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적 브라우징

우리 투자사 당근마켓은 모바일 기반의 지역주민 중고거래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실은 중고나라나 헬로마켓과 같은 굵직한 서비스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시장이지만, 후발 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빠르고 질 좋게 성장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많은 분이 당근마켓에 대해서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기존 서비스들과의 차이점이다. 실은 중고나라에 비해서는 판매되는 물건 수가 절대적으로 작아서 유동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고객들의 체류 시간과 engagement 자체는 상당히 높다. 오히려 기존 서비스들보다 더 높지 않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나는 그 이유가 항상 궁금했었는데, 얼마 전에 당근마켓 대표님과 이야기하면서 힌트를 얻었다. 중고나라에 접속하는 사용자의 행동 패턴을 보면, 서비스에 접속하기 전에 “오늘 밤에 중고나라에 들어가서 xxx 있는지 한 번 봐야겠다”라는 마음의 결정을 하고, 접속한 후에 내가 이미 생각하고 있던 그 필요한 제품을 열심히 검색한다. 싸고 좋은 제품을 찾으면, 구매를 시도하지만, 없으면 그냥 다시 나온다. 무슨 말이냐 하면, 특정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서비스를 브라우징한다.

당근마켓은 다르다. 당근마켓을 사용하는 분들은 특별히 뭔가를 찾거나, 또는 구매하기 위해서 앱을 실행하는 게 아니고, 그냥 시간 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이 앱을 열고, 그리고 그냥 올라와 있는 물건들을 계속 스크롤 하면서 본다. 마치 뭔가를 구매하는 중고거래가 아닌, 모바일 잡지나 페이스북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패턴과 유사한 행동 패턴이 보인다. 여기서 엄청난 차이가 발생한다. 이런 무의식적이고, 머리가 아닌 손가락이 주도하는 브라우징이 가능한 큰 이유는 당근마켓이 모바일 플레이를 워낙 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바일이 아닌 데스크톱 기반이었다면, 이렇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앱을 실행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은, 이러한 패턴은 데이팅 앱에서도 극명하게 보인다. 데스크톱 기반의 1세대 데이팅 사이트인 eHarmony.com이나 한국의 듀오와 같은 제품은 회원 등록하고, 서비스를 사용하려면, 비장한 마음의 각오가 필요하다. 내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기 위한 심각한 목적으로 이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이고, (지금은 모바일 플레이도 하지만) 데스크톱 기반이기 때문에, “오늘 밤에 집에 가면, 세수하고, 책상에 앉아서 듀오 들어가서 꼭 내 반쪽을 찾아야지” 또는 “지금은 바쁘지만, 이따 시간 좀 나면, PC 앞에서 차분히 eHarmony 좀 둘러봐야지”라는 각오한 후에 서비스에 접속한다.

하지만, 틴더 같은 모바일 앱이 탄생하면서, 이런 데이팅 앱의 패턴이 달라졌다. 일단 모바일 앱이기 때문에, 굳이 시간을 정하거나 데스크톱이 있는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 없게 됐다. 그냥 사무실이든, 지하철이든, 길거리든, 식당에서 주문받기 전에, 아무 곳에서나 손가락 하나로 앱을 실행하고, 내 취향에 맞을법한 이성을 아주 가볍고 캐주얼하게 브라우징할 수 있다. eHarmony나 듀오와 같은 서비스는 머리와 이성이 주도하는 브라우징이 되어야 하지만, 틴더는 그냥 손가락이 주도하는 무의식적인 브라우징이 가능하다.

당근마켓이나 틴더와 같은 모바일 앱은, 중고거래와 데이팅이라는 최종 목적을 위한 서비스지만, 사용자들의 이용 방법은 그냥 재미있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패턴과 같다. 이렇게 하면 체류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어나고, 결국 체류 시간이 늘어나면, 서비스가 최종적으로 목표로 하는 결과를 다양한 방식으로 달성할 수 있다. 같은 버티컬이라도, 세련된 모바일 플레이와 조금 다른 접근방법이 엄청난 차이를 만들 수 있다.

리퍼럴 게임

새로운 제품을 출시할 때 가장 고민되는 것 중 하나는 초기 고객 모집이다.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우리 제품을 시장에 알려야 하고, 한 번 사용해본 고객이 다른 고객한테 서비스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를 해주는 선순환 사이클을 만들어야 하는데, 워낙 새로운 서비스가 홍수같이 출시되기 때문에 이게 말만큼 쉽지가 않다. 물론, 제품이 좋으면, 알아서 마케팅되고 많은 고객이 몰리는 건 사실이지만, 이 과정을 더욱더 가속해서 성장하기 위한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리퍼럴(=referral) 프로그램이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사용한 서비스를 다른 지인한테 알려주고, 그 지인이 내 소개를 받아서 서비스를 사용하면, 나도 뭔가 혜택을 받고, 그 지인도 혜택을 받고, 이 방법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다단계 마케팅과 비슷한 방법으로 널리 확산하면서 서비스가 성장한다.

우리가 잘 아는 많은 회사가 – 아니, 대부분 유니콘 회사들이 – 리퍼럴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신규 고객을 모집하고, 기존 고객을 유지한다. 드롭박스의 경우,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sign up 하면, 더 많은 저장공간을 제공해주고, 우버는 우버 크레딧을 제공해준다. 이 외에도 수많은 리퍼럴 방법과 프로그램이 있고, 어떻게 보면 너무 뻔하지만, 아직도 나름 효과가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게 새로 생기는 수많은 서비스의 확산과 성장이 증명해주고 있다.

나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통해서 여러 번 올렸는데, 최근에 내가 알게 된 Morning Brew라는 소식지가 있다. 실은 뉴스레터라는 말을 듣기만 해도 토할 정도로 소식지가 많은데, 모닝브루는 내용 자체가 상당히 좋아서 거의 매일 읽는 몇 안 되는 이메일이다. 월가의 금융 소식부터 워싱턴 DC의 정치 소식,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tech 소식 중 읽을 가치가 있는 내용을 간추려서 매일 보내주는 소식지인데, 너무 길지도 않고, 너무 짧지도 않고, 너무 심각하지도 않고, 너무 가볍지도 않고, 하여튼 딱 알맞게 큐레이션 해서 보내준다. 누가 이걸 만드는지 좀 조사해보니, 2015년도에 미시간 대학교 학생이었던 젊은 친구들이 만든 서비스다. 채용 인터뷰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면접을 잘하기 위해서 가장 많은 정보를, 가장 짧은 시간 동안, 가장 재미있게 흡수할 방법을 연구하던 중 모닝브루가 탄생하게 된 거라고 한다. 즉, 밀레니얼들을 위한 “일일 비즈니스 브리핑 소식지”라고 보면 딱 맞을 거 같다.

모닝브루도 리퍼럴 프로그램을 통해서 구독자를 모집하는데, 상당히 세련되게 한다. 그렇다고 다른 서비스같이 소개 당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몇 명이 모이면, 회사의 머그잔이나 티셔츠를 주는 건데, 이걸 진행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고, 계속 이 소식지를 내 주변 지인들에게 알려서 뭔가를 내가 계속 받게끔 자극하는 방법이 재미있다. 실은 나도 의도한 건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분이 나를 통해서 구독해서, 티셔츠부터 스웨터까지 다 받았다 🙂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3가지이다:
1/ 리퍼럴 프로그램이 좀 오래된 방법이지만, 아직도 효과적이다
2/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서 그 결과에 차이가 크게 날 수 있는데, 이건 디테일의 싸움이다
3/ 기본은 서비스의 품질이다. 모닝브루가 재미있는 리퍼럴 프로그램을 도입했지만, 이게 성공할 수 있는 배경은 사람들한테 유용하고, 남과 공유하고 싶어 하는 그런 콘텐츠를 만들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이 작동할 수 있는 거다. 뉴스레터 내용이 허접했다면, 나도 그 누구한테도 추천하지 않을 것이다

10년짜리 게임

얼마 전에 어떤 대표가 VC는 누구한테, 그리고 어떻게 돈을 받는지 물어봤다. 이거 참 재미있는 질문이고, 나도 얼마 전에 한번 생각했던 주제라서 몇 자 적어본다. 내가 개인적으로 돈이 많으면, 개인 돈으로 투자하겠지만 – 그리고, 이렇게 투자하는 VC도 있긴 있다 – 대부분 VC는 다른 기관이나 개인들로부터 돈을 받고, 이 돈을 좋은 회사와 창업가한테 재투자한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남의 돈을 관리하면서 비상장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투자자가 VC다.

그럼, 우리는 이런 기관이나 개인들을 어떻게 알고, 어떻게 접근해서 출자를(펀드에 투자하는걸 ‘출자’라고 한다.) 받는가? 벤처기업이 VC한테 투자받는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VC와 창업가의 관계를 한번 생각해보자. 주로 오랜 기간 동안 알고 지내서 기본적인 신뢰가 있어야 하지만, 결국엔 사업의 실적이 투자 결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좋은 창업가라도, 비즈니스의 실적이 좋지 않으면,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VC도 비슷하다. 펀드에 출자하는 투자자를 LP라고 하는데, LP들과 관계를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이건 우리가 믿을만한 창업가한테 투자하려면, 이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과 과정이 필요한데, 이와 비슷하다. 다만, 시간은 조금 더 많이 소요되는 거 같다. 우리 같은 경우, 한 3년 동안 알고 지내다가 펀드에 출자를 받은 적도 있다.

그리고 LP들도 당연히 VC의 실적을 보는데, 여기서 스타트업이 VC한테 투자 받는 거와 차이가 좀 난다. 스타트업이 제품을 만들자마자 실적이 바로 생기진 않지만, 그래도 한 1년 정도 개발하고 마케팅을 하면, 이 회사의 가능성을 판단할 정도의 초기 수치는 만들 수 있고, 우리 같은 초기 VC는 이 수치를 보고 투자 여부를 판단한다. 문제는, VC의 펀드 수명은 보통 7년~10년이고, 한국같이 이제 벤처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는 지역에서는 10년이라는 한 사이클을 거친 VC가 거의 없기 때문에, LP들이 펀드에 출자하기 위해서 참고할 수 있는 VC의 실적은 불완전해서, 실적만을 가지고 돈을 받는 건 쉽지 않다. 물론, 역사가 오래된 VC는 관계도 있고, 실적도 있기 때문에, 출자 받는 게 그렇지 못한 VC보단 수월할 수도 있다. 역사가 오래됐다는 사실 자체가, 계속 펀드를 만들었다는 뜻이고, 이렇게 계속 펀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관계와 실적이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질문을 한 대표한테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해줬다. “대표님, 투자 받는 거 정말 지루하고 힘들죠. 실은 우리 같은 VC는 더 힘들어요. 겉으로는 마치 우리가 돈 많은 ‘갑’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우리는 실은 더 어렵고 힘들게 투자를 받고 있어요. 대표님 회사는 지금 고객이랑 매출이랑, 뭐 이런 수치라도 있잖아요. 우리 같은 펀드는 투자하고 최소 3년, 길게는 10년을 기다려야지만, 이런 수치가 나와요. 그러니까, 저도 실은 LP들한테 객관적인 실적도 제공하지만, “우리 열심히 하고, 잘할 수 있으니까, 돈 좀 주세요”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아요.”

내가 과연 벤처투자를 잘하는 사람일까? 잘 모르겠다. 스트롱 역사가 7년이니까, 한 5년 후면 알 수 있을 거 같다. 내가 이 일을 잘하는지 못 하는지가 10년 후에야 결정될 수 있는 이 일을 잘하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하고 있다.

메인넷 경쟁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아버지 사토시 나카모토의 백서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 세상에 공개된 지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10년 동안 일어난 변화는, 마치 굴뚝 산업 100년 동안 일어난 변화와 맞먹을 정도로 빠르고 극적이었다. 좋은 변화도 있었고, 나쁜 변화도 있었지만.

얼마 전에 TV를 켜놓고, 이메일을 쓰고 있었는데, 다큐멘터리에서는 비트코인이 화폐냐 아니냐의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또). 내 생각에 이런 이야기는 이제 시대에 뒤떨어지는 논쟁이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 같다. 실은 현실적으로 판단해보면, 화폐로서의 비트코인은 실패한 거 같다. 비트코인 가격이 어느 정도의 안정은 찾았지만, 그래도 화폐를 대체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너무나 멀다. 내 주변에 그 누구도 비트코인을 화폐로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런 사실은 실은 블록체인이나 암호화폐 시장에 이제 더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만큼 10년 동안 이 시장은 여러 변화를 거치면서 성숙했고 기술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했기 때문이다.

요새 내가 꽤 관심 두고 보는 분야 중 하나는 메인넷 쪽이다. 사람마다 메인넷을 보고 설명하는 관점은 다르겠지만, 나는 이게 PC나 모바일의 OS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이오스, 카카오의 클레이튼 모두 메인넷이고, 대부분의 암호화폐는 이더리움 기반으로 생성되지만, 결국엔 자체적인 메인넷을 만들어서 생태계를 장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모바일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OS는 애플의 iOS와 구글의 안드로이드이지만, 이 외에도 작은 OS들이 있고, 새로운 OS를 만들고 있는 당찬 창업가들이 있다. PC 생태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건 Windows라는 OS를 제공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이다. 모바일 생태계도 마찬가지로 iOS와 안드로이드가 진정한 승자이다. 우리가 아는 엄청난 앱들이 많지만, 실은 이 앱들 모두 iOS와 안드로이드 기반 위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OS야말로 진정한 강자이다. 블록체인 분야에서도 아마도 이 OS를 누가 가져가냐에 따라서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갈릴 것이고, 이를 위해서 많은 플레이어가 탄탄하고, 유연하고, 호환성이 좋은 메인넷을 개발하고 있다. 코인마켓캡에 보면 현재 2,000개 이상의 암호화폐가 존재하는데, 각각의 토큰/코인을 하나의 앱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다양한 메인넷이 출시될 것이고, 이 메인넷 위에서 출시되는 코인도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다.

앱스토어 있는 앱 중, 상위 앱을 제외하곤, 대부분 별 볼일 없는 앱이다. 사용자도 별로 없고, 돈도 못 버는데, 이런 앱은 시간이 지나면 망하고 없어지는데 코인도 비슷한 거 같다. 소위 말하는 ‘잡코인’은 허접하게 만든 모바일 앱과 비슷하고, 알아서 없어질 것이다. 최근에 우버가 150조 원 이상으로 IPO를 간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엄청난 숫자다. 하지만, 우버의 이런 가치는 iOS와 안드로이드가 없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게 OS와 메인넷의 힘인 거 같다. 메인넷을 장악하는 플레이어가 암호화폐/블록체인 생태계를 장악할 것이고,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다.

앱 정리

나는 오래된 아이폰 6을 사용하는데, 용량이 한참 모자라서 이제는 더는 새로운 앱을 설치하지 못한다. 새 앱을 설치하려면, 기존에 깔린 앱을 지워야 하고, 새 사진을 찍으려면, 기존 사진을 좀 지우거나, 드롭박스로 옮겨야 한다. 처음에는 너무 불편해서, 메모리가 더 큰 새 폰으로 바꿀까 했는데, 이렇게 사용하는 게 점점 익숙해졌고, 이젠 오히려 생활이 더 단순하고 편해졌다. 즉, 용량 문제로 여러 앱을 설치하지 못하니까, 정말로 필요한 앱만 깔고, 그 외의 앱은 거의 다 지우게 된다.

특히, 미국 출장 가면 한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에어비앤비, 우버, 옐프, 구글맵스, 미국 스타벅스 등의 앱을 다시 설치하고, 이 앱들을 설치하기 위한 공간확보를 위해 일단 몇 개의 앱들을 없애야 해서 얼마 전에 미국 출장 가기 전에 대대적으로 폰의 앱과 사진 정리를 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앱을 만들어서 출시하고, 사람들한테 알리고, 사용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일단 가장 먼저 지운 앱들은 결제 관련된 앱들인데, 내가 주로 사용하는 메인 앱 외에는 특정 상점에서 뭔가 할인받기 위해서 설치했던 앱들이다. 우리 집 앞에 아티제 빵집이 있는데, 페이코로 결제하면 50%까지 할인해 줘서 당시 가게 안에서 열심히 설치하고, 회원 가입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신용카드보다 사용하기 불편하고, 다른 가게에서는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지웠다. 이렇게 상당히 많은 앱을 삭제해서 공간 확보를 했다.

검색을 해보니, 애플과 구글 앱스토어에는 현재 400만 개 이상의 앱이 있다고 한다. 앱 홍수 속에서 내가 새로 만드는 제품이 발견되고, 설치되고, 사용되고, 사랑받게 하는 건 이제 정말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런데도, 매일매일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손가락으로 만져지는 좋은 제품들이 새로 시장에 진입한다. 이런 앱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일단 자주 사용하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유틸리티 성격의 앱이다. 위에서 페이코 이야기를 했는데, 실은 결제 앱이야말로 유틸리티 성향이 강하지만, 자주 사용하게 만들기 힘든 서비스다(우리나라는 신용카드 사용이 워낙 쉽기 때문에). 참고로 난 페이코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좋은 앱이고, 잘 만들었겠지만, 단지 나한테는 별로 유용하지 못할 뿐이다.

또 다른 카테고리는 자주 사용하진 않지만, 언젠가는 꼭 필요한 성격의 앱이다. KTX나 SRT와 같은 앱이 여기에 속한다. 솔직히 썩 잘 만든 앱은 아니고, 사용할 때마다 아쉽지만, 가끔 기차를 이용해야 하고, 이럴 때는 가장 편하고 어떨 땐 유일한 표 구매 방법이기 때문에 자주 사용하진 않지만, 꼭 폰에 갖고 있어야 하는 앱이다.

이 두 카테고리에 확실히 끼지 않고, 중간에 어정쩡하게 위치하면, 앱을 성공시키긴 쉽지 않다. 많은 사람이 마케팅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fake 마케팅으로 끝날 확률이 상당히 높고, 마케팅 예상이 소진되면, 사용도와 트래픽 자체도 같이 없어질 것이다. 실은 자주 사용하는 앱, 또는 가끔 사용하지만 꼭 필요한 앱, 외에도 그냥 새로 출시되면 신기해서 사용해보는 앱도 있다. 하지만, 이런 앱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주 사용하거나 반드시 필요한 카테고리로 진입하지 못하면, 그냥 반짝 유행하고 사라질 것이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건 기본이지만, 포지셔닝 또한 매우 중요하다. 결론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