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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od Khosla & the “Next Tsunami”

vinod-khosla모든 사람들한테는 인생을 살면서 큰 결심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결정적인 계기들이 있을 것이다. 나한테도 지금까지의 짧은 인생을 살면서 이런 계기가 몇 번 있었는데, 공학박사가 되어서 자동차 엔진 설계를 하면서 대기업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려던 내 목표를 접고 순조롭지만은 않은 이 벤처/high tech 분야로 진로를 바꾼 결정을 하게 된 바로 그 “순간”이 며칠 전 문득 생각나서 여기에 기록을 한다. 벌써 10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그때 생각을 하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생긴다.

때는 1999년도 11월 스탠포드 대학 – 1학점짜리 세미나 수업인 “MS&E; 472 – Entrepreneurial Thought Leaders Seminar“를 듣기 위해서 Terman 공대 건물의 Skilling Auditorium에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이 수업은 모든 스탠포드 대학생 (학부/대학원)들이 수강할 수 있는 수업이며, 특별히 시험도 없고 숙제도 없는 세미나 수업으로써 그냥 수업마다 스피커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고, Q&A;를 한 후에 학교에서 간단하게 마련한 open 다과회를 통해서 socialize를 할 수 있는 내가 가장 좋아하였던 수업 중 하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 수업에서 초청하는 사람들이 그냥 단순히 교수나 대기업의 과장들이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의 Steve Ballmer, Cisco의 John Chambers, DFJ의 Tim Draper, Garage Technology Ventures의 Guy Kawasaki등 high tech 분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며 지금의 실리콘 밸리 형성에 지대한 이바지를 한 power player들이기 때문에 이 사람들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고 많은 학생 및 주위에서 일하는 professional들이 강의실을 금요일마다 (요새는 수요일 4:30~5:30에 하는 거 같다) 가득 채웠다. 이날 무대의 주인공은 KPCB (Kleiner, Perkins, Caufield and Byers: 세계 Top 5 VC 중 하나. Excite.com, Genentech, Netscape, Amazon, EA, Google 등 수많은 유수의 벤처 기업들을 초창기에 발견하여 투자하였다)의 간판스타 중 한 명인 Vinod Khosla였다.

-Vinod Khosla는 1955년 인도 Pune의 평범한 가정 (인도에서의 평범한 가정은 못사는 가정이다) 에서 태어났으며 자라면서 Andy Grove가 동유럽에서 미국으로 망명하여 인텔을 설립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본인도 high tech 분야에서 성공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인도의 MIT라고 불리는 IIT (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 인도에 여러 캠퍼스가 있는데 Vinod가 다닌 Delhi 캠퍼스가 가장 들어가기 힘들다)를 졸업하고 미국의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탠포드 대학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여기서 코슬라씨는 Sun Microsystems를 같이 창업하게 될 Scott McNealy를 만났고 스탠포드를 졸업한 1980년에 Sun Microsystems를 창업하였다. 그 이후 Kleiner Perkins에 바로 파트너로 조인을 하였고 오랫동안 high tech, 특히 인터넷 관련 회사들을 시작하는 창업자들을 도와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VC로서의 삶을 살다가 몇 년 전에는 스스로 독립하여 Khosla Ventures라는 주로 clean technology 관련 벤처기업들에 투자하는 새로운 VC firm을 설립하여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금도 스토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1999년도에 창업을 해서 Kleiner Perkins로 부터 투자 유치를 했고, Vinod Khosla나 John Doerr (또다른 Kleiner Perkins의 스타 VC)를 이사회에 영입하였다면 거의 대박 날 확률이 99.99%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즉, Vinod는 그 당시에 실리콘 밸리의 마이다스였다고 할까…. 이런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이 전설적인 인도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다. 아니, 이 장소에 앉아 있다는 사실 조차가 나한테는 큰 영광이었고 비싼 등록금을 내고 스탠포드로 온 보람을 느낀 순간들이었다. Vinod는 머리 좋은 공대 학생이 우연한 기회에 실리콘 밸리로 오게 된 이야기와 스탠포드 MBA 프로그램에서 Sun을 같이 창업할 동료들을 만나서 창업하게 된 경험담을 솔직담백하게 우리와 같은 미천한 학생들과 공유하였다. 실은 나는 이때 Sun이 “태양”이 아닌 Stanford University Network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인생을 산 사람이다.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대학을 졸업하고 (물론 IIT에 갈 머리였으면 나보다 훨씬 훨씬 우수한 사람이다 ㅎㅎ), 미국으로 유학을 왔고…. 뭐 여기까지는 나랑 비슷했지만, 그다음의 인생은 나와 크게 차이 나기 시작하였다. 당시만 해도 생각과 꿈을 많이 꾸었지만 실제로 실행에는 많이 옮기지 못하였던 나와는 다르게 생각을 많이 해서 목표를 정하고 실행을 하여서 성공하였다는 이러한 차이점들에 대해서 그 강의실에서 나는 더욱더 많은 생각을 할 기회가 있었다. Vinod가 이날 사용하였던 ppt 슬라이드 템플릿에는 큰 파도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발표하면서 “the Next Tsunami”라는 말들을 Vinod는 많이 언급하였다 (인도네시아 쓰나미 사건 이후부터는 이 말이 금기시되어 더 이상 Tsunami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Entrepreneur들이 추구하는 innovation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기존에 일하던 방식이나 존재하는 제품들을 더 좋고, 더 빠르고, 더 싸게 바꾸려는 innovation이 있고 (e.g. 더 성능이 좋은 CPU를 더 싸게 만들거나, 연비가 좋은 자동차를 만들거나 하는), 이와는 개념적으로 다른 기존에 없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나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New New Thing이라는 게 있다 (e.g. 온라인으로 책을 파는 Amazon.com이나 검색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모델을 널리 상용화한 Google과 같은). 어떤 게 더 innovative 한 거라고 정의할 수는 없지만, Vinod 본인은 스스로 후자에 더 많은 기대와 돈을 투자한다고 하였다. Sun Microsystems도 여러 개의 워크스테이션을 연결할 수 있는 저렴하고 효율적인 제품과 모델을 구상하는 도중에 창업하게 된 회사이고, 이 강의실에 앉아 있는 스탠포드 학생들이야말로 앞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로 – 즉, the Next Tsunami – 인류와 사회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The Next Tsunami” – 이 말이 오랫동안 가슴에 와 닿았다. 나는 왜 이 먼 미국 땅으로 비싼 등록금을 주고 왔을까? 박사학위를 받아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게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인가? 솔직히 그동안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이때 이런 생각들이 내 머리를 팍팍 자극하였고 Malcolm Gladwell이 말하던 소위 tipping point를 내 사고가 이 순간에 넘었던 게 아닐까 싶다. 좋은 학교에서 박사 학위 받아서 대기업에 engineer로써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는 거 보다는 분명히 뭔가 더 의미 있게 인생을 살 방법이 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미국까지 와서 유학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분명히 Vinod Khosla는 Stanford를 다니면서 가졌을 것이다. 저 인도 아저씨도 했는데, 나라고 못 하랴? (물론,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요새도 매일매일 팍팍 깨닫고 있다 하하). 45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연을 들으면서 점점 사고의 전환이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었으며 이상한 자신감이 가슴속에서 불쑥불쑥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왠지 기분이 점점 좋아지고 있었으며, 마치 안개가 자욱하였던 눈앞이 clear 해지는걸 느낄 수 있었다. 한 달 뒤에 나는 원래 전공이었던 기계공학을 그만두고 경영과학으로 전과를 하였으며, 원래 계획하였던 5년 박사 과정을 과감하게 접고 1년 3개월 만에 후다닥 석사 학위를 받은 후에 실리콘 밸리의 Valicert라는 벤처기업에서 첫 career를 시작하였다 (몹시 나쁜 choice였다!). 물론, 졸업할 당시는 경기가 좋아서 Cisco나 Sun과 같은 대기업으로부터 offer를 받기도 하였지만 왠지 작은 회사에서 뭔가를 성취해 보고 싶어서 일부러 남들이 잘 모르는, 그렇지만 가능성이 나름대로 커 보이는 벤처기업으로 진로를 바꾼 거다. Vinod는 다음과 같은 말로 speech를 마무리했다. “돈보다 뭔가 큰 cause를 위해서 창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창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던 간에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창업을 하는 그 정신은 숭고하고 위대하며, 돈을 위해서 창업을 한 사람들도 비즈니스를 하면서 점점 뭔가 더 큰 목적을 위해서 매일 매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일터로 향하는 서서히 바뀌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스탠포드라는 세계 최고의 학교에서 공부할 기회를 가지고 있는 여러분들은 선택된 소수의 사람입니다. 그 기회를 헛되게 하지 마세요. You will find yourselves creating the NEXT TSUNAMI.”

우리는 인생에 있어서 role model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나도 그전에는 마음속에 많은 role model들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Vinod Khosla는 정말 내가 중대한 결단을 가능케 한 그 장본인이었으며, 요즘같이 힘든 시기에도 1999년 Skilling Auditorium 앞줄에 앉아서 열심히 강연을 들으면서 감동하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 마음과 정신이 정화되어서 다시 그때의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거 같다. 얼마 전에 안철수 박사가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 아주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고 하는데, Vinod가 그날 나를 비롯한 많은 학생을 감동하게 한 거와 마찬가지로 수만 명의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가슴에 큰 희망을 심어주셨을 거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아직 나는 유감스럽게도 Vinod만큼 성공을 하지는 못하였고, 앞으로도 Vinod 만큼 성공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현재 내 인생을 즐기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거는 확실히 장담할 수 있다. 만약 그때 이 결정을 하지 못하고 그냥 안정적인 직장만을 추구하였다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마 한정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잘살고 있을 거 같지만, 그게 내가 바라는 인생은 아니었을 거 같다.

글을 마치면서…. 갑자기 99년 회상을 왜 했냐 하면 최근에 Vinod가 에탄올을 대체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과 벤처 기업들에 대해서 인터뷰한 기사와 동영상들을 봤는데, 10년이 지난 현시점에서도 여전히 좋은 회사, 좋은 기술, 좋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Next Tsunami를 준비하고 있는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role model이 뭔지를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인 거 같아서 몇 자 적어봤다.

<이미지 출처 = Famous-Entrepreneurs.com>

이 남자 – 이승규 교수

Steve Jobs 형님이 예정대로 6/7월안으로 다시 애플로 복귀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Jobs 회장은 단순한 단백질 문제가 아니라 상당히 심각하게 아팠던거 같다. Wall Street JournalTechCrunch 보도에 의하면 (TechCrunch는 정말 집요하게 개인 블로그와 트위터를 싹 훑어서 테네시 병원 관계자들이 웹에 올린 이런저런 내용을 추적하는데 성공한거 같다) 테네시 주의 병원에서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주말에 이 기사를 보자마자 나는 공부방에 들어가서 내 파일들을 막 뒤져서 오래된 신문 스크랩을 하나 꺼냈다. 우리 엄마는 아직도 한국 신문에서 재미있거나 내가 하는일과 관련된 기사를 보시면 대량으로 스크랩을 해 놓은 뒤 미국으로 보내주시는데, 이 중 내가 정말 재미있게 읽는 기사들은 나도 보관을 하고 있다. 2009년 1월 10~11일 토~일요일자 ‘조선일보 토일섹션’의 “문갑식의 하드보일드”라는 코너의 기사이다.

간이식의 최고 권위자인 서울 아산 병원의 이승규 교수라는 분을 조선일보의 문갑식 기자가 인터뷰한 내용인데, 갑자기 스티브 잡스가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니 이 분이 생각나서 다시 한번 이 기사를 읽어봤다. “하얀거탑”과 “뉴하트”의 슈퍼 스타 의사들을 보면 과연 저런 의사들이 실제로 존재할까라는 의문을 가끔씩 갖는데 있긴 있는가 보다. 서울아산병원 외과 이승규 교수는 작년에 326 차례의 간 이식 수술을 한 간 이식 수술 관해서는 세계 최고의 권위자라고 한다. 지금까지 2,175회의 간 이식 수술을 했다고 하니 정말 엄청나게 칼질을 하신 분이다. 신장 이식 수술은 2시간 반에서 3시간, 심장은 길어야 5시간 걸리는데 간 이식 수술은 평균 12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엄청난 체력과 정신력의 집중이 요구된다고 하는데 이교수는 이를 위해서 일주일에 4회 정도 조깅도 하고 한번에 push up을 100회씩 한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이 분을 뵙지는 못했지만 사진으로만 봐도 환자들한테 상당한 마음의 안정과 평온을 줄 선한 인상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이 인터뷰에서 감명있게 읽었던 부분들은:
“환자는 의사의 말 한마디에 좌우됩니다. 확신을 가지고 ‘당신의 상태로 봐서 이 수술이 제일 적합하다’고 권유해야지요. 이런저런 수술법이 있는데 어떤 걸 택하겠느냐라는 의사도 있는데 그건 의사 자격이 없는 겁니다. 생명을 살리는 것과 물건 파는 건 다르잖아요.”

“우리나라 외과에는 나쁜 전통이 있어요. 나이가 오십만 넘으면 수술을 하지 않는 거지요. 제가 미국에서 나이 칠십이 넘어 머리가 허연 영감이 수술하는 장면을 보고 감명을 받았어요. 수술은 경험이 중요합니다. 일본에서도 의사들은 은퇴하기 직전까지 메스를 놓지 않지요. 저는 70세까지는 이 일을 할 겁니다.”

이 글을 다시 읽은 후에 신문지 스크랩을 책상위에 놓고 이승규 교수 사진을 다시 한번 봤다. 수술 가운을 입고, 수술 마스크를 벗은 모습을 사이드에서 찍은, 헝클어진 머리에 피곤해 보이는 표정의 사진인데 이 모습을 마음속에 오랫동안 담아두고 싶었다. 마치 professionalism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모범 정답과도 같은 그런 사진이다. 그리고 뭔가 앞이 안보이고 불확실성을 떨쳐버릴 수 없는 느낌을 받을때 항상 이 모습을 떠올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우리 사회에는 스스로 전문가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사기꾼들이 너무나 많다. 아니, 사기꾼은 아닐지언정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잘 모르고,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고 결정적으로는 잘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야하나…하긴,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된다.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그런 사람이니까.

Professional – 열심히 해 봅시다.

이 남자 – Stan Van Gundy

LA LakersOrlando Magic을 4-1로 대파하면서 2009년 NBA Championship을 이겼다.도무지 이 세상 사람이라고는 밑겨지지 않았던 Kobe Bryant의 화려한 플레이, 그의 플레이를 받쳐주던 Pau Gasol 그리고 NBA 최고의 명장으로 알려진 Phil Jackson 감독에 모두가 현혹되어 있던 도중 Orlando의 Stan Van Gundy 코치가 쓸쓸하게 코트를 퇴장하는 뒷모습을 본 사람은 몇 안될거다.

Van Gundy 감독은 2009 NBA Finals 전에는 대중한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통상 야구 감독들은 팀 유니폼과 모자를 쓰고 덕아웃에서 껌을 질겅질겅 씹고, 풋볼 감독들은 헬멧과 팀 jersey를 여러겹 겹쳐서 입는다. 농구 감독들만이 본인들이 입고 싶은 옷을 코트에서 입을 수 있어서 많은 농구 감독들이 저만의 독특한 패션 스타일을 즐기는걸 볼 수 있다. 축구감독들도 비슷하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히딩크 감독 또한 명품 양복과 화려한 넥타이로 한국 팬들에게 친근하다. New York Knicks/LA Lakers/Miami Heats를 24년 동안 지휘하던 Pat Riley 감독은 마치 패션 잡지 1면에서 뛰어나온것과 같은 멋진 양복들과 기름칠한 머리로 유명하고, Lakers를 승리로 이끈 Phil Jackson 감독 또한 본인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헤어스타일과 패션에 계속 변화를 주는걸로 유명하다. 그리고 ‘브래드 피트와 헷갈릴 염려가 전혀 없는’ 우리의 Van Gundy 감독이 있다. 양복은 커녕 허름한 잠바때기를 입은 볼품없이 작은 키와 통통한 체격은 처음 보는 사람으로 인해 “야, 저 아저씨는 뭐야?”라는 질문을 유발시킨다. 멋이라고는 손끝만큼도 부릴 줄 모르고, 경기가 끝날 즈음에는 거의 엉켜있다시피한 머리는 한번도 손질을 하지 않는거 같다.그래도 이 아저씨의 투박하고 솔직담백한 스타일은 Lakers (Kobe Bryant)와 Cavaliers (Lebron James)의 결승을 은근히 바라던 사람들마저 NBA 결승의 재미에 푹 빠져들게 하고 있고 높은 시청률을 유지시키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Stan Van Gundy 감독을 보고 있으면 같은 서민의 연민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Van Gundy 아저씨는 NBA 감독이라기 보다는 마치 월마트의 상점 매니저나 중학교 교장과도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 농구 실적을 보면 꽤 놀랄거다. NBA 팀 코치로써는 올해가 5번째 season인데, 349개 경기 중 223 승이라는 화려한 전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실망스럽게 4-1로 Championship은 졌지만 주위 동료 코치들과 농구 전문가들은 Van Gundy 감독이 NBA에서 가장 과소평가되었지만, 성공적인 감독이라고 한다. 또한가지 재미있는건 Van Gundy 감독의 경기 종류 후 인터뷰이다. 대부분의 감독들이 그냥 사전에 준비된 평범한 멘트들을 하지만, 이 아저씨는 항상 솔직담백하고 엉뚱한 말들을 한다. 본인의 코칭 방법이나 전략에 대해서 말하기 보다는 주로 선수들을 칭찬하고,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는데 올 초 인터뷰에서 그는 아내인 Kim한테 생일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와이프가 항상 옆에서 잘해주니까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거에 대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또한, 동부 컨퍼런스에서 필라델피아를 이긴 후 인터뷰에서는 최근에 심장 수술을 하신 삼촌한테 아주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나의 기억에 가장 남는 인터뷰 내용은 언제인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아마도 Cleveland Cavaliers와의 경기 중 하나였던거 같다. 한 기자가 “오늘 코트에서 재미있었나요?”라고 물어보니, 아주 황당하고 한심한듯한 눈치룰 주면서 “재미? 이사람아…재미는 농구 경기를 보는 당신들을 위한거지. 여기서 시합하는 사람들은 x뺑이 치고 있었지. 당연히 재미없었지…우리가 졌는데!”

뭐, 혹자는 이미지 메이킹이니 다 연출이니 라는 말들을 하는데 과연 이런 방법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할 필요가 있을까? 이거 말고도 충분히 많은 방법이 있을텐데…

잠시 기아를 바꾸고, Corporate America를 자세히 보면, 농구 감독들과 CEO들 사이에 비슷한 트렌드를 목격할 수 있다. 옷 잘입고, 미디어 노출을 즐기며 화려한 생활을 즐기는 CEO들이 있는가 하면, 대중 앞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아주 완벽하게 처리하면서 내실을 추구하는 CEO들이 있다. 전자의 예를 굳이 들자면 Oracle의 망나니 CEO Larry Ellison이 그 케이스이고 (물론, 그렇다고 일을 못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후자는 HPMark Hurd를 들 수 있다. Mark Hurd는 병적으로 미디어와 언론을 피하면서 할일만 하는 사람으로 잘 알려져있다. 자선 골프 행사도 참석을 안하고 (참고로, 시간이 너무 많이 허비된다고 Mark Hurd는 골프를 아예 안친다) 골프 치는 시간에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는 매우 가정적인 CEO이기도 하다. 이런 그를 언론에서는 그다지 달갑게 보지만은 않지만 Hurd 사장은 그거 조차 신경을 쓰지 않는거 같다. 남들이 뭐라하던 본인은 먹여살려야할 직원들과 직원들의 식구들이 있고 어차피 짧은 인생을 쓰잘데기 없는 부수적인 일들에 허비하고 싶지 않다는게 본인의 의견이다. 어떻게 보면 마치 Orlando Magic의 Stan Van Gundy 감독과 비슷한것도 같다.

나도 한때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CEO가 되고 싶은 꿈을 가졌던 적이 있다. 그리고 CEO들은 PR에 많은 신경을 써야하고, 이미지 메이킹에 투자하고 전반적으로 내가 남들한테 어떻게 보이느냐가 전부 다 인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 아주 최근까지도 나는 많은 인터뷰를 하고 싶어했고, 뮤직쉐이크도 되도록이면 많은 행사에서 발표하고 많은 언론을 통해서 보도를 하려고 노력을 하였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이러한 생각은 많이 바뀌게 되었다. PR과 언론 다 좋지만, 기업한테 가장 중요한거는 “매출”과 “수익”이다. 이 밑에 Softbank관련된 글에 언급된 수많은 회사들이 얼마나 많이 언론에 소개되었고 사람들 입에 회자되었는가…그렇지만 그들은 과연 지금 어디에 갔을까? 그렇게 껍대기에 투자할 시간에 내실을 다지고 비즈니스에 집중을 했다면 결과는 약간 다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새 나는 왠만하면 이제 컨퍼런스나 행사에서 speaker 자리를 피하고 있고, 언론사 인터뷰도 거절하고 있다 (물론 그다지 많이 들어오지도 않는다 ㅎㅎ). 지금 우리한테는 이런게 중요한게 아니라 이럴 시간에 한번이라도 더 고객한테 전화를 하고, 이메일을 쓰고 business의 기초를 다지는게 중요하다.

NBA 결승전을 보면서 농구를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패자인 Magic의 Van Gundy 감독을 보면서 많은걸 배웠던 소중한 1주일이었다. Stan Van Gundy – You are da MAN!

이 남자 – Harry J. Wilson

미국과 전세계 자동차 산업을 상징하고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General Motors가 6월1일 부로 파산 보호 신청을 하였다. 어떻게 이 거대한 제조업체가 망했는지 나는 아직도 좀 어이가 없는데 돈도 못 벌면서 쓸데없이 Transformers 영화에 돈을 갖다 붙는거 보고 알아봤어야 했다.

오바마 정부가 GM을 살리려고 형성한 Auto Team에 대해서 많이 알려진 사실은 없다. 전 사모펀드 투자자였던 Steven Rattner가 Auto Task Force를 리드하고 있으며, 숫자에 관해서는 천재들인 industry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소문만이 무성할 뿐이다. 특이한 사실은, Rattner씨 팀의 실제 업무를 총괄하는 인물은 37살의 Harry J. Wilson이라는 젊은이라는 점이다. 37살이면 (아마도 미국 나이이니까 한국나이로 치면 39살이겠지? 그래도 젊긴 젊은거다..) 나랑 4살 차이인데 어린 나이에 참으로 좋은 경험을 하는거 같다.이 아저씨의 백그라운드를 조금 조사해보면…하버드 학부와 MBA 출신이고, 그동안 줄곳 금융업계에서종사를 하다가 (Blackstone Group과 Goldman Sachs에 잠깐씩 일하다가 Silver Point Capital이라는헷지 펀드에서 일하면서 돈을 많이 번 모양이다) 36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와이프와 애기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은퇴하였다. 그러다가 급작스러운 세계 경제의 몰락과 미국 자동차 산업의 몰락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이렇게 있어서는 안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2009년 1월 31일날 Steve Rattner한테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이메일의 내용은 자동차 산업이 밀집해 있는 디트로이트를 구조조정하는걸 직접 도와주고 싶으며, 그동안 걸어왔던 커리어 경험을 바탕으로 열심히 뛸 자신이 있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나도이 이메일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매우 감동적이고 스마트하게 썼을거다. Wilson 씨에 대해서 한번도 못 들어봤던 Rattner씨는이 이메일을 보고 감명을 깊게 받았으며 Auto Team 조인하는걸 승락하였다.

Rattner씨로부터 고용된 후 3월13일날 Wilson 씨는 주위 친구들과 일하면서 만났었던 지인들한테 Auto Task Force의 내용과 구인 이메일을 돌렸으며, 이후 짧지만 강도높은 인터뷰를 통해서 Rattner씨와 Wilson씨는 오바마 정부의 자동차 팀을 완성할 다양한 연령대와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인력들을 채용하기 시작하였다. 각 팀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지만 Matthew Feldman과 같은 유명한 파산/구조조정 변호사를 비롯하여 아이비 리그 학부를 갖 졸업하고 디즈니사에서 2년동안 인턴을 한 Clay Calhoon과 같은 어린 친구도 있다고 한다.

정부를 위해서 일하는건 굉장히 매력이 없다고 나는 항상 생각을 해왔다. 연봉이 너무 짜다는게 가장 큰 이유이고 실제 기업의 operation을 볼 수 없다는게 또 한가지 이유인데 그래도 Auto Task Force가 담당하는 이 정도 규모의 일은 금융에 관심있는 남자로써는 누구나 한번 정도는 경험해 보고 싶은 일이 아닐까 싶다. GM과 같이 복잡하고 큰 회사의 파산 절차를 옆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파산 보호 신청을 한 회사를 다시 내 손으로 개선 시킨 후 회사를 살린다…재미있고 색다른 경험이고, 애국심이라고 할까…어떠한 사명감이 없다면 힘든일일거 같네.

Fortune 500 미국 기업 최초의 흑인 여성 CEO 탄생

테스토스테론으로 똘똘 무장한 남성들이 지배하고 있는 Corporate America를 eBay의 Meg Whitman, HP의 Carly Fiorina, Pepsi의 Indra Nooyi와 같이꾿꾿하게 지키던 Xerox의 Anne Mulcahy가 몇일전에 은퇴를 발표하였단. 후임 CEO는 아직 바깥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Anne의 오른팔 역할을 하던 Ursula Burns라는 흑인 여성이다. 미국 기업의 CEO 중 흑인이 거의 없는건 알고 있었지만 (남성 or 여성), Ursula Burn가 Fortune 500 기업 중 미국 기업 최초의 흑인 여성 CEO라는 점은 참으로 놀랍다. 그만큼 보수적이고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을 넘기위해서 이 흑인 여성이 얼마나 힘들게, 그리고 열심히 노력을 했을지 조금이나마 상상이 간다.

Annu Mulcahy는 33년 전 Xerox에서 평범한 영업사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2000년 5월에 당시 CEO Paul Allaire가 성적 부진으로 인하여 교체되면서, 2001년 8월에 Xerox의 새로운 대표이사로 취임하였을때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Anne Mulcahy가 누구지? Xerox 내부에 있던 사람인가?”를 물을 정도로 밖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미국 여성이었다. 물론, 평범하지 않았으니까 CEO가 되었겠지만…Anny Mulcahy가 새로 취임하였을 당시 Xerox는 내/외부적으로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었다. 밖으로는 일본의 경쟁사들이 계속 시장 점유율을 야금야금 훔쳐가고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회계 부정으로 인해서 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조사를 받고 큰 벌금을 물었다. 그렇지만, Mulcahy 여사는 조용하고 꾸준히 회사의 전략을 잘 실행해서 취임 두번째 해부터는 부채를 줄이고 새로운 제품군들을 성공적으로 출시해서 이제는 해마다 약 1조 2천억원의 현금을 창출하고 있다. 그렇다고 Mulcahy가 손댄게 전부 다 성공한거는 아니다. 해외 시장 진출이 예상하였던거보다는 잘 되지 않았고, 현재 Xerox의 주가도 Mulcahy가 취임하였을때보다 썩 좋아지지는 않았다.

Burns 신임 사장 또한 Mulcahy여사같이 Xerox 내부에서 실력을 닦은 내부인력이다. Columbia 대학에서 engineering degree를 받고, 엔지니어로 Xerxo에서의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그동안 Xerox의 굵직굵직한 operation들을 담당하면서 서서히 주위 동료들로 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하였다. Paul Allaire의 특수보좌관으로 발탁되면서 engineering에서 management로 전환을 하면서 corporate ladder를 지금까지 꾸준히 올라왔다.

앞으로 할일이 많은 회사에, 할일이 더욱 더 많은 시점에 취임하게 된 이 흑인 여성 CEO의 활약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