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바이블 QA

가격 인상

어떤 스타트업은 출시하는 날부터 서비스를 유료화하고, 어떤 스타트업은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다가 한참 후에 유료로 전환한다. 시점은 모두 다르지만, 어느 시점부턴 돈을 벌어야 하므로 어떤 형태로든 유료화 정책을 도입한다.

서비스를 유료화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바로 가격 정책이다. 도대체 시장은 우리 서비스에 대한 willingness to pay가 있을지, 만약에 있다면 과연 얼마까지 지불할 의향이 있을지, 그리고 가장 높은 매출과 건강한 매출 성장을 위해서 우리 제품의 가격은 얼마로 책정해야 하는지. 이건 정말로 어려운 주제이다. 어려운 주제라서 그런지 가격 책정에 대한 경제학 이론도 상당히 많고, 경제학과나 경영대학원에서 pricing 관련된 수업들도 꽤 많이 제공한다.

우리 투자사들도 가격 책정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우리와도 관련해서 상의한다. 어떤 회사는 서비스를 출시하자마자 유료 정책을 고집하지만, 대부분 무료 서비스를 6개월~12개월 정도 운영하면서 제품에 대한 고객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어보고, 버그가 있으면 고치고, 돈을 받기 위해서 고치거나 추가해야 하는 기능에 대한 시장의 피드백을 충분히 수용한 후에 유료 전환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들은 워낙 초기라서 위에서 말한 경영, 경제학적인 가격 책정 이론을 적용하기보단, 그동안 잠재 고객들과 해 온 대화와 이미 비슷한 분야에서 많은 고객을 대상으로 괜찮은 매출을 만들고 있는 다른 스타트업의 가격 정책을 참고해서 서비스와 제품의 가격을 결정한다.

이렇게 가격을 책정하면 아주 이상적이고 완벽한 가격이 나올 수도 있지만 대부분 너무 비싸게 책정하거나 너무 저렴하게 책정한다. 너무 비싸게 책정했다면, 적당한 기회와 타이밍에 가격을 내리면 된다. 제품과 서비스를 사는 고객의 입장에서는 더 싸게 살 수 있다면 이건 불평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가격을 너무 싸게 책정했다면, 가격 인상을 해야 하는데,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초기에 제품의 가격이 싸게 책정됐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물가가 올라도, 고객의 입장에서 가격이 오르면 거부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한 번 책정된 가격은 내릴 순 있어도 올리는 건 거의 불가능하니, 처음에 가격 책정을 잘해야 한다는 불문율을 항상 명심한다.

올해는 우리의 많은 투자사들이 가격이나 수수료를 인상했다. 어떤 곳은 5% 정도로 소폭 인상했지만, 그 이상으로 인상한 곳들도 있다. 실은 이들이 가격을 인상한 건, 복잡한 계산과 분석을 해보니까 가격이 너무 낮게 책정됐었기 때문이 아니라, 굉장히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가격과 수수료를 올렸던 것이었다. 회사에 돈은 없고, 어느 정도 스케일에 도달하기 전까진 투자금으로 성장을 해야 하는데 투자 또한 못 받았기 때문에 고강도의 비용 절감과 구조조정을 했지만, 그래도 마이너스 상황을 극복하지 못했고, 더 이상 비용 절감은 못 하니까 오히려 매출을 증가하기 위한 방법으로 가격을 인상하고, 이전에 받던 수수료 또한 인상했다.

평소 같으면 이렇게 가격이나 수수료를 인상하기 전에 상당히 많은 고민과 분석을 하고, 꽤 오랜 기간 동안 시장의 반응을 테스팅하는 과정을 거치겠지만, 이렇게 시간을 끌었다간 회사 자체가 없어질 위험이 너무 커서 그냥 단호하게 결정하고 바로 가격 인상을 실행에 옮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회사의 경영진이나 투자자들 모두 걱정이 컸다. 멀리 보지 않고, 나만 개인적으로 보더라도 내가 즐겨 먹거나 사용하는 제품의 가격이 갑자기 오르면 굉장히 불쾌하고 최악의 경우 서비스에서 탈퇴할 것이기 때문에 가격을 인상하는 게 정말 최선의 선택인지 여러 번 고민하고 이야기했다. 결론은, 이게 최고의 선택은 아니지만, 이 선택마저 하지 않으면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어서, 결국엔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막상 우리가 우려했던 고객의 이탈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실은 놀랄 정도로 부정적인 반응이 없었고, 기존 고객들은 인상된 가격으로 서비스를 계속 사용했고, 결과는 우리 투자사들의 손실의 극적인 감소, 심지어는 손익분기와 흑자전환의 계기가 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고가 정책을 사용하거나, 가격 인상을 조금 더 빨리할걸이라는 후회까지 할 정도로 그동안 더 벌 수 있었던 돈을 벌지 않았던 것에 대해 아쉬움이 생기기도 했다.

이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니, 1/ 우리 투자사가 처음부터 가격을 너무 낮게 설정, 2/ 처음에는 적당하게 설정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제품의 질이 좋아져서 시장에서 기꺼이 사용료를 더 지불할 의향이 생김, 3/ 고객의 습관이 될 정도로 너무 깊게 제품이 침투했고, 완전히 락인(lock-in) 되면서 그냥 돈을 더 내고 계속 사용, 이 중 하나인 것 같은데, 어쨌든 모두 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투자사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인상했지만, 지금 투자금도 충분히 있고, 돈도 어느 정도 벌고 있는 창업가들도 주기적으로 우리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재평가하고 올릴 수 있다면 올리는 걸 권장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 회사의 생존을 위해서 가격을 올릴까 말까 고민하는 창업가가 있다면 그냥 과감하게 올려보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그렇다고 그 어떤 사전 공지도 없이 그냥 인상하진 말고, 시간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가격 인상에 대한 사전 공지를 충분히 하길 바란다.

오래 가는 해자

얼마 전에 돈으로 해자(垓字)를 만드는 전략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자본이 해자가 되는 게 가장 바람직한 전략은 아니지만, 남들보다 더 빨리 사용자를 많이 모아야지만 비즈니스 모델이 작동하는 플랫폼과 같은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면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는 포스팅이었다. 아마도 매크로 경기가 좋아지기 시작하면 돈으로 해자를 만드는 전략이 다시 유행할지도 모르고, 이게 유행이 되면 무분별한 자본의 해자는 또다시 무너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럼,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변해도 항상 경쟁사보다 한 발 또는 두 발 앞서는 기업들은 어떻게 남의 돈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만의 해자를 만들어서 차별화에 성공할까?

최근에 내가 정말 오랜만에 두 개의 미국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 한 3년 만에 사용한 듯 – 이런 지속 가능한 해자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가 미국의 ‘당근마켓’인 개인 간 중고 거래 플랫폼의 원조 Craigslist였다. 1995년에 창업했으니 이제 거의 30년 된 회사인데, 이 서비스 UI와 UX를 보면 아직도 3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요새도 이렇게 촌스럽고 낙후된 UI를 사용하는 서비스가 있다는 사실도 매우 놀라운데, 아직도 미국에서는 절대다수가 크레익스리스트를 통해서 중고 거래를 한다는 사실은 정말 쇼킹하다. 비상장 스타트업이고 투자도 안 받았기 때문에 수치를 공개하지 않지만, 이 사이트의 MAU는 2.5억으로 알려져 있다. 당근마켓의 13배 이상의 트래픽이다. 이런 후진 UI를 아직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매우 좋아하고, 만족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놀랍다.

오랜만에 이용해 본 두 번째 서비스는 eBay이다. 이베이 이야기를 하면 “누가 아직도 이베이를 사용해?”라고 하는 분들도 많지만, 아직도 매달 1억 명 이상이 이베이를 애용하고 있다. 크레익스리스트와는 다른 면에서 너무 정신없는 UI와 UX의 대명사가 된 이베이지만, 아직도 매달 수억 명의 사용자들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물건을 사고팔고 있다.

생각해 보면, 크레익스리스트와 이베이만큼 겉으로 보면 단순하고 시장이 큰 비즈니스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무수히 많은 경쟁사들이 등장했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비슷한 플랫폼과 서비스가 전 세계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 어떤 새로운 회사가 돈을 아무리 써도 이 두 회사가 만든 견고한 해자를 무너뜨리긴 쉽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시장과 고객의 오래된 신뢰를 기반으로 해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두 회사 모두 수십 년 동안 수억 ~ 수십억 명의 고객을 상대하면서 신규 경쟁사들은 경험하지도 못하고, 상상하지도 못하는 다양한 상황을 경험했고,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다양한 이슈를 개선했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고객 한 명 한 명의 신뢰를 얻었고, 고객 한 명 한 명의 신뢰가 시장의 신뢰로 발전하면서 서비스와 비즈니스 모델은 더욱 견고해졌다. 이렇게 신뢰를 기반을 만들어진 해자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자본으로 만드는 해자는 상당히 무섭고 위협적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단단한 해자는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시장의 신뢰와 고객의 신뢰라고 생각한다. 이런 신뢰는 하루 만에 만들 수 없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product iteration과 가설 검증을 해야 하고, 아주 작은 디테일에 신경 쓰면서, 아주 작은 것들을 잘 챙겨야 한다. 이런 작은 접점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누적되면 돈의 핵폭탄을 투척해도 무너지지 않은 해자가 완성된다.

자본의 해자(垓字)

영화 ‘저스티스 리그’에서 플래쉬가 배트맨에게 당신의 슈퍼 파워는 뭔지 물어보자 “돈이 많다”라고 답한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브루스 웨인의 차별점, 즉 비즈니스 세계에서 강조하는 해자(垓字)는, 바로 돈이었다. 시장에 돈이 넘쳐흘렀을 때, 자본 자체를 가장 큰 차별화 전략으로 만들면서 자본의 해자화를 추구했던 스타트업이 상당히 많았다. 일단 돈을 써서 고객을 획득하고, 이들을 락인(lock-in)한 후에 돈을 벌겠다는 전략을 구사하는 회사들은 특별한 기술적 또는 비즈니스적인 차별점 보단, 돈 자체를 차별점으로 내세웠다.

우리 포트폴리오에도 플랫폼 스타트업이 상당히 많은데 당근이나 숨고와 같은 회사들이 좋은 조건에 펀딩을 잘 받고 초기에는 자본을 무기로 사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창업 후 몇 년 동안은 매출이나 수익성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사용자들을 플랫폼에 온보딩시키는데 회사의 모든 자원을 집중했다. 돈은 나중에 벌 수 있다는 믿음이 강했고, 이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단 많은 사용자들이 확보되어야 했고, 단기간 내에 수많은 경쟁사들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은 사용자들을 획득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썼다. 퍼포먼스 마케팅, 그로쓰 마케팅과 같은 방법을 기반으로 마케팅을 했는데, 실은 그냥 돈을 엄청나게 많이 써서 사용자들을 구매한 것이다.

잠재고객이 수천 만명 존재하는 소비자 플랫폼엔 이런 자본을 앞세운 대량 고객 획득 전략은 잘만 실행하면 단기간에 많은 유저를 온보딩 시켜서 수요와 공급의 바퀴를 돌릴 수 있고, 바퀴의 마찰을 제거하기 위해서 계속 효율적으로 돈을 쓰면, 결국 모든 경쟁사를 따돌리고, 가만히 놔둬도 마찰 없이 영구적으로 돌아가는 플랫폼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플랫폼에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이 적용되면 웬만하면 다른 경쟁사가 넘볼 수도 없는 거대한 매출을 만드는 사업이 완성된다. 나는 이 단계까지 온 대표적인 기업이 쿠팡이라고 생각한다. 토스도 이 단계에 꽤 가까이 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자본으로 해자를 만드는 전략은 시장에서 돈이 사라지면서 더 이상 유효한 전략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니, 유효하지 못 한 전략이 아니라, 스타트업이 취할 수 있는 최악의 전략으로 전락했다고 하는게 맞을 것 같다. 돈으로 플랫폼을 키우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점에 계속 투자받아야 하는데, 과거와 같은 유동성도 없을뿐더러,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돈을 벌기도 전에 이렇게 돈을 써서 몸집을 키우는 기형적인 전략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정말로 플랫폼 경험이 많은 창업팀이 정말로 매력적인 플랫폼 비즈니스를 하는 게 아니라면, 투자를 받는 게 매우 힘들어졌다.

대신, 많은 창업가들이 이젠 몸집을 키우기 전에 돈부터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일단 사용자들을 모으면, 그다음에 어떻게든 돈을 벌 수 있다는 마인드에서 벗어나서, 일단 돈부터 벌고, 남는 돈으로 사용자를 더 모으자는 관점에서 사업을 하는 창업가들이 요샌 훨씬 더 많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바뀐 생각과 관점이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더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고 있다. 어떤 방법이나 전략을 사용하든 궁극적으로 기업은 돈을 벌고 수익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동안 경기가 너무 좋고 필요하면 돈이 항상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기 때문에 많은 창업가와 투자자들이 성장에 눈이 멀었던 것이 사실이다.

자본으로 해자를 만드는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나는 아직도 자본을 무기로 사용하는 전략을 아주 적절하고 조심스럽게 구사하는 스타트업이야말로 가장 빠르고 거대한 플랫폼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과거와같이 묻지마 마케팅 전략은 지양하는게 맞지만, 결국 플랫폼이라는 거대한 바퀴를 돌아가게 만드는 기름은 사용자이기 때문에 다른 경쟁사보다 더 빠르게 사용자를 확보해서 이들이 다른 플랫폼으로 갈아타지 못하게 락인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이 기본적인 작업이 안 되면 아무리 좋은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해도 규모가 안 나오기 때문이다.

이 포스팅을 읽으면 역시 또 혼란스러울 것이다. 돈도 벌어야 하지만, 동시에 돈도 태워서 사용자를 계속 확보하는 전략은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나한테 조언을 구한다면, 지금같이 돈이 메마른 시장에서는 돈을 버는 데 집중하는 게 맞지만, 플랫폼을 운영한다면 언젠가는 다시 성장하기 위해서 마케팅을 해야 할 것이고, 불경기 동안 큰 자본이 없어도 사업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건 바람직하지만, 결국 다시 크게 성장하기 위해선 자본이 무기가 되는 전략이 언젠가는 필요할 것이다.

한 가지 이유

나에겐 강연 요청이 꽤 들어온다. 다양한 행사와 대기업에서 정기적으로 발표나 강연에 대한 문의가 계속 들어오는데, 99% 다 거절한다. 이런 대중 앞에서 발표와 강연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에 우리 집안 살림(=스트롱)에 신경 써야 하고, 내가 대중 앞에서 이야기하는 걸 별로 즐기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기회가 되면 꼭 하고, 간혹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참여하는 행사나 강연이 있는데, 미래 창업가인 학생들이 청중일 때, 그리고 내가 정말로 공감하는 주제의 행사일 때이다.

얼마 전에 내가 정말로 공감하는 주제의 소규모 행사에 참여했다. 늦게 시작해서 늦게 끝난 행사였는데, 피곤했지만 집에 올 때 매우 뿌듯했다. 이 행사에서 스타트업에서 현재 일하고 있는 분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미팅할 때 좋은 창업가들을 구분할 수 있는, 이들만이 가진 시그널 중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상당히 좋은 질문이고, 좋은 것만큼 어려운 질문이었지만, 나는 바로 이분에게 답을 했다.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 바로 대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내가 최근에 아주 많이, 그리고 아주 깊게 생각하고 있었던 그런 내용과 일치했기 때문에 바로 공유할 수 있는 나만의 생각과 답이 있었던 것이다.

우린 엄청나게 많은 창업가들을 만난다. 스트롱에선 일 년에 1,000개가 넘는 스타트업을 만나는데, 이 중 20~30개에 투자하니까, 우린 웬만하면 잘 투자하지 않는 VC이고, 대부분의 VC들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러다 보니 많은 투자자들이 특정 회사에 왜 투자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선 모두 도사가 된다. 그 시장은 작아서 안 된다. 그 사업은 이미 과거에 많은 창업가들이 시도해 봤는데 안 됐다. 그 분야에는 이미 경쟁사가 많다. 내가 듣기론 네이버가 똑같은 사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 창업가는 학벌이 안 좋다. 그 창업가는 과거에 실패의 경험이 너무 크다. 특정 회사에 투자하면 안 되는 이러한 이유는 백만 가지 정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부정적인 의견들은 모두 논리적이고 똑똑해 보인다.

실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니콘 기업들인 쿠팡, 배민, 토스, 당근마켓도 위에서 말한 이유로 수많은 투자자들이 초기에 투자하지 않았다. 나도 여러 가지 안 되는 이유를 나열하면서 투자하지 않은 회사들이 엄청나게 큰 기업이 되는 걸 자주 경험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안 될 만한 백만 가지 이유를 찾지 말고, 될만한 이유 한 가지만 찾아서 투자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받은 질문에 대한 내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좋은 창업가들을 찾고 싶으면, 여러 가지 잡음을 무시하고, 딱 한 가지의 확실한 시그널을 찾으면 됩니다. 이 사람이 좋은 창업가가 아니라는 백만 가지의 시그널(=잡음)이 보일 텐데요,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사람이 좋은 창업가라는 딱 한 개의 시그널입니다. 이게 있다면, 여기에 베팅하는 게 우리 전략인 것 같아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런 말을 한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투자하지 않기 위한 이유는 백만 가지가 있다. 그리고 백만 가지 모든 이유가 굉장히 합리적이고 똑똑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투자를 꼭 해야 하는 딱 한 가지의 이유가 있다면, 우린 여기에 베팅한다.

성장과 수익의 저글링

지난주에 불경기가 왜 어떤 스타트업에겐 평생 한 번 올까말까한 기회인지에 대해서 몇 마디 썼다. 내 블로그를 계속 읽는 분들에겐 약간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오늘은 왜 이게 어쩌면 기회가 아니고 자멸로 가는 길일 수도 있는지에 대한 약간은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할땐 – 이건 팬데믹 기간뿐만 아니라 실은 지난 12년 동안이었다 – 모든 스타트업의 전략은 수익성보단 성장성에 기울어졌었다. 기형적으로 많은 돈과 자원이 돈을 벌어서 흑자 나는 회사를 만드는 방향보단, 손실이 발생해도 무조건 외형을 성장시키는 방향에 집중적으로 투자됐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또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무조건 성장하는 전략을 나도 좋아하진 않지만, 이게 맞냐 틀리냐를 따지기 전에, 경기가 좋을 때 당시 시장의 분위기도 감안을 해봐야 한다.

경기가 좋을 땐 정말로 유동성이 풍부했다. 정규 교육을 받았고, 누구나 알만한 회사에서 2년 이상의 직장 경험이 있는 창업팀이라면 웬만하면 투자를 받을 수 있던 시절이다. 워낙 비슷한 서비스가 많이 생겼고, 대부분의 회사들이 수많은 VC들로부터 투자를 받았기 때문에, 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익성 보단 성장이 중요했다. 그래서 창업가와 투자자 모두 다 적자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고효율의 그로쓰 마케팅에만 집중했다. 돈을 못 벌어도 일단은 고객을 획득해서 락인하면, 나중에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벌 수 있다는 – 지금은 이 사상을 모두 다 정말 싫어하지만 – 전략을 모두 다 진심으로 믿었었다. 우리를 포함해서.

마케팅에 돈을 너무 많이 썼고, 불필요하게 많은 사람을 뽑으면서, 투자금은 금방 사라졌지만, 상관없었다. 돈이 떨어지면 또 나가서 펀딩하면 됐고, 나쁘지 않은 조건에 후속 투자를 상당히 많은 스타트업들이 제품도 없고 비즈니스 모델도 없는 상태에서 잘 받았다. 이런 식으로 계속 돈을 쓰면서 외형만 성장시키는 게 진짜 비즈니스가 아니라는 걸 모두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해서 그 분야에서 일단 1등을 먹으면, 그 이후에 제대로 된 비즈니스를 해도 된다는 것도 모두 굳게 믿고 있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냥 돈이 워낙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해도 되는 분위기였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창업가와 투자자 모두 그냥 앞뒤 생각하지 않고 돈을 막 쓰고, 투자를 막 해도 크게 이상한 시절이 아니었다.

불경기가 찾아오고 유동성이 떨어지자 갑자기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성장하자는 분위기가 수단과 방법을 잘 가려서 돈을 벌자는 것으로 바뀌었다. 거래액이나 매출과 같은 외형을 키우기보단, 크게 성장하지 못해도 비용을 줄이고 수익성을 개선하는 게 요새 대부분 스타트업의 전략일 것이다. 우리 또한 스트롱 창업가분들에게 마이너스 나는 성장은 멈추고, 손익분기를 맞추고, 수익성에 집중하라고 한다. 성장 못 하는 걸 은근히 당연하게 생각하고, 수치가 줄어들어도 일단은 수익성을 맞추라고 강력하게 조언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수익성만 개선하고 성장을 못 하는 비즈니스는 크게 되기 힘들다. 성장이 없는 손익분기는 스타트업의 주 전략일 순 없고, 결국 작은 스타트업이 큰 사업이 되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성장이라는 페달을 다시 밟아야 한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런 생각을 하실 것이다. “언제는 무조건 성장하라고 하고, 언제는 성장 하지 않아도 되니 돈을 벌라고 하고, 이젠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라고 하네. 어쩌라고?”
이런 말을 하는 나도 좀 미안하지만, 이게 변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환경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대표들이 감수해야 하는 숙명이다. 경기가 좋지 않아서 시장에 유동성이 없을 땐, 수익성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그렇다고 성장에 대해서 아예 신경을 꺼버리면 안 된다. 상황이 다시 좋아지면, 언제든지 다시 성장에 초점을 맞출 준비는 항상 되어 있어야 한다. 결국 성장과 수익성이라는 두 가지의 공을 항상 저글링 해야 하고, 상황에 따라서 하나의 공을 떨어뜨릴 수도 있지만, 언제든지 다시 주워서 다시 저글링 할 준비가 항상 되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