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dshake와 도메인 네임

웹사이트 도메인 네임을 구매해본 경험이 있다면, DNS(Domain Name System)라는 단어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만약에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내 블로그에 접속하기 위해서 브라우저에서 thestartupbible.com을 입력했을 텐데, 브라우저는 영문으로 된 thestartupbible.com을 DNS라는 컴퓨터 네트워크로 보내고, DNS는 이 웹사이트 이름을 숫자로 된 IP 주소로 바꾼다. 이 숫자가 마치 주소와 전화번호 같은 역할을 하는데, 이 IP 주소를 기반으로 복잡한 인터넷 네트워크에 있는 thestartupbible.com 서버를 브라우저가 찾는 것이다. 실은 이 IP 주소는 아무도 안 외우고, 대부분 관심이 없다. 그냥 브라우저 하나 열어서 가고 싶은 웹사이트 이름을 치면, 그 이후에 브라우저 뒤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관심이 별로 없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터넷의 주소와 이름을 정하는 이 중앙통제된 방법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누군가 이 시스템을 공격하거나, 아니면 정부가 인터넷을 통제하고 검열하기로 마음먹는다면, 한 단체 또는 한 회사만 통제하면 우리 모두의 free internet이 지대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DNS에 대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단체는 LA에 있는 ICANN(Internet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s and Numbers)이다. 이 단체가 하는 일은 DNS 서버 네트워크의 가장 상위에 존재하는 DNS 루트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감독하고, .com, .org, .net, 그리고 한국의 경우 .kr과 같은 국가 코드를 할당하는 것이다. 나도 전에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이 ICANN과 같은 단일 기관이 DNS 루트를 감독하고 도메인 이름을 할당하는 막강한 권력을 갖는다는 건 상당히 위험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오래전부터 내왔다. 예를 들면, 미국 정부가 ICANN에 압박을 가해서 DNS에서 특정 단체의 웹사이트 이름을 제거하거나, 특정 단체나 기업에 특정 이름을 할당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이 그 중 대표적이다.

우리가 투자한 Handshake라는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전에 한번 설명한 적이 있다. 메인넷 출시가 많이 늦어지긴 했지만, 그동안 여기 엔지니어들이 정말 열심히 개발을 해왔고, 이제 몇 달 있으면 메인넷 출시가 드디어 될 것 같다. Handshake Network 프로젝트는 그 어떤 단일 기관이나 개인이 소유하거나 통제하지 못하도록, 인터넷 네이밍 시스템을 탈중앙화하려는 대체 인터넷 네이밍 시스템이다. 핸드쉐이크 소프트웨어는 비트코인을 아주 많이 수정/포킹한 코드인데, 제대로 출시가 된다면 그 누구도 소유하지 않고,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DNS 시스템이 완성되지 않을까 싶다.

실은 Handshake Network는 미국보다는 중국과 같이 정부의 통제가 심한 곳에서 더 큰 빛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에서는 웹사이트 소유자 실명인증 제도를 실시하기 때문에, 중국 정부에서 싫어하는 사람이나 기관이라면 그냥 DNS를 통제해서 그 웹사이트를 닫아버릴 수 있는데, 핸드쉐이크가 적용된다면 웹사이트를 익명으로 등록할 수 있고, 특정 서버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서 그 누구도 내 웹사이트를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실은 이런 시도가 전에도 몇 번 있었고, Namecoin이라는 프로젝트가 그중 가장 유명한데, Handshake는 Namecoin의 취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더 다양한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서 입찰이나 데이터 저장과 같은 중요한 프로세스를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들 계획이다.

블록체인, 암호화폐, 그리고 코인과 같은 용어를 요샌 들어보기 힘들 정도로 이 분야에 대한 대중과 스타트업의 관심도 식었는데, 그래도 할 사람들은 계속하고 있고, Handshake와 같이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드디어 출시된다는 건 이 기술과 가능성을 장기적으로 믿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희소식이다.

상장 시장과 비상장 시장

우리는 비상장 초기 회사에 투자하는데, 이 분야에 있다 보니, 여러 가지 딜들을 접하게 된다. 간혹, 상장 바로 전의 회사의 pre-IPO 주식 투자 기회도 시장에서 돌다가 우리한테까지 오는 경우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상장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회사에 도움이 되거나, 아니면 그동안 회사에 도움을 줬던 분들한테 보답?의 차원에서 실제 상장 예상되는 가격보다 조금 싸게 투자 기회를 주는 경우가 대부분인 거 같다. 또는, 상장하기 전에 갑자기 회사가 급하게 돈이 필요한데,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IPO 예상 가격보다 조금 싸게 투자를 받는 경우도 있다.

실은, 전에 이런 기회가 나한테 주어졌다면, 고민을 좀 했을 거 같다. 우리는 이런 큰 딜과는 거리가 너무 멀지만, 앞으로 우리도 펀드를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펀드에 조금이라도 실적이 일찍 생기면 도움이 많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앞으로 6개월 후에 IPO 예정인 회사의 주식을 조금이라도 싸게 구매한다면, 대박은 아니겠지만, IPO 이후에는 가치가 몇 배 오를 것이고, 그리고 public 시장에서 팔면, 펀드의 LP들한테 조금이라도 수익을 만들어서 돈을 돌려줄 수 있고, 이렇게 하면 꽤 빠른 시간안에 펀드에 약간의 실적이 생긴다(투자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엄청난 실적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요샌 이게 기회인지 아닌지가 좀 헷갈린다. 최근에 IPO 한 유니콘들의 기업가치가 꼬꾸라지고, IPO 자체를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걸 보면서, 업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IPO가 회사의 목적이 돼서는 안되지만, 그래도 자금 조달의 측면에서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이며, 그 외에 뭔가 상징적인 의미도 있고, 또한, 기존 투자자들이 exit하고 유동성을 확보하기에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에 – 투자자들이 IPO를 하라고 압박하는 경우도 있다 – 많은 기업이 IPO를 회사의 큰 마일스톤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에 IPO 한 회사들의 실적을 보면, 명암이 명확하게 갈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비상장 시장의 투자자와 상장 시장의 투자자들이 회사의 가치를 정할 때 사용하는 기준이 매우 다르다는 걸 다시 한번 새삼 깨닫고 있다. 일단, 잘 알지만, 비상장 시장에서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는 매출, 이익, unit economics와 같은 객관적인 지표에 기반하기보단, 창업가의 비전과 회사의 잠재 가능성에 투자자들이 부여하는 가격을 기준으로 정해진다. 그리고 여기에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와 같은 대형펀드가 등장하면서, 투자자 간에 경쟁이 더해지면, 이 기업가치는 고무줄처럼 늘어날 수 있다. 손실이 아무리 많이 발생해도, 탄탄한 매출과 이익이 나는 중견 회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은 밸류에이션을 자랑하는 비상장 회사들이 너무나도 많다. 유니콘들이 대표적이라고 생각된다. 뭐, 이게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이 중 정말 미래에 세상을 바꿀 회사가 탄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비상장 시장의 기업가치 산정 방법이 맞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상장 시장의 경우, 투자자들이 기업을 보는 관점은 매우 다르다. 가능성도 당연히 보지만, 이들한테 당장 중요한 건, 아주 명확한 숫자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더 빠른 시점에 조금 더 저렴한 밸류에이션에 투자하길 선호하는 우리 같은 VC와는 달리, 더 비싸게 투자해도 상관없으니, 본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매출과 이익이 모두 좋게 나올 때까지, 그리고 본인들이 원하는 가격이 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IPO 이후에 주식가격이 급등해도, 동요하지 않고 가격이 정상화되길 기다리는 걸 자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회사의 비즈니스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면서, 모든 회사에 비슷한 기준과 배수를 적용하는 실수를 범하진 않는다. 예를 들어, 우버와 같은 택시라는 오프라인 비즈니스에 온라인 기술을 적용한 온디맨드(=O2O) 회사의 외형적인 수치는 클 수밖에 없지만, 그만큼 손실도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워낙 unit economics를 맞추기 어려우니까. 이와는 반대로 Zoom과 같은 소프트웨어 기반의 SaaS 비즈니스는 우버보단 외형이 작을 수밖에 없지만, 100% 소프트웨어 기반의 비즈니스라서 마진은 O2O 비즈니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하지만, 대부분의 VC는 Zoom보다는 우버의 기업가치를 훨씬 더 높게 평가한다. 상장 시장의 투자자는 회사들이 높은 배수를 원한다면, 그만큼 높은 마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버와 같은 회사는 현재 상장 시장에서는 고전하고 있지만, 그나마 줌은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실은, 상장 시장의 투자자들이 이런 객관적이고, 감정에 덜 치우치는 기준으로 투자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동안 너무 높은 단위의 투자금과 난무하는 유니콘 때문에 잠시 이런 사실을 잊어버린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들긴 하다. 너무 많은 스타트업이 너무 많은 투자를 받았는데, 손실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외형적 성장에만 너무 집중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고, 실은 우리 같은 VC도 여기에 큰 일조를 했기 때문에 나도 뭐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긴 하다.

얼마 전에 이런 농담을 들었다. 실리콘밸리에 호프집이 새로 생겼는데, 개업하는 날 6,000명의 고객이 방문했다고 한다. 이 중 실제로 술은 아무도 사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엄청나게 성공적인 술집이라고 주위에서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이젠 그래도 술을 좀 팔아야 하고, 술의 원가보다는 높은 가격으로 팔아야지만 성공적인 술집이라고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시장에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B2B SaaS 비즈니스 지표

전에 내가 B2B SaaS 비즈니스에 대해서 썼듯이, 나는 앞으로 한국에서도 좋은 B2B 스타트업이 생길 것이고, 이 회사들이 성공하면, 더욱더 많은 한국 창업가들이 B2B SaaS 스타트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린 요새 B2B 분야에 투자를 더 많이 하려고 하고, 나도 계속 이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다. 얼마 전에 테크크런치에서 B2B SaaS 회사에 대한 좋은 내용을 읽었는데, 미국에서 상장한 B2B SaaS 회사 중 현재 가장 시가총액이 높은 회사들을 분석해서, B2B 회사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표를 파악해본 것이다. 솔직히 아직 우리나라와는 조금 요원한 이야기지만, 생각보다 빨리 이 시장이 한국에서도 성장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됐을 때 B2B SaaS 스타트업이 어떤 지표를 목표로 삼아야 할지에 대한 간접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B2B 대표들도 한번 읽어보면 좋을 거 같다.

테크크런치에서 사용한 상장회사 리스트는 확보할 수 없었지만, 전체 리스트에서 현재 기업가치(시가총액)가 2019년도 예상 반복 매출(run rate revenue)의 20배 이상 되는 회사들만 선별했고, 이 회사들의 다양한 숫자를 기반으로 몇 가지 의미 있는 지표를 계산한 후, 전체 평균값을 내봤다. 다음과 같다:

–2019년도 반복매출 대비 기업가치(시가총액): 26.3배
–2020년도 반복매출 대비 기업가치: 20.3배
–최근 12개월 FCF(Free Cash Flow: 잉여현금흐름) 마진율: 19%
–반복매출 연성장률: 48%
–효율(Efficiency): 66%
–매출총이익률: 73%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효율(Efficiency)은, 회사의 FCF(Free Cash Flow) 마진율에 성장률을 더한 값인데, 상장 이후에 효율이 40% 이상이면 상당히 좋은 비즈니스라고 판단한다고 한다. 즉, 미국에서 가장 시가총액이 높은 B2B SaaS 상장회사의 FCF 마진율은 약 20%이고, 해마다 매출이 50% 정도 성장한다. 그리고 효율도 매우 높다.

이제 시작하는 한국의 B2B 스타트업이라면, 이런 지표가 너무 현실감이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참고하면서 사업을 하면 좋을 거 같다. 아무래도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B2B 소프트웨어 시장이고, 그만큼 축적된 데이터와 노하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지막 3%

요새 우리가 투자 검토하고 있는 회사의 대표와 얼마 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차별점이라는 주제가 튀어나와서, 내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실은, 정답도 없고, 어떻게 보면 참 멍청한 질문이라서, 내가 잘 하지 않는 질문이긴 하지만, 답을 떠나서 이분의 생각과 답변이 좀 궁금했다. 또한, 대부분의 투자자가 습관처럼 물어보는 질문이긴 하다. 이 회사의 기술, 제품, 서비스, 그리고 비즈니스 모델이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고, 실은 누구나 다 마음먹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우리가 남들보다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냐고 물어봤다.

이분의 대답은 내가 기대하던 답변이고, 대표가 시장을 이렇게 보고 있다는 건 나한테는 상당히 긍정적인 시그널이었다. 본인도 항상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고, 내가 한 말에 100% 공감한다고 하면서, 창업팀이 하고 있는 게 실은 어느 정도의 기술장벽도 있고, 서비스 장벽도 있고, 비즈니스모델 장벽도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남들이 못 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대기업에서 돈과 사람을 대거 투입하면, 본인이 2년 이상 했던 이 비즈니스와 비슷한 걸 훨씬 짧은 시간 안에 만들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남들이 할 수 있는 건 자신의 비즈니스와 “똑같은”게 아니라 “비슷한”걸 만들 수 있다는 점인데, 실은 비즈니스의 핵심은 비슷하다와 똑같다 사이에 존재하는 10%라고 하면서, 이 10%를 따라 하는 건 정말 쉽지 않고, 아주 오랜 경험과 굉장히 특별한 능력과 팀워크가 필요하다고 했다. 물론, 이분도 100% 완벽한 제품을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90%에서 100%까지 비즈니스를 완성하는 게 이 팀의 미션이고, 이건 돈이나 사람의 수라는 정량적인 자원보다는,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눈에 보이지 않는 경험과 디테일을 몸으로 직접 배웠냐는 정성적인 부분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이걸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팀이 이 회사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 말에 나는 매우 동의한다. 나도 실은 우리 투자사 대표들에게 항상 비슷한 말을 하는데, 겉으로 보면 같아 보이는 두 개의 비슷한 서비스 중, 하나는 사용자들이 좋아하지만, 다른 하나는 사용자들이 사랑하는 이유는 눈에 잘 안 보이는 작은 차이 때문이고, 이 작은 차이는 위에서 강조하는 디테일에서 나온다는 말을 자주 한다.

솔직히 우리가 자주 접하고 사용하는 배달앱, 쇼핑앱, 맛집앱, 중고거래앱, 음악 서비스, 자산관리서비스만 보더라도 비슷한 제품이 각각 최소 5개는 있지만, 대부분 이 중 하나만 사용한다. 처음엔, 여러 서비스를 동시에 사용하지만, 결국 그중 나한테 가장 유용한 한 개의 서비스를 선택하고, 이후에는 그 제품만 사용하게 된다. 그 이유는 결국엔 완벽을 추구하면서 더 견고해지는 디테일에 있는 거 같다. 눈으로 봤을 때는 잘 모르지만, 깊게 사용하다 보면 느낄 수 있는 그런 세심한 디테일 말이다. 누구나 다 90%까지는 상당히 빨리 만들 수 있지만, 매출의 99%를 만드는 건 마지막 10%이고, 이 10%를 완성하는 데에는 평생이 걸릴지도 모른다. 이 마지막 10%를 완성하는 게 팀의 경험과 열정, 그리고 수많은 반복과 시행착오인데, 이걸 잘하는 팀이 결국엔 성공하는 것 같다.

얼마 전에 본 다큐멘터리에서 인류는 대형 유인원과 97% 이상 유전자를 공유하지만, 다른 3%가 인간을 유인원과 99.99% 다르게 만든다는 내용이 있었다. 겉으로 보면 모두 다 비슷한 제품 같지만, 이기는 제품과 지는 제품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논리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모든 건 마지막 3%에 달려있다.

클래스101

전에 클래스101과 스트롱의 히스토리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얼마 전에 플래텀을 통해 클래스101의 최신 수치가 공개됐다. 매달 정기적으로 회사의 성장과 수치를 보고 있지만, 이렇게 누적 수치를 보니까 클래스101 팀도 대단하고, 이런 팀과 처음부터 같이 할 수 있었던 우리도 참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클래스101은 2018년 3월 정식 출시했고, 지금까지 1년 8개월 동안 거의 400개의 클래스를 만들어서 판매 중이며, 8,000명 이상의 크리에이터들이 애용하고 있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그동안 700만 명 이상이 클래스101을 방문했는데, 클래스를 구매한 고객이 약 90,000개의 후기를 남길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온라인 취미/클래스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또한, 크리에이터들에게 나눠준 정산액은 누적 100억 원을 돌파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보잘것없는 제품으로 시작한 작은 회사가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대단한 성장을 하는 걸 옆에서 가깝게 지켜보는 건 정말로 재미있다. 나는 항상 이런 경험을 “신박하다”라고 표현하는데, 정말 신박하다 외에는 설명할 말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없는 자원으로,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그 시장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시장을 압도적으로 장악하면서, 작은 시장이라면 이 작은 시장을 오히려 크게 만드는 건, 정말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대단히 매력적이고 신비한 일이다. 특히, 그 성장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고, 수많은 굴곡과 시련이 반복되고, 합쳐지면서 만들어지는 거라서 더욱더 신박한거 같다.

이런 회사와 함께 성장하는 또 다른 매력과 보람은, 회사의 수치가 성장하는 만큼 창업팀의 수준과 레벨도 같이 성장하고, 결국엔 단순한 숫자의 성장을 넘어 진정한 사업가로 숙성되는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특권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클래스101에 우리가 처음 투자할 때, 창업팀은 아주 똑똑하고 의지가 넘쳤지만, 비즈니스에 대한 경험은 정말 없었다. 하지만, 4년이라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이 팀은 웬만한 대기업에서의 50년 경험보다 깊고, 순수하고, 통찰력이 넘치는 배움을 흡수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밸류에이션이 뭔지 조차 잘 모르던 분들이, 이제는 조직을 어떻게 관리하고, 기업의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신박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건 극소수에게 제공되는 특권이라는 생각을 요새 매일 하고 있고, 앞으로도 이런 경험을 자주 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