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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취미, 그리고 사업

작년 말에 우린 브레이크앤컴퍼니라는 회사에 투자했다. 내가 이 블로그를 통해서도 자주 이야기하는 게, 최근에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은 나에게 꽤 새롭기 때문에, 사업을 다 이해하기전에 – 실은, 어차피 아무리 공부를 해도 100% 다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 – 믿고 투자한 경우가 굉장히 많다. 처음에는 이렇게 투자하는 게 적응이 안 됐지만,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됐고, 이 회사들의 실적이 나쁘지 않은 걸 확인하면서 이렇게 투자해도 괜찮겠다는 희망이 많이 생겼다.

브레이크앤컴퍼니는 스포츠(농구, 야구, 미식축구 등)나 컨텐츠(포켓몬, 유희왕 등) 분야의 IP를 보유한 곳으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아서 제작되는 트레이딩 카드를 그레이딩(=평가, 등급화)하는 아시아의 유일한 회사이다. 참고로, 이 회사는 NFT가 아니라 실물 카드만을 취급하는데, 내가 몰랐던 시장 중 이렇게 큰 시장이 존재하는 사실 자체가 당시에 나에겐 충격이었다. 상태가 양호한 마이클 조던의 카드는 수억 원을 쉽게 초과하고, 포켓몬 카드의 가격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이 회사는 첨단 기술을 활용해서 카드의 품질과 상태를 검증하고, 여기에 등급을 매긴 후, 특수 제작한 플라스틱 케이스에 카드와 라벨을 봉인해서 등급을 의뢰한 고객에게 다시 보내준다. 이 플라스틱 케이스를 고객들이 ‘브레이크’하는 데서 회사의 이름이 유래됐다.

이런 회사에 투자했다고 하면, 대부분 이건 사업이 아니라 애들 장난이라고 하는데, 바로 그 점이 나에겐 중요했다. 우리 주변의 많은 위대한 사업들, 특히 우리의 습관을 바꾼 사업들은 대부분 장난이나 취미활동에서 시작됐다. 똑똑한 창업가들이 없는 시간을 쪼개서 밤늦게 또는 주말에 만지작 거리면서 뭔가를 조금씩 만들다 보니, 주변에 또 다른 똑똑한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됐고, 이들에게도 장난감 같은 취미였지만, 어느 순간에 이게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큰 사업이 되는 경우를 꽤 많이 봤다.

브레이크앤컴퍼니의 사업을 나는 아직도 100% 이해하지 못하고, 이 서비스를 열렬하게 사용하는 고객도 아니지만, 장난감같이 시작한 취미 활동이 큰 사업이 될 거라는 확신이 크다.

인터넷 서비스에 대해 일가견이 있고, 좋은 인사이트를 항상 많이 공유해주는 a16z 파트너 Chris Dixon의 을 읽으면 내가 브레이크앤컴퍼니에 대해서 생각했던,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결국 모든 위대한 비즈니스는 똑똑한 사람들의 취미와 장난 거리로 시작하고, 이들이 주말에 재미 삼아서 뭔가를 계속 발전시키면서 점점 더 모습이 잡혀간다는 이야기인데, 많이 동의한다.

“Cynics sound smart but optimists build the future(부정적인 사람들의 말이 항상 더 똑똑해 보이지만, 결국 낙관주의자들이 미래를 만든다)”

아멘.

마법의 순간

얼마 전에 도산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내 뒤에는 젊은 여성 두 분이 쉬지 않고 떠들고 있었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살짝 짜증이 났었다. 그런데 갑자기 “…축구…플랩…”이라는 말이 들려서 집중해서 두 분의 대화를 엿들어봤다. 앞뒤 내용은 내가 잘 모르겠지만, 둘 중 한 분이 축구(=풋살: 미니축구)를 좋아하고, 이번 주에 두 번이나 플랩으로 축구를 했다는 게 내가 듣고 싶었던 그 부분이다. 팀이 없어도, 혼자 가도 선수를 매칭해주는 우리 투자사 소셜풋살 플랫폼 플랩풋볼이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진입하는 마법의 순간을 내가 강남 한복판에서 목격한 감동의 순간이었다.

우리가 꽤 대중적이고 생활밀착형인 서비스에 많이 투자하다 보니, 나는 위에서 말 한 이런 마법의 순간을 몇 번 경험해봤다. 당근마켓이 지금은 국민 앱이 됐지만, 우리가 처음 투자할 때는 트래픽이 별로 없었고, 초반에는 성장도 상당히 더뎠다. 시간이 가면서 입소문으로 앱이 바이럴하게 퍼졌지만, 그래도 내 주변에 당근마켓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에서 퇴근하는 만원 버스 안에서 여기저기 밀리고 치여서 짜증이 살살 나고 있을 때, 뒤편에서 귀에 익은 깜찍한 소리가 들렸다. 바로 “당근~” 소리였는데, 아직도 그 순간이 기억난다. 아무도 몰랐던, 그리고 그 누구도 이렇게 성장하리라고 예측 못 했던 – 물론, 당시엔 지금 당근마켓의 성장은 상상도 못 했다 – 회사에 우리가 초기 투자를 하고, 그 서비스를 만원 퇴근 버스 안의 내가 모르는 그 누군가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한 그 순간은 정말로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세탁특공대도 이와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 나는 투자자라서 초반부터 열심히 세특을 애용했지만, 당시 우리 아파트 주민들은 대부분 동네 세탁소 또는 클린토피아를 사용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동네 세탁소 아저씨를 만날 때마다 속으로는 “빨리 모든 사람이 세탁특공대를 사용해야할텐데…언제 그렇게 될까”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 생각보다 빨리 왔다. 어느 날 너무나 낯익은 세탁특공대 유니폼을 입은 요원을 우리 아파트 정문에서 만났고, 혹시 몇 동 몇 호에 가시냐고 물어봤고, 우리 집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을 때,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청담도서관에서 어느 날 플라이북의 키오스크를 발견한 순간도 마법과도 같았다. 무에서 유를 만들고 싶어 하는 회사에 투자했는데, 정말로 대중이 사랑하고 내 눈앞에서 어린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와서 플라이북 키오스크에서 추천해주는 책을 도서관에서 대여하면서 기뻐하는 그 모습을 보는 건, 마법과도 같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이런 마법의 순간을 더 자주, 더 오래, 그리고 더 깊게 느꼈으면 좋겠다.

매출이 다시 중요해지는 시점

지난 2년 동안 시장에 유동성이 넘쳐흘렀는데, 이제 그 돈줄이 서서히 마르고 있다. 한국에서는 천천히 마르는 것 같은데, 미국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조금은 다르게, 급격하게 돈줄이 메마르고 있는 것 같다. 시장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려서 발생한 결과 중 하나가 말도 안 되게 높은 스타트업 밸류에이션이었다. 창업한 지 한 달도 안 되는 회사가 100억 원 이상의 밸류에이션으로 투자받는 상황이 이젠 이야깃거리도 아니다. 과거에 이런 회사에 기업가치 30억 원 이하로 투자를 주로 해서, 기업가치가 떨어질 거라는 생각으로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안 하면 누군가는 이 밸류에 투자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현상은 시장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분들은 물가가 올랐고, 스타트업 밸류에이션에도 이런 물가 상승이 반영되어야 하므로 이렇게 가격이 비싸졌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팬데믹 기간 동안 이렇게 밸류에이션이 높아졌을 땐, 오히려 매출이 발생하는 회사들이 매출이 전혀 없는 회사보다 더 나쁜 조건으로 투자받는 걸 많이 경험했다. 예를 들어, 사업 시작한 지 2년 됐고, 월 매출 1억 원 하는 스타트업이 펀딩을 하면, 많은 VC가 이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현재 매출을 기반으로 책정했다. 아주 1차원적으로만 계산해보면, 월 매출 1억 원이면, 연 매출 12억 원이고, 분야에 따라서 이 연 매출의 배수를 회사의 밸류에이션으로 계산했다. 뭔가를 판매하는 이커머스라면, 배수가 낮기 때문에 연 매출의 2배~5배 사이가 이 회사의 밸류에이션일 확률이 높다. 즉, 월 매출 1억 원 하는 이커머스 회사의 밸류에이션은 24억 원 ~ 60억 원 사이로 생각한다. 참고로, 무에서 시작한 회사가 매달 고객으로부터 1억 원을 벌고 있다는 건 대단한 업적이다.

그런데, 창업한 지 3개월도 안 된, 매출은커녕 비즈니스 모델도 없는 회사가 100억 원 기업가치에 투자받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이런 회사는 오히려 매출이나 수치가 전혀 없기 때문에 위에서 말 한 수치 기반의 밸류에이션 산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냥 이런 밸류에이션이 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사업성이 유망하고 능력 있는 팀이지만, 그렇다고 2년 동안 확실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서 돈을 벌고 있는 회사보다 이 회사의 기업가치가 높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마도 첫 번째 예로 든 회사는 업력이 좀 됐기 때문에, 짧은 기간에 빠른 성장을 원하는 VC들에겐 성장이 느린 회사로 인식됐을 것이다. 그리고 뭔가 계산을 할 수 있는 숫자(매출)가 있기 때문에, 밸류에이션에 디스카운트가 됐을 것이고,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숫자가 없지만 요새 유행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완전히 새롭게 창업한 회사가 밸류에이션 프리미엄을 받았을 것이다.

이제 경기가 꺾이면서, 이 상황이 역전되고 있다. 이젠 비즈니스 모델과 매출이 없는 회사들보단, 작더라도 매출이 발생하고 있는 회사들이 투자받을 확률이 더 커졌다. 이 불경기와 인플레이션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불투명해졌는데, 이런 불확실한 경제 상황을 버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게 견고한 비즈니스 모델과 매출이라서 그런지 이젠 많은 투자자들이 매출이 발생하고 있는 회사들을 다시 선호하고 있다.

유동성이 넘쳐 흘려서 비즈니스가 없음에도 부르는 밸류에이션이 값이 되는 시기에는 우리 투자사에 작은 매출을 만들 바에 일부러 매출을 발생시키지 말라는 조언을 한 적이 있다. 그래야지 오히려 더 높은 밸류에이션으로 투자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인데, 이 논리는 얼마 전에 빌 게이츠가 말했던 ‘더 큰 바보 이론(The Greater Fool Theory)’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즉, 내가 아무리 비싸게 사도, 누군가는 이 가격보다 더 비싸게 살 것이고, 이 가격보다도 더 비싸게 살만한 또 다른 바보가 내 주변에 널려있기 때문인데, 시장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이제 모두 다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이제 다시 매출이 정말로 중요한 시점이 돌아왔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계속 이 분위기가 아주 오래 지속됐으면 좋겠다.

호랑이의 눈

얼마 전에 아주 오랜만에 우리 투자사 대표님을 직접 만나서 같이 식사했다. 이메일, 메신저, 그리고 전화로는 자주 이야기를 했지만, 직접 만나는 건 거의 1년 만이었는데, 역시 사람은 자주 만나야 하는 사회적 동물이라는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다.

식사하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총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눴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스타트업이었고,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잘 모르는 분야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회사라서 유독 힘든 상황이 많았지만, 매달 좋은 성장을 만들면서 스트롱이 처음 투자할 때 대비 말 그대로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이 회사의 성장 그래프를 보면 정말로 눈이 부시다). 하지만, 눈부신 성장 뒤엔 대표님의 눈물이 많았다. 코파운더의 탈퇴, 노가다에서 시스템으로의 전환의 어려움, 힘든 채용, 그리고 잘 모르는 분야라서 어려운 펀딩 때문에 스트레스가 상당히 많이 쌓인 듯 했다.

특히 펀딩 관련해서 대표님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우리가 이 회사를 처음부터 봤었고, 내부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큰 시장에서 좋은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는 걸 내부자로서 알고 있지만, 이 시장과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리고, 요새 글로벌 경제도 좋지 않아서 아마도 이 사업을 처음 접하는 투자자들은 선뜻 투자하길 꺼리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이렇게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나는 대표님의 눈빛에서는 희망과 자신감을 봤다. 말로는 요새 스트레스가 너무 많고, 태어나서 이렇게 힘든 적이 없다고는 했지만, 눈은 마치 영화 록키에서 말하는 ‘호랑이의 눈(eye of the tiger)’같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성공에 굶주린, 그리고 희망과 자신감이 넘쳐서 옆 사람들에게 전염될 정도의 그런 마음에 드는 눈빛이었다.

이 분을 내가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이 났다. 좋은 대기업에서 일을 잘하고 계셨지만, 본인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이 험난한 창업의 세상으로 나왔고, 대부분의 창업가들과 같이 초기에는 세상으로부터 보기 좋게 거절당했었다. 당시엔 두려움과 불확실로 가득 찬 눈빛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도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내가 회사를 괜히 그만뒀나, 이게 정말로 안 되는 사업인가, 뭐 이런 생각이 눈빛에 반영됐었던 것 같다.

하지만, 며칠 전에 내가 봤던 건 완전히 다른 눈빛이었다. 그때와 같이 아직도 사업은 너무 어렵지만, 이젠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자신감과 확신의 눈빛이었고, 성공을 갈망하는 독기가 가득 찬 눈빛이었다. 록키가 승리할 때의 그 eye of the tiger였다.

그래서 너무 좋았고, 이런 분이 하는 스타트업에 우리가 투자했다는 게 너무 자랑스러웠다.

오늘도 모두 독기찬 호랑이의 눈으로 승리하는 하루가 되길.

자주 웃기

지난 며칠 동안 Y Combinator에서 창업가들에게 보낸, 좋은 시절이 끝나가니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라는 이메일이 우리나라에서도 공유되면서 큰 화제가 됐었다. 이미 많은 분이 내용을 정독했을 텐데, 요약하자면 13년간의 스타트업 호황이 끝나가니까 이젠 허리띠 졸라매고 돈 아끼면서 비즈니스 모델 빨리 강화해서 돈을 벌든지 아니면 내년 말까지 쓸 수 있는 펀딩을 빨리 확보해놓으라는 내용이다. 이 외에 세쿼이아 캐피탈에서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고, 한국 VC들도 급랭하는 시장에 대한 경고를 너도나도 앞다퉈서 하고 있다.

나도 이 내용에 모두 동의한다. 실은, 이 상황은 이미 예견됐던 건데, 모든 악재가 그렇듯이 예고 없이, 그리고 전방위적으로 와서 놀란 거지, 경제 위기 자체를 예상 못 했던 건 아니다. 팬데믹이 시작한 후, 글로벌 경기가 무너질 거라고 대부분 경제학자가 예측하면서 경고의 메시지를 시장에 보냈다. 그리고 그때도 많은 VC가 조심하라는 말을 수없이 했다(나 포함). 하지만, 고민하고 시간 투자해서 이런 경고음을 보낸 노력이 민망할 정도로, 경기가 나빠지긴커녕, 오히려 그 누구도 상상치 못할 정도로 경기는 과열되면서, 시장에는 돈이 넘쳐흘렀다.

2021년도 한 해에만, 전 세계의 벤처투자금 $620B이 무려 9,000개가 넘는 딜에 투입됐고, 이는 과거 벤처투자의 모든 기록을 큰 차이로 경신한 숫자이다. 작년 한 해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돈지랄”이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정말로 유동성이 넘쳐흘렀고, 말은 안 되지만 “현금이 제일 싸다”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물론, 이런 돈지랄을 보고, 누구나 다 끝은 좋지 않을 거라는 걸 예측하지만, “내가 아무리 비싸게 사도, 다른 사람이 더 비싸게 살 거야”라는 생각으로 계속 시장이 과열됐던 것 같다.

그리고 결국엔 이 모든 게 한 번에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시장은 조정모드로 돌입하고 있다.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도 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펀딩은 어떻게, 언제 해야 할지, 그리고 스트롱이 보는 현재 상황은 어떤지 최근에 많이 물어보고 있고, 나도 다른 VC와 비슷한 경고의 메시지 외엔 다른 말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2020년 4월에 나는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극단적 조치‘라는 포스팅을 통해서 팬데믹 위기를 극복하려면 무조건 사전에 비용 절감하고 사람을 해고해야 한다는 강력한 이야기를 했는데, 결론적으로 보면 이건 좀 틀린 조언이긴 했다. 왜냐하면, 모두가 다 우려했던 글로벌 쇼크 수준의 불경기가 오진 않았고, 단지 몇 달 동안 코로나19 쇼크만 있었고, 이후에 시장은 더 과열된 돈지랄로 보복 컴백을 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어떨까? 나는 경제학자는 아니라서 이번에도 틀릴 수 있겠지만 – 그런데, 경제학자들도 항상 틀린다 – 이번엔 모든 객관적인 수치가 꽤 심각한 글로벌 경제 쇼크로 향하는 것 같다. 불경기, 인플레이션, 스태그플레이션, 전쟁, 환율 폭등 등, 이미 경제 위기는 시작됐는데, 그동안 다들 현실을 부정하면서 돈 수도꼭지를 펑펑 틀고 있었다. 이제 돈줄이 메마르기 시작했는데, 이번 위기는 과거 금융 위기와 같이 갑자기 모든 게 한 방에 무너지는 양상을 보이진 않을 것 같다. 과거의 글로벌 위기는 대부분 블랙스완의 성격이 있었는데, 이번 쇼크는 이미 모두가 어느 정도 예견했던 시장의 조정이라서 오히려 아주 천천히 조정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천천히 금융 위기가 오면, 좋은 점은 위기를 제대로 알아차리기도 전에 다시 호황이 온다고 하는데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요새 내가 우리 대표님들에게 드리는 조언은 그냥 평소 하던 대로 돈 아끼면서 사업하고 – 우리 투자사들은 펑펑 쓸 돈이 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 사람 채용 신중하게 하고, 되도록 신사업 시작하지 말고 기존 사업에서 돈 더 벌자 이다. 그렇게 버티면서 그냥 자주 웃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