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필요해

나는 이 블로그에서 서평은 잘 안 쓰지만, 그래도 감명 깊게 읽었거나, 뭔가 나한테도 도움이 되고, 다른 분들한테도 도움이 될만한 내용의 책을 읽은 후에는 가끔 몇 자 적기도 하는데, 오늘은 그런 책에 대한 내용이다. 꽤 많이 읽힌 책인 거 같은데 Celeste Headlee의 “말센스”라는 책이다. 원제목은 – 그리고 나는 이 원제목이 훨씬 더 맘에 든다 – “We Need to Talk”인데, 원제목만 봐도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대화에 대한 책이다. 흔히 ‘대화’라고 하면 우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우린 태어날 때부터 뚫린 입이 있고, 말을 하는 동물로 태어났기 때문에, 평생 말을 하고 살기 때문에 대화라는 주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는 거 같다. 그냥 남이 말하면, 나도 말하고, 같이 서로 말하는 게 대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함정이 있는 거 같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이 “대화=말하기”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대화=듣기+말하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말하는것 보단, 듣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듣는 것도 남의 말을 단순하게 생리학적으로 듣는 게 아니라,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소통을 하기 위해서 감정을 갖고, 생각을 하면서 듣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즉, ‘hear’가 아니라 ‘listen’에 대한 책이다.

책에 대한 다른 독자들의 서평을 보면, 호불호가 갈린다. 나같이 공감한 분들도 있지만, 이미 아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짜깁기 한 내용이라는 평도 있는데, 나는 이 책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말하고 듣기는 인류의 시작부터 인간이 해왔던 행위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이론과 내용이 너무 많다. 그래서, 좋은 대화를 하기 위해서 어떤 태도와 행동을 갖고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서는 기존의 내용을 잘 정리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전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도 나름 많은 사람을 만난다. 지금까지는 나는 이들과 소통하고 대화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 행동을 하나씩 짚어 보니, 절반은 대화를 했지만, 나머지 절반은 내가 주인공이 돼서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는 반성을 깊게 했다. 그만큼 누군가와 깊고 의미 있는 대화를 하는 건 학교에서 학문을 배우는 것 만큼 어려운 기술이자 습관인 것 같다. 내가 저자의 의도를 다 파악하진 못 하지만, 이 책의 핵심은 “덜 말하고, 더 들어라”이고, 조금 더 나아가서는 “말 하는 게 가만히 침묵하는 것보다 좋다는 확신이 들때에만 말해라”이다.

그냥 책 읽으면서 랜덤으로 맘에 들었던 문구들을 발췌했는데, 다음과 같다(특별한 순서 없이):
1/ 대화에서도 중요한 건 양이 아니라 질이다.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말해라.
2/ 말하기보다는 들어주고, 재촉하기보다는 기다려주고, 논쟁하기보다는 공감해라.
3/ 말 하는 게 침묵하는 것보다 좋다는 확신이 들때에만 말해라.
4/ 대충 아는 것을 잘 아는 척 하지 않는다. “I don’t know”는 가장 효과적이자 가장 솔직한 대화를 위한 필수적인 답변이다.
5/ 더 똑똑해지고 싶다면 더 많이 들어라.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인다면 생각은 열리고 관계는 더 가까워질 것이다.
6/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다면 솔직하게 말해라. 지금은 다른 중요한 일 때문에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고. 대화 순간에 집중하는 것과 대화의 자리에서 걸어 나오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7/ 하루에 대화를 단 한 번만 하더라도, 그 대화는 영감에 차고 일깨움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대화를 하기 위해 침묵할 시간이 필요하면, 하루의 대부분을 그냥 조용히 침묵해라.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8/ 말을 잘하고 싶으면 일단 말하고 싶은 욕구를 참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대화에서도 당신은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통제할 수 없다. 스스로를 통제해야 한다.
9/ 어려운 대화는 가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이럴 때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단 하나, 누군가가 먼저 사과를 하는 것뿐이다.

Shut the fuck up and listen.

겸손해질 수 있는 영광

스타트업 분야에서 일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로 고마운 점이 많아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특히, 대기업 또는 이 업과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는 매일 경험하기 때문에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경우가 꽤 많다.

다 나열하면 너무 많지만, 올해 이런 생각을 가장 많이 했을 때가 두 가지 경우다. 둘 다 창업가들과 이야기할 때 느낀 점들이다. 내가 만나는 창업가 중 95%가 소위 말하는 고생하는 바퀴벌레형 창업가이다. 나도 투자하는 사람 입장에서 원래 사업은 힘들고, 앞으로 더 힘들어 질 것이기 때문에, 항상 버티면서 허슬링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을 하지만, 나도 짧게 경험을 해봐서 알지만, 이게 정말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스타트업이 진짜 전쟁도 아니고, 조폭과 사업하는 것도 아니라서, 일 하다가 정말로 죽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마음가짐만큼은 정말 죽을 각오를 하고 덤비는 창업가들을 보고 있자면,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사서 고생하고, 힘든길을 가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질 때가 많다. 그리고 정말 가끔 그런 질문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 내가 누가 봐도 곧 망할 것 같은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분한테 “대표님, 그냥 이건 투자자로서 하는 질문이 아니라, 같은 사람으로서 궁금해서 물어보는데요, 이거 대체 왜 하시는 건가요? 그동안 잘 안 됐고, 앞으로도 잘 안 될 거 같은데요.”라는 질문을 했다. 이분이 조금 생각하더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글쎄요. 저는 제가 왜 이걸 하는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일이고, 그냥 매일 일어나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러다 보면 계속 살아남으면서 앞으로 나가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그만두면 이 힘든 여정이 끝나겠지만, 저는 그냥 계속할 거예요.”

이럴 때는 내가 왜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많이 겸손해진다. 저렇게 힘들지만, 계속 앞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불평불만 없이 내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고, 내가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가야겠다는 다짐을 항상 하게 된다.

또 항상 겸손해질 때가 있는데, 이미 성공 경험이 있는 창업가들이 다시 창업해서 역시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걸 볼 때다. 이 분들이야말로, 좋은 엑싯을 해서 평생 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고, 어떻게 보면 나 같은 투자자한테 돈 달라고 부탁하지 않아도 되지만, 내가 아는 그 어떤 창업가보다 열심히 일 한다. 이런 분들이 아직도 매일 15시간씩 일하고, 주말에도 회사에 나오고, 자나 깨나 사업 생각만 하는걸 보면, 그냥 반자동적으로 나를 돌아보게 되면서 겸손해진다. 전에 내가 개인 자산이 수천 억 원이 넘는 연쇄 창업가의 짐승피칭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 분야에 있다 보면 이런 분들을 꽤 자주 접할 수 있다. 대기업이나 다른 분야에서는 솔직히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아직 미완성 소프트웨어를 베타 제품이라고들 하는데, 인생도 미완성이고, 삶의 묘미는 이 미완성 인생을 계속 개선해나가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인생은 항상 베타라고 할 수 있다. 성공을 이미 했든, 실패를 여러 번 했든, 앞으로 성공을 하고 싶든, 창업가들이야말로, 상황과는 상관없이 항상 최선을 다하면서 정말 베타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 멋진 사람들이다.

나는 열심히 하는 것보단,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직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도, 어제보다 나은 오늘, 그리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하는 분들한테는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밤새 쳐주고 싶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분들과 같이 일하면서 항상 겸손해질 수 있는 건, 그 자체가 영광이다.

배달의 민족

2019년 스타트업계의 가장 큰 뉴스는 아마 배달의 민족 엑싯이 아닐까 생각한다. 독일에 본사를 둔, 요기요와 배달통을 운영하는 Delivery Hero가 4.7조 원에 배달의 민족을 인수했는데, 국내, 그리고 해외에서도 깜짝 놀랐던 빅딜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배달의 민족에 대해서 처음 들었던 건 아마도 2011년도였던 거 같다. 알토스의 한킴 선배님이 중국집 찌라시를 스캔해서, 이걸 모바일로 제공하는 앱이 있는데, 이름이 배달의 민족이라고 했을 때, 그냥 뭐 이름 정말 웃긴다고 하면서 막 웃었던 게 기억나는데, 이 회사가 10년 만에 엄청난 기업이 됐다. 참고로, 그땐 스트롱벤처스가 만들어지기 전이라서 우린 투자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이 딜에 대한 반응은 엇갈리는 거 같다. 국내 기업이 외국 기업에 넘어갔다는 점, 이젠 한국의 배달 시장이 외국인 소유가 됐다는 원망, 배달의 민족이 게르만 민족이 됐다는 말장난, 뭐, 이런 부분이 못 마땅 하다는 부정적인 의견도 상당히 많은 거로 알고 있는데, 나는 굳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배달의 민족은 한국 정부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가 산업이 아니다. 철저하게 시장과 자본의 논리로 만들어졌고, 운영되는 기업이다. 자본의 싸움이고, 시장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외국기업은 한국기업을 인수하면서 한국과 아시아에 진출한 것이고, 좋은 회사를 확실하게 인수하기 위해서 시장 가격을 지불한 것이다. 이게 비싸니, 말도 안 되는 기업가치니, 하는 건 다 부질없는 논쟁이다. 돈을 내는 사람이 지불의사가 있는 가격이 시장 가격이 되는 것이고, 누군가 딜리버리히어로보다 더 간절하게 배달의 민족을 원했다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했어야 할 것이다. 한국기업도 해외기업을 인수하면서 해외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고, 이미 이렇게 하고 있는 마당에 독일 회사가 한국 스타트업을 조 단위 가격에 인수한 게 뭐가 그렇게 이상한 건지 잘 모르겠다. 이미 말했듯이, 이건 자본의 싸움이고, 돈에는 국적이라는 게 없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배달의 민족의 초기 투자자인 본엔젤스와 알토스가 부럽다. 그리고 너무 축하한다. 실은, 알토스보단 우리랑 비슷한 단계에 투자하는 본엔젤스가 더 부럽고, 강석흔 대표님과 본엔젤스 팀원분들에게 respect를 표한다. 본엔젤스는 이번 엑싯으로 인해서 8년 전에 3억 원 투자한 게 1,000배가 됐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우리 같은 초기 VC한테는 정말 꿈같은 수익률이다. 이 정도면, 투자 인생에서 평생 한 번 정도 칠만한 그런 만루홈런이다.

올 한 해도 한국 스타트업 커뮤니티에 이런 좋은 소식이 많이 생겼으면 하고, 우리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한다. 그리고 김봉진 대표님과 우아한 형제들 모두 축하한다. 아시아인 모두가 다 배달의 민족이 되길.

The Startup Bible – 2019 정리

1577276678349해마다 12월 마지막 주에는 한 해 동안 쓴 글들에 대해 정리를 하는 포스팅을 올리는데, 마침 내일이 2019년 마지막 날이라서 올해 정리를 하루 일찍 해본다.

2019년에 난 102개의 글을 올렸는데, 이는 3.6일에 한 번씩 블로깅을 한 셈이다. 매주 월요일, 그리고 목요일 포스팅을 하니까, 이 수치는 항상 동일하다. 102개의 포스팅을 읽기 위해서 The Startup Bible 블로그를 방문한 분은 총 147,895명이다. 월평균 12,324명, 일평균 410명이 방문한 셈이다.

2019년도에 가장 많이 읽힌 Top 10 글은 다음과 같다:

1/ 팀이 회사 그 자체다
2월에 쓴 글인데, 벤처 업계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충분히 공감할만한 내용이라서 그런지, 많이 읽혔고, 읽은 후에 나한테 좋은 글 써줘서 고맙다는 메시지랑 이메일 보낸 분들도 꽤 있었다. 시장에서의 좋은 사람에 대한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잘 보여주는 현상이다.
참고로, 2018년도에 가장 많이 읽혔던 글은 ICO(Initial Coin Offering)와 코인경제이다. 시장이 참으로 급격하게 변하고, 사람들의 생각도 급격하게 변하는 것 같다.

2/ 스트레스 테스트
스타트업을 초반에 빨리 성장시키려면, 투자를 받아서 마케팅에 돈을 많이 써야 한다고 믿는 창업가들이 많다. 이 맥락에서 쓴 글인데, 꽤 많은 창업가가 공감한 것 같다.
2018년도에 두 번째로 많이 읽힌 글은 한국인들의 7가지 실수이다. 이 글은 꾸준한 all-time 베스트/스테디 글이었는데, 올해는 20위 권 밖으로 밀렸다.

3/ 창업가의 자질
올해 우리가 투자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을 글로 정리했는데, 역시 스트롱뿐만 아니라 많은 투자자가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좋은 창업가는 좋은 제품을 만들고, 펀드레이징을 잘하고, 그리고 좋은 사람을 잘 채용한다.

4/ 클럽딜에 대한 내 생각
실은 별 생각 없이 쓴 글인데, 몇몇 다른 투자자들한테 욕을 먹은 내용이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5/ 공동창업자 구하기
1인 sole founder들이 나한테 공동창업자는 어디서,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많이 물어보는데, YC 파트너인 Kat Manalac 이 관련해서 좋은 동영상을 올려서, 이걸 보고 몇 자 적은 글이다.

6/ 스톡옵션 가격
이 내용도 많은 창업가와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분들이 즐겨 읽었다. 스톡옵션의 가격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많은 분이 궁금해하는데, 이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7/ 마지막 3%
인생은 디테일의 싸움이고,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특히, 제품을 만들 때에는 3%의 디테일이 모든 걸 결정한다. 인류는 대형 유인원과 97% 이상 유전자를 공유하지만, 다른 3%가 인간을 유인원과 99.99% 다르게 만든다.

8/ 글로벌 유니콘 지도
CB Insights의 내용을 편집해봤다.

9/ 스톡옵션 개론
스톡옵션에 대한 개념이 이제 한국에서는 정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실은, 이 글은 2014년 10월에 쓴 내용인데, 이 글과 더불어 스톡옵션 관련된 여러 가지 내용이 올해 많이 읽혔다.

10/ 팀의 몸값이 회사의 밸류에이션이다
처음 창업하는 파운더들이 만드는 회사의 밸류에이션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이상 2019년에 가장 많이 읽힌 글 10개였다. 굳이 이렇게 통계를 내야 하는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데이터를 조금 보면, 어떤 글들이 인기가 있었고, 내가 계속 꾸준히 글을 쓰고 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좋다. 특히, 작년에는 탑 10에 두 개나 있던 블록체인/암호화폐 관련 글이 올해는 전혀 인기가 없었다는 건 싸늘해진 시장의 분위기와 일맥상통하고, 스톡옵션 관련 글이 인기가 많았다는 점도 시장의 분위기와 앞으로의 트렌드를 잘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Happy New Year!

<이미지 출처 = 크라우드픽>

직원들의 스톡옵션

한 5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스타트업에 취직하면, 연봉과 조건 협의할 때, 대부분의 직원은 스톡옵션보다는 현금을 선호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는 스톡옵션에 대한 개념이 정착되지 않았었고, 지금같이 성공한 스타트업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가능성이 매우 낮은 불확실한 휴짓조각 같은 스톡옵션을 받기보단, 고정된 가치지만 내 주머니 속으로 꼬박꼬박 들어올, 확실한 현금을 선호했다.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연봉협상을 할 때, 오히려 현금 부분을 줄이고, 스톡옵션을 더 많이 받길 선호하는 내가 아는 미국 회사원들과는 대조되는 광경이었다.

그 후 5년이 지난 현재도 현금을 선호하는 성향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아직 미혼이거나 가족이 없는 젊은 분 중 현금보다는 스톡옵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잘되고 있는 스타트업이 많아졌고, 특히 유니콘이 더 많아지면서, 주변 지인들이 실제로 돈을 많이 번 사례를 보면서 이렇게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아무도 모르던 이커머스 회사, 또는 배달 앱을 만드는 회사에 친구들이 입사했을 때는 뭐 저런 회사에 취직했냐고 비웃었지만, 몇 년이 지난 후에 기업가치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입사 초기에 받은 스톡옵션의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올라가서 큰돈을 버는 걸 직접 보게 되고, 이런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면서, 스톡옵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

실은, 창업자가 아니고 직원이라면, 스톡옵션은 이들에게는 스타트업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연봉을 많이 받으면 당연히 좋지만, 솔직히 세금을 낸 후에 실수령하는 현금은 그렇게 차이 나진 않는다. 그리고 이 연봉의 차이가 인생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금액도 대부분 아니다. 그러면, 열심히 일해서 같이 회사의 가치를 키워나가고, 회사가 잘 되면 본인도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스톡옵션은, 대기업에서는 제공되지 않는, 스타트업에서만 제공되는 굉장히 좋은 보상 기회가 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실패하기 때문에, 스톡옵션은 대부분 휴짓조각이 된다는 점은 명심하자.

회사의 입장에서도 현금보단 스톡옵션을 직원들에게 주는 게 여러모로 좋다. 일단,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돈이 없다. 돈 없는 스타트업에서 현금은 워낙 소중하기 때문에 – 지분도 소중하지만, 현금은 회사를 돌아가게 만드는 피라서 – 가능하면 아껴야 한다. 스타트업 비용의 대부분은 인건비이기 때문에, 직원들의 연봉에 현금과 스톡옵션을 적절하게 섞으면 그만큼 회사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더 많은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또 다른 장점은, 직원들에게 어느 정도의 회사에 대한 애사심과 오너십을 심어줄 수 있는 게 스톡옵션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의 지분을 내가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상당히 자랑스럽고 모티베이션을 줄 수 있는데, 내가 열심히 일해서 회사가 잘 되면 그 지분의 가치 또한 올라가니, 이보다 더 좋은 인센티브는 없을 것이다.

그럼 스타트업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 스톡옵션을 얼마큼 주는 게 적당할까? 1%가 맞을까 아니면 10%가 맞을까? 우리 투자사 대표들이 나한테 요새 자주 물어보는 질문이기도 하다. 실은 정답은 없지만, 기본적으로 코파운더도 아니고, 임원급도 아니고, 그냥 일반 직원이지만 초기에 입사하는 분들한테는 최대 1~2%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면 좋다. 새 직원이 입사하는데, 이 분 정도면 시장에서 받을 수 있는 연봉이 5,000만 원이라고 가정해보자. 이미 말 한대로, 현금이 항상 부족한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현금과 스톡옵션을 적절히 혼합하는 게 가장 좋다. 회사에서 제공할 수 있는 현금이 3,500만 원이라면, 부족한 1,500만 원을 스톡옵션으로 주면 좋다. 부족한 1,500만 원은 그러면 몇 퍼센트인가? 조금 객관적으로 계산을 해보려면, 스타트업의 현재 기업가치를 따져보는 게 좋다. 만약에 얼마 전에 기업가치 50억 원에 투자를 받았다면, 이 회사의 소위 말하는 공평한 시장가치(=Fair Market Valuation)는 50억 원이다. 50억 원의 0.3%가 1,500만 원이다.

그러면, 이 직원분한테는 현금 3,500만 원에 회사의 스톡옵션 0.3%를 제안하고, 이걸 기반으로 협상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은, 이 ‘0.3%’라는 엄청 작아 보이는 퍼센트가 중요한 게 아니고, 이게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가 될지가 중요한 것이다. 또한, 이 가치는 훨씬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을 직원분은 명심해야 한다. 50억 원의 0.3%면 1,500만 원이지만, 본인이 정말 열심히 일해서, 회사의 기업가치가 높아지고, 만약에 1,000억 원에 엑싯을 해서 현금화를 한다면, (희석을 무시한)0.3%는 3억 원이 된다. 또한, 일을 잘하면, 중간마다 보너스로 스톡옵션을 계속 받을 기회도 있다.

가끔, “우리 사장 진짜 짜다. 스톡옵션 고작 1%밖에 안 주더라.” 류의 말을 듣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마다 나는 그 1%라는 숫자에 집착하지 말고, 그 1%의 시장가치에 관심을 더 가지라는 조언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