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바둑 두기

stones_of_enlightenment_by_nooooooo87‘미생’은 수많은 명장면과 명언을 탄생시켰다.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둑이 있다” 였다. 그렇게 안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끔은 나를 찾아온 창업가들한테 이래라 저래라 훈수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럴때마다 미생의 이 에피소드를 떠올린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둑이 있고, 그 결과는 경기가 끝나봐야지 알 수 있는데 내가 뭘 안다고 훈수질을 하고 있을까.

창업가들을 보면 대부분 남들이 가지 않는 길들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남들이 하는대로 따라하지 않고 자기만의 바둑을 묵묵히 두는 사람들이다. 험하고 쉽지 않은 세상에서 자기만의 바둑을 둔다는거 자체로도 나는 이 분들한테 존경을 표시하고 싶다. 자기만의 바둑을 둔다는거…겉으로 보면 멋져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굉장히 배고프고, 힘들고, 약간 미친 짓이다. 남들이 하는대로 하면 되지 왜 입증되지도 않고 승리가 보장되지도 않은 자기만의 바둑을 두고 있는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것 자체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스스로 매우 답답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여기에 더 많은 불확실성, 스트레스 그리고 짜증을 더하는건 바로 다른 사람들의 훈수이다. 자기만의 바둑을 두면 엄청난 훈수와 지적을 받을 것이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 나를 믿는다고 생각했던 가족들, 업계 사장님들, 비즈니스 파트너들, 투자도 하지 않은 투자자들, 그리고 투자한 투자자들. 이 모든 사람들이 한 마디씩 훈수질을 할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나도 본의아니게 가끔 이런 훈수질을 한다.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것 같다. 나에 대해서는 항상 관대하지만 남에 대해서는 뭔가 지적을 해야지만 내가 더 똑똑하고 잘난 사람같이 느껴지는 인간의 본능 때문인거 같다.

자기만의 바둑을 두고 있는 사람들한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훈수를 하겠지만, 낯 두껍게 그냥 다 무시하세요. 계속 자기만의 바둑을 두세요. 그리고 이기세요. 반드시 이겨서 내 바둑이 옳았고, 내 목소리가 가장 크다는걸 그동안 당신들을 믿지않고 훈수했던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보여주세요.

자기만의 바둑을 두다가 패배하는게 평생 남의 바둑만 두는 것 보다는 의미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jlel.deviantart.com/favourites/42010620/Go-Wei-Qi>

글로벌 진출 – 첫 번째 사람

“글로벌 진출”

이 말 한국와서 정말 신물나게 들었다.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상대적으로 작은 한국 시장을 넘어서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건 모든 한국 기업인들의 꿈이자 지상과제이다. 좋은 말이다. 당연히 글로벌 시장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 중 한국 밖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성격의 회사라면 다 글로벌 시장 진출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오늘은 글로벌 시장에 대해서 몇 자 적어보고 싶다. 참고로 내가 그나마 조금 알고 경험한 유일한 글로벌 시장은 북미 시장이기 때문에 이 내용들은 대부분 북미 시장에 국한되어 있다.

창업가들에게 왜 북미 시장으로 진출해야 하는지 물어보면 10명 중 9명은 미국 시장이 한국 시장보다 10배 이상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것은 10배 이상 큰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하는건 100배 이상 어렵다는 점이다. 북미 시장은 세계 최대의 시장임은 확실하지만 그만큼 미국 어렵다. 나도 뮤직쉐이크를 5년 정도 북미에서 운영하면서 매일 몸으로 경험했던건 바로 “미국 고객에게 뭔가를 파는건 너무너무 어렵다”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 스타트업들은 북미 시장 진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 어떤 스타트업도 아직까지 글로벌 시장 진출에 성공하지 못 했다. 많은 꿈, 자신감, 허상과 자원을 가지고 미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모두 다 보란듯이 실패했다. 왜 그럴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수는 없을것 같지만 그래도 굳이 한가지를 꼽아 보라고 하면 바로 사람을 채용하지 못해서인 거 같다. 한국 스타트업들이 성공적인 미국 시장 진출을 하려면 사람을 잘 뽑아야 하는데, 삼성이나 LG와 같은 대기업들도 이걸 잘 못 하니 스타트업들한테는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실은 제대로 된 사람을 채용해야 하는건 너무나 당연한 말 같이 들리겠지만, 실은 그 누구도 하지 못하는 어려운 일이다.

요새는 달라졌지만 5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한국 스타트업들이 미국 시장 진출할때는 미국 시장을 모르는 본사의 사장님이 직접 가거나 본사 인력으로 구성된 ‘별동부대’를 보냈다. 이 조직의 구성원들은 현지 근무경험이 있거나 영어실력이 있다기보다는 거의 본사에 오래 근무한 사람들인데 단지 본사에서 근무경험이 있기 때문에 비즈니스에 대해서 더 잘 안다고 생각을 하고, 이런 사람들이 처음에 미국 시장에서 판을 잘 깔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실패의 지름길이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걸 지난 5년 동안 경험한거 같다.

이제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북미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현지에서 사람을 채용하려고 한다(단, 창업팀이 미국에서 자랐고 공부했다면 직접 한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아무도 모르는 스타트업에 조인할 제대로 된 미국인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많은 회사들이 좌절하고, 채용은 힘들고 시간은 없으니까 그냥 미국에서 공부했고 영어 좀 하는 한국인이나 교포들을 채용하는데 이렇게 해서 성공한 회사도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첫 번째 사람을 채용하지 못하면 미국 시장 진출을 접거나 제대로 된 사람을 찾기 전까지는 미루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 사람이 중요하다.
이 첫 번째 사람을 뽑을때 고려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스킬은 바로 현지 산업의 네트워크 이다. 이 첫 번째 사람을 잘 뽑아 놓으면 미국 시장에서 시작을 잘 할 수 있다. 시작을 잘 하면 비즈니스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 지는데, 본격적으로 성장을 하려면 더 많은, 더 좋은 현지 인력들이 필요하다. 두 번째 사람, 세 번째 사람, 그리고 이들로 구성된 top 실력의 핵심팀을 만들어야 한다. 이 첫 번째 사람을 잘 뽑아 놓으면 이 사람이 알아서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대부분의 핵심인력을 모두 단 시간 내에 채용할 수 있다.

이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네트워크가 약하면 비즈니스의 성장을 위한 추가 인력을 뽑는데 상당히 고생을 하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을 인터뷰하고, 불확실한 인터뷰 결과를 기반으로 사람을 뽑았는데 같이 일하다 보니 아니다 싶으면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새로운 시장에서 빨리 움직여야하는 스타트업한테는 상당히 좋지 않다. 하지만 과거에 같이 일해본 경험이 있어서 실력있고 믿을만한 그런 사람들이 이 첫 번째 사람의 네트워크 안에 있다면 많은 것이 해결된다. 물론, 미국 시장에서 이런 네트워크가 있다는 건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일단 영어가 자유롭고, 미국에서 공부를 했고, 일을 했기 때문에 이 분야의 좋은 네트워크가 있다는 의미이다.

현실적으로 이제 갓 시작한 스타트업들이 북미시장에서 이런 인력들을 찾는다는건 정말 힘들다. 하지만 한국을 나가서 글로벌 시장에 제대로 진출하기를 원한다면 이런 좋은 네트워크를 보유한 인력, 즉 첫 번째 사람을 정말 잘 뽑아야 한다. 그러면 글로벌 진출의 90% 이상이 해결된 것이다.

해본 vs. 안 해본

미국이나 한국이나 우리 주변에는 입만 살아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특히나 일을 함에 있어서 정작 본인들은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남이 하는 일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훈수 두는 사람들이 많다. 전에 내가 ‘해보긴 해봤어?‘ 라는 글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자세히 적어봤는데 2009년도나 2016년도나 몸은 가만히 있으면서 입만 살아서 남을 평가하는데 인생을 바치는 인간들을 이번 달에도 너무 많이 만났다. 이들을 보고 있자면 마치 ’10대 섹스(=teenage sex)’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10대들의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남녀 불문하고 섹스 이야기를 꽤 많이 한다. 모든 10대들이 섹스 이야기를 하지만, 실제로 물어보면 섹스를 경험한 10대는 거의 없다. 하지만, 마치 누구나 다 해 본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우리도 항상 talking 보다는 doing을 강조 하는데, 직접 해보는건 정말 중요하다. 아무리 글로 공부하고, 남들이 자세히 설명을 해 주어도 가장 빨리 배우는 방법은 직접 해보는 것 이다. 창업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 아무리 창업에 대한 책을 많이 보고, 창업학과를 나오고, 친한 친구의 창업 경험을 들어도 내가 직접 해보면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한다. 그리고 내가 직접 뭔가를 해보면 몸이 그 경험을 기억하기 때문에 절대로 잊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경험들이 몸에 차곡차곡 쌓여야지만 일을 함에 있어서 정확한 본질과 핵심을 꿰뚫어 볼 수 있다.

해보는게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 이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 해봐야지만 비로소 해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2008년 뮤직쉐이크를 운영하면서 UCLA의 Spring Sing 이라는 음악 행사를 스폰서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기념품으로 우리는 행사에 오는 모든 학생들에게 CD를 하나씩 주기로 했다. 이 CD에는 뮤직쉐이크 프로그램 설치파일과 뮤직쉐이크로 만든 곡 중 가장 인기 있는 곡 10개가 담겨져 있었다. 그런데 CD를 너무 많이 구워서 행사 끝나고 보니 몇 백장의 재고가 남았다. 이걸 버릴까 하다가 회사 근처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무료배포를 시도했다. 솔직히 쪽 팔리기도 하고 미국 초등학생들한테 CD를 배포하는게 두렵기도 했지만 일단 해보기로 했다. 열심히 약 장수를 하고 있는데 누가 신고해서 온 경찰한테 두 번이나 잡혀갈뻔하고 포기를 했다. 그리고 결국 CD는 다 폐기처분했다.

그런데 이 짓을 한 번 해보고나니 길거리에 나가서 모르는 사람들한테 접근을 하고 우리 제품을 설명하는데에는 도사가 되었다. 거절을 당해도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또 다른 새로운 사람에게 우리 제품을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기까지 했다. “해보니까 별 거 아니네” 라는 경험을 몸이 익혔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스타트업 바이블에서도 자주 인용했던 루스벨트 대통령의 파리 소르본 대학 연설 내용 일부인데 여기서 한번 더 인용해 본다:

“중요한 것은 비평가들이 아니다. 공(功)은 실제 경기장에서 먼지와 땀 그리고 피에 뒤범벅되어 용맹스럽게 싸우는 자의 몫이다. 그는 실수하고 반복적으로 실패한다. 또, 가치 있는 이유를 위해 열정과 헌신으로 자신을 불태운다. 무엇보다 그는 마지막에 주어지는 위대한 승리와 패배를 알기에, 그것들을 전혀 모르는 차갑고 겁 많은 영혼들과 결코 함께하지 않는다.”

직접 해봐라. 그리고 해보지 않은 자들의 말은 듣지 말고 이들과 어울리지도 말아라.

VC 로서의 시행착오

우리가 항상 투자사들한테 하는 말이 있다. 어차피 아무도 안 해봤기 때문에 해보기 전 까지는 모르니, 여러가지 가설을 설정하고 시행착오를 통해서 이 가설들을 하나씩 입증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천천히 product fit과 market fit을 찾아가면서 자리를 잡는게 가장 이상적인 제품의 개선 과정이지 않을까 싶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 또한 영원한 베타의 연속 작업이다. 나는 직접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제품을 개발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난 몇 개월 동안 나도 투자자로서 이런 시행착오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선배 투자자들이 조언해 주신걸 이제서야 나는 느끼고 경험하고 있는데, 솔직히 투자를 하면 할수록 성공적인 투자 기준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진다. 이 업을 시작할때는 굉장히 자신감에 차 있었다.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맞는 회사에 투자를 하면 무조건 대박이 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는 좀 달랐다. 너무나 잘 될 거라고 믿었던 회사들이 오히려 잘 안되고, 그냥 적당히 잘 하겠지 라고 생각한 회사들이 굉장히 잘 되었다. 그래서 한때는 첫 인상이 별로인 회사들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했던 적도 있었는데 이것도 좋은 전략은 아니었다. 실은 지난 몇 년 동안 나도 이런저런 테스팅을 하면서 투자를 했다. 가설을 많이 세우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틀린 가설들을 내 리스트에서 지워나갔다. 한때는 학벌이 좋은 창업팀에 투자를 했고, 한때는 학벌이 좋지 않은 팀에도 투자를 해봤다. 똑똑하고 말을 너무 논리있게 잘 하는 대표이사한테도 투자를 해봤고, 일부러 말을 어리버리하게 하는 대표이사한테도 투자를 해봤다. 비슷한 분야에 있는 회사들에도 투자를 해봤고, 여러 회사 중 가장 잘 할 수 있는 한 회사에 몰빵을 해 본 적도 있다.

수 많은 가설을 테스트해보고 내가 배운 건? 솔직히 별로 없다. 4년 동안 51개의 회사에 투자를 한 후에 내가 배운거라곤 투자라는게 너무나 어렵고, 변수가 워낙 많다보니 정말로 그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이제는 누가 나한테 어떤 회사에 투자를 해야지 성공할 수 있냐 라고 물어보면 나는 자신있게 “잘 모르겠어요” 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정말로 투자를 하면 할수록 잘 모르고 물음표가 더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운 건 없지만, 크게 느낀게 하나 있다. 기술도 중요하고 제품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는 이 바닥에서 남들보더 더 잘해서 성공하려면 뭔가 더 필요하다는걸 항상 느낀다. 그건 아마도 창업팀의 의지인거 같다. 이 비즈니스를 정말로 제대로 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 팀인지, 그리고 비즈니스를 하다보면 분명히 계획대로 안 될 것이고 어려움이 닥칠텐데 넘어질때마다 매번 다시 일어나서 싸울 수 있는 그런 팀인지가 성공의 핵심인거 같다. 하지만 이런 의지를 가진 창업팀인지를 판단하는건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내가 이 창업팀을 잘 모를 경우. 우리도 이런 의지를 가진 팀이라고 생각하고 투자를 했는데, 같이 일을 해보니까 형편 없었던 경우도 있고 이와는 반대로 의지가 약한 팀이라고 생각했지만 같이 일해보니까 예상보다 훨씬 더 ‘단단한(=strong)’ 팀인 경우도 있었다.

그럼 이런 팀들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내가 개인적으로 오래 알고 지낸,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위에서 말한 그런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걸 시간을 통해서 내가 직접 경험하고 목격한, 그런 팀들한테 투자를 했을때 이 성공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 얼마전에 우리는 와이파이 기반의 위치 정보 API를 제공하는 로플랫에 투자를 했다. 로플랫의 대표이사 구자형 박사는 내 고등학교 친구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LG 전자에서 일할때부터 옆에서 봤기 때문에 좋은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는걸 나는 직접 목격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스타트업이 제품을 만들면서 product fit과 market fit을 찾듯이, 우리같은 투자자들도 최적의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행착오를 통한 실험을 한다. 나도 많이 했고 지금도 계속 하고 있지만, 당분간은 이런 각도로 투자를 하지 않을까 싶다.

[리블로그] 시작은 항상 어려워

screen-shot-2014-01-23-at-7-23-03-pm일을 함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건 역시 ‘시작’ 그 자체이다. 워튼 MBA 중퇴를 시작으로 남들이 무모하다고 생각하고, 나도 자신이 없고 두려웠던 일들을 지르기 시작한지 이제 거의 10년이 다 되어간다. 나름대로 여러가지 일들을 질렀다고 생각하는데, 지른 후에 일을 진행하면서 수습하는것도 항상 힘들었지만 역시 가장 힘들었던건 두려움과 공포감을 극복하고모른척하고 그 일들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제 왠만한 새로운 일들에 대해선 두려움도 별로 없고, 고민하지 않고 그냥 시작하는데 매우 익숙해져 있다고 나름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건 항상 망설여진다. 실은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고, 과거보다는 조금은 더 편안한 위치에 올라와 있을수록 잃을게 많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몸을 사리게 된다.

얼마전에 새로운 일들을 시작해야 하는데 지르지 못하고 계속 계산하고 망설이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일반인들 보다는 리스크를 환영하는 편이고, 하나부터 열까지 따지지 않고 지르는 습관을 그동안 몸에 익혀왔지만 그래도 시작하는거는 – 즉, 첫 번째 발걸음을 내딛는 – 여전히 공포스러웠다. 잠도 며칠 설쳤다. 그러다가 전에 내가 쓴 글을 읽고 다시 한 번 용기를 얻었고, 신념의 도약으로 시작을 했다. 시작하고 나니 역시 그 이후 일들은 항상 그랬듯이 알아서 잘 수습하고 있다.

역시 시작은 항상 어렵다. 모든 일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건 시작이다. 하지만, 일을 진행시키려면 누구나 다 시작을 해야한다.

[과거글: 첫번째 발걸음 (The first step)]

영화 “인디아나 존스 3: 최후의 성전”을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이다 – 보신 분들은 영화 막판에 다음 장면을 기억하실 거다. 최후의 성전이 보관되어 있는 요르단 페트라 사원에 인디아나 일행은 도착하지만, 성배를 찾기 위해서는 3가지 관문을 통과해야한다. 그 중 마지막 관문은 성배가 있는 건너편 계곡으로 가는건데, 여기서 인디아나 존스는 신에 대한 믿음, 아버지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자신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눈을 꽉 감고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몸을 맏긴다. 떨어질것만 같던 계곡에는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다리가 있었고, 인디아나 존스는 무사히 이 다리를 통해서 성배가 안치된 곳으로 갈 수 있었다.
바로 ‘신념의 도약 (The Leap of Faith)’ 이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구속을 싫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남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사업을 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하지만, 막상 편하고 안정적으로 일하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만의 비즈니스를 시작할때 밀려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나 스스로에 대한 불확실함을 극복하기란 말처럼 쉽지가 않다. 나 또한 그 상황을 여러번 경험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그런 상황이 어렵다는걸 잘 알고 있다. 어떻게 보면 마치 위에서 말한 인디아나 존스가 바닥이 보이지 않던 컴컴한 계곡으로 첫발을 내디미는 힘든 결정의 순간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나한테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신념의 도약’의 순간을 공유하자면, 2008년도에 잘 다니던 세계 최고의 경영대학원 워튼 스쿨을 그만두고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LA로 이사가서 벤처를 해야하냐 말아야하냐 결정해야했던 순간이었다. 일단 나는 한국에서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엄청난 돈과 시간을 투자하면서 MBA 2년 과정을 시작하기 위해서 머나먼 미국땅으로 왔었다. 또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 이제는 가족이 있었고, 결혼과 함께 새로운 extended family (처가집)의 멤버가 된 상태였다. 잘 다니던 학교를 때려치우는 이유에 대해서 가족들한테는 뭐라고 설명할 것이며, 이 행동을 어떻게 스스로에게 정당화 할 것인가.
당시 내 심정을 나는 내 책 <스타트업 바이블>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잘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아직 검증도 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스타트업을 미국에서 혼자 운영하라니,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본능처럼 나를 엄습했다. 현재 다니고 있는 학교만 졸업해도 앞으로 편하게 살 수 있을 텐데, 굳이 불 속으로 뛰어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아내와 부모님 그리고 장인어른, 장모님께는 대체 뭐라고 말씀드린단 말인가? 답을 찾지 못한 나는 결정을 미루고 또 미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학교를 그만두면서까지 뮤직쉐이크를 책임져야 할 이유는 여전히 찾을 수 없었지만,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기회를 포기한 것에 대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하고 몇 번이고 자문했지만, 그때마다 대답은 ‘No’였기 때문이다. 1999년부터 내 마음을 끊임없이 괴롭히던 열병에 종지부를 찍을 날이 온 것인지도 몰랐다.
2008년 2월 20일, 나는 와튼 스쿨에 휴학계를 냈다. 그리고 범죄의 도시 필라델피아를 떠나 햇살이 쏟아지는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에 뮤직쉐이크의 미국 지사를 차렸다.

이 글을 어떤 분들이 읽는지는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짐작하건데 그 중 많은 분들이 내가 몇 년 전에 했던 고민을 하는걸로 알고 있다. 남을 위해서 일하기보다는 스스로 창업을 하고는 싶지만, 막상 이런저런 계산을 해보면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아서 갈등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을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자기 사업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분들이 어디있겠냐…
그런 분들을 위해서 내가 여기서 말하는 ‘첫번째 발걸음’을 내디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확인해야할 것들을 몇가지만 간단하게 공유해본다:

1. 후회 비용 – 경제학에서 우리는 기회비용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내가 MBA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2억원이라는 등록금이 필요한데, 실제 비용은 그 이상이다. 왜냐하면, 2년 동안 MBA를 하지 않고 직장에서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비용을 우리는 기회비용이라고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후회 비용은 “내가 지금 창업을 하지 않고 그냥 직장 생활을 하면, 10년 후에 나는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그리고 그때 가서 후회하는데 소모되는 내 정신적 스트레스가 (비용) 그동안 내가 벌 수 있었던 연봉과 직장생활에서 얻는 만족감/후회감 보다 더 클까 또는 적을까?”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을 때 과연 내 대답은 어떨지를 잘 판단해야한다. 나의 경우, 결론은 너무나도 뻔했다. 나는 후회라는 단어 자체를 너무나도 싫어했으니까.

2. 가족들의 동의 – 싱글이라면 상관없지만 처자식이 있다면, 이 첫번째 발걸음을 내디기 전에 반드시 그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특히, 와이프의 동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간혹, 주위에 미혼남녀가 “부모님이 반대하셔서요..”라는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정직해질 필요가 있다. 부모님이 반대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나약함과 우유부단함을 부모님 탓으로 돌리는 거겠지
나 또한 결정을 하기전에 와이프한테 100% 허락과 동의를 받은 후에 움직였다. 뭐, 반대했어도 어떻게 해서든 설득을 했겠지만 ㅎㅎ. 가족도 설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사업을 한단 말인가. 그리고, 창업도 좋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거는 가족이라는걸 잊지 말자. 가족을 불행하게 만드는 결정은 안하는게 좋다.

3. 솔직해지기 -MBTI란 성격유형검사가 있다. 많은 기업에서 필수적으로 시키는 test인데 나도 두번 한적이 있는거 같다.이 테스트를 하면서 내가 느꼈던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성향을 정확하게 기입하기 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성향을 기입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즉, 내성적인 사람은 테스트의 결과가 외향적인 성향이 나올 수 있도록 성향을 기입하는 경우를 더 많이 봤다.
솔직히 이런 테스트야 거짓말을 해도 상관 없다. 하지만, 신념의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한테 1000% 솔직해져야 한다. 과연 내가 이걸 할 자신이 있을까? 그리고 죽이되던 밥이되던 죽을 각오로 덤빌 준비는 되었는가?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냉정하고 솔직하게 물어봐야한다.

4. No room for Plan B – 많은 사람들이 일을 시작해보기도 전에 ‘혹시 이게 안되면’이라는 생각을 전제로 plan B를 항상 만들어 놓는다. 물론, 일이란게 하다 보면 안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차선책을 마련해 두는건 훌륭하고 어떻게 보면 기본적인 전략이다.
하지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차선책은 도움보다는 방해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차선책이 있다는걸 알면 반드시 그 차선책 쪽으로 발걸음을 향하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 이었지만 워튼에서 MBA 한학기를 하면서도 이런 성향을 다시 한번 느낄 수가 있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MBA 학위를 취득한 후에 커리어를 바꾸고 싶어한다. 전직 엔지니어들은 졸업 후 월가에서 투자은행가나 경영 컨설턴트를 꿈꾸는 이들도 많았는데, 이들의 커리어 전략을 보면 “뱅킹이나 컨설팅을 하고는 싶지만, 나는 그쪽 경험이 없기 때문에 혹시 나중에 인터뷰해서 안될 경우를 대비해서 차선책으로 다른 IT 회사랑 인터뷰를 해야지.”가 굉장히 많다. 내가 장담하건데 이런 친구들은 모두 본인들이 원하는 뱅킹이나 컨설팅보다는 차선책의 직장을 얻게될 것이다. 인간은 항상 더 편하고 수월한 방법을 택하기 때문이다.

5. 계산은 금물 – 이걸 하는게 과연 맞을까 하면서 비용 대비 효과와 같은 이런저런 계산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계산은 절대 금물이다. 왜냐하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을 하는건 수학적으로 절대로 계산이 안나오기 때문이다. 당연히 미친 짓이고, 결과는 항상 “그냥 현재 다니는 직장이나 잘 다니자”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그냥 지르는 수밖에 없다. 하느님을 찾든, 부처님을 부르든 신념을 가져라.

영화 “인디아나 존스3: 최후의 성전”의 결말에서 인디아나 존스는 결국 성배를 찾지만, 유감스럽게도 집으로 가지고 오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 참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쩌면 성배를 찾는 과정에서 성배 그 자체보다 더 갚진 경험과 재산을 얻을 수 있었다. 바로 위에서 말한 오랫동안 연을 끊고 살았던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그리고 신에 대한 경외심 등이 그런것이다. 그럼 나는?
인디아나와 마찬가지로 나도 아직까지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불행하고 유감스러운 일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워튼을 휴학하고 뮤직쉐이크를 시작한게 과연 잘한 결정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때 학교를 제대로 졸업하고 MBA를 취득했다면 지금쯤 내 삶이 어떻게 되었을까…물론,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 어딘가에서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 일을 하면서 바쁘게 살고 있겠지. 지금 보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결국엔 윗사람들 따까리나 하면서 시키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남들이 그려놓은 시작점과 결승점을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물론, 지금으로써는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 결정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아마도 한 10년 후에나 알게 되겠지. 중요한거는 현재 나는 나의 선택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만족스럽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위해서 일하는걸 모두에게 해보라도 당당하게 권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창업을 함에 있어서는 첫번째 발걸음이 – the first step – 가장 두렵고 힘들다. 하지만, 일단 첫걸음을 내디면 두번째, 세번째 그리고 그 이후의 걸음들은 그닥 힘들지 않을것이다. 아니, 힘들더라도 계곡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계속 앞으로 나갈 것이다.

남들이 뭐라하던, 주위의 부정적인 시선을 신경쓰지말고 그 첫번째 발걸음을 질러라. 그리고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해라.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인디아나 존스와 같이 신념의 도약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미지 출처 = https://tborash.wordpress.com/2014/01/23/the-early-adopters-dilem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