파트너들이 모두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거 같다. 하지만, 같은 방향을 보더라도, 어떤 사람은 천천히 가고, 어떤 사람은 빨리 가고, 어떤 사람은 지름길을 택하고, 어떤 사람은 일부러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이런 방법론에서 상당히 많은 fine tuning이 필요한데, 여기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게 매우 중요한 거 같다.

우린 이제 VC로서 8살이 됐다. 솔직히 8년 경력으로는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민다. 한국은 찾기 힘들지만, 미국의 경우 파트너십의 역사가 20년 이상인 좋은 VC가 많은데, 이들에 비하면 우린 아직은 완전 주니어 VC이지만, 남이 만들어 놓은 하우스에 취직한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든 하우스를 8년 동안 잘 지켰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잘하고 싶다.

우버에 대해 모르고 있던 몇가지

지난번 우버 IPO 관련 포스팅에 이어서, 또 우버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IPO 관련 자료를 보면서, 내가 우버에 대해서 잘 몰랐던 사실이 매우 많은데, 이 중 처음엔 좀 놀랐고,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다고 생각한 몇 가지가 있다.

일단 우버가 돈을 버냐 못 버냐를 떠나, 내부적으로 회사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바로 contribution margin(=공헌이익)이라는 수치인데, 매출에서 변동비용을 뺀 숫자다. ‘공헌’이란 용어가 붙은 이유는 여기서 발생하는 이익이 변동비가 아닌 고정비를 회수하는 데 공헌하고, 또 남으면 이익 창출에 공헌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8년 매출이 1,000억 원이고, 변동비가 500억 원이면, 공헌이익은 500억 원이다. 고정비가 400억 원이면, 영업이익은 100억 원이 되는 거다. 우버의 경우 지역확장이 비즈니스의 성공에 아주 중요한 요소인데, 다른 지역으로의 확장과 연관된 비용이 대부분 변동비용과 관련 있기 때문에, 다른 지표보다 이 contribution margin을 상당히 강조하고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대부분의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우버와 같은 회사는 아마도 고정비용은 스케일이 만들어지면서 아주 천천히 증가하거나, 어느 시점을 지나면 거의 증가하지 않기 때문에, 미래의 수익을 측정하는 좋은 지표로 contribution margin을 선택한 거 같다. 2015년도의 자료를 보면, 샌프란시스코나 런던과 같은 도시의 공헌이익률은 10%로 플러스였지만, 상해의 경우 -160%였고, 결국 중국 시장에서 우버는 철수하면서 경쟁사 디디추싱에 중국 비즈니스를 팔았다. 실은, 우버는 마이너스가 어마무시하게 나는 회사지만, contribution margin으로만 따진다면 수익이 나는 회사라고 주장한다(=contribution margin profitable).

또 한가지 재미있었던 건, 우버의 contribution margin이 가장 높은 도시 순위였다. 2015년도에 실수로 공개된 우버의 자료에 의하면, 우버가 서비스되는 나라에서 공헌이익이 가장 높은 도시 순서는 스웨덴의 스톡홀름,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 샌프란시스코, 런던 등 이었다. 샌프란시스코와 런던은 그냥 직관적으로 이해가 갔지만, 스톡홀름과 요하네스버그는? 특히 요하네스버그의 도시 특성을 보면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일단 이 도시의 실업률은 거의 30%에 육박하는데, 실업률이 높다 보니 우버 드라이버 공급풀이 상당히 크다. 또한, 이 도시는 서울과 같이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지 않다. 불편하고, 규칙적이지 않은 미니버스와 같은 대중교통 수단을 대체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우버가 상당히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요하네스버그는 도시가 꽤 크기 때문에 자동차를 이용해야 하는 필요성이 높다고 한다. 이런 3가지 특성으로 인해서, 우버가 요하네스버그에서 지불한 변동비용이 상당히 낮다고 한다.

세 번째로 재미있었던 건, 바로 churn(=이탈) 관련 내용인데, 우버는 net negative churn을 자랑하는 서비스라고 주장한다. 우버 고객의 패턴을 분석해보면, 우버 앱을 설치하고 지우지 않는 이상, 우버를 더욱더 많이,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한 고객으로부터 더 많은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한다. Negative churn이라는 말로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데, 이 현상은 우버의 기존 고객과 신규 고객으로부터 벌어들이는 매출이 우버 앱을 지워서 더 이상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거나, 아니면 이 서비스를 덜 사용하는 고객들 때문에 경험하는 매출 손실보다 더 클 때 발생한다. 즉, negative churn의 성질을 갖는 비즈니스는 단순히 신규 고객을 획득하는 걸 넘어, 기존 고객이 더욱더 많은 돈을 사용하게 만들고, 시간이 흐르면서 신규 고객 획득 속도에 따라 매출이 선형적으로 증가하는 게 아니라, 복리로 증가한다. 이렇게 되면, 기존 고객이 충분히 돈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신규 고객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면서 고객획득비용(CAC)은 지속적으로 낮아지는데, 실은 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는 회사라면, 모두 다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자료의 내용은 약간의 내부 사탕발림이 되어 있고, 우버가 어마어마한 적자가 발생하는 비즈니스임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다. 하지만, 위의 내용을 조금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적용해보면, 어쩌면 역사상 최고의 마켓플레이스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우버의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는 없을 거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