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판단

며칠 전에 미디어 커머스라는 분야를 개척한 블랭크코퍼레이션에 대한 이런 기사를 읽었다. 요약하면, 미래 유니콘 가능성이 있던 회사가 임직원의 대규모 퇴사와 이직 문제 때문에 인사관련 문제가 커지고 있고, 무분별한 사업확장으로 인해서 회사의 적자 폭이 커지고 있다는 부정적인 내용이다.

이 기사에 대한 스타트업 관계자들의 의견은 다양하지만, 내 주변 많은 분들은 대부분 “그럴 줄 알았다” , “이상한 제품 만들어서 마케팅만 하더니, 결국…” 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솔직히 나는 이 기사 내용도 그렇지만, 이런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서도 조금 불편했다. 모든 일에는 음과 양이 있고, 좋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는데, 블랭크에 대한 이 기사는 현재 회사의 상황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없이, 특정인들에게 들은 이야기와 부분적인 조사를 기반으로 쓰인 게 아닌가 싶다.

물론, 나도 블랭크라는 회사에 대해서 잘 모른다. 이 회사의 반려동물 브랜드 아르르의 제품을 몇 번 사본 것 외에는 나는 블랭크와는 그 어떠한 이해관계도 없다. 그런데, 내 경험에 의하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빙산의 일부만 보고, 그게 마치 빙산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실수를 범한다. 거기서 멈추면 좋을 텐데, 이걸 또 온 세상에 공개하고 방송하고, 소셜 미디어의 힘을 빌려, 근거가 전혀 없는 소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100% 맞는 사실도 아닌 내용을 빠른 시간 안에 퍼뜨린다. 이렇게 한 번 바이럴을 타면, 이후엔 이걸 다시 되돌릴 방법은 없다.

그동안 이런 피해를 본 회사가 너무 많지만, 우리도 아주 작은 주주인 쿠팡이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미디어의 내용과 기사가 모두 맞았다면, 쿠팡은 이미 망했어야 할 회사이다. 현금이 바닥이라는 기사, 내부 갈등 때문에 경영진이 모두 퇴사한다는 기사, 등…대부분의 기사가 완전히 근거 없진 않았지만, 상당히 많이 틀린 내용들이었고, 이런 내용이 공개되고, 급속하게 퍼지면서 파생 소문까지 만들어지고, 순식간에 쿠팡은 이제 곧 망할 회사가 된 적이 너무 많다. 현실은, 뉴욕증시에 이미 상장까지 했고, 더 잘 성장하고 있는데 말이다.

블랭크코퍼레이션의 내부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진 실은 외부인은 그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 그냥 대부분 기사 내용이 ‘카더라’ 기반으로 유추되고 만들어진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회사는 이제 어느 정도 연식이 됐고, 성장도 꽤 많이 했기 때문에, 많은 기업이 경험하는 성장통을 경험하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위 기사에서 묘사된 것 처럼 상황이 심각해서 조만간 망하는 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섣부르게 판단하고, 섣부르게 말하는 게 아쉽긴 하다.

그런데, 남의 회사에 대해서 이렇게 우리가 왈가왈부하면서, 이렇다 저렇다 할 필요도 없고, 솔직히 그럴 시간도 없다. 그냥 내 비즈니스 신경 쓰고, 내 비즈니스만 잘하면 된다.

디지털 자산에 대한 생각 – 2021년 9월

9월 한 달도 8월만큼 시끄러웠고, 많은 일이 있었다. 현재 6,500개 이상의 암호화폐가 존재하고,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그래도 시장의 상황을 그나마 가장 잘 반영하는 비트코인 가격을 보면, 9월 한 달 동안 high가 $52,000였고, low가 $41,000였으니, 변동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20% 안팎이니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엔 아직도 근거 없는 FUD(Fear, Uncertainty, Doubt)가 많이 작용했지만, 그 외에도 중국 헝다그룹 사태, 미국과 중국의 디지털 자산에 대한 규제와 압박, 특히 정부 주도가 아닌 다른 모든 디지털 자산을 불법화하려는 중국 정부의 철퇴는 이 시장 이해관계자들의 심장을 매일 매일 쫄깃하게 했다.

디지털 자산에 대한 전 세계 정부의 입장은 천차만별이다. 일단 한 극단에서는, 엘살바도르와 같이 강제로 비트코인을 자국의 화폐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이 실험은 준비가 잘 안 됐고, 대통령의 의지로만 너무 성급하게 진행됐기 때문에, 결과는 좋지 않을 것 같다. 또 다른 극단에는, 디지털 자산 관련 모든 채굴 활동과 P2P 거래를 전면 불법화 선언한 중국과 같은 나라가 있다. 솔직히, 중국이 암호화폐에 대해 이런 초강수를 두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시장은 이런 소식에 필요 이상으로 항상 크게 반응한다.

그리고 중국과 엘살바도르 양극단 사이 어디엔가 한국과 미국의 정부가 있다. 미국은 그나마 이 시장을 흑과 백으로 보는 것 같진 않지만, 정부 여러 기관의 힘겨루기 때문에 디지털 자산 정책에 대해선 이성과 논리보단 자존심과 욕심이 우선시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SEC의 수장 Gary Gensler 위원장은 이전에 MIT 교수였을 땐, 디지털 자산에 대해선 굉장히 우호적인 입장이었고, 심지어 관련 강의까지 했는데, 이제 공무원이 된 후부턴, 완전히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어서 시장의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한국 또한 뭔가 제대로 해보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보였지만, 존재하지 않던 기술과 시장을 규제하려다 보니, 모두 다 만족하는 정책과 법을 만드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훨씬 많지만, 어쨌든 이제 거래소는 서서히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문제는 이제부터 어떤 정책을 만들어서, 혁신을 죽이지 않으면서 이 시장에 질서를 가져오냐인데, 디지털 자산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 정책을 만들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과연, 이번 정부에서 이게 가능이나할지 의문이다.

전 세계 정부가 디지털 자산을 규제하는 이유는 너무 많지만, 이 싸움의 핵심은 바로 돈에 대한 파워게임이다. 생각해보면, 돈을 만드는 건 정부가 생긴 이후로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정부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권한이었는데, 갑자기 난데없이 인터넷으로 돈을 찍어내고, 정부의 규제 없이 철저히 탈중앙화된 인프라 위에서 돈이 움직이면, 이건 정부에겐 엄청난 위협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비트코인이나 다른 디지털 자산이 화폐를 대체할 수 있냐에 대해 끊임없는 논란이 있었고, 전 세계 정부에서는 이 가능성에 대해서 처음엔 비웃고 이러다가 말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규제하고 없애려 하지 말고, 더 나은 화폐를 만들 방법을 같이 고민해보는 게 정답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고민을 같이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비트코인, 암호화폐, 블록체인, 디지털 자산에 대한 깊은 이해인데, 이 부분이 항상 개인적으론 아쉽긴 하다.

어쨌든 10월도 아주 흥미진진한 한 달이 될 듯싶다.

지키는 자와 뺏는 자

얼마 전에 끝난 올해 US Open 테니스 대회는 굉장히 재미있었다. 이제 남자나 여자 테니스 세계에는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고, 이 현상은 US 오픈 최초의 10대 결승전이 벌어진 여자 테니스에서 극명하게 보였다. 시차도 있고, 한국에서는 선별적으로 경기를 보여줘서 나는 그렇게 많은 경기를 보진 못 했지만, 테니스 경기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에 대해 여기서 몇 자 적어본다.

남자 테니스는 5세트 중 3세트를 이기는 사람이 시합을 이긴다. 테니스는 육체적인 스포츠이기도 하지만, 정신력 또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수들이 2세트를 먼저 이기면, 마지막 3번째 세트도 가져가서 시합을 이긴다. 그런데 마지막 3세트를 이기는 방식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어떤 선수는 2세트를 가져간 후에도 소위 말하는 ‘닥공’ 전략으로 계속 공격하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약해진 상대방으로부터 마지막 세트를 이겨서 시합을 이긴다. 반면에, 어떤 선수는 2세트를 가져간 후에는, 지금까지 잘 한 시합을 지키고, 더 이상 점수를 까먹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이 무너지는걸 유도하는 방어적인 전략을 취한다. 위에서 말 한대로 테니스는 멘탈 게임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주로 2세트를 뺏기면, 마지막 세트도 뺏기기 때문에 이렇게 시합을 지키기 위한 플레이를 해도 주로 이기긴 한다.

하지만, 이번엔 아쉽게 남자 결승에서 패한 테니스 기계 노박 조코비치 같은 선수는 2세트를 뒤지고 있어도, 체력과 정신력이 워낙 강해서 충분히 컴백해서 오히려 3-2로 시합을 이길 수 있고, 이런 경우를 정말 많이 보긴 했다. 그래서 나는 점수와는 상관없이 테니스든 다른 운동이든, 시합이 끝날 때까진 무조건 공격하고, 지키기 위한 플레이가 아니라 뺏기 위한 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사업에서도 비슷한 면을 볼 수 있다. 나는 일 때문에 대기업 경영진과 오너들을 가끔 만나는데, 이분들의 성향도 다양하다. 어떤 분들은 이미 할아버지 대 부터 이루어놓은 눈부신 성과가 있기 때문에, 이걸 지키기 위해서 사업을 한다. 그렇다고 새로운 시도를 전혀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굉장히 신중하고 – 내가 보기엔 가끔 너무 신중하기도 하다 – 회사가 원래 하던 사업영역에서만 새로운 시도를 한다. 하지만, 이분들을 볼 때 내가 느끼는 건, 더 과감하게 변화를 시도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면서, 다른 분야에서 남이 이루어 놓은걸 빼앗기 위한 공격을 하면 더 성장하고 발전할 텐데,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걸 지키려는 방어만 하는 것 같다. 빠르게 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이런 지키기 위한 전략은 먹히지 않을 확률이 크다. 쫓아오고, 뺏으려는 경쟁사들이 워낙 무섭게 달려들기 때문에, 잃을게 많은 기업의 지키는 전략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걸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전략은 바로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는 뺏는 전략이다.

이와 반대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도하고, 다른 영역으로 진출하고, 더 좋고 더 큰 비즈니스가 보이면 이를 뺏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는 욕심 많은 경영진과 오너들이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 본인들이 이루어 놓은 건, 한 순간에 빼앗길 수 있다는걸 잘 알고, 이에 대한 두려움과 경각심을 가지면서 사업을 한다. 그리고 이걸 지키려고 사업을 하는 건 100% 지는 전략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계속 공격한다. 뺏는 자들보단 지키는 자들이 잃을게 더 많은데, 잃을게 더 많은 사람들이 항상 지는 게 경쟁이기 때문이다. 이분들은 닥공하면서 새로운 분야의 1인자들이 가진 걸 계속 빼앗으려 한다. 나는 지키는 것 보다 뺏는 전략이 이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분들과 같이 일하는걸 훨씬 더 선호한다.

나는 운이 좋다. 우리가 투자하고 같이 일 하는 분들 모두 무에서 유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분들이다. 솔직히, 이들은 지킬게 없기 때문에, 100% 빼앗기 위해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래서 이길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하다.

찰나의 순간

요새 워낙 좋은 창업가와 회사가 많아져서, 우리도 어쩔 수 없이 투자 기준 자체가 높아진 것 같다. 몇 년 전만 해도 제품도 없고, 과거 창업 경험이 전혀 없는 똑똑하고 패기 있는 팀에 자신있게 투자를 하곤 했다. 요새도 안 하고 있진 않지만, 과거만큼 많이, 그리고 빨리하진 못 한다. 우리도 투자할 수 있는 총알은 한정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너무 많은 좋은 팀들이 시장에 있기 때문에, 선별적으로 투자를 잘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VC들이 하는 게 rejection일 것이다. 많은 회사를 만나지만, 대부분의 회사에는 투자를 못 한다. 우리도 숫자를 보니, 2020년도에 약 1,000개 정도의 초기기업을 검토하고 만났는데, 실제로 투자로 이어진 회사는 50개 정도이니, 5%에만 투자를 한 셈이다. 이 숫자는 VC마다 다르겠지만, 투자하는 회사보단 투자하지 않는 회사가 더 많은 건 공통사항일 것이다.

어떤 분들은 더 많은 회사를 만나고, 더 많은 회사에 투자할수록, 더 많은 경험이 쌓이기 때문에, 투자를 더 잘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이 반대의 현상을 요새 자주 경험한다. 투자사가 몇 개 안 될 땐, 어떻게 투자하면 좋은 회사를 선택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강했는데, 오히려 이 회사들이 잘 안되고, 내가 한 판단이 대부분 틀렸다는걸 숫자로 본 후부턴, 투자를 하면 할수록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든다. 그래서 완전 초기 회사를 만나면, 미팅 후 우리 스트롱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면, “잘 모르겠네요””라는 말을 요샌 정말 많이 한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정말 이 팀이 하고 싶은걸 할 수 있을지 판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럴 땐, 우리가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내서 이분들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가지면 투자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일단은 패스하고 고민해본다. 이후에 이분들이 다양한걸 시도하면서 제품이 다듬어지고, 시장에서 반응이 생기고, 뭔가 찾은 것 같으면, 그때 주로 투자한다. 처음 만났을 때보단 기업가치는 조금 높아져서 아쉽긴 하지만, 이때 투자하지 않고 더 지켜보면, 이 회사가 이 단계를 지나서 제품이 더 좋아지고, 시장에서의 인지도가 더 높아지면, 그땐 훨씬 더 비싸지고, 최악의 경우 투자자 경쟁에서 밀려서 투자를 못 하는 경우도 있다.

즉, 완전 초기 단계와 시장에서 인지도가 생기는 단계의 중간 지점에서 투자하는 게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들의 홈런율이 가장 높아지는데, 그럼 그 미묘한 찰나의 타이밍과 기회를 어떻게 포착하는지가 관건이다. 그리고 요새 시장이 워낙 과열되어있기 때문에 이런 순간은 오래 가지 않는다.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이고, 이 찰나의 기회를 잘 포착해야지 투자할 수 있다. 안 그러면 이미 다른 투자자들이 투자한다.

이런 찰나의 기회를 잘 포착하려면, 일단 이분들과 계속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이분들이 우리에게 연락을 자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스트롱이라는 VC의 첫인상이 창업가들에게 매우 좋아야지만, 이분들이 편안하게 우리에게 자주 연락한다. 그래서 모든 미팅이 중요하고, 매사에 진지하고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이분들이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를 보내주면, 항상 진지하게 읽고, 좋은 피드백과 의견을 공유해줘야 한다. 이 과정이 지속되면, 굉장히 좋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관계가 만들어지고, 그러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는 너무 많은 회사를 만나기 때문에, 우리가 이 회사들에게 매번 “요새 어떻게 지내시나요?” , “펀딩은 어떻게 진행되나요?”를 물어볼 수가 없기 때문에, 반대로 창업가들이 우리에게 계속 정기적으로 연락해서 업데이트를 해줘야 하는 구도를 이렇게 인위적으로라도 만들어야 한다.

이후엔, 회사가 투자자들에게 많은 내용을 공유하고,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그 업데이트를 잘 읽고, 분석하고, 생각하다가, 투자할 찰나의 기회가 보이면, 그땐 투자하면 된다. 이 시점에는 이미 서로에 대한 신뢰가 구축됐기 때문에, 서로가 만족하는 조건에 투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과정이 없어서, 나중에 후회하는 분들을 많이 봤다. 창업가가 태어나서 처음 만난 VC 였는데, 이후에는 전혀 연락이 없었고, 이 VC가 미디어를 통해서 회사가 엄청난 투자를 받은 사실을 알게 되면, “아, 나 저 분 법인 만들기 전에 만났었는데, 그땐 아무것도 없었는데, 엄청난걸 만들었네. 근데 왜 나한테는 다시 연락을 안 했을까?”라는 질문을 하면서 후회한다.

안 할 이유 vs. 해야 할 이유

스타트업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뭘 더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뭘 더 안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거라는 말을 나는 자주 강조한다. 세월이 바뀌었고, 기술도 좋아졌고, 창업가들도 더 똑똑해져서, 여러 가지를 잘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졌고,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대충해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고, 한 가지만 남들보다 정말 정말 잘해야지만 그나마 성공 확률을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즉, 땅콩버터를 얇게 바르는 스타일의 사업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오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만나는 많은 팀이 너무 많은 걸 하려고 한다. 회사 자료를 보거나, 미팅을 하면, 뭔가 내용은 엄청 많은데 결국 이 회사가 하는 게 뭔지 잘 파악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전형적인 예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이커머스를 전부 다 하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를 하는 회사가 있고, B2C, B2B, B2G를 다 하는, 모든 비즈니스 모델을 시도하는 회사가 있다. 이분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어차피 다 동일한 거고, 포장만 바꾸면 된다는 내용을 항상 강조하고, 두 번째로 말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모든 걸 우리가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안 할 이유가 없으면, 무조건 하자라는 태도로 사업을 해서 잘하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 실패한다. 안 할 이유가 없다는 태도로 사업을 하면, 없는 자원을 자꾸 쪼개려고 한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하면, 안 그래도 부족한 자원을 또 분산해야 하는데, 이러면 크게 성공할 수 있는 확률 또한 분산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걸 하려는 생각 뒤에는 본인도 정확히 뭘 해야 할지 확실치 않고, 그러다 보니 이것저것 하다가 하나만 걸리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이 무의식중에 있다.

사업의 성공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고 싶다면, 안 할 이유를 찾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한다. 스스로 여러 번 물어야 한다. “이걸 지금 하는 게 우리에게 맞는 건가?” , “우리가 이걸 지금 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 지금 이 사업을 해야 할 이유가 명확하다면, 그땐 이걸 하는 게 맞다.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태도로 사업을 하면 자원을 최적화하고, 최적화한 자원을 집중한다. 이게 초기 스타트업이 그나마 성공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이 이야기는 회사가 어느 정도 규모 이하일 때 적용된다. 규모가 커지고, 사람도 많아지만, 위에서 말 한 안 할 이유가 할 이유가 되고, 이 시점이 오면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자원이 있기 때문에 다 해도 된다. 물론, 그렇다고 다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다.

안 할 이유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해야 할 이유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