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

easypam살아가면서, 또는 일하면서 필요한 여러가지 중요한 스킬이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하지만 극소수만이 보유한게 ‘커뮤니케이션’ 스킬인거 같다.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에게 가장 강조하는것 중 하나가 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지만, 실은 나도 잘 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 할 수는 없다. 우리 투자사 대표들 중에는 커뮤니케이션을 정말 잘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가끔씩은 내가 왜 저런 사람들한테 투자를 했을까 후회하게 만들 정도로 소통을 못 하는 분들도 있다.

커뮤니케이션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건 ‘상황이 좋지 않을때의’ 커뮤니케이션이다. 회사가 잘 되고 있으면 모두 다 행복하기 때문에 정보의 전달과 소통이 조금 부진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숫자가 좋으면 모든게 용서가 되고 용납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 그리고 스타트업들은 좋지 않을 때가 훨씬 많다 – 상황이 좋지 않을때에는 가능하면 높은 레벨의 커뮤니케이션 수준을 유지하는게 필요하다.

솔직히 말해서 스타트업이 잘 안 되기 시작하면 그 끝은 좀 빤하다. 돈도 없고, 자원도 없는 작은 회사가 불리해지면 회복하는게 쉽지 않다. 그리고 많은 회사에 투자를 해봤고, 여러가지 상황을 경험해본 현명한 투자자라면 이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 어쩌면, 대표이사보다 투자자는 이 회사의 끝이 어떻게 될지 잘 알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벤처의 성공확률은 매우 낮고, 투자는 확률게임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회사들은 3년 – 5년 안으로 망하는게 – 물론, 그렇게 안 되게 모두 열심히 하겠지만 – 현실이다.

전에도 한 번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나는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 중 실패했지만 또 창업을 하면 무조건 다시 투자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굉장히 성공했지만 또 창업을 해도 절대로 다시 투자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커뮤니케이션이 핵심이다. 사업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소통을 잘 하는 창업가들한테는 믿음이 간다. 상황이 좋지 않을때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데, 이럴때는 그냥 다 포기하고 세상과 담을 쌓고 싶을때가 있다. 하지만, 현명한 창업가들은 이럴수록 회사를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과 활발하게 소통을 한다. 현황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공유하고 해결책을 같이 찾아가려는 노력을 하면 창업가와 투자자 사이에는 – 쉽게 말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 – 신뢰와 존중이 생기는데, 이렇게 쌓인 감정은 비즈니스가 실패해도 평생 가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창업가들한테는 다시 투자할 의향이 항상 있다. 우리도 우리를 믿는 좋은 분들이 우리 펀드에 출자한 돈을 가지고 투자하기 때문에 이 소중한 돈이 우리가 믿는 좋은 분들한테 투자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업을 잘 하고 돈을 잘 벌어도 소통이 안되고 투명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창업가들이랑은 다시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는게 내 지론이다.
참 안타까운건 투자를 하기 전에는 잘 모른다. 투자를 한 후에만 알 수 있기 때문에 우리도 이런 실수를 가끔씩 한다.

얼마전에 나는 우리 투자사 텀블벅에서 진행된 ‘이지팸‘이라는 크라우드펀딩 캠페인을 후원했다. 스팸을 써는게 상당히 불편하고, 나중에 설겆이 하는건 더 불편한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스팸 커팅 도구를 만드는 캠페인이었다. 인기가 많을 줄 알았는데 목표금액 700만원 중 50% 밖에 못 모으고 실패했다. 비록 캠페인은 실패했지만 이 프로젝트 오너는 후원자분들한테 진심이 담긴 소통을 정기적으로, 그리고 적시에 했다. 얼굴도 모르는 분이지만 나는 이 분이 다음에 창업을 해서 나한테 투자 받으로 온다면 굉장히 긍정적으로 검토할 의향이 있다. 생각했던거 만큼 왜 후원이 없는지, 처음에 세웠던 가설이 왜 틀렸는지, 그걸 고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굉장히 자세히 후원자들한테 설명하는 모습에서 창업가가 투자자들에게 투명하고 명확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봤기 때문이다.

이 분이 프로젝트 종료를 한시간여 남기고 후원자들에게 보낸 “프로젝트 기간 종료를 앞두고” 라는 글을 그대로 붙여본다. 이런 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줄 아는 분이라면 사업이 실패해도 함께 하고 싶다.

안녕하세요 후원자여러분.

프로젝트 종료를 한시간여 남기고 이렇게 글을 씁니다. 결국 프로젝트는 후원목표금액의 50%를 모집하는데 그쳐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후원자 수는 223명, 타 프로젝트와 비교해봤을 때 실패한 경우로 보기엔 후원자 수가 너무 많지만(황당하네요.) 어찌됐던 설정한 목표에 미달했으니 아쉽게도 제품을 받아보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업데이트에서 제품을 개선하고 그 사실을 알려드릴 것을 약속했지만 제품의 개선과 마케팅 전략 실행을 진행해본 바,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그래서 텀블벅측에 프로젝트 조기종료를 요청할까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후원금액 증가추이를 파악하기 위해 일부러 남겨두었고 꽤 의미있는 경험과 데이터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전체 후원금액의 60% 정도가 단 6일만에 모였다는 점을 들 수 있겠네요. 전체 후원자수는 223명인데 이중 40여명이 하루만에 모였을 때도 있습니다.

이런 일은 첫번째론 텀블벅측에서 프로젝트를 페이스북에 노출시켰을 때 발생했고 두번째 폭발적 증가는 텀블벅에서 광고메일을 돌렸을 때였습니다. 제품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마케팅과 홍보가 이렇게 중요한 줄은 미처 몰랐네요. 두차례의 외부 공개로 각각 3일씩 그 파급효과가 지속되었고 50일의 프로젝트 진행기간중 단 6일만에 60~70%의 후원자가 집중된 것은 꽤나 의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더불어 외부 공개 이후 후원자가 공유와 공유를 거치며 후원자수 증가의 선순환에 진입하지 못하고 감소후 정체하게 된 점도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저의 생각으론 아마 이 제품이 가진 여러 문제점 때문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시제품 단계의 미완성 제품인데다가 프로젝트 페이지가 너무 복잡하고 자세해서 주의를 분산시키고, 더불어 두번에 걸친 절단방식 때문에 이에 거부감을 가진 분들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외부 공개 당시엔 ‘스팸을 썰어먹기 너무 힘들다’라는 것에 아주 강하게 공감하시는 분들 위주로 후원이 이루어졌고 스팸썰기에 대한 편의성 측면에서 애매하게 생각하시는 분들, 혹은 그다지 크게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에게 매력적으로 작용하지 못하다보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스팸을 썰어먹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분들에게조차 ‘아 이제품을 사용하면 더 편리해지겠군’이라고 생각하게 하거나 ‘가격도 싼데 그냥 사서 써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면 제품이 큰 공감을 받고 후원자수 증가가 공유를 거듭하며 선순환 했을텐데 그렇게 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래서 결국 내려진 결론은 이렇습니다. 제품의 상품성을 더 다듬고, 시제품이 아니라 완제품을 제시해야 하며, 가격은 더 싸게 하고, 마케팅 전략을 초기부터 체계적으로 실행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나 하나 만만한게 없는 사안이네요.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할땐 준비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엉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반의 성공(?)을 한 점은 그만큼 스팸을 편하게 썰어먹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다는 증거겠지요. 이 프로젝트로 저희 제품에 대한 문제점을 명확히 알 수 있었지만 더 중요한 교훈은 스팸썰기에 대한 수요가 분명 가볍진 않았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제품을 쉽게 포기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반드시 지금보다 더 훌륭한 제품으로, 더 저렴하게 후원자 여러분을 찾아갈 것입니다. 또한 지금 이 순간까지 후원을 지속해주신 223명께는 추후 프로젝트를 통해 특별한 보답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니나히와 이지팸은 반드시 다시 돌아옵니다. 우선은 이지팸 말고 상대적으로 수익을 얻기 좋은 제품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자금을 모을 생각입니다. 차기 프로젝트는 완성품을 제시할 것이며 상당부분 진행이 완료되었습니다. 저희 니나히를 계속 지켜봐 주십시요. 그리고 이지팸의 부활을 기다려주십시요.

후원해주신 223명 한분한분께 너무 감사합니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다음에 꼭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미지 출처 = 텀블벅 ‘이지팸’ 캠페인 페이지>

투자는 투자자한테, 검증은 시장한테

7월 하반기가 되면서 더 많은 초기 기업들을 만나고 있다. 좋은 스타트업들의 샘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건 상당히 좋은 현상이지만, 이 많은 회사 중 옥석을 가리는 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많이 만나면 만날수록 변별력과 판단력이 향상되는걸 느낄때도 있지만, 오히려 더 혼란스러울 때도 있으니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제 아이디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이게 가능성이 있을까요?” , “투자자들한테 제 아이디어를 검증받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만난 창업자들한테 – 특히 초기 스타트업들 – 꽤 많이 받은 질문들이다. 나는 한결같이 “우리 같은 투자자 한테는 투자를 받으시고요, 아이디어는 시장에서 직접 검증 받으세요.” 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이 분들한테 바로 또 물어본다. “대표님, 제가 이 아이디어가 별로인 거 같다고 하면 사업 접으실 건가요? 저한테 보여주기 위해서 창업하신 건가요?”

실은 나는 투자만 해서 현장감이 별로 없다. 우리는 남의 비즈니스에 투자하는 사람들이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비즈니스를 검토하고 평가하기 때문에 현업을 잘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한테 본인이 하는 비즈니스에 대해 평가를 해달라고 하면, 과거의 경험이나 이와 비슷한 비즈니스들과 비교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역사가 말해주듯이, 투자자들의 감은 맞을 때보다는 틀릴 때가 더 많다. 아무리 유명한 VC라도 성공한 투자 한 건 대비 실패한 투자가 많게는 20건 이상 있다.

100년 이상의 투자 역사를 자랑하는 실리콘밸리의 명문 VC Bessemer Partners의 전설적인 투자자 데이비드 코완이 초기 시절의 구글에 눈길조차 주지 않은 다음 이야기는 이 분야에서 일하면 누구나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창업 초창기에 데이비드 코완의 친구 집 차고를 임대해서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하루는 데이비드 코완이 친구 집에 놀러 왔고, 친구는 구글의 창업팀을 소개하려고 했다.

친구: 우리 집 차고에서 일하는 스탠퍼드 학생 두 명이 있는데 만나볼래? 검색 엔진 만든대.
코완: 학생? 검색 엔진?(1999년 당시 웹 검색 엔진의 왕은 알타비스타였다)
코완: 차고를 지나지 않고 이 집에서 가장 빨리 나가는 길은 어디지? (=나 집에 갈래)

만약 데이비드 코완같이 유명한 VC의 절망적인 말을 듣고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이게 아닌가벼” 라면서 구글을 포기하고 다른 사업을 했다면 우리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므로 투자자한테 내 아이디어를 검증 받는다는건 위험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내 아이디어와 사업을 검증해 줄 수 있는 건 시장이다. 아무리 주위 사람들이 현실성이 없고 가망이 없다고 해도 고객이 있고 시장이 사용하는 제품이라면 이건 훌륭한 비즈니스이니, 내 아이디어를 검증받고 싶다면 빨리 뭐라도 만들어서 시장에서 테스트를 해보라고 권장하고 싶다.

물론 투자자 중에는 수년 또는 많게는 수십 년 동안 수천 개의 비즈니스를 검토한 분들도 있다. 그리고 이들의 조언을 완전히 무시하는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경험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도 성공적인 투자 보다는 실패한 투자가 더 많을 것이다. 이게 바로 VC라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실은 나한테 굉장히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은 후, 사업을 완전히 포기한 창업가도 있다. 그런데 이 분은 아마도 애초부터 자신이 없어서 투자자의 말을 듣고 소신을 접었을 것이다. 그리고 본인의 확신 없음을 내가 인정해줘서 안도했을지도 모른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말이 있다. 투자는 투자자에게, 검증은 시장에서 받아라.

투자자의 pro-rata 권리 계산하기

지난번에 투자자들의 pro-rata 권리에 대해서 짧게 쓴 글이 있다. 우리말로는 ‘신주인수권’ 또는 ‘증자참여권’ 이라고 하는 pro-rata 권리에 대해서 간단히 개념만 설명했는데, 최근에 우리 투자사들의 후속 투자 유치 관련, 기존 투자자들의 pro-rata 권리 계산하는 걸 도와주면서 다른 창업자분들도 알면 좋을 거 같아서 조금 더 자세하게 적어본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주식회사 청담동’ 이라는 가상의 회사를 하나 만들어 보겠다. 이 회사는 1년 전에 시드 투자를 받았고, 이번에 100억 원 포스트 밸류에이션에 총 20억 원의 시리즈 A 투자유치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행된 주식 수가 100,000 주인데 창업팀이 70,000 주(70%), 투자자들이 30,000 주(30%)를 밑의 도표와 같이 보유하고 있다.

cap table 1

주식회사 청담동 지분구조

그러면 이번 20억 원 라운드에서 기존 투자자들이 자신들이 보유한 지분율을 유지하기 위한 신주인수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각 얼마를 추가 투자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주식 수는 어떻게 되는지 한 번 계산해보자.

일단 이해를 위해서 주식회사 청담동의 시리즈 A 투자 이후의 지분 변동률과 이에 따른 각 투자자의 pro-rata 내용을 도표로 만들어 봤다.

주식회사 청담동의 pro-rata 내역(시리즈 A 투자 이후)

주식회사 청담동의 pro-rata 내역(시리즈 A 투자 이후)

1/ 시리즈 A의 주식 가격 산정
이건 간단한 산수이다. 이번에 발행할 주식의 수를 X 라고 하면, 이미 발행한 100,000 주에 이를 더한 합이(100,000 + X) 시리즈 A 이후 발행된 총 주식 수 이다. 그리고 X가 전체 주식의 20%이니,

X / (100,000 + X) = 20%
X = 25,000

즉, 이번 라운드에서 추가 발행해야 하는 신주는 25,000 주이다. 그리고 이 25,000 주의 총 가격이 이번에 들어오는 투자금 20억 원이다. 그러니 이번 라운드의 주당 가격은 80,000원이다(=80,000원짜리 주식을 25,000개 발행하면 20억원)

2/ 각 주주의 지분 희석률 계산
이 또한 간단한 산수이다. 예를 들어서 스트롱 벤처스는 이미 청담동의 10,000 주를 가지고 있었고, 이는 시리즈 A 투자 받기 전 회사의 10% 이다. 하지만, 20억 원 추가 투자를 받으면 25,000 주의 신주가 발행되어 회사의 전체 주식 수가 100,000에서 125,000 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이 10%가 8%로 희석된다(=10,000 주 / 125,000 주)
다른 투자자들의 지분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희석된다.

3/ 각 주주의 pro-rata 계산
스트롱벤처스는 이번 라운드를 통해서 지분율이 8%로 감소하였으니, 기존 지분율 10%를 유지하려면 회사 지분의 2%를 추가 구매해야 한다. 이를 주식 수로 계산해 보면 2,500 주 이다(=125,000 주 x 2%). 1번 에서 계산한 주당 가격 80,000원에 2,500 주를 곱하면 스트롱벤처스가 pro-rata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 추가로 투자해야하는 금액이 계산된다. 즉, 80,000원 x 2,500주 = 2억 원 이다.

정리해보면, 20억 원의 시리즈 A 라운드 중 기존 투자자들이 초기 지분율을 유지하기 위해서 추가 투자해야 하는 총 금액은 6억 원이며, 신규 투자자들은 14억 원까지 투자를 할 수 있다(창업팀의 pro-rata 부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창업팀은 pro-rata 권리가 없다). 물론, pro-rata 권리는 말 그대로 투자자들의 권리이지 의무가 아니다. 어떤 투자자들은 이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그냥 지분의 희석을 선택할 것이고, 어떤 투자자들은 pro-rata 권리를 모두 행사하지 않고 더 적은 금액만을 행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회사가 가는 방향이 맞고 창업팀이 실행을 잘 한다면, 현명한 투자자라면 무조건 pro-rata 권리를 행사할 것이다. 초기 투자자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자 무기가 이 권리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워낙 좋으면 기존 투자자들이 자신들의 pro-rata 권리 이상의 투자를 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후속/신규 투자자들이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회사를 초기에 발굴했다고 생각한다면, 대부분의 투자자는 의미있는 지분투자를 하고, 계속 그 지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pro-rata 투자를 한다.

그런데 투자자들도 귀가 얇은 사람들이 있어서 본인들이 이 권리를 행사할지, 또는 행사를 해도 얼마를 할지가 라운드를 진행하면서 수시로 변동될 수도 있다. 가령, 신규 투자자들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으면 기존 투자자들도 추가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갑자기 굉장히 유명한 VC가 투자를 하겠다고 하면, 기존 투자자들이 pro-rata 투자를 하겠다고 하는 경우도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보통 이렇게 진행되니 위에서 예를 든 20억 원 라운드 중 기존 투자자와 신규 투자자들이 총 얼마 할지는 계속 변동된다.

지분형 크라우드펀딩에 대한 단상

crowdsourcing-1024x4402016년 5월 16일부터 미국에서도 지분형 크라우드 펀딩이 법적으로 가능해졌다.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고, 시점에 대한 논쟁도 많았지만 이제 미국에서 창업하면 불특정 다수에게 회사의 지분을 주고 투자를 받을 수 있다. 물론, 자세히 파고 들어가 보면 투자할 수 있는 금액, 투자 받을 수 있는 금액, 등록 과정 등의 세부사항들은 은근히 복잡하지만, 과거에는 특정 다수만이 가지고 있던 ‘특권’을 이제는 우리 옆집 아줌마와 아저씨도 가질 수 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미국보다 더 빨리 지분형 크라우드 펀딩 법안을 통과시켜서 우리나라는 2016년 1월 25일부터 일반인들도 크라우드펀딩 플랫폼들을 통해서 스타트업에 지분투자가 가능하게 되었다. 실은 나도 지분형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실제 투자자 또는 창업가의 경험은 없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한국과 미국의 캠페인들을 보면서 느낀 점들에 대해서 적어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창업가나 투자자의 입장에서 지분형 크라우드 펀딩은 별로 매력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이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2개의 적당히 이름이 알려진 VC들로부터 5억을 투자 받는 거랑 지분형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 100명의 불특정 다수로부터 각 500만 원씩 투자를 받는 거랑은 차이가 좀 있다. 물론, 다 같은 돈이다. VC한테 받은 5억이랑 일반인들한테 십시일반으로 모은 5억은 똑같은 돈이다. 하지만, 소액주주들이 많으면 cap table이(자본구조표. 즉, 회사의 주주들과 이들의 지분관계를 표시한 도표) 지저분해 지고, 제대로 된 투자자들이라면 이렇게 지분구조가 복잡한 회사에 투자하는 걸 꺼리기 때문에 후속투자 받을 때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회사의 대표이사도 불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액 주주들을 관리하는데 사용해야 한다. 회사 지분의 0.1%를 가지고 있더라도 주주이며, 법적 의무가 없더라도 이 주주가 회사의 업데이트를 요구하거나, 아니면 뭔가를 부탁하면 무시하는 게 쉽지 않다. 이런 작은 주주들이 수십에서 수백 명이 있다면 – 대부분 그냥 조용하지만, 간혹 회사를 굉장히 귀찮게 하는 주주들도 있다 –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서 좋지 않다. 모든 스타트업들은 투자자들에게 월별 또는 분기별로 비즈니스 업데이트를 공유한다. 이사회 멤버라면 이사회에 직접 참여도 하지만, 대부분의 주주들은 이메일로 공유받는다. 실은 대표이사의 입장에서 이런 내용을 취합하고 정리하는 게 좀 귀찮고 시간이 드는 일이다. 업데이트를 투자자들과 공유하면, 많은 투자자들은 본인들이 궁금한 부분에 대해서 다시 물어보는데 만약에 위에서 말한 회사의 소액 주주들이 질문을 한 개씩만 해도 100개의 질문이 되고 이로 인해서 스타트업의 업무가 마비될 수도 있다.

지분형 크라우드펀딩을 통해서 투자하는 일반인들의 성향도 너무 다양하다. 벤처투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 하는 분야이다. 지분형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하는 건 대출이 아니라 투자이며, 돈을 날릴 확률이 90% 이상인 고위험 투자이다. 그런데 우리 옆집 아줌마와 아저씨는 이런 투자의 속성에 대해서 잘 모르고, 원금을 언젠가는 회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불특정 다수가 참여할 수 있으므로 지분형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하는 일반인 중에는 질이 좋지 않은 투자자들도 존재한다. 이건 내가 소문으로 들은 말이라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는 못 했지만, 조폭들도 지분형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분들이 투자한 회사가 망해서 돈을 회수하지 못 하면 그 이후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어쩌면 내가 영화를 요새 너무 많이 봤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소액투자자들이 회사에 돈 이외의 그 어떠한 도움이나 부가가치도 줄 수 없다는 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투자자의 입장에서도 리스크는 존재한다. 내가 한국과 미국의 모든 스타트업을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 해에 600개 이상의 회사들을 검토하고, 주위에 좋은 회사들이 많기 때문에 괜찮은 스타트업이라면 거의 다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지분형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 등록된 회사들 중 내가 아는 회사들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 회사들이 과연 투자할만한 회사들인지 잘 모르겠다. 실은 투자자로서의 내 입장은, 지분형 크라우드펀딩은 일반 VC들한테 거절을 받아서 도저히 투자를 받지 못 하는 회사들이 마지막으로 시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좀 극단적인 생각이라서 아마도 많은 분들의 비난과 부정적인 댓글이 벌써 걱정된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대로 회사가 전문적인 투자자들에게 돈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지분구조를 지저분하게 만들면서 지분형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즉, 정상적인 투자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특정 다수로부터 돈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VC 들이 투자를 못 하는 분야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면(예를 들면, 마리화나 재배 또는 도박성 비즈니스) 딱히 옵션이 없는데 미국에서는 이런 비즈니스들이 지분형 크라우드펀딩 캠페인을 진행하는 걸 봤다.

가능성이 높은 스타트업들은 VC 투자를 받는다. 일류 VC 투자를 받는 회사들도 있고, 그렇지 못 하는 회사들도 있겠지만, 좋은 팀원들이 있는 스타트업이라면 전문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 주로 이 경쟁에서 밀려난 스타트업들이 지분형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으로 가기 때문에 여기에 투자해도 – 특히나 의미있는 지분율이 아닌 소수지분이기 때문에 – 투자자들은 돈을 버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분형 크라우드 펀딩 제도를 통해 투자자에게는 새로운 투자기회를 제공하고 스타트업들에게는 자금 조달 기회를 줄 수 있다고 홍보를 한다. 겉으로 보면 그럴싸하지만, 실제로는 투자자와 창업가 모두에게 그렇게 장밋빛 플랫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완전공시 – 우리는 한국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의 투자자이다. 텀블벅은 지분형 크라우드 펀딩이 아닌 보상형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다.

<이미지 출처 = http://knowledge.wharton.upenn.edu/article/promise-perils-equity-crowdfunding/>

누구나 다 구글이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 그리고 스타트업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웬만한 대기업들 부럽지 않은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큰’ 스타트업들은 확실히 한국 회사들이랑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 기업 문화부터 시작해서 구성원들이 일을 바라보는 자세, 나이나 경력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능력과 실력만으로 평가하는 철저한 실력주의는 아직 우리한테는 조금 생소한 개념들이다. 이런 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실리콘밸리가 만들어졌고 많은 혁신이 이 동네에서 시작되는 거 같다.

확실히 부러운 점들이 많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문화가 무조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특히나 모든 기업이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문화를 닮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고 생각한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을 연구해보면 모두가 나름대로 일하는 방식이 있고, 공부 잘하는 사람들을 봐도 공부하는 방법이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아침 일찍 시작해야지 능률이 오르지만, 이와는 반대로 어떤 이들은 늦게 시작해서 밤을 새우면서 일해야지 잘한다. 모두 각자의 방식이 있는데 이는 개개인들의 DNA, 성향, 성장환경, 교육환경, 지역적 위치 등의 다양한 요소에 의해서 결정된다.

요새 언론에서 진짜 많이 들리는 말이 있다. 어떤 대기업은 기업문화를 스타트업과 같이 바꾸겠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어떤 대기업은 구글과 같은 기업문화를 만드는 게 새로운 미래전략이라고 한다. 어떤 대기업은 갑자기 연공서열을 파괴하고 모든 호칭을 ~님, 또는 영어 이름을 쓰겠다고 공포했다. 솔직히 발표용으로는 좋은 기삿거리지만 나는 이런 소식을 접하면 굳이 저렇게 할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을 한다.

모든 회사가 똑같을 필요는 없다. 대기업은 그 나름대로 장점들이 존재한다. 흔히 대기업의 문화라고 하면 좋지 않은 생각만 떠올리게 된다. 특히 한국 대기업의 이미지는 딱딱한 수직적 조직, 줄타기, 정치 싸움, 관료주의, 갑질 등으로 대표되기 때문에 부정적인 면이 더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또한 이 회사의 문화이며, 어떻게 보면 이런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동안 살아남아서 오늘의 대기업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이런 회사들이 굳이 실리콘밸리 회사들의 문화를 그대로 모방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세상은 바뀌고 있고 이에 적응하려면 사람도 변해야 하고 기업도 변해야 한다. 하지만 그 변화는 context 기반의 변화이어야 한다. 즉, 기업의 성장 배경, 판매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성격, 기업이 위치한 나라의 문화, 조직원들의 성향 등이 반영된 자기만의 변화를 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이 아니다. 문화와 역사가 엄연히 다른 나라이다. 특히, 실리콘밸리라는 지역은 미국의 다른 지역과도 매우 다르고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 동네의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무형자산인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대부분 제조업이나 무역업으로 시작했고 모든 산업에 걸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채용하는 직원들도 대부분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의 고유한 교육을 받은 한국인들이다. 이렇게 DNA 자체가 다른 한국의 대기업들이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을 따라 하는 건 체질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삼성의 역사는 78년, 현대는 69년이다. 반면에 구글은 18살이고, 페이스북의 역사는 12년밖에 되지 않았다. 실은 삼성과 현대가 훨씬 오랫동안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살아남았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잘할 수 있었던 이유가 어쩌면 우리가 항상 욕하고, 대기업의 임원들이 실리콘밸리와 비슷하게 바꾸고 싶어 하는 ‘구시대적’인 기업문화일 수도 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기업의 문화는 겉으로 보면 솔직히 한국 대기업보다는 훨씬 섹시하기 때문에 따라 하고는 싶다. 하지만 이들은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하고 성장한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이런 문화를 갖게 된 것이다. 정장을 입던 한국의 대기업에 갑자기 양말도 신지 않은 하얀 다리에 반바지와 구두를 신고 나타난 어색하고 촌스러워 보이는 직원과 임원들이 ‘과장’ , ‘이사’ 와 같은 호칭이 아니라 서로에게 ‘톰’ 또는 ‘제인’ 이라는 영문 이름을 쓰는 걸 상상하면 정말 손발이 다 오그라든다. 이렇게 하면 기업의 창의성이 더 오른다는 발상은 정말 잘 모르겠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변해야 한다. 하지만, 잘 연구해서 그들만의 방법을 찾아서 변화해야 한다. 누구나 다 구글이 될 수도 없지만, 누구나 다 구글이 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