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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빗에서 비트코인 ETF까지

1월 10일 미국 SEC가 비트코인 ETF를 승인했다. 우리가 한국 최초의 비트코인 거래소 코빗에 첫 투자를 했던 게 2013년 8월인데, 내 기억으론 이 시점에 미국에서 윙클보스 형제가 최초로 비트코인 ETF를 신청했다. 이후 계속 거절, 반려, 그리고 보류를 계속 당하다가 거의 10년 만에 승인받은 건데, 솔직히 나는 이번에도 거절당할 줄 알았다. 그래서인지, 여러 ETF가 승인받았다는 소식을 접했을 땐 약간 비현실적인 느낌까지 들었다.

우린 2013년도에 코빗에 투자했고, 코빗이 넥슨의 지주회사 NXC에 인수되면서 좋은 훈장(=엑싯)을 얻었기 때문에 코빗과 코빗의 창업팀에 매우 고마운 감정을 평생 갖고 살 것이다. 하지만, 이 엑싯 외에도 코빗에 항상 고마운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건 바로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우릴 인도했다는 점이다. 2013년이면 한국에서 비트코인 자체가 거의 안 알려졌을 때이고, 일반인은커녕, 투자자들도 암호화폐나 비트코인이 뭔지 전혀 모를 적이다. 우린 코빗 덕분에 이 흥미롭고 새로운 기술을 알게 됐고, 이후에 비트코인이 암호화폐, ICO, NFT, DAO, Web3로 진화하는 걸 아주 가까이 관찰할 수 있었다. 이 중 많은 것들이 거품같이 꺼졌고, 우리도 이 거품에 투자하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론 모든 게 배움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비트코인 ETF가 승인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감회가 남달랐고, 코빗에 처음 투자할 땐 상상도 못 했던 시장이 10년 만에 왔다는 생각까지 했다. 이젠 나보다 이 시장에 대해서 훨씬 많이 알고, 훨씬 더 투자를 많이 하는 분들이 한국에도 상당히 많기 때문에 비트코인 ETF에 대해서 여러 말은 하지 않겠지만, 어쨌든 그동안 비트코인에 직접 투자하길 꺼렸던 많은 기관 투자자들의 암호화폐에 대한 접근이 대폭 확대될 것이고,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전반에 대한 제도화가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벌써부터 이더리움 ETF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긴 하지만, 이건 또 다른 이야기이다.

ETF가 승인된 지 이제 한 달이 넘어 가는데, 왜 비트코인 가격이 1억 원으로 상승하지 않는지 불만인 사람들이 내 주변에 상당히 많다. 오히려 승인받은 후에 가격이 떨어진 것 같은데, 나는 오히려 이게 좋다. 이제 암호화폐가 서서히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비트코인 가격이 미친 듯이 요동치면 또다시 여론의 공격 받을 것이고, 법과 정책은 여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이후에 생길 수 있는 다른 암호화폐 ETF와 같은 금융 상품 승인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비트코인 가격에 큰 변화가 없는 게 다행인 것 같다. 물론, 장기적으론 더 올라갈 것으로 생각하는데, 과거와 같이 수직상승 하거나 수직하강 하지 않길 바란다.

많은 분들이 비트코인 ETF 승인에 1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는 걸 매우 오래 걸렸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매우 빨리 승인됐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AI가 처음 시장에 등장한 게 거의 30년 전이다. 최근에 Gen AI와 ChatGPT의 등장으로 AI가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진입했는데, 실은 이게 하룻밤에 일어난 건 아니고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비트코인 ETF가 승인받는 데 10년 걸린 건 어쩌면 굉장히 빨리 진행된 거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기대된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했던 이 말이 요새 계속 생각난다.
“If the last 20 years was amazing, the next 20 will seem nothing short of science fiction.”

Vamos Strong!

모든 게 새로운 세상

올해는 스트롱 모든 팀원분들이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CES를 다녀왔다. CES 이후에 프라이머사제가 주최하는 미국의 가장 큰 한인 tech 행사인 82 Startup Summit 2024도 참석했고, 이후에 미국에서 각자 일을 보고 서울로 복귀했다.

나는 한국에 일들이 많아서 사무실을 지켰는데, 현지에서 팀 동료분들과 지인분들이 전달해 주는 CES 관련 소식과 사진을 계속 봤는데, 무척이나 futuristic한 제품과 서비스가 꽤 많았고 매우 흥미로운 회사들도 많았던 것 같다. 특히 올해가 참 흥미로웠던 게 몇 가지가 있었다. 일단 CES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매우 커졌다. 이 기간에 라스베가스 인구 절반이 한국인이었다는 농담도 있었는데, 한국이 뭔가를 안 하면 안 했지, 만약에 하면 대충 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해 주는 또 하나의 좋은 본보기였다. 또한, CES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과 LG의 존재감은 항상 컸고, 올해도 좋은 기술과 제품을 발표했는데 이제 자동차 산업이 진화하면서 모빌리티가 CES의 큰 주제가 됐고, 이 분야의 글로벌 강자인 한국의 현대와 기아의 존재감 또한 매우 컸다. 즉, 한국의 기술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고, 한국인들의 글로벌 시장 참여 또한 더 좋아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나는 해석했다.

자동차와 비행기 같은 무거운 하드웨어, 이 하드웨어를 제어하는 첨단 소프트웨어, 세상을 갈아 먹고 있는 AI, 그리고 이 중심에 있는 갈수록 똑똑해지는 우리 인간들. 이 모든 것들이 합쳐지고 있고, 그 결과는 몇십 년도 아니고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우리 앞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다. 나도 자주 말하지만, 이젠 죽도록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세상의 변화를 따라갈 수가 없고, 어떤 변화는 죽도록 열심히 노력해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로 이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정신 차리고 내 주변을 보면 모든 게 새로운 세상이다.

내가 VC 투자를 하면서 좋아하게 된 몇 가지 명언들이 있는데,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저자인 더글라스 아담스가 이런 말을 했었다.

“태어날 때부터 있던 건 정상적이고, 이 세상의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부이다. 15세에서 35세 사이에 개발된 건 새롭고, 흥미진진하고, 혁신적이지만, 이걸 잘 공부하고 연마하면 좋은 직업이 될 수 있다. 35세 이후에 개발된 건 비정상적이고,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올해 나는 50이 됐다. 위 말에 의하면, 이미 지난 15년 사이에 개발된 건 나에겐 비정상적이고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라서 어차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니 굳이 이렇게 힘들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건 시간 낭비라는 뜻인데, 모든 게 너무 새롭다고 느끼는 게 어쩌면 너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현실은 이 정도로 우울하진 않다. 그래도 요새 만나는 스타트업들의 비즈니스를 절반 이상은 잘 이해하고, 나머지 절반의 절반은 조금 노력하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로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잘 이해 가지 않는 기술이나 사업이 있는데,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투자하지 말자는 주장은 더 이상 하지 않고 있다.(실은, 과거에는 나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업에는 절대로 투자하지 않았다).

대신,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 나보다 더 똑똑하고 감이 좋은 다른 스트롱 동료분들의 의견과 판단에 맡기거나, 그냥 이해하지 않고 믿으려고 노력한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이 꽤 있는데, 다행히 잘 안되는 곳 보단 잘하는 곳들이 많고, 이 창업가들을 볼 때마다 내 기준에 새로운 세상이라서 스트레스받지 말고, 새로운 세상에 내 기준을 맞춰야 한다고 다짐한다. 비록 이 모든 걸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AI 창업가 현황

요새 글로벌 벤처 시장 관련 자료를 보면, 시장이 바닥을 쳤고 서서히 반등하는 트렌드가 보이지만, 막상 내가 시장에서 느끼고 있는 건 오히려 이 반대이다. 바닥은커녕 아직도 내려갈 공간이 너무 많아서 2024년 하반기에는 경기가 좀 좋아지지 않겠냐는 개인적인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 불길한 예감이 들고 있다. 그래서 글로벌 벤처 시장 수치를 조금 자세히 보니까, 전체적인 시장이 리바운드하기보단, 특정 섹터와 회사에 일시적으로 돈이 몰리고 있는 것 같은데, 그 특정 섹터가 바로 AI이다.

다른 섹터의 스타트업은 정말 어렵게 펀딩하고 있고, 대부분 펀딩을 못 받고 있는데, AI 분야의 회사는 내가 봤을 때 말도 안 되는 밸류에이션에 큰 투자를 받고 있고, 이런 트렌드가 전반적인 벤처 시장의 수치를 왜곡하고 있다는 좋지 않은 느낌을 받고 있다. 테크 분야에서 10년마다 한 번씩 오는 큰 파도를 잘 타면 엄청난 회사를 만들 수 있는데, 1960년 대부터 10년마다 한 번씩 왔던 파도들을 보면 반도체, PC, 인터넷, 소셜, 모바일 등이 있다. 이 거대한 변화의 파도를 잘 탔던 창업가들과 스타트업들은 이제 어마어마한 기업들이 됐는데, 많은 사람들이 AI가 이 새로운 파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는 이걸 부인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이 파도가 블록체인이나 크립토라고 믿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틀린 것 같고, 오히려 나도 AI가 앞으로 10년 동안 엄청난 기회를 만들고 이 기회를 잘 포착한 창업가들은 거대한 기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요새 만나는 AI 관련 스타트업을 보면, 이런 큰 기회의 파도에 몸을 싣고 과감한 사업을 하기보단, 그냥 AI 분야에 돈이 많이 집중되고 있으니까, 어떻게든지 AI라는 키워드를 잘 활용해서 투자 받아보겠다는 회사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

나는 AI 전문가는 아니라서 이 분야에 대한 대단한 지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시장을 3개의 큰 그룹으로 보고 있다.

가장 바닥에서 인공지능의 초석을 깔고 있는 기업들은 칩을 만드는 회사들이다. GPU의 대명사가 된 NVIDIA와 같은 회사가 대표적인데, 이들이 만든 칩이 없으면 AI를 위한 가장 중요한 학습이 불가능해진다. 이 기업들은 AI 세상을 위한 배관을 만들고 깔아주는 회사들이다. 매우 중요하지만, 또한 매우 어려운 기술과 사업이기도 하다. 대규모 투자와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AI를 위한 GPU를 만들 수 있는 회사가 그렇게 많지 않다. 한국에서도 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타트업이 몇 개 있는데, 잘 되길 바란다. 더 빠르고, 더 많은 용량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칩들이 계속 개발되고 출시되고 있다.

이 칩들 위에 있는 회사들이 AI를 위한 언어모델(LM: Language Model)을 만들고 있는 곳들이다. ChatGPT를 만든 OpenAI가 LLM의 대명사가 됐는데, 구글, 네이버, 카카오, 그리고 중국의 대형 스타트업 등과 같은 글로벌 대기업과 큰 스타트업들도 이 분야에서 맹활약 중이다. 이런 언어 모델이 있어야지만 인공지능이 잘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언어모델을 만들고 학습시키는 작업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 작업 또한 돈이 상당히 많이 필요하고, 데이터와 엔지니어링 전문가들이 대거 동원되어야 하므로 작은 스타트업이 하기엔 쉽지 않다. 더 빠르고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칩을 통해, 사람의 뇌와 더 비슷한 생각과 결정을 할 수 있는 언어모델을 광범위하고 깊게 만들기 위한 전쟁을 이 분야의 회사들은 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윗단에는 다른 회사들이 만들어 놓은 언어모델을 활용해서 소비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consumer application을 만들고 있는 스타트업들이 있다. 굉장히 많다. 아니, 불필요하게 너무 많다.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AI 스타트업은 여기에 속한다. 실은, 일반 소비자들은 칩이니 언어모델이니, 잘 모르고, 알 필요도 없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원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 AI의 도움을 받는 거라서, 우린 이 분야에 큰 기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냥 다른 회사들이 만든 모델과 소비자를 연결해 주는 껍데기만 만들어 놓고, 이게 대단한 AI 애플리케이션이라고 홍보하는 창업가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게 요새 내가 느끼는 AI 창업가 현황이다. 물론, 이렇게 회사를 포장하고, 공부 좀 많이 한 분들을 회사에 영입하면 그나마 다른 분야의 회사보단 투자는 수월하게 받는 것 같다.

B2C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과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AI 레이어를 만들어야 하는데, 요새 우리가 만나고 있는 회사들은 이 반대의 플레이를 시도하고 있다. 일단 AI라는 매력적인 주제로 투자를 받은 후에, 그다음에 제대로 된 사업에 대해서 생각해도 된다는 창업가들이 너무 많은데, 어쩌면 이 사이클이 끝난 후에 남아 있는 창업가들에게 투자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