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현역

roger federer개인마다 취향은 다르지만, 테니스를 좀 아는 분들은 로저 페더러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GOAT=Greatest of All Time) 테니스 선수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페셔널 운동은 기본적으로 체력이 따라와 줘야 하고, 신체 능력은 나이가 들면서 약해질 수밖에 없다. 현대 테니스와 같이 격렬한 스포츠에서 35살이란 나이는 거의 할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데, 올해 첫 번째 그랜드슬램인 호주오픈에서 나달과 페더러 두 노장이 결승전을 치렀고, 여기서 페더러가 이기면서 생애 18번째 그랜드슬램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35살 나이에 그랜드슬램 챔피언 타이틀 그 자체가 감동이었지만, 실은 나를 더욱 감동하게 했던 건, 준결승 승리 이후, 결승전에 임하는 각오와 소감에 대해서 한마디 해달라고 했던 기자한테 페더러가 했던 말이다.

“제 나이 올해 35살입니다. 실은 이 스포츠에서는 이제 은퇴할 나이죠. 저랑 같이 테니스에 입문한 대부분의 동료 선수들은 이제 은퇴해서 다른 삶을 살고 있고, 실은 저랑 개인적으로도 친하고, 같이 프로 테니스를 시작한 앤디 로딕 선수는 얼마 전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죠. 나 혼자서 계속 테니스를 하고 있다는 게 기분이 좀 묘했어요. 좀 외롭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저는 테니스 선수이고, 이 스포츠를 정말 사랑합니다. 다행히 부상이 별로 없어서 앞으로 계속 오래 할 수 있을 거 같고요,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 공을 칠 겁니다.”

실은 나이 든 스포츠 선수 중 페더러 같이 프로투어에서 성적이 좋은 사람은 거의 없다. 몸으로 하는 거라서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그래도 많은 나이 든 선수들이 그냥 은퇴해서 편안하게 살아도 되지만 평생 하던걸 계속하고 싶고, 스포츠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에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라고 한다.

벤처에서도 비슷한 분들이 있다. 어떤 VC는 old founder한테는 절대로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데, 비즈니스도 결국 체력 싸움이고,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질수록 ‘꼰대’ 성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다. 이분들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나이가 있는 분들이 계속 창업에 도전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실행하는 걸 보면 손뼉을 쳐주고 싶다. 나도 이제 43살인데, 솔직히 20대에 뭔가를 시작하는 거랑 30대, 40대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거랑은 마음가짐과 태도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일단 체력이 약해지면서 정신력도 좀 약해지는 거 같고, 여기에 책임져야 할 가족이 생기면 본능적으로 새로운 시도에 대한 겁이 많아진다. 그래서 40대가 넘으면 많은 분이 “이젠 고생 좀 덜하면서 살아야지” 라는 생각을 한다. 창업하거나, 초기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걸 꺼리는데, 이에 대해서 뭐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와 체력과는 상관없이 뭔가 새로운 걸 계속 시도하는 노장 현역들도 있다. 나는 로저 페더러 인터뷰를 보면서 우리 투자사 타파스미디어의 김창원 대표 생각이 났다. 김창원 대표는 나랑 동갑내기이다. 실은 전에 창업한 회사를(테터앤컴퍼니) 구글에 매각하면서 괜찮은 exit을 해서, 다시 맨땅에 헤딩하면서 그렇게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되지만, 지금 거의 5년째 고생하면서 매일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본인이 창업가이고, 잘 하는게 창업이고, 뭔가 새로운 걸 시작하고 만들어 가는 걸 진심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프로다.

나이와는 상관없이,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창업에 도전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도전할 현역들 화이팅이다.

<이미지 출처 = http://k8onationsports.sportsblog.com/posts/2068468/tennis–roger-federer–the-greatest-athlete-in-the-past-20-years.html>

한국에서 더 많은 유니콘을 만들려면

how to create unicorns in Korea스타트업 분야에 몸을 담고 계신다면, 유니콘 – 뿔 달리고 날개 달린 하얀 말 말고 – 에 대해서 귀가 아플 정도로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나도 관련해서 2014년, 2016년에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어제 내가 검색을 해보니까 CB Insights에 의하면, 2016년 2월 기준으로 한국에는 3개의 유니콘 기업이 있는데 쿠팡($5B), 옐로모바일($4B), CJ게임즈($1.79B)가 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비상장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나를 비롯한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긍정적인 투자자들은 앞으로 5년~10년 후에 한국에서 최소 5개~10개의 유니콘 기업들이 더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한국에서 더 많은 유니콘 기업들이 탄생할 수 있을까? 그냥 가만히 기다리면 될까 아니면 유니콘 제조를 공식화할 수 있을까?

나도 이 질문에 대해 귀국 이후 작년 한 해 동안 생각을 많이 해봤다. 왜냐하면, 우리도 스트롱 투자사들이 유니콘 기업들이 되는 걸 희망하기 때문이다(물론, 유니콘 기업이 무조건 성공적인 비즈니스가 되는 건 아니다).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절대 아니지만, 이에 대한 내 생각을 여기서 살짝 정리해본다.

일단 가장 궁금한 건, 유니콘들은 왜 유니콘일까? 우버는 80조 원, 쿠팡은 5조 원짜리 유니콘이라고 하는데, 이 기업이 어떻게 이런 기업가치를 가지고 있어서 유니콘으로 분류될까? 솔직히 별거 없다. 우버랑 쿠팡이 유니콘인 이유는 바로 이 회사들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이들한테 1조 원 이상의 밸류에이션을 부여하면서 투자했기 때문이다. 쿠팡의 경우, Sequoia가 1,000억 원을 투자하면서, “쿠팡, 너네 밸류에이션은 1조 원이야.”라고 했기 때문에 유니콘이 된 것이다. 전 세계의 모든 유니콘이 이렇게 해서 1조 원 이상의 회사가 되었다. 물론, 한 번 유니콘이 된 회사들이 항상 유니콘으로 남는 건 아니다. 성장을 멈추거나, 실적이 좋지 않아서, 더는 투자를 못 받고 망하는 스타트업들도 있고, 후속 투자를 받지만, 기업가치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인들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 프레임을 적용해보면, 한국 스타트업들의 기업가치가 1조 원 이상이라고 인정해주는 VC들이 이 밸류에이션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해야지만 한국에서도 유니콘 기업들이 탄생할 수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대규모 투자’는 최소 1,000억 원 이상이다. 스트롱같은 초기 소액 투자사가 어떤 스타트업에 1조 원 밸류에이션에 1억 원을 투자하면서, “이번 투자로 우리가 당신들 회사 0.01%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당신들 기업가치는 1조 원입니다. 유니콘이 된 것 축하드립니다.”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실은 여기서 한국에서 많은 유니콘이 탄생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 생겨버린다. 아직 한국에는 한 기업에 한 번에 1,000억 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는 국내 VC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3대 유니콘 기업들도 국내가 아닌 해외 투자자로부터 1조 원 이상의 밸류에이션에 투자를 받으면서 유니콘 스타트업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쿠팡-Sequoia, 옐로모바일-Formation 8, CJ게임즈-Tencent). (당분간은) 국내 VC가 아닌 해외 VC로부터 투자를 받아야지만, 한국 스타트업이 유니콘 기업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실은, 한국도 대규모 투자가 가능한 기관들이 있긴 있는데, 재미있는 건 한국 투자자들이 한국 스타트업한테는 먼저 1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오히려 해외 투자자들이 유니콘 기업가치를 인정해주면, 한국 투자자들도 그냥 그 가치에 같이 투자하는 경우를 더 많이 봤기 때문에, 일단은 외국에서 투자를 유치해야지만 유니콘 스타트업이 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한국인이 한국에서 창업한 스타트업이 외국의 큰 VC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수 있을까? 나는 전체적으로 다음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 좋은 기술과 좋은 제품 – 뭐, 이건 너무 당연한데 매우 중요하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최근에 많이 급상승했지만, 그렇다고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에 돈 보따리를 가지고 올 정도는 아니다. 해외 VC의 관심을 끌려면, 그만큼 좋은 기술력이 필요하고, 이를 활용해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나는 한국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전자상거래나 O2O와 같은 비즈니스모델 위주의 스타트업보다는 순수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강한 스타트업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이커머스나 O2O와 같이 오프라인이 포함된 비즈니스는 어쩔 수 없이 지역적으로 한국이라는 나라에 국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장이나 인수를 통한 exit의 문이 순수 소프트웨어 회사보다는 좁아진다고 생각한다. 잘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순수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의 경우, 특정 오프라인 비즈니스 모델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에, 미국의 어떤 대기업이 인수해도 흡수해서 잘 활용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하는 스타트업이라면 그 비즈니스를 이미 하고 있고, 한국이라는 시장으로 확장을 고려하고 있는 외국 대기업이 아니라면 인수 가능성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상장이라는 좋은 exit 방법도 있지만, 한국의 O2O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상장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고, 한국에서 상장할 경우 회수율의 문제도 있다.

2/ 한국계 미국 VC – 한국 스타트업이 아무리 빠르게 성장해도, 이 소식이 외국 VC들의 귀에 잘 안 들어간다. 한국의 작은 스타트업이 실리콘밸리 VC에 투자를 받으려면, 이런 회사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그 투자자한테 알리고 일단 만나야 하는데, 투자자와의 그 첫 번째 연결조차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이 어렵다. 그 다리 역할을 해주는 게 한국계 미국 VC들이다. 특히, 미국의 투자자 커뮤니티에 좋은 네트워크를 가진 한국계 미국 VC로부터 초기 투자를 유치했다면, 그리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의미 있는 비즈니스 성장을 하고 있다면, 한국계 미국 VC인 기존 투자자가 실리콘밸리의 큰 VC와 연결해 줄 수 있다. 실은 이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중요한 내용이다. 쿠팡이 Sequoia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한국계 미국 VC인 알토스가 이미 기투자사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미 인정받고, 브랜드가 좋은 알토스와 한킴 대표님을 Sequoia에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팅과 후속 투자가 더 수월했다고 난 생각한다.
아직 유니콘 스타트업은 아니지만, 우리도 비슷한 역할을 한 적이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의 후속 투자에 실리콘밸리의 DCM Ventures가 참여했는데, DCM의 파트너를 내가 개인적으로 잘 알기 때문에 텀블벅을 편안하게 소개했었고, 그 이후에 투자가 진행됐다. 우리가 아니었다면, DCM은 한국에 텀블벅이라는 회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고, 알았어도 기존 투자사들을 본인들이 모르거나 믿지 못했다면 후속 투자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3/ 영어 – 아무리 강조해도 영어의 중요성을 많은 창업가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서 유니콘 기업을 만들고 싶은 창업가라면 영어를 해야 한다. 좋은 서비스를 만들었고, 한국계 미국 VC로부터 초기 투자를 받아서 후속 투자를 받기 위해서 실리콘밸리 VC 소개를 받았는데, 우리 비즈니스에 대해서 대표이사가 영어로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면 투자자한테 그 매력도가 많이 떨어진다. 실은 우리 스트롱 포트폴리오 중 해외 투자사 소개를 요청하는 회사들이 있는데, 내가 아무리 소개를 해줘도 그 이후의 커뮤니케이션이 막막하고 걱정되어서 그렇게 못 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우리 투자사 중 크든 작든 해외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회사들은 모두 대표이사가 영어를 유창하게 하거나, 아니면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비즈니스의 속사정을 잘 숙지하고 있는 공동 창업가 또는 다른 직원이 있는 경우이다.
우리 투자사 중, 최근에 괜찮게 투자를 받아서 현금이 충분하고, 비즈니스도 잘 성장하고 있어서 그다음 라운드는 미국으로부터 받았으면 좋을 거 같다고 생각하는 회사가 이제 조금씩 생기고 있다. 대표이사가 영어를 매우 잘하면, 나는 그냥 소개만 해주고 지원해주면 된다. 하지만, 영어가 부족하다면 나는 항상 영어 잘하고 미국 비즈니스를 해본 (비싼) 인력을 채용하라고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많은 업계 분들과 학자들이 한국과 이스라엘을 비교한다. 어떻게 보면 한국보다도 더 환경이 척박하고 자원이 부족한 이스라엘이 우리가 알만한 스타트업을 많이 배출한 이유는 바로 위 3가지 조건들을 잘 충족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생각도 요새 많이 하고 있다. 올해도 한국과 유니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될 거 같은데, 새로운 배움이 있을 때마다 포스팅을 통해서 공유하도록 하겠다.

깊은 틈새

Siren Care라는 스마트 양말에 대한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좀 갸우뚱했다. 우리가 입는 모든 것에 ‘스마트’를 갖다 붙이면 멋져 보이지만, 스마트 양말 없어도 살아가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전에 내가 말한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양말을 조금 더 자세히 보니까, 내가 생각한 것과 아주 달랐다. 일단 일반인들을 위한 양말이 아니라, 당뇨병 환자들을 위한 기능성 양말이었다. 제1형과 2형 당뇨병 환자들한테 대표적으로 발생하는 합병증은 당뇨발인데, 이게 관리가 제대도 안 되면 이 중 25%는 발을 절단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양말에 있는 센서를 통해서 발의 감염상태나 온도 변화를 24시간 감시하고 저장해서, 문제가 발생하면 환자들한테 발을 확인해보거나 병원에 가라는 알림을 전달해주는 게 이 양말의 핵심이다.

실은 나는 웨어러블 제품에 대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있으면 좋지만, 굳이 필요하지는 않은 이라고 하는 게 맞을 거 같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우리 몸에 대한 데이터를 지속해서 수집하는 것은 – 그것도 별도의 외부 기기가 아닌, 우리가 입고 다니는 옷이나 이미 차고 있는 시계와 같은 기기를 통해 – 굉장히 멋지고 미래지향적인 거 같지만, 대부분의 기기는 오히려 내 삶을 더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에 나는 웨어러블 회사들을 검토할 때 조금 더 신중해진다. 물론,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나 같지는 않지만, 없으면 안 되는 기기가 아닌, 있으면 좋은(=good to have) 기기를 구매하는데 지갑을 흔쾌히 열 사람은 극소수인 것 같다. 그만큼 시장도 작아진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스마트 양말을 내가 관심 갖고 봤던 이유는, 이들이 풀려고 하는 문제는 삶과 직결되어 있으므로, 고객들에게 반드시 즉시 구매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당뇨 환자들에게 당뇨발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이다. 발을 절단해서 죽는 건 아니지만, 온갖 합병증으로 인해서 목숨과 직결되어 있으므로, 이 제품은 있으면 좋은 기기가 아니라 없으면 안 되는 기기의 카테고리에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이런 시장을 ‘깊은 틈새’ 시장이라고 한다. 미국에는 2,900만 명의 당뇨병 환자가 있지만, 이 중 150만 명이 당뇨족궤양을 경험하고, 10만 명이 발을 절단한다고 한다. 시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2,900만 명이 될 수도 있고, 10만 명이 될 수도 있지만, 두 숫자 모두 틈새시장에 가깝다. 하지만, 당뇨병 환자 2,900만 명 모두에게 당뇨발 발병 확률이 존재하고, 이는 생사와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굉장히 깊은 틈새시장이 될 수가 있다. 나도 우리 식구 또는 내가 당뇨에 걸리면, 이 스마트양말은 단순한 옵션이 아닌, 필수아이템이 될 것 같다(물론, 회사가 마케팅하는 대로 양말이 스마트하다는 가정하에)

이런 프레임은 굳이 웨어러블뿐만 아니라 모든 서비스나 제품에 적용될 수 있다. 모든 사람한테 있으면 편하거나, 있으면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한테 시장 크기는 큰 고민이 아니다. 전 세계가 시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이 큰 시장이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게 할까에 대한 고민은 상당히 크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살아가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전략은 가격을 낮추고, 볼륨으로 승부하거나, 또는 무료로 배포하고, 많은 사람이 사용하게 되면, 그 이후에 이들을 lock-in 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일부 사람들한테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의 고민은 시장 크기이다. 없으면 안 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분명히 유료고객은 존재하지만, 그 시장이 작아서 볼륨이 안 나오는 게 문제이다. 이런 회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전략은 고가전략이다. 볼륨은 적지만, 가격이 워낙 높다 보니, 비즈니스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결론은, 절대다수에게 반드시 필요한 제품을, 적당한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는 스타트업은 장래가 밝다. 시장을 선점하면, 독점적 위치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자신감

believe-in-yourself-218323-1024x576설 연휴라서 계속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서, 오늘은 특별한 글감이 없어서 과거에 쓴 포스팅들을 기반으로 최근에 생각한 내용에 대해서 몇 자 써보겠다. 모든 창업가는 다르므로, 누군가 나에게 창업가들의 공통점에 관해서 물어본다면, 한참 생각을 해야 할 거 같다. 그런데 굳이 공통점을 찾아본다면 ‘자신감’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 창업가는 나름 능력 있는 분들이라서, 그냥 큰 고민 없이 편하게 살 수도이지만, 굳이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자신의 길을 가는 분들인데, 이게 스스로에 대한, 그리고 하고자 하는 비즈니스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자신감이란 건 유효기간이 있다. 즉, 사업 초기에는 자신감이 충만하지만, 실제 제품을 만들고, 고객과 시장을 알아가면서, 투자자들과 만나면서, 높디높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서서히 고갈된다. 결국, 창업 초기의 그 패기 넘치던 창업가는 찾을 수가 없고, 자신감이 바닥까지 떨어지다 못해, 땅밑으로 들어가 버린 마이너스 자신감과 자존감에 허덕거리는 불확실한 창업가만 남게 된다.

초기 예상대로 성장하는 비즈니스는 없으므로, 실은 모든 창업가가 이런 마이너스 자신감을 어느 시점에서는 경험하게 된다. 나도 경험해봤고, 우리 투자사들도 모두 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을 추스르면서 현실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실은 이럴 때일수록 자신을 더 믿으면서 버티고,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약해지면서 나만이 목소리를 상실하게 되고, 다른 곳을 기웃거리게 된다. (나도 직접 경험해본) 이 시점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게 바로 지나치게 남들한테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한 동의를 구하고, 남들이 하는 말에 심하게 휘둘리는 현상인 거 같다. 자신 있게 시도했던 일들이 결국 실패했고, 이로 인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고, 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과 의구심이 계속 발생하니까 조금이라도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새로운걸 벌리기 전에 전에 주변 분들의 동의를 구하려고 한다. 그리고 문제점들을 우리 내부에서 찾기보다는 자꾸 외부에서 찾으려고 한다.

이럴 때일수록, 얇아진 귀를 다시 두껍게 만들고, 창업 초기의 마음가짐과 자신감을 하나씩 다시 주어서 체력과 정신력을 재무장해야 한다. 마이너스 자신감을 플러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의지와 생각과는 달리 남이 하는 말에 의해서 비즈니스를 하다가 시간과 돈 낭비하고 망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 비즈니스를 계속 할 의지가 있다면, 스스로 최면을 걸 필요가 있다. 내가 하는 비즈니스에 대해서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만약에 남들이 내 비즈니스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다 생각한다면 그 비즈니스는 하지 않는 게 좋다. 남이 뭐라던 그냥 묵묵히 내 비즈니스만 하면 된다.

Believe in YOURSELF. 왜냐하면, 나마저도 나를 믿지 않으면, 이 세상에 나를 믿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거 너무 비참하고 초라하지 않나?

<이미지 출처 = http://www.amplifiedradio.net/3-ways-believe-no-one-else/>

밟아야 사는 사회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 대선 출마를 위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는 실은 이 분이 한국에서만 자란 분 치곤 영어를 참 잘해서, 정말 열심히 영어공부를 하셨다는 점 빼고는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UN사무총장 시절, 자신만의 목소리가 참 없는 분이라고 생각했고, 모든 걸 “좋은 게 좋은 거야” 주의로 처리하고 결정하시는 거 같아서 정치인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이 분이 정치를 하겠다는 입장에 대한 다른 대선후보의 소감을 뉴스에서 봤는데, 하나같이 비판하고 비난하는 분위기였다. 실은 나는 정치를 전혀 모른다. 그래서 원래 정치인들은 다른 경쟁자들을 무조건 비난하는 캠페인을 전개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굳이 모든 상황에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남을 비방하는 건 좀 아닌 거 같다. 반기문 씨에 대해서도 그냥, “그동안 UN에서 고생 많으셨고, 잘 돌아오셨습니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우리 대한민국 좋은 나라로 만들어 봅시다.” 뭐, 이렇게 말하면서 경쟁하는 그림을 만들면 안 되는 건가? 이건 미국도 마찬가지인 거 같은데, 대선 무대에서 정치인들이 본인의 장점과 강점을 강조하는 걸 본적이 없는 거 같다. 대신,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상대방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며, 거의 삿대질을 하면서 싸우는 저질 싸움판이 형성되는데, 원래 정치가 이런 건지, 아니면 조금 다른 방법으로 경쟁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다. 좋은 제품을 가지고 스스로 잘 성장해서, 우리 팀과 기술을 가지고 경쟁하는 바람직한 스타트업들이 있는가 하면, 내 강점보다는 남의 약점만 늘어놓으면서, 상대방을 밟아가면서 자신을 빛내는 스타트업들도 많다. 언론 인터뷰에서 경쟁사에 관해서 물어보면, 경쟁사를 칭찬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시장을 같이 키워나가고, 궁극적으로 소비자들한테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대표이사는 요새 찾아보기가 힘들다. 일단, 경쟁사를 비방하고, 저 회사는 나쁜 회사고, 우리는 좋은 회사니까 무조건 우리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는 분들이 더 많다.

피칭할때도 자주 경험하는데, 어떤 대표는 일단 경쟁사는 비방하고, 밟고 시작한다. 이런 분들의 공통점은 바로 자신의 내실을 다지고 내공을 쌓는 데 집중하기 보다는, 경쟁사가 뭘 하는지에 더 관심이 많다는 점이다. 나는 오히려 경쟁사를 칭찬하는 분들을 선호한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우리보다 잘하는 서비스와 회사를 잘 이해해야지만 더 좋거나 차별화된 서비스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잘해서 스스로 빛나야지, 굳이 남을 밟으면서 성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