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 기부

작년에 한국에서 가장 성장을 많이 했고, 가장 많이 사랑받은 앱 중 하나가 우리 투자사 당근마켓이다. 현재 MAU 1,200만 이상이고, 내 주변 많은 분이 오히려 쿠팡 같은 쇼핑앱보다 더 자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는 국민 앱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인기가 많은 서비스이다.

나는 당근마켓을 매일 사용하는 헤비유저는 아니지만, 그래도 집에 있는 물건을 정기적으로 올려서 판매만 하는 라이트 셀러이다. 작년에도, 오랫동안 쓰지 않았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쓰지 않을 물건들을 판매한 재미가 쏠쏠했다. 이렇게 돈이 들어오면 주로 그냥 맛있는 거 사 먹거나, 스타벅스 커피 마시는 데 다 사용했는데, 올해는 와이프의 제안으로 이 돈을 의미 있는 곳에 기부하기로 했다. 어차피 평생 사용하지 않거나, 아니면 나중에 버릴 물건들이었는데, 누군가는 유용하게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고, 여기서 발생하는 돈은 그냥 보너스라고 생각하니, 이걸 흔쾌히 기부할 수 있었다.

사진 2020. 12. 30. 오후 6 34 30

작년 한 해 당근마켓 판매로 우리 가족이 번 돈이 208,000원이었는데, 여기에 다시 208,000원을 우리가 매칭해서, 총 416,000원을 사단법인 동물권행동 카라에 기부했다. 매우 뿌듯했고, 앞으로도 계속 당근마켓 통해서 번 돈을 매칭해서 카라에 기부하기로 했다.

부자가 된 느낌이다.

코비드19 소비 행태의 변화

친구가 보내준,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서 작년 12월 발행한 ‘코로나19가 가져온 소비 행태의 변화’라는 자료를 읽었다. 전체 자료는 여기서 받아 볼 수 있다. 2020년 1월 부터 10월까지의 신용/체크카드의 업종별 월별 매출 데이터를 2019년 동기간과 비교해서 코비드19 기간 동안 어떤 업종의 매출이 얼마큼 증가 또는 감소했는지를 간략하게 보여주는 도표가 많아서 꽤 재미있게 봤다.

예상했듯이 여행과 숙박 업종의 매출 감소가 가장 컸고(이 그래프를 보는 거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공연장과 같은 다중 문화 시설과 항공사 등의 매출 감소 또한 컸다. 흥미로웠던 건, 코로나 확진자 수에 따라서 매출 증가/감소폭이 비슷한 추세로 변화한 업종들이 있었는데, 예식업과 학원과 같은 교육업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밖으로 사람들이 못 나가니까, 홈술과 홈쿡과 같이 집에서 할 수 있는 업종의 매출이 매우 크게 성장했고, 편의점과 같은 홈과 가까운 채널 또한 코비드19 기간 동안 매출이 많이 증가한 걸 숫자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페이지는 자료의 마지막 부분에서 발췌했는데, 코비드19로 인한 매출액 증감 상위 업종이 나열되어 있다.

covid19 hana

이미지 출처: 코로나19가 가져온 소비 행태의 변화 /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우리 같은 투자자, 또는 창업가는 작년에 매출이 증가한 상위 업종을 기반으로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할까, 아니면 매출이 감소했으니까, 앞으로 반등할 가능성을 보고 매출이 감소한 상위 업종에 집중해야할까?

2021년도 혼란스러운 한 해가 될 것 같다.

배움의 한 해

2020년도와 팬데믹은 우리가 죽은 후에 역사책에 길이 남을 큰 사건이고, 후손들은 이 기록을 읽으면서, 그때 그런 일이 있었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코비드19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할 말이 많고, 나도 블로그를 통해서 여러 번 언급했는데, 어쨌든 작년은 바이러스의 한 해였음이 틀림없다.

투자자로서 작년 한 해는 나에게 배움과 겸손의 한 해였던 거 같다. 다른 VC는 모르겠지만, 나는 투자를 하면 할수록, 그리고 경험이 쌓일수록, 자신감이 생긴다기보단, 그냥 계속 겸손해지는 것 같다. 2019년도 그랬고, 2020년도 그랬는데, 이상하게 투자는 하면 할수록 내 예상과는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 수학 공부는 하면 할수록 점수가 오르고, 숫자의 오차가 줄어들고, 뭔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는데, 작년 한 해 동안 그렇게 많은 투자를 하면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걸 나는 몸으로 배웠던 것 같다.

일단 가장 대표적인 건 코비드19이다. 2019년 4분기부터 전문가들이 2020년의 트렌드, 뜨는 기술, 지는 기술에 대해 나름의 예측을 발표했고, 많은 분이 이걸 귀담아들으면서 사업계획을 세우고 수정했다. 그런데 작년에 이 계획대로 사업을 하신 분은 거의 없다. 우리도 나름 2020년 투자 계획을 세우고, 되도록 이 계획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뒤돌아보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비행을 하면서 비행기를 조립했던 것 같다. 이렇게 힘든 상황이 온다는 걸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는데, 역시 시장은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큰 배움이었다.

그리고, 2020년에도 엄청 잘 될 것 같았던 회사들이 의외로 고전을 면치 못했고, 망할 게 거의 확실하거나, 잘 안될 게 확실해서 전혀 기대 안 했던 회사들이 결국엔 승자로 한 해를 마무리한걸 보고 다시 한번 겸손해질 수 있었다. 역시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대로 안 흘러가고, 거의 반대로 굴러간다는 걸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완전히 망했다고 생각했던 회사가 갑자기 살아나는 신박한 경험을 지금까지 몇 번 하긴 했지만, 실은 잘 안되는 회사는 계속 잘 안 된다. 그리고 이 중에서 이제 그만하겠다고 하는 곳들이 조금씩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대표님들에게 “조금만 더 해보시죠…”라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마음속으로만 말했다. 이 또한 내가 남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이젠 잘 알고 있다. 이 또한 큰 배움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VC는 투자할수록 겸손해진다. 더 많이 투자할수록, 더 많은 돈을 관리할수록, 더 많은 사람과 일 할수록, 내가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는 걸 계속 깨닫기 때문이다. 많은 걸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스트레스도 많이 받지만, 오히려 많이 배우고 있기 때문에, 이 업이 좋다. 작년 한 해 동안 정말 많이 배웠고, 올해도 많은 넘어짐과 배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나는 이미 실수로 한 해를 시작하고 있다.

선발 주자의 저주

어떤 시장이든 이 시장에서 가장 먼저 새로운 시도를 한 선발 주자는 이후에 시장에 진입하는 후발 주자보다 거의 항상 유리한 입지를 갖게 된다. 너무 당연하지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면서 따라오면 경험과 지식, 새로운 시장에 대한 네트워크, 그리고 남들이 모르는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가장 먼저 채용할 수 있는 유리한 입지 등이 이런 선발 주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런데, 이런 논리라면, 대부분 산업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선발주자가 현재 시장의 1등이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진 않다. 우리가 잘 모를 뿐이지, 많은 시장에서 현재 선두주자가 이 시장에서 그 비즈니스를 가장 먼저 시도했던 first to market 회사가 아니다. 오히려 후발주자들이 선발주자보다 훨씬 더 비즈니스를 잘해서, 현재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왜 그럴까?

사업은 무엇을 하나보단, 누가 이걸 하냐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후발 주자 팀이 더 뛰어났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가장 크긴 하다. 그런데 이건 너무 뻔한 이유이고, 여기에는 내가 선발 주자의 저주라고 하는 것도 적용되는 것 같다. 주로, 아주 오랫동안 변화가 없던 분야를 자세히 보면, 이 시장의 새로운 기회를 그 누구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변화가 없던 건 아니다. 오히려 변화의 기회는 많고, 누가 봐도 이 기회가 보이지만, 오랫동안 변화가 없었다는 건 이 시장에는 단시간 안에 바꿀 수 없는 관행, 오래된 규제와 법, 그리고 가끔은 이기기 힘든 권력과의 유착 등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시장에서 누군가 새로운 걸 시도해보면, 시장의 반응은 대부분 “거긴 원래 그래. 안 될 거야.”로 종결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이런 분야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많이 일어나고 있고, 젊은 창업가들이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동안 변화가 없는 시장에서 기술과 자본을 잘 이용해서 혁신을 일으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이런 분야에서 사업을 시작하고, 장애물 없이 잘 운영하려면, 혁신적인 기술, 좋은 플랫폼, 깔끔한 UI/UX나 창의적인 마케팅 이전에, 사람의 개입과 수작업이 많이 들어가야지만 위에서 말한 규제, 법, 관행 등을 해결할 수 있다. 이런 작업이 가끔은 수년이 걸리고, 가끔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플레이어들은 백기를 들고 후퇴하기도 한다. 그런데 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건 선발주자들이다. 그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 시간과 많은 돈을 투입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오래된 비즈니스 방식과 관행을 조금씩 개혁한다.

이 순간에 발 빠르고 똑똑한 후발주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선발주자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가, 머리보단 몸으로, 그리고 시스템보단 사람과의 관계로 해결해야 하는 업계의 오래된 방식이 어느 정도 해결되는 게 감지되면, 그때 이들이 아주 빠르고, 가끔은 더 많은 자본을 갖고 치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아주 오랫동안 산업의 방식이나 프로세스가 바뀌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비즈니스 기회가 많다는 의미인데, 아무도 혁신을 시도하지 않은, 또는 못 한 가장 큰 이유를 선발주자가 고생하면서 해결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선발주자는 많은 경험과 비즈니스 노하우를 습득했고, 이거 자체가 해자가 되는 경우도 많긴 하지만, 그렇지 않고 본인들이 아주 고생해서 닦아 놓은 고속도로에 다른 회사가 들어와서 요금소를 만드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개발력과 기술력의 진정한 힘이 발휘된다고 생각한다. 선발주자가 계속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는 기술력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본인들이 산업의 오래된 관행을 바꾸고, 여기에 새로운 시스템까지 만들었다면 후발주자가 시장의 리더십을 빼앗는 건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만약 선발주자가 기술력이 전혀 없고, 그동안 그냥 열심히 발품 팔았다면, 기술력이 있는 후발주자가 바로 치고 앞으로 나가는 걸 막긴 정말 힘들다.

그래서 나는 산업을 불문하고, 이런 선발주자의 저주를 피하려면 사업 초반부터 기술과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선발주자들의 행보를 잘 보고 있다가, 후발주자의 배에 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The Startup Bible – 2020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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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jfactory / 크라우드픽

해마다 12월 마지막 주에는 한 해 동안 쓴 글에 대해 정리를 하는데, 마침 오늘이 2020년 마지막 날이라서 이 블로그의 한 해를 정리해본다.

2020년에 난 100개의 글을 – 이 글 포함 – 올렸는데, 이는 3.7일에 한 번씩 블로깅을 한 셈이다. 매주 월요일, 그리고 목요일 포스팅을 하니까, 이 수치는 항상 같다. 100개의 포스팅을 읽기 위해서 The Startup Bible 블로그를 방문한 분은 총 209,450명이다(오늘 방문객 제외). 월평균 17,454명, 하루평균 574명이 방문한 셈이다.

2020년도에 가장 많이 읽힌 Top 10 글은 다음과 같다:

1/ 스트레스 테스트
이 포스팅은 작년에 두 번째로 많이 읽혔던 글인데, 올해는 압도적으로 가장 많이 읽혔다. 모두가 원하는 J 커브 성장을 위해 많은 창업가가 투자금의 많은 부분을 페이스북, 구글, 그리고 네이버에 마케팅비로 집행한다. 성장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계속 이렇게 돈을 쓰는 마케팅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쓴 글인데, 꽤 많은 창업가가 공감한 것 같다.

2/ 한국인들의 7가지 실수
이 포스팅은 2018년도에 두 번째로 많이 읽힌 글이고, 그전에도 꾸준히 읽혔던 all-time 베스트/스테디 글이었는데, 작년에는 20위 권 밖으로 밀렸다가 올해 다시 2위로 올라왔다. 2010년도 9월에 썼으니까, 10년이 넘은 글인데, 내용을 보면 아직도 대부분 공감이 간다. 특히 이메일 주소 부분은. 그리고 이 글은 스타트업 바이블 포스팅 중 가장 많은 댓글이 달린 글인데, 200개가 넘는다. 이 댓글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생각이 공존한다는 걸 스스로 상기시킨다.

3/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극단적 조치
2020년은 코비드 19 때문에 혼란스러웠고,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 모두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회사 망한다는 각오로 사업에 임했던 한 해였다. 내가 2008년도 미국에서 뮤직쉐이크를 할 때도 글로벌 금융 붕괴라는 큰 위기가 왔었고, 그전에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힘든 결정을 어쩔 수 없이 여러 번 했었는데, 당시 내 경험, 생각, 그리고 행동을 공유한 글이다.

4/ 스톡옵션 개론
꽤 오래전인 2014년 10월에 쓴 글인데, 올해 많이 읽혔다는 건 그만큼 스톡옵션에 관한 관심이 한국도 많다는 의미인 것 같다. 전에는 스타트업에 취직하는 분들이 현금을 선호했었는데, 이제 한국 분들도 스톡옵션을 많이 선호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참고로, 5위와 6위 글도 스톡옵션 관련 내용이다.

5/ 직원들의 스톡옵션
이제 한국도 스타트업이 서서히 대세가 되면서, 대기업을 포기하고 힘든 스타트업에 조인한 직원들이 스톡옵션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표이사의 입장에서도 코파운더가 아닌 일반 직원들에게 부여하는 스톡옵션은 항상 애매하다. 이런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글이다.

6/ 스톡옵션 가격
이 내용도 많은 창업가와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분들이 즐겨 읽었다. 스톡옵션의 가격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많은 분이 궁금해하는데, 이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참고로, 작년에도 6위였는데 올해도 6위다.

7/ 콜드콜하기
아무도 모르는 스타트업의 제품을 잠재 고객에게 영업하기 위한 가장 어렵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한 콜드콜. 특히 B2B SaaS 제품을 만들어서 기업고객에게 영업하는 스타트업에게 필요한 콜드콜 전략에 대한 글.

8/ 1등 마케팅
가장 완벽한 제품, 그 제품 자체가 최고의 마케팅이라는걸 보여주고 있는 스타벅스의 마케팅 관련 이야기. 스타벅스 광고를 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스타벅스는 광고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9/ 개밥 핥아먹기
미국의 우리 투자사 Polydrops 이야기. “창업가들이 자신들의 제품을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사용하고 있나?”라는 질문을 할 때마다 항상 생각나는 회사이다.

10/ 수평적 vs. 수직적 마켓플레이스
인터넷이 대변할 수 있는 가장 확장성 있는 비즈니스가 수요와 공급을 매칭해주는 마켓플레이스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모든 걸 다하는 수평적 마켓플레이스와 한 가지만 파고드는 수직적 마켓플레이스에 대한 이야기.

이상 2020년에 가장 많이 읽힌 글 10개였다. 이런 순위 매기기에 나는 별로 관심은 없지만, 해마다 이 포스팅을 하다 보면, 왠지 한 해가 잘 정리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내년에도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