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가 은행도 먹어 치울 것이다

world money traffic얼마전에 “은행의 종말” 이라는 글을 통해서 전형적인 굴뚝산업인 은행들의 비효율성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서 불평한 적이 있다. 최근 한국 출장에서 은행거래업무를 몇 번 했는데 수수료를 부담할때마다 나는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에 비해서 한국의 수수료는 저렴한 편이다. 그래도 타은행 이체수수료가 나갈때마다 내 돈을 내 친구한테 송금하는데 왜 수수료를 내야할까라는 의문을 항상 하게 된다. 돈은 아니지만, Hotmail에서 Gmail로 이메일 보내는건 무료인데 왜 같은 은행끼리 돈 보낼때는 무료이고 타은행으로 보낼때는 수수료가 발생할까? 외환은행 직원이 국민은행으로 물리적으로 돈을 직접 가지고 배달하는것도 아닐텐데 어디서 이 비용이 발생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것도 남의 돈도 아니고 내 돈을 움직이는건데. 은행 직원한테 물어보니 서로 다른 시스템을 사용해서 그렇다는데 역시 이해할 수가 없다. 불필요하게 많은 물리적인 은행 지점들과 이를 관리하기 위한 직원들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방법이라는게 내 결론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토스(Toss)라는 제품을 사용해봤다. 전부터 사용해보고 싶었는데 미국에서는 사용하지 못하고, 아이폰 앱도 최근에 출시되어 드디어 사용해봤는데 완성도가 매우 높은 경험을 했다. 회원등록부터 실제 송금까지 모든 과정이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었다. 아쉬운 점은 제휴 은행이 몇 개 없었고 내 거래은행인 외환은행도 (아직) 등록되지 않아서 송금을 받은 친구가 실제로 돈을 받지는 못 했다. 토스가 mainstream이 되고 모든 은행과 제휴 된다면 상당히 편리하고 유용한 제품이 될거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을거 같다. 이 서비스가 크게 성장해서 은행들의 수수료 매출에 – 아무리 찾아봐도 정확한 매출 규모 파악 불가 – 타격을 입히는걸 은행들이 절대로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들어놓은 안전한 울타리 안으로 누군가 침범하는걸 은행들은 분명히 규제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힘든 싸움과 hustling이 될 것이지만, 토스 팀이 잘 실행해서 좋은 합의점을 찾길 바란다. 진심으로.

토스같은 서비스의 성공에 필사적으로 반대할 은행들을 상상해보면 카카오톡과 이통사들이 생각난다. 엄청난 매출을 발생시키는 문자서비스를 죽일게 너무나 뻔한 카카오톡을 매장시키려고 이통사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생각해보면 참 못나고 부질없는 짓이었다. 문자 서비스의 어두운 미래가 빤히 보이면 현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이런 변화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 고객들의 데이터 사용을 더 늘려서 데이터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나 메시징 플랫폼을 활용해서 이통사들이 신규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은행들도 토스와 같은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싫든 좋든 이미 시장은 이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은행보다 현실을 더 빨리 수용하고 토스와 같은 핀테크를(솔직히 이 단어를 나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한국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다 알고 있는 용어가 되어버려서) 활용해서 은행 고객의 만족도를 늘리면서 추가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은행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물론, 은행은 고객들의 소중한 돈을 관리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더욱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 하는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하는 방식은 안전한가? 은행도 망하고, 해킹당하고, 크고 작은 금융사고는 항상 일어나고 있다. 어쩌면 제도가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새로운 실험들을 해야할 때가 왔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 치우고 있고, 곧 은행도 먹어 치울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정말 재미있는 세상이다. 은행과 스타트업/기술을 싸움 붙이려는 건 아니지만, 수백년 동안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공룡들이 더 작지만 빠르고 적응력이 월등한 생명체들한테 밀리면서 결국 멸종되는 시나리오를 상상하면 짜릿하다.

*공시 – 우리는 토스의 투자사가 아니다. 나는 토스와 비즈니스적이나 개인적인 그 어떠한 관계도 없다. 다만, 토스의 대표이사와는 (막 친하지는 않지만) 친분은 있다.

<이미지 출처=http://www.xconomy.com/national/2014/10/29/currencyfair-rides-irish-fintech-wave-with-money-transfer-market/>

확장과 집중, 그리고 그 틈새의 기회

fixing-yahoo-625x300얼마전에 극장에 갔는데 영화 상영전에 Yahoo!의 광고를 봤다. 그러자 앞에 앉아 있는 어떤 사람이 “야후 아직도 안 망했냐? 아직도 광고를 해?” 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내가 학교 다닐때만해도 세상 위에 군림했던 야후가 이정도까지 추락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주말에 집에서 야후에 대한 과거 기사들을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다.

아직 더 두고봐야겠지만 마리사 메이어도 야후를 살리지는 못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어떤 실수들을 했길래 도저히 회복불가라고 전문가들은 말할까? 물론, 한개의 결정적인 실수때문에 야후가 죽어가고 있는건 아닌거 같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가지 잘못된 결정을 했고, 그 결정을 책임지고 실행할 수 있는 적절한 사람들이 없었고, 이런게 연속적으로 누적되면서 야후!라는 배는 가라앉고 있는것 같다. 그런데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동의하는 원인은 ‘너무 빠르게 옆으로만 확장하고 아래로 깊게 들어가지 못함’ 인거 같다.

야후는 검색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검색 분야 vertical에서는 부동의 1등이 되었다. 하지만, 구글과 같이 검색을 광고와 엮는 발상을 깊게 하지는 못했고 새로운 매출원과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서 계속 다른 vertical들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후 포털로 성장하면서 다양한 vertical로 직접 진출하거나, 기존의 회사들을 인수하면서 몸집을 옆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확장이 가속화 되면서 야후는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한때는 월가의 총애를 받는 실리콘밸리의 darling 일때도 있었다. 하지만, 야후가 여러 vertical의 회사들을 인수하면서 horizontal로 성장하는 동안 ‘한개의 제품’에만 집중하는 새로운 스타트업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곧 야후는 경매 분야에서는 eBay한테 밀리기 시작했고, 안내광고(classified) 분야에서는 Craisglist한테 밀리기 시작했다. 또한, 야후가 개척하고 만들어낸 검색 분야에서도 구글한테 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Facebook이 나타나면서 수백만명의 시작페이지였던 야후!가 페이스북으로 대체되었다. 이런 현상이 대부분의 vertical에서 발생하면서 야후의 광고수익은 급격하게 감소했다.

야후는 성장을 위해서 수많은 vertical로 진출은 했지만, 이 수많은 vertical에 진출만 했지 깊게 들어가서 그 vertical을 장악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런 과정에서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여러 vertical을 대중한테 노출시켰고 이런 vertical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야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결정할 수 있었던 작은 스타트업들은 이런 vertical 하나만을 공략하면서 그 분야의 제품을 아주 완벽하게 만드는 전략을 기반으로 아주 빠르고 깊게 들어갈 수 있었다. 야후는 뒤늦게 불필요한 vertical들을 제거하고 몇가지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미 직접 하기에는 늦었다싶어 그 vertical의 회사들을 또 인수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데 앞으로 비슷한 현상을 보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구글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지만 야후와는 다르다. 될 만한 vertical에는 상당히 많은 자원을 투입해서 굉장히 깊게 들어가고 있고, 안 될 만한 vertical은 빨리 버리고 그 인력과 자원을 다른곳에 재배치하면서 야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물론, 반복하는 부분도 있다). 그리고 구글의 core인 검색과 광고는 계속 꽉 잡으면서 옆으로 확장하고, 깊게 들어가고 있다. 야후는 확장하면서 집중력을 잃었지만 구글은 확장과 집중을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

실은 많은 회사들이 성장하면서 야후!와 같은 길을 간다. 한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면서 빨리 성장하지만, 곧 비즈니스 확장을 위해서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린다. 옆으로 확장을 하면서 ‘확장’ 자체에만 너무 신경을 쓰다보니 기존에 하고 있거나 새로 진출한 비즈니스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 하면서 그 vertical을 아주 깊게 연구하고 실행하는 신생 스타트업들한테 주도권을 빼앗긴다. 정확한 문제를 파악하지 못한 대기업들은 빼앗긴 주도권을 대체하기위해 계속 다른 분야로 확장을 한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대기업보다 더 깊게 한 vertical을 공략한 그 스타트업도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고 성장을 하면서 똑같은 길을 걷는다. 이들은 신규 매출과 비즈니스를 위해 다른 vertical로 확장을 한다.

이 시점에서 스타트업들한테는 굉장한 기회가 발생할 수 있다. 한 vertical을 공략해서 잘 된 회사들이 다른 분야로 확장을 시도하면서 기존 비즈니스를 소홀히 할때, 그 vertical의 제품을 더욱 더 완벽하게 만들어서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그런 기회이다. 잘 생각해보면 워낙 빠르게 변하는 세상과 소비자들이 있기에 역사는 반복되고 이런 기회는 계속 생길 것이다. 그리고 구글같이 확장과 집중을 둘 다 잘하는 회사는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러한 기회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확장과 집중을 반복하면서 생기는 이 틈새는 아무한테나 보이는 건 아니다. 이 틈새를 오랫동안 예의주시하고 준비한 회사들에게만 보인다.

<이미지 출처 = http://www.digitaltrends.com/web/r-i-p-yahoo-mail-classic-messenger-but-will-anyone-come-to-the-funeral/>

2015년 한국 스타트업 현장에 대한 단상

158723763스타트업 바이블 1권이 나온지 벌써 4년 반이나 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강산보다 더 빨리 변하는 벤처 업계에는 그동안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10년 8월 책 출간 당시 한국에서는 ‘스타트업’ 이라는 단어조차 굉장히 생소했다. 뭐, 내 책 때문에 스타트업이라는 단어가 알려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기여를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는 한다. 지난 5년 동안 한국의 벤처 현장은 굉장히 재미있고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부정적인 부분도 적지 않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훨씬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나같은 투자자들, 창업가들, 이들과 공생하는 기업들, 미래의 창업가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학교와 학원들, 스타트업과 연관된 다양한 기관들, 그리고 칭찬보다는 주로 욕을 먹는 정부기관들과 같은 여러 이해당사자들이 헛짓들과 노력을 동시에 하면서 한국의 스타트업 현장은 이제 어느정도의 기초가 다듬어졌고 이 모든게 점점 유형화 되어가고 있다.

작년부터 한국에서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이 창업되어 성장하고 있다는걸 몸으로 많이 느끼기 시작했다 – 이는 벤처생태계의 건강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한다. 이 회사들이 성장을 얼만큼 했고, 고용을 어느정도 창출했고, 매출을 얼만큼 만들었고 등과 같은 구체적인 수치를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고 조사도 해보지 않았지만 항상 한국의 스타트업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이런 좋은 변화가 눈에 보이고, 한국 나올때마다 “아, 한국에서 이제 이런 회사들이 나오는구나” 라고 스스로에게 감탄하고 있다.

그동안 2권의 책을 썼다. 스타트업 업계의 속도로 보면 이제 거의 골동품이 된 책들이지만 아직도 꾸준히 팔리고 벤처를 하시는 분들이나 벤처에 관심있는 학생들은 여전히 많이들 읽고 나한테 연락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기업이나 학교에서도 강연이나 Q&A 세션에 대한 요청이 정기적으로 들어온다. 내가 물리적으로 미국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관계로 잘 하지는 못하는데 이번 3월 한국 방문때는 시간과 기회가 되어서 몇 번 진행을 해봤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강연이 2개가 있었다.

하나는 울산과기대(UNIST) 학생들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다. 서울 외 지역의 팀, 회사 및 기회에 대해서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비서울 지역의 스타트업들에 요새 관심이 매우 많다. 울산과기대 교수님과도 친분이 있었지만, 이 지역의 학생들과 벤처에 대한 생각 등 여러가지가 궁금해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예상보다 수준도 높고 왠만한 서울의 학생들보다 진지한 눈빛과 질문들에 많은걸 느끼고 배웠던 소중한 강연이었다. 특히, 순수하고 경험이 상대적으로 없는 학생들 이라서 그런지 나 스스로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질문들도 꽤 있었다.

다른 하나는 상암동의 명물 술파는 서점 북바이북에서 했던 저자와의 번개 모임이었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30명 정도의 독자와 청중이 이 공간을 꽉 채웠던 열기 넘치는 장소였고 시간도 꽤 늦은 오후 8시에 시작해서 10시가 넘어 끝났지만 그 누구도 일찍 떠나지 않았다. 북바이북의 청중은 대부분 창업에 관심이 있거나 곧 창업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직장인들 또는 현재 스타트업에 몸담고 있는 분들이어서 그런지 질의응답을 거의 1시간 동안 했다. 질문의 수준도 굉장히 높고 상당히 진지한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베어있는 그런 종류의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이런 모든 경험이 스타트업 바이블이 출간된 2010년과는 사뭇 달랐다. 창업을 해서 이미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젊은 친구들의 눈빛은 살아있었고 실행은 공격적이었다. 이들은 500억원 짜리 회사를 만들어서 남한테 파는데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1조원의 회사를 만들 생각으로 진지하게 제품을 만들고 비즈니스에 임하고 있었다. 직장인들의 태도도 과거와 달랐다. 스스로를 위한 삶을 살기 위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4-5년 전 내가 만났던 학생들에 비해서 많이 발전했고 내가 대학교 1학년이었던 1993년의 나보다는 한 10 단계는 더 성숙해 있었다.

모든걸 종합해 봤을때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벤처 생태계는 앞으로 더 탄탄해지고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앞으로 한국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이런 긍정적인 분위기에 조금이라도 기여해 보고 싶다.

<이미지 출처 = http://www.gettyimages.ae/detail/photo/sunset-over-the-han-river-seoul-royalty-free-image/158723763>

한국형 호칭

*이 글의 내용은 100% 주인장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나는 한국 회사들과 일을 많이 한다. 주로 작은 스타트업들이랑 많이 어울리지만, 삼성, LG와 같은 대기업들 또는 tech 대기업들과도 많은 교류가 있다. 한국 회사들의 전통적인 직위는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등 이러한 수직적인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데 몇 년 전부터 사내호칭을 조금 더 수평화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이제는 별도의 직위 없이 ‘기홍님’ 또는 전사적으로 영문 이름을 도입해 ‘Albert님’ 뭐 이런 식으로 호칭제도를 변경하는 회사들이 보인다. 그런데 솔직히 나한테는 이런 ‘~님’ 또는 한국 토종을 영어 이름으로 부르는 게 너무나도 어색하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는 나이와 연차가 너무나 중요한 문화/사회적 요소이기 때문에 아무리 호칭을 이렇게 바꿔도 부하가 상사를 대하는 태도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보스한테 ‘기홍님’이라고 하면 이 수평적인 호칭과 보스에 대한 전통적인 수직적인 태도와 관념이 충돌을 일으켜 혼란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어떤 취지인지는 잘 알겠다. 한국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영어 이름을 사용하면 미국 사회와 미국 회사의 자유롭고 수평적인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인 거 같다. 또한, 외국과 비즈니스를 많이 하는 경우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쉽게 이름을 영문으로 바꾼다는 취지도 있는 거 같다. 그래도 나는 좀 우습다. 생각해봐라….영어 거의 못하는 한국 사람 둘이서 서로를 영어 이름으로 부르면서 한국어로 대화를 하는 게 좀 웃기지 않나? 그리고 무슨 가족오락관도 아니고 회사의 미래를 위해서 매출을 만들고 수익을 극대화 해야 하는 상사나 동료랑 ‘~님’ 하면서 대화하면 오히려 좀 어색 할 거 같다. 그렇게 수평적인 조직을 원한다면 오히려 ‘~님’을 아예 없애고 그냥 서로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건 불가능하다. 나보다 나이가 많고 회사에서 계급이 높은 분의 이름을 막 부를 수는 없다.

이 외에도 우리나라에는 참으로 어려운 호칭들이 많다. 연구기관에서는 ‘선임’ ‘책임’ ‘주임’ 등의 호칭들이 존재한다. 연구기관에서 나온 분들이랑 일을 하는데 그 사람을 한번 부를 때마다 ‘배기홍 책임연구원님’ 이라고 해야한다. 일 시작하기도 전에 호칭 부르다가 에너지를 다 낭비하는 느낌?

실은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명함을 보면 한국보다 더 많은 직위가 막 존재한다. 회사마다 – 특히 벤처기업은 – 자기 직위를 마음대로 만드는 회사들도 있다. Chief Fun Officer, Chief Revenue Officer, VP of Partner Entertainment 등 재미있는 직위들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상관없다. 미국은 모든 사람을 직위가 아닌 그 사람의 실제 이름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John, Kihong, Albert 이렇게 부르지 ‘Chief Revenue Officer Kihong’ 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한국은 다르다. 이름으로 사람들을 부를 수가 없으므로 뭔가 붙여야 하는데 현재 한국의 호칭제도는 비효율적이고 어색한 거 같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그냥 전통적인 대리>과장>차장>부장>이사 직위를 선호한다. 두 단어이기 때문에 발음하기도 쉽고 어느 정도 표준화되어 있는 호칭들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장 심플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하는데 다른 분들은 현재 몸담은 조직의 직위와 호칭 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VC들의 묻어가기

묻어가기_leigwon전에 한번 포스팅 했듯이 우리는 작은 금액이지만 가능하면 가장 먼저 투자하는걸 선호한다. 그런데 첫번째로 투자한다는게 우리 단독으로 투자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공동투자자들과 함께 syndication을 만들어서 투자한다. 많지는 않지만 우리와 같은 LA 기반의 BAM Ventures와 우리는 그동안 공동투자를 몇 번 했다(참고로 BAM Ventures는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재미교포 창업가 – 내 개인적인 관점에서 – Brian Lee와 Richard Jun이 운영하는 창투사이다). 사무실도 가까워서 자주 보고 한국의 스타트업이나 한국인들이 미국에서 창업한 스타트업들을 좋아하고 이 회사들을 도와주는걸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거 같다.

그리고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이미 공동투자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요새는 간혹 서로 묻어갈때도 있다. 주로 투자를 lead하는 투자자가 먼저 좋은 회사를 발견하고, 이 회사에 대한 기본적인 스크리닝과 사전검토를 해서 괜찮다 싶으면 다른 공동투자자들은 아주 세세하게 다시 검토를 하지는 않는다 – 특히, 우리같이 소액투자를 하는 경우에는. 그냥 기본적인 몇가지 사항들만 확인하고 큰 문제가 없으면 같이 투자를 하는데 아주 빠른 경우에는 공동투자자들이 5시간만에 투자 결정을 하는것도 봤다.

자주는 아니지만, 우리도 이렇게 묻어간 경우가 있다. 당연히 투자하는 스타트업이 매력적이고 창업팀이 뛰어나서 공동투자를 하지만, 어쩌면 이보다 더 큰 이유는 같이 투자하는 투자자들을 많이 좋아하고 절대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고 과거에 여러번 같이 일을 한 믿을 수 있는 투자자들이 이미 사전검토를 한 회사는 내가 굳이 세세하게 보지 않아도 당연히 괜찮은 회사겠지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하게 이런 경우는 투자자들이 다른 투자자를 믿고, 그 투자자가 믿는 회사에 같이 투자하는건데 ‘평판의 세상‘이라는 글에서 강조했듯이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믿음과 평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너무 묻어가기만 해도 문제가 된다. 내 주변에 거의 묻어가는 투자만 하는 창투사들이 있긴 있다. 이들의 철학은 과거에 좋은 회사에 많이 투자한 VC 또는 유명한 브랜드의 VC들이 투자하는 회사에만 무조건 묻어서 같이 투자하는 것이다. 회사를 발굴하고 열심히 공을 들여 검토를 한 lead 투자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거저먹는거 같아 보여서 얄밉기도 하지만,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들한테도 큰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 스타트업의 본질은 관심없고 다른 투자자의 이름만 보고 들어오기 때문에 – 너무 묻어가는 VC는 조금 조심하는게 좋다.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leigwon/100071920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