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by Kihong Bae:

무지개 다리 건너편

사진 2016. 9. 7. 오후 6 50 08몇 년 전에 개를 데리고 산책하고 있었는데, 모르는 분이 나한테 다가와서 “배기홍 대표님?”이라고 해서 얼떨결에 인사를 했다. 내 페이스북 친구인데, 내가 그동안 포스팅 한 우리 개 마일로 사진을 보고, 마일로를 알아봤고, 나를 길거리에서 알아봤다. 그리고 많은 창업가분들이 나를 처음 만나면 나보다 마일로의 안부를 먼저 물어보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 요새도 마일로 안부를 물어보는 분들이 있고, 그냥 궁금해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실은 마일로는 올해 1월 1일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마일로는 우리 가족과 15년을 함께 했다. 우리가 연애할 당시, 와이프는 동물 보호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했었고, 그때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아서 포천에 있는 동물보호소에 살고 있던 똥개가 마일로다. 결혼하고 우린 바로 미국으로 출국했는데, 몇 달 후에 보호소에서 이 친구를 미국으로 보내줬고, 우린 LA 공항 화물터미널에서 마일로를 입양해서 올해 초까지 같이 살았다. 입양 당시 개가 3~5살 정도로 추정되니, 사망 당시 추정 나이는 18~20살이다.

어른이 돼서 내가 처음으로 키운 개가 마일로인데, 그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맙고 즐거운 일이 많았고, 사람이 아닌 동물을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 아주 괜찮은 친구였다. 마일로는 태평양을 4번이나 횡단했고, 2년 전만 해도 매우 건강한 슈퍼 할머니 개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신장과 같은 장기도 망가지고, 결국엔 치매까지 왔다. 사람과 비슷한 노화 과정을 거치는 걸 옆에서 자세히 지켜보면서 나랑 지현이는 번갈아 가면서 수발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 다 즐거운 추억이다.

실은 개가 워낙 늙어서, 우린 항상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고, 나는 노견의 죽음 관련 책도 꽤 많이 읽어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5개월이 지난 이 시점에도 계속 생각난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거로 생각했지만, 이제 확실해진 건, 내가 죽을 때까지 잊히진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도 이젠 좀 놓아주고 싶다. 그래야지 이놈도 편안하게 무지개 다리를 건너겠지.

노견 관련 책 중 “고마워, 너를 보내줄게(당신의 반려동물과 행복하게 이별하는 법)”에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 많았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개가 주인에게 하는 말인데, 마일로도 우리 가족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했을진 모르겠지만, 비슷한 감정을 가진 채 무지개 다리 건너편으로 잘 갔길 바란다. 우리에게 준 15년 동안의 즐거움과 고마움은 항상 기억할 것이다.

See you again my friend, on the other side.

“친구에게,

이제 작별할 시간입니다. 내 다리는 약해지고 시력은 나빠지고 코의 감각도 희미해졌습니다. 나는 약해지고 있습니다. 정신은 점점 흐려지고, 이제 당신 곁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다시 건강해져서 더러운 데서 뒹굴고 기름투성이 뼈를 잡아채고 당신이 내가 먹지 않았으면 바라는 음식들을 모두 먹고 싶어요. 그리고 항상 배에는 긁힌 상처가 그치지 않도록 들판과 숲을 뛰어다니고 삶의 이야기들을 감지하고 바람을 향해 코를 세우고 세상을 또다시 보고 싶어요.
이제 나는 돌아갑니다. 당신을 외로움과 고통 속에 두고 간다는 것을 압니다. 사람들은 작별할 때 그렇게 느끼지요. 개들은 다르답니다. 우리는 후회하지 않아요. 다르게 살았더라면 하는 바람이 없지요.

비록 나는 떠나지만 우리가 함께 한 추억을 남깁니다.

창밖으로 바람이 휘몰아치고 눈이 흩날리던 어느 추운 겨울밤 당신이 나를 위해 노래를 불러줬던 일을 기억합니다. 나는 당신의 외로움을 느꼈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알았지요.

나를 바라볼 때 당신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당신에게서 다른 냄새가 나고 무언가 다르게 보였어요. 더 밝고 행복해 보였어요. 그것이 내 삶이고 내 일이었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내 목적을 이보다 더 분명하게 해주는 건 없었습니다. 당신이 미소 지을 때 나는 내가 당신 곁에 있는 이유를 알았지요.
나는 당신이 일을 하는 동안 당신과 함께 있거나 지켜보는 일이 결코 싫증나지 않았어요. 나는 그 순간의 분위기에 빠져들어 당신 곁에 앉아 있었지요. 나는 당신 삶이 어떻게 되든 당신이 어떻게 느끼든 무엇을 하든 당신을 지지했어요. 나는 당신의 증인이자 증거예요.

나는 눈 속을 걷던 일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당신과 함게 뛰던 일도 기억합니다. 그리고 공과 프리스비, 막대기를 쫓아 뛰어다니던 것도 기억합니다. 추운 밤 따뜻한 난롯불도 기억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책을 읽거나 야구를 볼 때 당신 곁에 앉아 있던 것도 기억합니다.

당신이 집에 돌아와 내 이름을 부르거나 공을 집어 들거나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거나 나에게 먹이를 주면 좋아서 심장이 터질 듯 쿵쿵 뛰었던 것도 기억합니다. 내가 그 모든 일들을 정말 많이 사랑했다는 것을 당신이 알아줬으면 합니다. 당신이 내게 무엇을 가져다주든, 나와 함께 어떤 시간을 보내든 나는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나는 당신이 나를 잊어버리고 있을 때도 당신이 나를 볼 수 없을 때도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항상 알고 있었어요. 당신은 내게 비밀이 없었지요. 내게 모든 것을 보여줬잖아요. 우리는 서로 신뢰했습니다. 사람들과 달리 나는 당신을 결코 해치지 않았습니다. 나는 당신을 절대 해칠 수 없었어요. 내겐 그런 본능이 없어요.

나는 인간의 삶에서 모든 근심거리를 냄새 맡고 느끼긴 했지만, 그래도 인간과는 다르답니다. 다른 여느 동물들처럼 나는 내게 꼭 필요한 것만 원해요. 당신의 삶은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당신 삶 속에는 내겐 의미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나는 당신보다 훨씬 더 단순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우리 집의 모든 사람들과 동물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나는 음식과 숲속의 냄새 나는 것들을 사랑하고 공과 프리스비와 뼈다귀를 사랑해요. 그 외에 내게 더 소중한 건 별로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혹시 그런 이유가 아니라 하더라도 당신은 나를 사랑해주었습니다.

이제 당신은 개의 그림자에는 항상 작별이 맴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겠지요. 우리는 영원히 혹은 충분히 오래 머무르지는 않아요. 당신 인생이 끝날 때까지 함께 보내게 되어 있지 않아요. 단지 당신의 생에 흔적을 남길 뿐입니다. 우리는 왔다가 갑니다. 우리를 필요로 할 때 우리는 옵니다. 시간이 되면 우리는 떠납니다. 죽음은 필요한 일이에요. 죽음이 삶을 정의하지요.

우리는 다시 만날 거예요.
나는 당신을 지켜볼 거예요.

바라건대 당신이 슬프고 외로울 때, 우리가 이 모든 시간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면 서로에게 그토록 많은 것을 주지 못했다면 얼마나 더 슬펐을지 떠올리길 바랍니다.

나는 애통해하거나 슬퍼하지 않지만 당신과 함께 걸었던 삶의 길을 그리워하겠지요. 다른 개들이 내 자리를 대신해 당신과 함께 살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말이에요.

감사합니다. 당신과 함께한 시간은 선물이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나를 기억해주세요.
나를 축복해주세요.
나를 위해 슬퍼해주세요.

그런 다음 그럴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를 기꺼이 편하게 놓아주세요.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다른 개를 데려와서 키워주세요. 그래서 당신이 다시 이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내겐 큰 영광일 거예요.”

중간은 없다

얼마 전에 “시대의 1등주를 찾아라”라는 책을 읽었다. 실력 있는 펀드매니저가 이 업계에서 17년 동안 롱런하면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의 일부를 책으로 써서 공유한 내용인데, 나는 이분이랑은 다르게 비상장 회사에 투자하고 있어서, 시장을 보는 방법과 투자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많이 다르긴 하다.

하지만, 상장회사에 투자하든 비상장 회사에 투자하든, 결국 모든 투자의 기본은 비슷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일단 기본적으로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공부 못지않게 어떻게 투자할지에 대한 자기만의 철학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자기만의 철학이 좋은 투자자와 그렇지 않은 투자자를 구분할 수 있는 가장 핵심 잣대라고 생각한다. 이분은 상장기업에만 투자하는데, 사람, 감, 그리고 비공개 데이터를 보고 투자하는 우리와는 완전히 다르게 오롯이 데이터, 시장, 그리고 보고서만을 기반으로 투자한다. 이런 전략이 맞는지 틀렸는진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분의 실적을 보면 결론적으론 어느 정도 맞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매번 이런 전략이 맞는 건 아니다. 분명히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할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17년 동안 작가가 이 사업을 하면서 자기만의 전략과 철학을 스스로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불확실성투성이인 주식 시장이나 이보다 불확실성이 훨씬 높은 초기 스타트업 시장에서 항상 승리하진 못 해도, 미치지 않고 롱런할 수 있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자기만의 생각과 철학이다.

이 책에서 계속 등장한 전략 중 하나가 “중간은 없다”이다. 작가가 계속 주장 하는 내용 중 내가 많이 공감했던 건, “매수냐 매도냐, 선택은 둘 중 하나이다. 중간은 없다.”라는 건데, 이건 우리가 투자하는 창업가들도 갖고 있는 마인드셋이긴 한다.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을 보면, 창업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건, 아이디어도 아니고, 돈도 아니다. 나한테 물어본다면 나는 창업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건, “시작” 그 자체와 시작을 했으면, 여기에 완전히 “올 인”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 속담 중 “시작이 절반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창업에 있어서는 “시작이 전부이다.” 시작하는 것 자체가 제일 어렵지만, 일단 시작하면 다른 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시작했으면 여기에 올 인 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책에서는 “매수냐 매도냐, 선택은 둘 중 하나이다. 중간은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스타트업 분야에서는 “창업을 하거나, 하지 말거나, 선택은 둘 중 하나이다. 중간은 없다.”라는 철학이 매우 중요하다. 어떤 창업가들을 보면 창업을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닌, 매우 애매한 상황에서 사업을 하는데, 이렇게 해서 잘 되는 사업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이럴 바에 그냥 창업하지 않고 인생을 더 편안하게 사는 걸 권장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이런 중간은 없는 철학은 주식이나 창업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이 철학은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가 있다. 인생에 있어서 뭘 하든, 하거나 안 하거나, 둘 중 하나이지, 애매하게 중간을 가는 건 실패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국산 소프트웨어의 강점

아마도 많은 한국의 스타트업이 만들고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미국이나 해외에 이미 존재하는 제품의 한국 버전일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스타트업도 이런 플레이를 하는 곳들이 엄청 많다. 쿠팡은 한국의 아마존이고, 토스는 한국의 Venmo이고, 실은 많은 한국의 유니콘이 이미 미국에서 잘되고 있는 회사들의 제품을 카피해서 시작했고, 시작은 이렇게 했지만, 사업을 뾰족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원래 버전과는 상당히 다르게 성장한다. 어떤 차이가 나는지 조금 더 자세히 보면, 한국 시장에서는 아예 작동하지 않는 모델임이 밝혀지면서 완전히 방향을 바꾸는 경우가 있고, 한국 시장에서는 작동하지만, 원제품과는 상당히 다른 현지화(=localization) 작업이 동반되는 경우가 있다.

실은, 자세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투자한 많은 스타트업이 “한국의 xyz”라고 간략하게 설명할 수가 있는데, 껍데기를 보면 해외 제품과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현지화가 상당히 많이 됐기 때문에 “한국의 xyz”라고 하기보단 그냥 별개의 제품이라고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현지화라는 단어는 애매모호한 단어이다. 어떤 회사는 외국 소프트웨어를 그대로 카피하고, 인터페이스만 한글로 제공하는 걸 현지화한 국산 소프트웨어라고 하고, 어떤 회사는 위에서 말한 대로 별개의 제품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의 시장만을 위한 제품을 만들고 이걸 현지화한 국산 소프트웨어라고 한다. 나는 외국 소프트웨어를 번역만 해도, 번역을 잘하면, 이 또한 훌륭한 현지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제품을 보더라도 거의 동일한 기능을 제공하는 국산과 외산 제품이 있다. 요새 우리가 관심을 두고 보는 분야가 ERP와 CRM인데, “국산” , “현지화”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는 대표적인 B2B 소프트웨어 제품들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글로벌 제품인 SAP와 Oracle과 같은 외산 소프트웨어도 한국 시장에 많이 깔려 있는데, 이 제품들을 벤치마킹한 매우 유사한 인터페이스와 기능을 제공하는 국산 ERP와 CRM 솔루션도 꽤 많다. 내가 전에 일했던 자이오넥스라는 회사에서는 국산 SCM 솔루션을 개발하고 판매하는데, 이미 이 분야에는 엄청나게 큰 글로벌 기업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한국에서 제품을 잘 판매하고 있다.

역사도 오래됐고, 회사의 규모도 훨씬 크고, 브랜딩이 더 잘 된 글로벌 기업의 제품을 도입하지 않고 국산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한국 기업 또는 소비자들은 왜 메이드인코리아 제품을 사용할까? 몇 가지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가장 기본적이고, 너무 당연하지만, 일단 국산 제품은 기본 언어가 한글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상당히 중요하다. 솔직히 소프트웨어가 영어로 되어봤자, 어려운 영어도 아니고, 그냥 기본적인 영어 단어 위주라서 웬만한 한국 분들은 다 읽을 줄 알고 이해한다. 하지만, 그래도 한글 UI보단 어렵고, 머릿속에서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 자체가 번거롭다. 혹시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을 영문버전으로 사용해 본 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전부 다 쉬운 영어지만, 한글 버전보단 사용하기가 불편하고 어렵다.

UI와 UX에서도 꽤 차이가 크게 나는 경우를 나는 봤다. 위에서 말한 ERP나 CRM은 기업용 소프트웨어인데, 같은 사업을 하는 회사라도 한국 회사와 미국 회사의 사내 프로세스는 상당히 다르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그 나라의 독특한 업무 문화가 반영됐기 때문인데, 이런 미묘한 특성을 잘 살린 국산 소프트웨어가 한국 회사엔 훨씬 더 편리할 수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국산 제품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장점이 바로 고객 지원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시간대에, 같은 언어로, 언제든지 고객지원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아무리 작은 한국의 스타트업이 개발하는 제품이라도 엄청난 글로벌 제품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고 난 생각한다. 우리가 투자한 상당히 많은 한국 스타트업의 제품은 이미 이들보다 훨씬 더 잘하는 글로벌 벤치마크 제품이 존재하고, 이런 글로벌 제품들이 이미 한국에서 판매가 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투자사의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들에게 가끔 물어보면, CS가 잘 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우리 투자사의 열혈 고객이 된 경우가 많다.

한국어로 된 인터페이스, 한국 문화와 프로세스에 특화된 UI/UX, 그리고 현지화된 고객지원 서비스, 이게 바로 국산 소프트웨어의 강점이라고 생각하고, 이 분야를 계속 더 파고 들어가면 한국에서 꽤 규모가 나올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채용과 골든 타임

이 블로그에는 오늘 자로 1,395개의 포스팅이 개시되어 있다. 한때 외부 기고 글도 몇 개 올렸지만, 10개 정도를 제외하곤 전부 다 내가 직접 쓴 글이다. 메타태깅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각 주제나 소주제로 글의 내용을 분류하거나 검색하는 게 쉽지 않지만, 포스팅 중 많은 글들이 ‘사람’에 대한 내용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사람은 매우 중요하고, 특히 스타트업에서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게 없다는 게 내 지론인데, 경험이 쌓일수록 사람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생각은 더욱더 강해진다. 스타트업의 시작도 사람이고, 과정도 사람이고, 끝도 결국엔 사람이다.

사람과 채용에 대한 고민은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이 가장 많이, 그리고 매일 하고 있지만, 워낙 어려운 문제라서 정답이 없다. 스타트업의 매 단계마다 우리에게 채용 관련된 도움을 요청하지만, 나 또한 작은 조직이 큰 조직으로 성장하면서 각 단계의 골든 타임에 그 성장에 맞는 사람을 직접 채용하거나 관리해 본 경험이 거의 없어서,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에는 한계가 있다.

얼마 전에 맨손으로 1,000억 원 매출 규모의 회사를 만든 대표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회사의 역사를 보면 큰 성장이 일어났던 중요한 변곡점들이 있었는데, 그 변곡점에 맞는 사람들이 적시에 채용돼야지만 성장이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잘 찾아서 회사로 영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변화의 기미가 보일 때,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고 너무 늦지 않게 이분들을 영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이 골든 타임을 놓치면, 필요한 만큼 성장을 못 하기도 하고, 그 이후에 계속 성장 기회가 왔을 때를 대비한 최적의 인재를 채용할 수 있는 내부 역량이 계속 준비가 안 되기 때문에 좋은 인재들의 유출이 발생한다. 인재가 계속 유출되면, 성장의 변곡점도 줄어들 것이고, 여기서부턴 역성장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성장의 기회를 잘 포착하고, 이때마다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고 좋은 분들을 영입해서 지속적으로 성장한 기업의 대표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게 있다. 바로, 기업의 단계마다 다른 성향과 능력의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된 내용 중 내가 자주 언급하는 사례는 쿠팡 이야기다. 쿠팡은 정기적으로 경영진들을 교체하는 거로 유명한데, 이걸 나쁜 시선으로 보면 회사가 사람을 부품같이 생각하고, 쓸모없어지면 인정사정없이 버린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은, 냉정하게 보면 틀린 말은 아니고, 돈을 벌어야 하는 기업임을 감안하면 욕먹을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 현상을 위에서 내가 말한 성장과 골든 타임의 관점에서 보면, 회사를 창업한 사람과 이 회사를 1,000억 원짜리 기업으로 만들 사람의 경험과 능력치엔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때마다 지속적으로 인재를 내보내면서 새로 영입하는 건 당연하고, 오히려 꼭 해야 하는 일이다. 1,000억 원짜리 회사를 만들고, 이 회사를 1,000억 원짜리 회사같이 운영하는 인력은 이 회사를 1조 원짜리 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 1조 원짜리 기업을 운영하는 인력이 10조 원짜리 기업을 만들 수 있는 경험과 능력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선 단계마다 여기에 맞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어떤 대표들은 이런 사람들을 계속 외부에서 찾는다. 왜냐하면, 1,000억 원 가치 기업이 1조 원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1조 원 기업의 성장을 경험해 본 인력이 필요한데, 이런 사람들은 현재 회사의 내부에서 충원하기엔 어렵기 때문이다. 쿠팡도 이런 각도로 사람들을 채용하는 거로 알고 있다. 그다음 단계로 성장하기 위해선 이커머스 플랫폼을 크게 성장시켜 본 경험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데, 이런 사람들이 한국에 별로 없어서 아마존이나 월마트에서 조 단위의 성장과 운영을 경험한 인재를 적시에 채용해서 적소에 배치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렇게 더 큰 경험을 한 인재를 외부에서 영입하는 건 자연스럽지만, 위험한 방법일 수도 있다. 회사의 변곡점에서 큰 성장을 만들기 위해선 경험도 중요하지만, 이 회사의 기업문화와도 잘 맞는 사람들이 필요한데,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하면 이 부분에서 자주 시행착오를 겪는 스타트업을 많이 봤다. 그래서 어떤 창업가와 대표들은 다른 차원의 성장에 대한 경험은 없지만, 그동안 회사 내부에서 일을 잘했던 분들을 승진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기업 문화와의 fit은 더할 나위 없이 잘 맞는데, 내부 영입 전략의 리스크는 실력과 경험의 부재이다.

그래서 오늘도 많은 창업가들이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인재 영입에 엄청나게 노력하면서 계속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특정 단계마다 필요한 인재가 다르고, 이 다른 인재들을 내부든 외부든 영입해야 하는데, 영입하는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유리 투명함

사업을 잘하고 못하고의 여부를 떠나서, 다시 창업하면 계속 투자하고 싶은 창업가들이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정직함과 투명함이다. 나도 이런 개인적인 리스트가 항상 마음속에 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중 절반 이상이 우리가 투자했던 스타트업은 성공시키지 못하고 그냥 폐업했거나, 또는 현재까지의 사업 성과를 객관적으로 판단해 보면 크게 잘될 것 같지 않은 창업가들이다.

물론, 잘하는 창업가분들도 많다. 그리고 이들 중 재창업을 하면 또 투자하고 싶은 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다. 어떤 창업가들은 사업의 결과만을 따지고 보면 매우 잘하고 있고, 이런 추세대로 가면 투자자에게 큰 수익을 돌려줄 수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좋은 엑싯을 해서 우리가 돈을 많이 벌어도, 이분들이 다시 창업하면, 나는 별로 투자하고 싶지 않은 분들도 있다. 새로 시작하는 사업이 미래가 밝더라도. 왜냐하면, 사업의 결과 보단, 사업을 하는 동안의 과정과 경험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는 사람을 보고 투자하고, 사람과의 관계가 투자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이와 반대로, 누가 봐도 실패했거나, 또는 실패할 창업가들이 있는데, 이분들 중 미래에 다시 창업하면, 크게 따지지 않고 또 투자하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드는 분들도 있다. 그 이유는 사업의 결과 보단, 사업을 하는 동안의 투자자 – 창업가의 관계와 경험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좋은 경험은 이미 언급한 정직함에서 나온다. 한치의 숨김이 없는 이런 솔직함을 나는 유리 투명함(=-glass transparency)이라고 하고 싶다.

이들은 사업이 잘되든 안 되든, 사실 그대로 모든 걸 투자자와 공유하고, 바로 이전 포스팅에서 내가 썼듯이 자기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한다. 갑자기 회사의 매출이 90% 감소했으면, 이 사실을 그대로 알려주고, 정확한 이유도 공유한다. 그 이유가 불편하고, 숨기고 싶고, 창업가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노출해도, 이들은 이럴수록 더욱더 정직하고 투명하게 이 사실을 회사의 주주와 공유한다. 나는 이런 분들에게 투자했고, 이런 분들과 같이 일할 수 있는 걸 영광으로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 안 하거나 못 하는 창업가도 우리 주변에 많다. 매출이 폭등했다고 자랑하는데, 막상 그 내용을 자세히 까보면, 실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성과이다. 이 성과에 대해서 계속 물어보면 답도 잘 안 하고, 답이 와도 항상 뭔가 투명하지 못 한 느낌을 받는다. 이런 분들과 같이 일하다 보면, 서로 피곤해진다. 나는 정직하고 투명한 관계를 위해서 계속 잔소리를 해야 하고, 이런 나의 직설적인 잔소리를 자주 듣다 보면, 창업가들도 짜증 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다. 그래서 몇 년 동안 이런 창업가 – 투자자 경험을 하면, 사업의 결과가 좋아도, 이분이 다시 창업하면 다시 투자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몇 가지 비즈니스 원칙이 있다. 정직함과 투명함이 그런 대표적인 원칙이다. 투명해진다는 건 엄청나게 어렵고, 가끔은 쪽 팔리고, 자주 괴롭겠지만, 이렇게 정직하고 투명한 게 모두를 위해서 최선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유리투명함이 필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