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버에 대한 단상

얼마 전에 2주 동안 서울에 출장을 갔다 왔다. 항상 그렇듯이 택시, 버스, 지하철을 번갈아 이용하면서 이동을 했는데 시간과 이동거리 때문에 주로 택시를 애용했다. 일부러 한번 계산을 해봤는데 2주 동안 다양한 시간대에 택시를 37번 탔다. 택시를 탈 때마다 기사님들에게 우버에 대해서 여쭤봤는데 나이드신 분들은 역시 아직 잘 모르셨지만 젊은 분들은 대부분 알고 있었다. 예상했던대로 우버에 대한 좋은 말은 듣지 못했다. 대부분의 기사분들은 쌍욕을 하면서 안 그래도 먹고 살기 힘든데 미국의 불법택시업체가 밥줄을 위협한다고 상당히 불만들이 많았다. 정부가 더 세게 대응을 해서 한국에서 완전히 추방을 해야한다는 분들도 꽤 있었다. 이 기사분들 중 안전벨트를 착용한 기사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내가 직접 세어봤는데 37번 탄 택시 중 안전벨트를 착용한 택시기사는 6명이었다(뭐, 내가 이상한 택시만 탔을수도 있다).

좀 씁쓸했다. 아직도 그 이유를 난 명확하게 이해를 못하지만 서울시에서 우버는 불법 판정을 받았다. 또, 한편에서는 승객의 생명을 책임져야하는 택시기사들은 법으로 요구되는 안전벨트도 하지 않은채로 서울시를 미친 레이서처럼 달리고 있다. 경찰들은 오히려 우버를 비롯한 불법택시를 단속하는데 신경쓰고 있지 택시기사들 안전벨트 미착용은 단속도 하지 않고, 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 실제로 내가 탄 택시가 신호에 걸려 있었는데, 창문을 열고 기사가 경찰한테 인사를 하자 경찰도 그냥 인사만 하고 안전벨트 미착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달리는 내내 계속 안전벨트 경고음만 울리고 있었다. 결국 손해보는건 돈을 내야하는 나같은 택시 고객이다. 이동하는 동안 계속 마음을 졸이고 있었지만, 택시를 더 난폭하게 몰까봐 찍소리 못 했다. 그리고 내린 다음에 어디 불평할 곳 하나 없었다.

이미 관련하여 전에 내 생각을 쓴 적이 있는데, 서울시에서 불법으로 판정한 우버를 서울시민이 계속 이용하고 너무너무 좋다는 평을 하는 이유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택시기사들은 무턱대고 우버만 욕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우버보다 승객들한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조금만 더 고민했으면 좋겠다. 별거 없다. 안전벨트 착용하고, 신호등 위반하지 말고, 정속으로 달리고, 그냥 법만 지켜도 많은 부분들이 해소된다. 택시기사들은 우버를 불법이라고 욕하지만 본인들이 습관처럼 하는 안전벨트 미착용, 신호등 위반, 과속 등의 행동들도 불법이다. 그것도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수 있는 불법행위들이다.

어제 우버가 최근 투자유치한 시리즈 E 라운드를 1조원 이상 늘리기로 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회사의 가치가 무려 40조원 이상인데 이는 시총 36조원의 현대자동차보다 높다. 그만큼 투자자들은 우버의 비즈니스를 믿고 있다는 뜻이다.

우버가 불법인가? 이 세상에 해를 끼치는 사회악인가? 잘 모르겠다. 사회에 악을 끼쳐서 불법이라기 보다는 사회, 정치, 경제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아주 오래된 특정 집단들을 보호하기 위해 불법으로 규정했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떨쳐낼수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버는 아주 좋은 비즈니스라는 것이다. 우버의 직원들은 회사를 사랑한다. 우버의 투자자들도 회사를 너무 좋아한다. 우버의 고객인 승객들은 – 나를 포함 – 한 번이라도 우버를 사용해봤다면 평생 사용할 것이다. 우버의 다른 고객인 우버기사들도 대부분 우버에 매우 만족해하고 있다(물론, 그렇지 않은 기사들도 있다). 한 비즈니스를 둘러싼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이렇게 행복한데 – 특히 고객들이 – 이 비즈니스가 그렇게 손가락질을 받아야 할까?

결정의 속도 vs. 결정의 질

shoot_then_aim_web나는 MBA를 하다 중퇴했고 내 글을 좀 읽어보신 분들은 내가 MBA 학위가 창업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일인이라는걸 잘 알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MBA 학위가 아주 쓸모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창업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일할때에는 여러가지 면에서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는 학위이다 ([生生MBA리포트] 시리즈 참고)

얼마전에 미국 MBA 학교들이 실리콘밸리와 발맞추기 위해서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와 프로그램을 준비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세상이 바뀌니 당연히 학교의 커리큘럼도 바뀌어야 하고 이는 좋은 시도이자 취지이지만, 여전히 MBA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이런 수업들은 현실감이 떨어진다는게 내 생각이다.

자기 사업을 하다보면 여러가지 어려운 점들이 많다. 여기서 하나씩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신경써야할 크고 작은 일들이 많은데, 창업가의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빠른 결정’ 이다. 그것도 필요한 정보의 5%도 없는 상태에서 결정을 해야한다. 벤처 자체가 턱없이 부족한 정보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결정을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결정의 질’ 보다는 ‘결정의 속도’가 더 중요하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어차피 정보가 없기 때문에 시장조사나 더 많은 데이터를 취합하기 위해서 시간을 끌면 자원과 안 그래도 없는 옵션들이 고갈되기 때문에 계속 빠르게 결정하고, 그 결정이 틀리다면 다시 결정을 반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비즈니스의 생명을 유지시켜야 한다. 결정이 틀리더라도 빠르게 결정한다면 그 다음 결정을 할 수 있지만, 결정이 느리고 그 결정이 틀렸다면 이미 너무 늦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보고, 분석하고, 최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고 결정하는 걸 훈련시키는 MBA 수업의 기본 철학과 이 부분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나는 과연 경영대학원에서 이런걸 가르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비싼 돈 들여 학교 다니는데 “감으로 빨리 결정하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행동해라” 를 학교에서 가르치는것도 좀 이상하다. 이런건 오로지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울수 밖에 없다.

내 경험에 비춰보면 “처음부터 올바른 결정” 이란 없다. “일단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올바르게 만들자” 만이 존재한다. 내가 결정을 하면, 그 결정을 올바르게 만들기 위해서 모든 행동과 정신을 그쪽으로 집중하고 이렇게 하면 뭔가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는걸 나는 여러번 경험했다. 하다가 영 아니다 싶으면 빨리 또 방향을 바꾸면 된다. 이렇게 빠른 결정을 5번 하는게 계속 생각만 하고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는것보다 회사한테는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

초기 벤처의 경우 ‘결정의 속도’가 ‘결정의 질’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https://greenmossway.wordpress.com/2014/01/27/shoot-then-aim/>

에듀캐스트 투자

article-0-1B6C6098000005DC-99_634x411작년 가을 테니스 리그전에서 나보다 좀 어린 친구랑 시합을 한적이 있다. 나도 어릴적부터 테니스를 제대로 배워서 실력이 나쁘지 않은 편인데 이 친구도 여러면에서 봤을때 그냥 취미로 배운건 아니고 어릴적부터 제대로 친 실력이었다. 내가 졌는데, 시합이 끝나고 혹시 중학교나 고등학교때 선수였냐고 물어봤다. 대답은 의외였다. “한번도 정식으로 배운적은 없고 유투브로 테니스를 배웠어요.”

워낙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고 이런 변화의 중심에서 일을 하고는 있지만 다시 한번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걸 느꼈다. 유투브라는 회사는 2004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10년 이라는 길지않은 기간 동안 엄청난 성장을 했고 유투브가 시작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는 많은 전통 비즈니스에 disruption을 가져오고 있다.

교육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몇백년 동안 교육만큼 바뀌지 않은 분야가 있을까? 고대 로마 시대부터 교육은 교실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소수의 선생님들은 가르치고 다수의 학생들은 들으면서 배우는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빨리 바뀌는 세상에서 이렇게 바뀌지 않는게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이다. 하지만, 기술이 우리가 배움을 얻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풍부한 bandwidth, 전세계 어디서나 사용가능한 인터넷, 무료 컨텐츠, 그리고 유투브나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s: 대규모 온라인 공개수업)와 같은 새로운 플랫폼이 이를 가능케 하고 있다.

온라인 교육의 위력에 대해 스탠포드 동문 잡지인 Stanford Magazine에 다음과 같은 글이 소개된 적이 있다:

Christos Porios는 그리스의 알렉산드로포울로스에 사는 16살 고등학생이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과는 전혀 연관되어 있지 않고, 스탠포드 대학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스탠포드 대학의 한 수업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포리오스 학생은 작년 가을학기에 머신러닝 관련 시범 온라인 수업에 등록한 10만명의 학생 중 한명이다. 컴퓨터공학 교수 Andrew Ng은 스탠포드 학생들을 위해서 이 수업을 만들었는데, 수업 시작하기 몇일 전 누구나 무료로 이 수업을 온라인으로 수강하고, 시험도 보고, 숙제도 제출할 수 있도록 온라인 공개 강의로 변경을 했다.

포리오스 학생은 이 소식을 트위터로 접했다. 물론, 수업을 마친 후 스탠포드 대학 정식 학점을 취득하지는 못했다. 그냥 수업을 무사히 잘 수료했다는 축하 편지만 받았지만, 이 경험은 그의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비록 한번도 직접 만나본적은 없지만, Andrew Ng 교수는 제 인생 최고의 선생님 입니다. 이런 엄청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Nightcrawler 라는 영화를 보면, Louis Bloom 이라는 주인공은 사회적 외톨이/왕따이다. 그래서 변변찮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위키피디아를 통해서 엄청난 지식을 습득한다(심지어는 연애하는 방법까지 위키피디어로 부터 배운다). 영화이지만 그는 왠만한 전문가나 방송일을 오래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과 기술의 발달이 배움에 이렇게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박사학위를 받을 목적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지식을 이제는 온라인상에서 거의 무료로 습득이 가능하다. 물론, 이 분야의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선생님/교수님을 통해서 배우는거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수는 있겠지만, 의지만 있고 인내심을 가지고 시간을 투자할 의향이 있다면 왠만한 전문지식은 다 온라인상에서 배울 수 있다.

그렇다고 학교는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말콤 글래드웰이 그의 베스트셀러 ‘Outlier’ 에서 말하듯이 한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소들과 적절한 운이 필요한데 학교라는 물리적인 공간은 단순한 학문적 지식 외에 다양한 인간관계와 혼자서 인터넷으로 접하기 어려운 수많은 기회들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정해진 시간내에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강제성까지 있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는데 효과적이다. 물론, 이를 위해 수천만원의 학비를 부담할 의향이 있냐는 개인의 선택이다.

다시 위의 테니스 예로 가보자. 학문적인 지식은 유투브를 보고 습득할 수 있지만 이제는 테니스같이 몸으로 하는 운동까지 유투브를 보고 배울 수 있는 세상이 왔다. 인터넷, 가상현실, 블록체인 등의 기술이 성숙해지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세계의 모든 지식을 거의 무료로 배울 수 있는 세상이 곧 올것이다. 어쩌면 우리 생각보다 빨리 올 것이고 이미 와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TNTcrowd라는 회사가 있다. 젊고, 기술력이 풍부하고, 똑똑한 친구들로 구성된 이 팀은 에듀캐스트라는 서비스를 통해서 세상에서 가장 큰 학교를 만들고 있다. 우리는 이 친구들의 사고방식과 태도가 좋아서 최근에 투자하고 한 배를 같이 탔다.

세상에서 가장 큰 학교를 응원한다.

<이미지 출처 =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2400941/The-world-s-biggest-school-47-000-pupils-1-000-classrooms-run-3-800-staff-India.html>

내 명함이 없어도 사람들이 나를 찾을까

며칠 전에 선배형님과 함께 요새 말이 많은 한국의 ‘갑질’과 ‘슈퍼갑질’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했다. 대형제조업체가 그들의 1차/2차/3차 벤더들에게 하는 갑질, 대형유통업체가 작은 벤더들에게 하는 갑질, 공무원들이 정부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노력하는 업체들에게 하는 갑질, 심지어는 편의점 사장이 알바생들에게 하는 갑질 등등…..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은 종류의 갑질이 존재한다.

그런데 소위 ‘갑’ 이라고 하는 자들은 그들이 갑이 아니라 그들의 명함에 찍힌 회사의 로고가 갑이라는걸 알고 있을까? 아마도 모르는거 같다. 알면 그렇게 갑질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인간 대 인간으로 보면 오히려 ‘을’ 보다도 훨씬 더 못하고 능력없는 ‘갑’ 이 단지 더 크고 돈이 많은 회사의 직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이렇게 쓰레기 취급하는 현상이다. 세상은 돌고 돈다. 미래에 어떤 상황에서 이 ‘을’을 다시 만날지 모르는데 ‘을’이 ‘갑’이 되고 ‘갑’이 ‘을’이 되면 어떻게 할까? 물론, 본인들은 자기가 잘나서 그렇게 남을 업신여기고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몇 년 전부터 나는 이런 생각을 많이 해봤다. “우리 회사 로고가 없는, 그냥 내 이름 석자만 적힌 명함을 가지고 다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지금같이 취급해줄까?” 나와 같이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나라는 인간을 좋아해서 매일 나한테 이런저런 부탁을 하는건지 아니면 우리 회사 때문에 그러는건지 모두가 잘 생각해 보면 이런 상식밖의 갑질은 일어날수가 없다.

그나마 내가 유일하게 갑질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던 회사는 한국마이크로소프트이다. 과장이었지만 내 선에서 집행할 수 있었던 마케팅 비용이 꽤 많았고, 이 마케팅 돈을 필요로 했던 여러 협력업체가 있었다. 협력업체 사장님들이 과연 내가 좋아서 나랑 친해지려고 했을까? 나보다는 내 명함에 찍힌 ‘microsoft’ 를 좋아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갑질은 하지 않았다. 항상 동등한 business professional로 모든 협력업체 분들을 대했던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스트롱벤처스 배기홍 대표’와 ‘배기홍’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내 명함에서 Strong Ventures를 지워도 사람들이 나를 똑같이 대해주길 바란다.

그렇다고 이런 비즈니스 관계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하는건 아니다. 내가 대기업에서 협력업체를 담당하고 있으면 협력업체 사장님은 내 나이, 인품, 배경과는 상관없이 나한테 뭔가를 가져가야 한다. 그래서 나한테 매우 잘해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분한테 갑질을 하는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말그대로 ‘협력업체’ 이기 때문에 서로 프로페셔널하게 협력을 하는 관계이지 내가 협력업체 사장님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면 그건 완전 오산이다.

내 명함에 우리 회사 이름이 없다면 과연 나라는 인간은 몇 점일까? 갑질하는 인간들은 대부분 5점도 안 될것이다.

작고 빠른 벤처의 힘

대기업들이 스타트업을 그대로 베끼는 현상에 대한 내 의견은 전과 변함없다. 감정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냐, 아니면 그들이 하는 서비스를 그대로 카피하냐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문제이다. 인수 가격이 1,000억 원인데, 그보다 더 저렴하게 대기업이 직접 더 훌륭한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면 그대로 카피하는 게 맞다. 그런데, 되는 경우도 있지만, 돈과 자원이 훨씬 더 많은 대기업이라고 항상 성공하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그렇게 뛰어난 인재들과 돈이 있는 구글이 작은 회사들이 하는 서비스를 금방 카피해서 이들보다 앞서나갈 수 있을 거 같은데 왜 항상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대표적인 예로 페이스북을 모방하려다 실패한 구글플러스가 있다(물론, 이 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수십 가지의 서비스가 존재한다). 네이버도 마찬가지이다. 작은 스타트업이 잘 하는 거 같으면 이들을 카피하는 걸 우리는 여러 번 봤다. 이 중 성공하는 것도 있지만, 직원 10명 이하의 회사가 운영하는 서비스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고 결국 접는 것도 우리는 목격한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다시 작고 빠른 회사들의 product iteration, 그리고 그 결과물인 ‘사용자 경험의 오너쉽’ 이 바로 대기업도 절대로 넘지 못하는 커다란 진입장벽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새 이 바닥에서 많이 사용되는 Slack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다. 나도 조금은 써봤는데 – 우린 큰 조직이 아니므로 Slack을 제대로 사용할 기회가 없다 – 기존의 협업 제품들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그리고 편리하게 잘 만들었다. 껍데기만을 보면 다른 비슷한 제품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이걸 깊게 사용해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미묘한 디테일과 사용자 경험이 최적화되어 있다. 아마도 수많은 사용자의 피드백과 제품 활용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계속 기능, UI, 경험을 빠르게 고치기 때문인 거 같다. 그리고 이런 지속적인 iteration이 가능한 속도와 민첩성은 대기업들이 카피하기 쉽지 않다.

또 다른 예로는 마케팅용 이메일 서비스 MailChimp를 들 수 있다. 메일침프는 내가 굉장히 자세히 사용해 봤는데, 이렇게 모든 사용자 시나리오를 생각한 제품이 과연 존재할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할 정도로 거의 ‘완벽하게’ 만든 제품이다. 메일침프를 사용하다 보면 “와, 이런 거까지 생각했다니” 라는 감탄을 하는 경우가 몇 번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완성도 높은 제품을 출시하지는 않았다. 유저수가 늘어나고, 그러면서 여러 가지 사용자 경험과 시나리오들이 발생하면서 이에 발맞춰서 지속해서 제품을 수정한 결과이다. 메일침프는 아직도 이런저런 실험을 하면서 기능도 조금씩 추가하고, 바꾸고 UI도 계속 수정하고 있다.

Slack이나 MailChimp나 이제는 ‘작은 스타트업’이라고 정의하기엔 모호하지만, 이들도 한-두 명이 구멍가게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벤처기업들이다. 그동안 대기업들이 이런 서비스를 시도하지 않았을까? 무수히 많고, 실은 아직도 비슷한 서비스들을 계속 직접 하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워낙 시장이 크고 벌 수 있는 돈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자원이 많은 대기업도 오랫동안 수만 번의 iteration을 통해 사용자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를 own 하는 스타트업들과 맞짱 뜨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겉으로만 보면, “대량메일 솔루션? 그거 그냥 우리가 만들면 되는데” 라고 생각하지만 메일침프를 통해 매달 700만 명의 사용자들이 100억 개 이상의 이메일을 보내면서 형성된 ‘관계’와 제품에 녹아 들어가 있는 ‘사용자들의 경험’ 이란 아무리 돈과 인력이 있어도 단시간 내에 카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대기업들이 직접 하지 않고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것이다. ‘한국 대기업들도 할 말 많다‘ 에서 내가 강조했지만, 대기업들에 높은 가격에 인수되고 싶다면 이런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삼성이나 네이버가 내가 운영하는 스타트업의 서비스를 그대로 카피했는데, 훨씬 더 잘 되어서 우리 회사가 망하면 그건 대기업의 횡포가 아니라 우리 서비스가 아직 부족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