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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편한 투자

내가 이 일을 하면서 항상 받는 질문이 몇 가지가 있다. 아마도 다른 VC도 다르지 않을 텐데, 이 중에서도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 “회사에 투자할 때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일 듯 싶다. 실은 너무나 흔하고 광범위한 질문이라서, 그 답변도 너무나 흔하고 광범위한데, 내 대답 또한 너무 흔하고 뻔한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다. 실은 이 답은 거의 교과서적인 답이다. 그래서 내가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면, 듣는 사람은 분명히 또 뻔한 교과서 같은 말만 한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어떤 분들은 “다른 투자자도 다 똑같이 사람이 중요하고, 투자할 때 사람보고 한다고 하는데요, 그러면 왜 어떤 투자자는 성공적인 투자를 하고, 어떤 투자자는 잘 못하나요?”라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거 가다. 하나는 그만큼 스타트업은 힘들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 내 경험에 의하면- 모두다 사람한테 투자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 투자를 집행할 때는 ‘사람’은 조금 뒷전으로 가고, 숫자에 우선순위가 매겨지기 때문이다.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한테 매출, MAU, 성장, 시장과 같은 지표가 안 중요한 건 아니다. 당연히 우리도 이 모든 걸 본다. 하지만, 우리가 투자하는 단계에서는 숫자 보단 역시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내 경험에 의하면 이렇게 투자했을 때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온다. 우리가 지금까지 8년 동안 투자한 130개가 넘는 회사에 대한 데이터를 아직 제대로 정리해보진 못 했지만, 이 중 가장 잘됐던 회사는 투자 당시 좋은 제품, 시장, 성장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던 곳 들이다. 그리고 당시에는 나도 투자 경험이 별로 없던지라, 그냥 “느낌이 좋은 곳”에 투자를 했었는데, 이 느낌을 좋게 만든 가장 큰 요소는 바로 대표이사와 팀이었다. 남의 돈으로 투자하는 사람이 이런 말 하면 좀 비과학적이고 우습지만, 첫 인상이 좋아서 느낌이 좋았고, 더 오래 만날수록 이 느낌이 강해졌기 때문에 투자한 사례가 우리는 상당히 많다.

투자자들은 리스크와 불확실성에 대해서 자주 언급한다. 투자의 핵심은 이 두 가지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주식투자에 비해서 벤처투자는 이렇게 하는 게 조금 더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불확실성을 줄여서 리스크를 최소화 한 후에 투자를 하는 게 이 분야에도 적용이 된다. 나는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미래가 예측 가능하면, 이 두 가지 요소를 그나마 컨트롤 할 수 있다고 보는데, 뭔가를 예측할 수 있으려면 변동성이 작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변동성이 없는 건 없다. 모든 게 변한다. 스타트업의 제품도 회사의 상황에 따라서 변한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도, 투자 당시에 만들던 제품이 아닌 완전히 다른 제품을 만들고 운영하는 팀들도 많다. 시장도 항상 바뀌게 마련이다. 이건 우리가 절대로 컨트롤 할 수가 없다. 즉, 스타트업은 계속 변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혼돈 속에서도 그나마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사람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사람은 웬만하면 잘 안 바뀌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에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리스크가 낮고, 불확실성이 가장 적은 투자이며, 그만큼 성공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사람한테 투자하면 또 하나 좋은 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이 회사가 잘 안 됐을 때 이다. 회사가 망하더라도, 우리가 정말 좋아하고 믿는 창업가한테 투자를 했기 때문에, 솔직히 이 경우에는 밤잠을 많이 설치진 않는다. “우리가 정말 믿는 분한테 투자를 했는데, 운이 좋지 않아서 이번에는 잘 안 됐다.”라는 상대적으로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아 물론, 그렇다고 말 그대로 우리 투자사가 망했는데 마음이 편하다는건 아니다). 만약에 전적으로 시장, 제품, 그리고 숫자를 보고 투자했다면, 이런 마음을 갖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사람에 대해서는 제각각 의견이 다른 것도 잘 안다. 우리 첫 번째 펀드 만들때 강북에서 주유소를 여러 개 소유하고 있는 현금부자 어르신을 만난 적이 있는데, 우리는 사람한테 투자한다고 하니까, 버럭 화를 내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믿으면 안 되는 게 사람인데 젊은 친구가 뭘 몰라도 단단히 모른다는 꾸중을 들은 적도 있다. 이 분은 어떤 사람을 지금까지 만났고,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은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상당히 많다는것도 잘 안다. 물론, 이 분은 우리 펀드에 출자하지 않으셨고, 만약 이 분 돈을 받았더라도 상당히 골치 아팠을 거 같다.

그래도 나는 확신한다. 모든 건 바뀌지만, 사람은 안 바뀐다. 즉, 우린 가장 확실한 투자를 하고 있는 셈이다.

뒤돌아 보지 않기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이 시간에 모든 걸 걸고,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우린 자주 듣는다. 머리로 생각하면 너무 맞는 말인데, 이 말을 지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린 과거에 집착한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때 그 말을 안 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때 다른 길을 갈 걸 등등…아무리 걱정하고, 아무리 상상하고,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해봤자,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과거의 일을 되돌리는 건 불가능한걸 모두 잘 알지만, 그래도 계속 후회하고 과거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면서 정말로 소중한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에 대한 값비싼 대가를 치른다. 바로, 이 현실이 과거가 됐을 때, 미래의 어느 시점에 그 과거에 대한 또 다른 후회이다.

나도 이 사실을 뻔히 알고 있지만, 과거에 집착하고 후회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다. 특히 일하다 보면, 투자에 대해서 이런 후회 할 때가 종종 있다. 우리는 투자하지 않았는데, 회사가 엄청 잘 되면, 그때 투자할 걸 왜 안 했을까라는 후회를 하고, 투자했는데, 회사가 잘 안 되면, 투자하지 말 걸 왜 했을까라는 후회도 하고, 뭐 그렇다. 아무 소용없고, 실은 정신적으로 굉장히 좋지 않기 때문에, 빨리 털고, 잊고, 현재/미래 지향적인 사고를 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 요샌 내가 이런 과거에 대한 생각을 할 때마다, 반강제적으로 잊어버리고, 정리하고 현재에 집중하려고 자신을 하드 트레이닝 하고 있다.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라서 그런지, 이런 과거에 집착하는 습관을 바꾸는 게 쉽지 않지만, 일단 한번 훈련하기 시작하니까, 또 몸과 마음과 정신이 금세 적응되기도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후회할만한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지만, 이런 완벽한 삶을 살기는 힘들다. 그러면 차선책은, 후회할만한 선택을 하더라도, 일어난 일이라면 그냥 깨끗하게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인데, 몸과 마음이 이렇게 하도록 훈련을 통해서 기계적 마인드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한다. 작년에 여러 가지 마음챙김 앱을 사용해봤는데, 마음챙김 명상이 이렇게 과거를 뒤돌아보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현재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꽤 많이 되는 거 같다.

매일매일 조금이라도 전진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이게 어렵다는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전진은 못 하더라도, 후퇴는 하지 말고, 너무 많이, 너무 오랫동안 뒤돌아 보지 않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과거는 잊어버리고 – 또는 너무 자주 꺼내 보지 않고 – 계속 새로운 문을 열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노력을 항상 하고 싶다.

겸손해질 수 있는 영광

스타트업 분야에서 일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로 고마운 점이 많아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특히, 대기업 또는 이 업과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는 매일 경험하기 때문에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경우가 꽤 많다.

다 나열하면 너무 많지만, 올해 이런 생각을 가장 많이 했을 때가 두 가지 경우다. 둘 다 창업가들과 이야기할 때 느낀 점들이다. 내가 만나는 창업가 중 95%가 소위 말하는 고생하는 바퀴벌레형 창업가이다. 나도 투자하는 사람 입장에서 원래 사업은 힘들고, 앞으로 더 힘들어 질 것이기 때문에, 항상 버티면서 허슬링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을 하지만, 나도 짧게 경험을 해봐서 알지만, 이게 정말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스타트업이 진짜 전쟁도 아니고, 조폭과 사업하는 것도 아니라서, 일 하다가 정말로 죽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마음가짐만큼은 정말 죽을 각오를 하고 덤비는 창업가들을 보고 있자면,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사서 고생하고, 힘든길을 가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질 때가 많다. 그리고 정말 가끔 그런 질문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 내가 누가 봐도 곧 망할 것 같은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분한테 “대표님, 그냥 이건 투자자로서 하는 질문이 아니라, 같은 사람으로서 궁금해서 물어보는데요, 이거 대체 왜 하시는 건가요? 그동안 잘 안 됐고, 앞으로도 잘 안 될 거 같은데요.”라는 질문을 했다. 이분이 조금 생각하더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글쎄요. 저는 제가 왜 이걸 하는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일이고, 그냥 매일 일어나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러다 보면 계속 살아남으면서 앞으로 나가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그만두면 이 힘든 여정이 끝나겠지만, 저는 그냥 계속할 거예요.”

이럴 때는 내가 왜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많이 겸손해진다. 저렇게 힘들지만, 계속 앞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불평불만 없이 내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고, 내가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가야겠다는 다짐을 항상 하게 된다.

또 항상 겸손해질 때가 있는데, 이미 성공 경험이 있는 창업가들이 다시 창업해서 역시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걸 볼 때다. 이 분들이야말로, 좋은 엑싯을 해서 평생 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고, 어떻게 보면 나 같은 투자자한테 돈 달라고 부탁하지 않아도 되지만, 내가 아는 그 어떤 창업가보다 열심히 일 한다. 이런 분들이 아직도 매일 15시간씩 일하고, 주말에도 회사에 나오고, 자나 깨나 사업 생각만 하는걸 보면, 그냥 반자동적으로 나를 돌아보게 되면서 겸손해진다. 전에 내가 개인 자산이 수천 억 원이 넘는 연쇄 창업가의 짐승피칭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 분야에 있다 보면 이런 분들을 꽤 자주 접할 수 있다. 대기업이나 다른 분야에서는 솔직히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아직 미완성 소프트웨어를 베타 제품이라고들 하는데, 인생도 미완성이고, 삶의 묘미는 이 미완성 인생을 계속 개선해나가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인생은 항상 베타라고 할 수 있다. 성공을 이미 했든, 실패를 여러 번 했든, 앞으로 성공을 하고 싶든, 창업가들이야말로, 상황과는 상관없이 항상 최선을 다하면서 정말 베타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 멋진 사람들이다.

나는 열심히 하는 것보단,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직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도, 어제보다 나은 오늘, 그리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하는 분들한테는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밤새 쳐주고 싶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분들과 같이 일하면서 항상 겸손해질 수 있는 건, 그 자체가 영광이다.

언더독

box-1514845_640지난주에 록키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록키에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underdog’이라는 단어인데, 스포츠에서 이길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를 두고 언더독이라고 한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언더독이 갑자기 등장해서, 그동안 패권을 잡고 있던 챔피언을 이기는 건 통쾌하고 짜릿하다. 우린 힘 있고, 항상 이기는 강자에 대해서 환호하지만, 갑자기 등장하는 약자의 대반격에 대해서는 이와는 다른 차원의 희열을 느낀다. 이건 아마도 인간의 DNA에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 같다.

여기서 한가지 명확하게 하고 갔으면 하는 게 있다. “언더독 = 약자”라고 많은 분이 생각하는데, 실은 언더독은 약자는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르지만, 큰 무대에서 이길 수 있다는 건 이들이 약자가 아니라 오히려 강자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단지 언더독들한테는 이전에는 자신의 능력과 실력을 증명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경쟁조차 하지 못 했을 뿐이다. 록키의 경우에도, 정신적/체력적으로는 훌륭한 선수였고, 정식 트레이닝을 받을 형편이 되지 않아서 제대로 훈련을 못 했지만, 아주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연습했다. 하지만,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이런 아마추어가 데뷔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식 시합을 하기 위해 링 위에 올라갈 기회가 한 번도 없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 기회가 왔고, 그 이후에는 모두가 잘 알듯이 세계적인 챔피언이 됐다.

올 한 해만 우리는 한국과 미국에서 30개가 넘는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는 대부분 록키와 같은 언더독이다. 모두 다 똑똑하고, 능력 있고, 웬만한 경쟁과 붙어도 이길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진 창업가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뭔가 시작하고, 만들고, 증명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한데, (아직은) 화려한 경력이나 대단한 빽이 없는 분들이라서 시작하기 위한 자금 확보가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분들이다. 대단히 큰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의 투자금이 이들에게는 뭔가를 시작해서 세상이라는 무대로 나갈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투자를 했던 거 같다.

내가 항상 이야기하는 게, 어차피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평등과 공평은 완전히 다른 말이고, 실은 이 세상이 평등하긴 한건가라는 의문까지 요샌 생기고 있다. 어떤 운 좋은 친구들은 100미터 인생을 80미터 지점에서 시작하고, 어떤 이들은 50미터 지점에서 시작한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0미터 지점인 출발선에서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운이 좋지 않은 친구들은 출발선에 설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더 안타깝고 화나는 건, 이건 유전자적으로 결정되는 거라서 내가 선택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능력이나 실력이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80미터 지점에서 시작한 선수들보다 더 빠르고, 힘차고, 멀리 달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건 달릴 수 있어야지 의미가 있는데, 이 언더독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잘 오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제공하는 작은 투자금이 이 언더독들이 링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언더독이 링에 올라간다고 해서 모두 록키같이 예상을 뒤엎고 이기진 않는다. 실은, 대부분 현실의 벽 앞에서 처참하게 박살 난다. 왜냐하면, 상대는 실전 경험도 많고, 돈도 많고, 모든 자원이 월등하게 많은 회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들이 자신의 능력 또는 무능력을 증명할 수 있게 링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다 열심히 살면, 한 번 정도의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초기 투자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언더독을 많이 만나게 된다. 실은 매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을 좋아하게 되고, 투자하게 되고, 결국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록키라는 실존하지 않는 인물을 그렇게 좋아하고, 생존하는 인간들한테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이 가상 인물한테 배우나 보다. 언더독들 파이팅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록키

1976년에 나는 2살이었다. 그래서 이 해에 영화 록키가 나왔을 때 당장 보진 못했지만, 한 10년 후에 비디오로 봤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헤비웨이트 복싱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가 록키의 고향 필라델피아에서 시합을 하기로 했는데, 상대가 손을 다쳐서 시합 출전 포기를 선언했고, 운 좋게 대타로 그냥 동네 체육관에서 운동하고 있던 가난하고 못 배운 록키가 시합을 뛰는 내용이다. 뭐, 워낙 전형적이고 진부한, 무명의 이민자 복서가 아폴로 크리드라는 챔피언을 상대로 거의 이길 뻔하면서 새로운 미국의 영웅이 된다는 그런 내용이다. 그래도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아직 세상의 쓴맛을 전혀 모르는 초등학생이었지만, 소위 말하는 ‘언더독’이 주는 감동을 그때 많이 느꼈고, 이후에 록키 시리즈는 내가 가장 즐겨보는 영화가 됐다. 영화도 재미있었고, 실베스터 스탈론이라는 배우도 이 역할에 너무 잘 맞았지만, 이 영화를 더욱더 신나고 감동적으로 만든 큰 요소는 바로 오리지널사운드트랙이라고 생각한다. 록키 음악은 아마도 전주만 살짝 들어도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유명한 음악일 것이다.

아직 2019년도가 끝나지 않아서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올해가 끝났을 때 나는 200일 이상 짐에서 운동했을 것이다. 나는 새해 다짐이나 계획 같은 걸 거창하게 세우지는 않지만, 작년 말, 올 초에 내가 그래도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건, 투자도 결국엔 체력 싸움이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더 강해져야겠다는건데, 스스로와 한 이 약속은 그래도 잘 지킨 거 같다. 주로 우리 아파트 지하에 있는 짐에서 운동했고, 출장 갈 때마다 운동복이랑 신발을 챙겨가서, 이 호텔 저 호텔에서도 항상 규칙적으로 운동을 했다. 나는 아침에 운동하는데, 이렇게 일주일에 4번씩 몸을 움직이는 게 항상 쉽고 재미있지는 않다. 전날 늦게 잤거나, 고민되는 일이 있거나, 일이 잘 안 풀리거나, 그냥, 더 자고 싶거나, 몸이 찌뿌듯하거나, 아니면 그냥 운동하기 싫은 날이 너무 많았고, 이런 날은 헬스클럽에 가도 좀처럼 부팅하는게 쉽지 않았다.

이럴 때마다 나를 매번 러닝머신 앞에서 뛰게 만들고, 다시 무거운 웨이트를 들게 만들고, 세상에 대한 굳은 각오와 다짐을 하게 만들던 음악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록키 시리즈다. 올해도 유튜브에서 정말 많고 다양한 록키 주제곡들을 들었는데, 매번 나를 규칙적으로 운동하게 만들고, 내 몸에 무한 영감을 줘서, 하루를 열심히 살 수 있게 만들었던 동영상을 공유한다. 혹시 격렬한 운동을 하는 분이라면, 그리고 계속 이 페이스를 이어가기 힘들다고 느끼신다면, 이럴 때 이 동영상을 한 번 보시길 권장한다.

내년에도 열심히 운동해서 육체적으로도 건강한 일 년이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