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독

box-1514845_640지난주에 록키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록키에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underdog’이라는 단어인데, 스포츠에서 이길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를 두고 언더독이라고 한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언더독이 갑자기 등장해서, 그동안 패권을 잡고 있던 챔피언을 이기는 건 통쾌하고 짜릿하다. 우린 힘 있고, 항상 이기는 강자에 대해서 환호하지만, 갑자기 등장하는 약자의 대반격에 대해서는 이와는 다른 차원의 희열을 느낀다. 이건 아마도 인간의 DNA에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 같다.

여기서 한가지 명확하게 하고 갔으면 하는 게 있다. “언더독 = 약자”라고 많은 분이 생각하는데, 실은 언더독은 약자는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르지만, 큰 무대에서 이길 수 있다는 건 이들이 약자가 아니라 오히려 강자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단지 언더독들한테는 이전에는 자신의 능력과 실력을 증명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경쟁조차 하지 못 했을 뿐이다. 록키의 경우에도, 정신적/체력적으로는 훌륭한 선수였고, 정식 트레이닝을 받을 형편이 되지 않아서 제대로 훈련을 못 했지만, 아주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연습했다. 하지만,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이런 아마추어가 데뷔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식 시합을 하기 위해 링 위에 올라갈 기회가 한 번도 없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 기회가 왔고, 그 이후에는 모두가 잘 알듯이 세계적인 챔피언이 됐다.

올 한 해만 우리는 한국과 미국에서 30개가 넘는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는 대부분 록키와 같은 언더독이다. 모두 다 똑똑하고, 능력 있고, 웬만한 경쟁과 붙어도 이길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진 창업가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뭔가 시작하고, 만들고, 증명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한데, (아직은) 화려한 경력이나 대단한 빽이 없는 분들이라서 시작하기 위한 자금 확보가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분들이다. 대단히 큰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의 투자금이 이들에게는 뭔가를 시작해서 세상이라는 무대로 나갈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투자를 했던 거 같다.

내가 항상 이야기하는 게, 어차피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평등과 공평은 완전히 다른 말이고, 실은 이 세상이 평등하긴 한건가라는 의문까지 요샌 생기고 있다. 어떤 운 좋은 친구들은 100미터 인생을 80미터 지점에서 시작하고, 어떤 이들은 50미터 지점에서 시작한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0미터 지점인 출발선에서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운이 좋지 않은 친구들은 출발선에 설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더 안타깝고 화나는 건, 이건 유전자적으로 결정되는 거라서 내가 선택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능력이나 실력이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80미터 지점에서 시작한 선수들보다 더 빠르고, 힘차고, 멀리 달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건 달릴 수 있어야지 의미가 있는데, 이 언더독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잘 오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제공하는 작은 투자금이 이 언더독들이 링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언더독이 링에 올라간다고 해서 모두 록키같이 예상을 뒤엎고 이기진 않는다. 실은, 대부분 현실의 벽 앞에서 처참하게 박살 난다. 왜냐하면, 상대는 실전 경험도 많고, 돈도 많고, 모든 자원이 월등하게 많은 회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들이 자신의 능력 또는 무능력을 증명할 수 있게 링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다 열심히 살면, 한 번 정도의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초기 투자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언더독을 많이 만나게 된다. 실은 매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을 좋아하게 되고, 투자하게 되고, 결국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록키라는 실존하지 않는 인물을 그렇게 좋아하고, 생존하는 인간들한테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이 가상 인물한테 배우나 보다. 언더독들 파이팅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FAQ

search-1756278_640나는 전화 통화하는 걸 정말 싫어한다. 특히 남이 나한테 전화하는 게 정말 싫다. 그리고 나도 누구한테 전화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런데, 문자나 이메일보다 전화하는 걸 가장 선호하는 상황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뭔가를 사용하다가 잘 안 되거나 문제가 발생해서, 급하게 당장 도움이 필요할 때이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전화를 하고 싶어도 못 하는데, 특정 서비스를 이용하다가 궁금한 게 있거나, 아니면 뭐가 잘 작동하지 않더라도, 전화를 걸어서 물어볼 수 있는 고객 응대용 전화번호가 아예 제공되지 않거나 찾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냥 바로 전화를 거는 습관이 생겼다. 웬만한 서비스는 고객 응대 전화번호를 제공하고, 회사 웹사이트 하단에 보면 고객이 전화할 수 있는 번호가 항상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무리 전화통화하는게 싫어도, 내가 아쉽고 답답하고, 이메일이나 카톡으로 문의하면 답변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서 그냥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곤 한다. 어떤 회사는 기계 ARS를 몇 단계 거쳐야 하지만, 그래도 미국에 비하면 비교적 쉽게 실제 사람과 연결이 돼서 불만을 토론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고객 입장에서는 편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이게 악몽이다. 한두 명이 사용하는 서비스면 상관없지만, 하루에 수천 명, 수 만 명이 사용하는 서비스라면, 수백 통의 전화가 걸려 올 수도 있고, 이로 인해서 발생하는 회사의 비용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리고 직접 당해보거나, 아니면 직접 해보셔서 아시겠지만, 이런 고객서비스 관련 통화는 서로에게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상당히 피곤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고객서비스를 하는 인력의 이탈과 교체가 잦아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발생하는 비용 또한 무시할 수가 없다. 내가 아는 어떤 작은 스타트업은 대표이사부터 디자이너까지, 고객의 – 또는, 고객이 아닌 사람들 – 전화응대를 하는 데 업무시간의 절반을 쓰는데, 정말 힘들어한다.

그냥 CS 전화번호를 제공하지 말고, 미국 회사들처럼 이메일로만 문의하게 하거나, 아니면 굉장히 자세하고 잘 만들어진 FAQ(Frequently Asked Questions: 자주묻는질문)를 제공해보라고 하면, 항상 듣는 말이 있다. “대표님이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한국 사람들은 성질이 급해서 전화번호 없으면 엄청 화내요.” , “한국 사람들은 이메일을 안 해요.” , 뭐 이런 말들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별로 근거 없는 말들이고, 회사에 오히려 해가 되는 고정관념인 거 같다. 한국 사람들만 급한 게 아니고, 화가 많이 나서 당장 뭔가 필요한 고객은 누구나 다 성질이 급하기 때문에 이건 한국뿐만이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회사에 전화하라고 전화번호를 이들에게 제공해주면 회사 차원에서는 – 특히, 자원이 부족한 작은 스타트업 – 정말 많은 준비를 하고,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한 게 있을 때마다 전화를 걸어서 반대편에 있는 실제 사람과 통화를 해서 본인이 원하는 걸 즉각적으로 물어보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한번 익숙해지면, 이보다 더 불편한 카톡이나 이메일이나 FAQ를 통한 문제해결 방법을 대안으로 제안받으면 당연히 싫어하고 욕할 것이다.

미국 스타트업은 아주 잘 만든 FAQ를 제공해주고, 사용자들도 이 방법에 꽤 익숙해져 있는데, 정말 잘 만든 FAQ는 전화를 걸어서 누구랑 통화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걸 나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워낙 많은 서비스가 존재하지만, 내가 최근에 FAQ를 가장 잘 사용했던 제품/서비스는 미국의 Coinbase이다. 돈과 암호화폐 관련 서비스라서 실은 문제도 많이 발생하고, 궁금한 점도 정말 많지만, 코인베이스는 그동안 쌓인 노하우와 고객의 질문을 잘 취합해서 상당히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FAQ를 통해서 내가 원하는 해결책을 즉각 즉각 구할 수 있었다. FAQ에 내가 원하는 답이 없으면 support 이메일을 통해서 문의하면, 주로 48시간 내로 답이 온다. 한국 사람은 급해서 48시간 못 기다린다고 많은 대표들이 나한테 말을 하지만, 정말로 급하다면, 48시간 정도는 기다릴 수 있다. 이건 고객을 우리가 어떻게 처음부터 훈련하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제 서비스를 시작하는 스타트업이라면, 처음부터 고객이 회사에 직접 전화할 수 있는 채널 자체를 원천 봉쇄하고, 대신에 아주 포괄적이고 잘 정리된 FAQ를 제공하라고 나는 조언한다. 카톡을 통한 문의도 가급적이면 업무에 방해가 되니까 초반에는 아예 제공하지 않는 게 좋다. FAQ와 고객지원 이메일 정도만 제공하는 게 가장 좋다. 이미 070 번호나 1688 번호를 통해서 고객이 회사와 직접 통화할 방법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라면, 서서히 또는 즉각 이 번호를 없애고 FAQ를 잘 만들어서 제공하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처음에는 고객 불만이 발생하겠지만, 금방 잊히고 고객들도 익숙해진다. 실제로 우리 투자사 중 이렇게 아예 고객 응대 전화번호를 없앤 회사들이 있는데, 회사의 실적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실은, 더 좋아진다. 대신, FAQ를 제공하기로 결정했으면, 정말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허접한 FAQ를 제공할 바에는 그냥 전화번호를 제공해서 몸으로 때우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다.

물론, 나중에 회사가 엄청나게 커지면 별도의 CS 조직을 내부 또는 외부에 두면 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록키

1976년에 나는 2살이었다. 그래서 이 해에 영화 록키가 나왔을 때 당장 보진 못했지만, 한 10년 후에 비디오로 봤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헤비웨이트 복싱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가 록키의 고향 필라델피아에서 시합을 하기로 했는데, 상대가 손을 다쳐서 시합 출전 포기를 선언했고, 운 좋게 대타로 그냥 동네 체육관에서 운동하고 있던 가난하고 못 배운 록키가 시합을 뛰는 내용이다. 뭐, 워낙 전형적이고 진부한, 무명의 이민자 복서가 아폴로 크리드라는 챔피언을 상대로 거의 이길 뻔하면서 새로운 미국의 영웅이 된다는 그런 내용이다. 그래도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아직 세상의 쓴맛을 전혀 모르는 초등학생이었지만, 소위 말하는 ‘언더독’이 주는 감동을 그때 많이 느꼈고, 이후에 록키 시리즈는 내가 가장 즐겨보는 영화가 됐다. 영화도 재미있었고, 실베스터 스탈론이라는 배우도 이 역할에 너무 잘 맞았지만, 이 영화를 더욱더 신나고 감동적으로 만든 큰 요소는 바로 오리지널사운드트랙이라고 생각한다. 록키 음악은 아마도 전주만 살짝 들어도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유명한 음악일 것이다.

아직 2019년도가 끝나지 않아서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올해가 끝났을 때 나는 200일 이상 짐에서 운동했을 것이다. 나는 새해 다짐이나 계획 같은 걸 거창하게 세우지는 않지만, 작년 말, 올 초에 내가 그래도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건, 투자도 결국엔 체력 싸움이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더 강해져야겠다는건데, 스스로와 한 이 약속은 그래도 잘 지킨 거 같다. 주로 우리 아파트 지하에 있는 짐에서 운동했고, 출장 갈 때마다 운동복이랑 신발을 챙겨가서, 이 호텔 저 호텔에서도 항상 규칙적으로 운동을 했다. 나는 아침에 운동하는데, 이렇게 일주일에 4번씩 몸을 움직이는 게 항상 쉽고 재미있지는 않다. 전날 늦게 잤거나, 고민되는 일이 있거나, 일이 잘 안 풀리거나, 그냥, 더 자고 싶거나, 몸이 찌뿌듯하거나, 아니면 그냥 운동하기 싫은 날이 너무 많았고, 이런 날은 헬스클럽에 가도 좀처럼 부팅하는게 쉽지 않았다.

이럴 때마다 나를 매번 러닝머신 앞에서 뛰게 만들고, 다시 무거운 웨이트를 들게 만들고, 세상에 대한 굳은 각오와 다짐을 하게 만들던 음악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록키 시리즈다. 올해도 유튜브에서 정말 많고 다양한 록키 주제곡들을 들었는데, 매번 나를 규칙적으로 운동하게 만들고, 내 몸에 무한 영감을 줘서, 하루를 열심히 살 수 있게 만들었던 동영상을 공유한다. 혹시 격렬한 운동을 하는 분이라면, 그리고 계속 이 페이스를 이어가기 힘들다고 느끼신다면, 이럴 때 이 동영상을 한 번 보시길 권장한다.

내년에도 열심히 운동해서 육체적으로도 건강한 일 년이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

고팍스

우리는 2013년도에 한국 최초의 암호화폐거래소 코빗에 첫 투자를 했다. 스트롱과 비트코인/암호화폐 하면,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한국에서 최초로 비트코인 거래소에 투자한 VC”인데, 우리가 코빗에 투자할 때는 약간 이상하고 정신 나간 투자자 취급을 받았지만, 이후 시장이 생기고, 미친 듯이 과열되고, 그리고 4년 뒤에 넥슨이 코빗을 인수하면서, 이 분야를 잘 아는 VC로 인식이 바뀐 거 같다. 우린 비트코인이 잘되면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코빗 팀이 좋아서 투자했고, 이후에는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다. 타이밍도 당연히 좋았다.

내가 버릇처럼 말하지만, 암호화폐를 나한테 소개해줬고, 이 분야에 대한 내 시각을 넓혀준 코빗에 나는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코빗에 투자하면서 나는 이 분야에 대해서 계속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고, 그동안 이상한 ICO들이 너무 많이 생기면서 시장이 과열되기도 해서, 관심의 수준은 조금 떨어진 적도 있었지만,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허상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나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플레이어 중 하나가 제대로 된 거래소라고 생각한다. 이 시장의 게이트웨이이자 문고리 역할을 하는 게 거래소이기 때문에, 최신 소식을 접하려면 거래소와 항상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게 중요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우리는 코빗을 완전히 엑싯한 후에, 다른 거래소에 투자하고 싶었다. 위에서 말한 대로 거래소야말로 이 시장의 모든 이해관계자가 모이는 교차로이며, 스트롱도 계속 블록체인/암호화폐 쪽에 투자하려면, 거래소에 발을 담그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한국에는 아직도 200개가 넘는 암호화폐 거래소가 존재한다고 한다. 이 중 우리랑 철학과 결이 가장 잘 맞는 팀에 투자하고 싶었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고팍스를 운영하는 스트리미가 가장 맘에 들었다. 실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게 아니라, 투자하고 싶었던 유일한 거래소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거 같다. 이 시장에 대한 믿음이 있고, 거래소에 투자를 해야겠다면, 다른 곳은 고려할 필요도 없고 고팍스에 투자하자는 믿음은 존이랑 나랑 아주 일치했다.

얼마 전에 고팍스 투자 소식이 기사화됐다. 항상 강조하지만, 투자 받았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하지만, 거래소에 대한 믿음이 계속 하락하고 있는 이 시점에, 국내외의 좋은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받았다는 사실은 상당히 긍정적인 의미라고 생각한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학벌이 중요한가?

1575447669560내가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프라이머에서도 투자했고, 스트롱이 후속 투자한 회사의 대표님과 이야기하다가 학교와 학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이분이 회사의 코파운더와 초기 직원분들과 자주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프라이머나 스트롱은 팀원의 학벌을 따지지 않아서 너무 좋고, 만약에 우리가 학벌을 엄청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본인들은 아마도 투자받기 힘들었을 것인데, 이렇게 학벌보다는 실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투자자들과 함께해서 너무 좋다는 고마운 말을 나한테 해주셨다.

그 미팅 이후에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우리는 정말 대표이사와 공동 창업가들이 어떤 학교를 나왔고, 소위 말하는 ‘가방끈’이 얼마나 긴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이 주제에 대해서 아주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굳이 한 쪽을 택하자면 우리 투자사 대표가 말한 대로, 우린 창업가의 학벌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이게 성공적인 회사를 운영하는데 중요한 요소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지금까지 투자한 120개가 넘는 투자사 창업팀이 어느 학교 출신인지 내가 거의 모르고 있는데, 이건 내가 이분들에게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이분들이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실은 내가 회사와 미팅을 할 때, 학교나 사회에서 코딩을 배웠냐는 질문은 자주 하는데, 어느 학교 출신인지는 요새는 아예 안 물어본다. 그만큼 중, 고등학교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입학시험을 잘 봐서, 이름있는 대학교에 입학한 게 스타트업을 잘 운영하는거와는 – 적어도 내 경험에 의하면 –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한테는 그냥 이 팀이 본인들이 하는 업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회사를 성공시킬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그래도 그 낮은 확률에 도전해 볼 준비가 되어 있는지, 뭐 이런 게 훨씬 더 중요한데, 이건 공부와 학교와는 완전히 상관이 없고, 어떻게 보면 다른 수준의 고민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투자한 회사의 대표들이 학벌이 좋지 않은 건 아니다. 실은, 완전히 그 반대이다. 스트롱 포트폴리오의 많은 창업가가 서울대 출신이고, 유학파도 상당히 많다. 실은, 이분들은 비즈니스 엄청나게 잘 한다. 가끔은, 이렇게 비즈니스를 잘하는 분들이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하고, 좋은 학교에도 갔다는 게 정말 신기할 정도로 모든 걸 잘하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좋은 학교 출신이 도움 되는 점이 있다면, 주변에 대기업이나 좋은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동문이 많기 때문에, 채용에 있어서 월등하게 유리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VC가 좋은 학교 출신이고, 연결고리를 찾다 보면 동문이 많아서, 투자를 받을 때도 조금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창업가와 학벌에 대해서는 투자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그리고 좋은 학생과 좋은 창업가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논문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나한테 누가 이 상관관계에 대해서 질문한다면, 나는 전혀 없다고 하면서 그냥 그때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다는 이야기를 할 텐데, 내 경험은 다음과 같다.

일단 학벌이 안 좋으면, 한국과 같은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두 배의 노력을 하는 걸 꽤 자주 경험했다. 어떻게 보면 이들에게는 열심히 해서 성공하려는 의지와 추진력이 여기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만약에 이들이 실패하면, “저럴 줄 알았어. 무엇을 해도 잘 못 해.”라는 비난을 받기 딱 좋은 사회가 대한민국인데, 이 말을 듣기 싫어서 엄청 열심히 하는 분들도 있다.
또한, 학벌이 좋은 창업가들도 악착같이 노력하는 걸 꽤 자주 경험했다. 이건 그냥 내 개인적인 해석인데, 그냥 이들은 대학교까지는 항상 본인이 속한 조직이나 사회에서 인정받았기 때문에, 스타트업을 하면서도 계속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의지와 추진력이 여기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실패하면, “좋은 학교 나와서 쓸데없이 사업한다고 할 때부터 저렇게 될 줄 알았어.”라는 비난을 받기 딱 좋은 곳이 대한민국이라서, 이분들은 또 이런 말이 듣기 싫어서 엄청 열심히 하기도 한다.

내가 아는 어떤 VC는 특정 학교 출신이 아닌 창업가한테는 아예 투자하지 않고, 어떤 투자자는 미팅할 때 가장 먼저 물어보는 질문이 “학교 어디 나왔어요?”인데, 물론 이분들도 이렇게 학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름의 논리와 생각이 있고, 들어보면 맞는 말도 있다. 그래도 나는 창업가의 학벌에는 큰 관심이 없다. 우리가 하는 업은 로켓과학도 아니고, 박사학위가 반드시 필요한 일이 아니고, 내 경험에 의하면 출신 학교와 비즈니스의 성공은 전혀 큰 상관관계가 없는데, 자꾸 여기에 신경을 쓰다 보면 더 큰 그림을 놓칠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 투자할 때 학벌에 우선순위를 두다 보면, 더 좋은 창업가와 더 좋은 회사를 만날 기회를 스스로 제한하는 사고방식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크라우드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