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는 사회

나는 요샌 TV 드라마를 잘 안 보는데, 한 편도 안 빼먹고 마지막으로 재미있게 시청했던 드라마는 ‘모범택시’였다. 이제훈씨가 연기한 김도기라는 친구가 주인공인데, 겉으로는 모범택시 운전사이지만, 원래는 법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의 악을 직접 응징하고 제거하는 (내 눈에는) 정의의 사도이다. 슈퍼맨과 같은 슈퍼파워는 없고, 배트맨과 같은 최첨단 기술의 도움도 없지만, 악을 응징하는 슈퍼히어로의 민간인 버전 정도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시즌 2도 만들 거라는 소문이 있는데, 기대하고 있다.

실은 이 드라마가 그렇게 대중의 인기를 받은 작품은 아닌데, 내 주변에는 은근히 시청자들이 많이 있었고, 누가 봐도 이 사회에 악이 되는 인간들인데 법이 제대로 심판하지 못하는 현상이 현실과 똑같고, 어떤 경우에는 본인들이 직접 이 잘못된 현실을 바로 잡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못 하는 답답함을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대리 해소 해주기 때문에 즐겨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내가 요새 이런 생각을 가끔 한다. 특히,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아져서, 가끔은 내가 이런 문제를 직접 해결하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그렇게 못하고 있고, 여기에 대해서 스스로 답답함을 많이 느낀다.

불편해도 모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데, 우리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본인 답답하고 불편하다고 마스크 착용을 잘 안 하고 다니는 상습범들이 몇 명 있다. 특히 헬스클럽에서도 이런 상황을 빈번하게 목격해서 헬스클럽 담당자에게 말하면, 이분은 본인은 여러 번 지적했지만, 외주직원이라서 아파트 주민에게 말이 잘 안 먹힌다면서 책임을 회피한다. 관리사무소장에게 가서 따지면, 헬스장 담당자에게 말하라고 하고, 본인들도 여러 번 지적했는데 시정이 안 된다면서 곤란하다는 말밖에 안 한다. 그래서 결국엔 사진 찍고 구청에 민원을 제출하면, 한참 뒤에 민원이 접수되고, 기껏 한다는 게 마스크 잘 착용하라는 단지 내 방송을 한다. 가끔 관리소에 벌금을 과금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관리소는 헬스장 담당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려고 하고, 서로 잘못 없다고 변명하는데 바쁘다. 누군가는 혼자 편하려고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서 남들에게 불편과 불안함을 주는데, 이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는다.

불법 주차도 비슷하다. 그냥 견인차가 와서 끌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아파트는 사유지라서 이게 힘들고, 관리소는 아파트 주민들에게 여러 번 말했지만, 잘 안 지켜진다는 변명만 하면서 본인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결과는 나같이 제대로 주차하는 주민이 불법 주차한 차 때문에 피해를 보는데, 이에 대한 책임은 그 누구도 지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우리 아파트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살면서 너무 많이 경험하고 목격한다. 서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해서 발생하는 부분이 크다고 생각한다.

아,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범죄자이거나, 정말 악랄한 짓을 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본인들 편하기 위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고,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에 해가 되는 나쁜 놈들임은 확실하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해야 할 일은 하고, 이에 대해 책임지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아니, 현실적으로 책임을 못 지더라도, 이런 노력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8대 불가사의

오늘은 우리가 투자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실은, 내가 쓰는 글 대부분이 많든 적든 사람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는데, 요새 특히 자주 느끼는 부분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consumer internet 분야에 투자를 많이 하지만, 아주 전문적인 날카로운 분야의 회사에도 투자한다. 최근에 이런 부류의 회사에 투자했다. 우리가 잘 아는 분야는 아니지만, 기본적인 숙제를 했고, 팀이 좋아서 투자했지만,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여전히 우리에겐 부족하다. 그런데,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해오던 대기업 분들과 이야기해 보니, 이미 이분들이 아는 회사이고, 본인들도 전에 한 번 검토를 했었지만, 투자는 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여기까지면 좋았을 텐데, 왜 그 회사에 스트롱은 투자했는지 엄청나게 궁금해하셨다. 직접적으로 말은 안 했지만, 내가 받은 느낌은 우리 투자사의 제품과 시장이 전문가의 입장에서 봤을 땐 생각만큼 대단하지 않은데, 우리가 이 분야를 잘 모르기 때문에 잘 못 투자했다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았다.

실은 이분들이 맞을 수도 있다. 우린 광범위한 분야에 투자하는 VC라서,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은 없다. 반면에, 이분들이 일하고 있는 회사는 거의 50년 이상 특정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고, 이를 통해서 축적한 전문지식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그래서 초기 스타트업을 단순히 제품, 서비스, 또는 시장으로만 본다면, 그리고 정확히 그릴 수 없는 미래가 아닌 현재만을 본다면, 우리가 반쪽짜리도 안 되는 지식과 이해도를 기반으로 투자한 게 맞고, 이게 전문가의 입장에서는 틀린 한 수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특정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 한 전문가들이 자주 간과하는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항상 강조하지만, 뭘 하는것 보단, 누가 이걸 하냐가 우리에겐 가장 중요하다. 안 될 사업도 되게 만드는 창업가들을 너무 많이 봤고, 반대로, 될 사업도 안 되게 만드는 창업가들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나는 사람의 힘을 항상 믿고 있다. 우리 상상보다 인간은 많고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데, 그중 가장 으뜸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업가라고 생각한다.

우리 투자사 중 요새 미디어에 많이 비치고 있는 당근마켓이나 클래스101 같은 회사도 모두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절대로 안 된다고 했던 사업이다. 서비스와 시장만 봤을 땐 안 될 사업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분들이 간과한 건 그 사업을 하고 있는 창업가들이었다. 안 될 사업을 사람이 되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초기 투자는 사람을 연구하는 업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내가 지금까지 느낀 건, 세계 7대 불가사의에 한 가지만 더해본다면, 사람이야말로 바로 8대 불가사의가 아닌가 싶다.

땀 냄새

우리 투자사 중 B2B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위펀이라는 회사가 있다. 위펀의 대표 서비스인 스낵24로 더 잘 알려진 회사이다. 여기 김헌 대표님이 2019년 6월에 우리에게 콜드 이메일을 보냈고, 재미있는 서비스인 것 같아서 우리 사무실에서 첫 미팅을 했다. 그리고 조금 더 회사를 알아보고 싶어서 당시 가산 디지털 단지에 있었던 위펀의 창고형 사무실을 방문했다.

오퍼레이션을 어떻게 하는지 항상 궁금했었기 때문에 창고를 먼저 방문했는데, 그땐 시스템이 거의 없는 단순한 창고였다. 창고 안에 여러 가지 과자와 스낵이 빼곡히 저장되어 있고, 선반에도 내가 즐겨 먹는 과자들이 빽빽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비좁은 틈을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위펀의 팀원분들이 보였다. 무슨 말인진 정확히 못 들었지만, 그 안에서 서로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작업 지시를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정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과자를 픽업하고, 다시 진열하고, 포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체 보유한 트럭은 물건이 준비되면 배달하기 위해서 차고 밖에서 대기 중이었다.

너무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어서, 창고를 보러 온 우리가 미안할 정도였는데, 같은 건물에 있는 사무실에서 김헌 대표와 이야기하기 위해서 올라가기 전에 존이랑 나랑 서로 보면서, “여긴 땀 냄새가 물씬 난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실제로 땀 냄새가 났던 건 아니지만, 우리가 눈으로 본 상황이 뇌로 전달되면서 그려졌던 이미지는 땀 뻘뻘 날 정도로 열심히 발로 뛰어 다니는 젊고 열정적인 팀이었다. 엄청 세련되고 시스템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회사도 좋지만, 솔직히 우리같이 초기 단계에 투자하는 사람은 이런 땀 냄새 나는 팀을 엄청 좋아한다. 결국 이런 분들이 발로 뛰어다니면서 엄청난 비즈니스와 회사를 만들어가는 걸 직접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코너마켓이라는 우리 투자사에 대해서도 전에 포스팅 한 적이 있는데, 이 회사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고객으로부터 수거한 유아복을 분류해서 저장하는 창고형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이런 땀 냄새를 맡을 수 있었는데, 실은 그 어떤 향수보다도 더 향기로웠다.

지난주 포스팅에서 실제로 잘 돌아가는 회사 내부를 보면 정말 혼란스럽고 개판이라고 했는데, 위펀 내부 또한 정말 정신없이 돌아갔다.

이제 우리는 모든 팀원이 맨땅에 헤딩하고 있고, 개판 수준으로 정신없이 돌아가지만, 그 팀을 볼 때 아주 짜릿한 느낌을 받는다면 “이 팀에겐 땀 냄새가 난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리고 이 땀 냄새가 나는 팀에게 스트롱이 투자할 확률은 매우 높다.

오늘도 모두 땀 냄새 나는 바쁜 하루가 되길.

현미경 지옥

오래된 영화라서 어린 분들은 모를 수도 있는데 윌 스미스 주연의 Enemy of the State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의 시작과 끝에는 우주에서 본 지구가 나온다. 정말 블루마블같이 아름답다. 그리고 화면이 빠르게 줌 인 되면서, 세계, 미국, 그리고 더 확대되면서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볼티모어의 한 거리를 보여준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촬영된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모두 한 번 정도는 봤을 거다. 지구를 우주에서 보면 매우 조용하고 평화로운데, 더 가까이 확대해서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나 동경의 시부야 횡단보도를 보면, 사람들이 개미같이 바글바글하다. 아주 시끄럽고 혼란스럽고, 한 마디로 개판 오 분 전이다.

회사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고속 성장하는 스타트업은 더욱더 그렇다. 우리 투자사 당근마켓도 얼마 전에 2,000억 원 정도의 투자를 받았는데, 요새 시장에 돈이 많고, 스타트업의 혁신 속도가 시장의 유동성을 능가하기 때문에, 엄청난 밸류에이션에 엄청난 투자를 받는 한국 스타트업이 더 많아졌다. 이렇게 큰돈을 투자받은 유니콘 회사들은 기가 막힌 내부 시스템이 있고, 모든 일이 질서정연하게 진행된다고 생각한다. 실은, 겉으로 보면 이게 맞다. 돈도 많고, 이 돈으로 좋은 사람도 많이 채용하고, 물론, 큰 사업을 하고 있으니 좋은 시스템도 있다. 그래서 이런 회사가 뭔가 큰일을 하면 우린 대부분, “역시 큰 회사가 하니까 다르네” , “역시 제대로 된 회사답게 일 처리를 하네” , 뭐, 이런 말을 한다.

하지만, 현미경이 있어서, 이런 회사를 확대해서 본다면, 또는, 직접 회사로 찾아가서 회사에서 몇 시간 동안만 사람들이 어떻게 일을 하고, 어떻게 분주하게 움직이는지 관찰해보면, 이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걸 알게 된다. 겉으로는 모든 게 너무 평화롭고 질서 있게 돌아가는 회사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서 보면, 개판이다. 실은, 지옥도 이런 개판 지옥이 없다고 난 생각한다. 이런 스타트업은 주로 단 시간안에 빠른 성장을 했는데, 이렇게 빨리 성장하다보니 채용, 제품개발, 영업, 마케팅, 기획 등의 모든 일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속도로 진행된다. 이렇게 전사적인 차원에서 모든 일들이 빨리 진행되면 정말로 정신없고, 비행기를 만들고 나는 게 아니라, 날면서 동시에 공중에서 비행기를 만드는 일을 매일 매일 해야 한다. 이러다 보니, 이 과정을 아주 가까이서 보면 정말 혼돈 그 자체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개판 지옥은 좋은 의미에서의 개판 지옥이다. 그만큼 기업이 빨리 성장하고 있고, 그만큼 내부 멤버들이 지속해서 그 성장에 맞춰서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뭔가 계속 새로운 걸 시도하지 않거나, 외부 변화에 민감하게 자신을 변화하지 않는다면, 현미경으로 회사를 확대해서 봐도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울 것이다. 이런 회사는 오래가지 못하고 주로 망한다.

이제 창업해서 시드 투자를 받고, 하루하루가 새롭지만, 이 익숙하지 않은 새로움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대표들이 우리에게 항상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스트롱 회사 중 수백억 원대 가치인 회사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해결하나요? 우리같이 노가다로, 무식하게 해결하진 않겠죠?”
“당근마켓과 같은 유니콘 회사는 어떤 시스템이 있길래 기름칠 잘 된 베어링같이 잘 돌아가나요?”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항상 똑같다.
“거기도 다 똑같아요. 완전 개판입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신없어요.”

고속 성장하고 있는 우리 투자사 사무실에 갔는데, 이런 큰 포스터가 보였다. “If everything’s under control, you’re moving too slow(모든 게 잘 통제되고 있다면, 우리가 너무 느리게 일하고 있다는 의미다)”

작은 스타트업이나, 큰 스타트업이나, 잘 되고 성장하는 회사라면 모두 다 똑같이 개판이다. 위에서 말한 대로 현미경으로 보면 개판도 이런 지옥 같은 개판이 없다. 하지만, 그래서 발전이 있고, 그래서 고속 성장하는 것이다.

디지털 자산에 대한 생각 – 2021년 8월

8월은 디지털 자산 모든 이해관계자들에게 굉장히 심장 쫄깃한 한 달이었다. 레닌의 명언 중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수십 년이 있고, 수십 년이 일어나는 몇 주가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8월이 바로 이런 수십 년에 걸쳐서 일어나야 할 일이 4주 동안 일어난 기간이 아닌가 싶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역점 정책 중 하나인 1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법안이 얼마 전에 미국 상원을 통과했다. Infrastructure Investment and Jobs Act라는 법안은 지금 미국이 필요한 법안인 것 같다. 이 법안을 통해서 미국이 재원을 마련하고 – 여기서 말하는 재원은 미국인들로부터 세금을 더 많이 걷겠다는 의미다 – 이 돈으로 도로와 교량, 광대역 인터넷, 전력 그리드 등을 구축하고 강화하겠다는 내용이다. 바이든이 대통령 될 때부터 이미 모두 예상했던 방향이고, 부자들한테 더 많은 세금을 거두겠다는 것도 다 예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법안의 ‘Section 80603: Information reporting for brokers and digital assets.’라는 부분을 보면, 1조 달러 예산 중 280억 달러(=33조 원)는 그동안 비트코인과 같은 디지털 자산을 사고 팔 때 징수되지 않은 세금을 통해서 조달하겠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워낙 새로운 분야이고, 관련법도 계속 새로 만들어지고 있어서, 지금도 디지털 자산 양도세를 많은 미국인들이 내지 않고 있는 건 사실이라서 그동안 걷지 못한 세금을 징수하겠다는 정책도 이해한다.

그런데 여기엔 작은 문제 하나와, 큰 문제 하나가 있다.
일단 작은 문제는, 어떤 계산을 통해서 280억 달러라는 숫자가 나왔는지 그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있지 않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바로 어떻게, 누가, 얼만큼의 세금을 내야 하는지 결정하는 방법에 대한 부분이다. 디지털 자산을 사고파는 곳은 코인베이스와 같은 거래소이기 때문에 거래소에는 거래 기록이 저장되고, 이들이 미국 국세청에 거래 기록을 보고하면, 국세청이 세금을 징수하면 된다. 이 법안을 보면, crypto broker는 국세청에 이런 거래기록을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적혀있고, 여기까지는 괜찮은데, 이 crypto ‘broker’의 의미가 너무 광범위하게 정의되어 있다. 법안에서 정의하는 브로커에는 코인베이스와 같은 거래소도 포함되지만, 채굴업자와 소프트웨어 개발자까지 모두 포함된다. 거래소는 고객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국세청에 보고하는 게 가능하지만, 채굴업자와 개발자는 디지털 자산의 거래에 관여하곤 있지만, 거래를 하는 사용자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없기 때문에 이렇게 국세청에 보고하는 게 불가능하다. 국세청에 협조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데, 이 법안이 만약 통과되면 많은 채굴업자와 개발자들이 미국을 떠나지 않을까 싶다.

왜 브로커의 개념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정의됐을까? 법안을 만드는 공무원들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자산이나 블록체인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그냥 여기저기서 들은 소문과 내용을 기반으로, 크립토 사용자들이 탈세하고 있으니, 이번 기회에 세금을 걷자는 취지로 시작했을 것이고, 그냥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사람들은 몇 의원들이 재무부나 증권거래위원회의 입김을 받고 악의를 갖고 이 내용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실은 이 법안 자체는 2,702 페이지인데, 이 중 디지털 자산과 관련된 부분은 딱 4장이다. 제대로 보지 않았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라서, 많은 사람은 이게 그냥 슬쩍 통과시키려고 하는 날치기 법안이 아니냐는 불만도 많다.

그런데, 정부도 예상치 못한 반발에 조금 놀란 것 같다. 이번 계기로 전 세계의 디지털 자산 시장이 똘똘 뭉치고 있고, 이들은 이 법안을 개정시키기 위해서 합법적인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나 같은 일반인들도 해당 구역의 의원들에게 이 법안을 개정해달라고 하는 4만 개 이상의 전화와 문자를 보냈다고 하니 조금 놀랍긴 하다.

실은, 디지털 자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과거에는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하는 걸 항상 경험했었는데, 이번엔 오히려 대부분의 코인 가격은 오르고 있고, 이 분야에 집행되는 투자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게 정부에 대한 시장의 “엿이나 먹어라”라는 반항심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크립토 시장에 믿음이 넘쳐흘러서인지는 시간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듯 하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기 때문에 조금은 더 신중하게, 그리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서 이 법안을 개정하길 바란다. 그 누구도 디지털 자산을 통해서 탈세하고 싶어하지 않고, 합법적으로 세금을 내고 싶어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과 프레임을 만들어야지 혁신을 죽이지 않는 차원에서 세금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세계에서 가장 파워풀한 나라에서 디지털 자산 관련 법안에 대해서 이런 생산적인?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건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성숙도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