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자산에 대한 생각 – 2021년 10월

10월의 가장 큰 뉴스는 아마도 최초의 비트코인 ETF 승인이 아닐까 싶다. 비트코인 ETF는 2013년도부터 SEC에 지속적으로 요청됐었는데 – 아마도 윙클보스 형제가 가장 먼저 시도했을것이다 – 그때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거절됐다. 처음엔 그냥 고려도 안 되고 바로 거절됐지만, 승인 문턱까지 갔다가 안 된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국민의 자산 보호를 위한 안전성이 그 이유로 항상 거론됐는데, 내가 보기엔 그건 그냥 핑계이고, 그때마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세력의 충돌이 일어난 게 아닐까 생각된다.

가장 먼저 승인된 건 ProShares Bitcoin Strategy ETF (BITO)인데, 시장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너무 좋다. 거래 시작하자마자 20분만에 $280M 이상이 거래됐고, 하루만에 거래량 $1B에 도달했다. ETF로서는 완전 역대급 기록이다. 나는 솔직히 비트코인 ETF를 절대로 사지 않고, 그냥 비트코인과 같은 디지털 자산을 직접 살 텐데, 다양한 이해관계와 다양한 시각을 가진 투자자들이 있고, 어쨌든 시장은 비트코인 ETF를 환영하는 것 같다. 비트코인 ETF의 승인이 갖는 더 큰 의미는, 암호화폐가 이제 메인스트림 시장에 한 발 더 가까이 왔다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번 ETF 승인을 미디어에서 상당히 크게 조명했고, ETF와 비트코인이 뭔지 모르던 대중의 관심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결과로 더 많은 일반인들이 비트코인을 알게 됐고, 비트코인을 직접 사거나 ETF를 통해서 비트코인에 간접적으로 노출되면서 이 시장은 이제 더 커질 것이다.

이미 비트코인 가격은 이런 시장의 동향을 반영하고 있다. 6만 달러를 넘었고, 한때는 $66,000로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물론, 비트코인 가격은 앞으로도 계속 FUD를 반영하면서 요동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가격이 단일 척도가 될 순 없겠지만, 그동안 수많은 압박과 규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잡초같이 버티면서 죽지 않고 계속 커지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정말 비트코인을 시작으로 많은 디지털 자산이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진입하는 건 시간문제일 거라는 확신이 든다.

호기심, 기술, 그리고 발전

날이 갈수록 정신없고, 복잡해지는 이 세상에서 나는 가끔 스스로 이 질문을 한다. “기술의 진보로 인해서 인류가 정말로 발전하고 있긴 한 건가?”

기술에 투자하고,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창업가들에게 투자하는 사람으로서 “YES”라는 답을 바로 해야 할 것 같지만, 오히려 더 곰곰이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가끔, 나 또한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더 복잡해져서 삶의 질 자체가 떨어졌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메일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결론은 기술로 인해서 인류가 발전했고,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눈부신 기술의 발전의 시작은 호기심이라고들 한다. “왜 이게 안 될까?” , “왜 항상 우린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해야 할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뭐 이런 종류의 질문으로 시작한 호기심으로 인해 다양한 고민과 연구가 시작되고, 이런 고민과 연구가 엄청난 기술과 비즈니스가 되면서, 이로 인해 세상이 더 좋은 곳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데에는 나도 동의한다. 대부분의 창업 동기, 그리고 창업가와 일반인들을 구분하는 큰 특징 중 하나가 이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호기심이 비즈니스가 되어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선, 기술이 필수라고 생각해서, 반대로 기술이 없다면, 호기심 자체가 생기기 어렵다는 생각도 요샌 하고 있다. 얼마 전에 내가 이런 기사를 읽었는데, 매우 흥미롭게 봤다. Biological reprogramming이라는 시도를 하는 스타트업에 대한 기사인데, 생명공학을 이용해서 사람의 세포를 프로그래밍하고 수정해서 수명을 연장하는, 마치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그런 일을 하는 회사에 대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 회사의 창업가들이 세포를 새로 프로그래밍해서 인간의 수명을 무한연장시킬 수 없겠냐는 호기심을 갖게 된 동기는 바로 이걸 가능케 하는 기술이 어느 정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공상과학소설 작가들도 호기심과 상상력이 있었지만, 이런 시도를 실제로 하지 못하고 글로만 표현했던 이유는 당시엔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젠 정말 호기심과 상상력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시도를 할 수 있는데, 그 정도로 기술이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서, 우리가 그동안 상상만 해왔던 미래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호기심이 계속 생길 것이고, 호기심과 기술이 서로에게 플라이휠 같은 영향을 미치면서 계속 인류는 발전하리라 생각한다.

율립 2.0

yulip website

이미지 출처: 율립 웹사이트

클린 뷰티를 지향하는 우리 투자사 율립에 대해서는 내가 전에 여러 번 이 블로그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실은 우리가 투자하기 전부터 이 회사와 팀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하고자 하는 비전에 많은 공감을 했는데, 원혜성 대표님이 아주 오랫동안 준비한 야심 찬 프로젝트가 곧 launch하고, 이번에도 이 내용을 공유하고 싶다. 솔직히, 우리 투자사라서 홍보 차원의 글이기도 하지만, 심각한 환경 위기에 직면한 지구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영감을 줄 수 있는 좋은 프로젝트이자 제품이라고 믿고 있다.

율립(YULIP)이라는 회사와 제품의 이름부터 자세히 보자. ‘율립’ 사명은 창업자 원혜성 대표님의 딸 율희와 립스틱을 합성한 말이다. 그만큼 이 회사의 이름에도 엄청난 고민과 철학이 담겨 있다. 2017년도에 창업된 율립은 “립스틱을 다시 생각하다”라는 슬로건으로 립스틱에 들어간 유해성분을 없애고, 인체에 무해하고 환경에도 무해한 레시피로 판매가 시작됐다. 말은 좀 거창하긴 하지만, 내가 아는 그 어떤 클린 뷰티 회사보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고, 수년 동안 내가 옆에서 이걸 지켜봤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노력을 해도 충분하진 않았다. 일반 화장품, 특히 립 제품의 경우 재활용되지 못하면 소각되거나 매립되는데, 이렇게 되면 절대로 썩지도 않고 미세 플라스틱을 재생산하면서 환경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 “이 작은 립스틱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지만,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많은 립스틱이 해마다 버려진다. 내가 살면서 사용하고 버린 립스틱이 내가 죽은 뒤에도 지구상에 아주 오랫동안 남아 있으면, 이건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탄생한 게 율립 2.0이다. 지구에 영원히 남지 않고 서서히 분해되는 생분해 소재로 만든 케이스와 지속가능한 립스틱 심지가 율립 2.0의 핵심 포인트인데, 지금 율립 웹사이트에서 미리 알림 신청하면, 제품 판매 시작하면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율립 2.0의 탄생 배경과 디자인에 대한 자세한 설명 또한 웹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다.

Beauty that Co-exists. 율립 2.0 많이 기대된다.

교두보

전 세계가 오징어 게임에 난리가 났다. 개봉하기 전에 서울 여기저기서 택시와 버스에 오징어 게임 광고가 자주 눈에 띄었는데, 이름도 이상했고 익숙한 내용이라 그냥 웃고 넘겼었는데, 이게 이런 글로벌 히트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드라마 딱 9편만으로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콘텐츠가 될 기세이다. 실은 나는 아직 이 드라마를 못 봤지만, 관련 기사는 엄청나게 많이 읽었고, 이런 드라마를 만든 황동혁 감독과 한국 배우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드라마를 전 세계인에게 선보인 넷플릭스도 정말 대단한 회사라고 생각한다.

여러 기사 내용을 종합해보면, 황감독이 오징어 게임 아이디어를 생각한 건 10년 전인데, 그동안 한국의 투자자와 배우들은 내용이 너무 잔인하고 뻔해서, 흥행 못 할 거라고 하면서 모두 투자와 출연을 거부했는데, 이걸 넷플릭스가 픽업해서 투자하고 훌륭하게 배급해서 성공했다고 한다. 요새 워낙 OTT 전성시대라서 넷플릭스도 이제 끝났다고 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는데, 회사의 주가는 계속 상승하고 있고, 오리지널 콘텐츠의 수준은 더욱더 높아지고 있는데, 여기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는 게 한국이라고 한다. 실은, 이 사실은 한국에 살고 있고, 한국의 콘텐츠를 계속 접하고 있는 나로서도 놀라운 일이긴 하다. 한국은 너무 유치하고 진부하고 예측가능한 콘텐츠만 생성한다는 오래된 기억과 편견이 있어서 그런지, 그동안의 한국 콘텐츠의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나를 비롯한 많은 한국분들이 놓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트렌드를 넷플릭스는 2010년 초반부터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5년 동안,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에 약 8,000억 원 이상의 투자를 했는데, 이 금액은 우리보다 시장이 훨씬 더 크다고 알려진 인도시장에 투자한 금액의 두 배 이상이라고 한다.

같은 돈을 투자해서, 같은 수준의 콘텐츠를 만들어도, 넷플릭스가 아니라 다른 플랫폼이었으면, 오징어 게임이 이렇게 성공적으로 전 세계인의 디바이스와 화면을 통해서 알려졌을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좋은 콘텐츠의 가능성을 미리 알아본 선견지명, 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결국 만들어진 좋은 콘텐츠, 그리고 다른 언어로 만들어졌고 다른 나라의 배우가 나오는 콘텐츠지만 글로벌 시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글로벌 유통파워가 그 누구보다 좋은 플랫폼의 힘이 합쳐져서 탄생한 아주 기발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넷플릭스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지만, 내가 보기엔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진출과 성공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건 스트롱벤처스가 한국 스타트업을 위해서 하고 싶은 역할이기도 하다. 우리도 9년 전부터 한국 스타트업의 가능성을 보고 미국 펀드로서 투자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꽤 많은 회사에, 꽤 많은 금액을 투자했다. 물론, 모든 스타트업이 오징어 게임만큼의 성공을 거두진 못 했지만, 몇 개는 해외로부터 큰 투자도 받으면서 상당히 큰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내가 보기엔 이런 교두보 역할을 많은 분들이 하고 싶어 하지만, 누구나 다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한국 시장도 잘 알아야 하고, 외국 시장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가지 예로, 한국 영화관에서는 이제 외국 영화의 더빙은 사라진 지 오래됐다. 대부분 한국 시청자는 외국 배우들의 오리지널 목소리를 선호하고, 한국인은 어릴 적부터 글을 읽는 교육을 잘 받았기 때문에, 자막처리를 해도 불편함 없이 잘 읽으면서 영화 내용을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조금 다르다. 미국인은 글을 읽는 교육이 잘 안 됐기 때문에 영화를 자막처리하면 내용 자체를 잘 소화하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미국인들은 오히려 더빙을 선호한다. 넷플릭스는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었고, 넷플릭스 사용자들의 취향을 이미 데이터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맞춰서 자막과 더빙을 알아서 추천했다고 한다. 사소한 것이지만, 오징어 게임의 미국 성공에는 크게 기여한, 현지 시장을 잘 모르면 하기 어려운 그런 디테일이다. 한국 스타트업의 해외 교두보 역할을 하는 VC도 이러한 이유로 양쪽 시장을 매우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가장 한국적인 것을 가장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많은 분의 노력으로 인해서 이제 한국이 정말로 글로벌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걸 요새 많이 느끼고 있다. 어쨌든 자랑스러운 순간이다.

길을 찾는 사람들

얼마 전에 어떤 중견기업 분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 굉장히 좋은 질문들을 많이 하셨는데, 스트롱은 기투자한 회사가 망하고, 그 창업가들이 다시 창업하면 다시 투자하는지, 만약에 한다면 왜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어서 이 부분에 대해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

우리가 투자했는데 첫 사업은 실패했지만, 이후 재창업하는 창업가들한테 가급적이면 다시 투자하는 전략을 갖고 있다. 회사가 망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다. 1차원적으로 보면, 그 책임은 대표이사에게 있고, 어쨌든 대표가 방향을 잘 제시하지 못했고, 실행을 못 했고, 결국 대표가 사업을 못 해서 회사는 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걸 조금 더 깊게 보면, 실은 대표와 경영진의 큰 실수 때문에 사업이 안 된 것 보단, 사업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할 수 있고, 대부분 하는 그런 작은 실수와 그릇된 판단이 쌓이고, 이런 실수를 감싸줄 수 있는 자금을 적시에 확보하지 못했고, 그리고 여기에 운과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망하는 그런 경우가 가장 많다.

우린 이런 걸 워낙 많이 봤다. 성공한 모든 사업의 뒤에는 뛰어난 대표이사와 경영진이 있다. 물론, 운과 타이밍도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실패한 모든 사업의 뒤에 능력없는 대표이사와 경영진이 항상 있진 않다. 오히려 실패한 사업도 보면 아주 뛰어난 대표이사와 경영진이 있지만, 운과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이분들은 성공으로 가는 길을 당시엔 못 찾았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은, 잘하는 창업가라면 결국엔 이 길을 찾는다는 것이다. 운 좋은 분들은 한 번에 이 길을 찾지만, 그렇지 못해도, 3~4번 정도 시도하면 결국엔 길을 찾는다.

이런 이유로 스트롱에서 한 번, 또는 두 번 투자한 창업가지만, 실패하더라도, 기꺼이 다시 투자할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 절대로 안 될 것 같은 비즈니스를 되게 만드는 분들을 많이 봤고, 보이지 않는 길을 어떻게 해서든 찾는 분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이분들을 지원해주면 결국엔 성공 방정식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실패하고 재창업하는 스트롱 대표들에게 무조건 투자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전 사업에 실패한 원인이 너무나 명확하게 대표이사의 큰 판단 미스이고, 이분의 성향 자체가 그런 큰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면, 다시 한번 고려한다. 그리고 위에서는 내가 이분들이 언젠가는 길을 찾는다고 했는데, 길을 찾는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린다면 – 예를 들어, 50년 – 우리 같은 투자자가 다시 투자하긴 좀 힘들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