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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탓

나는 학부 때 기계공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졸업은 다른 과로 했지만, 스탠포드 대학원 입학도 기계공학으로 했다. 그래서 스탠포드 기계과 동문이 많고, 이 중 많은 분이 한국의 대학에서 기계공학과 교수님으로 교편을 잡고 있다. 선배 중 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님이 계시는데, 이 분의 요청으로 얼마 전에 학생들한테 창업에 대해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끝나고 어떤 학생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미국에서 뮤직쉐이크라는 인터넷 비즈니스를 5년 동안 운영하셨는데, 지금 돌이켜보시면 잘 안 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이 요동쳤다. 이렇게 많은 회사에 투자했고, 투자사 대표들한테 마치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듯이, 이래라저래라 훈수도 두고, 학생들 앞에서 잘난척하면서 강연까지 하는데, 왜 나는 내가 했던 비즈니스는 성공시키지 못했을까?

실은, 이 질문에 대해서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워튼을 중퇴하고 야심 차게 LA로 이사해서 거의 5년 동안 내가 생각할 수 있던 모든 걸 시도해봐서 후회는 없지만, 그래도 뮤직쉐이크를 더 잘 성장시키지 못한 건 마음이 아프다. 내가 이 비즈니스를 지금 다시 처음부터 한다면, 뭘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을까? 다양한 상상을 하면서,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방법들을 떠올리면서, “다시 한다면 이건 이렇게 해야지”라고 다짐을 하곤 한다. 2008년 말 금융위기만 없었다면, 중간에 사업이 꺾이지 않아서, 뮤직쉐이크는 지금쯤 큰 사용자제작음악 서비스가 됐을 것이다. Flash 기술이 더 발전했다면, 웹 버전을 더 빨리 출시해서, 애플리케이션을 PC에 설치하는 걸 싫어하는 미국 사용자들이 그냥 bounce 돼서 떠나는 걸 속수무책 바라만 보고 있지 않았을 텐데. 미국과 한국, 양쪽에 팀을 운영하는 어려움을 미리 알았다면, 그냥 한쪽에만 집중했을 텐데. 비즈니스가 더 크고, 매출이 거의 100% 발생하는 미국 시장에 제대로 된 개발팀을 만들어서 사용자들의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듣고 반영하면서 product iteration을 했으면, 진짜로 좋은 서비스를 만들었을 텐데. 음원 라이센싱에 대해서 잘 아는 인력을 초반에 채용했으면, 이 바닥에 대해서 공부하는데 1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CAC와 LTV 개념을 더 빨리 배우고, 최적화할 방법을 더 많이 시도했으면, 마케팅을 더 잘 했을 텐데. 더 열심히 할 걸, 더 허리띠를 졸라맬걸, 더 많은 이메일을 쓸 걸, 더 많은 투자자를 만날 걸 등등….

실은, 위에서 언급한 것 하나하나에 모두 변명과 핑계를 갖다 붙일 수 있다. 나는 잘못한 거 하나도 없고, 경기, 파트너, 투자자, 기술 등 남 탓만 하면 내 속은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뮤직쉐이크를 성장시키지 못한 이유는 100% 다 내가 잘 못 했기 때문이다. 모두 다 힘든 시기였고,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생각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지만, 이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내가 고전하고 있던 2008년~2012년, 이 기간 동안 대박 난 스타트업도 많다. 왜 이들은 잘 됐고, 우리는 못 했을까. 내가 잘 못 했기 때문이다.

위의 학생이 질문하고 한 3초 동안 이 모든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그 학생한테 나는 “잘 안 된 이유는 간단하죠. 사업을 하고 있던 제가 잘 못 했기 때문이에요. 영어로 하면 ‘I fucked up’이죠.”라고 대답했다. 내 사업이나 인생이 잘 안 풀리면, 그건 부모님 탓도, 나라 탓도,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내 탓이다.

Public 블록체인과 Private 블록체인

public-private-blockchain비트코인이나 블록체인에 관심이 있다면, 최근 2년 동안 비트코인보다는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도가 훨씬 더 높아졌다는 걸 잘 알 것이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금융기관 중 블록체인 관련 프로젝트 한두 개 안 하는 곳이 없을 정도로 그 열기는 대단하다.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은행에서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대부분 실체가 없는 파일럿 테스트들이고 필요성이 아닌 “남들도 다 하는데, 우리도 뭔가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FOMO 때문인 거 같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me too 테스트들이 me only 혁신으로 이어질 거라는 건 확신하고 있다.

내가 아는 모든 은행의 프로젝트는 프라이빗 블록체인 기반인데, 많은 분이 나한테 private과 public 블록체인에 대해 문의를 해서 오늘은 이와 관련 몇 자 적어보려고 한다. 남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어서 permissionless 라고도 하는 퍼블릭 블록체인은 말 그대로 인터넷만 있으면 누구나 다 사용할 수 있다. 비트코인을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게 블록체인이고, 비트코인은 특성상 다른 사람한테 돈을 보내기 위해서 은행 같은 제삼자한테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고, 특정 기관에 등록하거나 인증을 받을 필요도 없다. 말 그대로 누구한테나 열려있기 때문에, 아무나 비트코인 주소를 만들어서 다른 주소로 돈을 보낼 수 있고, 받을 수도 있다. 또한, 누구나 하드웨어를 구매하면 (기술적 지식이 있으면)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마이너가 되어 블록을 생성하고 네트워크에 참여하여 기여할 수 있다. 퍼블릭 블록체인의 코드는 오픈소스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전체 블록체인을 내려받고 설치할 수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지갑이나 결제 솔루션을 개발할 수 있고, 다른 블록체인을 개발할 수도 있다.

서로를 모르고, 그리고 서로를 신뢰할 수 없는 네트워크인 퍼블릭 블록체인은 몇 가지 태생적인 리스크를 갖고 있다:
-그 누구도 컨트롤 하지 않고, 허락받을 필요가 없으므로, 돈세탁이나 밀수품 거래에 사용될 수 있다. 이는 이미 문제가 되고 있다
-그 누구도 소유하지 않기 때문에, 블록체인을 유지하려면 경제적인 인센티브가 필요하다(=채굴)
-모두가 주인인 민주주의로 운영되기 때문에, 블록체인 프로토콜을 변경하는 게 쉽지 않다. 네트워크 51%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런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은행과 같은 기관에서는 블록체인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위에서 언급한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선호한다. 네트워크에 가입하고, 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허락을 받아야 하므로 흔히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permissioned 블록체인이라고도 한다.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R3 컨소시엄 은행들이 사용하는 Ripple일 것이다.

대부분의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하나가 아닌 다수의 업체가 파트너쉽이나 컨소시엄을 통해서 만든다. 컨소시엄 회원 업체들의 상호 승인과 허락을 통해서만 블록체인에 가입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퍼블릭 블록체인과 같이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네트워크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도 특정 은행 또는 정부 주도로 여러 은행이 컨소시엄을 형성하고, 이 연합체에 속한 기관들끼리만 사용할 수 있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을 많이 수행하는데, 이게 모두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의 개념상, 이 네트워크의 회원들은 어느 수준까지는 백그라운드 체크를 통해 선정되었기 때문에, 서로를 신뢰할 수 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테러범이나 밀수범은 네트워크에서 제외할 수 있다(사전 스크리닝을 통해서)
-컨소시엄 회원들이 동의한 특정 목적만을 위해서 블록체인 프로토콜을 최적화할 수 있다(위에서 언급한 Ripple은 글로벌 금융 거래만을 위한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다)
-퍼블릭 블록체인같이 여기저기 분산된 불특정 다수의 채굴자가 거래를 증명하는 모델이 아니고, 신뢰할 수 있는 기관/사용자들이 거래를 증명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발생하지 않는다. 즉, 거래를 증명하기 위한 인센티브가 필요 없기 때문에 ‘채굴’이 필요 없다
-프로토콜을 변경하거나 업데이트 하는 게 훨씬 쉽다. 민주주의 방식이 아니라, 그냥 컨소시엄에서 하자고 하면 하는 거다
-폐쇄형 블록체인이기 때문에 프라이버시가 어느 정도 보장된다

이런 특징 때문에 은행이나 정부기관같이 역사가 있고, 보수적인 조직에서는 공개보다는 비공개 블록체인을 채택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컨소시엄에서 블록체인을 통제할 수 있으므로, 혹시나 어디서 문제가 발생하면 적절한 조치를 인위적으로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은, 나는 개인적으로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존재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비트코인 자체가 서로 전혀 모르는 수 천, 수 만 명의 사용자들이 랜덤하게 참여하는 공개 네트워크인데, 이는 여기에 참여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허락을 받고, 누군가의 통제를 받는다는 개념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블록체인에서 이런 개방적 특성이 제거되면, 굳이 블록체인을 사용하는 이유가 없다고 본다. 그냥 은행들이 과거에 하던 방식대로, 인허가를 받은 사용자만이 참여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면 굳이 블록체인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이 블록체인을 인터넷과 비교하고 나도 이에 동의한다. 블록체인이 인터넷과 같이 단기간 안에 혁신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개방되어야 한다. 닫혀있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지친 영혼을 위한 조언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기계도 같은 부위에 지속적인 힘을 가하면 피로도가 누적되고, 결국 부러지는데, 사람은 아무리 체력과 정신력이 강해도, 반복된 스트레스나 고통이 지속해서 가해지면, 어느 순간 반드시 부러진다. 그리고 한 번 부러지면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특히, 그게 뼈가 아니라 정신이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창업을 통해 꿈을 현실로 만드는 건 대부분 사람이 상상만 하는, 상당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신념의 도약이다. 이 힘든 결정을 하는 모든 창업가는 의지가 상당히 강한 분들이다. 하지만, 이런 분들도 한 번도 칭찬을 받지 못하고 수십번, 많게는 수백 번 거절당하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 들게 마련이다.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면서 야심 차게 창업했지만, 그 누구도 이 비즈니스를 인정해주지 않고, 수많은 투자자한테 욕만 먹고, 거절당하면, “내가 가는 길이 틀렸나?” 또는 “내가 그렇게 무능한 인간이었나?”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 의문은 또 다른 의문을 낳고,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창업가는 자괴감에 빠지면서 매사에 자신감을 상실하게 된다. 한국 스타트업 커뮤니티에도 이런 지친 영혼들이 많다.

얼마 전에 이런 지친 영혼을 만났다. 미팅하면서 계속 내 눈치를 보는 느낌을 받았고, 계속되는 내 질문에 대해 미리 준비나한듯,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모범답변만 기계적으로 나열해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이 서비스는 방향을 조금만 다르게 잡아보면 정말 가능성이 많은 제품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 같다는 말을 하자 대표이사가 갑자기 울컥했다. 이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 3년 이상 비즈니스를 하면서 수백 명의 투자자를 만났지만, 자신들이 가고 있는 길에 대해서 긍정적인 이야기 하는 걸 너무 오랜만에 들어서 기분이 짠했다고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게 되겠어?” , “너희 같은 팀이 감히 그 회사를 따라잡아?” , “좋은 학교 나와서 고작 이건가요?” , 뭐 이런 비난만 받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창업 초기의 그 패기와 자신감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소심과 자괴감이 대체하면서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투자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투자자 미팅에 참석한다고 했다.

참 안타까웠다. 회사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 분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창업가한테 초심으로 돌아가서 왜 이 힘든 창업의 길을 택했는지를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다. 분명히 내가 믿는 비전이 있고, 내가 만들고 싶은 제품이 있어서 이 길을 선택했을 것이고, 절망적이지만 아직도 이런 나의 초심을 믿고, 우리 팀이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면, 투자를 받기 위해 사업을 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사업을 위한 사업을 하라고 했다. 이런 자신감이 있다면, 투자자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나와 우리 사업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할 수 있어야 하고, 투자자를 나의 이야기 안으로 끌어올 수 있어야 한다. 그걸 하지 못하면 투자도 없고, 이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이유도 없는 것이다. 실은, 많은 투자자도 창업가의 이런 태도를 원한다. 왜 이 비즈니스에 투자를 해야 하는지 창업가는 투자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지, 투자자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에 오히려 창업가가 설득당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남이 나의 비즈니스에 대해서 정의한 프레임 안에서 움직이는 소신 없는 창업을 할 바에야 그냥 남의 밑에 들어가서 일하는 게 더 현명하다.

영혼이 지칠수록, 더욱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투자자들의 질문에 쫄지말고, 그들의 취향에 맞추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내 사업을 해라. 어차피 이건 내가 하는 거지, 남을 위해서 하는 비즈니스가 아니지 않냐.

Bitcoin vs. Ethereum

비트코인에 관심을 두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더리움에도 관심을 두게 된다. 나도 얼마 전부터 이더를 꾸준히 사고는 있지만, 우리 부모님이 비트코인과 이더의 차이에 관해서 물어본다면, 이분들이 이해할 정도로 쉽고 간단하게 정리해서 설명할 수 있는 능력과 지식은 나에게 없다. 얼마 전에 Coinbase의 프로덕트매니저 Linda Xie가 이더리움을 쉽게 설명한 글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굉장히 명확해서 여기서 공유한다. 그대로 번역만 한 부분도 있지만, 내가 다시 정리한 부분도 있다.

Ethereum 웹사이트는 이더리움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이더리움은 스마트 계약을 가능케 하는 분산된 플랫폼이다(Ethereum is a decentralized platform that runs smart contracts)” 실은 이게 맞는 설명이고, 각 단어를 하나씩 읽어보면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계속 “그래서 이더리움이 뭔데?”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비트코인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으면, 실은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지만, 비트코인을 이해하고 있다면, 이더리움을 비트코인에 비교해서 설명하면 이해하는 게 더 수월해진다.

출처: Coinbase 공식 블로그

출처: Coinbase 공식 블로그

아주 간단하고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비트코인은 디지털암호화화폐이다.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나카모토의 논문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에서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듯이, 비트코인은 사람들이 서로 전자화폐를 보내고 받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탄생했고,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이 용도로 비트코인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 나온 지 이제 8년 된 비트코인은 송금보다는 단순 투기 목적으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긴 하다. 하지만, 비트코인, 그리고 함께 탄생하고 성장한 블록체인 덕분에 인류는 분산화된 시스템 기반의 디지털 화폐에 눈을 뜨게 되었고, 이는 ‘프로그램할 수 있는 돈/자산’이라는 새로운 혁명을 가져왔다.

이더리움을 통해서 디지털 화폐를 더 유연하고 다양하게 프로그래밍할 수 있고, 이는 스마트계약을 가능케 한다. 위의 표에서 설명한 대로,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철수로부터 영희한테 돈이 송금되는 시나리오는, 이더리움이 없으면 중간에 여러 중개인이 개입되어야 하며, 이는 거래 자체를 더 복잡하고, 더 느리고, 더 비싸게 만든다. 서로 모르는 개인들이 거래를 할 때 – 예를 들면, 집이나 자동차를 사고 팔 때 – 신뢰의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중개인들이 개입되는데, 이 자체가 거래를 더 복잡하고 위험하게 만든다. 이더리움을 활용하면, 이런 복잡한 구조를 코드 몇 줄로 해결할 수 있다. 거래하는 사람들이 합의에 도달하고, 특정 조건들이 충족되면, 집이나 자동차의 소유권이 이전되도록 계약 자체를 프로그래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과 이더리움같이 분산된 시스템은 신뢰할 수 없는 네트워크에서 안전하게 거래를 할 수 있는 근간을 제공하기 때문에, 스마트계약을 가능케 하는 이더리움이 상용화되면, 이 위에서 운영될 수 있는 서비스의 종류와 가능성은 무궁무진해진다.

거품, 겨울, 그리고 흑조(Black Swan)

blizzard얼마 전에 구글캠퍼스의 2017년 계획을 발표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어떤 기자분께서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 업계에 겨울이 올 거라는 소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내 의견을 물어봤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그 자리에서는 간단하게 답변을 드렸는데, 이에 대한 나의 조금 긴 의견은 다음과 같다.

이 분야에 있다 보면, 거품과 겨울 이야기가 거론되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거 같다. 작년에도 마찬가지였고, 2017년 초에도 – 즉, 2개월 전 만 해도 – 투자와 밸류에이션 과열 현상으로 인해 거품이 곧 터질 것이고, 이와 함께 핵겨울이 올 것이니, 비즈니스 모델이 없는 회사들은 빨리 돈 벌 수 있는 전략을 만들어야 하고, 돈이 없는 회사들은 빨리 펀드레이징을 하라는 이야기를 투자자, 창업가, 애널리스트 모두한테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거품이 터졌나? 그리고 겨울이 왔나? 지난주 Snap의 성공적인 IPO를 보면서 아직 거품도 아니고, 겨울도 오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실은 거품과 겨울은 내가 자주 언급하는 전형적인 블랙스완이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교수는 저서 ‘Black Swan’에서 ‘흑조’는 다음 3가지의 특성이 있다고 했다:
1/예측할 수가 없다
2/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진다
3/후에 곰곰이 생각하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다고 분석된다

현재 tech 시장에 거품이 껴있는지, 또는 겨울이 임박한 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가 없다. 거품이 터져야지만, 그리고 추워져야지만 비로소 우리는 거품과 겨울이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이고, 거품이 터지고, 추워서 업계가 얼어버리면, 그제야 우리는 “그럴 줄 알았어” 라는 말을 하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분석하고, 서로한테 손가락질할 것이다.

그렇다고 tech의 호황이 평생 가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가 미래를 반영하는 게 맞는다면, 10년 단위로 거품이 터지고 겨울이 올 것이고, 약 10년 전,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겨울을 경험한 창업가와 투자자는 모두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를 예측하는건 불가능하므로 곧 겨울이 닥칠 것인지, 거품이 터질 것인지를 물어보고 걱정하기보다는, 갑자기 추워지면 우리 조직이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옷을 준비해놓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혹한기를 위해서 조직의 지방을 제거하고, 항상 최상의 체력을 유지해야지만 건강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여기서 따뜻한 옷은 불황 때도 살아남을 수 있는 탄탄한 비즈니스모델, 체력은 지출을 최대한 줄인 ‘린’한 비즈니스를 말한다.

이 분야에 오래 계셨던 분은, 겨울이 오고 거품이 터지면, 하루아침에 시장의 유동성이 빠지는 것을 경험했을 텐데 – 나는 2000년도 초반과 말에 두 번 경험했다 – 시장에 널려있는 벤처투자금이 순식간에 마른다. 엄밀히 말하면, 돈이 없어지는 건 아니고, 대부분 돈이 극소수의 잘 되는 스타트업에 몰리기 때문에, 이제 시작하는 초기 스타트업한테까지는 흘러내려 오지 않는다. 유동성이 사라지면 VC에 의지할 수 없으므로, 스스로 수익성을 만들고 이를 계속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외주나 정부 프로젝트보다는 우리 제품의 코어 서비스로 매출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것이 아닌 건, 상황이 악화되면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호황이고 회사가 잘 되어도, 항상 지출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매출이 없거나, 외형적인 매출은 있지만, 이 매출의 질이 상당히 좋지 않기 때문에(=돈이 안 남는다) 까먹는 돈을 최소화 해야 한다. 가능하면 인력은 채용하지 말고, 만약 채용을 과하게 했다고 느끼면 정기적으로 해고해야 한다. 사무실도 가능하면 작고 저렴한 곳으로 옮겨라. 대표이사는 매일 비용구조를 감시하면서,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면서 burn rate를 낮춰서 runway를 최대한 연장해야 한다.

스타트업계에 겨울이 곧 올까? 거품이 곧 터질까? 잘 모르겠다. 터져야지만 이게 거품이었다는걸 알게 되고, 추워져야지만 겨울이 온 것이다. 블랙스완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이를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패닉할 필요는 없지만 돈 없고, 비즈니스 모델 없고, 매출 없는 스타트업들은 최소한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한다.

<이미지 출처 = http://www.allclip.net/td_d_slug_9/page/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